⊙ “정치적 양극화는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시민의 절반 정도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한 것… 정치인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나?”
⊙ “사이버 공간에서 처음에 달리는 댓글이 기사에 대한 여론 좌지우지”
⊙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
⊙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 소수의 과학자가 용기 내 목소리 내 괴담 막는 방파제 역할 해”
⊙ “민주화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 심판자 역할보다는 선수 역할 선호”
한병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정치학 박사 / 現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저서 《수령, 독재의 정석》 《독재의 법칙》 《광장의 법칙》 《나는 네가 어제 한 행동을 알고 있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칼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사이버 공간에서 처음에 달리는 댓글이 기사에 대한 여론 좌지우지”
⊙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
⊙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 소수의 과학자가 용기 내 목소리 내 괴담 막는 방파제 역할 해”
⊙ “민주화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 심판자 역할보다는 선수 역할 선호”
한병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정치학 박사 / 現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저서 《수령, 독재의 정석》 《독재의 법칙》 《광장의 법칙》 《나는 네가 어제 한 행동을 알고 있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칼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한국 정치는 이해불가(理解不可)다.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살아남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해도 꿈쩍없다. 특정 정치인이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지지자의 환호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괴담(怪談)이 과학(科學)을 밀어내는 경우도 많다.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우리 편이 하면 괜찮고 상대편이 하면 ‘죽일 놈’으로 몬다. 이런 ‘내로남불’은 이제 사전에도 올랐을 만큼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상(正常)의 비정상화(非正常化)’다.
이런 일련의 행태를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한병진(韓炳震·52) 계명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그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를 어떻게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걸까?
“댓글,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
지난 대선 때 ‘뉴스타파가 만든 거짓말 폭탄’을 KBS, MBC, JTBC, YTN,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이 다 인용 보도했다. 투표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가짜 뉴스를 이용해 민주당이 선거판을 뒤집으려 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자 출신 대장동 사건 주범 김만배,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 신학림(기자 출신) 등 언론인들이 가짜 뉴스의 생성, 유포에 관여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는데도 KBS 같은 거대 방송사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드렸다’ 정도로 넘어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 공중파 방송과 언론, 전·현직 언론인들이 가담한 대선 전 ‘가짜 뉴스’ 유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댓글입니다. 댓글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 댓글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겁니까.
“그럼요. 독립적인 사고(思考)나 독립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집합적인 의견을 접하게 되면, 사람은 거기에 따라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댓글은 말하자면, 사람들의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입니다.”
― 댓글이 실제로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첫 번째 댓글,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댓글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걸 아니까 댓글부대 이야기도 나오고, 어떤 기사가 몇 시 몇 분에 올라가니 기다렸다가 댓글 달라는 식의 공작(工作)도 하는 것 아닙니까. 아마 사이버 공간에서 상상 이상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기사에 처음 달리는 댓글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사회적 증거’와 ‘三人成虎’
독자적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 개인들이 왜 이처럼 쉽고 간단하게 집단의 의견을 따르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에 ‘사회적 증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두 비슷하게 생각할 때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론이죠. 슬프게도, 인간은 다수(多數)의 의견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경향이 무척 강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다수가 다르게 행동하면 자기의 생각을 바꿉니다. 다수가 믿으니까 실수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한비자(韓非子)의 삼인성호(三人成虎) 이야기입니다.”
― 정말로 셋이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한 호랑이 이야기도 사실이라고 믿는 겁니까.
“한비자 말로는, 비판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숫자가 셋까지라는 거죠. 한두 명이면 몰라도, 세 명까지가 같은 얘기를 하면 네 번째 사람부터는 스스로 자기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종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댓글 조작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일까?
“증거는 없지만, 정치학자로서, 또 정치심리학자로서 저는 댓글 조작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걸 왜 안 하겠습니까? 댓글 조작이 그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몇 가지 룰만큼은 피차간에 확실하게 지키자’라는 암묵적인 신사(紳士)협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댓글 조작의 영향력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요?”
― 그렇다면 이런 폐해(弊害)를 막을 길은 없습니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이버 공간의 기본적 특징이 익명성(匿名性)이니까요. 익명은 규범을 파괴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 행위, 원칙이 오프라인 공간에선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댓글이 과격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실이 죽은 사회’
사실의 왜곡, 왜곡된 사실의 전달, 익명성에 기반한 과격함의 결과물은 양극화(兩極化)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진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퍼 나른다. 의견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거의 없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사실(事實)은 죽었다’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쏠리다 보니 헝가리 같은 사례도 나왔어요. 1980년대 말 동구권 민주화 혁명 이후 헝가리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나라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헝가리를 거의 독재국가로 분류합니다.”
그렇다면 ‘사실이 죽은 사회’에선 가짜 뉴스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일까?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가짜인 줄 알면서도 퍼 나르는 것일까. 어떤 경우든 ‘사실이 아닌 무언가’가 상당한 영향력을 획득한다는 점에선 다 문제이기는 하다.
