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노인도 살기 좋은 나라 ② 일본

“개호보험 제도, 다른 나라가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려워”

  •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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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에 관계없이 건강하게 일하며 사회에 지속적으로 공헌’하는 ‘생애현역’ 강조
⊙ 초등학교에서 노인들이 그림책 읽어주기도
⊙ “노인 의료비 무료화는 일본 의료제도 사상 가장 큰 실패… ‘의료는 무료’ 인식 심어줘”(시마자키 겐지 국제의료복지대학 대학원 교수)
⊙ “세금과 보험료 너무 비싸… 월급의 거의 절반 나가는 느낌”(택시기사)
⊙ “개호 대상자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고바야시 히로미 개호지원전문원협회 부회장)
⊙ “개호지원전문원 없이 어떻게 개호 서비스를 받는지”(고야부 모토시 요코하마시 스스키노 지역케어플라자 소장)
일본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 사진=조선DB
흔히들 일본은 한국의 10년 뒤 모습이라고 한다. 고령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시기도 대략 10년의 격차를 보인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 넘는 국가를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일본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4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9.3%다. 같은 시점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2%다. 고령화에 따른 제도 정비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된 시기는 2008년 7월, 일본은 이보다 8년 앞서 2000년 4월 우리의 노인장기요양보험 격인 개호보험(介護保險)을 시행했다. 개호란 ‘곁에서 돌봄’이다. 한국과 다른 점으로, 돌봄 지원을 총괄하는 전문가인 ‘개호지원전문원(介護支援專門員)’이 있다.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고령자를 일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생애현역(生涯現役), 즉 ‘평생 현역’이라는 취지로 운영되는 실버인재센터에서 가벼운 강도의 작업을 소일거리 겸해 한다. 나이를 먹는 과정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노년학(제론톨로지·Gerontology) 검정시험도 여러 방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9월 25일부터 10월 3일까지 초고령 사회를 앞서 겪은 일본을 방문해 각계 전문가 10명을 만나고, 일반 시민과 일선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어 봤다.
 
 
  한일 의료 안전망의 쌍두마차
 
  고령층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제도는 역시 의료다. 의료에 한정해서 놓고 보면 한국과 일본처럼 국가 차원의 두터운 안전망을 구축한 국가도 드물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편적 건강보장 제도인 ‘UHC(Universal Health Coverag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한국과 일본은 전 국민 건강보험과 요양(개호)보험이라는 두 기둥으로 UHC를 지탱하고 있고 보장 범위도 폭넓다. 두 제도 모두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시행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1960년 일본 정부는 국민 개인 소득을 10년 안에 두 배 올리겠다는 ‘소득배증계획(所得倍增計劃)’을 발표했고, 8년 만에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일본의 국민개(皆)보험 제도는 이 경제성장기 때 논의되기 시작해 1961년에 도입됐고, 보장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일본에선 노인 의료비 무료화가 시행된 1973년이 ‘복지 원년(元年)’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해 가을 오일 쇼크가 터졌고, 경제적 고도성장기도 끝났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참고가 된 일본 개호보험 제도는 1990년대, 이른바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본격화됐다. 일본은 1970년 노년 인구 비율이 7%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기에 관련 논의는 이미 이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과 일본 모두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고도성장은커녕 지금의 제도를 뒷받침할 예산 및 후속 세대의 부담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재원과 인력 규모가 과거보다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두 나라의 두 제도는 모두 ‘효율화’와 ‘개혁’이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일본이 고령자가 살기 좋은 나라?”
 
시마자키 겐지(島崎謙治) 일본 국제의료복지대학 대학원 교수.
  시마자키 겐지(島崎謙治) 일본 국제의료복지대학 대학원 교수는 현실적이었다. 시마자키 교수에게 “일본은 고령자가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과연 ‘고령자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고령화·인구 감소 관련 정책은 뒤늦은 면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한국에 참고나 귀감이 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의외였다.
 
  시마자키 교수는 일본 중앙 정부 부처 의료보험 제도의 실무 책임자 겸 연구자로서 그 과정을 가까이서 봐왔다. 1978년 후생성(現 후생노동성)에 입직한 그는 개호보험이 시행된 지 1년 후인 2001년 후생노동성 보험국 보험과장을 역임했다. 그는 현재 일본의 사회보험 제도에 대해 “재정 부담도 문제고,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개호 서비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까지 하면서, 직접 작성한 자료들을 건네며 3시간 넘게 관련 설명을 이어 갔다.
 
