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점 밑으로만 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어요. 선동렬 투수 같은 에이스 중의 에이스가 상대방 투수로 나오면 ‘점수를 조금 줘야지. 많이 주면 오늘은 못 이긴다’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더 굳게 먹고 마운드에 서게 되죠.”
⊙ 프로통산 국내 최초 200승, 2000탈삼진, 3000이닝 투구 기록
⊙ 21년간 통산 성적 210승 153패 103세이브. 671경기에 출전 3003이닝 동안 4만9012개의 공 던져.
상대한 타자는 1만2707명, 탈삼진 2048개
⊙ 송진우 선수가 세운 국내 야구 ‘최고령’ 기록: 선발승(42세), 구원승(43세), 완투승(39세),
완봉승(39세), 세이브(41세), 홀드(43세)
⊙ 가장 껄끄러웠던 선수는 현대의 김인호·김호, SK의 양용모 선수
⊙ 송진우가 꼽은 야구를 잘한 선수: 투수-선동렬, 김시진, 최동원.
타자-김성한, 이만수, 장종훈, 이승엽.
宋津宇
⊙ 1966년 충북 괴산 출생.
⊙ 세광고·동국대 졸업.
⊙ 야구 국가대표. 프로야구선수협의회장.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최다승상·구원투수상 등 수상.
⊙ 프로통산 국내 최초 200승, 2000탈삼진, 3000이닝 투구 기록
⊙ 21년간 통산 성적 210승 153패 103세이브. 671경기에 출전 3003이닝 동안 4만9012개의 공 던져.
상대한 타자는 1만2707명, 탈삼진 2048개
⊙ 송진우 선수가 세운 국내 야구 ‘최고령’ 기록: 선발승(42세), 구원승(43세), 완투승(39세),
완봉승(39세), 세이브(41세), 홀드(43세)
⊙ 가장 껄끄러웠던 선수는 현대의 김인호·김호, SK의 양용모 선수
⊙ 송진우가 꼽은 야구를 잘한 선수: 투수-선동렬, 김시진, 최동원.
타자-김성한, 이만수, 장종훈, 이승엽.
宋津宇
⊙ 1966년 충북 괴산 출생.
⊙ 세광고·동국대 졸업.
⊙ 야구 국가대표. 프로야구선수협의회장.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최다승상·구원투수상 등 수상.
이날 왼손으로 내리꽂듯 던지는 송진우의 강속구에 롯데 타선은 무력했고, 9회초 공격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점도 뽑지 못했다. 이날 신인 송진우의 프로 데뷔전은 완봉승으로 끝났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5번째 데뷔전 완봉승이었다. 송진우가 데뷔전 완봉승을 거둔 이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송진우가 세운 진귀한 기록이 있다. 1992년 시즌 송진우는 19승 8패 17세이브를 기록, 다승왕과 구원왕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도 없는 기록이다. 다승왕과 구원왕 동시 수상이라는 송진우의 그해 기록은 앞으로 송진우가 국내 프로야구사에서 세울 국내 ‘프로야구 최고·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게 될 기록들의 출발점이었다.
프로야구 데뷔 다음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등번호 21번을 달게 된 송진우는 수많은 기록을 쏟아냈다. 송진우의 통산 성적은 210승 153패 103세이브. 21년 동안 671경기에 나가 3003이닝 동안 4만9012개의 공을 던졌다. 그가 상대한 타자는 1만2707명. 안타를 2717개 맞았지만 탈삼진도 2048개를 기록했다. 2000년 5월 18일 광주 기아 전에서는 국내 투수 중 10번째로 노히트노런(no hit no run)을 기록했다. 송진우의 노히트노런 기록 수립 후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같은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기록을 세우는 과정에서 송진우는 프로통산 처음으로 200승, 2000탈삼진, 3000이닝 기록을 세웠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세운 국내 프로야구 ‘최고령’ 기록들이다. 선발승(42세), 구원승(43세), 완투승(39세), 완봉승(39세), 세이브(41세), 홀드(43세·승리나 세이브를 얻지는 못했으나 자기 팀이 리드한 상황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세이브 조건을 충족시키고 물러난 투수에게 주어지는 평가) 등 투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그는 국내 최고령 기록들을 갖고 있다. 34세에 세운 노히트노런 기록도 국내 최고령 기록에 포함된다.