“저는 인간의 인식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비관적인 입장입니다. 셰익스피어도 군중의 인식력에 대해 ‘한심한(pathetic) 인간’이라고 표현했다는데, 저는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죠.”
― 아니 그럼 정치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기술, 이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죠. 슬프게도, 목적으로 쉽게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짜 뉴스 배포에 별로 부담을 안 느끼죠. 유권자 대다수는 진실과 가짜를 구분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주의 집중도 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가짜 뉴스와 지루한 사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인기가 많겠습니까? 사실은 대개 지루하거든요.”
― ‘사실’보다 ‘재미’가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선택 요인이라는 기준으로만 따지면, ‘재미’가 ‘사실’을 앞선다고 봅니다. 그렇게 가짜 뉴스를 보고, 그 가짜 뉴스를 일시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예컨대 조직화한 세력이 지지해버리면 가짜가 이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요.”
후쿠시마 예방주사가 된 ‘광우병 사태’
― 한 교수의 저서 《광장의 법칙》에는 가짜 뉴스와 관련, 사람들이 증거를 찾는 과정이 별로 과학적이지 않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치 영역에서는 과학을 들이대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결과는 너무나 변수(變數)가 많아서 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특정 원인이 특정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판단이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논의가 가능한 공간이거든요. 이 점은 정치학 자체가 가지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실험도 할 수 없고, 데이터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은 다 사례 연구를 하는데, 사례 연구의 문제점이 뭐냐? 수많은 변수가 있고 사례는 하나니까 각자가 원하는 대로 원인을 찾아서 학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학이나 증거가 정치적 논쟁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 광우병(狂牛病)도 가짜 정보와 비과학적 신념, 그리고 ‘사회적 증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당히 성숙해졌다고 봅니다. 후쿠시마 방류수(放流水) 사태를 보면 예전처럼 괴담이 통하지 않았어요. 이건 그만큼 우리가 면역력(免疫力)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광우병 사태’라는 예방주사의 힘이죠.”
한 교수는 “광우병 당시엔 과학자들이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았고, 이번 경우엔 과학자들이 발언을 아끼지 않은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여론의 분기점(分岐點)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를 확대하려고 했지만, 소수의 중요한 사람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내줬기 때문에, 이것이 괴담을 막는 방파제(防波堤) 역할을 한 겁니다.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한 거죠.”
천안함 사태와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
하지만 전체주의(全體主義)의 망령(亡靈)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댓글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목소리를 낸 과학자들을 향해 ‘이 사람 꼭 기억해놔야지’ ‘뒷조사해야 한다’라는 식의 공격이 이어졌다.
“공적(公的)인 발언에 대해서는 공적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과학으로는 반박 못 하니까 사적(私的)으로 공격하는 거죠. 공격받은 개인은 움츠러듭니다. 공포(恐怖)에 질려서 아예 말 못 하도록 만드는 작전입니다.”
공산주의는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않는다. 가족생활도 파괴한다. 가장 내밀한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자기를 파괴해야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댓글 행태가 그렇죠. ‘내가 너의 사적인 부분을 까발려서 너를 공격하겠다’, 이런 위험한 발언들이 꽤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희망을 느낍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고,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전문가도 여럿 계시니까요.”
―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용기 있는 발언, 방파제 역할을 한 분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랄까요? 그분들을 보호해야 한달까요? 그런 논의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죠. 어떤 양심을 가지고 자기가 믿는 선에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천안함에 대해서 이상하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믿고 싶은 신념에 따른 확증편향(確證偏向)과 음모론(陰謀論)입니다.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9·11 테러 때 미국 시민 중 극히 일부가 ‘조지 부시가 알면서도 내버려 뒀다’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가설(假說)을 제기한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전하더라도,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10개 중 한두 개는 나오거든요.”
― 그렇죠. 과학자들은 또 90%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나머지 10%의 증거가 없는 경우, 조사 결과를 단언(斷言)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음모론자는 논리를 어떻게 비트느냐. ‘천안함을 북한이 파괴했다, 폭침(爆沈)이다’라는 증거가 8개가 나왔고, 2개 정도는 ‘지금 드러난 물증(物證)만으로는 과학적으로 100%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해보죠. 이렇게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증거라고 내세우면서, ‘전체가 다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논리적 오류(誤謬)입니다. 논리학 전공자 등 전문가가 나서서 이 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지난 시절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선뜻 이런 말을 하기 어려웠죠. 말했다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쪽에서.”
― 천안함 때는 용기를 내서 소신 발언하기에는 화자(話者)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이 컸다는 말씀이네요. 그러면 이번 후쿠시마 방류수 같은 경우에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용기를 낸 겁니까.
“원자력이라는 이슈가 과학적으로 확신할 만큼 전문적 지식이 쌓여 있다는 점이 크죠. 그래도 그분들이 영웅적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비겁한 우파 정치인들
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해야 할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무임승차(無賃乘車)하려는 정치인을 향해서다.
