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 내용은 커녕 명단조차 공개 안 하는 한국… 일본은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회의록·회의자료 전부 공개
⊙ 의대 증원 2000명 근거 못 대는 한국… 일본은 과학적으로 의사 수급 추계
⊙ 超고령화 맞춰 병상 재편 필요… 전체 2%에 불과한 회복기 병상 늘려야
⊙ 의대 증원 2000명 근거 못 대는 한국… 일본은 과학적으로 의사 수급 추계
⊙ 超고령화 맞춰 병상 재편 필요… 전체 2%에 불과한 회복기 병상 늘려야

-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최한 ‘의료 정상화를 위한 전국 의사 궐기대회’에서 의대생 및 의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의협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운영 등을 비판하고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사진=조선DB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기자는 2024년 10~12월호 석 달치에 걸쳐 한국 의료정책의 특징과 역사를 분석한 바 있다. 이번엔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점을 살펴보자.
정부 예산을 보면 한국은 ‘복지부의 나라’다. 복지부의 2025년 예산은 125조4909억원이다. 정부 총 지출 예산의 18.5%로 다른 어느 부처보다도 많다. 거기다 해마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애초부터 복지부터 의료까지 다 껴안은 공룡 부처인 데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인 관련 예산이 해마다 늘어나고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과 복지 지원이 확대되는 탓이다.
보건복지부는 장관 아래 2명의 차관을 두고 있다. 1차관은 기획조정 및 복지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2차관은 보건의료정책을 담당한다. 의료개혁을 이끌어 온 박민수(朴敏守) 2차관과 소관 부서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바로 거개가 의료를 전공하지 않은 행정고시 출신 관료라는 점이다.
조규홍 장관은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 관료 출신이다. 박민수 차관 역시 경제학을 전공했고, 복지부에서 주로 보험정책, 복지정책 등을 담당했다. 정윤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무역학을 전공하고 행시에 합격한 행정관료다.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행정학, 의료개혁추진단 의료개혁총괄과 강준 과장은 외교학, 강슬기 과장은 사회학을 각각 전공했다. 유일하게 유정민 과장이 의대 출신이다.
복지부 의료정책 부서의 첫 번째 특징은 이렇듯 의료 교육을 받아보거나 의료 현장을 체험한 적 없는 비전문가들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면허 관리 안 놓으려는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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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박민수 2차관. 둘 다 경제학을 전공했다. 사진=조선DB |
의료계처럼 전문교육과 자격증 취득이 필수인 대표적인 직역이 법조계다. 판·검사와 변호사 역시 전문교육과 자격시험(변호사시험)을 통과해야 될 수 있다. 법조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법무부를 살펴보자. 기획조정실장, 검찰국장, 대변인 등 주요 보직을 검사 출신들이 맡고 있다. 법 전문가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법조인 면허 관리만은 법무부가 직접 하지 않고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자율 관리한다.
다른 부처는 어떨까? 역시 군사(軍事) 관련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군사보좌관, 정책기획관, 방위정책관 등은 모두 군 출신이다.
의료정책 결정과 집행부터 면허 관리까지 의료 비전문가가 도맡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는 외국을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英美는 의사·의사단체가 자율 규제
전 세계 각국의 의료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유럽식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모든 의료를 공급하고 관리한다. 영국이 대표적인 예다. 진료비가 무료인 공공 의료기관과, 공공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병원이 함께 존재한다.
둘째는 미국식 자유시장이다. 전국민건강보험이 없고 민간 시장 위주로 돌아간다.
셋째가 일본과 대한민국 의료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정부가 수가(酬價)를 통해 의료 지출을 통제한다.
의료 시스템의 형태는 달라도 한국을 제외하고 유럽·미국·일본의 공통점이 있다. 의료정책, 특히 면허 관리에 의사들이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州)마다 있는 ‘SMB (State of Medical Boards)’에서 의사를 비롯한 보건의료인의 면허를 총괄 관리한다. 미국 전역에서 약 70개의 SMB가 운영되고 있다. SMB는 면허 발급과 갱신, 의사 징계 등을 담당한다. 면허 갱신 과정에서 문제가 감지되면 조사 결과가 SMB 이사회에 제출된다. 이사회 멤버 과반수가 의사다. 사실상 의사들의 자율 규제다.
