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회장은 엄청나게 스케일이 큰 코끼리”
⊙ 은행원이던 1997년 신격호 회장 처음 만나… 도쿄 테마파크 건설하겠다는 신 회장에게 반대 의견 표명
⊙ 신격호 회장,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
⊙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몰래카메라로 소매점포 도촬하는 ‘풀리카 사업’ 추진
⊙ 일본 종업원 지주회, 신동주 측의 1인당 25억원 수익 제안 거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고문
1943년생. 와세다대학 상학부 졸업 / 스미토모은행(現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대표이사 전무 겸 전무집행임원 유럽본부장, 로얄호텔 대표이사 회장,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역임. 現 롯데홀딩스 고문
⊙ 은행원이던 1997년 신격호 회장 처음 만나… 도쿄 테마파크 건설하겠다는 신 회장에게 반대 의견 표명
⊙ 신격호 회장,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
⊙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몰래카메라로 소매점포 도촬하는 ‘풀리카 사업’ 추진
⊙ 일본 종업원 지주회, 신동주 측의 1인당 25억원 수익 제안 거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고문
1943년생. 와세다대학 상학부 졸업 / 스미토모은행(現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대표이사 전무 겸 전무집행임원 유럽본부장, 로얄호텔 대표이사 회장,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역임. 現 롯데홀딩스 고문
-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고문.
“롯데 본사로 가주세요.”
도쿄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아 탄 참이었다. 택시 기사의 답이 곧장 돌아왔다. “신주쿠에 있는 롯데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뻗어 운전석 쪽을 살펴봤다. 한국 택시에서 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사에게 물었다.
“롯데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아시네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중년의 기사는 고개를 잠시 갸웃하더니 답했다.
“롯데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소박한 모습의 신격호 기념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일본 롯데 본사 앞에 도착했다. 청명한 11월의 하늘 아래 건물벽의 유리창문이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연식이 있어 보이는 12층 건물은 뒤늦게 들어선 주변의 다른 고층 빌딩에 비교하면 작아 보였다. 이곳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보면 건물이 작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 남자가 대업(大業)을 일궈낸 곳이다.
길 건너로 도쿄도청(東京都廳)이 보였다. 신주쿠는 일본 도쿄의 중심지 중 하나다. 버블 시기 이후 일본의 땅값이 떨어졌다 해도 신주쿠의 땅값은 2021년 공시지가 기준 1평(3.3제곱미터)당 12억원이 넘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깨끗하게 정리된 소박한 로비가 보였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신격호(辛格浩) 회장 기념실이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다. 동시에 10명도 못 들어가는 자그마한 사무실 한 칸이었다. 취재 약속을 할 때 일본 롯데 측이 ‘작은 규모’라고 거듭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격호 회장이 생전에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기념실이라고 하지만 금방이라도 주인이 들어올 것처럼 소박하고 아늑한 모습. 다가가 보니 책상 위엔 역시 먼지 한 톨 안 보였다. 책상 옆쪽에 나무 지팡이도 놓여 있었다. 책상 옆으로 지구본이 보였다. 들여다보니 몇 군데 지역에 빨간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언뜻 보니 미국 인디애나주,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었다. 어떤 생각으로 붙인 걸까. 답해줄 수 있는 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식민지 청년’의 성공신화
책상 한쪽엔 돋보기안경과 메모를 할 수 있는 탁상 달력이 놓여 있었다. 매일 한 장씩 넘기는 일력이다. 신격호 회장의 비서는 신 회장이 한국에 있든, 일본에 있든 매일 아침 탁상 달력을 넘기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달력은 2020년 1월 18일에 멈춰 있었다. 책상의 주인이 마지막으로 롯데 명예회장직을 수행한 날이다. 다음 날인 1월 19일 신격호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월 19일이 3주기다.
신격호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일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업인, 혈혈단신 빈손으로 대망을 이룬 식민지 청년의 영화 같은 성공신화, 다들 자신의 이름이나 거창한 단어로 기업 이름을 짓던 시절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샤롯데’를 생각해낸 문학청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느니, 전범(戰犯)의 친척과 결혼했느니 온갖 루머(모두 사실이 아니다)에도 ‘자연히 바로잡힐 텐데 뭐하러 일일이 신경을 쓰냐’며 의연했던 한국인.
한일 양국이 얽힌 역사의 소음(騷音)을 배경으로 신격호 회장은 평생 조용히 기업 경영에 매진했다. 다른 창업주들처럼 세상에 훈계하는 책을 낸다거나 정치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일은 극도로 삼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은 장남이 포문을 연 경영권 분쟁 탓에 유독 쓸쓸해 보였다.
그간의 분쟁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2014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일본 롯데에서 해임됐다. 뒤에 설명할 의문의 신사업 추진 건이 결정적이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법정 소송, 주총 안건 상정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신격호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2022년 11월 21일 일본 신주쿠의 한 호텔에서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80) 일본 롯데홀딩스 고문을 만났다. 그는 신격호 회장이 2009년 직접 롯데로 스카우트한 전문 경영인이다. 스미토모은행과 로얄호텔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일본 롯데로 합류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자연히 신격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는 《월간조선》을 알고 있었다. 신격호 회장이 22년 전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를 기억하는 듯했다. 《월간조선》 2001년 1월호엔 신격호 회장과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의 신년호 특별인터뷰가 실렸다.
조갑제 편집장은 신주쿠 롯데 본사를 찾아가 신 회장과 마주 앉았다. 경영 철학과 한일 간의 기업 경영 여건 차이에 대해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신 회장은 사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날의 자리가 의미 있는 대화를 길게 나눈 유일한 인터뷰인 셈이다. 신 회장은 말수가 상당히 적어 인터뷰 대상으로서는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조 편집장은 후술(後述)했다. 그 22년 후 기자는 신 회장이 신뢰하며 일본 롯데 경영을 맡겼던 인사와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신격호 회장과의 첫 만남
쓰쿠다 고문은 금융계와 호텔업계에서 종사해서인지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저는 명예회장님께 얼마만큼 고생해서 롯데를 만들었는지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명예회장님은 오로지 롯데의 발전만을 원하셨어요. 두 분의 분쟁이 없길 바랐지요.”
