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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 死鬪의 현장을 가다

일선 소방서

엉뚱한 신고에 출동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심하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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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복 입고 간접체험한 ‘죄의 代贖’
⊙ 미세먼지보다 더 유독한 분진과 싸우는 화재감식반원
⊙ 민원인 상대하는 내근직의 고충 “법 위에 민원인 있다”
⊙ “재산등록ㆍ신고 대상 기준 불합리… 대상 계급, 상향 조정해야”
2007년 9월 15일 대구 북구 검단동 검단공단 내 (주)한일합섬 대구공장에서 화재가 발생,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DB
  1990년대 초반 개봉한 〈분노의 역류〉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영화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화학공장에서 벌어진 화재 신(scene)이다. 화마(火魔)에 휩싸여 추락 위기에 처한 두 주인공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다.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이들은 짧은 대화를 나눈다.
 
  “Let me go.(가게 놔줘.)”
 
  “You go, We go.(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 거야.)”
 
  두 사람 모두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이 장면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You go, We go”는 의리를 상징하는 명대사로 기록됐고, 그 덕분에 소방관 직업을 동경(憧憬)하는 젊은이들도 부쩍 늘었다.
 
  흔히 소방관 하면 화재진압만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들의 업무는 단순하지 않다. 구조와 구난(救難), 응급의료, 소방시설 허가 등을 포함하면 소방관의 업무 범위는 매우 넓다. 최근엔 생활안전구조의 일환으로 벌집 제거, 고드름 제거, 애완견 수색, 야생동물 포획 등 잡다한 민원 업무도 증가하는 추세다.
 
  기자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소방관들의 이면(裏面)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불 끄는 소방관’은 가장 표피적이면서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고뇌하고 번민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 그 내면(內面)의 세계로 떠나보자.
 
 
  “소방행정엔 인적·물적 자원 뒤따라야”
 
강서소방서 대원들이 주야 근무자 교대를 위해 소방서 앞에 도열해 있다. 사진=월간조선
  지난 2월 22일 서울 강서소방서를 방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소방서 1층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심폐소생술) 교육 장면이었다. 초등학생 10여 명이 강사 지시에 따라 마네킹을 이용한 실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서소방서의 상설 CPR 교육은 꽤 유명하다. 2015년 4월 이곳에서 CPR 교육을 받은 한 초등학생(여)이 쓰러져 있던 5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살렸기 때문이다. 강서소방서에서 CPR 교육을 받은 지 불과 4시간 후 일이었다.
 
  소방서 2층에서 만난 황정선(52·소방위)씨는 홍보·교육 업무를 맡고 있다. 화재진압부터 소방행정 업무까지 두루 거친 26년 차 베테랑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참사(慘事) 현장에도 투입된 적이 있다.
 
  황씨는 “소방행정에는 다른 공무원 조직과 달리 물적(장비)·인적 자원이 고르게 지원돼야 한다”며 “최근엔 생활안전 등의 사례도 증가해 소방행정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황정선씨의 말이다.
 
  “인적 구성만 갖춰지면 무리 없이 돌아가는 다른 공무원 조직과 달리, 우리 소방 조직은 장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장비가 확충되지 못해 사비(私費)를 들여가며 근근이 충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담배소비세의 20%를 재원으로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2015년)하면서부터 장비 보급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소방 관련 법만큼은 소급적용 이뤄져야”
 
강서소방서가 구비하고 있는 ‘화학차’. 이 트럭은 전천후 화재진압 장비로 무인 放水砲, 포말 분사기 등이 부착돼 있어 차량 내부에서도 화재진압을 할 수 있다. 사진=월간조선
  황정선씨는 ‘소방안전법’ ‘다중(多衆)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을 언급하며 “소방 관련 법률만큼은 소급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이다.
 