  우선 의료 인력난에 대해선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도표를 꺼내들었다. 이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독일 7.8개, 프랑스 5.7개, 영국 2.4개, 미국 2.8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각각 12.8개, 12.6개에 달한다. 반면 진료에 종사하는 임상 의사 및 간호사의 수는 오히려 한국과 일본이 이들 국가보다 적게 나타났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臨床醫) 수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2.6명이지만 독일은 4.5명,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3.2명, 미국이 2.7명이다. 인구 1000명당 임상 간호사는 독일 12명, 프랑스 8.6명, 영국 8.7명, 미국 11.8명이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병상 수에 걸맞도록 간호사 수도 많아야 할 텐데 일본은 12.1명, 한국은 그보다 더 심한 8.8명이다.
 
  시마자키 교수는 “지난해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들이 찾아왔을 때 한국의 의사 부족 문제도 화제가 됐는데, 내가 보기엔 간호사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도 간호사 부족으로 병동을 폐쇄하는 병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료 수가(酬價)가 억제돼 있기 때문에 일이 힘든데도 간호사의 임금이 오르지 않아 지원자가 줄고 있다. 5년 뒤 일본에 오면 간호사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져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분명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에서 만난 한 30대 간호사는 “야근을 하면 월급이 오르지만, 정해진 시간표대로만 근무하면 일의 난이도에 비해 급여가 턱없이 낮아서, 대학원에 진학해 이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개호보험
 
유아사 모토유키(湯淺資之) 준텐도대 교수.
  재정 지출 부담도 큰 문제다. 시마자키 교수는 “일본은 국가가 보험을 통해 제공하는 보장 범위가 한국보다도 넓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1961년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시행했다. 이전엔 국민의 30% 정도는 공적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도 기본적인 진료에 한정됐다. 본인부담금도 컸다. 이후 1961년 보험 적용 범위를 전 국민으로 하고 보장 범위도 일반 진료 대부분으로 넓혔다. 1973년 오일 쇼크가 일어날 때까지 국민건강보험의 급여율도 종전 50%에서 70%로 올랐다. 환자 부담률도 낮아졌다. 시마자키 교수는 “(일본의)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정착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한국은 이 제도를 1977년 직장의료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89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더 나아가 일본은 1973년 ‘노인 의료비 무료화’를 시행, 70세 이상 고령자의 의료비를 전액 국가 부담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시마자키 교수는 “일본의 의료제도 사상 가장 큰 실패다.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료는 무료’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이해를 일본에선 ‘복지 원년’이라고 부르지만, 결국 재정 부담과 증세(增稅)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1973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의료비는 1960년대 초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도쿄의 한 택시 운전사는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보험과 같은 안전망이 잘 갖춰진 편이지만, 세금과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 월급의 거의 절반이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개호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 유아사 모토유키(湯淺資之) 준텐도(順天堂)대학 사회보건학부 교수는 “일본의 경제 상황을 보면 개호보험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일본의 개호보험 제도를 다른 나라가 쉽게 도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일본은 감염병과 모자(母子)보건 등에 관한 안전망은 잘 갖춰져 있다”며 “이러한 경험을 다른 나라에 알릴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개호보험 제도는 다른 나라가 그대로 도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 사회’에 접어들었을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NP)이 4만 달러였는데, 동남아시아에서도 비교적 풍요로운 태국의 경우 고령 사회 진입 당시 1인당 GNP가 7000달러였다”고 했다.
 
  유아사 교수는 “일본에서도 개호보험 제도가 처음 시작됐을 때 반대가 심했고, 겨우 정착이 됐다”며 “지속 가능한 제도라고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도입하는 건 무리에 가까운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개호보험을 지속 가능한 제도로 도입하려면 소요 비용을 낮추면서도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 내각부와 재무성 및 후생노동성이 2018년 발표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른 사회보장비의 미래 부담 추정’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의 연금·의료·개호·복지 등 사회보장 비용은 총 121조 3000만 엔이었다. 그런데 2040년엔 이 비용이 최대 190조 엔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일본 정부는 전망했다.
 