― 신격호 회장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스미토모은행 유럽 총괄본부장으로 일했습니다. 1997년 즈음 처음 신 회장님을 만났어요. 그때 회장님이 테마파크 건설과 관련해 런던에 시찰을 오셨어요. 당시 롯데는 거래 기업 중 하나였어요. ‘런던에서 함께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일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지요.”
― 어떤 대화가 오갔나요.
“그때 회장님은 도쿄만 쪽에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뜻을 갖고 계셨습니다. 20미터나 되는 커다란 상세 도면을 가지고 오셔서 자신이 짓고 싶은 테마파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어요.”
― 첫 만남의 대화 치고는 흥미롭네요.
“정성스럽게 설명을 해주시더니 그러시는 겁니다. ‘사양 말고 어떤 의견이라도 말해달라.’ 그래서 여쭤봤지요. ‘정말 어떤 말씀을 드려도 괜찮습니까’ 그러자 ‘아무 얘기라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 뭐라고 답하셨나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요. 이유를 말씀드렸어요. ‘말씀하시는 부지의 바로 한 정거장 뒤에 도쿄디즈니랜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탑을 만든다는 계획은 아마 허가를 못 받을 겁니다. 하네다 공항의 비행 항로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안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분위기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회장님은 깜짝 놀라셨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회장님 자신도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까지 누구도 ‘노(No)’라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반대 의견을 듣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지신 걸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스미토모은행을 퇴임한 쓰쿠다 고문은 2001년 로얄호텔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로얄호텔은 적자가 심해 스미토모은행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매년 30억 엔에서 40억 엔 적자가 나고 있었어요. 양복에서 점퍼로 갈아입고 호텔 곳곳을 다니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지요. 5~6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흑자로 바꿨습니다. 그 얘기를 회장님께서 어디선가 들으셨는지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오셨어요.”
― 다시 인연이 이어졌군요.
“‘롯데도 서울에서 호텔업을 하고 있다. 로얄호텔을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서울에 와서 들려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회장님은 그때 한 달씩 번갈아 한국과 일본에 머무르셨어요. 일본에 오실 때마다 ‘함께 식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연락을 주셨어요.”
신격호 회장 창업 스토리에 감동
― 꽤 자주 만나셨겠네요.
“롯데를 어떻게 창업했는지 많은 얘기를 들었지요. 롯데 창업 당시 일본은 전쟁을 치르다 패한 상황이었지요. 대단히 어려운 시절에 고생했던 일화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위대한 그룹 롯데의 창업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어떻게 그 고생 속에 회사를 이끌어왔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깊이 감동했습니다.”
울주군 시골마을(둔기리) 출신의 신격호는 1941년 스무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그의 인생은 인상 깊은 일화들의 연속이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배에서 내려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특별고등계 취조실로 끌려갔다. 일본에 온 이유를 설명하다 하필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의 책 얘기가 나왔다. ‘전쟁에 반대한 불온한 작가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유로 신격호는 실컷 두들겨 맞았다.
취조실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는 후쿠오카의 일본인 부부 집을 찾아갔다. 경남 양산에 있던 경남종축장에서 일할 때 묵었던 하숙집 주인 내외다. “일본에 가서 큰 사람이 돼라”고 조언했던 것도 이들 부부였다. 그사이 일본에 귀국해 있던 참이었다. 얻어맞아 엉망이 된 신격호의 얼굴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신격호를 위로했다.
“나중에 큰 인물이 되면 아무도 괄시하지 않을 거다.”
우유 배달부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신격호는 2년 뒤 와세다고등공학교(후에 와세다대 이공학부에 흡수됨)에 입학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커팅오일 제조 사업을 시작하자며 신격호에게 전 재산 6만 엔을 맡겼다. 전당포와 고물상을 운영하던 이였는데 거기에서 신격호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성실히 일하며 회계장부를 싹 정리해준 것에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전쟁 직후 일본의 번듯한 기업의 월급이 200엔이었으니 6만 엔이면 아무리 못해도 수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요새 화폐 가치로는 짐작도 하기 힘들다.
물자가 부족한 전시(戰時) 중 힘들게 커팅오일 공장을 차려놓았는데 폭격으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남아 있던 투자금 절반으로 다시 공장을 차렸다. 생산을 시작해 생산품을 쌓아놓자 또다시 공습. 두 번째 공장도 잿더미가 돼버렸다. 1945년 8월 1일의 일이다. 결국 종전을 목전에 두고 모든 투자금을 날린 셈이다. ‘반드시 재기해 갚겠다’며 엎드려 사죄하는 신격호의 어깨를 하나미쓰 씨는 다독였다. ‘빌려준 돈이 아니고 투자한 거다. 아무 잘못도 없는 네가 갚을 필요는 없다.’
이후 신격호는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팔며 사업체를 키워나갔다. ‘롯데’라는 브랜드를 붙인 후 화장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착실히 수익을 모은 그는 6만 엔을 들고 하나미쓰 부부를 찾아간다. 투자금 전액을 돌려준 후 ‘이자’라며, 도쿄에 집까지 마련해주었다. 부부는 여생을 그 집에서 보냈다. 그 자녀들도 롯데에 입사해 정년퇴임할 때까지 일했다.
“최고경영자는 전공이 따로 없다”
신 회장이 쓰쿠다 고문에게 창업 시절 얘기를 거듭 들려준 건 롯데의 출발점이 신의(信義)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신 회장은 그때부터 쓰쿠다 고문에게 일본 롯데에 와달라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롯데로 오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셔서 답했습니다. ‘저는 은행원 출신이고 제과업이나 유통업은 잘 모릅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 번 사양을 했지요. 2년간 그런 대화가 종종 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롯데라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신 창업주가 이렇게 여러 번 말씀하시는데 계속 거절하는 건 너무 불손한 게 아닌가.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롯데에서 일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롯데에 합류했지요.”
신격호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회사 밖의 전문가를 초빙해 발전의 전기(轉機)를 만들곤 했다. 일본에서 초콜릿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전문가를 수소문해 스위스 출신의 초콜릿 기술자를 초빙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가나초콜릿’이다. 캔디를 출시할 때는 알제리 출신의 캔디 기술자와 함께 ‘커피 캔디’ 등 히트상품을 내놓았다.
임승남 전 롯데건설 사장은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건설과 토목에 경험이 없으니 사우디 현장에 안 가겠다며 여러 번 고사하는 그를 강권하다시피 하며 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경영자는 전공이 따로 없다.”