“우리나라 우파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그런데 천안함 같은 경우는 의외로 강한 목소리를 안 냈습니다.”
―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비겁한 건가요?
“이건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고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그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죠. 좌파들은 우파 인사들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파는, 특히 우파 정치인은 남 이야기 하듯 합니다. 천안함에 대해서도 할 얘기는 확실하게, 지속적으로 해야죠.”
―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을 옹호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그런 말을 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 아직도 천안함을 둘러싼 음모론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겁니다. 우파 정치인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제가 볼 때는 그걸 제대로 안 하고 있어요.”
― 우파 정치인들이 그걸 안 하는 이유는 뭡니까.
“국민의힘이 웰빙 정당이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좌파 정당의 경우, 기본적으로 젊은 시절부터 정치적 싸움으로 단련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됩니다. 그래서 전투력이 있어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어느 정도 희생정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단 내에서는 당파적인 희생성이 있어요. 반면에 우파 정당은 웰빙 분위기가 주류죠. 걱정입니다.”
“국힘, 왜 천안함 갖고 1년 내내 싸우지 않나?”
한 교수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먼저 걸고넘어져야 한다. 끝까지 걸고넘어져야 한다. 아직까지 논쟁이 되는 문제, 다시 말해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면 문제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왜 천안함을 가지고 1년 내내 싸우지 않습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천안함 기념식, 세미나, 전시회 등 행사를 1년 내내 하고 그쪽에서 하는 것처럼 서울시청 앞에다가 동상도 세우고, 아니 왜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 왜 안 하는 걸까요?
“팩트도 팩트지만, 이건 팩트 자체가 너무나 명확하고 북한의 소행이 명확한 사건인데 이걸 왜 이슈로 만들지 않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이며, 대한민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어요, 한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자기들의 최종 목표라고. 이런 심각성을 우파 정치인도 느끼고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네요.
“윤석열 정부는 다릅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거든요. 건군 75주년 기념식에서 ‘북 도발 시 실전적 전투 역량과 확고한 대비 태세로 즉각 응징’하겠다고 했죠. 뒤편 현수막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글도 새겼습니다. 정치학자로서 제가 윤석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나 국내 경제 정책 쪽에서는 제가 반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건 사소한 부분이죠. 제가 봤을 때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 ‘응징하겠다’는 표현을 쓴 대통령은 처음입니다.”
“북한에 대해 대결적으로 나가야”
― 북한에 대해서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면 통일 반대 세력,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일이죠. 저는 북한에 대해 대결적(對決的)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決死抗戰) 의지를 전쟁 전부터 확실하게 보였으면 러시아는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일부 운동권 인사들이 주장하는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업보다. 미국이 러시아의 푸틴을 전쟁하도록 유도했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마치 6·25 남침 유도설하고 똑같은 얘기죠.”
―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일주일 안에 쉽게 끝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판단을 잘못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싸울 각오를 밝혔으면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던 소식 기억하십니까? ‘우크라이나 부자들이 전쟁 날까 봐 국외로 도망가고 있다’는 그런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데 푸틴이 왜 안 쳐들어갑니까? 쳐들어가죠.”
―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응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입니까.
“네.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람은 잘 까먹거든요.”
― 그런데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면 ‘전쟁하자는 거냐?’ ‘전쟁광이냐?’ 이런 식의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기왕 대통령이 판을 깔아줬으니까 한번 붙어보자는 거예요. 그쪽하고 이쪽하고 제대로 논쟁해보자는 겁니다. 저도 뉴욕에서 박사를 받았지만, 미국에서 국제 정치로 박사 받은 사람들이, 그것도 학창 시절에는 전혀 그런 성향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북한하고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해체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죠.”
― 일종의 곡학아세(曲學阿世)입니까.
“인간의 정의감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았을 때는 정의롭지만, 출세나 엄청난 자리가 앞에 보이면 다 꺾여버립니다.”
“보상 아니라 보호만 해줘도 된다”
― 그렇다면 용기 내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이 우파 쪽에서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게 편향의 원인일 수도 있을까요?
“보상까진 바라지도 않고 보호만 해줘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 실컷 하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제가 그런 사람인데, 저는 말을 실컷 하게만 해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저한테는 보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취급했었죠.”
― 우파를 표방한 정권조차도 북에 대해 대결적 발언을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우파든 좌파든 남북 관계의 이벤트가 만들어졌을 때 오는 정치적인 이득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죠. 그 유혹을 못 이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했는데, 학자로서,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도 발언이 명확하고 선명하고, 대통령이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윤 대통령이 두 가지만 해주면 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법치(法治)를 세우는 것. 그다음에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서, 사회적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병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한 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유가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선명하게 밝혔다는 것이 아주 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구도를 잡으면, 북한의 공작(工作)이 들어설 틈이 없어집니다.”
