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력이 향상되면 권한도 자연히 요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아직은 ‘권(權)’과 ‘력(力)’이 일치하지
않는다”(옌쉐퉁 칭화대 교수)
⊙ “중국은 분명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것을 꺼려 한다”
李鍾贊
⊙ 1936년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정무장관, 11~14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국가정보원장 역임. 現 우당기념관 이사장.
않는다”(옌쉐퉁 칭화대 교수)
⊙ “중국은 분명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것을 꺼려 한다”
李鍾贊
⊙ 1936년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정무장관, 11~14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국가정보원장 역임. 現 우당기념관 이사장.

-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힘을 키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오성홍기(五星紅旗)가 게양되는 모습.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추진, 경제건설에 중점을 두고 이웃나라와의 분쟁을 가급적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은 종전의 태도와 확연히 달랐다. 중국의 대응은 세인(世人)을 놀라게 할 만큼 감정적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주중(駐中)일본대사를 4번이나 불러서 따졌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자, 9월 21일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나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중국은 9월 23일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의 필수소재인 희토류에 대하여 수출 잠정중단 조치를 한 데 이어 군사지역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일본인 4명을 구속했다. 그리고 일반 수출입 상품에 대한 통관지연으로 목을 조르는 한편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을 제한했다. 이 모두가 극약처방에 가깝다. 사실 WTO 가입국으로서 이런 보복조치를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날 일본은 서둘러 선장을 석방, 백기(白旗)를 들고 말았다. 일본은 이런 정도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까?
센카쿠 분쟁의 진짜 이유는 석유
분쟁이 일어난 이 지역은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 지배를 하듯이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하여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중국에 가깝고, 역사적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타이완(臺灣)과 관련 있는 섬이므로 당연히 제2차세계대전 후 중국에 반환됐어야 마땅했다고 주장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어마어마한 석유와 가스가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일본 정부는 이 지역 해저에 이라크의 매장량에 버금가는 석유 1095억 배럴과 일본이 100년간 쓸 수 있는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서도 13억명이란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자원 확보는 안보 이상의 국가적 대사다. 중국도 이 해역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과잉대응을 하는 데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중국이 그동안 커졌고, 입장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2008년을 기점으로 대외적(對外的)으로 태도를 바꿨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그해, 미국 월가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여 전(全) 세계로 번진 세계경제위기에서 중국은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대국 미국을 구원하기 위하여 채권(債券)을 대량으로 매입해 주었다는 중국의 경제력이 이제는 전 세계에 공인받게 되어 어깨가 으쓱해진 것이다.
“아직은 ‘권(權)’과 ‘력(力)’이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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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샤오핑은 세계를 향해 자세를 낮추는 도광양회를 강조했다. |
덩이라는 사람은 원래 정치투쟁 현장에서 생존술로 말하면 가장 출중한 정치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를 두고 오뚝이(不倒翁)라 부른다. 그는 1960년대 초 류샤오치(劉少奇)와 더불어 소위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적 경제를 주장하는 파)의 양 거두로 꼽힌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혁명이라는 격동기에도 그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살아남아서 의심이 많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신임을 다시 받아 정계에 복귀할 만큼 생존술에 능했다. 그런 덩이 머리를 숙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폐쇄되어 온 중국이 개혁개방이라는 도박을 하면서 경제발전도 이루기 전에 자칫 미국을 비롯한 서구(西歐)세력에 압살될 수 있음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덩의 도광양회 정책은 후계자 장쩌민(江澤民)에 의하여 충실히 수행되었다. 이에 따라 사실 중국은 어느 이웃나라와도 충돌하지 않았고 이를 애써 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21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로서 자연 국경분쟁이 빈발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중·소(中蘇) 간, 중·인(中印) 간, 중·베트남 간 국경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 전쟁상태에 들어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도광양회 이후 중국은 극도로 몸을 사려 왔다. 심지어 2009년 7월 미얀마와 코캉(Kokang)지역에서 충돌이 있었음에도 중국은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중국은 이를 두고 ‘평화5원칙’을 충실하게 지켜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평화5원칙’이란 1954년 6월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인도의 네루 수상이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밝힌, 영토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 등 다섯 가지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이번 센카쿠 분쟁에서는 이런 원칙과 ‘도광양회’라는 자세가 변한 것이다. 중국의 현실주의 전략론의 대변자 격인 칭화대 옌쉐퉁(閻學通) 교수 같은 이는 “중국의 국력이 향상되면 권한도 자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은 ‘권(權)’과 ‘력(力)’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한국, 對中무역 의존도 20.5%
