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티파티(TPM)와 태극기운동의 공통점
•중년 세대 중심의 대규모 거리 투쟁
•복음주의 기독교 중심
•기존 미디어에 대한 불신
•자체 네트워크 통한 신속한 동원력
•국기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보수 운동
⊙ 2009년 TPM 출범, 2010년 트럼프 출마설 등장
⊙ 트럼프, ‘작은 정부’ ‘미국적 가치 수호’에서 TPM과 상통
⊙ 트럼프가 관세 전쟁 밀어붙이는 것은 ‘공화당원의 90%가 지지’ 믿음 때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중년 세대 중심의 대규모 거리 투쟁
•복음주의 기독교 중심
•기존 미디어에 대한 불신
•자체 네트워크 통한 신속한 동원력
•국기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보수 운동
⊙ 2009년 TPM 출범, 2010년 트럼프 출마설 등장
⊙ 트럼프, ‘작은 정부’ ‘미국적 가치 수호’에서 TPM과 상통
⊙ 트럼프가 관세 전쟁 밀어붙이는 것은 ‘공화당원의 90%가 지지’ 믿음 때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3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사진=조선DB
‘정보 범람’쯤으로 해석될 말로, 지난 1월 2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자주 등장하는 시사용어다. 원래 트럼프 정권 1기 당시 정책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이 주장한 정치 전략이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면서 적을 제압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상식의 혁명(revolution of common sense)’이 시작될 것이라 말했다. 취임 후 78일째인 4월 8일까지 ‘상식의 혁명’에 기초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무려 111개에 달한다. ‘상식의 혁명’이 ‘비상식적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경천동지(驚天動地)하게 하는 법들이, 토요일과 일요일·휴일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2개꼴로 발표됐다.
지금 오벌 오피스는 戰時 상황실
트럼프 이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린 인물은 1941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3기 취임 후 100일 동안 내린 행정명령이 99건에 달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즈음한 혁명적 정책들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대통령 명령을 발표한 것이다. 대통령 명령에 관한 한, 트럼프는 기존의 기록 보유자 루스벨트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취임 100일째인 4월 30일까지 내릴 대통령 명령 건수가 140건에 달할 전망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명령 발표는 ‘Flood the Zone’ 전략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전시(戰時) 지도자 루스벨트가 그랬듯, 초유(初有)의 국난을 맞아 신속한 일처리가 필요하다. 국회 입법은 시간이 걸리고, 입법 과정에서 당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당초 목적과 다르게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트럼프의 대통령 명령이 루스벨트보다 많다는 것은, 2025년 오늘 미국의 상황이 84년 전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한층 어렵고 위험하다는 의미다.
필자가 보기에 ‘트럼프 2.0 오벌 오피스=전시 작전상황실’로 느껴진다. 참모들과의 만남이나 정책 발표가 이뤄지는 오벌 오피스의 공기는 ‘숨 막히는 긴장’으로 채워져 있다. 조크를 나누며 웃고 여유를 즐기며 함께 일하던 기존 미국 대통령들의 집무 스타일과 너무도 다르다.
미국 리버럴 미디어는 ‘트럼프=파멸·악(惡)·독재자’ 정도로 대한다. 한국도 미국 미디어를 흉내 내며 ‘트럼프=예측 불가능 악당’으로 비난하고 트럼프 2.0을 ‘맛이 간 꼰대 대통령의 원맨쇼’ 정도로 대한다. 반(反)트럼프·반미(反美)도 좋지만, 싫다고 해서 상대를 눈 아래로 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재집권과 함께 시행된 111개의 행정명령은 트럼프 혼자의 기분에 따라 내뱉은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여론조사에 기초한 전방위 정책 전문가, 심지어 세계 최고 부자이기까지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겸 정부효율부 장관의 지략과 AI 정보에 기초해서 나온 것들이다.
미중 관세 전쟁
하지만 한국은 트럼프 2.0의 플레이어(player)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트럼프 정책으로 인해 재앙적 국난(國難)에 처할 수도 있는 일방적 수용자 내지 변방 국가에 불과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니 ‘한류(韓流)로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100년 전과 다르다’고 큰소리칠 때가 아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그토록 믿었던 한미동맹마저 흔들리는 살벌한 상황이다. 자기 살기도 바쁜 중국이 한국의 미래 대안(代案)이 될 수도 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일단 자유세계 안에서의 생존법부터 고민해야 할 때다.