영어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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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은퇴 선언 후 2002년 수상한 골든글러브를 꺼내 만져보고 있는 송진우 선수. |
‘프로야구의 전설’은 대전 한밭야구장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의 눈은 그라운드를 향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주 앉았다. 공부에 전념했다면 공부도 참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많았죠. 특히 영어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공부를 하는 운동선수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나오지만, 저희 때만 해도 학교 수업을 안 받고 운동만 했어요. 지금은 그때 공부를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어요.”
충청도 토박이였지만 그는 충청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얄미우리만치 필자가 던지는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프로야구 지도자들의 문제, 선수들 개개인에 관한 질문 등 예민한 질문에는 “그런 질문에는 아직 대답할 수 없다는 것 잘 알지 않느냐”는 식으로 피해갔다.
그가 경험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구타 등 학교체육의 어두운 부분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지만 운동장을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다시 그와 눈빛이 마주쳤을 때 “참, 선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 은퇴 선언 후 더 바빠진 건 아닙니까.
“은퇴 선언 후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학교 동창 등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로 바쁘긴 하네요.”
―현역 은퇴를 알리는 공식 기자회견은 가졌지만 공식 은퇴경기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구단에서 9월 23일로 잡아놓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올해까지는 선수생활을 계속할 것으로 보였는데, 시즌 중에 은퇴 선언을 한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팀 성적 부진하고 맞물린 것 같아요. 제가 4월 말에 2군에 내려가서 100일 정도 있었어요. 이상하게 그때쯤부터 우리 팀 성적이 바닥까지 내려갔어요. 성적이 안 좋아지면서 세대교체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결심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팀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젊은 선수들이 좀 더 열심히 해 줘야 하고, 그 선수들이 성장을 해 주어야 해요.”
“아쉽지만 정리할 때가 됐다”
―혹시 주변에서 은퇴를 강권하지는 않았습니까.“없었어요. 혼자 결정했습니다.”
―은퇴 결심을 굳힐 때 외로웠겠습니다.
“고민도 좀 했죠. 그래도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21년 동안 했고, 제가 하고자 했던 200승도 달성했고, 2000탈삼진, 3000이닝도 다 달성했으니까 의미 있는 프로생활을 했다고 봅니다. 나름 성공적인 선수생활이었으니까 좀 아쉽지만 이제 정리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은퇴를 결심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습니까.
“아무래도 실력이죠. 프로야구는 성적으로 말해 주는 거니까요. 올해는 중간계투로 출전하다보니까 좋은 경험으로 삼자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지더군요.”
―가족이 은퇴를 반기던가요?
“2군에 내려가서 100일 동안 1군에 못 올라가니까 가족은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생각했을 거예요. 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제 은퇴 결심을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이번에 은퇴 선언 후 새로 생긴 ‘프로야구의 전설’이라는 별칭은 마음에 듭니까.
“글쎄요. 뭐, 싫지는 않은 것 같아요. 좋은 말이기도 하고, 그동안 내가 열심히 뛰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고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은 생소했죠. 내가 그만두기는 두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국내 프로야구 출범 19년째가 되던 지난 2000년 초 프로야구선수들은 선수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를 만들었다. 송진우는 이 단체의 초대 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때 송진우에게 새롭게 붙여진 별명이 ‘송 회장’이다.
2000년 1월 22일 창립총회 때 75명으로 출발했던 선수협은 창립 채 한 달이 안돼 20여 명으로 줄어드는 등 어려움 속에서 출발했다. 각 구단이 코칭스태프를 동원해 회유책을 쓰는 등 방해했기 때문이다.
―선수협을 이끌면서 어떤 일이 제일 힘들었습니까.
“처음에 시작할 때 가입 서명을 받는데 많은 선수가 가입했어요. 선수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입했다가 철회하고 철회했다가 다시 가입하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하루에만 70명이 빠져나갔어요. 힘이 쭉 빠져 진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끼리 서로 뭉친다는 생각이 있으면 힘들어도 서로 견디고 버틸 수 있는데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상황이 제일 어려웠어요.”
