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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트럼프의 재등장과 지정학적 리스크

한국, 당장 트럼프와의 거래 강구해야 산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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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트럼프 당선 이후’를 대비한 ‘모시 도라’ 논의 활발
⊙ 트럼프는 ‘거래의 달인’… 수용할 만한 조건 먼저 제시하면서 타협점 찾아야
⊙ 직접 만나본 트럼프는 섬세하고도 정확하며 따뜻한 매력적인 캐릭터
⊙ 미국·유럽에서 ‘트럼프 정치’와 ‘PC주의 퇴조’는 앞으로 20년간 계속될 것
⊙ 중국의 추락은 미국이 중국을 버렸기 때문… 중국에 대한 미련은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높이는 최대 요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2월 24일 동아시아, 아니 세계의 미래를 가늠할 ‘게임 체인저’ 하나가 등장한다. 일본 구마모토(熊本) TSMC 공장 개소식이다. TSMC가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완공에 들어갔다. 1년 8개월간의 벼락 공정(工程)이었다. 올해 10월부터 반도체 양산(量産)체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2027년으로 예정된 홋카이도(北海道) TSMC 공장도 당초 계획보다 ‘훨씬’ 일찍 문을 열 예정이다.
 
  5G, 6G 시대답게 모든 것이 초(超)스피드다. 테슬라 신화(神話) 중 하나는 ‘1년 내 신모델 출시’다. 기존의 자동차 업계 상식은 ‘최고속 신모델=최소한 2년 소요’였다. 테슬라의 제작 방식은 벨트 라인을 통한 포드 시스템이 아니라, 통으로 된 차체에다 배터리를 끼워 넣는 원스톱 제작 방식이다. 사람이나 라인도 필요 없고, 구상과 함께 곧바로 신모델이 제작되는 시대다.
 
  구마모토 TSMC도 최첨단 반도체 생산만이 아니라, 혁명적인 제조공정의 현장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대만과 일본이 하나로 합쳐진 이상,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최고 반도체가 구마모토 TSMC에서 탄생할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반도체특별법을 제정, 제2의 IT 부흥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시장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예전과 다르다. 심하게 말하자면 무관심 상태다. 한때 1년 영업이익 500억 달러로, 한국 국민총소득(GNI)의 3할대까지 갔던 삼성 반도체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거의 빈사(瀕死) 상태다. 영업이익도 수직 추락이고, 업종별 적자(赤字)에, 재고도 쌓이고 있다.
 
 
  구마모토 TSMC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산물
 
  일본은 한국과 정반대다. 넓은 바다로의 대항해를 위한, 크고 빠르며 정확한 선박 건조에 총력 매진이다. 정부의 발 빠른 판단과 지원금 보조, 공장 부지와 관련된 지방정부와의 협력, 산학(産學)연계를 통한 전문 인력 확보, 착공 20개월 만의 공장 완공….
 
  한국은 물론 미국이나 전 세계 어떤 나라도 구마모토 TSMC를 따라가기 어렵다. 1나노, 10나노 개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기술적 환경만이 아니라, 문제 인식과 해결 자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결과지만, 한국의 삼성조차 무려 1000억원을 투자해 ‘한국이 아닌 일본’에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는 실정이다. 추정컨대, 한국 대학생들의 일본 TSMC 취업도 곧 나타날 것이다.
 
  구마모토 TSMC는 경제나 기술만이 아닌, 외교·안보·군사를 아우르는 21세기 글로벌 현실의 총결산물이다. 최근 신문·방송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에서 벗어난 최고의 선택이 바로 구마모토 TSMC다.
 

  ‘지정학적 리스크’란 말은 뭔가 비밀스럽고 복잡한 용어로 느껴진다. 실제는 너무도 간단하다. ‘경제 폭망과 전쟁 가능성’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TSMC의 일본 유치는 미중(美中) 디커플링 시대의 상징이기도 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부산물이다.
 
