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책상은 족상(足床)이여, 족상!”
⊙ 6개의 컴퓨터가 놓인 그의 책상은 디지로그의 현장
⊙ 3m가 넘는 책상은 그에게 ‘위로의 제단’이자, ‘존재의 이유’
김정운
⊙ 1962년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교 문화심리학 박사.
⊙ 현 명지대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열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 6개의 컴퓨터가 놓인 그의 책상은 디지로그의 현장
⊙ 3m가 넘는 책상은 그에게 ‘위로의 제단’이자, ‘존재의 이유’
김정운
⊙ 1962년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교 문화심리학 박사.
⊙ 현 명지대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열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1 이어령은 외롭다. 그에게 책상은 위안이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어령(李御寧)을 만나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외롭다는 이야기를 꼭 한 번씩은 들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여.”
예의 그 충청도 어투였다. 논리적이고 사변적(思辨的)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정서적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의 어투는 아주 진한 충청도 사투리로 변한다. 외롭다고 할 때, 특히 그랬다.
“생명이 있는 것은 유한(有限)한 거여. 유한한 것은 모두 슬픈 거여.”
“언제 외로우세요?”
해 놓고 보니 참 어설픈 질문이다. 인생이 원래 외로운 거라는데, 언제 외롭냐고 묻는다. 그래도 그는 바로 대답한다. ‘디스커뮤니케이션(discommunication)’이란다.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이 아니고 ‘디스커뮤니케이션’이다. 미스커뮤니케이션은 소통(疎通)의 의지는 있으나, 내용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다. 그러나 디스커뮤니케이션은 다르다. 소통의 의지 자체가 아예 없거나, 화자(話者)의 의도가 애초부터 왜곡되는 현상이다.
‘아, 나는 도무지 남하고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너무 외롭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바로 서재로 올라가 책상 앞에 앉는다.
함께 ‘창조학교’를 준비하면서 그가 외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조찬부터 저녁까지 식사시간마다 사람들을 만나 창조학교의 의미를 쉬지 않고 설명했다. 돈 받는 일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다. 그저 더 늙기 전에 한국사회에 창조의 밑거름은 꼭 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아이디어를 혼자서 현실화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김 교수, 내가 혼자 하는 것은 정말 잘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는 것은 매번 이렇게 힘이 드네. 다시는 사람들하고 함께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를 했는데….”
그가 메일을 보낸 시각은 새벽 3시였다. 이렇게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흥분하고, 즐거워하고, 동시에 자주 상처받고, 우울해한다. 그의 걱정과 우려 덕분에 창조학교는 현재 아주 성공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www.k-changeo.org를 한번 들어가 보라. 우리나라 최고의 창조적 멘토들은 다 모여 있다. 이어령이 아니라면 누구도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어령은 자주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어린 시절,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섬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매번 그는 미꾸라지, 참새 이야기를 한다.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참새 알 꺼내고, 미꾸라지 잡던 모습이 엄청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멀리 언덕에 앉아 재잘대는 또래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못 견디겠다 싶으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들판을 내달렸다.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던 그 소년은 88올림픽 개막식 때, 정적 가운데 홀로 나와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린다. 그 굴렁쇠 소년은 바로 수십 년 전 이어령의 모습이었다. 80에 가까운 그는 여전히 혼자 논다. 책상은 외로운 그의 놀이터다.
