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동맹관리의 덫’에 빠진 중국의 出口전략

中, 체제 유지에서 北核 해결로 선회 중

  • 글 :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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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년을 통해 본 중국과 미국의 동맹관리 성적표는 미국의 완승이다. 미국은 남한을 국제사회의 책임 중견국가로서 위상을 확립토록 하는 데 동반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중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

⊙ 덩위원 《학습시보》 부편집장, “북한과의 혈맹을 포기하고 정상관계로 돌아가야” 주장
⊙ “北核은 한반도에서 中·美 간 제1모순”
⊙ 북한의 고질적인 內憂外患은 중국에도 ‘憂患’으로 변해

黃炳茂
⊙ 73세.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 국방대학원 전략학처장, 한국국제정치학회장,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NSC 사무처 정책자문위원, 국방발전자문위원장, 외교부 외교정책 자문위원장 역임.
⊙ 저서: 《신중국군사론》 《전쟁과 평화의 이해》 《21세기 한반도 평화와 편승의 지혜》
    《국방개혁과 안보외교》.
⊙ 現 국방대 명예교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특사로 방중한 최룡해에게 “한반도 비핵화가 대세”라고 세 차례 강조했다.
사진은 시진핑(오른쪽)이 최룡해를 접견하는 모습.
올 초 연이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 공세에 중국이 화가 단단히 났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에 이어 정전협정 무효화 발언, 남북 직통선 차단, 남북 불가침 선언 무시,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일련의 위기 상황을 만들고 증폭시켰다.
 
  4월 초 북한은 6자회담의 비핵화 이행 사항(불능화 조치의 일환)인 영변 5MW 흑연 감속로를 재가동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 지도부는 특사까지 파견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의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허사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어느 일방이 개별 이익을 위해 한 지역을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가 하면 ,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어느 나라든 도발적 언행으로 중국의 현관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내 영향력 있는 외교 전문가들 간에는 대북 전략 논쟁이 일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중앙당교(中央黨校) 교수, 당교 기관지 편집인, 국무원 연구원, 대학 교수 등이다.
 
  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學習時報)》 부편집장인 덩위원(鄧聿文)은 “민생을 외면하고 핵개발에 치중하면서 한반도에 위기 조성을 일삼고 있는 북한은 이념과 전략적 완충지대라는 면에서 지정학적 자산이기보다는 부담이 되고 있다”며 “북한과 맺고 있는 특수관계, 혈맹관계를 포기하고 정상국가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덩위원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이 글로 부편집장 직에서 해임됐다.
 
  “북핵은 미국에 대해 완전한 자주와 평화를 만드는 수단이다” “북핵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일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며, 이러한 일로 중·북 관계를 해쳐서는 안 된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비난과 위협 공세를 일삼지만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하며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국제환경을 원한다” 등 현행 정책의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中, 북한 두둔 정책으로 위상 추락
 
덩위원 전 《학습시보》 부편집장은 “중국은 북한과 맺고 있는 혈맹관계를 포기하고 정상국가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체제가 성립한 지 60년이 흘렀고, 한반도는 지금껏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의 동맹관리 성적표를 매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미국은 남한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 민생의 안정과 민권을 향상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책임 중견국가로서 위상을 확립하는 데 지원과 동반자 역할을 수행했다. 주한 미군은 대북 억제력으로서 또는 북한의 잦은 국지도발에 대응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안전핀’으로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은 남한이 핵개발을 시도했을 때 설득과 신뢰성 있는 안보지원으로 핵개발을 단념토록 했다. 그러한 미국의 개입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기보다 강화하는 계기가 돼 오늘날 한미동맹을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산업화에 의한 민생문제 해결과 민권개선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만드는 것에도 실패했다. 중국은 탈북자들의 북한 송환 문제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고, 북한의 민생문제로 인한 체제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식량과 유류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잦은 국지도발 억제에 실패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 때가 많았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 대해 북한을 두둔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실추됐다.
 
  이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 평가에 혼돈을 가져왔다. 중국의 대북 관리 최대 실책(失策)은 20여 년 동안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고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남겨 놓은 점이다.
 
  중국의 대북 관리에 영향을 미친 3대 요인이 있다. ▲중·북 간 혈맹관계라는 비정상적 국가관계 ▲중국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에 고려하는 미국 요인 ▲북한체제 안정을 기조로 전개되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전략적 자산’이기보다 ‘우환(憂患)’으로 발전하면서 ‘동맹관리의 덫’이 되고 있다.
 