트럼프 2.0 쓰나미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해방의 날‘이라 말한 그날을 미국 이외의 나라 대부분은 대재앙의 출발점으로 해석한다. 바로 4월 2일 발표된 관세 폭탄이다. 자동차·알루미늄에 대한 일반관세에 이어, 보복 차원의 상호관세가 시행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한국 경제의 운명을 가름할 직격탄이 되고 있다. 한국은 외국과의 거래로 먹고사는 무역 국가다. 자원도 없고, 좁은 국토에 인구는 5500만 명이나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70% 정도가 무역을 통해 창출된다. 특히 수출이 GDP의 48.3%(2022년)에 달하는, 전 세계 상위 무역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은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입 다 합쳐 GDP의 30% 정도에 그친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적(敵)’ 중국은 어떨까? 트럼프는 중국에 연거푸 상호관세를 때렸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존의 20% 관세를 포함해, 1차로 34%, 2차로 50% 상호 관세를 퍼붓더니, 4월 12일 현재 도합 145%의 관세가 중국에 적용되었다. 중국도 이에 맞서 잇달아 보복관세로 맞불을 놔 대미(對美) 관세를 125%까지 올렸다. 치킨게임이 될 수도 있지만, 당장 한 달 뒤, 아니 1주일 뒤 미중 사이 관세가 얼마나 될지 오리무중이다.
중국의 무역 비중은 GDP 대비 32% 정도로 미국보다 조금 높다. 그러나 중국은 GDP 대비 수출이 17%로 수입의 15%보다 높다(2022년). 수출로 돈을 벌어 그걸로 재투자하고 고용도 늘리면서 경제를 꾸려 나간다. 이번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로 수출길이 어려워지면서 관련 업계 대량 실업이 이어질 것이다. GDP의 30%대인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데 이어 GDP 17%대인 수출도 어려워지면 중국의 곤란은 가속화할 것이다.
‘글로벌 쇄국’ 元年
한국 신문·방송은 미국 경제에 관한 우려, 불안, 나아가 저주로 채워져 있다. 이는 미국 리버럴 미디어의 반(反)트럼프 캠페인에 동조하는 것일 뿐, 최종 결과는 아직 모른다.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석유시장도 내리막이지만, 트럼프는 ‘경기 후퇴(recession)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해 왔다. 미국도 관세 정책에 따른 손실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코피가 터지더라도 싸우겠다는 결의인 셈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강조해 왔지만, 미국은 수출 대국, 무역 대국이 아니라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투자 패권국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의 60% 정도가 미국에 몰려 있다. 중국의 주식 시가(時價)총액은 전 세계 10% 정도에 그친다. 미국은 노동 집약형 제조업 자체가 드물고, 외국에 수출할 만한 물건도 그리 많지 않다. 에너지·농산물·지하자원·비행기·무기 정도가 주된 수출품일 뿐 백화점 내 일상 생활용품은 전부 수입한다. 그 결과 2024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1조 2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약 3000억 달러가 중국, 556억 달러가 한국을 통한 적자다.
2025년 4월은 21세기 버전 ‘글로벌 쇄국(鎖國) 원년(元年)’이 될 듯하다. 글로벌 시대의 종언(終焉)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후 굳어진 자유무역 정책의 전면 붕괴다. 보호무역 정도가 아니라 ‘반(反)무역’으로 부를 만한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했다.