중국의 경제는 확실히 괄목할 정도로 커졌다. 중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도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여겨졌지만, 금년에 이미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더불어 G2가 되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 8월 1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9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이 5조650억 달러, 중국은 4조9000억 달러였다. 이것이 금년 들어서면서 1분기에 1조3000억 달러 대 1조2000억 달러였으나 2분기에 1조2900억 달러 대 1조3400억 달러로 역전되었다. 연간 10%대의 중국의 성장률과 2%대의 일본의 성장률을 적용하여 계산해 보면 중국이 2위인 것은 틀림없다.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건설과 발전은 여러 나라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워낙 덩치가 큰 중국이라 투자를 하면 이에 따라 소요되는 원자재(原資材)만도 엄청나다. 브라질이나 호주같이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덩달아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엄두도 못 낼 만큼 전체 경제의 45%를 투자지출에 쓰고 있으므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여러 나라는 경제위기 속의 불황(不況)에 빠져 허덕이는 나라가 여럿 나와도, 중국 경제의 덕을 보는 나라들은 용케도 경제위기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외(對外)무역 가운데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20.5%나 되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이나 일본이 가장 큰 시장이었는데 상황이 달라져 지난해 수출의존도에 있어서 미국(9.7%)이나 일본(10.4%)은 중국의 절반도 채 안되었다. 금년도 7월까지 대중 수출이 이미 지난해보다 45%나 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중국이란 큰 시장을 옆에 끼고 있어서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韜光養晦에서 화평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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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평굴기’론을 내놓은 정비젠 교수. |
2009년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되는 해였다. 10월 1일 건국기념식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평소와는 달리 인민복 차림으로 나와 “중화부흥(中華復興)의 신시대”를 선언했다. 신시대의 내용은 사상해방, 개혁개방, 과학발전을 통해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중국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부응하는 새로운 국가로 부상(浮上)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은 흔들리지 않고 서구적 문화를 모방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로 부상한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중국은 세계 2위 국가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엄살을 부리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과 미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G2론은 근거 없는 발상”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또 최근 연설에서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라고 말하여 많은 사람을 웃겼다. 아직도 도광양회를 견지하려는 것일까? 그보다 중국의 급작스런 부상으로 인하여 공격의 과녁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일시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것 같다.
첫째, 미국을 위시한 서방 측은 계속하여 중국에 위안화의 절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유리한 환율(換率)을 무기로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무역수지 흑자(黑字)를 거듭 내고 있다. 중국산 상품이 싼값으로 계속 미국으로 침입하여 산업을 침체시킴으로써 미국은 위기탈출도 어려울뿐더러 실업률이 계속 늘고 있다. 아무리 중국에 위안화 가치를 현실화하자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불가피하게 미국은 중국상품에 대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이 법안이 미 의회에서 민주, 공화 양당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끄떡도 안 한다. 신화통신은 “위안화 가치를 100% 절상해도 미국의 무역적자와 실업률은 크게 줄지 않는다. 그보다 미국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중국에 책임을 미루는가?”라고 반박한다.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이 바라는 것은 과거 일본에 요구했던 소위 ‘플라자합의’를 중국도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중국은 이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1985년 일본이 무역흑자로 전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던 시기에 서방 측 5개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일본에 엔(円)화 절상을 요구하여 관철시킨 소위 ‘플라자합의’란 것이 있다. 그 결과 달러당 260엔대였던 엔화 환율이 1987년에 이르러 122엔대로 급락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장기불황에 들어갔다.
