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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최순실 스캔들

최순실 母女, 통일교 및 독일과 어떤 관계?

최순실과 정유라는 왜 독일에서 잠적했었나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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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박정희 전 대통령 향한 호감도 높은 독일교포사회에 ‘박근혜와 친하다’며 정착
⊙ 독일은 1970년대부터 통일교 유럽포교의 중심지
⊙ 최(崔), 통일교 유럽본부 출신 인물들과 개인적 친분 … 생활 및 정착에 도움 받았다
⊙ 박근혜 대통령 방독(訪獨)시 교포사회 코디네이터는 통일교 출신들이 도맡아
최순실과 정유라가 최근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슈미텐의 주택.
  지난 10월 27일 독일 현지에서 최순실을 쫓는 기자들이 행적을 전혀 찾지 못한 가운데 최순실이 《세계일보》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이에 “최순실이 통일교와 관계가 있다”는 설과 “2014년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단독 보도와 관련이 있다”는 두 가지 설(說)이 나돌았다.
 
  통일교 유럽본부장 출신으로 독일에 오래 거주했던 사광기 《세계일보》 전(前) 사장이 인터뷰를 주선했다는 인터넷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사 전 사장이 최순실과 세계일보 측 혹은 취재기자를 직접 연결했다는 의혹은 당사자들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대체 최순실과 통일교, 최순실과 독일은 어떤 관계일까. 수십 년간 통일교 재단에서 일했던 복수의 통일교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최순실과 독일, 그리고 통일교의 관계를 정리했다.
 
 
  최순실, 세계일보 전 사장 및 유럽본부장과 과거부터 친분
 
《세계일보》가 독일에서 최순실과 단독인터뷰를 하며 찍은 사진. 사진=뉴시스 제공
  세계일보 인터뷰를 주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광기 전 사장은 1985~1993년 통일교 청년조직인 세계대학원리연구회 유럽회장, 1993~2003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유럽회장을 지내는 등 30여 년간 독일에서 거주했다. 그는 2003년 세계일보 사장에 임명돼 한국으로 오게 된다. 최순실과 사 전 사장이 친하다는 사실을 필자가 알게 된 것은 2년 전으로, 2014년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복수의 통일교 고위 관계자가 전해 준 내용이다.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청와대와 법적 공방에 나서며 세무조사까지 받게 되자 세계일보는 통일교 재단의 압박에 시달렸고 조한규 사장이 물러나야 했다. 당시 통일교 재단의 전직 관계자는 “후임으로 사광기 전 사장이 내부 임명을 받았다”며 “사 사장과 정윤회 부인 최순실이 과거부터 친하기 때문에 청와대와 관계개선을 위해 내놓은 대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회가 아닌 최순실이냐”고 필자가 재차 묻자 “정윤회와 친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최순실과 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후 선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호남 출신 차준영 전 편집국장이 사장으로 임명된다. 다른 통일교 고위 관계자에게 이와 관련해 질문하니 “최순실과 사 사장이 오래 전(1990~2000년대) 독일에 거주할 때부터 친한 것은 맞다”며 “최순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2000년대 초반 일식집을 운영했었는데 그때 사 사장이 많이 도와줬고, 딸(정유라) 학교 등 교육문제로 고민할 때도 도움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정유라는 통일교 재단 학교인 경복초와 선화예중을 졸업했다.
 
  그는 세계일보 사장 임명 건과 관련해서는 “현재 통일교 내 주류세력과 거리가 먼 비주류라 재단 내에서 반대가 있었고, 본인도 (정윤회 문건) 사건 직후 사장직을 맡는 데 부담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동산 등 비리에 얽힌 과거가 있어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다고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후 사 전 사장의 인터뷰 주선 의혹이 불거지자 세계일보 측은 이를 부인하며 “기자들이 독일 내 취재원들을 어렵게 수소문해 인터뷰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터뷰를 한 류○○ 문화부장은 독일 유학파 출신으로 독일 한인사회에 인맥이 있으며, 최순실이 38세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전혀 관계없는 사건으로 만나 인터뷰를 한 인연도 있다. 한 세계일보 전직 기자는 “인터뷰어인 류 부장이 사 사장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에 자체 인맥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최순실의 현지 조력자들의 존재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그중 실명으로 드러난 인물은 40대 남성인 데이비드 윤이다.
 