선수협 위해 우승 기념반지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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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6일 프로통산 최초 2000탈삼진을 기록한 송진우 선수가 기록 달성 직후 모자를 벗어 들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미국 사람한테 경매됐어요. 요즘은 야구장에서 잘 안 보이는데 토머스라는 미국 기자였어요. 잠실야구장에 자주 왔던 분이죠. 제 반지가 그분에게는 컸는지 반지 안에 무언가를 감아서 끼고 있는 모습을 본 적 있습니다.”
―얼마에 낙찰됐습니까.
“지금은 얼마에 낙찰이 됐는지 잘 생각이 안 나요. 선수협에 큰 보탬은 안됐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죠.”
―송진우 본인에게는 아주 소중한 반지였을 텐데요.
“그렇죠. 제가 21년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첫 우승이자 마지막이었던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반지였으니까요.”
―지금 선수협은 잘되고 있습니까.
“처음에 하는 일은 무리가 많이 따르고 거기에 대한 피해도 많이 입는 걸로 아는데, 구단이나 우리나 서로 크게 다치는 사람 없게 문화관광부가 중재를 잘해 줘서 지금은 잘되는 것 같습니다.”
―선수협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던데요.
“올해 노조를 설립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시즌 중이라 추후에 논의될 거라고 봅니다.”
―선수협을 노조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인가요?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수협이 생기기 전에는 프로야구 정관이나 선수들 계약서 모두 KBO(한국야구위원회)나 구단 쪽에 유리하게 돼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고요. 선수협은 임의단체예요. 지금도 KBO는 선수협과 동등한 입장이 아닌 일방적 우위를 가진 입장에서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으로 선수들 요구를 들어주고 있어요. 올해 같은 경우 시즌 중간에 월요일 경기를 한다, 더블헤더를 한다 등등 제도를 많이 바꿨거든요. 언론에서 지적을 하니까 시즌 중간에 바꿨다고요. 어떻게 보면 우습잖아요.”
―선수들의 뜻이 전혀 반영 안됐다는 말이죠?
“전혀 반영 안됐어요. 의견도 안 물어봤고요. 실제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은 선수들이잖아요.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정작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의견이 수렴도 안된다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제도 변경을 논할 때는 선수 대표도 참여해서 선수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선수들은 행정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경청하면서 서로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봐요.”
체육부 폐지 아쉬워
―선수협 회장 경력 때문에 정치 입문 제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생각도 안 해 봤고요.”
―프로야구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정치에 입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스포츠 스타는 상대적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분이 적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고요. 아무래도 연예인들이 운동선수보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매스컴도 우리보다 많이 타는 등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쪽에 더 유리하지 않나 싶어요.”
―스포츠인들도 정계에 활발하게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깊이 고민해 본 문제가 아니라서…. 스포츠인으로서 저는 체육부가 없어진 게 무지 아쉽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한 대표적 분야가 스포츠 아닌가요? 체육부가 없어진 후 체육 쪽에 대한 지원이 너무 적어졌어요. 제가 학교에서 운동하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지원을 다 해 주었어요. 체육부가 없어진 후에는 학부모 기금으로 충당하니까 재정적으로 어렵죠. 학부모 기금으로 충당하다 보니까 지도자와 학부모의 유착 등 불미스런 일들도 발생하고요. 문화체육부 장관은 거의 문화예술인 출신들이에요. 체육인 출신은 없어요. 문화예술인 출신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제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문화예술 쪽에 대한 투자보다 체육 쪽 투자가 부족한 것 같아요. 체육인 출신들도 정·관계에 많이 진출했으면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들어요.”
―21년 동안 몸담으면서 몸으로 느낀 한국 프로야구의 문제는 뭡니까.
“가장 큰 문제는 구장시설이에요. 올해 최다 관중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구장 시설만 좋으면 더 많은 팬을 모을 수 있다고 봐요. 잠실구장, 문학구장, 사직구장까지는 괜찮은데 광주·대전·대구 구장 시설은 너무 열악하고 1만 석 규모밖에 안돼요. 선수들이 올해 유난히 부상이 많았잖아요? 좀 더 구장 시설이 좋아야 선수들이 부상을 덜 당합니다. 물론 본인 부주의로 인한 부상도 있지만요.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치명적입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구단에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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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월 23일 팬 설명회에서 당시 선수협 주축 멤버인 강병규(왼쪽) 임시대변인과 송진우(오른쪽) 회장이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돔 구장보다 지방 야구장 새로 짓는 것이 시급
―광주·대전·대구 구장은 전면적인 개보수를 해야 된다는 말이죠?