영국은 GMC(The General Medical Council)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GMC는 면허 발급·관리를 담당하는 독립된 기구다. 의사를 위한 진료 표준안을 마련하고, 의사 교육과 훈련을 관리한다. GMC에는 800명 이상의 RO(Responsible Officer)가 소속되어 영국 전역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의사 면허 재인증을 감독하고, 의료행위의 적합성(fitness to practise)을 검토한다. RO는 거의 예외 없이 경험이 많은 임상의사가 맡는다. 환자 안전, 진료 역량, 전문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임상적 이해와 경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의사 자율 규제다.
日, 후생노동성 산하 기구서 의료인 자격 심의
자율 규제란 조직화된 전문가 집단이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뜻한다. 자율 규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정부 규제와 비교해 비용 대비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정부가 모든 전문직종의 전문성과 정보를 확보해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순한 예로, 의료사고 발생 시 판검사나 행정학을 전공한 고시 출신 관료가 전문성을 갖고 의료인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경험 많은 의사들이라야 한다.
한국은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약사·한의사부터 의료기사(技士) 면허까지 담당한다. 복지부는 보건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의 적정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해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데, 면허 관리 기구는 아니다. 행정처분 대상 중 구체적인 사정을 봐서 재량을 발휘할 필요성이 있는 사안만 보는 기구다.
우리나라와 의료 시스템이 유사한 일본은 면허 관리를 어떻게 할까? 일단 우리의 복지부격인 후생노동성에서 면허를 발급한다. 후생노동성 산하에는 상설 자문 기구인 의료인자격심의회(醫道審議會)가 있다. 여기에서 의사 및 치과의사의 면허 발급·정지·취소 등 면허 관리와 관련된 사항을 심의한다. 심의 결과는 후생노동성 장관에게 권고되며 최종 결정은 장관이 내린다. 심의회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법률가, 시민단체 관계자 등도 들어가 있다. 이것만 봐선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엔 의사들이 많다.
日 후생노동성엔 의사 3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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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봉식 대한회복기재활학회 이사장. |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일하는 의사만 300명이 넘습니다. 우리로 치면 보건의료정책실을 비롯한 주요 부서의 국장급을 다 의사 출신들이 맡고 있어요.”
후생노동성에 의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건 채용 공고만 봐도 알 수 있다. 2025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의계기술직(醫系技官) 채용 예정 인원은 63명이다. 2023년과 2024년에도 각 63명씩 채용했다. 의계기술직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 면허를 보유한 이들이 지원할 수 있다. 감염병 정책, 의료제도 기획, 의약품 승인 등 다양한 보건의료 분야 정책 수립과 실행을 담당하는 자리다.
한국은 어떨까? 복지부에 의사가 들어가려면 행시에 합격하거나 민간경력 특별채용(민경채)을 통과해야 한다. 지난 3월 복지부에 배치된 5급 민경채 신입 사무관은 총 4명이다. 이 중 의사 출신은 없다. 바늘구멍을 뚫고 민경채에 붙어 입직(入職)한다 해도 그만두는 사례가 잦다. 일본 후생노동성처럼 주요 국(局)의 책임자들을 의사들이 맡거나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오래 근무할 유인(誘因)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유럽·미국 등 OECD 선진국들은 제도적으로 의사의 자율적인 면허 관리를 규정해 놨고, 일본은 인적 구성을 통해 의사집단이 의료정책과 면허 관리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 한국만 고시 출신 복지부 공무원들이 움켜쥐고 있다.
