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국회 비준 앞둔 申彦恒 중앙입양원장

“입양한 13살 막내아들 결혼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야죠”

  •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 사진 : 조준우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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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헤이그 협약 가입 천명… ‘고아 수출국’ 오명 벗을 기회로 삼아야
⊙ 아동권익 보호 위한 입양특례법 개정… 생후 5개월 미만 해외입양 법으로 금지
⊙ “未婚母의 기초생활 국가가 보장해야… 아동보호정책 전면 재검토할 필요”

申彦恒
⊙ 67세.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웨일스대 경제사회학 석사, 연세대 보건학 박사.
⊙ 제16회 행정고시 합격, 보건복지부 감사관,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보건복지부 차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건양대 보건복지대학원장 역임.
⊙ 現 중앙입양원장, 한국실명예방재단 회장.
“우리는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24만명의 아이들을 국내외로 입양(入養)한 부끄러운 현실을 떠올리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책임을 지고 우리 울타리 안에서 키운다는 마음가짐을 할 때입니다.”
 
  서울 중구 충정로 청양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신언항(申彦恒·67) 중앙입양원 원장은 “우리나라가 입양을 시작한 지 60년이 지나서야 그들에게 국가차원의 관심을 보이고 사후관리를 한다는 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 벽은 입양 후원을 한 투수 박찬호(朴贊浩) 선수의 사진, 신 원장이 진영(陳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작년 5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던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신언항 초대 원장은 행정고시 16회에 합격해 보건복지부에서 30년간 공직생활을 했고, 2003년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퇴임한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복지부 재직 당시 국외 입양인 지원사업 등을 주관했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입양 부모들의 자조단체인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駐美대사관 시절 입양업무 처음 접해
 
홀트 부부가 1955년 한국 혼혈 아동 8명을 입양해 미국으로 데려오던 모습. 왼쪽부터 말리의 어머니 버다 홀트, 아버지 해리 홀트, 스무 살 시절 말리.(사진=홀트아동복지회 제공)
  —처음 입양 관련 업무를 접한 것은 언제입니까.
 
  “1995년 10월 복지부 국장으로 주미대사관에 파견됐을 때였죠. 박건우(朴健雨) 당시 주미대사(작고)께서 ‘입양가족들을 위로하고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200여 미국 입양가족을 대사관에 초청해 감사패를 증정하고 ‘코리안 페스티벌’ 행사를 열었습니다.
 
  현지에서 미국인들이 우리 입양아들을 성실하게 키우는 데 감명을 받았어요. 안타까운 것은 입양아들의 키가 한국인 보통 체형보다 훨씬 작았다는 겁니다. 아마도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경에서 살다 보니 자기 정체성 때문에 심리적 불안정이 생겨 성장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입양 역사는 6·25전쟁 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맞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고려나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고아가 된 아이들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입양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고아가 발생한 것은 6·25전쟁 때로, 유엔 한국원조위원회의 추산으로 약 50만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습니다. 1955년 전쟁고아 8명이 미국으로 입양된 이후 지금까지 약 24만명이 국내외에 입양됐습니다. 그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해 혼혈아동을 중심으로 전쟁고아의 국외 입양이 추진됐던 것입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미혼모(未婚母)나 혼외 자녀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중앙입양원 설립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중앙입양원은 정부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이하 헤이그 협약)’ 가입을 앞두고 입양특례법(제26조)을 개정하면서 ‘국내 입양 활성화’와 ‘입양 사후관리’를 목적으로 2012년 8월 설립했습니다. 입양아동·가족정보 및 친가족 찾기를 지원하는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국내외 입양정책 및 서비스에 관한 조사·연구, 입양 관련 국제협력 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입양 사후관리 부분은 어떤 일을 말합니까.
 
  “친부모 찾아주기, 입양아 정체성 찾아주기 사업 등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입양 간 24만2000명이 친부모를 그리워하고 있고, 그들을 고국의 친부모와 연결해 주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2017년 완성)해 친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항목들을 추려서 보내 주는 겁니다. 또 하나는 정체성에 관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입양아들에게 문화, 언어를 알려줘 정서적 안정을 찾아 주고,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양아들에게는 의료, 의식주, 언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헤이그 협약’ 가입으로 ‘고아 수출국’ 오명 벗을까
 
지난 2005년 10월 11일 1955년 한국 최초로 해외 입양됐던 전쟁고아 5명이 고국땅을 밟았다.(사진=홀트아동복지회)
  작년 5월 24일 진영 당시 복지부장관은 네덜란드 외무성 산하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추진사무소’를 방문해 약 2년 내에 ‘헤이그 협약’에 가입할 것을 천명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헤이그 협약에는 현재 91개국이 가입해 있다.
 