“개보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새로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WBC에서 좋은 성적 냈고, 올림픽 메달도 땄잖아요. 시설이 그 정도 수준은 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경기도 안산에 돔 구장을 만든다고 하던데요.
“돔 구장 만들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방에 새 야구장을 짓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돔이야 상징적이지만 그것도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일본 같은 경우는 비가 많이 오니까 필요하죠.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잠깐 우기가 있는 건데 지금까지 잘 치러 왔잖아요.”
―요즘 프로야구계를 안타깝게 한 것이 롯데 정수근 선수의 음주 파문인데 선배로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제가 뭐라고 얘기할 입장은 아닌데, 어쨌든 부산 팬들이 너무 열성적이고 너무 야구를 좋아하다보니까 벌어진 일인 것 같아요. 본인도 그런 전례가 있었으면 조심했어야 했다고 생각하고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힘든 일이 누군들 없겠어요? 술은 집에서도 먹을 수 있잖아요. 언론 보도가 오보라고 해도 일은 벌어진 거니까,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경기를 하는데, 가장 열광적인 구장은 어디입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예전에는 기아 타이거즈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팬들이 열광적이었습니다. 광주 구장에 가서 경기를 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죠. 지금은 롯데가 있는 부산이 그렇죠. 젊은 선수들이 얼어붙을 정도로 열광적입니다.”
―홈구장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원정팀 선수들 경기력에 영향을 줍니까.
“없다고 볼 수는 없어요. 특히 어린 선수들한테는 영향을 주죠.”
―송진우 선수 같은 베테랑들한테는 영향이 없나요?
“심리적으로 영향이 있다고 봐야죠.”
―어떤 영향을 줍니까.
“3만명이 뭉쳐서 소리를 지르면 경기장이 쩌렁쩌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그게 나를 응원하는 것이라고 반대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서 조금 덜하지만, 어린 선수들은 영향을 받아요. 신인 시절에는 저도 심리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비법은 없습니까.
“세월이 약이죠. 많은 경험을 해야죠. 실력도 중요하지만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 프로에 입문할 때와 비교해 지금의 프로야구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무지 발전했죠. 과거에는 홈런 25개 정도를 쳐도 홈런왕이 됐어요. 김기태 선수가 25개로 홈런왕이 된 적이 있죠. 물론 40개를 친 장종훈 같은 선수도 있지만요. 지금은 전체적인 홈런 수가 엄청 늘었어요. 예전에는 상위타선에서만 홈런을 쳤는데 지금은 하위타선, 상위타선 가릴 것 없이 홈런을 쳐요.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밀어서 홈런을 치는 사람이 몇 명 안됐어요. 지금은 밀어서 다 넘기잖아요.”
―힘이 좋아진 건가요?
“힘도 좋아졌고, 기교도 좋아졌고, 공도 잘 고릅니다.”
―투수도 그만큼 발전했을 것 아닙니까.
“발전했죠. 야구 전체적으로 기량이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예전에는 미국이나 일본을 이긴다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지금은 이기잖아요. 우리나라 8개 구단이 평준화되었듯이 세계 야구도 많이 격차가 줄어든 것 같아요.”
―해외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저희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어요. 선수생활한 지 7년이 됐을 때 구단이 풀어주면 임대로 해외에 보내줄 수 있었고, 9년이 되면 자유계약 선수로 나갈 수 있었지만 제 전성기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어요. 선동렬 감독 같은 경우는 구단에서 보내줬고, 구대성 선수도 구단에서 보내준 거였죠.”
―해외로 진출하는 동료들 보면서 “나도 나가면 잘할 수 있는데” 하는 부러움은 없었습니까.
“부러운 것도 있었죠. 누구나 운동을 하면 좀 더 좋은 곳, 좀 더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런데 제도도 그렇고 정말 가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 봤어요.”
