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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국 사회 갈등과 언론의 책임

언론은 한국 사회 갈등의 거울인가, 촉진자인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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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의 저널리즘은 ‘갈등 유발형 저널리즘’?
⊙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대개가 정치인과 정치 엘리트의 설화 내지 막말에서 시작”
⊙ “언론인의 ‘정치지향성’이 문제… 선거철마다 언론특보 같은 명함을 가지고 활동”
⊙ “언론의 위기, 탐사보도, 조사보도 같은 전문화된 취재로 돌파해야”
한 기업인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 갈등과 분열의 최전선에 기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은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에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사회적 갈등 증폭의 주된 원인”으로 언론을 지목한다. 비판하고 의혹을 부추기며 이념의 양극화에 기여한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갈등은 진보와 보수진영 간 이념적 다툼에서 파생돼 왔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정치적, 정파적 대결의 악순환이 갈등과 대립, 분열을 낳았다. 우리 사회 어디를 보아도 통합의 논리는 찾기 어렵고 갈등의 증폭자만 소리를 높인다. 그 갈등의 피비린내나는 중심에 출입처를 두고 기삿거리를 찾고 기사를 쓴다. 기자도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언론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것인가, 아니면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인가.
 
  A 교수는 한국의 언론이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B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저널리즘을 ‘갈등 유발형 저널리즘’으로 규정한다. ‘언론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한국의 언론이 각 정파의 이익에 따라 언론활동을 하며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C 교수는 한국 사회의 소통 위기를 언론의 정파성에서 찾는다.
 
  정파성을 논외로 하고, 한국 언론의 기사(보도) 품질은 어느 정도일까. 고급 정보원(취재원) 수와 투명성, 관점의 다원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대변, 사실과 의견의 분리 등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몇몇 언론학자들은 ‘기준 미달’이라 평한다.
 
  시장의 현실은 더 차갑다. 언론환경과 광고시장이 변하고 소비자(독자, 시청자)가 변하는 상황에서 신문사는 여전히 폐쇄적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시장경쟁의 격화, 경기침체, 인터넷 매체의 등장, 거대 포털의 독식으로 전통적 저널리즘 매체의 지위와 기능이 무뎌졌다. 심지어 ‘대안언론’을 표방한 인터넷 신문 사업자 수가 58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한쪽 진영의 정보원들만 인용하고 그들의 관점만 반영하며 편향적 보도를 일삼아도 문제될 게 없는 세상이다. 너도나도 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일도양단(一刀兩斷)하듯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 없다. 저마다의 관점만이 진실인 양 저널리즘으로 둔갑한다.
 
  기자는 중견 언론인과 원로 언론인 10여 명과 학자들을 만나 한국 언론의 현실과 위기를 들었다. 중견 언론인의 경우,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소속사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또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양해를 얻어 연구용역 보고서 〈언론이 유발하는 갈등소비 구조연구〉를 입수, 그 내용을 기사에 반영했다. 이 보고서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이준웅 교수팀이 작성했다.
 
 
  김영란법이 통과됐을 때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된 이유는 뭘까. 왜 굳이 언론인을 포함시켰을까. 수도권 한 재선 정치인의 말이다.
 
  “언론이 권력4부에 비견될 정도로 위상이 커졌습니다. 언론을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dog)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이치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언론이라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 없어요. 사이비 기자를 잡는 검찰과 경찰 외에.”
 
  최근 몇 년 사이 기자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졌다. 이완구 총리의 설화(舌禍)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 총리는 “언론인을 대학 총장이나 교수로 만들어줬다”고 해 진위와 상관없이 언론인을 여론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기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기자와 자주 접하던 취재원들(기업인·관료·정치인·국회 보좌관)의 비판도 들려왔다. 이들의 비판을 종합하면, “기자들이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남을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또 “정작 자신은 남의 비판을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중견 언론인은 이런 말을 했다.
 
  “중앙지 기자들 중에는 관료나 법원, 검찰 같은 배경이 좋은 집안 출신들이 제법 있어요. 또 기자들 대개가 명문대 출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 의식도 강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죠. 또 남의 비판에 대한 거부반응도 발견할 수 있어요. 오보를 쓰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선문대 황근 교수는 “언론인들은 기본적으로 ‘지사형 언론인’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과 언론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사회를 계도하고 국민을 계몽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계몽주의적 언론관이죠. 물론 이런 인식은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나 수용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권위주의를 만들어낸 측면이 있어요. 이런 권위의식은 권위적 태도로 체화됐고, 오랜 기간 정치·경제·사회적 모든 권력을 독점해 온 권위주의 정치 영역과 결탁하면서 언론인들의 비윤리적 태도가 형성됐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기자들의 엘리트주의를 기자 채용과 관련지어 말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지방의 언론사에서 수습기자로 출발해 차근차근 큰 언론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은 ‘언론 고시’라는 이름으로 선발, 공채기수를 중시한다. 대개 공채들이 신문사 관리직을 독식한다. 자기 일과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무척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이들의 공격성은 때로 자사(自社) 이기주의를 통해 드러난다. 또 다른 중견기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편집국이 공채기수 중심이다 보니 자사 이기주의로 분위기가 흐를 수밖에 없어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대한민국 기자는 ‘회사에서 잘나가는 기자와 못 나가는 기자’가 있다고. 특종 기자나 글 잘 쓴다고 대접받지 않죠.”
 