  해외 입양에 국가 간 협력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93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에서 공식 채택했다. 헤이그 협약의 기본정신은 아동은 태어난 가정환경에서 사랑 속에 성장해야 하고, 국가·사회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협약 참여를 위해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는 등 각종 법령이나 제도를 정비한 다음, 국회 비준만을 남겨 두고 있다.
 
  헤이그 협약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발생하면, 어려운 상황이라도 원래 가정(부모)이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차선책으로 국내 다른 가정의 보호, 최후 수단으로 국제 입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게 정부가 공적기관(복지부 내 조직 신설, 중앙입양원 설립, 입양기관 등)을 만들어 개입하도록 한 것이다.
 
  신언항 원장은 “해외 입양이 이뤄질 때 양국 정부는 양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검증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수령국은 입양아 국적 취득을 보장한다”면서 “앞으로는 아이들이 입양 후에도 수령국에서 제대로 정착해 성장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헤이그협약 가입을 계기로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사실 1993년 헤이그 협약 발효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협약 가입의 압력을 계속 받아 왔습니다. 협약 채택 당시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 건수가 중국 다음으로 많은 ‘고아 수출 대국’이었기 때문이죠. 더구나 우리 아이들이 가장 많이 입양되는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 등이 대부분 협약에 가입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미가입 상태라, 한 협약 체결국의 입양 결정을 다른 체결국이 인정하는 협약의 원칙도 적용받지 못했습니다.”
 
  —헤이그 협약 가입에 앞서 사전 준비 작업으로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을 바꿔 미혼모의 아이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했고, 입양까지 7일간의 ‘숙려기간’도 뒀습니다. 또 입양을 보내려면 가정법원의 허가도 받도록 하는 ‘입양허가제’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입양허가제가 미혼모의 가족관계 등록부에 출산 기록이 남고, 양부모도 공개 입양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조항이 엄격해져 합법적인 입양을 꺼리고 대신 ‘베이비 박스(Baby box·버려진 아기가 담긴 박스로 서울시 관악구의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불법 시설물)’에 아이를 내놓는 영아유기가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가 기록 하나 없는 상태에서 다른 가정이나 해외로 보내졌지만, 바뀐 입양특례법은 반드시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을 추진합니다. 따라서 입양을 하려면 출생신고를 한 가족관계등록부가 제출돼야 합니다.
 
  입양할 때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과정에서 반드시 입양 대상 아동의 어머니가 누군지와 출생과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신분의 노출을 꺼리는 미혼모들은 입양을 꺼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아동의 출생신고를 법률로써 의무화하는 이유는 아동의 인격권 보호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고유한 성명(姓名)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출생배경에 대해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 등록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미혼모들이 신고기록의 공개 때문에 두려워하는 부분은 입양 절차가 끝나면 출생관계가 친생부모의 가족관계기록에서 삭제되고, 입양된 친자녀가 친부모를 찾을 경우, 친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는 자녀의 출생등록을 부담스러워하는 미혼모들의 염려를 완화시켜 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 겁니다. 그만큼 새 부모를 찾아 주는 일은 아기를 낳는 것처럼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양특례법에 대해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아기가 거래되는 불법 입양을 차단하려는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신 원장은 “협약 가입만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아 수출’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현재 1만6000명의 아동이 가정이 아닌 곳에 수용돼 집단생활을 하고 있고,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고 있어 협약을 이행하려면 아동보호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名士들의 입양, 국민들의 입양 의식에 좋은 영향줘
 
2011년 5월 20일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가 현재 운영중인 베이비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목사는 “보건복지부에서 이 박스를 불법설치물로 간주해 철거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버려지는 아기들을 생각하면 대안이 없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사설 입양기관들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홑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인가단체들은 오랜 역사를 갖고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홀트는 1954년부터 12만명을 미국으로 입양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아동을 입양하는 해외 가정은 1만5000달러의 비용을 홀트 측에 지불해야 하고, 우리도 전문 입양기관이 입양을 할 때마다 270만원씩을 지급합니다. 한편으로는 ‘입양 간 아이들이 한국에서 컸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희비가 교차하기도 합니다.”
 