  최근 미일은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자신들의 가상적(假想敵)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분명히 선포했다. 한국이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중 유럽과 호주도 남중국해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면 중국은 ‘서방 모두의 가상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중국은 현재 주변국 대부분과 무력(武力) 또는 준(準)무력 충돌 상태에 직면해 있다. 영토·영해·영공 문제와 관련해, 인도·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대만·일본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공망(防空網) 침범 도발을 통해 이미 시작됐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美, 대만 ‘영토’ 아니라 ‘해협’에 개입
 
  2024년 현재,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높은 곳은 대만이다. 가해자는 중국이다. 중국의 경제가 악화될수록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국민적 불만을 분산시키기 위해 대만 침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어떨까? 대만과 역(逆)함수관계에 있다. 대만이 제2의 홍콩으로 나아갈수록,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한층 더 돋보이게 된다. 중국과 충돌 중인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를 고려할 때, 일본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만과 비교할 경우, 일본은 120% 안전하다.
 
  왜 두 나라는 역함수관계에 있을까. 동맹이 답이다. 일본은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서로가 자동적으로 개입해서 도와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일본 열도나 미국 영토만이 아닌 전 세계 모든 땅, 바다, 하늘, 나아가 우주조차도 미일동맹의 범주다.
 
  대만은 이 같은 동맹이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만 지원을 세 번이나 공언했지만, 대만 영토가 아니라 ‘대만해협’에 대한 미군 개입일 뿐이다. 중국 침공 시, 미군이 대만 영토에 직접 투입될 가능성은 ‘아직’ 없다. ‘민주주의 모델이자 보고(寶庫)’라고 대만을 치켜세우지만,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제한적일 것이다.
 
  TSMC 일본 공장은 양적·질적으로 한층 더 확장·진화될 것이다. 대만 첨단산업 생태계의 최고봉은 TSMC다. 일단 TSMC가 일본으로 향한 이상, 대만 내 핵심 반도체 업체들도 뒤를 따를 것이다. 대만인은 물론 중국인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국가나 민족에 우선하는 것이 돈이다. 명분으로서의 국가와 민족은 있다. 그러나 해외 거주 화교(華僑)가 그러하듯, 중국인들은 자신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고향이나 국가도 간단히 잊어버리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시진핑의 대만에 대한 협박이 거세질수록, 반도체만이 아니라 대만 주요 산업들의 일본행이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행도 있겠지만, 전 세계에서 1년 8개월 만에 초대형 첨단공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 즉 일본이 우선시될 것이다.
 
 
  ‘소련화’되어가는 중국 경제
 
  지정학적 리스크란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일본과 대만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나라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긴 하지만, 미일동맹에 비하면 한참 약하다.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군사관계다. 미일동맹은 전 세계를 염두에 둔 총체적 글로벌 차원의 관계다.
 
  북한의 핵(核) 위협은 한국의 가장 큰 지정학적 리스크다. 그러나 최근 급등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북한보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미 부분적으로 중국 경제권에 들어간 한국 경제가 문제다. 북한이 상수(常數)인 데 반해, 중국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변수(變數)로서 작용해왔다. 중국 경제가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한국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 현실도 문제지만, 한층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다. 2024년 2월 현재 ‘중국은 미국에 필적 가능한 G2’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중국 전기자동차(EV)가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산 희소자원(희토류)이 미국 경제를 마비시킬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 일본 내에서는 ‘일본화(化)’가 아니라 ‘소비에트화(소련화)’가 시진핑 경제의 현실이자 미래라 본다. ‘일본화’란 지난 30년간 일본 경제가 보여준 부동산 경기 침체, 소비 격감, 디플레이션 심화 현상을 말한다. 한때 중국 경제가 이런 ‘일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상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경제는 당(黨)과 이념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라는 ‘소비에트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자 미래라는 생각이 일본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경제 소비에트화의 특징은 민간이 아니라 국영기업의 규모와 비율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중국 100대 기업 주식의 시가총액을 살펴본 결과, 국영기업 비율이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2021년 60%대에 달했던 민간기업 시가총액 규모는 40%대로 내려앉았다. 불과 2년 만에 민간기업 급추락과 국영기업 급상승이 나타났다. 바로 경제 소비에트화의 전형적인 현황이다. 경제 소비에트화는 1991년 구(舊)소련이 그러했듯이, 체제 종언과 국가 해체로 이어진다.
 