금융과 호텔업에 몸담았던 쓰쿠다 고문을 제과와 유통이 주 업종인 롯데홀딩스 대표로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신격호, “인재를 키워달라”
― 롯데로 오며 신 회장께 부탁받은 게 있었나요.
“두 가지 말씀을 하셨지요.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달라’ ‘인재를 키워달라’였습니다. 롯데로 온 후 정례 경영회의와 이사회 등을 만들어 기업 경영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교육 제도나 인사 평가 제도를 정비했고요. 명예회장님은 한국 롯데의 활동과 일본 롯데의 활동을 합쳐 시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저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로 출장을 갔습니다.”
― 신동주 전 부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주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그다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쓰쿠다 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상당히 말을 아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해임당한 이후 일본 롯데와 임원들에게 여러 건의 소송을 걸었다. 쓰쿠다 고문에겐 8억 엔(약 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신 전 부회장이 신규 사업에서 실패했다는 거짓 내용을 보고해 (신 전 부회장을) 사임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재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패소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규 사업은 바로 ‘풀리카(Poolika) 사업’을 가리킨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재직하던 롯데서비스에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사업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조사원을 고용해 안경이나 가방에 카메라를 숨기고 편의점, 드럭스토어 등 소매점을 돌아다니며 진열 선반을 촬영하게 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원하는 기업에 판매한다. 풀리카는 사업을 위탁한 외부 업체의 이름이다.
‘몰카’ 이용한 사업 추진
사업성은 둘째치고 위법의 소지가 큰 사업이었다. 원칙적으로 편의점 등 소매 점포는 촬영 금지 구역이다. 사업 추진 전부터 이미 사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풀리카 사업에 2014년까지 9억6000만 엔 이상이 들어갔다. 카메라를 구입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데 들어간 돈이다.
이런 내막은 2022년 4월 일본 재판소에서 민사재판 판결이 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도쿄지방재판소 민사 제8부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사업비 9억6054만4899엔 중 4억8096만3681엔을 롯데서비스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음은 판결문 중 일부다.
〈본건 사업에서는 소매 점포에 대한 무단촬영 목적의 출입이 민형사상 위법이라 판단되어 원고(롯데서비스)가 민사상 불법행위 등의 책임을 질 리스크, 이와 원고의 관계가 밝혀졌을 경우 원고뿐 아니라 원고가 속한 롯데그룹 전체의 평판을 훼손할 리스크가 있었다.
롯데그룹은 롯데홀딩스의 산하에서 각 자회사가 사업 활동을 하고 있으며, 롯데서비스는 그룹 각사의 의뢰를 바탕으로 그 영업 부문이나 생산 부문에서 여러 서포트를 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었다. 원고의 일원인 피고(신동주)도 경영 판단에 있어서 원고뿐만 아니라 롯데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신경 써야 하고, 원고에 대한 선관(善管)주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피고가 풀리카 사업을 실시한 판단의 과정에서 현저하게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할 수 있다. 본건 사업을 실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를 실시해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 이사의 임무 해태가 되므로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관해 임무 해태 책임을 지게 된다.〉
선관주의 의무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의 약자(略字)다. 그 사람의 직업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래상 보통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뜻한다. 한마디로 이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는 얘기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쓰쿠다 고문이 풀리카 사업에 강하게 반대했다는 것도 판결문을 통해 밝혀졌다.
― 풀리카 사업에 왜 반대했나요.
“저희는 제조업체입니다. 과자를 판매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는 제조업체입니다. 진열한 것을 몰래 훔쳐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제과는 고객과 최일선에서 만나는 사업입니다. 저희 일본 롯데는 상품 진열이나 배열은 유통사의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업 때문에 유통사와 롯데 사이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품의 배열이나 진열을 비밀리에 몰래 촬영하는 비즈니스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법원도 판단했고요.”
신동주 전 부회장은 풀리카 사업을 상당히 강하게 밀고 나갔다. 최초에 사업 아이디어를 낸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리스크가 없다는 게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도 진행하라는 얘기다.
신격호 회장의 경영 철학과 현저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일본에 오쿠노 쇼라는 건축가가 있다. 그는 신 회장과 함께 50여 년간 소공동 롯데타운과 잠실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 롯데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설계했다. 국내외에서 롯데와 함께한 프로젝트만 40개다. 어쩌면 신격호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일지 모른다.
2020년엔 《신격호의 도전과 꿈-롯데월드와 타워》라는 책을 냈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OK’는 해도 ‘Go’는 하지 않는다/오쿠노팀이 약 반년을 투자해 계획안을 마무리해 투시도와 모형까지 만들어 신 회장에게 보고했다. 평소에는 좀처럼 ‘OK’ 사인을 내지 않는 신 회장인데도 “매우 훌륭한 안”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3시간에 걸친 회의가 끝나고 신 회장이 던진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른 안(案)도 보고 싶은데 하나 더 만들어주세요.”
계획단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주도면밀한 준비는 신 회장의 신념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밖에 없다’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는 잘 만들어진 안에 대해 ‘OK’ 사인을 낼지언정 프로젝트에 ‘GO’ 사인은 하지 않았다.〉
日 법원, “경영자로서 대단히 부적합한 판단”
― 신동주 전 부회장은 왜 풀리카 사업을 밀고 나갔을까요. 다른 신사업 아이템도 있었을 텐데요.
“시장 조사 부문이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편의점에서 함부로 촬영하면 ‘도촬’이 된다는 등의 요인을 경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 번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그 점을 확실히 알렸지만 무시했습니다. 법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다, 무시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경영자로서 대단히 부적합한 판단을 내렸다고요.”
롯데가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사업을 하려 했다니 기자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쓰쿠다 고문에게 몇 번이나 추진 이유를 되물었지만 “솔직히 모르겠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 신격호 회장은 풀리카 사업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요.
“풀리카 사업 얘기가 명예회장님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와서 설명을 하라’고 명예회장님은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말하셨지만, 신 전 부회장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오라고 저를 통해 얘기를 전하기도 하셨지만,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명예회장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만났을 때도 풀리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신격호, “신동주 해임하라”
― 그래서 신격호 회장이 어떻게 하셨나요.