 
  전략적 부담이 된 중·북 혈맹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존재를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이후 북한과 혈맹관계를 맺는다. 사진은 1973년 베이징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왼쪽부터).
  1948년 10월 1일 중국 정권 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인민은 일어섰다”고 외쳤다. 중국은 반봉건, 반식민지의 굴레를 벗고 공산주의 자주국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마오쩌둥은 전통적인 중화사상에 사회주의 국제연대를 배합했다.
 
  중국은 마땅히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중심이 돼 공산주의 운동을 확산시켜야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일성(金日成)이 스탈린으로부터 남침계획을 승인 받으면서 마오쩌둥의 동의를 요구했을 때 마오쩌둥은 흔쾌히 승낙했다. 또 미국이 참전한다면 중국은 군대를 보내고 소련은 물자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1950년 초 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이 비밀리에 방중해 마오쩌둥에게 항불(抗佛) 전쟁을 협의하고 원조를 요청했을 때도 마오쩌둥은 흔쾌히 승낙했다. 중국은 항불전쟁 기간 중 호찌민의 군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칠 때까지 무기와 군사물자의 지원을 비롯해 군사, 정치, 경제 고문단을 파견했으며 심지어는 양국 군대가 연합해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중·북 공산당의 혈맹관계는 6·25전쟁 때 북한의 붕괴를 막은 중국의 참전으로 시작된다. 1950년 10월 초 북한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마오쩌둥은 “이웃 조선이 멸망해 가고 있습니다. 방관해도 좋을지 나는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우리들이 모른 체한다면 우리들이 언젠가 그렇게 되었을 때 스탈린은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사회주의 진영이 이름만 남지 않겠는가”라고 사회주의 연대도 강조했다.
 
  중국은 6·25 남침 전쟁 참전으로 36만 이상의 전투원을 잃었고, 10억 달러 상당의 전비(戰費)를 지불했다. 중국은 참전으로 ‘대만 해방’이라는 정치적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됐고, 경제발전 계획도 늦춰야만 했다.
 
  중국의 대북 편애(偏愛)는 1962년 중조변경조약을 체결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 지도부는 중조조약 체결의 문제를 국가 대 국가 간의 외교협상 문제가 아닌 공산주의 우호 정당 간의 내부 협의로 간주했다. 중·조 쌍방이 협상 시작 6개월 만에 국경선 획정에 합의했고, 서명한 지 2개월이 채 못 돼 비준서를 교환했다.
 
  그 결과 북한은 두만강 지역의 섬과 여울목 56%를 차지했고,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 대해 양보를 얻었다. 중국 정부는 현재까지 경계 획정 관련 문건 공개를 꺼리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냉전기 지정학과 이념을 이용해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간, 이른바 ‘비대칭적 불평등 관계’의 전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아시아 공산주의 중심국가를 자처했고, 여기에 전통적 중화사상을 결합해 ‘소국이 대국을 섬기고 대국은 소국을 어여삐 여긴다(事大慈小)’는 관념으로 중·북 관계의 틀을 마련했다.
 
  1990년대 《신화사》통신은 북한 수뇌부들의 중국 방문을 ‘친지 방문’으로 보도하는 등 그 특수관계를 과시했다. 중국은 이러한 틀 속에서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을 극히 삼갔고,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무역 특혜와 조건 없는 식량 그리고 유류를 지원해 왔다.
 
  또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참가하더라도 형식적 제재를 실시해 북한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이 진정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려면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정상적 국가관계로 바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적극 참여하고, 대북 경제지원을 조건부로 해 대북 영향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략적 우려사항이 된 중국과 미국의 대립
 
  중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중국 외교의 핵심이 대미(對美) 외교임을 강조한다. 중·미 관계는 6·25 전쟁으로부터 현재까지 이데올로기와 지정학적인 면에서 대립, 경쟁 및 협력이라는 복합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반도는 미·중의 이익과 세력의 각축장이다.
 
  1950년 10월 초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남한 군대가 아닌 미군의 북진을 위협으로 인식했다. 마오쩌둥은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면서 출병(出兵)의 당위성을 강변했다.
 
  “만일 우리들이 출병하지 않으면 적은 압록강 주변까지 제압하여… 특히 동북부 지방은 더욱 불리하게 된다. 남만(南滿)의 전력 또한 제압당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참전해야 한다. 참전에 의한 이익은 매우 크다.”
 
  중국 참전의 구호, 항미원조(抗美援朝)는 바로 중국 참전의 가장 중요한 동기와 목표가 미국 위협의 배제, 즉 미국 요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6·25 남침 초기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군을 전면 축출하는 군사목표와 공산화 통일에 의한 조선 문제의 해결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연결시켰다.
 
