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취재 最前線 〈1〉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

“현 정권에서 뒤통수만 맞았다”

  •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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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기준법은 지금 휴지조각이 됐다”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가운데 누군가가
    박 대통령에게 잘못된 인식 심어 놓은 게 파탄의 이유
⊙ 근로시간 단축 없이 임금피크제 실시만으론 절대 청년 일자리 안 늘어나
⊙ 청년희망재단은 제2의 일해(日海)재단처럼 되어 가고 있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8월 24일 벌어진 활극(活劇)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김 위원장은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을 포함한 일행과 함께 일본 교토(京都) 근처 도시 단바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공항에서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대는 구속 전력(前歷)이 문제되면서 입국이 거부돼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단바는 망간 광산(鑛山)으로 유명한 곳이다. 망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제(日帝)가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필수 자원으로 쓰였는데 그걸 캐다가 많은 조선 징용 근로자들이 숨진 곳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 2m 크기의 ‘강제징용 노동자상(像)’을 세우려 특수작전 치르듯 일본에 갔다”고 말했다.
 
 
  일본 단바 광산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세워
 
일본 교토 근처 단바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작가 김운성·김서경씨가 만든 것입니다. 일본 현지로 먼저 보냈지요. 우리는 나중에 들어가고. 일본 당국이 알면 허용할 리가 없잖아요. 마침 그곳에 동포 한 분이 기념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 세웠죠.”
 
  김 위원장은 이 ‘쾌거’가 흐뭇했는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년에는 러시아의 사할린에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울까 해요. 서울 남산에 있는 ‘기억의 터’에도 세울 거고. 박원순 서울시장하고 대체적인 합의를 이뤘어요. 이렇게 우리 선배 노동자들의 넋을 달래 드릴 생각입니다. 그게 우리 의무이기도 하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아챘을 일본이지만 사유지(私有地)에 세워졌기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은 서울의 대사관 앞에 이어 또다시 눈엣가시 같은 동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 일행은 동상 제막식에 앞서 ‘우키시마호 폭침(爆沈) 사고’ 현장인 교토 인근 마이즈루(舞鶴)항에서 위령제를 마쳤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해방 직후인 8월 24일 조선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다 침몰한 배 이름이다. 많은 조선인들이 사망했는데 일각에서 일본이 폭침시켰다는 설(說)이 돌고 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일본인들은 자발적으로 바닷속 원혼(怨魂)이 된 조선인을 위한 위령제를 71년째 열고 있다.
 
  김 위원장이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할 일을 우리가 했어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드는 데 든 1억4000만원도 양 노총이 함께 했고. 재미있는 일이 있어요. 우키시마호 희생자 위령제에 주일 한국대사관의 총영사와 영사가 나타났더라고. 71년 만에 왔대요. 우리 정부가 이 지경입니다.”
 
  김 위원장과 2시간 넘게 대화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뒤통수를 맞았는지 그는 한(恨)이 맺혀 보였다. ‘뒤통수를 맞았다’ 뒤에는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게” 같은 말이 따랐다. 해병대 406기 출신인 그는 대체 어떻게 뒤통수를 맞은 것일까.
 
  — 지난 주말에 경기도 하남에 다녀왔다고요.
 
  “제 해병대 동기인 송한영씨가 운영하는 ‘소박사 정육점’이라는 가게가 있어요. 거기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어요. 독거(獨居) 노인들에게 송씨가 15년째 갈비탕을 무료로 대접하고 있는데 우리도 도우려고요.”
 
  — 몇시부터 몇시까지 했는데요.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요.”
 
  — 몇 명이나 왔던가요.
 
  “평소에는 1500명쯤 왔다는데 그날은 600명쯤 왔습니다.”
 
  — 뒤통수 맞은 이야기 들으려고 왔는데 갑자기 웬 자원봉사 이야깁니까.
 