“신동주 전 부회장을 해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련해서 수차례 회장님과 통화를 했어요. 해임 결의를 위한 이사회를 열기 직전에도 회장님께 다시 전화를 드려 여쭤봤습니다. ‘회장님, 지금 이사회를 열려고 합니다. 해임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도 명예회장님은 ‘해임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결정적 계기는 역시 풀리카 사업이었을까요.
“분명히 설명하라고 지시했지만 설명하지 않은 것에 명예회장님은 대단히 화가 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마 명예회장님께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성격을 알고 계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벌어진 일은 세상에 알려진 대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지속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해임하라는 주주제안서를 여덟 번이나 제출했다. 여덟 번 모두 부결됐다.
신 전 부회장은 왜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하려 8년간이나 시도해왔을까. 롯데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 지배구조의 중심축이다.
2022년 5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보유 현황이 공개됐다. ▲광윤사 28.14% ▲종업원 지주회 27.8% ▲임원 지주회 5.96% ▲오너 일가 7.1% ▲투자회사 LSI 10.65% ▲미도리상사 5.23% 등이었다.
개인별로 보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1.77%(7만6964주), 신동빈 회장은 2.69%(11만6769주)를 소유하고 있다.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한 광윤사는 신주쿠에 있는 포장재 회사다. 광윤사 지분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50.28%, 신동빈 회장이 39.03%,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가 10.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입장에선 광윤사가 보유한 롯데홀딩스 지분에 다른 주주들의 지분을 끌어온다면 자신이 롯데홀딩스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를 번번이 막은 건 종업원 지주회다. 종업원 지주회는 롯데그룹 산하 각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관리직 이상 직원 가운데 본인이 원하고 종업원 지주회 이사회가 승인한 130여 명의 회원 모임이다. 회원이 되면 주식을 액면가에 사고 매년 액면가의 약 12%에 해당하는 배당액을 받다가 퇴직 시 다시 액면가에 주식을 되판다. 종업원 지주회는 8번 모두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었다.
지난 2016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종업원 지주회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임직원 1인당 최대 25억원’을 챙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종업원 지주회 주식을 상장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일본 롯데홀딩스 임직원들은 1인당 약 2억5000만 엔(약 25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롯데홀딩스 직원들은 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롯데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는 제안이다.
창업주에 대한 신뢰
― 종업원 지주회는 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나요. 1인당 25억원이면 큰 금액인데요.
“회사 내에서는 아주 냉정하게 판단을 했습니다. 사원들이 그 제안에 동요하는 것도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인상이지만, 창업주에 대한 일본 롯데 임직원의 신뢰는 상당한 듯했다.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를 보면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풍선껌은 롯데’로 롯데제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50년대 중반, 경리직원 한 명이 야근을 하다 회사에서 쓰러졌다. 며칠 후 세상을 떴다. 신 회장은 장례식이 끝난 후 고인의 부인에게 등기문서를 건넸다. 다세대 연립주택 한 동(棟) 전체의 등기문서였다.
“무슨 말씀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요.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셔야 하니 이 연립주택에 입주해서 사시고, 나머지 세대는 세를 놓아 생활비와 자녀 학비로 쓰세요.”
이 일이 알려지자 침울했던 회사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한다. 신 회장에게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는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가만히 보면 이런 일화들은 노사 관계의 DNA에 각인되는 것 같다.
신동주, 임직원 이메일 훔쳐봐
게다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본 롯데 사이의 소송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이 임직원들의 이메일을 훔쳐본 사실이 드러났다. 풀리카 사업이 시작될 즈음인 2011년 10월부터 사업에 대한 내부 감사가 진행되던 2014년 12월까지 임직원들의 이메일을 30건 이상 전송받았다. 롯데그룹이 이메일 시스템 위탁계약을 맺은 기업(ICL) 대표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대학 동창이라 가능했다.
일본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동주가 이메일 정보를 취득한 것은 임직원과의 신뢰 관계를 현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며, 3년여간에 걸쳐 롯데그룹 전사를 부정하게 접속하고 정보 누설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메일 부정 취득이라는 부정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신동주는 직무상 부정행위를 했다. 경영자로서 부적격하다는 걸 나타낸다”고 판시했다.
― 이메일 사건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피해를 입은 롯데 임직원들이 혹시 소송을 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임직원의 메일을 훔쳐보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내용으로 일본 롯데는 소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롯데가 너무 창피해집니다.”
신격호 회장이 정한 롯데의 사훈(社訓)은 ‘정직, 봉사, 정열’이다. 신 회장은 2001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직은 바르게 살자는 의지, 봉사는 의롭게 살자는 의지의 표현, 정열은 힘차게 살자는 감정의 실현”이라 설명했다.
신동빈 구속 시도한 프로젝트 L
이쯤 되니 신동주-신동빈 형제간의 분쟁이 단순한 형제간의 분쟁이 아니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나무코프 대표) 덕에 노골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긴 했다.
민 전 행장은 2018년 신동주 전 부회장을 상대로 희한한 소송을 제기했다. ‘자문료 108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용역비 청구 소송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민유성 전 행장은 2015년 9월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자문 계약을 맺는다. ‘프로젝트 L’. 이후 한국에 기반이 없고 한국어를 못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대신해 민유성 전 행장은 경영권 분쟁에서 선봉에 나섰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면서 경영권 분쟁을 본격화했는데, 당시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음 달인 11월 롯데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민유성 전 행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프로젝트 L-변경자문계약’을 맺었다. 월(月) 자문료 7억원에 성공보수 500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이때 ‘면세점 면허 갱신 방해’ 등을 구체적인 자문성과로 명시했다.
이듬해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12월 롯데가 월드타워 면세점 사업자로 재선정되고,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도 승리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7년 8월 민유성 전 행장 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을 상대로 2018년 1월 ‘자문료로 (이미) 받은 182억원에 추가해 108억원을 더 달라’며 용역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민유성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75억원을 지급하라.’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해 민유성 전 행장의 자문 행위를 변호사법 위반 행위로 판단했다. 판결의 해당 내용이다.