  전쟁의 승리가 어려워지자 미군의 한・만 국경까지의 진출을 막고 북한 정부를 보존하는 전쟁 이전의 현상유지로 돌아가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휴전회담 초기 중국은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1972년 중국은 미국과의 수뇌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고 대만으로부터 모든 미군과 전술 핵무기의 철수에 성공하지만, 주한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 회고록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중국을 겨냥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질을 주었고, 마오쩌둥은 “중국이 주한미군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중국의 《인민일보》 등 보도매체들은 주한미군을 중국에 대한 위협보다는 한반도 통일의 방해요인으로 선전했다.
 
  1980년대 이후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주한미군은 냉전의 유산이지만 한반도 분단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일정한 역할에 긍정적이다. 북한의 대규모 도발 억제와 북한 도발 시 남한의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올 초, 북한이 핵실험 후 연이은 도발 위협을 감행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미국이 B2, F22 등 첨단 전력을 전개해 실시한 한미연합 훈련에 중국이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킨 이유는 미군의 대북 억제와 남한을 안심케 하는 이중적 역할을 암암리에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주한, 주일 미군의 증원을 포함한 새로운 첨단무기의 상시 배치나 미사일망 구축의 국제적 연대와 서태평양에서의 연합훈련 강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서태평양 지역의 미군 전력과 대비태세의 강화는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며, 특히 대만해협 유사 시 신속히 개입할 수 있는 전력의 증강으로 보고 있다.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도 예외가 아니다. 서태평양 지역 미군 전력의 강화는 중국이 미군의 접근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했을 때 거부하는 전력의 소요를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군사력 균형이 중국에 불리하게 된다면,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수 있다고 오판하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 북한 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해 미국이 군사 개입하는 사태를 우려한다. 중국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의 준수를 공언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장은 러시아 외교부장과 회담 후 안보리의 제재가 한반도에 대한 군사개입 명분으로 쓰이면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중조상호원조조약이 중국의 전략적 부담이 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미 억제용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중국은 북한 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에 의해 평화적으로 미·북, 일·북 관계 정상화 등 이른바 북한의 합리적 우려 해소와 연계해 해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선(先) 비핵화 후 관계 정상화라는 틀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 핵은 남북한 간 평화체제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북한은 핵 보유 국가를 자처하고 비핵화 회담을 거부하면서 대미 협상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원하고 있다. 이 점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한다면, 한반도에서 중·미 간 전략적 불확실성을 낮추는 계기가 돼 중국이 미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우려를 덜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 안보관
 
  중국 지도부에는 ‘내우(內憂)가 외환(外患)을 불러오고, 외환이 내우를 만든다’는 전통적인 안보관이 자리 잡고 있다. 외세의 개입을 배제하려면 내부의 우환을 없애고, 내부를 안정시키려면 외환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보다 북한의 체제안정을 우선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안보관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의 아웅산 도발과 KAL 민항기 폭파 사건 등 끔찍한 만행을 규탄하려는 유엔 안보리의 의제 채택을 중국이 거부하거나 제재 결의보다 의장성명을 주장하는 ‘북한 감싸기’는 북한 고립화를 막아 체제안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에 중국이 동의했다 하더라도 중국은 제재 수위를 조정해 북한의 정책변화 유도의 효용성에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금년 초 중국이 이례적으로 대북 제재에 적극적 참여 의지를 표명했지만, 그 강도는 낮은 편이다.
 
  북한에 대한 제한적 금융제재, 통관업무의 강화, 북한 노동자 비자신청을 거부하는 정도다. 중국이 북한과 진행하고 있는 경제사업은 지속하고 있으며, 북·중 접경지대를 잇는 철도사업, 도로, 항공 노선은 늘리고 있다. 또 북한 체제안정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식량과 유류 지원은 끊지 않고 있다.
 
  중국은 내정 불간섭을 중요한 외교원칙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개혁, 개방과 리더십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개혁·개방 문제에 대한 중국의 관여는 “북한 주체노선과 개방은 양립할 수 있다”는 원칙론적 언급과 중·북 국경지대에 설립한 경제특구에서 합작과 경제교류의 확대 등이다.
 
  김정은에 의한 북한 권력의 3대 세습은 지구상에 존재한 공산주의 국가의 권력교체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안정을 유지하는 한 권력을 누가 잡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북한의 내정이 불안정해질 때 중국이 사태를 관망만 하지 않을 것임을 은근히 비치고 있다. 중국이 북한체제의 변화에 앞장서지는 않을 것이나 북한 내부에서 추진되는 변화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그 이면에는 중국은 북한이 그러한 사태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해 외세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면 유엔을 통한 해결을 바라는 입장이다.
 