주목할 부분은 전 세계가 반대하는데도 시행되고 있는 ‘트럼프 파워’의 원동력이다. 워싱턴발(發) 관세 폭탄을 좋아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 있게 발표, 시행한다. 신문·방송을 봐도 트럼프 2.0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거의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물론 주변 참모들도 마치 신흥종교 신자들처럼 확신을 갖고 일심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트럼프 파워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미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요구하는 미국 국민들의 지지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략 반트럼프 55%, 친(親)트럼프가 45% 정도로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반트럼프 정서가 많다. 그러나 친트럼프 45%는 강력하고도 일관된 지지자들로 이뤄져 있다. 트럼프 2.0은 공화당 내 트럼프 지지자 90%를 권력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보수(保守) 지지자라고 해서 보수 정권을 전면 지지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것이 많다 보면 오히려 비판으로 흐를 가능성도 높다.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동지나 친척이다. 미국은 반대다. 현재 미국은 공화당 지지자 10명 중 9명이 트럼프에게 환호하고 있다. 트럼프 파워의 최대 기반인 이들의 압도적 지지 때문에 공화당의 상하 양원 의원들도 트럼프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세다. 트럼프의 승인 없이는 공화당 정치인으로 나설 수도 없다. 트럼프를 비난한다는 것은 공화당의 90%를 점하는 트럼프 지지자 전부를 배척한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이들 열혈 지지자들의 박수 덕분에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다. 이미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내놓은 수많은 공약을 재빨리 그리고 조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미디어는 트럼프를 미국 전체가 아닌 공화당 지지자만을 챙기는 정치가라고 비난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자기편에게 먼저 손을 뻗치는 것은 당연하다. 역대 대통령들을 봐도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당파를 넘는 정치가를 향해 나가지만 집권 초기에는 예외 없이 지지자 중심 정책을 폈다. ‘파당(派黨) 정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대통령’이라 평가할 수 있다. 반대자들은 트럼프를 ‘포퓰리즘 정치가’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자가 보면 자신들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지지자의 뿌리는 ‘티파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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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9월 12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납세자 행진’은 티파티 운동(TPM)의 출발을 알렸다. 사진=퍼블릭도메인 |
필자가 21세기 미국 정치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들은 16년 전 등장한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이하 TPM)’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2025년 트럼프 2.0 지지층의 원천이자 배경인 TPM은 어떤 정치운동일까? 구체적으로 트럼프와 TPM은 어떻게 연결됐을까? 어떤 과정을 통해 TPM이 트럼프 2.0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미국 현장에서 지켜본 TPM 발전사라고 할까, 먼저 주목할 부분은 트럼프 정치와 TPM 탄생이 갖는 공시성(共時性·synchronicity)이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둘은 거의 비슷한 시기 미국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트럼프가 첫 번째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2015년 6월 16일이었다. 그러나 미국 미디어는 이미 2010년 들어서부터 트럼프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TPM은 이런 예측이 나오기 직전인 2009년부터 시작됐다.
계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단행한 ‘미국부흥·재투자법(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of 2009)’이다. 약 8000억 달러의 공적(公的) 자금을 풀어 실업을 구제하고 경기를 진작하려는, 케인스 경제학에 기초한 부양책이다. 정부 돈을 마구 풀면서, 방만한 재정 정책에 대한 반발이 미국 전역에 불어닥쳤다.
도시 밖 보수층의 거리 투쟁
흥미롭게도 리버럴 성향이 강한 CNBC의 경제 전문가 릭 산텔리(Rick Santelli)가 오바마 경제 정책을 비난하면서 ‘현대판 TPM으로 맞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래 티파티 운동의 선구자들은 18세기 중엽 영국의 차세(茶税) 부과에 반대하며 궐기해 미국 독립운동의 선두가 되었던 이들이었다. 산텔리는 ‘현대판 TPM’이 오바마와 민주당의 ‘퍼주기 예산’을 막을 유일한 무기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 퍼주기 예산 수혜의 대부분은 도시에 집중된다. 정치적으로 ‘표’가 되는 곳은 시골이 아니라 인구가 밀집한 도시다. 시골은 생색용 이벤트 몇 개에 그칠 뿐, 큰돈과 대형 프로젝트는 도시로 집중된다. 오바마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가던 중, 퍼주기 예산이 불거지자 도시 밖 미국인들이 폭발했다. 원래는 커뮤니티 차원의 불만이던 것이 곧바로 하나로 뭉쳐 워싱턴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정치사에 등장한 새로운 기록이지만, 새로운 TPM은 혁명적 발상을 하나 제공했다. ‘도시 밖 보수층의 거리 투쟁’이란 점이다. 거리 투쟁은 원래 민주당 중심 청년정치의 대명사다. 투쟁 공간도 도시 한복판이 주무대다. 안정과 전통을 중시하는 공화당은 정반대다. 거리 투쟁 자체를 터부시하고, 정책이나 선거만으로 심판하려 한다. TPM은 다르다. 거리 투쟁에 적극 나서고, 반대 정치가나 입법에 대한 아날로그 공격도 일상화했다. 참가자는 중년 이상 세대로, 원래 교회나 커뮤니티에서 논의하던 얘기를 거리로 몰고가 전국적 이슈로 만들었다. 자체 디지털 네트워크를 조성해 미국 전역을 하나로 통일한 뒤 대규모 장외투쟁으로 나아갔다. 민주당 독점이던 대규모 장외투쟁을 보수층에게 적용한 최고 일등공신이 바로 TPM이다. 장소는 워싱턴이다.