변호사는 자율 규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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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
지역의사회 차원에서는 2019년부터 ‘전문가 평가제’를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이다.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린 서울시의사회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72건의 민원을 해결했다. 의협 중윤위와 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의사들의 자율 규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은 예산과 한정된 조사권에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의협은 지난 2021년부터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복지부는 의료인의 자율적인 면허 관리 기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복지부가 면허 발급 및 관리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실효적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면허 관리 권한을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제 편 감싸기’를 할 것 아니냐고도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대한변협은 변호사법에 따라 변호사법을 위반한 변호사를 징계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변협의 변호사 징계 건수는 날이 갈수로 늘고 있고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200건을 넘어섰다. 1996년 변협이 법무부로부터 징계권을 이관받은 이후 최다 건수다. 최근 10년만 보면 4배로 급증했다. 변호사 수 증가도 원인의 하나이겠지만, 자율 규제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지부는 미국, 영국인들은 자율 규제를 할 수 있고 한국인은 할 수 없다고 보는 걸까? 같은 전문가 집단이라도 법조인은 자율 규제를 할 능력이 있고 의료인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걸까?
복지부 의료정책의 세 번째 특징은 사실관계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서 내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 축적하는 과정이 없는 듯하다.
서남의대가 왜 폐교됐는지 알면 남원에 공공의대를 세우자는 주장을 하기 힘들다. 1998년 정부가 진료권 제도를 갑자기 없앤 후 지방 의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철저히 분석했다면, 지방 의료를 살리겠다며 지역 거주 의사에게 월 100만원어치 지역상품권을 제공하겠다는 따위를 유인책이랍시고 발표할 수는 없다. 진료권 제도는 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 내 병·의원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의료의 지역 간 균형 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니 역대 의료개혁특위는 계속 실패해 왔다. 앞선 김대중·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의료개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역대 정권들은 정치적 대결 하듯 의료개혁 문제를 다뤘다. 통계에 기반해 장기간 논의를 이어 나가는 게 아니라 ‘정권이 이기나 의사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단칼에 승부를 내려 했다. 윤석열 정권은 그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일명 ‘문재인 케어’를 실행했다. 2인실 등 상급 병실 급여화, 선택진료비 폐지, 간병비 급여화가 골자였다. ‘문케어’ 이후 의료비가 폭증했다. 세계 1위의 의료비 증가율이었다. 구체적으로는 2017~22년 문케어에만 26조4912억원이 투입됐다. 심지어 간병비 급여화는 아직 실행도 못 한 상황인데도 그렇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의 말이다.
“의사들은 의료 소비가 제대로 통제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을 실시하면 의료비 폭증이 감당 안 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이 밥그릇 타령한다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보세요.”
문케어대로 간병비 급여화까지 이뤄지면 건강보험 재정은 어떻게 될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간병비 소요 비용을 9조원으로 분석했다. 건강보험은 그렇잖아도 만성 적자 상태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지원금 12조원을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10조3000억원 적자다. 간병비 급여화가 되면 적자 규모가 20조원 가까이로 늘어난단 얘기다.
밀실에서 깜깜이 결정
이번 의대 증원도 그렇다. 도대체 왜 갑자기 2000명을 증원해야 하는지, 지금까지 정부의 누구도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심지어 의대정원배정위원회의 명단과 회의록은 비공개다. 의료개혁특위의 회의자료는 물론 전문위원회·소위원회 명단까지 비공개다. 이건 명백히 행정절차와 정보공개법 위반이다. 이번 의료개혁 사례는 면밀히 연구되어 ‘정부 실패의 본보기’로 행정학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밀실에서 깜깜이 결정 하냐’는 비판에 복지부의 ‘반응’이 나온 적이 있다. 2024년 8월 13일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 정경실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전문위원회는 결정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전문가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함께 논의해 검토하는 곳이다. 전문가적 소신에 따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야 하는 위원회에서 (위원들의 발언이) 공개되면 개인 소신에 대한 비판 우려로 발언이 제한받을 수 있다. 중간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결정되지 않은 사항이 정책적으로 결정된 것처럼 오해될 소지도 있다. 정제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때 공개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매우 독특한 생각이다. 나라의 백년지대계를 좌우할 정책을 결정하면서 소신을 공개할 자신이 없다면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게 상식이다. 국민의 노후를 좌우할 정책에 영향은 미치면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덕선 원장도 “그러고도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니, 오만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회의록 공개도 잘 안 한다. 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의료개혁’ 배너를 클릭하면 보도자료만 잔뜩 올라와 있다. 어쩌다 한번 공개하는 회의록이라는 것도 어이없는 수준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회의 결과만 나와 있지, 누가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는 거의 나와 있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부처가 작성한 회의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日,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
일본은 어떨까? 일본 정부는 1983년 ‘장래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시작으로 ‘의사 수급의 재검토 등에 관한 검토회’(1993년),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1997년) 등 후생노동성 산하에 의사 수급을 결정하는 전문가 조직을 운영해 왔다. 회의록과 논의 과정은 낱낱이 공개된다. 홈페이지에서 누구라도 찾아볼 수 있다. 검토회의 결정이 끼치는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 때문이다.
