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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 낸 최해범 통합과전환 사무총장

“K-평등주의는 출세 욕구가 수반된 ‘양반으로서의 평등주의’”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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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정당, 영혼·이념 없고 이념의 힘 모르는 듯”
⊙ “한국의 저출산, 위신 따지는 양반 문화가 문제”
⊙ “K-평등주의는 출세 욕구가 수반된 ‘양반으로서의 평등주의’”
⊙ “‘진보적 사회 진출’, 도덕적 명분 챙기면서,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실리도 챙겨”
⊙ “한국 페미니즘, 군 가산점 폐지 주장하면서 여성에게는 이런저런 혜택을 달라고 해”

崔海範
1969년생. 한신대 국문과 졸업 / 사회민주주의연대 사무처장,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혁신위원 역임. 現 통합과전환 사무총장 / 《K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2023) 출간
사진=하주희
  오늘 하루 한국에선 616명이 태어났다. 돌아가신 분은 910명. 내일 눈을 뜨면 한국인이 294명 줄어있을 터다.(2023년 7월 통계 기준) 한국은 매일 작아지는 중이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 교수는 이미 2006년에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1호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유독 한국에서 초저출산 현상이 진행 중인 이유는 뭘까. 해법은 있을까. 최해범 통합과전환 사무총장이 최근 낸 《K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타임라인 펴냄)은 이런 고민을 담았다. 저출산을 두고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담론은 거의 모두 다뤘다. ‘독박육아는 사실인가, 복지 정책 부족이 문제인가, 페미니즘은 보편적 가치인가’ 등등 제목처럼 자칫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의문들도 포함된다.
 
  지난 10월 5일 최 사무총장을 서울 혜화동에서 만났다. 대학에 1990년에 입학한 그는 소위 ‘운동권’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며 교도소까지 다녀왔다.
 
  ― 교도소는 왜 갔습니까.
 
  “대학생 때 진보학생연합이란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주사파를 비판하며 학생운동 개혁하자고 만들어진 단체였어요. 저는 학생운동할 때부터 북한을 아주 싫어했어요. 그래서 단체 강령에도 썼어요. ‘북한과 같은 야만적인 체제는 사회주의와 무관하다.’ 그런데 후배가 만든 자료집이 문제가 됐습니다.”
 
  ― 무슨 내용이었나요.
 
  “‘자본가를 망치로 때려 부숴야 된다’는 둥 레닌의 책을 방금 읽고 감동받은 이들이 쓴 소아병적인 표현이 담겨 있었지요. 제가 관여한 건 아니었지만, 검사에게 불려 가 말했어요. ‘난 사회주의를 믿었다. 사회주의 얘기하는 게 뭐가 문제냐. 김일성 만세라는 것도 아닌데.’”
 
 
  주사파에 먹힌 운동권
 
《K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
  주사파를 거부한 운동권이었을 때부터 그에겐 비주류의 길이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운동권엔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파)과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파)가 뒤섞여 있었다. NL은 남북 분단 체제를 주된 문제점으로 보고 북한과의 공조를 주장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PD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에 주목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의원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후 그는 주대환 당시 민노당 정책위의장을 보좌하며 활동했다.
 
  ― 결국 NL이 민노당(후엔 통합진보당)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지요?
 
  “PD가 NL에게 먹히다시피 한 이유가 있습니다. PD만의 역사관이 없었어요. NL과 유사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원래 민족도 나라도 없는 거예요. 마르크스가 아니라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영향을 받아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을 외쳤으니 NL과 구분이 안 되는 거죠.”
 
  주대환 의장과 그는 사회민주주의자였다. 사회민주주의는 독일에서 나온 사회주의 이념의 한 종류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폭력적 요소와 급진성을 뺐다고 생각하면 된다. 혁명을 통한 체제 전복이나 공산당 일당 독재를 부정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소득 재분배, 복지 정책을 통한 사회 정의와 평등 실현을 추구한다. 독일의 사민당이나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 체제를 생각하면 된다.
 