  —미혼모가 키우지 못해 버려지는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1960~80년대 해외 입양이 사회적 빈곤에 의해 발생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미혼모의 출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선진국들은 우리처럼 소위 ‘고아원’과 같은 보호시설로 보내질 않습니다. 고아원 수용은 일종의 ‘아동 학대’입니다. 고아원 시설이 아무리 좋고 음식이 훌륭해도 가난한 집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만 못합니다. 시설에서 자랄 경우,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모르게 되고, 그것이 사회생활을 할 때 큰 영향을 줍니다. 현재 전국에 280여 개의 고아원이 산재해 있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커플이 7번째 아이를 입양해 화제가 됐고, 최수종(崔秀宗)과 하희라(夏希羅) 커플 등 국내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이 앞장서 입양을 하는 일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 중앙입양원 홍보대사인 송옥숙(宋玉淑)씨처럼 유명인들이 입양에 나서는 것이 일반인들의 입양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일반인들의 입양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요. 여유가 있는 분들이 먼저 나서야 국민들의 참여도 늘어납니다.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고아들 입양을 장려한 것으로 미뤄, 그 전통이 지금껏 서구인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리 홀트(Harry Holt·1905~1964) 씨가 고아들의 참상을 영상물로 기록해 미국에 방영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전쟁고아 입양 붐이 일었던 겁니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반갑지만, 입양을 원하는 가정들이 혹시 성별을 가리지는 않습니까.
 
  “국내 예비 입양부모 대다수가 신생아 딸을 원해요. 그 때문에 남아(男兒)들은 입양 대상에서 제외돼 해외 입양이 되거나 관련 시설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아 입양을 꺼리는 이유는 혹독한 사춘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상대적으로 행동이 적극적이기에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지레 겁을 먹는 거죠. 그러나 그건 기우(杞憂)입니다. 그건 남아와 여아의 차이가 아니라 아이의 개별적인 기질(氣質)과 성향,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입양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세워 나가는 과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원에서도 지난해 남녀 입양아동의 성비(性比) 균형을 위해 ‘남아 입양 프로젝트’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미혼모에게 지원은커녕 ‘주홍글씨’ 낙인
 
대한사회복지회 부산지부가 2011년 3월 18일부터 31일까지 롯데갤러리 부산본점에서 연 사진가 조세현의 ‘천사들의 편지 8th-행복’ 사진전에 등장한 미혼모의 아이들.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사진전에는 국내 유명 배우와 가수 등 20여 명의 스타가 미혼모의 아이나 장애아 등을 안고 있는 흑백사진 20여 점이 전시됐다.(사진=대한사회복지회 제공)
  —북한은 1990년대 후반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 굶주림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꽃제비’라는 고아가 생겨났습니다. 이때 북한 전역에서 입양사업이 벌어졌다고 하는데요. 얼마 전 처형된 장성택(張成澤)도 딸 장금송(張琴松)을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더군요.
 
  “북한의 입양제도는 인도적 차원도 있겠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발생한 고아들이 사회주의 체제선전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입양하려는 사람이 당(黨)의 평가나 다른 사람들의 선망(羨望)의 눈길을 의식해 고아를 입양하는 등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우리에게 고아 입양과 관련해 큰소리를 쳤습니다.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딸 여연구(呂燕九)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은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인사에게 ‘남한은 아이들 먹일 돈이 없어 해외로 내보내느냐’며 ‘차라리 북으로 보내라’고까지 했답니다.”
 
  —앞으로 입양 상황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6·25전쟁 이래로 16만5000명의 입양아를 미국·스웨덴·프랑스 등 9개국으로 보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 해 2000명이 넘는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다 2012년 755명으로 줄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프랑스의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부 장관처럼 좋은 환경에서 잘 성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뿌리를 찾지 못하고 배신감과 박탈감을 안고 돌아가는 입양인도 있습니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들입니다.
 