  “우리가 맨날 데모나 하고 파업이나 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2009년 4월 《전태일평전》 출간 기념행사에 나온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씨(오른쪽). 왼쪽은 재야운동가 장기표씨. 사진=조선일보
  — 토요일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5주기 추모식에 다녀오셨다고요.
 
  “제가 고 이소선 어머니와 무척 친했어요. 이소선 어머니 쓰러지시던 날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태삼씨와 함께 창신동에 있었어요. 그날 이소선 어머니가 한진중공업에서 농성하던 김진숙씨를 지원하려 ‘희망버스’를 타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밤늦게 자리를 뜨고 난 뒤 쓰러지셨대요.”
 
  — 고 이소선 여사와 친분이 깊었습니까.
 
  “이소선 어머니께서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은 제게 전화를 했어요. ‘김선생 바쁜데 미안하지만’ 이러면서. 한국노총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싶어하셔서 제가 전해 드리곤 했지요.”
 
  — 뒤통수 맞은 얘기 들으러 왔는데 왜 자원봉사에 이어 이소선 여사 추억담입니까.
 
  “이소선 어머니께서 항상 하신 말이 있어요. ‘노동자들이 냉장고도 만들고 TV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드는데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건 일부 욕심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고요.”
 
 
  “현 정권에 하도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작년 9월 22일 청와대 노사정위원회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오른쪽). 사진=뉴시스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갈라져서 싸우는 걸 뜻하신 거네요.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당장 민노총과 통합할 수는 없지만 함께해야 할 동지로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이소선 어머니가 평생 강조하신 노동운동의 연대와 통일을 이루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하고 갈라진 얘기나 하시죠.
 
  “허허, 하도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여기서 정부와 한국노총이 했던 노사정 타협 과정을 요약해 본다. 2015년 9월 13일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대타협 선언문’을 발표했다. 통상임금 등 이른바 3대 현안과 청년고용 확대 및 원하청 동반성장 등 165개 사항에 합의했는데, 일반해고 지침, 취업규칙 변경, 기간제근로자와 파견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등이 마지막까지 핵심쟁점으로 되었던 것이다.
 
  일반해고 지침 관련 합의는 중장기적으로 법제화하며 노사(勞使)와 전문가들이 근로계약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제도를 개선하기 전까지 있을지 모를 분쟁을 예방하고 사용자가 근로자를 마구 해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사가 충분히 협의한다’는 단서 조항까지 마련해 놓았다.
 
  김 위원장은 충분히 협의한다는 것은 합의 수준의 협의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것도 연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고 했다.
 
  취업규칙 변경 관련 합의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취업규칙을 개정하기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 합의에도 ‘노사가 충분히 협의한다’는 단서 조항까지 마련해 놓았다. 이것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이 그만큼 근로자들이 두려워하는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간제·파견근로자 등의 고용안정과 관련해서는 노사정(勞使政)이 공동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합의사항이 있으면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할 때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만큼 노동계가 합의하기 어려운 쟁점이었던 것이다. 청년고용 확대 노력은 대기업과 공기업이 청년고용을 확대하고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을 청년고용에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합의문이 나온 지 넉 달 만인 2016년 1월 19일 김동만 위원장은 돌연 노사정 타협 파기를 선언한다. 그러자 발끈한 정부는 한국노총을 맹비난하며 그동안 노동상담사업 등에 지원해 왔던 연간 29억원을 한푼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 말을 안 들었으니 돈을 줄 수 없다. 고생 좀 해 봐라”는 속셈이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지금도 연차만 채워지면 임금이 올라가는 현행 임금체계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성과연봉제 강행이지요.
 