  “소방 관련 법률이 정비되기 전 완공한 오래된 건물 중에는 소방시설이 미비한 곳이 많습니다. 대개 이런 곳에서 화재가 많이 납니다. 노래방, 유흥업소 같은 다중이용업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업주들은 ‘과도한 규제’라며 소방시설 설치 및 점검에 반발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그러다가 화재가 나면 전부 본인 책임으로 돌아올 뿐입니다. 법률의 소급적용을 통해 미비된 곳의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완비·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황씨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를 예로 들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고시원이 있던 건물은 소방법을 정비하기 전에 완공됐다. 으레 있어야 할 ‘소방안전관리자’도 지정돼 있지 않았다. 소방안전관리자는 화재 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한다. 황정선씨는 “고시원이 다중이용업소란 점을 감안할 때 법률을 소급적용했더라면 7명의 아까운 인명(人命)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브리핑을 청취한 뒤, 황씨의 안내로 소방 장비들을 둘러봤다. 사다리차를 비롯해 구조공작차, 펌프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유명 외제차 브랜드 엠블럼이 부착된 대형 트럭이었다. ‘화학차’로 불리는 이 트럭은 물 1만t, 폼(foam·화재 진압용 거품) 1.2t, 이산화탄소 800kg을 실을 수 있는 전천후 화재진압 장비다. 무인 방수포(放水砲), 포말 분사기 등이 부착돼 있어 차량 내부에서도 화재진압을 할 수 있다.
 
 
  낑낑거리며 착용한 방화복
 
방화복을 착용하는 기자(왼쪽)와 다 착용한 후의 모습(오른쪽). 사진=월간조선
  장비를 설명하던 황정선씨가 갑자기 “방화복을 착용해보자”고 제안했다. 2017년 폭염이 한창이던 어느 날, 모 방송국에서 방화복을 입고 화재진압을 하는 소방관의 고충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삼복더위에 20kg의 방화복을 입고 화재진압에 나설 경우, 내부 온도는 50℃에 육박한다고 해당 방송국은 전했다.
 
  황씨는 “출동 후 차 안에서 30~40초 이내에 방화복을 완전히 착용해야 현장 도착 후 바로 임무에 돌입할 수 있다”며 “간접체험이라도 해보라”고 권했다. 순간 ‘전방에서 완전 군장에 행군, 구보도 해본 예비역인데…’라는 생각이 스쳤고, 자신만만하게 그의 제안에 응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소방차 안에 착석한 뒤 방화복 특수 안전화에 양 발을 밀어 넣었다. 안전화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해 시작부터 낑낑댔다. 방화복 멜빵을 어깨에 걸치고 결속한 뒤, 주춤거리며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소방차의 비좁은 내부도 문제였다. 보통 뒷좌석에 세 명이 앉는데, 무거운 방화복을 조건반사적으로, 그것도 40초 이내에 좁은 공간 안에서 착용해야 한다니….
 
  더 큰 문제는 방화복을 착용한 후였다. 산소통 때문인지 거동이 부자연스러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헬멧은 가뜩이나 무거운 몸을 더욱 짓누르는 듯했다. 산소통과 헬멧을 연결하니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문득 방화복은 소방관들에게 ‘십자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무겁고도 엄숙한 소명을 뜻한다. 소방관들은 하루하루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화마와 싸운다.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대신 죄를 속죄함)해야 하는 숙명이 그들에게 지워져 있는 건 아닐까.
 
  방화복을 벗고서 소방관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숙소로 향했다. 소방서 규모에 비해 숙소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전방 군 부대의 내무반 같은 느낌을 줬다. 다행히 침상 위에 간이침대가 서너 개 놓여 있어 휴식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소방관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건 바로 체력이다. 최근 몇 년간 ‘몸짱 소방관’ 달력이 유행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체력단련에 매진한다. 그 덕분에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한다. 강서소방서에는 곳곳에 체력단련을 위한 공간이 있다. 근력을 강화하는 각종 무산소 운동기구를 비롯해 탁구장 등이 마련돼 있어 틈틈이 체력을 기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소방관들의 이런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본업에 매진하지 않고 논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재가 항시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틀 동안 소방서에 상주하며 화재 현장을 포착하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화재 이외의 다른 출동이 아예 없는 날도 간혹 있다. 이들에게 체력단련은 ‘허송세월’이 아닌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의 일환이다.
 
 
  순박하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들
 
  기자는 이틀 동안 강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20여 명을 밤늦게까지 인터뷰했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나름의 결론 한 가지를 내릴 수 있었다. 그들은 순박하지만 할 말은 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는, 평범하면서도 강인한 사람들이었다.
 