  지금까지 해외 입양이 계속되는 이유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민족적 가치관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혈통주의를 고수하는 유교적 전통으로 인한 입양에 대한 편견과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양육하기 힘든 사회적 환경 문제 등이 산적해 있어 우리나라의 입양아들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추세이고, 원치 않은 임신이라도 기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분위기라 해외 입양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해외 입양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중국·에티오피아·러시아·콜롬비아·우크라이나에 이어 6번째로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낸 국가로 꼽힙니다. 오히려 베트남, 인도, 필리핀, 브라질이 우리보다 숫자가 적습니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생후 5개월이 지나야 입양이 가능해지는 등 해외 입양이 까다로워져 국내 입양 쪽으로 많이 선회할 겁니다. 2003년에는 4000명의 미혼모가 양육을 포기했는데, 2012년엔 2000명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향후 20년 후에는 가난 때문에 아이를 못 기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미혼모들이 현재 월 7만원씩을 생활비로 지원받고 있지만, 기저귀와 분유를 사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모자보호시설을 확충해 아이가 서너 살이 되었을 때 미혼모들이 안심하고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펴야 할까요?
 
  “첫째,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국내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90% 이상이 나이 어린 미혼모의 아이들입니다. 왜 이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포기할까요. 정부는 미성년 엄마에게 턱없이 부족한 월 5만원 내지 15만원을 지원하면서 그 돈으로 그들에게 아기를 잘 키우라고 하는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주홍글씨’(scarlet letter) 낙인까지 찍지 않습니까?
 
지난 5월 24일 네덜란드 외무성 산하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추진사무소를 방문한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중앙)이 신언항 원장(맨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헤이그협약 가입에 동의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작년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서명식에 갔을 때 입양 담당 부처를 통해 들은 이야깁니다. 네덜란드에서도 1970년대에는 입양아동이 120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연간 2~3명이라고 해요.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시설에 수용돼 있는 아동에 대한 지원은 1인당 월 105만원인데, 이 금액의 50% 정도만이라도 미혼모에게 지원하면 양육을 포기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국내 입양가정에 대한 지원책은 없나요.
 
  “물론 입양가정에 교육비 지원, 무상교육 등 양육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대책도 필요합니다. 현재 만 13세 이전까지 소득과 상관없이 월 15만원, 그리고 약간의 진료비를 지급합니다. 육아비용이 많이 드는 한국의 현실과 입양가정의 대부분이 평균소득 수준 이하에 머물러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양육보조금을 현실화하는 보완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최근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의 세 살배기 현수가 미국으로 입양된 지 넉 달 만에 이라크전 참전용사 양아버지(브라이언 오캘러핸)에게 두개골이 골절되고 온몸에 멍이 든 모습으로 살해됐습니다. 입양부모 자격요건을 엄격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 입양아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와 중국 등도 해외 입양가정의 관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입양 후 일정 기간 잘 자라고 있는지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수처럼 국외로 입양돼 학대받거나 심지어 살해되는 사건은 처음이 아니에요. 국내에서도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입양해 살해하거나 아동이 친척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어요.
 
  국제 입양의 경우, 외국 입양기관이 조사한 양부모 조사보고서만을 믿고 입양을 허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양부모의 적격 여부를 조사하는 외국 기관에 대한 검증 시스템이 전혀 없어요. 외국 입양기관에 대한 평가와 인증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합니다.
 
  중국은 자국의 입양아동이 미국에서 살해되거나 유기된 사건을 계기로 양부모의 약물중독 및 범죄기록 조회를 강화했다고 해요. 아동이 입양된 후 6개월 간격으로 2회까지 입양부모의 양육 상황을 보고하게 하던 것을, 4년째까지 매년 보고하도록 했답니다. 최근엔 18세가 될 때까지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요. 우리도 ‘홈스터디’를 통해 입양부모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입양 후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할 겁니다.”
 
 
  입양자녀 키우면서 큰 보람 느껴
 
신언항 원장이 집무실 책장에 놓인 막내아들 동영군과 함께 찍은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언항 원장은 기자가 “전문성을 인정받아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것이냐”고 묻자, “나 말고도 복지 분야 전문가는 많다”면서 “아마 2005년 사내아이를 입양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웃었다.
 
  —어떤 계기로 입양을 결심하게 됐습니까.
 