  《서울신문》 의 보도 내용이다. 〈최순실씨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데이비드 윤씨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최소 지난 10년 이상 ‘최순실의 모든 것’을 알고 함께해 온 파트너였다. 윤씨는 서울에서도 최씨의 집에 기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며, 최씨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10년여 최씨가 벌여 온 거의 모든 사업은 윤씨가 나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독일에 남아 정유라씨 등 나머지 일행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8년생으로 40대인 독일 교포 데이비드 윤은 최순실과 어떤 관계일까. 통일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순실의 독일 생활 조력자들 중 핵심은 과거 사광기, 현재 윤남수로 보면 된다”며 “데이비드 윤은 윤남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윤의 측근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형이 아버지가 (최순실 모녀를)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주고 있지만 힘들고 번거롭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독(訪獨) 현지 코디네이터
 
최순실 측이 실소유주인 독일 헤센주 ‘비덱 타우누스’ 호텔.
  윤남수씨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세계일보 구주(歐洲: 유럽)본부장을 지냈다. 윤남수씨가 1980년대 회장으로 재직했던 재독한인연합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때 동포간담회를 열어 온 협회다. 1963년 결성된 이 단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단체로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 방독했을 때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아 왔다. 2006년 9월에는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환영식’을 열었고, 2014년 3월 28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프랑크푸르트 동포간담회’를 열었다. 역대 다른 대통령이 방독 시 이 협회와 간담회나 환영식을 가진 전례는 전혀 없다.
 
  그런데 이 연합회의 연혁에는 이 밖에도 색채나 성향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들이 있다. 2012년 7월에는 연합회장이 한국 수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건립 후원의밤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고, 2013년 11월에는 ‘북한 연평도포격 3주년 베를린 시위’를 개최했다. 연합회 홈페이지 바탕화면에는 ‘주요언론단체’라는 항목이 있는데, 링크된 사이트는 교포신문을 제외하면 국내언론으로는 세계일보가 유일하다.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보수단체라는 점이 명백한 것이다.
 
  윤남수 전 회장은 최순실과 친하게 지내며 2006년,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독과 관련해 최순실과 교민간담회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그는 “최순실이 대선 출마 선언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TV조선은 지난 10월 26일 “윤남수 전 독일한인회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2006년 독일 순방에 최순실이 깊게 관여했다’고 말했다”고 단독보도했다. 윤남수 전 회장은 방송인터뷰에서 “2006년 10월 1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한식당에서 박근혜 의원이 대권출마 선언을 할 때도 최순실이 있었다”며 “일부 교민들은 동포간담회에서 최씨와 박 대통령이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보인다며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 전 회장은 최순실과 알게 된 계기나 통일교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한편 2006년 당시 한식당에는 김기춘 의원과 최경환 의원, 이정현 공보특보는 물론 한국에서 동행한 기자 11명이 있었다. 이들이 하나같이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2006년 독일방문 당시 취재기자로 동행했던 《중앙일보》 강주안 디지털에디터의 회고다. “박근혜 전 대표가 연설이나 간담회를 할 때 김기춘 의원은 늘 맨 앞자리 한가운데 앉아서 손짓을 해 가며 실시간으로 조언을 했다. 나는 속으로 ‘과한 것 아닌가’ 했는데 기우였다. 연설이 끝날 때마다 김 의원은 ‘참 잘하셨습니다’라고 칭찬했고 박 전 대표는 환히 웃었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보낼 때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간다.” 대선출마 선언이라는 빅뉴스를 접한 기자들의 눈에는 최순실이 들어오지 않았겠지만 늘 박 전 대표 옆에 있었던 김기춘 전 실장이나 이정현 의원이 몰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당시 지라시(정보지)에는 이정현 공보특보와 최순실이 독일에서 의견충돌로 소리 높여 싸웠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 특보는 “최순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왜 독일인가
 
정유라가 최근까지 승마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호프구트 승마장.
  최순실이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에 정착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은 통일교 유럽포교의 중심지다. 1960~70년대 독일로 이주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나선 것이 시초다. 1970년에는 서독지역에서 통일교 고유의 행사인 ‘합동결혼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1976년 3월 4일 《경향신문》 기사다.
 