 
  주식 시장이 말해주는 것
 
지난 1년간 미국, 일본, 한국, 홍콩의 증시 현황. 미국 증시는 2.5할 정도가 올랐고, 일본 증시는 3할이 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중국 증시는 3할 가량이 추락했고, 한국은 제자리걸음만 했다.
  한국은 1992년 한중(韓中)수교 이래 ‘중국 불패(不敗)’ 신화를 믿고 실천한 최고의 경제 파트너였다. 그러나 미중 디커플링과 함께 중국 추락이 시작되었다. 전제독재국가의 특징은 세우기도 빠르고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중국 추락을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미중 디커플링이 시작될 당시 한국 언론 대부분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패배’를 전망했다. 독재체제하의 일사불란한 중국 경제가, ‘황혼 대국’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해가 2030년, 2035년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제시됐다.
 
  쇄국(鎖國)은 영토나 정보 차단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달콤한 얘기만을 받아들일 경우 치유 불가의 쇄국으로 갈 수 있다. 쇄국 정서는 신앙이자 종교에 가깝다. ‘우리끼리’ 심리나, ‘지상낙원’ 북한의 세계관, 나아가 최근의 ‘K-자화자찬’ 분위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중국을 대하는 한국의 생각은 경제적 차원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는 최대 요인이다. 미국·일본처럼 완전히 발을 빼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다. 미련이자 환상일 뿐이다. 시대정신을 읽기는커녕, 시대착오나 시대망각에 빠지면서 스스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 한국 경제에 대한 세계의 무관심이다. 2월 6일 기준으로, 한·중·일 주식 시장을 비교해 보자. 1년 전 2023년 2월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은 3할 정도 올랐다. 이에 반해 중국은 3할 추락이다. 한국은 1년 전이나 다를 바 없이 똑같다.
 
  미국 주식이 2.5할 오른 이상, 자유시장체제하의 한국도 어느 정도 상승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급등한 일본·미국과 달리 한국 주식 시장은 1년 전 그대로다. 자유시장권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심리적으로 중국에 연동된 절름발이 경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결국 한국에 대한 투자도 줄고, 첨단산업의 국내 유치는커녕, 한국이 자랑하던 첨단산업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대만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모시 도라’
 
  필자는 2월 초 이후 일본에서 머물고 있다. ‘모시 도라(もしとら)’라는 신종 유행어가 곳곳에서 들린다. 올초부터 일본 언론에 등장한 새로운 시사용어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もしトランプが大統領になったら)’이란 말의 압축판이다. ‘모시’는 만약, ‘도라’는 트럼프의 일본어 발음 ‘도란푸(トランプ)’를 의미한다. 일본어 ‘도라’는 ‘호랑이(虎)’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모시 도라’는 ‘호랑이 같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시 도라’는 트럼프가 당선될지 여부에 관한 물음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가 당선되면 나타날 변화가 주된 관심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됐지만, 일본 곳곳에서 ‘모시 도라’를 둘러싼 추측이나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경제·외교·군사, 심지어 문화적 차원의 ‘모시 도라’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당연하지만 과거는 물론 현재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이 재조명,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선거유세 현장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트럼프는 지금 대통령 당선 시 ‘곧바로’ 시행할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미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중국 제품 관세 60% 이상 부과와 같은 정책들이 좋은 본보기다. 유럽에 대한 정책 변화로는 나토(NATO) 탈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트럼프는 2월 초, 일본제철의 US스틸(US Steel) 인수 문제에 관한 자신의 정책도 제시했다. 현재 미일 최대 경제 현안으로, 무려 141억 달러가 소요되는 초대형 인수 프로젝트다. 그러나 트럼프는 취임 즉시 이를 대통령령(令)으로 중단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일본제철이 경영주가 될 경우 대규모 인원 삭감이 이뤄질 전망이기 때문에 해고에 반대하는 노조를 고려한 정책인 셈이다. US스틸의 경영 상태는 자체적인 정상화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일본 경영진을 통해 기업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려 했지만, 노조가 철밥통을 고수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은?
 