〈나무코프가 계약에 따라 수행한 자문용역의 주된 업무는 법적 분쟁에 관한 조언 및 정보 제공 등 법률사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수령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반사회적 법률 행위에 해당하므로 무효다. 나무코프는 SDJ(신 전 부회장의 회사)와 2단계 자문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신 전 부회장의 롯데그룹 경영권 회복이란 궁극적 목적 달성을 위해 ‘면세점 특허 재취득 탈락’ ‘신동빈 회장에 대한 법정구속 내지 유죄판결의 선고’ 등을 주된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변호사법 109조 1호에 의해 금지된 법률사무를 수행한 것이다.〉
결국 민 전 행장은 2022년 8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경영권 분란 불씨는 아예 없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이라는 일본어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요즘도 한 번씩 글을 올린다. 2022년 8월에는 ‘특별사면으로는 면제되지 않는 책임’이란 제목의 글을 업로드했다. 물론 특별사면을 받은 신동빈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쓰쿠다 고문에게 롯데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취임한 후 ‘한일통합경영’을 하겠다고 했는데 일본 롯데에선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일본 롯데그룹 임직원 모두 대단히 반겼다고 생각합니다. 신동빈 회장의 명쾌한 방침과 추진력, 한국과 일본을 합쳐 시너지를 만들려는 방침 덕에 상황이 아주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 롯데홀딩스에 경영권 분란의 불씨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불씨는 아예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이사로 현저히 부적합하다’고 법원도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경영권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그런 건 아예 없습니다.”
쓰쿠다 고문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일본 롯데그룹은 현재 대단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광윤사 이외에 종업원 지주회나 다른 주주들은 굳건히 현 경영진을 지지하고 있어요.”
“신격호 회장은 큰 코끼리”
― 신격호 회장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가요.
“2015년 7월이었습니다. 첫 만남 때완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지요. 처음 만났을 때 사업하며 고생한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었는데… 마지막으로 뵈었을 땐 ‘롯데를 여기까지 이끌어오기 위해 회장님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이미 신격호 회장은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신 회장은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했다. 이 사실 역시 무슨 이유였는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언론에 상세히 밝히는 바람에 알려졌다.
불쑥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
“신격호 회장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가라앉아 있던 쓰쿠다 고문의 표정이 문득 환해졌다.
“‘큰 코끼리’입니다. 명예회장님은 우유 배달로 시작해 일본에서 정치가들과도 당당하게 상대하시며 성공해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키셨지요.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코끼리입니다.”
건축가 오쿠노 쇼는 자신의 책에서 신격호 회장과 롯데 임직원들이 어떻게 소공동 프로젝트나 잠실 롯데월드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추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던진다. 그러곤 이렇게 자답(自答)한다.
“신격호 회장은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고향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늘 되뇌었다. 롯데그룹 전체에 깊이 스며든 그의 ‘로망’이 이뤄낸 성과가 아닐까.”
울주군 둔터마을에서 출발한 신격호와 샤롯데의 집념과 로망. 일본 신주쿠를 거쳐 서울 잠실에 이르러 세상 어느 코끼리보다도 큰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가 되어 고국의 수도를 바라보고 있다.⊙
도쿄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아 탄 참이었다. 택시 기사의 답이 곧장 돌아왔다. “신주쿠에 있는 롯데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뻗어 운전석 쪽을 살펴봤다. 한국 택시에서 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사에게 물었다.
“롯데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아시네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중년의 기사는 고개를 잠시 갸웃하더니 답했다.
“롯데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소박한 모습의 신격호 기념실
![]() |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롯데 본사 건물. |
길 건너로 도쿄도청(東京都廳)이 보였다. 신주쿠는 일본 도쿄의 중심지 중 하나다. 버블 시기 이후 일본의 땅값이 떨어졌다 해도 신주쿠의 땅값은 2021년 공시지가 기준 1평(3.3제곱미터)당 12억원이 넘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깨끗하게 정리된 소박한 로비가 보였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신격호(辛格浩) 회장 기념실이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다. 동시에 10명도 못 들어가는 자그마한 사무실 한 칸이었다. 취재 약속을 할 때 일본 롯데 측이 ‘작은 규모’라고 거듭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격호 회장이 생전에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기념실이라고 하지만 금방이라도 주인이 들어올 것처럼 소박하고 아늑한 모습. 다가가 보니 책상 위엔 역시 먼지 한 톨 안 보였다. 책상 옆쪽에 나무 지팡이도 놓여 있었다. 책상 옆으로 지구본이 보였다. 들여다보니 몇 군데 지역에 빨간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언뜻 보니 미국 인디애나주,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었다. 어떤 생각으로 붙인 걸까. 답해줄 수 있는 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식민지 청년’의 성공신화
![]() |
일본 롯데 본사 내에 있는 신격호 기념실. 신격호 회장이 생전에 쓰던 책상과 바둑판, 골프채 등이 전시되어 있다. |
달력은 2020년 1월 18일에 멈춰 있었다. 책상의 주인이 마지막으로 롯데 명예회장직을 수행한 날이다. 다음 날인 1월 19일 신격호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월 19일이 3주기다.
신격호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일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업인, 혈혈단신 빈손으로 대망을 이룬 식민지 청년의 영화 같은 성공신화, 다들 자신의 이름이나 거창한 단어로 기업 이름을 짓던 시절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샤롯데’를 생각해낸 문학청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느니, 전범(戰犯)의 친척과 결혼했느니 온갖 루머(모두 사실이 아니다)에도 ‘자연히 바로잡힐 텐데 뭐하러 일일이 신경을 쓰냐’며 의연했던 한국인.
한일 양국이 얽힌 역사의 소음(騷音)을 배경으로 신격호 회장은 평생 조용히 기업 경영에 매진했다. 다른 창업주들처럼 세상에 훈계하는 책을 낸다거나 정치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일은 극도로 삼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은 장남이 포문을 연 경영권 분쟁 탓에 유독 쓸쓸해 보였다.
그간의 분쟁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2014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일본 롯데에서 해임됐다. 뒤에 설명할 의문의 신사업 추진 건이 결정적이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법정 소송, 주총 안건 상정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신격호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2022년 11월 21일 일본 신주쿠의 한 호텔에서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80) 일본 롯데홀딩스 고문을 만났다. 그는 신격호 회장이 2009년 직접 롯데로 스카우트한 전문 경영인이다. 스미토모은행과 로얄호텔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일본 롯데로 합류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자연히 신격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는 《월간조선》을 알고 있었다. 신격호 회장이 22년 전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를 기억하는 듯했다. 《월간조선》 2001년 1월호엔 신격호 회장과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의 신년호 특별인터뷰가 실렸다.