개호보험
 
  2000년 4월 1일 시행된 개호보험 제도에 따라 40세 이상 일본의 전 국민은 의무적으로 개호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납부한다. 운영 주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시·정·촌(市町村)이고, 보험료 50%와 세금 50%(국가 25%, 도도부현 12.5%, 시정촌 12.5%)를 통해 운용된다. 피보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방문 간호 및 개호 등의 재택 형태와, 노인복지시설 및 개호의료원과 같은 시설 서비스, 그리고 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에 대한 기능 훈련과 생활 지원 서비스 등이다. 피보험자가 각 시정촌에 ‘개호 인정 신청’을 하면 개호인정심의회를 통해 ‘요개호(要介護·1~5등급)’ 또는 ‘요지원(要支援·1~2등급)’ 판정을 받는다. 이후 개호지원전문원이 필요한 ‘개호서비스계획’을 수립한다. 승인된 서비스는 소득 수준에 따라 일정 비율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다. 본인부담률은 일반 10%, 중간 소득 이상 20%, 고소득자의 경우 30%다.
 
  “정치인,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아야”
 
  이변이 없는 한 한국과 일본 모두 과거의 경제적 번영기를 다시 맞기 어렵다. 오히려 15~64세인 생산가능연령 인구 비율은 2008년 63.8%에서 2070년 52.1%로 급감할 것이라는 게 일본 후생노동성과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전망(2023년)이다. 45년 뒤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의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유엔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2055~60년 사이를 기점으로 한일 양국의 고령화율은 35%를 넘어서고, 이즈음 한국의 고령화율이 일본을 앞지른다. 이에 대해 시마자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가 감소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 사회보장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납니다. 국민건강보험을 예로 들면 모든 국민을 정말로 포괄해야 하는지, 공적 보험 급여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은 아닌지, 급여율을 낮춰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과 같은 논의입니다. 그리고 현역 세대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장기요양) 비용에 충당됩니다. 연금뿐만 아니라 의료와 장기요양도 세대간 부양(현역 세대가 고령 세대를 지원하는 구조)의 한 형태입니다. 앞으로 노인 인구, 특히 85세 이상 고령자가 증가하는 반면 생산 가능 인구는 감소하기 때문에, 현역 세대에서 사회보험료 부담 증가를 억제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에서 이러한 주장을 분명히 내세운 정당도 등장했습니다.”
 
  ―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과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안이한 선택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의료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전체 구조를 제대로 이해한 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의료의 고도화와 고령화의 진행에 따라 의료비와 장기요양 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이하게 공적 의료보험이나 개호보험의 급여 범위를 좁히면 사회보험료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해당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개인 부담이 증가하고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물론 의료와 장기요양의 제공 체계 효율화나 개혁은 필요합니다. 의료와 고령자의 부담 능력에 따라 본인 부담 비율을 올리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보험료나 공적 재원(세금)을 늘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 대안이 있을까요?
 
  “정치가 현실의 부담 문제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은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에게 사회보장 급여와 부담의 전체상(全體像)을 제시하고, 이러한 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정성껏 설명해서 이해와 납득을 구해야 합니다. 국내외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가운데서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민주주의가 얼마나 올바르게 성숙했는지 시험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1 대 1 관리의 장단점
 