  2월 들어 일본 언론 대부분은 경제 영역이 ‘모시 도라’의 최대 격전장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의 일본관이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디커플링의 영역이 미중에 이어 미일 사이에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모시 도라’를 전제로 한 일본의 미래 전망은, 국방비 분담과 미일동맹의 방향, 미중 디커플링 체제의 변화, 대만 유사시의 미국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모시 도라’의 기반이 되는 미국 내 공기에 관한 일본 내 분석이다. 과거 항상 따라다니던, ‘트럼프 지지층=중하층·저학력·시골 출신 백인’으로 규정하던 식의 논조는 사라졌다. 트럼프를 ‘맛이 간 백인지상주의 촌놈’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쳐 지지를 받고 있는 대중 정치가’로 보고 있다.
 
  ‘모시 도라’를 한국과 연결시킬 경우 어떤 현실이 나타날까? 일본과 거의 비슷하겠지만, 강도나 영향은 한층 강할 전망이다. 주한미군 철수, 북핵 인정, 동맹 분담금,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문제가 떠오른다. 트럼프가 단행할지도 모를 중국·일본에 대한 급진적 정책을 통한, ‘닉슨 쇼크’ 식의 쓰나미도 밀려들 수 있다.
 
  핵심은 안보다. 한국 일부에서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빅 딜’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아예 제외된 채, 미국의 이익과 안전에 기초한 일방적 통보만이 내려질 것이란 식의 분석도 많다. 동맹 분담금 증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군 철수와 같은 보복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라는 인물
 
  이 같은 가능성을 점치기 전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다. 트럼프는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듣기 좋고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애매한 정치적 수사(修辭)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직설적이고 원초적이며 공격적이다.
 
  이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낸 이미지겠지만, 도시를 기반으로 한 미국 미디어는 트럼프를 성(性)범죄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악마시한다. 한국 언론은 이 같은 미국의 분위기를 한층 확대해 전달하면서, 트럼프를 깔보기 일쑤다.
 
  필자는 트럼프를 위대한 지도자로도, 인종차별을 일삼는 악마 같은 정치인으로도 보지 않는다. 언행과 표현 방법이 다를 뿐, 다른 정치인들과 50보 100보 다를 바 없는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리버럴 미디어가 말하는 식의 ‘맛이 간 트럼프’로 내려다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2008년 트럼프와 만난 적이 있다. 뉴욕 한복판 포시즌스호텔 레스토랑에 약속 때문에 들렀다가 식사 중이던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당시 필자의 상사(上司)였던 딕 모리스(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선거 전략가이자 작가-편집자 주)는 트럼프의 어릴 때 친구였다. 딕 모리스의 소개로 악수를 나누고 선 채로 5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지만, 책 100권, 비디오 10개 보는 것보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1분이 10배 100배 정확하고 오래간다.
 
  트럼프는 손이 크고 몸집도 엄청난 인물이었지만, 섬세하고도 정확하며 따뜻한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는 당시 이미 세계적인 셀러브리티(Celebrity)였다. 하지만 그는 동양인인 필자에게 ‘서(Sir)’라는 경칭을 붙이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필자는 워싱턴에서의 파티에 자주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미국 셀러브리티들에게 동양인은 관심 밖이다. 필자가 만나본 트럼프는 인종차별이나 성폭력과는 거리가 먼, 그 누구라도 단 1분 만에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거래의 달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9년 5월 26일 일본을 방문한 트럼트 미 대통령과 골프를 쳤다. 두 사람은 ‘브로맨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 사진=AP/뉴시스
  이에 대해 “히틀러도 바그너 음악과 고전 미술에 감동한 인물이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트럼프만이 가진 특징이자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딜(deal·거래)이다.
 