  구조대장 조혁연(48·소방위)씨는 15~16년 전 서울 여의도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꺼냈다. 7층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다가 화재가 발생했는데, 10층 이상의 상층부에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사고였다. 7층에서 문을 열어놓고 대피하는 바람에 유독가스가 상층부로 유입돼 주민들이 질식한 것이다. 조씨가 전하는 당시 상황이다.
 
  “막 뛰어 올라갔더니 아파트 계단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다른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 나온 소방관이 와 다른 한 명에게도 산소마스크를 씌웠습니다. 그런데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씌운 아주머니 밑에 꼬마가 깔려 있었던 겁니다. 그 순간 아이한테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정신없이 1층으로 뛰었습니다. 세 사람 중 그 아이만 살 수 있었습니다.”
 
  화재진압 담당인 오쾌봉(54·소방위)씨는 “소방시설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공사 중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큰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며 마곡동에서 발생한 11층짜리 건물 화재사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화복을 착용하고 10층까지 올라갔는데 엄청 힘들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그랬을 겁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사다리차가 있더라도 그 정도 고층이라면 사람이 뛰어 올라가야 합니다.”
 
  오씨는 “소방관들이 일반 민원 업무 등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오쾌봉씨의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소방관의 업무 분업(分業)이 확실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닙니다. 자신이 맡은 고유 업무를 하나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합니다. 업무에 조금 숙달될 때쯤 자리를 이동하거든요. 그럼 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하니까 직원들이 힘들어하죠. 업무를 계속 늘리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여성 소방관의 고충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소방관은 유해진(43·소방장)씨였다. 남편도 소방관인 유씨는 화재 조사와 감식 업무 전문가다. 이미 다 타버린 화재 현장을 헤치며 발화(發火) 지점을 찾아내 화재 원인을 분석하는 게 주 임무다. 냉철한 분석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서인지, 유씨는 자기 주관이 뚜렷해 보였다.
 
  유해진씨는 “외국의 경우 화재조사감식반원은 화재진압이 다 이뤄진 후에 투입되지만, 우리는 화재 때부터 현장에 투입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과 우리나라의 극명한 차이 중 하나는 화재조사감식반원에게 제공되는 보호 장비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감식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3~4시간 지속되는데, 보호 장비가 없다 보니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미국 ‘화재폭파조사관’ 자격증을 취득했다. 미국에서는 화재에 따른 분진(粉塵) 등 유해물질이 눈이나 피부에 닿지 않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유씨는 “화재진압 후에 더 많은 유해물질이 방출된다”며 “감식반원들은 미세먼지보다 더 심한 유해물질을 흡입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감식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 소방관이 갖고 있을 법한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말했다. 유씨의 말이다.
 
  “서울 소재 소방서에서 화재감식을 하는 여성 소방관이 저를 포함해 서너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장구류 중 여성 사이즈는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습니다. 남성 장구류 중 제일 작은 사이즈가 저한테 크니까요. 화재진압 대원이나 구급 대원들의 피복이나 제복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성, 그중에 감식 분야 관련 장구류는 아직까지 남성 체격에 맞춰서 나옵니다.”
 
 
  주취자 말리다가 이에 물린 적도
 
  소방관에게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는 지레 걱정부터 하게 만든다. 혹시 주취자(酒醉者)가 아닐까 해서다.
 
  박국웅(39·소방교)씨는 주취자에게 세 번이나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 모두 검찰에 송치됐고,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두 번은 신체를 가격당하고, 또 한 번은 다른 대원이 맞는 걸 말리다가 주취자에게 물렸다”고 했다. 그는 자조 섞인 말투로 “툭툭 치는 건 그냥 넘어가겠는데 세 번째 경우는 너무 심했다”고 했다.
 
  조영호(34·소방교)씨는 “신고를 받고 나가면 대개 술을 많이 마신 주취자라 병원으로 이송하는 경우가 많다. 흔한 일”이라며 씁쓸해했다. 그의 말이다.
 
  “경찰이 오기 전에 우리가 초기 대응 형식으로 주취자를 진정시킵니다. 사실 경찰이 올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조금 무섭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주취자가 막 달려들 때는 생명의 위협도 느낍니다. 주취자의 90%는 남성인데, 그 수는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유해진씨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과거 서초소방서에서 구급 대원으로 있을 때 정신이상자를 이송하면서 겪은 일이다.
 