이어령의 책상에는 컴퓨터가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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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이어령의 책상: 3m가 넘는다. 가장 큰 책상을 갖는 것은 이어령의 근원적 욕망이다. |
그의 서재에는 책상이 앞뒤로 있었다. 그는 앞의 것을 책상, 뒤의 것을 ‘작업대’라고 불렀다. 앞뒤로 총 6대의 컴퓨터가 작업대와 책상 위에 있었다. 전시용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작업대에 나란히 정렬돼 있는 4대의 모니터는 나름의 특별한 기능을 수행한다.(사진1) (사진2)
맨 왼쪽의 컴퓨터는 일본어용(用)이다.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일본어로 된 글을 쓸 때 사용한다. 아무리 외국어 자판 사용이 시스템적으로 좋아졌다 해도, 여전히 글자가 깨져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컴퓨터는 국내 최초의 모니터와 본체가 통합된 올인원 컴퓨터다. 삼보컴퓨터의 이용태(李龍兌) 고문이 선물한 것이다. 이 컴퓨터의 운영체계는 ‘윈도 미(window me)’다. 꽤 오래된 이 시스템을 아직도 사용하는 이유는 이 운영체계에서만 돌아가는 옛날 자료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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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그가 작업대라고 부르는 상위의 4개의 컴퓨터 모니터. 폼이 아니다. 각각 나름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
이 4대의 컴퓨터는 스마트 싱크라는 프로그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에 변화가 생기면 모든 컴퓨터가 따라 변한다. 어느 컴퓨터를 사용하든, 동일한 내용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는 운영체계상의 변화로 생기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그는 이런 작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운영체계의 업그레이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축적하고 있는 자신만의 데이터가 별로 없는 까닭이다. 데이터가 많이 축적되어 있더라도 업그레이드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어, 운영체계의 변화가 그리 복잡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어령에게는 운영체계의 변화가 엄청난 스트레스다. 남들이 전혀 쓰지 않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쓰고 있는 까닭이다.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각 운영체계에 맞춰져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업그레이드도 그리 쉽지 않다.
이어령과 스티브 잡스 - 디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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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종이에 쓰고, 말하면 그 내용이 컴퓨터로 바로 전송되는 시스템. 이어령은 ‘디지로그’를 실제 생활에 적용하고 있었다. |
완벽한 ‘디지로그(DIgilog)’다. 컴퓨터 자판을 사용하여 입력하는 것이 아니다. 종이 위에 쓰는 아날로그 내용이 컴퓨터로 디지털화되어 입력되는 것이다.
누구나 경험한다. 종이 위에 쓸 때와 자판(字板)을 통해 컴퓨터에 입력할 때의 내용이 서로 달라지는 것을. 종이 위에서 사각대는 연필소리와 그 마찰의 느낌에 따라 그 쓰는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이어령의 디지로그는 바로 그 차이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찾는다. 사변적 어휘가 아니다. 자신이 실제로 이런 최첨단의 기기들을 사용하며 개념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바로 이 ‘디지로그’적 접근 때문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의 성공비결이 도대체 뭔가. 다들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터치’라는 아날로그적 경험을 빼놓고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이야기할 수 없다. 애플의 히트 상품은 바로 이 ‘터치’로부터 시작된다. 한때 한국이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바로 꼬리를 내린다. 아이팟 때문이다.
음질(音質)이나 가격대비 기능을 비교하면 아이팟은 한국제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이팟은 단지 스크롤 휠(scroll wheel)의 느낌으로 그 모든 약점을 극복한다. 손가락으로 휠을 돌리면 화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바로 그 느낌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 느낌을 ‘터치’라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아이팟 터치, 아이폰, 아이패드에 적용한다. 손가락을 대고 벌리면 화면이 늘어나고, 좁히면 줄어들고, 건드리기만 해도 반응하는 화면을 만든 것이다.
그것도 반드시 맨손으로 만져야 반응한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적 경험을 적용한 것이다. 볼펜으로 눌러도 반응하고, 손가락으로 눌러야만 반응하는 한국산 터치화면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손톱으로 찍어 눌러야만 반응이 오는 40대 피부와 슬쩍 건들기만 해도 반응하는 20대 피부의 차이랄까. 아무튼 전(全) 세계가 열광하는 애플의 성공은 이어령식 ‘디지로그’의 아주 작은 적용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이어령 자신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디지로그’를 섬처럼 고립된 자신의 책상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었다. 작업대에 놓인 4개의 컴퓨터 이외에도 두 개의 컴퓨터가 더 있다. 앞쪽으로 향한 책상에는 세로로 세워진 모니터가 있고, 아주 작고 얇은 넷북이 놓여 있다. 뿐만 아니다. 아래 서랍을 여니, 또 다른 노트북이 나온다. CD나 DVD를 굽고, 프린트하는 기계도 서랍에서 나온다. 아, 여든 가까운 어른의 정보화 수준이 이렇다. 기껏해야 이동식 저장장치로 데이터나 옮기는 게 전부인 나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2 이어령은 장군이다. 그는 책상에서 언어의 사열을 받는다.