  언론사의 내부구조도 일반 회사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언론계의 현실이라고 한다.
 
  “언론사마다 정보 보고 체계가 잘 이뤄져 있는데 자사나 사주에 관한 세평(世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보고거리를 찾죠. 그리고 경쟁지 소문도 중시합니다. 여기서 회사 눈치 보기나 자기검열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발동해요. 기자들의 윤리의식이나 직업윤리는 항상 아슬아슬합니다. 연차가 어릴수록 젊고 유능하고 진실한 기자들이 많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대통령 관련 기사·사설로 본 신문 政派性
 
“이명박 정부서 증폭되고 박근혜 정부에 들어 공고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주요 주간 일간지들의 대통령 관련 1면 기사와 대통령 관련 사설을 분석했다. 분석대상이 된 언론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분석기간은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로 삼았다. 분석시기는 각 정부마다 집권 2년 차 12개월 동안의 대통령 관련 1면 기사를 수집했다.
 
  조사 결과, 노무현 정부 시절에 쓴 대통령 기사에 갈등이 가장 많이 묘사됐다. 갈등적 기사 비율은 노무현 정부에서 43.5%로 가장 많았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30.6%로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26.2%로 줄어들었다.
 
  1면 대통령 기사의 갈등 양상은 신문사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의 대통령 기사에 비갈등적 묘사가 두드러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조선》은 1면에 비갈등적 기사를 93% 수준으로 높게 게재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80%에 달했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대통령 갈등적 기사 비율이 연구대상 매체 중 가장 높았다. 55%에 달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역시 노무현 대통령 시기부터 대통령이 여타의 정치・사회 부문과 갈등하는 기사들을 1면에 빈번하게 싣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이 갈등적 기사 비율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노무현 정부 때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한 데 반해 《동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갈등적 기사를 급격히 줄였다.
 
  1면 대통령 기사를 분석한 결과, 《조선》·《동아》 대 《한겨레》·《경향신문》의 대립구도가 노무현 정부 무렵에 형성되고 이명박 정부를 통해 증폭되며 박근혜 정부에 접어들면서 공고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으로 볼 때 한국 언론은 정권을 거치면서 자사가 지지하는 정권은 긍정적인, 또는 자사와 이념적 기반을 달리하는 정권은 부정적인 1면 기사와 사설을 게재하며 이념적으로 분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언론의 정파성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집단 간 갈등과 파당성은 사회 발전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정파성과 편파성은 어느 한쪽의 주장을 선택적으로 포함, 혹은 배제해 다양한 사회 현실을 왜곡시킨다.
 
  언론인 “정치 엘리트가 한국 사회 갈등의 원인”
 
기자는 사건의 가장 정점에서 시간을 다투며 취재한다.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삼성비자금 특검수용 소식을 1면 기사로 다룬 조간신문들.
  한국 사회의 갈등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대 연구팀이 몇몇 언론인에게 물었더니 다수가 “정치 엘리트가 갈등의 원인”이라 지목했다고 한다.
 
  기자도 같은 질문을 몇몇 중견 언론인에게 해보았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대개가 정치인과 정치 엘리트의 입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설화 내지 막말에서 갈등이 시작되고 확산됩니다. 그런 언쟁(言爭)의 최전선에 선 이들이 기자들이고,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이들이 정치부 기자들이죠. 한국 사회의 갈등 원인을 언론으로 돌리는 것은 선후를 잘못 본 것이죠.”
 
  이 기자의 계속된 설명이다.
 
  “퓰리처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나라와 우리 언론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요. 언론이 갈등을 부추긴다고 없는 사회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갈등이 있다면 갈등의 가장 첨예한 맨몸을 보여주는 게 언론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중앙관료들이나 정치 엘리트들이 기자들을 ‘무관의 제왕’이니 ‘대감’ ‘박사’라고 부르는데 그런 표현 자체가 기자들을 깔보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벌이고 이권에 눈이 멀면서, 혼자 해먹기 뭐하니까 기자들을 예우하는 척하는 겁니다. 이런 정치나 권력 엘리트들이 갈등을 부추기고 팔짱끼고 혼란을 즐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언론이 정파적으로 좌와 우로 양극화된 것은 ‘민주화 이후 정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변화되면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정권교체 시기에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 간의 관계가 역전되고 다시 재역전되면서 굳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한 중견 언론인의 말이다.
 