운동선수들의 敵은 부상
―증평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그때 교장 선생님이 야구를 워낙 좋아해서 야구팀을 만들었죠. 저도 테스트에 합격했는데 처음에는 야구 안 하겠다고 도망 다녔어요. 바로 위 누나가 배드민턴을 하고 있어서 집에서 한 집안에서 운동을 두 명 하는 것은 안된다고 하셔서 도망 다니다가 나중에 잡혀서 하게 됐죠. 저한테는 행운이 된 거죠.”
―그 시절에는 축구를 더 잘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축구를 좋아했어요. 차범근 감독, 김재한 선수, 이세연 골키퍼 등이 맹활약할 때였는데 말레이시아나 태국에 가서 하는 시합을 라디오 중계로 들으면서 열광했었죠. 그때 들었던 우리나라 축구는 수중전에 약하다, 비가 오면 진다 하는 징크스를 지금도 안 잊어버려요.”
―축구선수를 했으면 포지션은 어디를 맡았을 것 같습니까.
“만약에 했다면 미드필더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야구 선수 송진우’ 이상 가는 ‘축구선수 송진우’가 될 수 있었을까요?
“가 보지 않은 길이라 모르겠지만 힘들었겠죠. 축구선수는 체력이 중요하죠. 축구선수로 이 나이까지 뛴다는 게 가능할까요? 야구도 뛰기는 하지만 축구처럼 계속 뛰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운동에 들어가는 스태미나를 비교하면 공 던지는 게 축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밸런스(몸의 균형)로 공을 던지는 체질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던질 수 있었죠. 힘으로만 했으면 벌써 그만두었을 겁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밸런스를 이용해서 달리면 덜 지치잖아요.”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체격 조건도 장수 비결이네요.
“네, 몸에 유연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마음가짐도 중요하고요. 항상 저는 자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운동을 했으니까요. 스포츠인들에게 자신감만큼 중요한 게 없거든요.”
―야구선수들은 어떤 것을 가장 힘들어합니까.
“부상이죠. 운동선수들한테는 부상이 가장 힘든 일이죠.”
―송진우 선수는 큰 부상 당한 적 없잖아요.
“크게는 없어도 조금씩은 항상 부상을 입었었죠.”
―부상을 당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이거 안 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죠. 좋은 자질을 갖고 있어도 부상 때문에 고생하는 선수들 많아요.”
3000이닝 투구 기록이 가장 값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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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11일 2002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프로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황금 장갑’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는 송진우. |
“아무래도 어깨하고 팔꿈치죠. 팔꿈치는 인대접합 수술을 많이 하고, 어깨는 요즘에는 의술이 많이 좋아져서 치료가 쉬워졌죠. 그런데 보이지 않는 부상이 많아요. 의사도 판명을 못하는 부상이 많죠.”
―35년 동안 야구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입니까.
“하도 경기를 많이 해서 한 경기를 꼽기는 어렵네요. 일단 제일 좋았던 것은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할 때였고, 200승할 때도 그랬고 2000탈삼진, 3000이닝 돌파했던 경기가 기억에 남고요. 노히트노런 경기도 기억에 남죠.”
―노히트노런은 2000년 5월 광주구장에서 국내 투수 중 11번째로 기록했죠?
“아니에요. 제가 10번째죠.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정명원 선수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을 포함하면 11번째인데, 시즌 중에는 제가 10번째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최고 전성기는 언제였던 것 같습니까.
“1989년 프로 데뷔 후 4년 정도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힘도 있고 겁도 모르고 막 던질 때였어요.”
―국내 투수 최다승인 210승, 103세이브, 2000탈삼진, 3000이닝 투구 기록 등 수많은 기록을 프로야구사에 남겼는데, 이 가운데 가장 소중한 기록은 어떤 겁니까.
“사실 200승이 어렵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나오겠죠. 그런데 200승보다 값지게 생각하는 게 3000이닝 투구 기록이에요.”
―보통 투수들이 1년에 몇 이닝씩 던집니까.
“팀에서 중심적으로 활약하는 투수가 보통 1년에 150이닝씩 던집니다. 3000이닝을 던지려면 150이닝씩 20년을 던져야 하는 거죠. 아마 3000이닝 투구 기록이 200승 기록보다 어려울지도 몰라요. 제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해요. ‘나 죽을 때까지 이 기록은 두 명 이상 안 나올 거’라고요.”
―그 기록들을 깰 만한 후배들이 보입니까.