  ― 소위 운동권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했나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개량주의자, 배신자로 봤습니다. 주사파는 물론 PD들도 사회민주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레닌주의를 공부했으니까요. 재밌는 것은 주장하는 정책들은 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에서 빌려다 썼다는 사실이지요.”
 
  ― 민노당 안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세력화가 되어 있었나요?
 
  “조직이 없었어요. 노조라든가 학생운동 조직이 없었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가입한 당원들이 낱알처럼 흩어져 있었어요.”
 
 
  “한국은 북유럽이 아니다”
 
  ― 당내 주도권 경쟁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주사파나 PD 세력들을 이길 수 없었겠네요.
 
  “힘이 없었으니까요. 사민주의 운동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사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인들 성향과 관련이 있어요.”
 
  ― 어떤?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학자로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있습니다. 장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 정책에 호의적이면서 보편적 복지론을 주장해요. 유럽처럼 하자는 거죠. 그런데 유럽의 복지 국가들은 소득세로 50% 가까이 거둬갑니다. 한국은 50%는커녕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근로자가 40%가량 될 정도예요. 갑자기 소득세를 유럽처럼 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기획재정부 발표를 보면, 지난 2020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의 비중은 37.2%다.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4명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 세금 저항이 너무 크겠죠.
 
  “한국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데다 성향 자체도 북유럽 사람들과 달라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생활 규범이에요. 그걸 보면 북유럽 사람들의 성향이 원래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회민주주의가 선택되고 흡수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얀테의 법칙’은 노르웨이의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의 소설 《도망자는 자신의 발자국을 넘어간다(En flyktning krysser sitt spor)》(1933)에서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남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10.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우월의식을 경계하는 북유럽식 평등주의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 사민주의는 아예 없던 이념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살던 방식을 이념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모두 양반으로 대접받고 싶어 해”
 
  “한국의 K-평등주의는 출세 욕구가 수반된 ‘양반으로서의 평등주의’입니다. 한국에선 ‘누가 날 무시한다’는 것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열등감의 진폭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존칭이나 존댓말에 인플레이션이 오지요. 모두 양반으로 대우받고 싶은 거예요. 전 국민이 유한계급 신분의 심리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셈이죠. 이런 나라가 한국 말고 지구상에 존재할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전근대적인 측면에선 북한과 통하는 면이 있어요.”
 
  ―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탈북민들을 보세요. 한국 문화에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합니다. 의식의 작동 기제가 비슷하니 낯설지 않은 거예요. 북한은 극도의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잖아요. 한국인도 극단적인 면이 있고요.”
 
  ― 한국의 ‘갑질’ 문화와도 연관이 있겠군요. 북한에서는 비정상적인 권위주의 독재 체제가 일상화되어 있다면, 한국에선 일상에서 개인 간의 갑질로 발현되는 식으로요.
 
  “한중일 3국은 공통적으로 집단주의 문화를 갖고 있어요. 주변과의 비교, 평판에 민감하지요. 세 나라 다 출산율이 낮아요. 이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 차원에서 봐야 해요. 미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집단이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입니다. 뉴질랜드, 호주 같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백인들보다 낮아요.”
 
  지난해 기준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26명, 중국은 1.09명이다. 한국은 0.78명, 역대 최저 기록이다.
 
  ― 저출산 현상이 환경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한중일 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심각해요. 한국에는 ‘위신’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력합니다. 주변과 끊임없이 비교 평가하고 물신주의(物神主義)에다 출세 욕구가 높지요. 한국의 물신주의는 위신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어, 선진국처럼 물신주의가 약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운동권 출신들도 마찬가지예요.”
 