  또 이들은 북한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대량 유입되는 사태에 대해서도 이를 군사개입의 명분으로 삼지 않을 것이며, 국경 부근의 임시 수용소에 난민들을 수용했다가 북한이 안정된 후 되돌려보낼 의사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미와 중국이 갖는 북한 체제안정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북핵에 대한 정책조율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서 ‘전략적 인내’를 하면, 북한은 내부의 취약성 때문에 일정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6자회담 등 비핵화 회담에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조치가 모순을 악화시키면서 북한 핵개발의 시간만 준다는 점에서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해소하는 ‘전향적 포용’을 원한다.
 
  중국은 1990년대 탈냉전기를 맞아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정부’ 정책을 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추진과 남한과의 수교다. 중국의 이러한 정책이 한반도 정세안정에 미친 결과는 긍정적, 부정적 요인이 병존한다. 남한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은 남한문제가 중·미 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으나, 한중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안보협력은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북한은 ‘하나의 중국’ 정책과 ‘하나의 조선’ 정책을 분리시킨 중국이 원망스럽고, 미·북, 일·북 국교 정상화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남한과 수교한 중국에 배신감을 느꼈다. 이는 북한 핵개발의 빌미를 제공했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한 전략 균형을 고려해 북한의 비핵화와 미·북, 일·북 관계 정상화 및 북한체제의 안정에 대한 국제적 보장 등을 연계시켜야만 했다.
 
 
  중국의 북한 해법 3가지
 
  시진핑 국가주석은 김정은 특사로 방중한 최룡해 북한 공산당 상무위원에게 “한반도 비핵화가 대세”라고 세 차례나 강조했다. 시진핑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입장은 분명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비핵화 목표를 달성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이뤄야 하고, 비핵화는 6자 회담 재개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룡해는 6자 회담 복귀의사를 밝혔으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보도매체들은 북·중 우호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비핵화’ ‘6자 회담’ 등의 단어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중국이 인정하는 한반도 정세 안정의 모순과 그 해결법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한반도, 특히 북한의 안정을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정책을 펴 왔다. 북한의 안정을 비핵화보다 우선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6개월 동안 북한의 연이은 한반도 위기 조성은 중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정세 안정의 ‘제1모순’은 비핵화임을 인식토록 했다.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정세 안정 없이 북한의 안전도 유지할 수 없다는 정책방향의 변화가 엿보인다. 즉 북핵은 한반도에서 중·미 간 제1모순이며, 외환(북핵)의 해결 없이 제2모순, 내우(북 체제안정)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중국이 북핵을 제1모순으로 인식하고 해결의 우선순위를 둘 때 북한이 내건 ‘핵 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정책과 충돌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북한체제의 안정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3가지 중장기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제1방안은 기존 방안의 지속이다. 변화가 있다면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북한 내부 안정을 종속시키면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직접 설득하며 국제공조를 통해 추진하는 방안이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기존 북한과의 관계를 급격히 바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로의 노선변경에 대해 일정 역할만을 담당할 뿐 미국과 한국에 대해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결국 한·미·중이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로의 노선변경을 설득하거나 압박하는 문제로 남는다.
 
  제2방안은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에도 불구하고 제1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의 변화를 위해 개입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평화로운 국제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한, 경제건설과 민생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김정은 리더십의 안정도 내우와 외환이 겹칠 때 핵무력과 경제건설의 병진정책에 관한 노선수정을 둘러싼 투쟁이 일어나 흔들릴 수 있다. 북한 리더십 변화는 정책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북한 리더십 변화에 중국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제3방안은 중·장기적으로 중국이 한반도 전체를 완충지대로 인식, 수용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이념과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삼아 왔다. 중국의 소련 및 베트남과의 공산주의 국제연대는 냉전시기부터 끊겼다. 북한과의 특수관계는 이제 중국에 부담이 되고 있으며, 북한의 고질적인 민생문제인 내우와 핵개발, 잦은 위기조성으로 인한 외환은 중국에 전략적 우려를 넘어 우환으로 변하고 있다.
 
  북한이 내우와 외환을 잘 관리해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리라는 전망은 불투명하다. 남한 주도의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주한미군의 존재와 역할을 ‘지역 균형자’로서 중립화할 수 있으며, 한반도 안정을 주변국이 보장한다면 열강의 각축장인 한반도는 강대국 간의 대립과 경쟁이라는 전략적 불확실성을 배제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
 
  미·중 관계가 협력적일수록 이 대안에 대한 중국의 수용 가능성은 커진다. 미·중 관계가 나쁘더라도 중국이 이 대안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대중 외교의 중·장기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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