“우리 한화 이글스의 정민철 선수가 161승인가를 기록하고 있어서 가까이 있었는데, 올해 은퇴하니까 200승 기록을 깰 수 없게 됐죠. 그 밑으로는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 김광현, 류현진, 윤석민 이런 투수들이 제일 좋아 보이는데 좀 더 지켜봐야죠.”
―최고령 선발승·완투승·완봉승·세이브·홀드·경기출장·노히트노런 등 투수가 가질 수 있는 최고령 기록을 모조리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달성이 어려웠던 기록은 어떤 부문입니까.
“2005년 9월에 세운 완봉승이 제일 어려웠죠. 우리 나이로 제가 마흔 살 때였죠. SK 하고 할 때인데 제가 자발적으로 던지겠다고 했어요.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잘 치는 타자에게는 더 강하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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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는 한화 이글스 선수들. 송진우는 한화 이글스의 한국 시리즈 우승 주역이었다. |
“그런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 있어요. 1997년하고 98년에 6승씩을 했는데 저로서는 저조한 성적이었죠. 승리 수보다도 투구내용이 너무 안 좋아서 그때는 조금 생각을 다시 해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은퇴까지 생각해 본 겁니까.
“그 정도 비슷하게까지 생각했어요. 그때 고비를 넘기고 나서는 그 후 7년 동안은 제2의 전성기라는 소리를 들었죠. 1999년도에는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FA(자유계약선수)가 돼서 구단과 계약을 했죠. 젊을 때 못지않은 전성기를 누린 것 같아요.”
―야구를 하면서 내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선수는 있습니까.
“그런 거는 없어요. 저는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굳이 라이벌을 들라면 옛날 프로야구 입문 동기들을 들 수 있겠네요. MBC 청룡에 있었던 김기범 선수, 해태 타이거즈의 조계현·이강철 선수 정도죠. 엄밀하게 말하면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좋은 경쟁자로 생각했었죠.”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동렬 삼성 감독에 대해서는 라이벌 의식이 없었습니까.
“선동렬 감독은 저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잖아요(웃음). 선배이기도 하고요. 저도 그때 성적이 좋았는데 선 감독은 워낙 성적이 저 하고 차이가 많이 났어요. 워낙 좋은 볼을 던졌기 때문에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어요. 저는 꾸준하게 해 왔지, 성적이 월등하게 좋은 것은 아니었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면서 해 왔죠.”
―우리나라 역대 야구인 중 가장 야구를 잘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그거 대답하기 무지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활동했던 시기를 송진우와 같은 시기로 좁힌다면요.
“우선 투수는 선동렬 감독, 김시진 감독, 최동원 선배가 있고 타자는 이만수, 장종훈, 이승엽, 김성한 감독도 잘 쳤고요. 참 꼽기가 힘드네요.”
―투수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웠던 타자는 누구입니까.
“저는 잘 치는 사람이 나오면 오히려 더 강하게 붙었어요. 개인적으로 껄끄러웠던 타자는 현대에 있던 김인호 선수하고, 김호 선수, 그 다음에 SK에 있던 양용모 선수, 이 세 사람이 상대하기 힘들었어요. 그 세 선수가 들으면 서운할지 몰라도 톱클래스의 타자는 아니었지만 제 볼을 무지하게 잘 쳤어요. 그 선수들이 항상 까다로웠고 까다로운 만큼 많이 맞았어요.”
―코칭스태프에서 타자를 거르라는 지시가 나왔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또는 승부욕이 발동해서 거르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까.
“그런 일은 전혀 없죠. 벤치 사인은 무조건 지켜야 해요. 간혹 사인을 못 봤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는 거고요. 이런 경우는 있어요. 포볼을 내주더라도 승부를 어렵게 해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실투를 해서 맞는 경우는 어쩔 수가 없죠. 원하는 대로 항상 못 던지는 게 사람이니까.”
경기 전에 닭고기는 안 먹어
―머리를 안 감는다든지 하는 스스로 갖고 있는 경기 전 금기사항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금기사항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의식하다 보면 그게 징크스가 되니까요. 하나는 있어요. 닭고기 파는 분들이 들으면 싫어할 이야긴데….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닭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셔서 시합 당일 날에는 저뿐만 아니라 집사람, 애들까지 닭고기를 안 먹어요. 경기장에 와서도 식사에 닭고기가 있으면 닭은 안 먹어요. 평소에는 먹죠. 그냥 부모님이 먹지 말라고 해서 이유도 모르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고 있어요.”