  ―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1990년대가 되고 학생운동이 쇠퇴했어요. 옛날처럼 노동운동하러 공장에 가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진보적 사회 진출’이 등장하죠. 변호사, 회계사, 교수 같은 직종에 진출해 정의감을 갖고 정의 구현을 하자는 얘기였어요. 도덕적 명분도 챙기면서,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실리(實利)도 챙긴 거죠.”
 
  ― 배금주의적(拜金主義的) 출세 욕구 앞엔 이념도 없군요.
 
  “이런 경향이 한중일 중 한국에서 가장 센 거예요. 한국의 출산율이 가장 낮은 건 이 때문입니다.”
 
 
 
‘육각형 남자’

 
  ― 오죽하면 의식 측면에선 후기 조선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 않습니까. ‘배아파리즘’도 심하고요.
 
  “모두 자신이 양반이라고 생각하니, 결혼을 하려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하려는 겁니다. ‘상향혼’이니 ‘육각형 남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가 거기에 기름칠을 하는 거죠.”
 
  ‘육각형 남자’는 외모, 집안, 성격, 학력, 자산, 직업 모든 면에서 일정 조건 이상을 충족하는 남성을 뜻한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단 결혼을 하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아이를 낳습니다. 문제는 결혼을 안 하는 거예요. 통계를 보면 소득에 따라 혼인율에 차이가 큽니다.”
 
  책에 실린 통계를 옮기자면 이렇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30대 남성 소득 수준 상위 10%의 혼인율은 2008년엔 92%, 2018년엔 86%다. 30대 남성 하위 10%의 혼인율은 2008년 57%, 2018년 20%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혼인율도 상승한다.
 
  여성은 좀 다르다. 30대 여성의 혼인율을 보면, 소득이 가장 낮은 층의 혼인율이 높다. 2018년 기준, 소득기준 하위 10%의 혼인율은 87.3%, 상위 10%는 72.8%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 남자들은 결혼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한국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살 만하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혼자 살 수 있으면 굳이 결혼 제도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거죠.”
 
  ― 방송인 사유리처럼 정자를 기증받아 혼자 아이를 낳겠다는 여성도 늘고 있더군요.
 
  “배우자가 일종의 지위재(地位財)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허접한 사람이랑 결혼하느니 안 하고 만다는 거죠. 또 하나의 특징은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도 배우자를 고르는 눈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그건 개개인의 선택이지요. 나라를 위해 눈을 낮추라 강제할 수 있나요?
 
  “그러니 저출산은 사회·문화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여기에 한국적 페미니즘이 얽혀 문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외국과 좀 다릅니다. 페미니즘이 가장 급진적인 곳이 북유럽이에요. 북유럽은 남녀의 성차(性差) 자체를 부정합니다.”
 
 
  일관성 없는 한국 페미니즘
 
  ― 어떻게 부정하나요.
 
  “남녀가 성기(性器) 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봐요. 직업 선택에 있어서 남녀 구분을 안 둡니다. 힘을 쓰는 일에 여성이 종사하는 식으로요. 남녀 모두 군대에 가기도 하지요. 심지어 남녀 화장실 구분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합니다. 좀 극단적이지만 일관성은 있습니다.”
 
  ― 그렇군요.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사안에 따라 달라져요. 군(軍)가산점 폐지를 주장하면서 여성에게는 이런저런 혜택을 달라고 합니다. 고위직에 여성 할당을 요구하고요. 어떤 분야는 근본적으로 남녀 비율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게 무슨 얘기지요?
 
  “스템(STEM)이라고 하지요.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분야에 대한 여성들의 선호도는 20% 정도입니다. 북유럽에서도 스템 분야의 학위를 따고 진출하는 여성 비율이 20%가량이에요. 그런데 르완다나 이슬람 같은 나라는 여성 비율이 이보다 더 높아요.”
 
  ― 이유가 뭔가요.
 
  “그 나라에선 여성들이 갈 수 있고 선호하는 사회 서비스 영역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스템 분야로 진출하는 거예요.”
 