  “먼저 임금체계 개편과 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요. 임금체계 개편은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제가 1985년에 일본에 가서 임금체계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의도가 좋아야 합니다. 신뢰도 있어야 하고요. 임금체계 개편을 노동자도 인정해야 제대로 시행될 거 아니겠어요. 만일 그런 노력도 없이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만 임금체계를 바꾼다면 누가 따라오겠습니까. 그리고 체계변경을 하려면 당사자들을 모아서 제대로 된 평가틀을 먼저 만들어야 해요. 그거 하기로 했던 건데 일방적으로 지침 만들어서 밀어붙인 거고. 임금체계 개편은 지금처럼 성과연봉제 도입하고 그런 게 아니고 난잡하게 늘어난 수당 같은 것을 통합해서 단순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성과연봉제는 절대 기업경영에 긍정적이지 않다
 
  — 정부는 성과연봉제가 기업의 경영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오히려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키고 지나친 경쟁심만 조장한다면 그 조직 안에서 협력이 이뤄지겠습니까. 외국은 우리와 정반대예요.”
 
  — 외국은 어떤데요.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기보다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임직원 개개인의 지식과 경험과 네트워크를 결집하고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시켜 주는 위키피디아식 경영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 청년고용 확대의 경우 심각한 문제지요.
 
  “지금 청년 백수가 110만명입니다. 체감 실업률은 20%가 넘어요. 원래 청년 실업률이 13%가 넘으면 폭동(暴動)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민감한 문제지요. 제 둘째 아이도 지금 백수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노동개혁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도 노동시장 양극화나 청년실업 문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대통령은 기간제 기간 연장이나 파견제 확대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청년 일자리, 절대 안 생기고 그냥 일자리의 질만 낮아질 뿐입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다보스 포럼 총회에서 ‘미래고용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향후 5년간 전 세계에서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겁니다. 결국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뜻이잖아요.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시간당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은 줄이며 일자리를 나누는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게 좋은 방안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노사정 타협을 파기했습니까.
 
  “원래 노사정 협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특위를 만들고,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국회에서 풀릴 일을 청와대가 틀어 버려
 
  — 그동안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대법원에서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넣어야 한다고 판결한 것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근로자들이 그간 못 받은 통상임금을 달라고 집단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되고.
 
  “맞습니다. 노사정이 타협을 하지 않으면 변호사들 돈벌이만 시켜 주게 되잖아요. 그래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거죠.”
 
  — 처음에는 순조롭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잘 풀렸어요. 법제화하기 직전 단계까지 갔는데 청와대에서 틀어 버리더라고.”
 
  — 왜요.
 
  “자기들 성과물이어야 하는데 국회의 성과물로 만들어 주기 싫었겠지요.”
 
  — 임금피크제는 예를 들어 55세 이상이 되면 고용을 보장해 주는 대신 임금을 일정 비율 삭감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기업은 그 돈으로 청년들을 고용하고.
 
  “그런데 그게 함정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정부는 임금피크제만 실시하면 당장 청년고용이 될 거라고 믿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근로시간 단축까지 병행해서 실시해야 청년고용이 이뤄집니다.”
 
  —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제가 금융노조위원장일 때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본 사람입니다. 임금피크제 하나만으론 절대 청년고용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 정부가 노동개혁을 위해 50억을 썼다고 했었는데 어떤 용도였습니까.
 
  “제일 큰 게 TV광고비였대요.”
 
  — 경제부총리, 노동부장관이 틈만 나면 일반 일자리 30만개와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인해 18만개 등 모두 48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는데요.
 
  “그거 완전히 허무맹랑하고 혹세무민하는 소립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니까요. 지금 오히려 일자리가 줄었어요.”
 
  — 얼마나 줄었는데요.
 
  “금융권에서만 3만개, 100대 상장기업에서 1만개쯤 줄었습니다.”
 
  — 사람을 그만큼 줄였으니 기업들 사정은 나아졌겠네요.
 
  “우리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이 771조니 800조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막대한 돈을 가지고 전혀 고용을 창출하지 않고 오히려 줄였어요.”
 