―목욕할 때 공을 던지는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는 물에 안 담근다면서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그곳에 굳은살이 있으니까. 목욕탕에 오래 있으면 손이 하얗게 붇고 그러니까 굳은살이 떨어져 나가잖아요. 굳은살이 떨어져 나가면 다음에 공 던질 때 지장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물에 안 담그죠.”
―체력관리는 어떻게 해 왔습니까.
“특별한 게 없어요.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면 돼요. 밥은 한 공기 이상 안 먹고요. 반찬은 많이 먹어요. 몸을 자주 움직이고 많이 걸어다니려고 노력해요.”
―고정적으로 정해 놓고 하는 운동은 없고요?
“그런 거는 없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남들처럼 무겁게 들지 않고 가볍게 해서 들고, 많이 하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해요. 무거운 것 들다가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선배 중 한 분이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어깨를 다쳤는데 그 이후로 선수생활이 끝나는 걸 봤어요. 그래서 무거운 것보다는 내 몸에 맞게 가볍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게 들고 여유 있게 하고 있어요.”
―부상 때문에 일찍 그만둔 선수는 누가 있습니까.
“많아요. 그런 선수가 참 많아요. 지금도 뛰고 있기는 하지만 기아 타이거즈의 이대진 선수는 그렇게 잘 던지다가 부상을 당한 후에는 예전의 구위를 못 찾고 있잖아요. 정말 잘 던지는 투수였는데 말이죠.”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하면 35년 동안 야구를 해 온 셈인데 지금까지 야구복을 몇 번 입었다 벗었다 했습니까.
“35년 동안 겨울 빼고 1년에 10개월은 거의 매일 입었으니까 한 1만 번 이상 입었다 벗었다 했겠네요.”
―이번 시즌 도루 1위인 LG의 이대형 선수는 유니폼이 닳아서 1년에 10벌을 갈아입는다고 하던데 송진우 선수는 1년에 몇 벌 갈아입습니까.
“이대형 선수는 슬라이딩을 많이 하니까 그 정도 될 거예요. 저는 1년에 서너 벌이면 돼요.”
―유니폼은 구단에서 지급합니까.
“그렇죠.”
―그럼 구단 입장에서는 비용이 다른 선수보다 많이 든다는 이유로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가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아니죠. 선수가 열심히 잘하면 구단으로서는 더 좋은 거죠. 선수가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보기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열심히 하고 잘하면 예쁜 거죠.”
―지금도 취미가 낚시입니까.
“요즘은 골프하고 있어요. 7~8년 됐어요. 80개 초중반 치죠.”
―야구선수들이 골프를 많이 하던데 두 운동이 유사한가요.
“유사해 보이지만 많이 틀려요. 야구는 90도 각도로 공을 쳐서 다양한 방향으로 보내지만 골프는 한 곳으로만 보내야 하잖아요. 처음에 야구 선수들이 골프를 하면 비거리는 많이 나는데 방향을 맞추느라 고생을 많이 하죠. 그냥 거리가 많이 나오는 맛으로들 해요. 스코어는 많이 안 나와요.”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존의 감독 중 어떤 감독을 닮고 싶습니까.
“어이쿠, 제가 감독이 되지도 않았는데요. 감독이란 말 자체가 현재의 제게는 너무 부담스러워요. 지도자의 길을 간다고만 해 주세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까.
“선수와 격의 없이, 선수 의견 존중해 주고 선수가 운동장에서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게 뒤에서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제 생각보다는 선수들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그 마음을 또 읽고 같이 뛸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최고의 敵은 상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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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에서 송진우가 전설을 만들었다면 타자에서는 삼성 양준혁 선수(오른쪽)가 새로운 전설을 만들고 있다. |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기자님께서 잘 아시잖아요? 제 생각과 지도자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성공한 지도자도 겪었고 실패한 지도자도 겪었습니다. 그걸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제 나름 지도자관을 만들어본 거죠. 내년에 해외연수를 가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올 생각입니다.”
―해외연수를 갈 나라가 정해졌습니까.