조갑제 편집장은 신주쿠 롯데 본사를 찾아가 신 회장과 마주 앉았다. 경영 철학과 한일 간의 기업 경영 여건 차이에 대해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신 회장은 사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날의 자리가 의미 있는 대화를 길게 나눈 유일한 인터뷰인 셈이다. 신 회장은 말수가 상당히 적어 인터뷰 대상으로서는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조 편집장은 후술(後述)했다. 그 22년 후 기자는 신 회장이 신뢰하며 일본 롯데 경영을 맡겼던 인사와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신격호 회장과의 첫 만남
쓰쿠다 고문은 금융계와 호텔업계에서 종사해서인지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저는 명예회장님께 얼마만큼 고생해서 롯데를 만들었는지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명예회장님은 오로지 롯데의 발전만을 원하셨어요. 두 분의 분쟁이 없길 바랐지요.”
― 신격호 회장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스미토모은행 유럽 총괄본부장으로 일했습니다. 1997년 즈음 처음 신 회장님을 만났어요. 그때 회장님이 테마파크 건설과 관련해 런던에 시찰을 오셨어요. 당시 롯데는 거래 기업 중 하나였어요. ‘런던에서 함께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일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지요.”
― 어떤 대화가 오갔나요.
“그때 회장님은 도쿄만 쪽에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뜻을 갖고 계셨습니다. 20미터나 되는 커다란 상세 도면을 가지고 오셔서 자신이 짓고 싶은 테마파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어요.”
― 첫 만남의 대화 치고는 흥미롭네요.
“정성스럽게 설명을 해주시더니 그러시는 겁니다. ‘사양 말고 어떤 의견이라도 말해달라.’ 그래서 여쭤봤지요. ‘정말 어떤 말씀을 드려도 괜찮습니까’ 그러자 ‘아무 얘기라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 뭐라고 답하셨나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요. 이유를 말씀드렸어요. ‘말씀하시는 부지의 바로 한 정거장 뒤에 도쿄디즈니랜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탑을 만든다는 계획은 아마 허가를 못 받을 겁니다. 하네다 공항의 비행 항로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안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분위기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회장님은 깜짝 놀라셨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회장님 자신도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까지 누구도 ‘노(No)’라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반대 의견을 듣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지신 걸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스미토모은행을 퇴임한 쓰쿠다 고문은 2001년 로얄호텔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로얄호텔은 적자가 심해 스미토모은행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매년 30억 엔에서 40억 엔 적자가 나고 있었어요. 양복에서 점퍼로 갈아입고 호텔 곳곳을 다니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지요. 5~6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흑자로 바꿨습니다. 그 얘기를 회장님께서 어디선가 들으셨는지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오셨어요.”
― 다시 인연이 이어졌군요.
“‘롯데도 서울에서 호텔업을 하고 있다. 로얄호텔을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서울에 와서 들려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회장님은 그때 한 달씩 번갈아 한국과 일본에 머무르셨어요. 일본에 오실 때마다 ‘함께 식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연락을 주셨어요.”
― 꽤 자주 만나셨겠네요.
“롯데를 어떻게 창업했는지 많은 얘기를 들었지요. 롯데 창업 당시 일본은 전쟁을 치르다 패한 상황이었지요. 대단히 어려운 시절에 고생했던 일화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위대한 그룹 롯데의 창업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어떻게 그 고생 속에 회사를 이끌어왔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깊이 감동했습니다.”
울주군 시골마을(둔기리) 출신의 신격호는 1941년 스무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그의 인생은 인상 깊은 일화들의 연속이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배에서 내려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특별고등계 취조실로 끌려갔다. 일본에 온 이유를 설명하다 하필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의 책 얘기가 나왔다. ‘전쟁에 반대한 불온한 작가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유로 신격호는 실컷 두들겨 맞았다.
취조실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는 후쿠오카의 일본인 부부 집을 찾아갔다. 경남 양산에 있던 경남종축장에서 일할 때 묵었던 하숙집 주인 내외다. “일본에 가서 큰 사람이 돼라”고 조언했던 것도 이들 부부였다. 그사이 일본에 귀국해 있던 참이었다. 얻어맞아 엉망이 된 신격호의 얼굴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신격호를 위로했다.
“나중에 큰 인물이 되면 아무도 괄시하지 않을 거다.”
우유 배달부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신격호는 2년 뒤 와세다고등공학교(후에 와세다대 이공학부에 흡수됨)에 입학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커팅오일 제조 사업을 시작하자며 신격호에게 전 재산 6만 엔을 맡겼다. 전당포와 고물상을 운영하던 이였는데 거기에서 신격호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성실히 일하며 회계장부를 싹 정리해준 것에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전쟁 직후 일본의 번듯한 기업의 월급이 200엔이었으니 6만 엔이면 아무리 못해도 수억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요새 화폐 가치로는 짐작도 하기 힘들다.
물자가 부족한 전시(戰時) 중 힘들게 커팅오일 공장을 차려놓았는데 폭격으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남아 있던 투자금 절반으로 다시 공장을 차렸다. 생산을 시작해 생산품을 쌓아놓자 또다시 공습. 두 번째 공장도 잿더미가 돼버렸다. 1945년 8월 1일의 일이다. 결국 종전을 목전에 두고 모든 투자금을 날린 셈이다. ‘반드시 재기해 갚겠다’며 엎드려 사죄하는 신격호의 어깨를 하나미쓰 씨는 다독였다. ‘빌려준 돈이 아니고 투자한 거다. 아무 잘못도 없는 네가 갚을 필요는 없다.’
이후 신격호는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팔며 사업체를 키워나갔다. ‘롯데’라는 브랜드를 붙인 후 화장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착실히 수익을 모은 그는 6만 엔을 들고 하나미쓰 부부를 찾아간다. 투자금 전액을 돌려준 후 ‘이자’라며, 도쿄에 집까지 마련해주었다. 부부는 여생을 그 집에서 보냈다. 그 자녀들도 롯데에 입사해 정년퇴임할 때까지 일했다.
“최고경영자는 전공이 따로 없다”
![]() |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시절의 쓰쿠다 고문. 사진=쓰쿠다 다카유키 |
“‘롯데로 오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셔서 답했습니다. ‘저는 은행원 출신이고 제과업이나 유통업은 잘 모릅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 번 사양을 했지요. 2년간 그런 대화가 종종 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롯데라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신 창업주가 이렇게 여러 번 말씀하시는데 계속 거절하는 건 너무 불손한 게 아닌가.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롯데에서 일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롯데에 합류했지요.”