중국은 만약 플라자합의 식으로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하면 중국경제에 불황이 닥쳐 모처럼 발전의 계기를 만든 모든 구조가 깨진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IMF도 개입하여 해답을 찾고 있으나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다. 오히려 각국의 보호관세가 내려가면 WTO라는 자유무역체제가 무너져 무역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만약 무역전쟁이 일어나면 대외의존율이 높은 한국에 돌아올 피해도 막대할 것이다. 중국이 불황에 빠진다면 제1의 수출시장으로 꼽고 있는 한국에 닥칠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서울 G20회의에서 해답을 찾아보자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을 요한다.
주변국들, 환태평양협력체 모색
둘째는 중국이 해양으로 진출하려 함에 따른 주변국의 우려가 심각하다. 중국은 일본과의 영토분쟁 외에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남중국해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이다. 그러므로 서로 공동으로 협력하여 중국에 대항하자는 뜻에서 여러 형태의 협력체를 구상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목표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環)태평양협력체(TPP)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영토분쟁 당사국들은 이 협력체에 적극적이다. 이미 협상에 참여키로 한 호주,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외에도 말레이시아가 최근 협상 참여를 공식 발표했다. 이들 나라들은 내년 11월까지 환태평양협력체에 대한 합의를 끝낼 예정으로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9월 25일 “이 지역과 무관한 국가가 끼어들어 간섭하는 것은 물론 남중국해 문제가 국제화되는 데에도 반대한다”며 “관련 당사국들이 상호 신뢰의 정신 아래 쌍무 간 협상과 담판으로 분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이 개입하여 문제를 복잡하게 하지 말고, 관련당사국끼리 1대1로 해결하자는 의사표시인 것 같은데 각개격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도 된다.
셋째, 금년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로 중국이 정치범으로 투옥시킨 류샤오보(劉曉波)가 선정되었다. 노벨평화상위원회는 선정 이유서에서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어떤 나라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중국 헌법 35조인 ‘언론·표현·결사·집회·시위의 자유’가 명백히 박탈된 상태다”라고 중국의 정치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하여 베이징주재 노르웨이 대사를 불러 “중국 법률을 위반한 죄인에게 상을 준다는 것은 유감”이며 그가 수상하는 것은 “노벨평화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평화상은 노르웨이 정부가 시상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의 민주화에 불을 붙이기 위한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상응한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라는 함의도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의 4개 민주론
중국은 이처럼 대내외의 도전을 받고 있다. 경제의 덩치가 커진 만큼 정치적으로도 보다 성숙한 선진국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것이 서방 측의 요구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대답으로 원자바오 총리는 최근 여러 차례 중국의 정치개혁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개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체제의 실현 조건으로 인민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전제하에 “인민의 알 권리(知情權)ㆍ참정권(參與權), 표현의 자유(表達權)와 감독 권한(監督權) 등 4대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의 개혁도 거대한 중국에는 무거운 짐이다. 마치 30년 전 중국의 개혁개방을 실천하라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못지않은 정치분야의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한 것 같다.
최근 후진타오 주석도 개혁개방의 1번지인 선전(深?) 경제특구 건립 30주년 기념 연설에서 ‘4개 민주론’을 제시하면서, 법에 의한 민주선거, 민주적 결정, 민주 관리, 민주 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도 원자바오가 제시한 4대 권리를 다시 강조했다. 원자바오와 후진타오가 잇달아 정치개혁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중국공산당 물밑에서 이런 개혁작업이 진행 중임을 감지할 수 있다.