  “아내가 서울시립아동병원에 교회 봉사활동을 하다 지금의 막내아들을 만났습니다. ‘소아황달’로 4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시설로 온 두 살짜리 막내를 처음 만났어요. 아이를 돌보다 정이 들자, 내게 ‘한 번 가서 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도 처음 보았는데, 첫날 아이가 우리 부부를 보고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데,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 나도 매주 시설에 봉사하러 갔지요. 입양이란 소리를 꺼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죠. 연말 연세대대학원 동문회 행사에 막내를 데리고 갔는데, 아내가 여러 사람이 ‘손자를 데리고 나왔느냐’고 하자, ‘입양할 아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해 버렸습니다.”
 
  —자녀들은 입양을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장성한 두 아들이 반대를 했어요. 자기들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또 왜 고생을 사서 하시려고 그러느냐는 거지요. 그런데 저희 부부가 이미 결정을 해 버렸는데요. 저와 나이 차가 무려 54살이고, 큰아들과는 24살 차이가 나요. 보호시설에서는 아이 이름을 유명인사로 즉석에서 지어 부르는데, 그때 이름이 정동영이었어요. 아마도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이 한창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라 그랬을 겁니다. 네 살 때 제 호적에 입적하면서 ‘신동영’이라고 했죠. 우연치 않게 우리 큰아이들 이름 항렬도 ‘영’자 돌림이라 잘 들어맞았어요.”
 
  —입양한 아이로 보면 할아버지뻘인데, 키우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국내 입양의 경우, 요즘엔 모든 것을 공개합니다. 젊을 때 아들 둘을 키울 때는 일로 바빠 정신이 없다가 나이 들어 손자뻘 아들을 키우니 힘은 들지만 스킨십이 훨씬 많아 정이 듬뿍 들었어요. 얼마 전엔 바윗돌에 깔려있는 꿈을 꿔 깨어 보니 막내 녀석이 나를 깔고 자는 거예요.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아 그런지 ‘산보하자’고도 하고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람도 있고 어려움도 많지요. 오히려 아이가 잘할 때가 아니라 속을 썩일 때 입양한 보람을 느낍니다. 입양을 안 했다면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할 때 입양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잘합니까.
 
  “게임을 좋아해 성적이 뛰어나진 않지만, 참 똑똑해요. 태권도도 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나요.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그 녀석에게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바르게만 자라 달라’고 당부를 하죠. 한 가지 걱정은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탈 정도로 저를 떠나질 않아요. ‘내가 왜 버려졌을까’, ‘내가 잘살 수 있을까’란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녀석이 ‘아빠는 왜 나를 입양했어’라고 물었을 때, ‘너와 나는 하나님이 인연을 맺어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입양 후 어떤 느낌이 듭니까.
 
  “저는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제가 혜택 받은 부분의 3분의 1 정도는 아이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양은 아이를 새로 낳는 것과 똑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니 새로운 자녀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아이 양육을 의식주 해결 등 경제적인 부분으로만 생각했으나, 키우다 보니 영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제 처에게 ‘엄마는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답니다. 저는 그 말이 하나님이 그 아이의 입을 빌려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앙입양원이 얼마전 ‘입양아동 발달에 관한 종단연구’를 발표했는데, 입양아동이 비입양아동과의 발달수준 비교에서 신체, 자아, 인지, 사회성 발달수준 등에서 전반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색다른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 연구는 2006년부터 진행한 20년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결과는 그동안 선행연구 결과와는 다르게 입양아동이 비입양아동보다 오히려 더 발달수준이 높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양의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합니다. 특히 입양아동과 입양부모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경우, 입양가정 내 형제가 있는 경우, 입양부모의 자존감 수준이 높은 경우, 양육환경 수준이 높은 경우 등이 발달수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언항 원장은 “입양부모들이 입양을 고려할 때, 새로 입양된 아동과 기존 자녀 간에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예비 입양부모의 입양 준비 교육뿐만 아니라 입양가정 내 형제들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입양의 상황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입양 후 형제관계를 위한 상담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 원장은 “막내아들과 쉰네 살 나이 차를 극복하기 위해 젊게 살 수밖에 없다”면서 “13살 막내 동영이가 결혼할 때까지 앞으로 20년 동안 건강하게 살자고 아내와 다짐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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