“난 장군이야, 책상 위에서 병사들의 사열(査閱)을 받지.”
사주를 보는 사람이 이어령을 보고 ‘수천, 수만 명을 거느리는 장수’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을 장군이라고 한다. 그의 부하는 언어다. 수천 수만의 언어들이 ‘줄 서!’ 하면 줄을 서고, ‘돌격 앞으로!’ 하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돌격한다. 이 부하들은 전사(戰死)하지도 않는다. 가끔 오타(誤打)나 오식(誤植)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의 부하, 책들이 가끔 배신하는 경우가 있다. 좋은 책이라고 책장 가운데 꽂아 두었는데, 지나서 읽어 보니 아무것도 아닌 책일 때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읽어 보니 너무 귀한 책이다. 장군감을 사병으로 만들어 돌격 앞으로 시킨 격이다. 그러나 책처럼 충실한 부하도 없다.
언어를 다스리는 장군, 이어령에게 책상은 사열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상을 한국에서 가장 큰 것으로 만들었다. 3m. 매일같이 그는 그 큰 책상 위에서 책들의 사열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알렉산더와 자꾸 비교했다. 알렉산더가 아무리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왕이라지만 책상만큼은 자신의 것이 더 크다고. 이 자랑을 하는 그의 표정은 자신의 책상을 처음 갖게 된 어린아이 표정이다. 지금 한국 최고의 지성이 지금 자기 책상 크다고 어린아이처럼 자랑하고 있는 거다. 너무 귀엽지(!) 않은가? (이 표현이 참 죄송스럽다. 하나 이 맥락에서는 이 단어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다.) 그는 자신의 책상이 크다는 자랑을 계속한다.
책상을 주문하며 한국에서 가장 큰 책상을 만들고 싶었다. 지식 영역을 상징하는 책상만큼은 한국 최고(最高), 세계 최고여야 한다는 욕심이다.
큰 책상에 대한 그의 욕심은 모든 남자가 가지고 있는 공간점유의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여자의 욕구와 남자의 욕구의 차이를 시간과 공간으로 대비해 설명한다. 남녀의 욕구 차이는 소유하는 물건의 차이에 그대로 반영된다. 여자의 물건은 시간의 소유와 관계된 반면, 남자의 물건은 공간의 소유와 관계되어 있다.
상자와 책상
그는 남녀차이를 ‘상자’와 ‘책상’으로 비교하여 설명한다.
여자의 물건은 대부분 ‘상자’다. 상자는 여자의 자궁(子宮)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잉태하여 시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자 안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석을 담는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남자는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정복하려 한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은 달리는 말에 그토록 집착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금전적 여유가 조금만 생기면, 남자들은 자동차전시장을 기웃댄다. 보다 빠르고, 폼 나는 차를 타고 달리는 만큼 그 공간이 자기 것이 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그 더운 여름날, 위아래 꽉 끼는 가죽옷을 입고, 뒤에는 넘치도록 풍만한 여인을 태우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싶은 욕망도 마찬가지다.
공간이 생기면 남자들은 성(城)을 쌓는다. 독일의 라인강변을 지나다 보면 지나치게 많은 성들이 있다. 산봉우리마다 정말 지겹게 성을 쌓았다. 내 공간을 확인하고 싶은 철없는 남자들의 욕심이 남긴 흔적들이다. 한국의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돈이 생기면 바로 집을 넓힌다. 집이 더 이상 넓어질 수 없으면, 별장을 산다. 또는 정원을 만든다. 정치인이 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대표하는 지역의 넓이만큼 권력이 생기는 까닭이다.
이어령도 남자다. 그에게는 책상이다. 여인들이 시간을 상자에 담으려 했다면 이어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을 그의 책상에 담는다. 남자의 책상에는 다리가 달렸다. 말이 달리는 것처럼, 네 다리가 달린 남자의 책상은 끝도 없는 광활한 지식의 영토를 달린다. 이어령의 책상도 달린다. 그의 책상처럼 빨리, 폭넓게 달린 것도 없으리라.
5ㆍ16군사정변 이후 이야기다. 실세(實勢) 김종필(金鍾泌)이 문화예술인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의 지원을 얻으려는 의도였다. 김종필은 그들에게 각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도와준다고 했다.