  “이른바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권이 권력으로 언론을 누르며 언론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이 발단이라고 봅니다. 기자들은 누르면 누를수록 독해지는 존재들입니다. 언론을 너무 쉽게 본 것이죠.”
 
  정권교체의 ‘작용-반작용-보복’의 구조가 되풀이된 결과라는 얘기다. 또 언론보도의 정파성은 언론사의 분위기를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이슈가 있지만 지면과 시간 관계상 모두를 다룰 수 없어요. 또 단시일 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기자가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언론은 한정된 이슈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대중은 그런 이슈들이 마치 가장 중요한 이슈인 것처럼 생각하기에 강한 메시지 효과가 일어납니다. 이런 효과가 가장 두드러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파성입니다. 정파성의 메시지 효과가 가장 큰 까닭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대형 신문사일수록 의제 설정이 뚜렷한데 기자들의 두뇌 구조도 이런 의제에 익숙해져 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다양성을 찾기 어렵죠.”
 
 
  폴리페서와 언피아, 그리고 大記者
 
  기자직의 도구화 현상도 문제다. 기자들이 보직에 연연하고 정치권과 손을 잡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언론사에서 퇴직했을 때 나를 불러줄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권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특정 정치 세력의 입맛에 맞는 정파적 기사를 쓰는 도구적 존재로 전락했다는 주장엔 동조하기 어렵습니다. 현직을 재취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속물이 있다고 해도, 신문사는 나름의 윤리의식과 독자를 의식해 걸러내는 ‘깔때기 기능’이 분명 존재합니다. 기자보다도 폴리페서(정치 교수)들이 더 심각한 존재들이죠. 솔직히 정치권에 뛰어든 기자들 중에는 매섭게 글을 쓰던 이들이 더 많아요.”
 
  그러나 반론도 존재한다. 한 언론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언론인들의 ‘정치 지향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광복 이후 수많은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편입됐고, 지금도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전·현직 언론인이 공천받거나 무슨 언론특보 같은 명함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또 언론인은 정치권력으로 가는 도구 정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정치 영역이 아니더라도 민간 기업들의 대(對)언론 로비창구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언피아’지요. 때문에 무엇보다 언론인들의 정치 영역으로의 편입을 규제할 수 있는 자율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전문분야별 ‘대기자(大記者)’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정치성
 
“KBS는 한국 정치의 축소판”

 
선문대 황근 교수.
  공영방송은 ‘갈등의 조정자가 아닌 갈등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 있다. 사장의 선출 및 권한,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 노사 간 협상의 실패 등이 KBS와 MBC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갈등이다. KBS 이사를 역임한 선문대 황근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방송에 종사하는 분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KBS는 대한민국 정치의 축소판’이라고요. KBS가 그만큼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불안정한 독립성에서 기인합니다. 과거 수십 년간 어떤 정권도 KBS를 정부로부터 독립시키거나 견제하는 방송사가 아닌 통제도구로 인식해 왔기 때문입니다.”
 
  황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친 정권교체는 KBS 내부구성원들을 ‘정치 지형화’시켜 버렸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를 주도하는 경영진들이 완전히 뒤바뀌는 악순환 구조를 고착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KBS 내부의 갈등구조는 공영방송이란 존립 목적에서 볼 때도 매우 위험합니다. 공영방송의 여러 목적 중 하나가 이른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와 시각을 통합하는 기능’인데, 내부구성원의 정치 지형화는 공영방송인 KBS가 정치·사회적 갈등을 도리어 확대, 재생산하는 갈등증폭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결과,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사회 갈등과 언론의 상업적 선정주의
 
2007년 5월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폐쇄로 서울 세종로 종합청사 기자실이 텅 비어 있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팀은, 언론의 갈등 유발적 보도 이면에 상업적 선정주의를 깔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언론인이 대부분이다. “언론의 정파성은 순수하게 이념적이며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돈 벌려고 비판을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언론은 광고를 주지 않는 기업을 상대로 비판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수성을 내면화한 언론인이 보수적 경향의 기사를 쓰는 것이지 상업적 논리에 따라 보수적이 된 것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한 중견 언론인의 말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어요. ‘기자들의 가치 지향성 및 내면화는 김대중 정부 이후에 생겨났다’고요. 1998년부터 정권을 잡았으니까 98년 이후 생겨났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의 적극적인 대북 유화정책과 북한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언론사에 투영되고 그것이 매체 간 진영논리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정파적 선정주의를 강화하고 정부를 욕보이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논리를 더 강화한다고 해서, 진보논리를 더 강화한다고 해서, 《조선일보》나 《한겨레》가 더 돈을 많이 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상업적 선정주의가 원인은 아니지만, 갈등 유발적 보도와 언론사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특히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선정적 경향이 강화되며, 이 때문에 정파적 보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한 중견기자의 말이다.
 