  — 박 대통령은 그 후속 대책으로 청년희망재단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원래 제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인데 지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일해(日海)재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재단 이사인데 전혀 상의도 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초기 설립취지와도 달라졌어요.”
 
 
  청년희망재단은 노동부 공무원들 일자리만 창출해 줬다
 
작년 11월 5일 청년희망재단 현판식.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청년희망재단은 노동부 퇴직자들 일자리나 창출해줬다는 비아냥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조선일보
  — 그게 무슨 소립니까.
 
  “기업들로부터 1500억원을 거둬들였는데 지금 하는 일이 없잖아요. 노동부 퇴직자들 일자리나 창출해 줬다는 비아냥이 있습니다.”
 
  — 기업들이 얼마나 냈는데요.
 
  “삼성에서만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 이재용 부회장과 임원들이 50억원 등 250억원을 냈어요. 그 다음 차등을 두고 현대자동차·LG그룹 등이 돈을 냈고요. 이건 기업들에 얼마 내고 청년고용 창출을 면피시켜 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재단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광화문우체국 건물 6층에요. 노동부 출신만 10명쯤 된다고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하면서 기업들이 돈을 낸 걸로 아는데 김 위원장도 냈습니까.
 
  “전 안 냈어요.”
 
  — 설명을 듣다 보니 역시 임금체계 개선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과연봉제라는 게 말은 좋죠. 실제로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겁니다. 그 과정에 평가자들은 ‘내 말 잘들어야 한다’며 횡포를 부릴 여지가 많고요. 그래서 저는 성과연봉제도 한국노총위원장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먼저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의 틀을 세우고 여건이 조성되면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안(案)을 낸 겁니다.”
 
  — 그런데 정부는 노사정 합의가 파기되자마자 성과연봉제를 곧바로 시행했죠.
 
  “공기업·금융기관에 시행했습니다. 지금 그쪽에선 난리가 났어요.”
 
  — 다시 노사정 합의 파기 때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왜 파기했습니까.
 
  “작년 9·15 합의 직후부터 정부·여당이 사실은 합의를 위반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9월 16일에 정부·여당이 노동5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 안에 굉장히 민감하고 끝까지 합의가 안 됐던 기간제 기간 연장이나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저희가 굉장히 실망을 했죠.”
 
  — 그때 성명서가 여러 번 나왔습니다.
 
  “제가 작년 11월 30일부터 한 달 넘게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노사정 합의를 존중해라, 합의되지 않은 내용은 수정하거나 폐기하라고요.”
 
  — 그런데 청와대나 정부는 꿈쩍도 안 했죠.
 
  “제가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다섯 번이나 요구했어요. 그런데도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 그뿐 아니라 고용노동부는 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 선언 직후인 올 1월 22일 이른바 양대 지침이란 걸 발표했습니다.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과 ‘공정인사지침’이지요.
 
  “원래 이 지침은 올해 논의하기로 약속된 거였어요. 그런데 노동 5법이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자 정부가 작년 12월 30일 전문가 좌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양대 지침 카드를 내민 겁니다.”
 
  —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9·15 노사정 합의 다음 날인 2015년 9월 16일 정부·여당이 노총과 합의하지 않은 법안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양측의 신뢰가 깨졌는데 급기야 양대 지침까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정부·여당의 태도에 전혀 변화가 없었으니까요.”
 
  — 양대 지침이 그렇게 근로자들에게 치명적입니까.
 
  “그게 단순한 지침이 아닙니다. 취업규칙 변경과 성과연봉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해고와 관련된 거잖아요. 앞서 말했듯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줄을 세워 저(低)성과자로 몰리면 그냥 해고되는 겁니다. 취업규칙에서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항을 변경하는 요건을 쉽게 하겠다는 것도 결국 해고 남용이 될 수 있고요. 그걸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니.”
 
 
  최경환·이기권·안종범 세 사람 다 직무유기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동법 개악 반대’ 1인 시위를 벌이는 김동만 위원장.
  — 노사정 합의 당시 정부 책임자가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습니다. 누가 김 위원장의 뒤통수를 쳤습니까.
 