  “구급차에 결박을 한 채 정신이상자를 이송하고 있었어요. 순간 그가 결박을 풀고 구급차에서 난동을 부렸죠. 이런 사람이 난동을 부릴 때에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셉니다. 환자라고 다 온순하지 않거든요. 그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전기충격기 같은 방어 장비가 없습니다. 당시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경찰 두 사람이 제압해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소방관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비가 구비돼야 합니다.”
 
 
  “가족들은 내가 편하게 일하는 줄 안다”
 
강서소방서의 종합상황실. 화재 신고 등 모든 상황이 총집결되는 컨트롤타워다. 사진=월간조선
  진압과 구조 업무의 베테랑인 박해룡(54·소방위)씨는 사망자들을 많이 봐왔다. 이송 중이나 인공호흡 도중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혹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그의 답변이다.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술도 마시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데 사실 무뎌졌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시는 분들 봐도 무덤덤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장애지만, 우리 소방대원들은 늘 긴장된 상태입니다. 대원 중 두 발 뻗고 자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깊은 잠을 못 자는 게 큰 문제입니다.”
 
  구조 업무를 맡은 이성진(29·소방사)씨도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이씨는 “야간에 출동이 없어도 자도 자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바로 뛰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진씨는 “처음 1, 2년은 숙면을 취했는데, 요즘은 아니다”라며 “업무 특성상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 늘 생체리듬이 깨진 상태로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해룡씨는 “가족들은 내가 편하게 일하는 줄 안다”고 농담하듯이 말했다. 박씨는 “소방관들이 출동을 안 하면 쉰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게도 짜인 일과표가 있다. 거기에 출동까지 신경 쓰다 보면 정신없이 바쁠 때가 많다”고 했다.
 
  조영호씨는 “구급 대원은 들것을 자주 들어야 해 허리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조씨는 처음 소방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허리엔 자신 있었다. 하지만 한번 삐끗한 이후부터 상태가 계속 악화됐다. 그럼에도 “공상(公傷) 처리가 안 돼 내 돈으로 치료해야 했다”고 말했다. ‘공상’이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다 입은 부상을 뜻한다. 오쾌봉씨도 “공상 처리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
 
  “내 증상이 누적돼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생긴 문제인지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업무를 통해 누적된 경우 공상으로 인정받기 힘듭니다. 업무 외적으로 몸이 나빠졌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이 입증해야 해서 이 부분이 좀 더 분명하게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오늘 ‘진상’ 좀 안 만났으면 좋겠다…”
 
  손종한(58·소방위)씨는 “자식뻘 되는 사람한테 욕을 얻어 먹은 적이 있다”며 소방 공무원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표현했다. 손씨가 털어놓은 일화다.
 
  “소방 제복을 입고 길을 걷는데 어떤 사람이 ‘불도 안 났는데 돌아다닌다’면서 대놓고 욕을 하더라고요. 근데 뭐 어쩌겠습니까.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참을 수밖에요.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아마 국민의 10명 중 8명이 우리를 하찮게 보는 것 같아요. 소방차에 길을 안 비켜주는 건 다반사고요.”
 
  손씨는 “매일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오늘 진상 좀 안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특히 “생활안전구조 활동을 나가면 그런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출동 나갔다가 졸지에 피아노 운반 기사 노릇을 했어요. 피아노가 어느 틈에 꽉 꼈어요. 한 시간을 낑낑거렸습니다. 그 가족 중 누군가가 도와주려고 하면 ‘너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합니다. 황당하죠. 자칫 실수라도 저질러 물건에 손상을 입히면 욕먹는 일도 허다해요.”
 
  손종한씨는 “소방서의 구조대는 응급환자 때문에 존재한다. 그런데 응급환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황이 이러이러해 어렵다’고 호소하면 우리는 영락없이 출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출동하면 황당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대민(對民) 서비스가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사유화’죠. 앞으로 그런 신고가 더 심해질 거라고 봅니다.”
 