이어령의 순서가 왔을 때, 그는 책상을 달라고 했다. 문인(文人)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뼘 되지 않는 책상이 전부라고 했다. 군인이지만 오히려 문인에 가까웠던 김종필은 이어령이 달라는 책상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허허, 그런 자유는 제게도 없습니다.”
고향도 같고, 같은 학교 출신이며, 인간적으로 서로 호감을 느꼈던 김종필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책상 위의 자유는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존재의 보루(堡壘)인 것이다.
“내게 책상은 족상(足床)이여, 족상!”
책상은 자유다. 누구도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더 욕심부린다. 가장 넓은 책상, 가장 큰 서가(書架), 제일 많은 언어를 담은 책상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 욕심은 신혼(新婚) 때부터 있었다. 셋방살이하면서, 이어령은 ‘미깡궤짝’ 위에서 글을 썼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연재할 때는 이삿짐 트럭 위에서도 글을 썼다.
그에게 가장 큰 책상이 생겼을 때, 너무 기뻤다. 그는 책상 위에 누워 보았다. 머리 위로 아직도 넓은 공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책상을 너무 뿌듯해한다. 잠자는 침대보다 책상이 커야 한다.
“책상에서 주로 뭘 하세요?”
내 경우, 책상은 서류 정리하는 곳이다. 솔직히 내가 책상에서 책을 읽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의 경우는 어떨까. 자못 궁금하다.
이 황당한 질문에 어어령은 허허 웃으며 대답한다.
“내게 책상은 족상(足床)이여, 족상!”
책을 올려놓는 상이 아니라, 발을 올리는 상, 즉 족상이란다. 와우, 천하의 이어령도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딴생각만 한단다. 이런 위로가!
물론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는 책상에서 일을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그는 책상에서 ‘엄한(엉뚱한) 짓(!)’만 한다.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책상 위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서류들을 들춰보다가, 갑자기 선물받은 만년필이 생각나 책상 전부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기에 문구류(文具類)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별로 필요가 없는데, 문구점에 가면 이것 저것 사다 쟁여 놓는다. 갑자기 생각나 찾았을 때, 그 물건이 없으면 너무 불안해진다. 누가 훔쳐가지나 않았을까 하며 서재를 들렀던 이들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한참을 찾다보면 책상 위에 멀쩡하게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매번 그런 식이다. 당장 쓸 물건도 아닌데 그토록 불안해한다. 지금도 그의 책상 위에는 그렇게 많은 필기구가 있지만, 급해서 쓰려 하면, 다 말라 비틀어져 제대로 나오는 게 하나도 없다. 연필도 다 부러져 있다. 그래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오늘도 장군 이어령은 잘 나오지도 않는 볼펜, 잉크가 말라버린 만년필, 심이 부러진 연필을 들고, 3m 책상 위에서 그의 부하들에게 호령을 한다. 그의 언어들은 잘 훈련된 군사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진군한다. 그래서 그는 책상 앞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3 이어령은 정이 참 많다. 그만큼 그의 서랍은 참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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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4>이어령의 책상 아래에는 또 하나의 작은 책장이 있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 |
인간의 기억방식과 비교하면 책상은 단기기억이고, 책장은 장기기억이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은 책상 위에 올라가 있고, 일단 한번 읽은 책은 책장에 꽂히게 된다. 문제는 한번 장기기억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꺼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쇠퇴하는 경우다.
이어령의 책상에는 이 두 작업영역을 보완하는 또 다른 비밀장치가 숨어 있다. 책상 아래 별도의 책장이다.(사진4) 한번 처리한 정보라도 얼마 후 다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저장하는 곳이다.
기억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들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이외에 별도의 기억장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 바로 그것이다. 작업기억은 장기기억의 가장 최근 것들을 다루며, 단기기억과의 소통이 이뤄지는 곳이다. 인지심리학의 최신 연구에서 밝혀진 이 작업기억이라는 새로운 기억장치를 이어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책상 아래 작은 책장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철저한 그의 지식관리 시스템에도 허점은 있다. 책상 서랍이다. 그의 서랍은 엉망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랍을 깨끗이 정리하고, 자물쇠로 채워둔다. 그의 서랍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거의 쓰레기통 수준이다. 책상에서 사용하다가 책상 아래 책장이나 서가의 책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들은 죄다 서랍행이다. 가끔 서랍을 뒤지다 보면, ‘도대체 내가 왜 이 물건이 여태 가지고 있지’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노트북 가방, 연결선은 보통이고, 이미 버려진 기기의 사용설명서들로 그의 책상서랍은 가득 차 있다.