  트럼프는 부동산 비즈니스로 성공한 인물이다. 부동산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비즈니스다. ‘트럼프’란 이름 하나로 건설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건물을 일반인에게 비싸게 판매한다. 나쁘게 얘기하면 봉이 김선달과 비슷하다. 온갖 유형의 크고 작은 딜이 비밀리에 횡행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게 트럼프는 대부분의 딜을 성공시키면서 부동산왕(王)에다 셀러브리티로 떴다. 1987년 그가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렇게 살아온 트럼프에게는 정치도 딜이며 외국과의 모든 관계도 딜이다. 딜의 기본이지만, 숫자에 근거해 조건이 맞으면 곧바로 거래에 들어간다. 반대로 숫자가 마음에 안 들거나 틀릴 경우 차갑게 돌아선다. 2018년 6월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미사여구로 채워진 정치가가 아닌, 조건에 기초한 딜의 전문가가 보면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한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 방안은 ‘딜의 달인’이 수용할 만한 최고·최적의 조건과 환경을 제시하는 것이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면서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내는 식이다.
 
  트럼프가 수용할 만한 딜의 구체적인 내용은 돈이 될 수도 정치적 차원의 말 잔치가 될 수도 있다. 뉴욕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비즈니스맨답게,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면서 조금씩 깎아주는 식의 전술도 펼 것이다. 수동적으로 기다릴 경우 가격만 올라갈 것이다. 한국에서는 딜을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강자가 작정을 하고 달려들 경우 피할 여력도 틈도 없다.
 
  필자가 보기에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이 같은 관점에서 트럼프를 상대한 인물이었다. 트럼프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딜의 내용을 미리 살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꺼내 협상카드로 재활용한 인물이 아베였다.
 
 
  ‘미국 예외론’
 
2023년 7월 23일 로마에서 열린 국제개발이주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 총리는 난민 문제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현실론적 국제정치의 기본으로, ‘미국 예외론(American exceptio nalism)’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은 특별하기 때문에, 세계 다른 나라들과 달리 특별하고도 예외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금수저 논리’다. 아마 한국은 물론 미국 외의 전 세계가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미국 예외론은 통한다. 미국은 미국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미국은 중국·유럽·아시아와의 관계를 끊어도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 인구·국토·자원 그리고 프런티어 정신을 갖춘, 아직 젊은 나라가 미국이다.
 
  특히 에너지에 관한 독자적 수급 능력이 독보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를 보면, ‘에너지=국력’이다. 중국·유럽·일본·한국 등 그 어떤 나라도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극단적인 고립주의 노선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끄떡없이 생존해나갈 수 있다. 물론 미국도 그렇게 되면 불편하고, 가격도 올라가고, 서비스도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쟁·기아·자멸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예외론’의 핵심이다.
 
  ‘모시 도라’와 ‘미국 예외론’이 점점 확연해지고 있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준비와 세계관이 필요할까?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미국에서는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트럼프 2.0’ ‘트럼프 3.0’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트럼프를 만들어낸 주체는 미국 국민이다. 지도자는 국민의 얼굴이다. 지금 당장 트럼프가 사라진다고 해서 ‘트럼프 정치(Trumpism)’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와 달리, 품격 있고, 언어 선택도 세련되며, 부드럽고 향기로운 인성(人性)의 ‘트럼프 2.0’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젊은 여성이나 흑인이 업그레이드된 트럼프 2.0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는 18세 이하 미성년 난민의 강제송환을 입법화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중동에서 난민들이 몰려들어도, 미성년자는 강제송환에서 제외됐다. 부모는 송환되어도 미성년 자식들은 이탈리아에 남아 공부도 할 수 있었다. 5세, 10세 어린이도 추방 대상이 되면서 인권단체 주도하의 데모가 곳곳에서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난민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인내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박애를 내세운 가톨릭 국가지만, 몰려오는 수만, 수십만의 난민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바티칸의 요청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난민 추방이 대세다. 이 난민 추방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는 1977년생 여성 총리, 조르자 멜로니다. 난민이나 외국인이 아닌, ‘이탈리아 퍼스트’가 2024년 멜로니 총리의 정책 핵심이다.
 