의료 종사자 수급에 관한 검토회 의사수급분과회(醫療從事事者の需給に關する檢討會 醫師需給分科會)는 2015년 1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약 6년간 40차례 이상의 회의를 열었다. 2022년 1월 분과회 자료를 보면 전체 위원 22명 가운데 의료계 인사가 17명으로 전체의 77%다. 그밖에 지방정부, 경제학자, 의료 컨설팅 회사, 언론인, 복지시설 관계자, 행정학자, 시민단체 등에서 참여한다.
일본은 의사 수급 추계 과정도 그야말로 과학적이다. 후생노동성이 2020년 발표한 〈2020년 의사수급추계결과(令和2年醫師需給推計の結果)〉를 보면 일본 국내 의사 수요와 공급을 2040년까지 예측하고 있다. 이 자료는 의과대학 정원 설정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보고서를 살펴봤다.
‘작성 취지’를 이렇게 명시했다. “의사, 치과의사, 약사 통계 및 의료기관 통계 등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2021년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향후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의사 노동시간 개혁, 여성 및 고령 의사의 근무 조건 변화 등도 고려해야 한다.”
①우선 의사 공급을 추계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면 이렇다. 의대 정원 9330명을 유지한다고 봤을 때 의사국가시험 합격률(신규 졸업자 약 94%, 재응시생 약 61%)과 재응시율, 등록률(100%), 생존율과 취업률을 반영한다. 취업률은 연령 및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여성은 경력 단절로 30~40대 취업률이 급감한다. 이 점도 전체 추계에 반영한다. 해외 의대 졸업자 수의 증감도 고려한다.
②그런 다음 의사 수요를 예측한다. 입원, 외래, 요양 등 의료 서비스 수요에 기반해 추산한다. 병상수, 외래 환자 수, 인구 구조 변화를 고려해 의료 수요를 계산한다. 의사 노동시간 제한의 경우 주 55시간, 주 60시간, 주 78.75시간의 3가지로 가정해 시나리오를 짜본다. 각 의료기(급성기, 회복기, 만성기 등)별 병상당 의사 수도 설정한다. 외래 진료, 방문 진료, 고령자 시설 진료 등 진료 형태에 따라서도 별도로 예측한다.
③1번과 2번에 기반해 수급 균형 시점을 예측한다. 보고서는 의대 정원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수요-공급 균형 시점은 2029~32년 사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2027년경 OECD 평균(295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령 의사의 은퇴는 완만해 급감이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④비(非)임상 분야의 의사 수요도 계산한다. 연구, 산업의학, 행정, 제약회사, 국제보건 분야 등이다. 2040년까지 총 1만3790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체적으로는 연구교육 6100명, 산업의 2900명, 행정기관 2100명, 국제협력·보건 분야 720명 등이다.