  ― 특정 영역에서 여성 비율이 낮다고, 남녀평등지수가 낮다고 말할 순 없다는 얘기군요.
 
  “그런데도 남녀 비율이 5대 5가 될 때까지 할당제를 밀어붙이겠다는 거 아닙니까. 원인을 잘못짚으니 저출산 정책들로 엄청난 예산 낭비를 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지출한 저출산 예산은 146조원다. 146조를 쏟아붓고도 합계 출산율은 1.05명에서 0.81명으로 추락했다.
 
  “소위 페미니스트들이 저출산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곳에 있었어요.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인공중절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건 저출산 촉진 정책 아닙니까.”
 
  저출산이란 이름이 붙은 예산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별별 사업이 다 들어가 있다. 청소년 성범죄 예방이라며 CCTV를 설치하는 사업도 있다. 필요한 사업이겠지만, 저출산 대책 예산이라고는 볼 수 없다.
 
 
  ‘보수당 찍느니 기권하겠다’는 사람들
 
  “한국 정치가 저출산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정치계에 들어와 있는 586들을 보세요. 그 사람들은 학생운동을 할 때도 이론이나 사상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고민하지 않았으니, 그 시절에 접했던 이념을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삼은 겁니다.”
 
  ―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정체성이 아니라, 주입식으로 읽고 들은 이념이 정체성인 거군요.
 
  “그러니 ‘나는 보수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신이 이념 그 자체니, 보수의 이념을 갖는다는 건 자신을 부정하는 게 되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해도 설득이 안 되는 겁니다.”
 
  ― 그럴 수 있겠네요.
 
  “멕시코 아즈텍 문명을 보세요. 아즈텍 문명이 인간을 1년에 몇천 명씩 제물로 바치고 인육을 먹은 야만적인 문명이었다는 게 고고학적 연구로 밝혀졌어요. 하루에 8만 명을 죽여 바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일부 멕시코인은 자신들이 스페인과 아즈텍 문명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부정합니다. 발굴 조사로 밝혀졌는데도요.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들이 생각나더군요.”
 
  ― 사고(思考)의 유연성이 없단 말이군요.
 
  “민주당이나 정의당을 안 찍을 바엔 제3의 엉뚱한 후보를 선택한다든지, 기권한다든지 하지, 보수당을 찍는 건 나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 겁니다. 제가 그랬기 때문에 잘 알아요.”
 
  ― 그랬습니까.
 
  “2017년에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을 제의받았어요.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내가 보수당의 혁신위원을 맡는다고?’ 잠깐 고민하다 수락했어요. 건너보니 아주 쉬운 문제인데 건너기 전엔 안 보였어요. 건너보니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저를 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념 없는 보수 정당
 
2017년 7월 19일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혁신위원회 제1차회의가 열렸다. 류석춘 혁신위원장과 최해범 위원(오른쪽). 사진=조선DB
  그는 2017년 7월 출범한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회의 유일한 중도, 진보 성향 인사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84%에 육박했다.(2017년 6월 기준) 야당은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헤매고 있었다.
 
  ― 혁신위원 해보니 어떻던가요.
 
  “한국 정치가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 내 가장 큰 이슈는 박근혜 대통령 출당(黜黨) 여부였어요. 보수 혁신에 박근혜 출당이 뭐가 중요합니까. 물론 그때까지 탈당을 안 한 건 좀 무책임했지요.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책임은 질 수 있었는데요.”
 
  ― 보수 혁신이 혁신위의 과제였군요.
 
  “노동개혁, 당의 강령, 당원 교육, 사상이나 보수 이념을 어떻게 정립할지 논의했어요. 여기엔 당대표는 물론 언론에서도 관심이 없었어요. 공천 방식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류석춘 혁신위는 8차까지 혁신안을 발표했다. 각각 경제 혁신과 국회의원 특혜 축소를 다룬 7차, 8차 혁신안은 지금 국민의힘에도 필요한 고민들이다.
 