신격호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회사 밖의 전문가를 초빙해 발전의 전기(轉機)를 만들곤 했다. 일본에서 초콜릿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전문가를 수소문해 스위스 출신의 초콜릿 기술자를 초빙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가나초콜릿’이다. 캔디를 출시할 때는 알제리 출신의 캔디 기술자와 함께 ‘커피 캔디’ 등 히트상품을 내놓았다.
임승남 전 롯데건설 사장은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건설과 토목에 경험이 없으니 사우디 현장에 안 가겠다며 여러 번 고사하는 그를 강권하다시피 하며 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경영자는 전공이 따로 없다.”
금융과 호텔업에 몸담았던 쓰쿠다 고문을 제과와 유통이 주 업종인 롯데홀딩스 대표로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이유다.
![]() |
젊은 시절의 신격호. 사진=롯데 지주 |
“두 가지 말씀을 하셨지요.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달라’ ‘인재를 키워달라’였습니다. 롯데로 온 후 정례 경영회의와 이사회 등을 만들어 기업 경영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교육 제도나 인사 평가 제도를 정비했고요. 명예회장님은 한국 롯데의 활동과 일본 롯데의 활동을 합쳐 시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저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로 출장을 갔습니다.”
― 신동주 전 부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주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그다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쓰쿠다 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상당히 말을 아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해임당한 이후 일본 롯데와 임원들에게 여러 건의 소송을 걸었다. 쓰쿠다 고문에겐 8억 엔(약 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신 전 부회장이 신규 사업에서 실패했다는 거짓 내용을 보고해 (신 전 부회장을) 사임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재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패소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규 사업은 바로 ‘풀리카(Poolika) 사업’을 가리킨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재직하던 롯데서비스에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사업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조사원을 고용해 안경이나 가방에 카메라를 숨기고 편의점, 드럭스토어 등 소매점을 돌아다니며 진열 선반을 촬영하게 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원하는 기업에 판매한다. 풀리카는 사업을 위탁한 외부 업체의 이름이다.
‘몰카’ 이용한 사업 추진
![]() |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롯데서비스 사이의 소송을 판결한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의 판결문 일부다. 사진=조선DB |
이런 내막은 2022년 4월 일본 재판소에서 민사재판 판결이 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도쿄지방재판소 민사 제8부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사업비 9억6054만4899엔 중 4억8096만3681엔을 롯데서비스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음은 판결문 중 일부다.
〈본건 사업에서는 소매 점포에 대한 무단촬영 목적의 출입이 민형사상 위법이라 판단되어 원고(롯데서비스)가 민사상 불법행위 등의 책임을 질 리스크, 이와 원고의 관계가 밝혀졌을 경우 원고뿐 아니라 원고가 속한 롯데그룹 전체의 평판을 훼손할 리스크가 있었다.
롯데그룹은 롯데홀딩스의 산하에서 각 자회사가 사업 활동을 하고 있으며, 롯데서비스는 그룹 각사의 의뢰를 바탕으로 그 영업 부문이나 생산 부문에서 여러 서포트를 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었다. 원고의 일원인 피고(신동주)도 경영 판단에 있어서 원고뿐만 아니라 롯데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신경 써야 하고, 원고에 대한 선관(善管)주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피고가 풀리카 사업을 실시한 판단의 과정에서 현저하게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할 수 있다. 본건 사업을 실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를 실시해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 이사의 임무 해태가 되므로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관해 임무 해태 책임을 지게 된다.〉
선관주의 의무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의 약자(略字)다. 그 사람의 직업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래상 보통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뜻한다. 한마디로 이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는 얘기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 |
소공동 롯데타운, 롯데월드 등을 설계한 오쿠노 쇼(가운데)와 신격호 회장(왼쪽). 1994년 이집트 피라미드에 답사를 갔을 때다. |
― 풀리카 사업에 왜 반대했나요.
“저희는 제조업체입니다. 과자를 판매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는 제조업체입니다. 진열한 것을 몰래 훔쳐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제과는 고객과 최일선에서 만나는 사업입니다. 저희 일본 롯데는 상품 진열이나 배열은 유통사의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업 때문에 유통사와 롯데 사이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품의 배열이나 진열을 비밀리에 몰래 촬영하는 비즈니스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법원도 판단했고요.”
신동주 전 부회장은 풀리카 사업을 상당히 강하게 밀고 나갔다. 최초에 사업 아이디어를 낸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리스크가 없다는 게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도 진행하라는 얘기다.
신격호 회장의 경영 철학과 현저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일본에 오쿠노 쇼라는 건축가가 있다. 그는 신 회장과 함께 50여 년간 소공동 롯데타운과 잠실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 롯데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설계했다. 국내외에서 롯데와 함께한 프로젝트만 40개다. 어쩌면 신격호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일지 모른다.
2020년엔 《신격호의 도전과 꿈-롯데월드와 타워》라는 책을 냈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OK’는 해도 ‘Go’는 하지 않는다/오쿠노팀이 약 반년을 투자해 계획안을 마무리해 투시도와 모형까지 만들어 신 회장에게 보고했다. 평소에는 좀처럼 ‘OK’ 사인을 내지 않는 신 회장인데도 “매우 훌륭한 안”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3시간에 걸친 회의가 끝나고 신 회장이 던진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른 안(案)도 보고 싶은데 하나 더 만들어주세요.”
계획단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주도면밀한 준비는 신 회장의 신념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밖에 없다’고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는 잘 만들어진 안에 대해 ‘OK’ 사인을 낼지언정 프로젝트에 ‘GO’ 사인은 하지 않았다.〉
日 법원, “경영자로서 대단히 부적합한 판단”
― 신동주 전 부회장은 왜 풀리카 사업을 밀고 나갔을까요. 다른 신사업 아이템도 있었을 텐데요.
“시장 조사 부문이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편의점에서 함부로 촬영하면 ‘도촬’이 된다는 등의 요인을 경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 번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그 점을 확실히 알렸지만 무시했습니다. 법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다, 무시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경영자로서 대단히 부적합한 판단을 내렸다고요.”
롯데가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사업을 하려 했다니 기자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쓰쿠다 고문에게 몇 번이나 추진 이유를 되물었지만 “솔직히 모르겠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 신격호 회장은 풀리카 사업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요.