  이탈리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웨덴·덴마크 같은 ‘인권대국’조차 우파 정권 출범과 함께 난민 추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불과 5년 전 기준으로 본다면, 2024년의 유럽은 모두 극우(極右) 광풍(狂風)에 휩쓸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 언론은 ‘극우’라는 표현으로 반(反)난민 정권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스웨덴·덴마크에 이어 ‘독일 퍼스트’ ‘프랑스 퍼스트’가 유럽의 대세다.
 
 
  ‘정치적 올바름’의 퇴조
 
  비슷한 상황은 미국 뉴욕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남부로 몰려든 남미 난민들이 뉴욕으로 이동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텍사스주 정부가 남미 출신 난민들을 의도적으로 뉴욕시로 보냈기 때문이다. 텍사스를 반인권·반난민 땅이라 비난한 뉴욕 리버럴 지식인에 맞선 대응책이다.
 
  현재 뉴욕시에는 남미 난민 수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온기가 느껴지는 지하철 주변은 난민의 영토다. 뉴욕시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난민을 돕고 있다. 그러나 공적 자금이 가중되면서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입으로 외치는 인권’ 속의 난민과, 실제 자신의 집 마당에 밀어닥친 난민은 전혀 다르다. 바로 ‘뉴욕 퍼스트, 뉴요커 퍼스트’에 접어든 것이다. 길어야 2년 내에 뉴욕시도 난민 추방법들을 공포할 것이다.
 
  의사당 난동 사건과 여러 가지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가 화려하게 재기(再起)한 것이나, 앞으로 ‘트럼프 2.0’ ‘트럼프 3.0’이 등장할 것으로 점쳐지는 것은 이 같은 공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를 예로 들었지만,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주의)’에 기초한 생각과 정책도 전부 뒤집힐 전망이다. 흑인이나 난민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가기 쉽고, 결손가정 출신이란 배경으로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는 ‘특권(特權) 아닌 특권’이 트럼프 지지자의 타깃이 되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총장이 물러난 것도 ‘정치적 올바름’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이자 흑인인 인물이 전 세계 최고 대학 총장에 올랐지만, 하마스의 가자 테러 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이스라엘 비난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곧바로 ‘아메리카 퍼스트’ 신자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앞에서 말한 상황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반란 또는 성전(聖戰)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은 이미 궤도에 들어선 상태다. 미국은 8년 전 트럼프 당선을 시작으로 시동을 건 상태다. 필자가 보기에 유럽은 앞으로 최소한 15년, 미국은 20년 정도 반란 또는 성전의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트럼프만 보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20여 년간 펼쳐질 ‘트럼프 2.0’ ‘트럼프 3.0’, 잠시 뜨고 사라지는 아이돌 같은 ‘시대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 온 세계에 퍼져나갈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프 정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허니문’은 없다
 
  둘째, ‘모시 도라’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즉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는 언론과의 허니문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탐색전도 없이 언론과 대통령이 곧바로 치고받는 미국 정치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 언론은 보통 취임 후 100일 동안은 비판을 삼가면서 대통령 리더십과 정책을 관망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는 것과 동시에 신문·방송의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미국 국민 대부분이 트럼프를 선택한다 해도, 미디어의 주된 기반인 도심부 주민들은 반(反)트럼프에 매달릴 것이다. 허니문이 생길 수 없고,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다.
 
  트럼프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선 당일 곧바로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끌면 끌수록 자신의 정책을 구체화하기 어렵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허니문이 없는 만큼 대통령의 레임덕도 빨라질 것이다.
 
  이에 맞서 트럼프는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할 정책 집단을 이미 가동해놓고 있다. 주로 선거캠프에서 이뤄지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과거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취임 즉시 시행할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 정책도 이 중 하나다.
 