‘정신 나간 사람들의 모임’
2010년, TPM은 중간선거를 통한 오바마 심판을 장외투쟁 테마로 잡았다. 트럼프는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타도 오바마!’를 외치는 구원투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 무렵 필자는 국내 언론에 워싱턴발 TPM 기사를 수차례 기고했다. TPM의 출발부터 성장 과정, 나아가 미국 정치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과정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물론 동양인 대부분은 워싱턴, 뉴욕, 캘리포니아 같은 대도시·다인종 지역에 익숙하다. 워싱턴에 몰려든 TPM 참가자들은 평소 필자가 알고 있던 미국인과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일단 대부분이 백인이다. 편견일 수 있지만 대형 오토바이를 함께 탄 부부나 그룹이 많고, 대부분 비만지수 30은 가볍게 넘어갈 체형들이다. 2010년 여름 내내 워싱턴 전역이 TPM 참가자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TPM 참가자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일단 성조기가 상징물이다. 타고 있는 오토바이나 자동차, 옷이나 모자 어딘가에 장식돼 있다. 청바지나 군복 차림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도 많다. 여성의 경우 긴 부츠를 신고 팔이나 가슴에 문신을 하고 있다.
당시 미국 리버럴 미디어 대부분은 TPM을 ‘시골 출신 저학력 백인 지상주의’로 몰아세우면서 흠집 내기에 혈안이었다. 워싱턴에서 거의 매일 열리는 TPM 집회도 구석의 작은 뉴스로 처리하고, TV는 ‘정신 나간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비하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참가자 숫자에 관한 리버럴 미디어의 자세는 도를 넘어설 정도로 편향적이었다. 예를 들어 2010년 8월 28일 열린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TPM 집회 참가자를 리버럴 대명사 MSNBC는 10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당시 TPM 워싱턴 대회를 사실상 생중계한 폭스뉴스(Fox News)는 65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집회장에 나가 본 필자가 보기에는 대략 50만 명 정도가 참가한 것으로 보였다. 과장한 폭스뉴스도 문제지만, 50만 명을 10만 명으로 왕창 줄여 ‘정신 나간 백인 지상주의 촌놈들 폭동’으로 묘사한 MSNBC는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터넷·SNS 커뮤니티부터 구축
2025년 1/4분기 저녁 프라임타임 기준으로 평균 시청자 수는 폭스뉴스가 300만 명, MSNBC는 100만 명, CNN은 58만 명으로 나타났다. 리버럴 미디어의 자충수(自充手)지만, 시민운동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엘리티즘과 오바마 스타일의 ‘우리 모두 함께’ 이념의 호위무사임을 자임한 것이다. 그래서 TPM은 리버럴 미디어를 공공 차원에서 불신, 배척했다.
근래 유행어로 떠오른 ‘필터 버블(filter bubble)’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란 용어가 있다. 필터 버블은 주로 디지털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정보 확산을 의미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와 논조만 대하면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정보 확산에 동참하는 행위를 말한다. 에코 체임버는 특정 생각과 의견만을 수용하는 ‘정보 취득 환경’에 관련된 말이다. 자기와 같은 생각만을 가진 사람, 미디어, 정보망을 구축해 살아가고, 다른 생각은 아예 우주 밖으로 몰아낸다. 필터 버블과 에코 체임버는 2025년 미국 사회,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 정착되고 있는 미디어 상황이자 환경이다.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은 MSNBC나 CNN을 보지도 믿지도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분위기는 TPM이 시작된 2010년부터 이미 나타났다. 한국인이 신뢰하는 신문 《뉴욕타임스》도 대도시 리버럴들의 이념 분출의 장(場)일 뿐, 도시 밖 보통 시민들과 무관한 미디어로 변한 지 오래다.