“일본 쪽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를 운동선수들의 적이라고들 하는데 술과 담배 외에 프로운동 선수들에게 적이 되는 것은 어떤 게 있습니까.
“저는 술 담배가 최고의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기호식품이니까요. 지나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적당히 하면 큰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송진우 선수가 생각하는 프로 선수들의 최고의 적은 뭡니까.
“최고의 적은 상대팀이죠(웃음). 몸과 마음을 망치는 적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거꾸로 답하고 싶어요. 선수생활을 오래 하려면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잠을 못 자면 경기력에 지장을 주죠.”
―경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잠이 안 오는 겁니까.
“그런 점도 있을 수 있지만 이유가 많죠. 술 먹다가 늦어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는 거고요. 사생활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잠을 잘 자고 밥 잘 먹고 러닝만 열심히 하면 운동선수 오래 할 수 있어요. 아주 단순한 진리죠.”
―이성 문제 때문에 자신의 야구 인생을 망가뜨리는 선배나 후배는 못 봤습니까.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없다고 볼 수는 없겠죠.”
―주량은 얼마나 됩니까.
“분위기 따라 다른데 소주 1병은 먹는 것 같아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는 뭡니까.
“아마추어는 배우는 단계잖아요. 프로는 완성단계고요. 프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게 아마추어와 다른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치열함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 거죠.”
―승부욕이 강하죠?
“네, 승부욕이 강해요. 1000원 내기 축구시합을 해도 죽어라 하고 뜁니다. 농구할 때도 그렇고요.”
―처음 프로에 입문할 때 7년 정도의 선수생활을 희망했다가 그 세 배인 21년 동안 선수생활을 했는데 장수비결이 뭡니까.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뛰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훈련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두 아들도 야구 선수
―프로 선수로서 장수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희생당한 부분은 없었습니까.
“가족한테 제일 못했어요. 전지훈련 가고 원정경기 가고 그러다 보니까 집사람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저를 위해서 희생을 해 준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지금 고등학생, 중학생 둘인데 어려서부터 제가 자고 있으면 문 열고 들어왔다가도 조용히 문 닫고 나가죠. 아빠한테 숙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둘 다 사내아이인데 야구를 하고 있어요. 제대로 못 놀아준 게 미안해요.”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났을 것 아닙니까.
“네, 그래서 요즘 자주 만나고 있어요.”
―최고령 선수로서 후배들과는 잘 어울립니까.
“제가 최고령 야구선수가 되다 보니까 어린 선수들이 잘 어울려주질 않아요. 세대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부분도 고참 선수들이 극복할 일 중 하나예요.”
―주변에 동년배의 선수들이 은퇴하면서부터 많이 외로웠겠네요.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후배들이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데도 눈치가 보여요.”
―상대팀 투수 중 “이 선수가 나오면 꼭 이기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투수는 있었습니까.
“그런 거는 없었어요. 경기는 나갈 때마다 다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지려고 하는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선발 등판할 때마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저는 6이닝 3실점만 준다는 각오로 마운드에 섭니다. 3점 밑으로만 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어요.”
―선동렬 투수 같은 에이스 중의 에이스가 상대방 투수로 나오면 “오늘 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안 듭니까.
“더 긴장을 하죠. ‘점수를 조금 줘야지. 많이 주면 오늘은 못 이긴다’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더 굳게 먹고 마운드에 서게 되죠. 항상 생각은 6이닝 3실점이었죠.”
―오늘의 송진우를 있게 한 사람은 어떤 분입니까.
“워낙 많은 분이 있어서…. 좋은 지도자를 많이 만났고 좋은 동료도 많이 만났고요. 저한테는 좋은 지도자와 좋은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私的(사적)으로 싸움해 본 적 없습니까.
“저 싸움 진짜 싫어해요.”
필자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의 야구인생은 승부사의 길이었지, 싸움꾼의 길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니까.⊙
▣ 노히트노런이란?
투수가 상대 팀 선수에게 무안타, 무실점 상태로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를 말한다. 히트바이피치드볼(hit by pitched ball)이나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 또는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을 때에도 안타에 의한 출루가 아니므로 노히트노런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투수가 단 한 선수도 출루시키지 않고 경기에서 승리했을 경우에는 퍼펙트 게임(perfect game)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