  “전 세 사람 다 직무유기를 했다고 봅니다. 대통령에게도 허위보고를 했다고 보고요.”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박 대통령이 처음에는 제 제안을 거의 수용해 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더라고. 전 그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의 머릿속에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입력했거나 대통령이 노동 현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대통령은 무조건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만 법안이 개정되면 고용이 늘어난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근로기준법을 휴지조각처럼 만들었지요. 모든 면에서 후퇴했습니다.”
 
  — 모든 면에서 뒷걸음질쳤다는 건 너무 단정적인 평가 아닐까요.
 
  “일례로 최저임금을 들어 볼까요.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시간당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올랐습니다. 푸틴도, 아베도, 오바마도, 시진핑도 이렇게는 안 합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박한 최저임금에 대해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경환 전 장관은 자기 입으로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대폭 인상시킬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약속을 어겼습니다.”
 
  — 감정의 골이 깊은 거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신뢰가 없으면 어느 조직이든 관계든 성립 불가하다는 거죠. 그게 지금 노·정(勞政)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 다시 묻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왜 그러는 거 같습니까.
 
  “역대 노총 위원장과 장관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역사상 이렇게 노총을 어렵게 만든 정권은 없었다고. 한 장관 출신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때가 그래도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었던 시대’라고.”
 
  — 그 정도입니까.
 
  “아예 정부가 방침을 정하면 너희들은 따르라는 식입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너희들이 어쩌겠어’ 하는 생각인 거 같은데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겁니다.”
 
 
  모든 근로자가 이 정권을 ‘벽’으로 느껴
 
금년 5월 1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전경.
  — 투쟁하겠다는 겁니까.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노동법 날치기 사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정권이 교체돼 버렸잖아요.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를 할 겁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노사정 관계가 엉망이었지요.
 
  “노사정위원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을 노사정위원장에 앉혔을 정도니까, 하하.”
 
  —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의 양대 지침에 대해 의견 표명을 했지요.
 
  “늦었지만 인권위가 정부의 양대 지침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고 의견을 표명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은 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조금 일찍 나왔어야 했어요. 이미 성과연봉제가 강제 도입됐고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도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의견 표명이 나온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실 ‘지침이 아니라 안내서 정도로 하라’고 한 것도 정부 눈치를 본 소극적 판단이고요.”
 
  — 김 위원장이야 노동계를 대표하니 이렇게 말하지만 국민들은 노·정 간의 ‘사회적 대화’가 아예 중단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대화를 포기한 적이 없어요. 정부가 이렇게 만든 거지. 제가 노사정 합의에 나설 때 노총 내부에서도 얼마나 반발이 심했는지를 아시잖아요. 그렇게 임했는데. 전 이 정권과는 대화가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합니다.”
 
  — 내년 대통령선거 때 모종의 행동을 하겠네요.
 
  “모든 사람이 이 정권을 ‘벽’으로 여기고 정권교체를 바라잖아요. 우리 노동자들도 상당수가 ‘이 정권 끝날 때까지만 버티자. 대선(大選) 때 두고 보자’는 분위기입니다.”
 
  — 내년 초에 한국노총위원장 선거가 있지요.
 
  “3년 동안 현 정권과 싸움만 하다 보니 제가 할 일을 다 못 했어요.”
 
  — 한국노총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았습니다.
 
  “긴 역사만큼 공과(功過)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전 그렇지만 이런 자부심이 있어요. 한국노총이 대한민국 최대의 대중조직으로 역할을 해 왔다고. 북한이 자기들 땅에서는 절대 ‘한국’이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한국정부에 항의했습니다. 한국노총이 금강산에서 ‘한국노총’이라는 말을 당당히 쓰도록 북한과 협상했습니다. 그게 정부도 못한 우리 노총의 저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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