2010년 취재 당시 필자가 확인했지만, TPM은 기존 미디어의 편파성을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로 막아 내자는 열기로 들끓었다. 일단 인터넷 메일과 SNS를 통한 커뮤니티 구축(構築)이 선행(先行)했다. 인터넷 디지털 세계는 원래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시골이 아닌 도시를 기반으로 한 공간이었다. 17년 전, 민주당은 2008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자체 지지자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성공했다. 오바마 열기를 활용한 수많은 민주당 지지 네트워크가 전국 방방곡곡 개설되었다.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에 한참 뒤졌다. TPM은 그 같은 열세를 불과 몇 년 만에 극복하고 한순간에 디지털 네크워크 구축에 성공했다. 타운미팅과 같은 커뮤니티 중심 정치활동만이 아닌,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정치가 TPM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TPM과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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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 운동을 벌이는 사우스웨스트버지니아 티파티 운동 회원들. 사진=AP/뉴시스 |
흥미롭게도 TPM은 원래 트럼프를 같은 편으로 보지 않았다. 뉴욕 출신 부동산왕으로, 시골에 기반을 둔 TPM과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인물이 트럼프였다. 원래 TPM은 2010년 켄터키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랜드 폴(Rand Paul)을 간판 스타로 내세웠다. 켄터키는 미국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랜드 폴은 도시 밖 보수 지향적 시민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아날로그형 정치가지만,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주로 남부 지역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TPM은 랜드 폴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당시 이미 대세로 굳어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결과론으로는 트럼프 지지지만, 과정을 돌아보면 의견 완전 일치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보면 TPM의 정치 이념과 트럼프의 생각은 아주 잘 통한다.
‘나를 밟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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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밟지 마라’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색 깃발은 티파티 운동의 상징이다. |
1. 더 이상 세금은 없다(Taxed Enough Already),
2. 원래 미국 본연으로 돌아가자(Take America Back),
3. 국민이 주인공이다(We the People),
4. 헌법을 수호하자 (Defend the Consti-tution).
TPM은 ‘작은 정부’를 중심으로 하면서 방만한 정부 운영을 멈추고 세금도 적게 부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외국으로 나가기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한 것과 같이 국내를 무대로 한 헌법 중심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도 핵심이다.
당시 TPM은 방울뱀을 그린 노란색 깃발에 ‘나를 밟지 마라(Don’t Tread on Me)’라는 정치 슬로건을 써넣었다. 이 깃발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분노를 상징하는 TPM의 상징이 된다. 방울뱀을 밟으면 치명적인 독(毒)으로 반격해 상대를 죽이겠다는 경고이자 절규였다.
TPM은 랜드 폴의 추락과 2016년 트럼프 등장으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에서 벗어나 정책통으로 변신했다. 15년이 흐른 지금도 TPM의 정치 이념과 트럼프 2.0 간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정부 기구 축소, 연방정부 공무원 대량 해고, 관세 폭탄을 활용한 대규모 감세, DEI[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 Inclusion(포용)]보다 자유에 기초한 미국 건국 이념 충실, 미국인과 미국을 전면에 내세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마가(MAGA)… 이 모든 정책이 TPM의 이념 그 자체다. 당연한 일이지만 트럼프 2.0은 TPM 관계자들을 최고 브레인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너무 많아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국무장관에 오른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출신 마코 루비오는 TPM의 간판 중 한 명이다.
태극기운동, TPM과 흡사
12·3 계엄 쇼크 이후 벌어진 한국 보수 진영의 거리 투쟁, 다시 말해 ‘태극기부대 집회’(이하 태극기운동)에서 15년 전 워싱턴 TPM의 레거시(legacy)를 발견할 수 있다. 유사점이 무척 많다. 대략 5개의 공통분모가 눈에 띈다.