정치개혁에 대하여 중국공산당 일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발행하는 잡지 <구시>(求是)는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구별하라’(劃淸中國特色民主同西方民主界限)는 제목의 논설을 실었다. 서구식 민주주의란 복수(複數)정당제, 직접선거제, 삼권분립제를 말하는데 중국에 직수입하여 실현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의 사정을 보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13억명의 인구가 다당제(多黨制)로 갈리고 직접선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난제가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공산당 1당 독재하에 다양한 이론에 근거한 계파들이 당내 병립하여 경쟁하면서 정치적 자유와 권리가 신장되는 방법은 없을까?
아마 이런 구상쯤은 공산당 내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2012년 현 지도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 어떤 그림으로 새로운 정치개혁의 모습이 드러날 것인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유교문화국가 추구
넷째, 중국이 내심 열망하는 바는 비약적 경제발전에 상응한 국제적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런 열망이 ‘화평굴기’로 표현된 것이다.
옌쉐퉁 교수는 중국의 국력평가를 (군사력 + 경제력 + 문화력) × 정치력의 총화로 설명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핵(核)보유국일 뿐 아니라 유인(有人)인공위성 선저우(神舟)를 쏘아 올릴 정도의 우주공학 실력도 탄탄하다.
국방예산으로 말하면 미국이 단연 1위로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예산을 합친 총액의 43%에 해당된다고 하며 2위가 중국이라 한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2010회계연도의 미국의 국방예산을 5340억 달러로 계상하고 있다. 중국이 통상 미국의 10분의 1에 해당된다고 하면 약 500억 달러로 추산될 것이다(실제로 2003년 중국의 국방비는 650억 달러로 추산된 바 있다).
하지만 같은 예산이라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구매력 간에도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중국의 국방예산은 실제 가격으로 따지면 미국의 약 5분의 1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처럼 국방분야에 계속 투자한다면 중국의 군사력은 자위(自衛)용이라 하지만 인접국에 위협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접국도 국방예산을 늘리게 될 것이고 동북아에 새로운 군비경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중국은 현재 유교(儒敎)문화국가로 부상하려는 연구가 많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안정을 이룩한 유교적 질서,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분명한 가정의 중요성을 기본으로 중국식 삶의 틀을 정립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과연 이런 틀이 공감을 얻게 될지는 의문시된다. 더욱이 중국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소수(少數)민족문제,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협화, 민주화의 요구,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 등 곳곳에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지성이며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이 중국의 경제성장이 민주화로 연결된 한국과 같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딴 길로 가고 있다고 혹평하였을까.
중국은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 원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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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중국 창춘에서 만난 김정일을 포옹하는 후진타오 주석. |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동북아(東北亞)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중국의 변화와 동시에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실 6자회담은 북한핵문제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중국이 6자회담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다섯째, 중국이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보다 넓은 시각에서 지평을 열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얼마 전 익명(匿名)을 요구하는 중국의 유력인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솔직히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분명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 국경을 맞대는 것을 꺼려 한다.”
이 말을 풀어보면 설령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한국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은 21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은 자국과 약간이라도 적대적인 나라가 있는 경우, 인접한 제3국과 깊은 동맹을 맺고 있다. 인도와 불편한 관계에 있으므로 파키스탄과 가깝고, 베트남과 관계가 껄끄럽기 때문에 캄보디아와 가깝다.
한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북한을 저렇게 감싸고 도는 것은 한국이 미국과 깊은 동맹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관계와 대중관계 분리하지 말아야
우리가 천안함에 대한 공격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역설해도, 중국이 북한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행동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이해가 있다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다. 더욱이 중국은 고래로 옛친구(老朋友)를 버리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중국과 북한은 6·25전쟁을 통하여 깊은 혈맹을 맺고 있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더라도 중국은 대(代)를 이어 관계를 돈독히 할 것이라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러한 특수관계 때문이다. 이런 점이 우리의 대중외교의 한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북관계와 대중관계를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면 오판(誤判)할 수 있다. 복잡한 동북아의 역학(力學)구도에서 한국은 균형적인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현재 이런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돈독한 반면, 정치외교 측면에서는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평굴기를 내건 중국을 향하여 한국의 대중관계는 보다 중층적(重層的)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