  ― 보수 정당의 문제가 뭘까요.
 
  “첫째, 영혼이 없다고 할까요, 이념이 없어요. 이념 과잉도 문제지만 없어도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의식이 있고, 체계 위에서 고민하고 사고하는 게 아니라,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사고 회로를 살피면서 딱 그 정도 수준으로 정치를 합니다. 그러니 대중이 어떤 걸 고평가하면 그쪽으로 가는 거죠.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했다가, 기본소득을 한다고 했다가 뒤죽박죽이에요. 강령도 그렇습니다.”
 
 
  “보수 정당, 이념의 힘 모르는 듯”
 
  ― 듣고 보니 그렇군요.
 
  “보수 쪽에선 이념의 힘을 모르는 것 같아요. 보수 이념에 대한 강연을 하는데, 홍준표 당시 당대표부터 잘 안 듣더라고요. 이준석 전 대표와 비슷한 거죠. 정치 프로그램 패널처럼 그때그때 정치 현안에 한마디 던지고 주목받고 싶어 하고요. 그러니 동료 의식도 없지요. 이념이라는 게 당장은 눈에 안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굉장한 힘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미국 보수 진영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보수주의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정치 현장에서는 미국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같은 의원들이 보수 이념을 정립했다. 한국 보수당은 어떨까.
 
  “홍범도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에 당원, 국민들과의 교감이라든가 공감대 없이 갑자기 던지니 뉴라이트니, 역사 전쟁이니 역풍(逆風)을 맞는 겁니다. 둘째, 보수 정당엔 주인이 없습니다. 이념을 끌고 나갈 주된 세력이 없는 거죠.”
 

  ― 민주당은 있나요?
 
  “민주당은 그래도 주인 역할을 하는 세력이 있어 왔습니다. DJ와 생각을 같이한 동교동계라든가, 같은 이념 아래 움직이는 운동권 세력들이라든가요. 보수당은 권력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잖아요. 그러니 대통령계밖에 없어요. MB계라든가 친박처럼요.”
 
  ― 그렇군요.
 
  “아이러니한 건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현대 보수 정당의 이념을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나 주대환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같은 분들이죠. 이분들은 이념의 힘, 이념이 어떤 응집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아는 겁니다.”
 
 
  “보수 정당이 그만큼 얄팍한 것”
 
  ― 듣고 보니 그렇네요.
 
  “언론도 성찰 없이 보도합니다. 정치 기사가 아니라 연예 기사 같아요. 2020년 총선 때 미래통합당 김대호 관악갑 후보가 노인 폄하를 했다며 제명당했잖아요? 당시 발언을 보면 노인 폄하가 아니에요.”
 
  2020년 4월 7일 선거 토론회에서 김대호 당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은 다양하다. 1급, 2급, 3급….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설은 다목적 시설이 돼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용하는 시설이 돼야 한다.”
 
  장애인 체육시설 건립에 관한 토론 중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시설을 짓자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발언의 앞뒤 맥락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타당한 주장이기도 하다.
 
  이 발언은 ‘노인 되면 장애인 된다’는 의미로 보도됐다. 당시 기사 제목들이다. 〈통합당 김대호, 또 막말에… 지도부 ‘후보 제명’ 극약 처방〉(경향신문), 〈김대호 “나이 들면 장애인”… 통합당 “제명할 것”〉(YTN).
 
  보도가 나오자 미래통합당은 재깍 김 후보를 제명했다. 당시 선대위원장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보수 정당이 그만큼 얄팍한 겁니다. 그러니 저출산 대책도 휘둘리는 겁니다.”
 
  저출산에서 시작해 보수 정당의 문제에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다. 최 사무총장은 현재 투병 중이다. 병마와 싸우며 책을 집필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진심으로 믿고 젊음의 한때를 바친 마지막 사회민주주의자일지도 모를 그가 동시대 한국인들에게 건네는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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