일본 개호지원전문원협회 시바구치 사토노리(柴口里則·왼쪽) 회장과 고바야시 히로미(小林廣美) 부회장.
  일본 개호보험 제도에선 개호지원전문원의 역할 비중이 크다. 도쿄도 지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일본 개호지원전문원협회를 방문했다. 고바야시 히로미(小林廣美) 협회 부회장은 개호지원전문원이 개호 대상자를 1 대 1로 관리하는 데 대해 “개호 대상자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호지원전문원은 대상자를 위한 서비스 계획을 작성할 때 개호 등급과는 별개로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지역사회가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개호 대상자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은 없는지 묻자 고바야시 부회장은 “개호지원전문원 혼자 모든 걸 다 떠안지는 않는다. 지원에 앞서 개호지원전문원들이 팀을 구성해서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고야부 모토시(小藪基司) 요코하마시 스스키노 지역케어플라자 소장.
  고바야시 부회장은 다만 “개호지원전문원이 담당하게 되면 지역사회에서도 안심하고 신경을 덜 쓰게 돼서 사회적 교류가 부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아사 모토유키 교수도 “개호지원전문원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서비스 제공을 돕기 때문에 자립 측면에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개호 필요도에 따라 요개호·요지원 등으로 등급을 나누는데, ‘요지원’ 등급의 본래 취지는 자립을 위한 중간 지점이지만, 개호 서비스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시마자키 교수가 언급한 간호사 부족 문제처럼 개호지원전문원도 인력난을 앓고 있다. 시바구치 사토노리(柴口里則) 개호지원전문원협회 회장은 “개호지원전문원 자격은 취득 과정이 까다로운 데다, 간호사 등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부족하다”며 “인재 확보의 어려움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나가와(神奈川)현 개호지원전문원협회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고야부 모토시(小藪基司) 요코하마시 스스키노 지역케어플라자 소장도 “인력 부족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짚었다. 이처럼 인력난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개호지원전문원의 자격 요건도 까다롭고 제공되는 서비스는 체계적이었다.
 
개호지원전문원
 
  일본의 개호지원전문원은 개호 대상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해 주는 1 대 1 총괄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개호지원전문원이 되려면 사회복지사 또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와 같은 보건의료 관련 자격이나 후생노동성에서 인정하는 자격을 보유하고 5년 이상 경과해야 한다. 여기에 개호지원전문원 자격시험도 따로 치러야 한다. 시험 합격 이후엔 강의, 연습, 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개호지원전문원에 해당하는 직역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기능이 분산돼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장기요양기관 직원 등으로 대신한다.
 
  국내에서도 ‘통합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법제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5일 ‘지역사회 통합돌봄 전문가 포럼’을 열고 통합 돌봄에 대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초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했다. 내년 3월 27일 시행될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통합 지원에 필요한 전문 인력의 양성·확보 및 자질의 향상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통합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인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하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정하겠지만, 일본의 개호지원전문원 제도가 참고가 될 수 있다.
 
  “여러 전문가 관점도 제각각”
 
나카시마 야스하루(中島康晴) 레지오노(REGIONO) 그룹 대표.
  스스키노 지역케어플라자에 처음 방문하면 개호 대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기 위한 상담이 진행된다. 한 달에 100여 건의 상담이 이뤄지며 대부분이 개호보험 신청에 관한 내용이라고 고야부 소장은 설명했다. 첫 방문 시 작성되는 개호 관련 상담 기록 양식을 살펴보니, 가족 구성과 개호보험 정보(신청 상태, 자부담 비율, 요양 인정 등급, 유효기간, 희망 서비스 등)을 기입하는 난이 있었다. 이 밖에도 장애 유무, 주거 상황, 기타 보험 및 수급 여부, 기존 병력, 일상생활동작(ADL·이동 식사 배변 목욕 착의 등의 자립 여부) 상태, 시청각 및 언어 등 일상생활 난이도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또 상담 내용을 입력하면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상담이 끝날 때쯤 결과를 보고 개호지원전문원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지난 5월엔 한국의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약 12명의 관계자들이 일본의 지역돌봄 현장을 견학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으며, 9월에도 인천의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한일 연계 이중 돌봄 프로젝트에도 10년 전부터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야부 소장이 건넨 명함엔 한국어도 쓰여 있었다. 그는 “한국에선 개호지원전문원 없이 방문개호 서비스 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사회복지사가 그 역할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차이를 느꼈다”고 했다.
 
  일본에선 민관(民官) 할 것 없이 개호 인력이 부족할지언정 해당 직역에 요구되는 전문성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듯했다. 지역 밀착형 복지 관련 계열사와 법인을 두고 있는 레지오노(REGIONO) 그룹의 나카시마 야스하루(中島康晴) 대표는 “개호복지사(개호지원전문원과는 다른 자격증) 자격을 가진 직원이 많은 시설엔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가점 등의 이점이 부여된다”고 했다. 나카시마 대표도 사회복지사·정신보건복지사·개호복지사 등 3개의 국가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오카야마, 히로시마 등에서 40개의 크고 작은 개호 시설을 운영하는 그는 “같은 문제를 바라보더라도 각 전문가들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개호 대상자에게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매달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에 참여한다”고 했다.
 