  화재진압 업무를 담당하는 민문기(52·소방위)씨도 “(손종한씨의 말처럼) 소방행정 서비스를 받아야 할 사람이 엉뚱한 업무로 인해 못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씨는 “‘소방관 월급을 우리가 준다’는 인식이 조금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모든 일에 출동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임무지만, 그렇다고 허위신고나 안전과 관계없는 비상식적인 출동이 다 용인(容認)될 순 없습니다. 지금도 전체 신고의 절반 정도가 허위신고인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출동을 거절할 경우, 신고자는 상위 부서에 민원을 넣습니다. 그럼 민원 처리 결과를 민원인에게 통보해주기 위해 우리를 상대로 조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죄인이 되고 맙니다. 자신감도 상실하죠. 화재진압이나 현장 대처보다 민원인 대하는 게 더 겁이 나는 세상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의 조그마한 행동에 어떤 트집을 잡아서 뭘 할지 모르니까요.”
 
 
  내근직에도 고충은 있다
 
소방관들이 쉬는 숙소. 전체 대원 수에 비해 매우 단출하고 비좁다. 사진=월간조선
  소방서에는 화재진압 업무 등 외근직만 있는 게 아니다. 예방 업무와 검사지도 업무를 맡는 내근직도 외근직만큼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최준호(35·소방장)씨는 완비증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다중이용업소 허가를 받기 전에 소방서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소방시설완비증명’이라고 한다.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졌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관계 법령을 알아야 하니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최씨는 “업무를 이행하다 보니 ‘법 위에 민원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일부 업자들이 ‘소방법이 너무 빡빡해 영업에 지장이 많다’는 식으로 하소연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담당자에게 막무가내로 윽박지른다. 최준호씨는 “아직도 소방공무원이나 소방법령에 대한 대(對)국민 인식이 많이 낮은 것 같다”고 했다.
 
  검사지도팀 이필훈(53·소방위)씨도 “우리 팀은 민원인을 많이 상대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 (민원인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팀원들이) 그걸 이겨내고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소방공무원들이 겪는 또 하나의 애로사항은 바로 재산등록·신고다. 화재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김종진(53·소방위)씨는 “7~8급 사이에 해당하는 소방장부터 재산신고를 하는데, 이에 따른 직원들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김씨는 “몇백만원, 몇천만원을 누락시켰으면 이해하는데, 한번은 고작 몇십만원 누락했다고 벌금을 물었다”고 했다. 그는 “소방공무원들이 업무 외에 ‘재산신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황정선씨는 “소방위(6급) 이상만 대상으로 재산등록·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소방위 이상 계급의 인원이 다른 공무원 직군에 비해 모자라 형평성 차원에서 재산신고 대상을 소방장으로 낮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김종진씨는 “지금은 소방공무원의 수가 많이 늘었다. 그에 맞춰 신고 대상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방공무원의 최대 관심사
 
  현재 소방공무원들 사이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신분이 변경되는지 여부다. ‘2018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소방공무원은 4만8042명인데 이 중 98.7%(4만7457명)가 지방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통제를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개선과 함께 국가직으로의 전환을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행정안전부(행안부)는 2017년 10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발표했다. 골자는 국가직·지방직으로 나뉘어 있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사권·지휘권은 현행대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겨레》(2018년 10월5일자)는 국가직 전환의 주요 쟁점이 “인건비를 국가와 지자체, 둘 중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급하느냐이다”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방청은 기존 소방공무원과 신규채용 예정인 2만명에 대한 인건비까지 모두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행안부는 기존 공무원 인건비는 현행대로 각 지자체가, 신규 채용 인원은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는 신규 채용 인원에 대한 인건비까지 모두 지자체에서 부담하되, 국가가 각 지자체에 추가로 예산을 지급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예산과 관련해서는 관계 부처 모두 생각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국가직 전환에 관한 소방공무원의 의견도 엇갈린다. 국가직 전환에 부정적인 이들은 “국비 지원, 인사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늬만 국가직’을 유지할 바에야 차라리 지방직으로 남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시어머니 두 명(중앙정부와 지자체)’을 모시는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국가직을 바라는 쪽에선 “복리후생 정도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황정선씨는 “아직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만큼 합리적인 의견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들과 함께한 이틀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간 대형 화재와 같은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소방관들의 인간적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강서소방서를 떠나면서 한때 유행한 표어 중 하나인 ‘오늘도 무사히’가 떠올랐다. 하루하루 지옥을 넘나드는 그들에게 신(神)의 자비가 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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