내로남불과 ‘마음속의 회계장부’
― 무슨 뜻입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민족’을 강조했죠.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북이 쳐놓은 프레임 속에 빠진 겁니다. 민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없는 북한 상황에 대해 비판하기 힘듭니다.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인 집단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그토록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이나 자유 이야기를 조금도 하지 않죠. ‘민족’이란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정권은 남북 관계에서 용어를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의 사소한 잘못이나 부조리에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동원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왜 그런 겁니까.
“바로 ‘사고(思考)의 구획화(區劃化)’ 때문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개념이죠.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이라고, ‘마음의 회계장부 혹은 심리 계좌’로 번역이 되는데요, 사람의 마음에는 ‘생각의 방’이 있다는 겁니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민족 통일방’과 ‘한국 인권방’이 나누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로 방이 나뉘어 있으니까 한국 인권 생각할 때는 자기들 기준으로 한국 방에서 생각하고, 그러다가 방을 또 옮겨서 북한방으로 들어가면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민족, 자주, 뭐 그런 것들만 딱 생각하니까 아주 편하게 모순적인 사고를 하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일부 여성 운동하는 분들이 우파 쪽 사람들의 성(性)추문에 관해서는 여성 인권 문제를 들이대고, 자기들이 신봉하는 진영의 사람들의 추문에 대해서는, 예컨대 박원순 시장 사건 일어났을 때 ‘피해 호소인’ 같은 말을 만들어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마음속에 우리 편 방, 적의 편 방이 따로 있는 거죠. 이중적 잣대가 내로남불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내로남불은 ‘사고의 구획화’ 말고도 다른 요인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좌파, 자기가 한 말에 책임 안 지려 해”
― 뭔가요?
“이기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인간은 좌파나 우파나 욕망의 결합체죠. 그런데 좌파 세력들이 힘든 건 뭐냐? 이 사람들은 보편적 원칙을 굉장히 사랑한다고 공표하죠. 정의롭다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치적으로 이기적인 욕망이 있고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정의롭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인데, ‘정의감이라는 것은 이해관계를 만나버리면 그냥 바로 무너진다’라고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1751~1836년)이 이미 이야기했죠. 미국 헌법 만들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말이 대단한 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들은 워낙에 시끄럽게 보편적 가치를 외치는데 본인들이 이 가치에 맞게 행동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이걸 일치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無能力)에 대해서 자각하겠죠, 무의식적으로라도요.”
― 그럼 그 지점에서 내면의 붕괴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스트레스가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문제를 누군가 연구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치와 행위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원래는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려고 한다는 것이 ‘자기정당화 이론’인데 좌파는 그렇지 않거든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안 지려고 그러죠.”
― 자기모순적 존재로는 소위 말하는 ‘개딸’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들이 벌이는 행태는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반대파에게 무자비하게 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들의 행동방식이 바뀔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개딸들은 이재명 대표와 정치 운명을 같이하겠죠. 이재명 대표가 사법적(司法的)으로 어떤 판단을 받느냐에 따라서 개딸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겁니다. 그만큼 지속성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또 다른 정치인이 나오면 그쪽으로 가겠죠.”
“이재명 사라져도 개딸 행태는 안 바뀐다”
― 이재명 대표가 사법처리되면 ‘재판이 불공정했다’ 이렇게 들고일어날 가능성은요?
“일시적으로 반발이 있겠지만 곧 스러질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법처리가 되면 제도적으로 개인의 정치적인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가 사라지는 순간 이재명은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딸의 행태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깨문은 사라졌지만 개딸이 나왔잖아요? 다른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쪽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 그렇다면 대깨문, 개딸들이 추구하는 건 뭘까요?
“엘리트 이론에서 말하듯이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비정부 조직이든 혁명 조직이든 정부 조직이든 간에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정치인 중에서 개딸을 주목하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새로운 기회가 오면 길 잃은 사람들을 선점(先占)하려는 거죠. 그 사람들을 조직화하면 자기가 지도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오는 여러 가지 유형무형의 보상이 있을 테니까 개딸 지도부는 와해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겁니다.”
― 그럼 군중이 얻는 이익은 뭡니까.
“그건 셰익스피어가 잘 이야기를 했는데, 집단행동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표현의 욕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공통이죠. 현대의 시민들은 심판을 넘어서는 역할을 원하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거에서 누구를 심판하는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고 싶어 하는 거죠.”
― 다수가 그렇게 집단행동을 하면 스스로 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선수와 심판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심판자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지만, 선수가 되면 누가 이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자기 팀이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의 정치학에서는 시민을 심판자로 상정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가 넓어졌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새로운 광장 문화를 만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민주화의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이 심판자의 역할보다는 선수로서의 역할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 시민들이 심판이 아니라 선수 역할을 했을 때의 문제는 뭡니까.