⑤코로나-19의 영향도 고려했다. 코로나로 인해 환자의 진료 행동이 변화한 점, 새로운 감염병 발생 시 대응할 인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상의 논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 준 후 ‘현재 의대 정원 9330명 유지 시 중장기적으로 공급 과잉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지역 격차와 진료과(科) 편중, 여성 의사 경력 단절 등은 과제로 지적했다.
회의록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
보고서는 단순히 보고서로 끝나지 않는다. 보고서의 지적 후 후생노동성은 의료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의사 양성 과정을 통한 편재(偏在)대책검토회’를 신설했다. 일본 내 의사의 지역 간, 진료과 간, 병원·진료소 간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하고자 지난해 설립했다. 역시 회의록이 공개되어 있다.
첫 회의 개최일은 2024년 1월 29일, 좌장은 엔도 히사오(遠藤久夫) 가쿠슈인대학 총장이다. 의료정책과 보건의료 전문가다. 참여 위원은 의료계, 학계, 지자체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편재대책검토회는 이름 그대로 의사 수급 현황 및 편재 실태를 분석한다. 의사 수급의 지역별, 진료과별, 병원·진료소별 불균형 실태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는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의 정원을 조정해 의사의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한다. 앞의 〈2020년 의사수급추계결과〉 보고서가 기본 자료다.
지역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지역의료 교육을 강화하고, 의사의 지역 배치와 근무 환경을 개선해 지역의료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 2024년 1월부터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각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논의했다.
〈제1회(2024년 1월 29일): 의사 수급 현황 및 편재 실태 분석, 향후 과제 및 추진 방안 논의
제2회(2024년 2월 26일): 의과대학 정원 조정 방안 및 지역 배치 전략 논의
제3회(2024년 3월 27일): 지역의료 교육 강화 방안 및 의사 배치 정책 논의
제4회 (2024년 4월 26일): 의사 근무 환경 개선 및 지역의료 질 향상 방안 논의〉
초고령화에 맞춰 병상 재편해야
한국 의료엔 시급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의대 증원 2000명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틈이 없다. ‘OECD 보건통계 2023’을 보면 우리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OECD 평균 5.9회의 2배가 훨씬 넘는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 역시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OECD 평균 4.3개와 비교하면 거의 3배다. 병상수에 비례해 의료비 전체 지출은 늘어난다.
병상수는 많은데 기능별 병상수는 괴상할 정도로 불균형적이다. 전체 병상의 절반 이상이 급성기에 편중되어 있다. 인구 1000명당 급성기 치료 병상이 7.3개로 OECD 평균(3.5개)의 2배가 넘는다. 한마디로 의료 중독 국가다.
초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 의료의 현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이상이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시급한 사안부터 추려 보면 이렇다.
첫째, 초고령화에 맞춰 병상을 재편해야 한다. 의아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몇십 년 살아왔고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인 한 프랑스인 수사(修士)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프랑스에 가서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은 수술만 해놓고 수술 후 재활치료는 잘 안 돼서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봉식 이사장에게 사실인지 물었다. 우 이사장의 답이다.
“우리나라는 회복기에 있는 환자를 재활병원에 입원시키는 것도 힘듭니다. 무릎 관절 수술한 분도 회복기 환자로 입원시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복지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됐습니다. 넘어져서 뼈가 다친 노년층도 재활치료를 받으면 걷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활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요양병원에 입원부터 시키면 누워서 자리보전하다 돌아가시게 되는 거죠.”
韓, 회복기 병상 단 2%
유원섭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센터장은 2024년 8월 ‘지역사회 회복기 병원 역할 강화’라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노인 인구는 일반 인구에 비해 생리적 기능이 감소해 손상, 질병, 수술 치료 이후 더 긴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노인 인구에게는 급성기이후의료(Post-Acute Care·PAC)가 매우 중요하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적절한 PAC 제공 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메디케어(Medicare)는 안정된 환자의 조기 퇴원과 퇴원 이후 회복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PAC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2014년부터 회복기 병상을 집중적으로 늘려 왔다.〉
일본은 의료법에 병상의 기능을 ‘고도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로 구분해 놨다. 회복기 병상의 확대를 통해 요양병원 중심의 낭비적 구조를 효율화하고 있다. 그 결과 고도급성기·급성기·만성기 병상은 모두 감소했고 회복기 병상만 증가했다. 회복기 병상은 2015년 대비 6만9000개 증가한 19만9000개로 전체 병상의 17%에 이른다. 유 센터장의 보고서를 보면,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필요한 회복기 병상을 37만5000개(전체의 31%)로 예상하고 회복기 병원 추가 확대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의 회복기 병상은 전체 병상의 2% 수준이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회복기 재활병상은 19.8병상, 일본은 77.3병상이다.