서랍에서 새 배터리를 찾는 일은 그에게 매번 반복되는 리추얼이다. 새 배터리를 갈아 끼울 때, 사용한 배터리는 바로 버려야 하나 그냥 새것들과 섞어 놓는다. 나중에 새것과 사용한 것을 구분하지 못해 일일이 배터리를 끼워보고 작동하면 사용하고, 작동하지 않으면 다시 끼워 넣는 일을 반복한다. 그래도 가끔 보석처럼 귀중한 자료가 나오기도 한다. 88올림픽 때, 자신이 기획한 행사 스크립트 같은 귀한 역사적 자료를 서랍을 뒤지다 발견하기도 한다.
책상은 고립을 통한 위안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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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5>오래 전, 김남조 선생이 선물한 촛대가 놓인 이어령의 책상. 이어령에게 책상은 제단이다. |
정이 많은 만큼 이어령은 자주 삐친다. 어른에게 ‘삐친다’는 표현 또한 앞서 이야기한 ‘귀엽다’는 표현만큼 무례(無禮)하다. 하지만 그가 잘 삐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화를 내는 것과 삐치는 것은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불과 몇 분이 지나면 바로 후회한다. 미안해하는 내색이 너무 분명해 오히려 상대방이 더 미안해진다. 그래서 ‘삐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어령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무섭게 화내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순간만 지나면 바로 미안해하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침묵이 두렵기 때문이다. 침묵은 단절이다. 서로 할 이야기가 없는데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한 상황은 없다. 정이 많은 그는 이런 침묵을 못 견뎌한다.
언젠가 <조선일보>에 조용헌이 ‘이어령 마이크’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어령과 2시간30분 이야기했는데, 자신은 불과 10분 동안 마이크를 잡았다며 너무 억울해했다. 그는 “이어령이 마이크를 놓지 않는 이유는 타고난 정력 때문”이라는 다소 황당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물론 이어령은 에너지가 넘친다. 생각의 쉼이 없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는 침묵과 단절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외로움을 달고 사는 이어령에게 사람 사이에 할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이를 그는 ‘치킨게임’으로 설명한다.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에서 두려운 사람이 먼저 핸들을 돌려 피하는 것처럼, 매번 그는 잠깐의 침묵도 두려워 먼저 말을 꺼낸다는 것이다.
정이 많은 사람은 사람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 이어령도 마찬가지다. 매번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다. 사람에게서 지친 이어령에게 책상은 고립을 통한 위안을 준다. 그의 책상위에는 오래 전 시인 김남조(金南祚) 선생이 선물한 촛대가 두개 있다. 마치 제단의 촛대처럼 놓여 있다.(사진5) 책상은 그에게 위로의 제단(祭壇)이다.
존재의 이유
책상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얻은 그에게 책상 때문에 잃어버린 것도 있다. 자녀들과의 관계다. 아직도 이어령은 자녀들에게 미안해한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본 것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녀들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하려 서재문을 열었다간, 매번 이내 닫고 돌아섰다. 퇴근하면 바로 서재로 들어가 스탠드 불빛 아래 글쓰기에 몰두하는 아버지를 방해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들은 아버지 관련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아버지 글 쓰신다!”
최근에 그가 자신의 딸과 함께 <지성으로 영성으로>란 책을 쓴 이유도 되돌릴 수 없는 그 미안함 때문이다.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地上)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
책상은 이어령에게 존재의 이유다. 사람들과의 소통불능의 외로움을 피해 위안을 얻는 곳이고, 수천 수만의 언어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호령하는 사열대이기도 하다. 많은 이에게 정 많고 따뜻한 선생이지만 정작 자녀들에게는 등만 보여준 죄의식이 함께 공존하는 레종 데트르(Raison D’etre : 프랑스어로 ‘존재의 이유’)다. 그래서 오늘도 이어령은 책상에 앉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