 
  취임 전에 관계 구축해야
 
아소 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
  현재 워싱턴에 있는 각국 대사관의 최우선 과제는 트럼프 정책 집단 구성원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작은 인연이라도 찾아 트럼프 정책의 방향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국의 생각을 미리 알리면서 트럼프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려 하는 것은 물론이다.
 
  허니문 정치가 없고, 트럼프 정책이 취임 즉시 시행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집단과의 접촉은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이뤄져야만 한다. ‘모시 도라’가 현실로 나타난 뒤에 움직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한국의 외교 역량으로 볼 때, 취임 이전에 한국 측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의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길이 나타난다. 워싱턴 정치는 깊고도 단순하다.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달려들 경우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트럼프는 딜을 즐기는 인물이다. 기다리지 말고 트럼프 입맛에 맞출 딜의 내용과 조건을 미리 제시하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기다리다가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불평·불만으로 화풀이하는 것은 후진국 외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허니문이 없는 정치, 레임덕에 파묻힐 정권은 오히려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기반을 잘 닦아둘 경우 4년 내내 그대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자유민주당 부총재(전 총리)는 지난 1월 중순 뉴욕을 방문했다. 6년 전 아베 총리 당시의 면식을 활용해 트럼프를 만나러 맨해튼에 들렀지만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시 도라’를 준비하는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는 엿볼 수 있다. 아소가 트럼프와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만의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 참모들 간의 접촉도 이뤄진다는 의미다. 트럼프와 일단 한 번 만날 경우, 이후에는 참모들을 통해 트럼프 브레인들과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당연히 일본은 앞으로도 트럼프와의 접촉을 계속 시도할 것이다. 한 번이라도 성공할 경우, 트럼프의 정책 참모들과의 연결고리를 구축(構築)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취임 이후가 아닌, 그 이전에 맺어지는 관계다.
 
 
  ‘미국이 중국을 버린 결과’
 
  2024년 2월 기준, 전 세계에서 미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48%에 달한다고 한다. 40% 이하로 내려간 적도 있지만, 미중 디커플링과 팬데믹을 겪으면서 급상승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올해 10%로 내려앉았다. 2015년 20%대에 근접한 적도 있었지만, 9년 만에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미중 디커플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8년이다. 6년이 흐른 지금까지의 결론은 ‘미국 1강(强), 중국 폭망’이다.
 
  20세기 이후 역사를 보면, 미국이 적대시하거나 아예 방치한 나라는 ‘고난의 행군’ 그 자체다. 쿠바·이란·리비아·아프가니스탄·필리핀·베트남·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뒤늦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봐야 미국이 마음을 열지 않는 한 글로벌 무대에 낄 수가 없다. 중국 폭망도 미중 디커플링이란 애매한 단어가 아닌, ‘미국이 중국을 버린 결과’라 보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쉽다. 1930년대 독일과 일본이 그러했듯이, 미국을 우습게 보면서 대든 결과가 바로 중국 추락이다.
 
  미국은 이상(理想)이자 현실이다. 민주주의 대국인 동시에, 세상의 상식과 모순, 선(善)과 악(惡)이 혼재(混在)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나라가 미국이다. 상식과 선만 보면서 미국을 이상향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반면에 ‘모시 도라’가 현실화되면, 모순과 악만 보면서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반미(反美)를 외치고 싶은 유혹이 한층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추락 중인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듯, 트럼프의 나라 미국과 등을 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미국민이 트럼프를 선택할 경우, 트럼프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으로서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며 한반도 전체를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
 
  미국은 절대선(絶對善)도 절대악(絶對惡)도 아니다. 그러나 총칼에 의존하는 중국·러시아와 달리, 대화와 딜을 통한 평화적 차원의 외교가 가능한 나라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후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금을 영원히 포기한 나라이기도 하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그러하듯, 자기 하기 나름이다. ‘모시 도라’를 전제로 한, 대한민국 지략과 정보를 총동원한 지금 당장의 준비와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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