  〈우리나라 민속문화 자료수집차 방한한 게르너트 푸르너 박사(독일 함부르크민속학박물관 동양부장)는 “현재 독일에도 한국의 신흥종교인 통일교가 포교를 시작했다”며 “한국의 신흥종교는 일제통치, 해방운동, 6·25 동란 등 파란 많은 역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부터 독일에서 활동해 온 통일교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포교를 시작했고 수백만 명의 유럽 신도를 모으게 된다. 1991년 문선명 교주의 첫 방북을 성사시킨 사람도 독일 교포다. 통일교인이며 독일에 거주하던 김모씨가 북한 관리들을 독일로 자주 초청해 긴밀한 관계를 가져 온 것이 토대가 됐다.
 
  최순실은 1979년 중반까지만 해도 새마음봉사단 대학생 대표를 맡는 등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의 옆을 지키고 있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후 독일로 간다. 독일교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은 1979년 말 독일로 유학을 왔다며 입국해 대학진학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가 독일을 택한 것은 아버지 최태민이 가끔 독일을 오가며 한인사회와 접점이 있었고, 독일 교민사회가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월 방독 당시 파독광부,간호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최순실은 독일 대학 진학 실패 후 미국으로 건너가 모 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귀국해 육영재단으로 와 박근혜 대통령의 옆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중반 다시 독일로 왔는데, 이는 아버지(최태민)의 사망(1994년) 직후인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와 1995년 결혼한 것도 이때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윤회는 정치권에 있을 때 본인을 “독일 유학파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최순실은 프랑크푸르트 인근 한인들이 많이 사는 오버우어젤에 거주했는데 당시 가까이 지낸 사람이 윤남수 전 회장, 사광기 전 세계일보 사장 등이다.
 
  유럽에 거주했던 통일교 고위 관계자는 “통일교 유럽본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최태민 딸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언제 정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이 통일교를 믿거나 한 것은 아니고, 독일에 정착하려다 보니 독일 한인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통일교 출신 인물들과 친해진 것”이라며 “통일교인 외에도 나이가 많은 교포들은 파독광부나 간호사 출신들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독일에 보내 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앙하고 있기 때문에 최순실이 ‘박근혜와 친하다’고 하면 모두들 잘 대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교포사회에 등장한 정윤회는 사광기와 고향이 가까워 (충북 괴산, 충북 청원) 그들 부부끼리도 친해졌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겸임교수 역시 “독일 교포사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이 크다”며 “독일교포는 다른 유럽교포에 비해 연령대가 높고 거주기간이 긴 사람들이 많은데, 어렵던 시절 통일교 포교본부가 이들을 도와주고 함께해 온 과거가 있기 때문에 통일교에 대한 호의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 교포사회에 통일교 출신 인물들이 많긴 하지만 현지에서는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각 종교가 어울려 살아 왔다”고 덧붙였다.
 
 
  최태민과 통일교는
 
  종합하면 최순실은 1979년 중반까지 아버지 최태민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옆에 있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독일로 떠났고,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독일과 미국을 떠돌다 1980년대 중반 육영재단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했다. 이후 10여 년간 각종 이권에 개입하다 아버지 최태민 사망(1994년) 후 독일로 떠나 정착을 시도해 2000년대 중반까지 독일에서 주로 생활했다. 이때 정윤회를 만나 딸을 출산했다. 이후 2003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정유라) 교육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압구정동에 거주했고, 독일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통일교와 관련된 지인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최태민은 영세교(영세계칙사관)를 창시한 교주였지만 최순실은 기독교인을 자처하며 거주지인 압구정동에서 여러 곳의 개신교 교회를 다녔다. 통일교회나 성당, 절에 다닌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종교연구가들은 “최태민이 각종 종교와 무속신앙을 섭렵하다가 1960~1970년대 세계 포교에 나선 문선명에게 자극받아 신흥종교를 창설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작고한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의 저서에 따르면 최태민은 통일교에 대해 ‘거의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창단한 후 구국선교단이 통일교 계통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최태민은 신문 광고를 통해 “대한구국선교단과 통일교를 동일시하거나 유관기구 운운하는 자에게는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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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7-12-28) 찬성 : 31   반대 : 40
우주의 만물을 창조해주는 최순시리와 정유라년!!!!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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