 
  “정년 70세 연장 목소리도”
 
신카이 쇼지(新開省二) 일본 응용노년학회 이사장.
  일본이 고령화를 바라보는 인식은 확실히 한국과 달랐다. 일본 응용노년학회(日本應用老年學會·SAG Japan)가 주관하는 노년학 민간 자격 ‘제론톨로지(Gerontology)’ 검정시험이 존재한다. 사지 선택형 50개 문항 중 70점(35문항) 이상 맞추면 합격으로 ‘제론톨로지 컨시어지(고령사회전문안내인)’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교재는 목차와 6개장(章) 121 페이지로 구성돼 있었다. 고령사회의 이해, 고령기의 건강, 고령기의 사회 교류, 노화 예방 및 개호 예방, 고령기의 사회보장, 치매의 이해와 공생 등 내용이 담겼다. 합격자의 직종은 금융·보험업 종사자 18.2%, 의료·복지업이 16.4%, 교육·학술 관련 12.7% 등이었다. 응용노년학회 측에 따르면 일본의 한 유명 은행에선 고령자 고객에게 신뢰와 안심을 주기 위해 제론톨로지 시험에 합격한 직원의 명함에 이를 기재하고 있다고 한다.
 
  신카이 쇼지(新開省二) 응용노년학회 이사장은 노년학에 대해 “의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이 융합된 학문”이라며 “고령자를 비롯한 모든 세대의 삶의 질(QOL)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지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론톨로지 자격 활용 범위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하기와라 마유미(萩原眞由美) 일본사회보험출판사 고문은 “소학교(초등학교) 등에서는 노인들이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해서 세대간 간극 해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신카이 이사장은 “나이가 든다는 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쇠퇴기라고도 하지만,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을 예로 들면, 60세에서 65세로 늘어났고 이젠 정년을 70세로 하자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애현역’
 
  일본엔 ‘생애현역’이라는 단어가 있다. ‘평생 현역’이라는 의미로, 나이에 관계없이 건강하게 일하며 사회에 지속적으로 공헌한다는 의미다. 요코하마시 가나자와(金澤)구 소재 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 ‘이플러스’를 찾아갔다. 공익재단법인 요코하마시 실버인재센터가 연계한 고령자 일자리 시설이다. 시에서 설립한 실버인재센터는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월 10일 이내 또는 주 20시간 미만의 가벼운 일자리를 찾아 준다. 주요 일거리로는 맨션(아파트) 공용 부분 청소, 슈퍼마켓 내 업무, 가지치기와 제초, 가사 보조, 아침 시간대 초등학생 돌봄 등이 있다. 장기적인 일자리도 있고 단발성에 그치는 곳도 있는데, 구직을 하는 고령자의 요청에 따른다. 경영 상담 및 컴퓨터 관련 업무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력을 갖춘 이들은 이를 고려해 일자리를 주선하기도 한다.
 
  이시카와 지히로(石川千裕) 요코하마시 실버인재센터 사업기획담당주사는 “요코하마는 도쿄에 인접한 베드타운으로도 발전해 왔으며, 최근엔 사무직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회원으로 등록해 데스크 워크(사무 업무)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모든 회원이 근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월 3일 현재 실버인재센터에 등록한 고령자 회원 수는 1만 112명이다.
 

  우에하라 가쿠(上原學) 이플러스 시설장은 “처음엔 도시락을 만드는 일자리로 시작했다”며 “액세서리나 양털 공예품을 만드는 일자리, 빵을 포장하는 일자리 등을 의뢰받았으며 현재 가방 주머니의 마무리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시카와 주사는 한 고령의 근무자로부터 받은 쪽지를 보여 줬다. 쪽지엔 “이용자의 웃음을 소중히 여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바움쿠헨(Baumkuchen·나무 나이테 같은 단면의 롤빵) 포장 상자를 만드는 일을 돕던 가사 아쓰코(75)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간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 정도였는데, 이곳에 와서 사회적 소속감과 새로운 환경을 얻게 됐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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