“정치인들이 어떤 경우에도 겁을 안 내는 겁니다. 지금 겁을 안 내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이 잘못하고도, 법을 어기고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러냐? 정치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정치적 처벌인데,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처벌을 받을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양극화는 민주주의 후퇴 부른다”
― 《광장의 법칙》을 보니 이런 현상이 시민사회의 후퇴를 부르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릅니다. 저는 계속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정치인은 좌나 우나 믿을 수 없다고요. 비교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요건으로 꼽는 사항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내리는 정치적 처벌이 바로 ‘시민의 힘’이고, 이 힘이 있어야 정치인들의 권력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양극화가 되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이건 특정 정치인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시민의 절반 정도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자체가 상시적 면죄부(免罪符)인 겁니다. 그럼 정치인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습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반이 자기를 처벌하지 않겠다는데요? 그럼 정치인이 타락하는 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 그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타락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게 됩니까.
“잘못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 거죠.”
― 민주주의의 후퇴라면은 중우정치(衆愚政治)를 말하는 겁니까?
“중우정치를 넘어서서, 저는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댓글 테러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래도 한국 사회는 비교적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다음에 유력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처벌했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법의 지배가 공고해졌습니다. 윤 정부가 이런 면에서 상당히 방향을 잘 잡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까 말했던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가 이렇게 합리적인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믿습니다. 훌륭한 지식인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행태를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한병진(韓炳震·52) 계명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그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를 어떻게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걸까?
“댓글,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
지난 대선 때 ‘뉴스타파가 만든 거짓말 폭탄’을 KBS, MBC, JTBC, YTN,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이 다 인용 보도했다. 투표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가짜 뉴스를 이용해 민주당이 선거판을 뒤집으려 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자 출신 대장동 사건 주범 김만배,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 신학림(기자 출신) 등 언론인들이 가짜 뉴스의 생성, 유포에 관여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는데도 KBS 같은 거대 방송사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드렸다’ 정도로 넘어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 공중파 방송과 언론, 전·현직 언론인들이 가담한 대선 전 ‘가짜 뉴스’ 유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댓글입니다. 댓글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 댓글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겁니까.
“그럼요. 독립적인 사고(思考)나 독립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집합적인 의견을 접하게 되면, 사람은 거기에 따라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댓글은 말하자면, 사람들의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입니다.”
― 댓글이 실제로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첫 번째 댓글,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댓글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걸 아니까 댓글부대 이야기도 나오고, 어떤 기사가 몇 시 몇 분에 올라가니 기다렸다가 댓글 달라는 식의 공작(工作)도 하는 것 아닙니까. 아마 사이버 공간에서 상상 이상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기사에 처음 달리는 댓글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사회적 증거’와 ‘三人成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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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진 교수의 저서들. 주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
“심리학에 ‘사회적 증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두 비슷하게 생각할 때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론이죠. 슬프게도, 인간은 다수(多數)의 의견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경향이 무척 강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다수가 다르게 행동하면 자기의 생각을 바꿉니다. 다수가 믿으니까 실수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한비자(韓非子)의 삼인성호(三人成虎) 이야기입니다.”
― 정말로 셋이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한 호랑이 이야기도 사실이라고 믿는 겁니까.
“한비자 말로는, 비판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숫자가 셋까지라는 거죠. 한두 명이면 몰라도, 세 명까지가 같은 얘기를 하면 네 번째 사람부터는 스스로 자기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종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댓글 조작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일까?
“증거는 없지만, 정치학자로서, 또 정치심리학자로서 저는 댓글 조작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걸 왜 안 하겠습니까? 댓글 조작이 그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몇 가지 룰만큼은 피차간에 확실하게 지키자’라는 암묵적인 신사(紳士)협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댓글 조작의 영향력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요?”
― 그렇다면 이런 폐해(弊害)를 막을 길은 없습니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이버 공간의 기본적 특징이 익명성(匿名性)이니까요. 익명은 규범을 파괴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 행위, 원칙이 오프라인 공간에선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댓글이 과격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실이 죽은 사회’
사실의 왜곡, 왜곡된 사실의 전달, 익명성에 기반한 과격함의 결과물은 양극화(兩極化)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진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퍼 나른다. 의견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거의 없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사실(事實)은 죽었다’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쏠리다 보니 헝가리 같은 사례도 나왔어요. 1980년대 말 동구권 민주화 혁명 이후 헝가리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나라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헝가리를 거의 독재국가로 분류합니다.”
그렇다면 ‘사실이 죽은 사회’에선 가짜 뉴스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일까?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가짜인 줄 알면서도 퍼 나르는 것일까. 어떤 경우든 ‘사실이 아닌 무언가’가 상당한 영향력을 획득한다는 점에선 다 문제이기는 하다.
“저는 인간의 인식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비관적인 입장입니다. 셰익스피어도 군중의 인식력에 대해 ‘한심한(pathetic) 인간’이라고 표현했다는데, 저는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죠.”
― 아니 그럼 정치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기술, 이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죠. 슬프게도, 목적으로 쉽게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짜 뉴스 배포에 별로 부담을 안 느끼죠. 유권자 대다수는 진실과 가짜를 구분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주의 집중도 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가짜 뉴스와 지루한 사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인기가 많겠습니까? 사실은 대개 지루하거든요.”