  “몇몇 보수매체의 경우, 북한과 안보(북핵위협) 문제를 이슈화하며 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진보매체의 경우,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고요. 문제는 신문이나 잡지 경영의 어려움이 언론의 정파성이나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본질은 아니라는 겁니다. 신문의 논조는 그 신문을 택한 독자의 반향과 상관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중견 언론인의 말이다.
 
  “신문도 잡지도 방송도 돈을 벌어야 운영되는 사업이죠. 많이 팔아야(보아야) 광고도 많이 딸 수 있고 기자들의 수입도 늘어납니다. 재정적으로 실패한 신문은 아무리 특종을 해도 그뿐입니다. 신문이 고급 정보와 정확한 분석을 해도 경영에 실패하면 문을 닫아야 하고 시장의 논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편집의 독립과 경영의 독립은 매우 복잡한 관계다. ‘우열의 관계나 종속의 관계로’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정상적인 광고를 통해 경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재 한국 언론 모두가 경영의 위기와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연 정치권력의 힘으로 문제를 풀려는 유혹을 언론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 홍보실에서 ‘광고효과 때문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무서워서 광고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언론사 경제부장이나 산업부장이 광고 협찬을 잘 따내는 영업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영논리와 상관없이 신문사 광고국장을 기자 출신으로 채우는 것이 요즘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경영의 문제가 언론의 메시지 선정에 영향은 줄 수는 있어도 지엽적이며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원로 언론인의 苦言 “언론인은 準성직자. 양심과 용기·결단이 중요”
 
언론인 류근일.
  류근일(柳根一) 《조선일보》 전 주필은 “언론의 기능이 사실보도가 50%라면 비판 기능은 나머지 절반”이라며 “갑(甲)과 권력에 대한 횡포를 고발하는 언론의 비판 기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비판 기능을 소홀히 할 순 없습니다. 목사나 스님처럼 어루만지고 화해시키거나 황희(黃喜) 정승 식으로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직업이라면 좋겠지만 언론은 사회고발과 비판 기능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다만 언론이 사회갈등을 부추긴다는 측면에서 보면 종편의 영향도 있을 거예요. 같은 내용을 매일 새로운 얘기도 없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잖아요.”
 
  언론사의 경영 악화로 자본의 논리가 편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근래에 언론사가 협찬 위주로 가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이 있더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언론사는 경영과 무관한 조직이 아니지만, 경영이 나빠도 언론사는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도 틀린 겁니다. 과거 정부에서, 광고 편의나 융자 편의를 해주면서 언론사 목줄을 죄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상 사회라면, 경영이 나쁜 언론사는 문을 닫을 수 있어야 합니다.”
 
  —김영란법이 나오고, 언론인의 윤리적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언론인은 성직자가 아니지만 준(準)성직자로 불릴 만큼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법이 통과됐다지만 수많은 언론인을 누가 일일이 감시하겠습니까. 언론사 내부의 자율적인 감시 기능이 1차적으로 우선시됩니다. 신문 경영진의 각성도 있어야 하고 노조 쪽에서도 자체 윤리를 위한 감시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정 기능이 발휘되지 못할 경우 절망적이죠. 초년병 기자나 경험 많은 논설위원도 각자의 개인적인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 조직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결단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자본의 압력과 편집권과 배치된 언론 경영진의 요구, 신념에 어긋나는 정파성의 논조를 강요할 때, 대개는 자신을 조직 속에 편입시켜 버리지만, 개인의 양심에 위배되지 않게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양심과 용기, 결단이 중요합니다.”
 
언론인 남시욱.
  남시욱(南時旭) 《문화일보》 전 사장은 “언론 위기의 본질은 결국 신뢰의 위기다. 뉴미디어 혁명으로 전통적인 언론환경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남 전 사장은 《뉴욕타임스》의 종군기자 앤서니 샤디드를 예로 들었다. 그는 각종 중동전쟁 취재에서 많은 특종기사를 써서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이스라엘에서 취재 도중 총상을 입기도 하고 리비아 정규군에 구금된 적도 있다.
 
  “미디어 혁명으로 직업 언론인의 고유 업무가 아무리 축소됐다고 하더라도 전문기자가 아니면 취재할 수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샤디드 특파원이 수행한 것 같은 종군취재는 말할 것도 없고 근래 각광받고 있는 탐사보도, 조사보도 같은 전문화된 취재 영역, 그리고 많은 분야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와 균형 있는 논평은 아마추어 언론인들로는 불가능하거나 어렵습니다. 언론은 그런 길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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