1. 중년 세대 중심의 대규모 거리 투쟁 본격화,
2. 복음주의(Evangelical) 교회를 중심으로 한 TPM과 한국 기독교 교회의 정치 전면화,
3. 기존 미디어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보수층 미디어 출현,
4. 자체 내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결집력과 신속한 동원력 확보,
5. 정치 원칙을 성조기와 태극기에 두는 보수 운동.
물론 각론(各論)으로 들어가면 차이점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2025년 태극기부대=2010년 TPM’으로 보인다. 아직 조직력과 확산력이란 측면에서 TPM보다 떨어지지만, 방향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기존 미디어가 ‘꼰대들의 정치 가라오케 현장’으로 몰아세우면서 비하하는 것도 너무도 닮았다. ‘미국 시골 무식꾼 백인=한국 꼰대 태극기운동’으로 보면 된다.
한국 미디어가 태극기운동 참가자 수를 왕창 줄이고 좌파 집회를 크게 부풀려 보도하는 것도 닮았다. AI와 드론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참가자 수를 한자릿수까지 집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존 미디어는 그 같은 가장 기초적인 통계조차 숨기거나 무시한다. 태극기운동 관련 사진을 보면 전체를 비추는 조감(鳥瞰) 앵글이 극히 드물다.
‘보수 집회=음모론 무대’로 몰아가는 미디어의 편견도 똑같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직전, ‘계엄시 1만 명 학살 계획’이란 살벌한 뉴스 하나가 흘러나왔다. 야당 대표가 언급한 폭탄 발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근거도 증거도 없는 ‘카더라’ 정보에 불과하다. 그러나 ‘1만 명 학살’ 발언을 음모론이라 말한 미디어는 극히 드물었다. 반면 태극기운동의 경우 사소한 내용 하나만으로도 음모론자로 몰아 난도질을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기본적인 의문조차도 음모론으로 공격해 아예 입을 다물게 만든다. TPM이 그러했듯이 기존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태극기운동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15년 전 TPM과 트럼프 등장, 나아가 2025년 트럼프 2.0을 보면서 태극기운동의 ‘가능성’에 주목할 뿐이다. TPM은 2010년 본격 활동에 들어간 지 6년 만에 트럼프 1.0을 만들고, 다시 8년 만에 트럼프 2.0을 재탄생시켰다. ‘멍청한 시골 출신 백인 무식꾼’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TPM이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탄생의 배경이 된 TPM처럼 태극기운동이 미래의 ‘한국 지도자’를 만들어 낼 범(汎)국민 운동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미국 2030 세대는 트럼프 2.0의 강력한 지지 기반 중 하나다. 한국 기존 미디어가 보면 ‘청년 꼰대’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유년기 당시 TPM을 보면서 자란 세대다. 2025년 한국도 2030 세대의 보수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은 태극기운동에 참가하고 시위 현장에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보기에 따라 TPM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세대를 넘어선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이 태극기운동이다.
계엄 쇼크 이후 본격화된 태극기운동이 어떤 방식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대들보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한때의 움직임으로 사그라들고 말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태극기운동이 ‘맛이 간 꼰대 꼴통’이나 음모론자가 아닌, 한국 민주주의를 지킬 최후의 방어벽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쪽이다.
태극기운동, ‘민주주의의 방어벽’ 될 수도
오해하기 쉬운데, 민주주의는 소위 ‘깬 리버럴 시민(깨시민)’이나 거창한 무용담으로 장식된 민주 투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촌놈에 무식꾼이든 얼치기 꼰대든, 음모론에 휘둘리는 루저(loser)라 비난받든 상관없다. 민주주의는 만인의 평등과 자유를 통해 창조될 꽃이자 열매다. 보수냐 진보냐 이전에 ‘태극기운동=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점은 분명하다. TPM 레거시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정신(時代精神·Zeitgeist)’에 가장 어울리는 정치활동이 태극기운동이다.
트럼프 2.0의 쓰나미가 거세질수록 반미·반일(反日)·친중(親中) 분위기가 팽배해질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그 같은 국난과 재앙을 통해 한층 강해질 수도, 거꾸로 왕창 추락할 수도 있다.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나선 태극기운동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