― ‘사실’보다 ‘재미’가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선택 요인이라는 기준으로만 따지면, ‘재미’가 ‘사실’을 앞선다고 봅니다. 그렇게 가짜 뉴스를 보고, 그 가짜 뉴스를 일시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예컨대 조직화한 세력이 지지해버리면 가짜가 이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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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진 교수는 “우리나라가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당히 성숙해지고 면역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사진=조선DB |
“정치 영역에서는 과학을 들이대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결과는 너무나 변수(變數)가 많아서 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특정 원인이 특정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판단이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논의가 가능한 공간이거든요. 이 점은 정치학 자체가 가지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실험도 할 수 없고, 데이터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은 다 사례 연구를 하는데, 사례 연구의 문제점이 뭐냐? 수많은 변수가 있고 사례는 하나니까 각자가 원하는 대로 원인을 찾아서 학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학이나 증거가 정치적 논쟁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 광우병(狂牛病)도 가짜 정보와 비과학적 신념, 그리고 ‘사회적 증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당히 성숙해졌다고 봅니다. 후쿠시마 방류수(放流水) 사태를 보면 예전처럼 괴담이 통하지 않았어요. 이건 그만큼 우리가 면역력(免疫力)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광우병 사태’라는 예방주사의 힘이죠.”
한 교수는 “광우병 당시엔 과학자들이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았고, 이번 경우엔 과학자들이 발언을 아끼지 않은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여론의 분기점(分岐點)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를 확대하려고 했지만, 소수의 중요한 사람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내줬기 때문에, 이것이 괴담을 막는 방파제(防波堤) 역할을 한 겁니다.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한 거죠.”
천안함 사태와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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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좌파 세력은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해보려 했지만,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사진=조선DB |
“공적(公的)인 발언에 대해서는 공적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과학으로는 반박 못 하니까 사적(私的)으로 공격하는 거죠. 공격받은 개인은 움츠러듭니다. 공포(恐怖)에 질려서 아예 말 못 하도록 만드는 작전입니다.”
공산주의는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않는다. 가족생활도 파괴한다. 가장 내밀한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자기를 파괴해야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댓글 행태가 그렇죠. ‘내가 너의 사적인 부분을 까발려서 너를 공격하겠다’, 이런 위험한 발언들이 꽤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희망을 느낍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고,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전문가도 여럿 계시니까요.”
―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용기 있는 발언, 방파제 역할을 한 분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랄까요? 그분들을 보호해야 한달까요? 그런 논의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죠. 어떤 양심을 가지고 자기가 믿는 선에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천안함에 대해서 이상하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믿고 싶은 신념에 따른 확증편향(確證偏向)과 음모론(陰謀論)입니다.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9·11 테러 때 미국 시민 중 극히 일부가 ‘조지 부시가 알면서도 내버려 뒀다’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가설(假說)을 제기한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전하더라도,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10개 중 한두 개는 나오거든요.”
― 그렇죠. 과학자들은 또 90%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나머지 10%의 증거가 없는 경우, 조사 결과를 단언(斷言)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음모론자는 논리를 어떻게 비트느냐. ‘천안함을 북한이 파괴했다, 폭침(爆沈)이다’라는 증거가 8개가 나왔고, 2개 정도는 ‘지금 드러난 물증(物證)만으로는 과학적으로 100%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해보죠. 이렇게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증거라고 내세우면서, ‘전체가 다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논리적 오류(誤謬)입니다. 논리학 전공자 등 전문가가 나서서 이 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지난 시절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선뜻 이런 말을 하기 어려웠죠. 말했다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쪽에서.”
― 천안함 때는 용기를 내서 소신 발언하기에는 화자(話者)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이 컸다는 말씀이네요. 그러면 이번 후쿠시마 방류수 같은 경우에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용기를 낸 겁니까.
“원자력이라는 이슈가 과학적으로 확신할 만큼 전문적 지식이 쌓여 있다는 점이 크죠. 그래도 그분들이 영웅적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해야 할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무임승차(無賃乘車)하려는 정치인을 향해서다.
“우리나라 우파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그런데 천안함 같은 경우는 의외로 강한 목소리를 안 냈습니다.”
―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비겁한 건가요?
“이건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고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그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죠. 좌파들은 우파 인사들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파는, 특히 우파 정치인은 남 이야기 하듯 합니다. 천안함에 대해서도 할 얘기는 확실하게, 지속적으로 해야죠.”
―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을 옹호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그런 말을 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 아직도 천안함을 둘러싼 음모론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겁니다. 우파 정치인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제가 볼 때는 그걸 제대로 안 하고 있어요.”
― 우파 정치인들이 그걸 안 하는 이유는 뭡니까.
“국민의힘이 웰빙 정당이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좌파 정당의 경우, 기본적으로 젊은 시절부터 정치적 싸움으로 단련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됩니다. 그래서 전투력이 있어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어느 정도 희생정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단 내에서는 당파적인 희생성이 있어요. 반면에 우파 정당은 웰빙 분위기가 주류죠. 걱정입니다.”