우봉식 이사장은 “일본은 올해 ‘회복기’를 ‘포괄기’로 바꾸며 또다시 병상 구조를 효율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맞춰 병상을 조정하겠다는 것다.
한국의 사정이 일본보다 느긋할까? 한국은 2000년 11월 공식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7년 만인 2017년 8월 고령사회에, 다시 7년 4개월 만인 지난해 12월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까지 걸린 기간은 7년 4개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고 있는 나라다. 참고로 일본은 고령에서 초고령 사회로 가는 데 10년 걸렸다.
진료권 제도 부활 검토해야
둘째,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 이건 천하 없어도 수가 조정과 의료소송 체계 개편밖에 답이 없다.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려 봤자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졸업하고 미용 클리닉에서 보톡스 주사 놓는다.
영국을 보자. 영국 병원의 90%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의 공공병원이다. 영국의 보건의료 예산이 345조원인데 이중 약 4.5조원을 의료분쟁을 위해 따로 떼어 둔다. NHS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을 이 예산으로 해결한다. 영국에서도 한 해 1만5000건 정도의 의료소송이 일어나지만 의사가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의협 산하에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있다. 의료사고 발생 시 피해를 보상해 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개업의의 약 3분의 1이 가입해 있다. 배상 한도는 5억원인데 최근 판결 추세를 보면 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3년엔 뇌성마비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과 의사 A씨가 12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셋째, 지역의료 불균형 문제다. 여러 가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데 진료권 제도 부활도 그중 하나다. 한국처럼 지역 제한 없이 무방비로 진료권을 풀어 놓은 나라는 실질적으로 필리핀 정도다.
일본도 진료권 제한이 없지만 일본의 의료 서비스 이용 행태를 들여다보면 진료권 제도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국토가 길고 교통비가 비싸서 진료권 제한이 있든 없든 1차 진료는 기본적으로 본인 거주지에서 단골 의사에게 받는 식이다.
미국은 한국과 의료 환경이나 이용 체계가 아예 다르다. 자신이 속한 특정 보험 플랜에 따라 지정된 병원·의사 그룹만 이용 가능한 경우가 많다. 캐나다엔 주치의 제도가 있어서 1차 진료는 거주지의 주치의에게 받는다. 주치의의 진료 의뢰를 거쳐야만 다른 지역의 병원에 갈 수 있다.
복지부동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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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2일 환자가 없어 텅 빈 성남시의료원 내부. 매년 400억~500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사진=조선DB |
복지부 일부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월간조선》 2024년 11월호는 복지부에서 대형 로펌으로 옮겨 가는 공무원들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대형 로펌으로 가는 중간기항지로 보일 정도다. 얼마 전까지 국민을 대변해 약가(藥價)를 협상하던 공무원이 얼마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글로벌 제약사들 편에서 약가 협상을 돕는 식이다.
1983년 일본에서 ‘의료비 망국론’이 제기됐다. 요시무라 히토시 후생노동성 보험국장은 “노인 의료비 급증으로 일본이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용기 있는 발언이다. 이후 일본 정부는 의대 정원 축소와 병상 수 감축으로 방향을 바꿨다. 도도부현(都道府縣)별로 지역의료 계획을 다듬고, 병상수 목표치를 설정해 지키도록 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공개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면 소신껏 의견을 못 낸다’며 밀실로 숨어들어 갔다. 한국 의료정책의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