“국힘, 왜 천안함 갖고 1년 내내 싸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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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천안함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도 천안함 폭침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사진=조선DB |
“국민의힘은 왜 천안함을 가지고 1년 내내 싸우지 않습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천안함 기념식, 세미나, 전시회 등 행사를 1년 내내 하고 그쪽에서 하는 것처럼 서울시청 앞에다가 동상도 세우고, 아니 왜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 왜 안 하는 걸까요?
“팩트도 팩트지만, 이건 팩트 자체가 너무나 명확하고 북한의 소행이 명확한 사건인데 이걸 왜 이슈로 만들지 않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이며, 대한민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어요, 한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자기들의 최종 목표라고. 이런 심각성을 우파 정치인도 느끼고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네요.
“윤석열 정부는 다릅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거든요. 건군 75주년 기념식에서 ‘북 도발 시 실전적 전투 역량과 확고한 대비 태세로 즉각 응징’하겠다고 했죠. 뒤편 현수막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글도 새겼습니다. 정치학자로서 제가 윤석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나 국내 경제 정책 쪽에서는 제가 반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건 사소한 부분이죠. 제가 봤을 때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 ‘응징하겠다’는 표현을 쓴 대통령은 처음입니다.”
“북한에 대해 대결적으로 나가야”
― 북한에 대해서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면 통일 반대 세력,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일이죠. 저는 북한에 대해 대결적(對決的)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決死抗戰) 의지를 전쟁 전부터 확실하게 보였으면 러시아는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일부 운동권 인사들이 주장하는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업보다. 미국이 러시아의 푸틴을 전쟁하도록 유도했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마치 6·25 남침 유도설하고 똑같은 얘기죠.”
―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일주일 안에 쉽게 끝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판단을 잘못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싸울 각오를 밝혔으면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던 소식 기억하십니까? ‘우크라이나 부자들이 전쟁 날까 봐 국외로 도망가고 있다’는 그런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데 푸틴이 왜 안 쳐들어갑니까? 쳐들어가죠.”
―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응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입니까.
“네.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람은 잘 까먹거든요.”
― 그런데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면 ‘전쟁하자는 거냐?’ ‘전쟁광이냐?’ 이런 식의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기왕 대통령이 판을 깔아줬으니까 한번 붙어보자는 거예요. 그쪽하고 이쪽하고 제대로 논쟁해보자는 겁니다. 저도 뉴욕에서 박사를 받았지만, 미국에서 국제 정치로 박사 받은 사람들이, 그것도 학창 시절에는 전혀 그런 성향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북한하고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해체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죠.”
― 일종의 곡학아세(曲學阿世)입니까.
“인간의 정의감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았을 때는 정의롭지만, 출세나 엄청난 자리가 앞에 보이면 다 꺾여버립니다.”
“보상 아니라 보호만 해줘도 된다”
― 그렇다면 용기 내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이 우파 쪽에서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게 편향의 원인일 수도 있을까요?
“보상까진 바라지도 않고 보호만 해줘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 실컷 하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제가 그런 사람인데, 저는 말을 실컷 하게만 해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저한테는 보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취급했었죠.”
― 우파를 표방한 정권조차도 북에 대해 대결적 발언을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우파든 좌파든 남북 관계의 이벤트가 만들어졌을 때 오는 정치적인 이득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죠. 그 유혹을 못 이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했는데, 학자로서,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도 발언이 명확하고 선명하고, 대통령이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윤 대통령이 두 가지만 해주면 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법치(法治)를 세우는 것. 그다음에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서, 사회적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병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한 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유가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선명하게 밝혔다는 것이 아주 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구도를 잡으면, 북한의 공작(工作)이 들어설 틈이 없어집니다.”
내로남불과 ‘마음속의 회계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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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성향의 주류 여성단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 등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조선DB |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민족’을 강조했죠.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북이 쳐놓은 프레임 속에 빠진 겁니다. 민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없는 북한 상황에 대해 비판하기 힘듭니다.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인 집단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그토록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이나 자유 이야기를 조금도 하지 않죠. ‘민족’이란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정권은 남북 관계에서 용어를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의 사소한 잘못이나 부조리에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동원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왜 그런 겁니까.
“바로 ‘사고(思考)의 구획화(區劃化)’ 때문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개념이죠.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이라고, ‘마음의 회계장부 혹은 심리 계좌’로 번역이 되는데요, 사람의 마음에는 ‘생각의 방’이 있다는 겁니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민족 통일방’과 ‘한국 인권방’이 나누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로 방이 나뉘어 있으니까 한국 인권 생각할 때는 자기들 기준으로 한국 방에서 생각하고, 그러다가 방을 또 옮겨서 북한방으로 들어가면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민족, 자주, 뭐 그런 것들만 딱 생각하니까 아주 편하게 모순적인 사고를 하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일부 여성 운동하는 분들이 우파 쪽 사람들의 성(性)추문에 관해서는 여성 인권 문제를 들이대고, 자기들이 신봉하는 진영의 사람들의 추문에 대해서는, 예컨대 박원순 시장 사건 일어났을 때 ‘피해 호소인’ 같은 말을 만들어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마음속에 우리 편 방, 적의 편 방이 따로 있는 거죠. 이중적 잣대가 내로남불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내로남불은 ‘사고의 구획화’ 말고도 다른 요인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좌파, 자기가 한 말에 책임 안 지려 해”
― 뭔가요?
“이기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인간은 좌파나 우파나 욕망의 결합체죠. 그런데 좌파 세력들이 힘든 건 뭐냐? 이 사람들은 보편적 원칙을 굉장히 사랑한다고 공표하죠. 정의롭다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치적으로 이기적인 욕망이 있고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정의롭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인데, ‘정의감이라는 것은 이해관계를 만나버리면 그냥 바로 무너진다’라고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1751~1836년)이 이미 이야기했죠. 미국 헌법 만들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말이 대단한 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들은 워낙에 시끄럽게 보편적 가치를 외치는데 본인들이 이 가치에 맞게 행동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이걸 일치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無能力)에 대해서 자각하겠죠, 무의식적으로라도요.”
― 그럼 그 지점에서 내면의 붕괴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스트레스가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문제를 누군가 연구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치와 행위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원래는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려고 한다는 것이 ‘자기정당화 이론’인데 좌파는 그렇지 않거든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안 지려고 그러죠.”
― 자기모순적 존재로는 소위 말하는 ‘개딸’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들이 벌이는 행태는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반대파에게 무자비하게 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들의 행동방식이 바뀔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개딸들은 이재명 대표와 정치 운명을 같이하겠죠. 이재명 대표가 사법적(司法的)으로 어떤 판단을 받느냐에 따라서 개딸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겁니다. 그만큼 지속성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또 다른 정치인이 나오면 그쪽으로 가겠죠.”
“이재명 사라져도 개딸 행태는 안 바뀐다”
― 이재명 대표가 사법처리되면 ‘재판이 불공정했다’ 이렇게 들고일어날 가능성은요?
“일시적으로 반발이 있겠지만 곧 스러질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법처리가 되면 제도적으로 개인의 정치적인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가 사라지는 순간 이재명은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딸의 행태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깨문은 사라졌지만 개딸이 나왔잖아요? 다른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쪽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 그렇다면 대깨문, 개딸들이 추구하는 건 뭘까요?
“엘리트 이론에서 말하듯이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비정부 조직이든 혁명 조직이든 정부 조직이든 간에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정치인 중에서 개딸을 주목하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새로운 기회가 오면 길 잃은 사람들을 선점(先占)하려는 거죠. 그 사람들을 조직화하면 자기가 지도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오는 여러 가지 유형무형의 보상이 있을 테니까 개딸 지도부는 와해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겁니다.”
― 그럼 군중이 얻는 이익은 뭡니까.
“그건 셰익스피어가 잘 이야기를 했는데, 집단행동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표현의 욕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공통이죠. 현대의 시민들은 심판을 넘어서는 역할을 원하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거에서 누구를 심판하는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고 싶어 하는 거죠.”
― 다수가 그렇게 집단행동을 하면 스스로 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선수와 심판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심판자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지만, 선수가 되면 누가 이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자기 팀이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의 정치학에서는 시민을 심판자로 상정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가 넓어졌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새로운 광장 문화를 만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민주화의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이 심판자의 역할보다는 선수로서의 역할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 시민들이 심판이 아니라 선수 역할을 했을 때의 문제는 뭡니까.
“정치인들이 어떤 경우에도 겁을 안 내는 겁니다. 지금 겁을 안 내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이 잘못하고도, 법을 어기고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러냐? 정치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정치적 처벌인데,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처벌을 받을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양극화는 민주주의 후퇴 부른다”
― 《광장의 법칙》을 보니 이런 현상이 시민사회의 후퇴를 부르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릅니다. 저는 계속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정치인은 좌나 우나 믿을 수 없다고요. 비교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요건으로 꼽는 사항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내리는 정치적 처벌이 바로 ‘시민의 힘’이고, 이 힘이 있어야 정치인들의 권력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양극화가 되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이건 특정 정치인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시민의 절반 정도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자체가 상시적 면죄부(免罪符)인 겁니다. 그럼 정치인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습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반이 자기를 처벌하지 않겠다는데요? 그럼 정치인이 타락하는 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 그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타락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게 됩니까.
“잘못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 거죠.”
― 민주주의의 후퇴라면은 중우정치(衆愚政治)를 말하는 겁니까?
“중우정치를 넘어서서, 저는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댓글 테러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래도 한국 사회는 비교적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다음에 유력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처벌했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법의 지배가 공고해졌습니다. 윤 정부가 이런 면에서 상당히 방향을 잘 잡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까 말했던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가 이렇게 합리적인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믿습니다. 훌륭한 지식인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