“풀리카 사업 얘기가 명예회장님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와서 설명을 하라’고 명예회장님은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말하셨지만, 신 전 부회장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오라고 저를 통해 얘기를 전하기도 하셨지만,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명예회장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만났을 때도 풀리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신격호, “신동주 해임하라”
― 그래서 신격호 회장이 어떻게 하셨나요.
“신동주 전 부회장을 해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련해서 수차례 회장님과 통화를 했어요. 해임 결의를 위한 이사회를 열기 직전에도 회장님께 다시 전화를 드려 여쭤봤습니다. ‘회장님, 지금 이사회를 열려고 합니다. 해임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도 명예회장님은 ‘해임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결정적 계기는 역시 풀리카 사업이었을까요.
“분명히 설명하라고 지시했지만 설명하지 않은 것에 명예회장님은 대단히 화가 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마 명예회장님께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성격을 알고 계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벌어진 일은 세상에 알려진 대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지속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해임하라는 주주제안서를 여덟 번이나 제출했다. 여덟 번 모두 부결됐다.
신 전 부회장은 왜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하려 8년간이나 시도해왔을까. 롯데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 지배구조의 중심축이다.
2022년 5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보유 현황이 공개됐다. ▲광윤사 28.14% ▲종업원 지주회 27.8% ▲임원 지주회 5.96% ▲오너 일가 7.1% ▲투자회사 LSI 10.65% ▲미도리상사 5.23% 등이었다.
개인별로 보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1.77%(7만6964주), 신동빈 회장은 2.69%(11만6769주)를 소유하고 있다.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한 광윤사는 신주쿠에 있는 포장재 회사다. 광윤사 지분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50.28%, 신동빈 회장이 39.03%,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가 10.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입장에선 광윤사가 보유한 롯데홀딩스 지분에 다른 주주들의 지분을 끌어온다면 자신이 롯데홀딩스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를 번번이 막은 건 종업원 지주회다. 종업원 지주회는 롯데그룹 산하 각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관리직 이상 직원 가운데 본인이 원하고 종업원 지주회 이사회가 승인한 130여 명의 회원 모임이다. 회원이 되면 주식을 액면가에 사고 매년 액면가의 약 12%에 해당하는 배당액을 받다가 퇴직 시 다시 액면가에 주식을 되판다. 종업원 지주회는 8번 모두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었다.
지난 2016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종업원 지주회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임직원 1인당 최대 25억원’을 챙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종업원 지주회 주식을 상장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일본 롯데홀딩스 임직원들은 1인당 약 2억5000만 엔(약 25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롯데홀딩스 직원들은 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롯데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는 제안이다.
창업주에 대한 신뢰
![]() |
1987년 7월 롯데월드 준공식 모습. 왼쪽부터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 나카소네 일본 총리, 임승남 당시 롯데잠실건설본부장, 신격호 회장. 사진=조선DB |
“회사 내에서는 아주 냉정하게 판단을 했습니다. 사원들이 그 제안에 동요하는 것도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인상이지만, 창업주에 대한 일본 롯데 임직원의 신뢰는 상당한 듯했다.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를 보면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풍선껌은 롯데’로 롯데제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50년대 중반, 경리직원 한 명이 야근을 하다 회사에서 쓰러졌다. 며칠 후 세상을 떴다. 신 회장은 장례식이 끝난 후 고인의 부인에게 등기문서를 건넸다. 다세대 연립주택 한 동(棟) 전체의 등기문서였다.
“무슨 말씀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요.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셔야 하니 이 연립주택에 입주해서 사시고, 나머지 세대는 세를 놓아 생활비와 자녀 학비로 쓰세요.”
이 일이 알려지자 침울했던 회사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한다. 신 회장에게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는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가만히 보면 이런 일화들은 노사 관계의 DNA에 각인되는 것 같다.
신동주, 임직원 이메일 훔쳐봐
게다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본 롯데 사이의 소송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이 임직원들의 이메일을 훔쳐본 사실이 드러났다. 풀리카 사업이 시작될 즈음인 2011년 10월부터 사업에 대한 내부 감사가 진행되던 2014년 12월까지 임직원들의 이메일을 30건 이상 전송받았다. 롯데그룹이 이메일 시스템 위탁계약을 맺은 기업(ICL) 대표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대학 동창이라 가능했다.
일본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동주가 이메일 정보를 취득한 것은 임직원과의 신뢰 관계를 현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며, 3년여간에 걸쳐 롯데그룹 전사를 부정하게 접속하고 정보 누설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메일 부정 취득이라는 부정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신동주는 직무상 부정행위를 했다. 경영자로서 부적격하다는 걸 나타낸다”고 판시했다.
― 이메일 사건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피해를 입은 롯데 임직원들이 혹시 소송을 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임직원의 메일을 훔쳐보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내용으로 일본 롯데는 소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롯데가 너무 창피해집니다.”
신격호 회장이 정한 롯데의 사훈(社訓)은 ‘정직, 봉사, 정열’이다. 신 회장은 2001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직은 바르게 살자는 의지, 봉사는 의롭게 살자는 의지의 표현, 정열은 힘차게 살자는 감정의 실현”이라 설명했다.
신동빈 구속 시도한 프로젝트 L
![]() |
2015년 10월 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동주(오른쪽)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민유성(왼쪽) SDJ코퍼레이션 고문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조선DB |
민 전 행장은 2018년 신동주 전 부회장을 상대로 희한한 소송을 제기했다. ‘자문료 108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용역비 청구 소송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민유성 전 행장은 2015년 9월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자문 계약을 맺는다. ‘프로젝트 L’. 이후 한국에 기반이 없고 한국어를 못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대신해 민유성 전 행장은 경영권 분쟁에서 선봉에 나섰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면서 경영권 분쟁을 본격화했는데, 당시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음 달인 11월 롯데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민유성 전 행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프로젝트 L-변경자문계약’을 맺었다. 월(月) 자문료 7억원에 성공보수 500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이때 ‘면세점 면허 갱신 방해’ 등을 구체적인 자문성과로 명시했다.
이듬해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12월 롯데가 월드타워 면세점 사업자로 재선정되고,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도 승리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7년 8월 민유성 전 행장 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을 상대로 2018년 1월 ‘자문료로 (이미) 받은 182억원에 추가해 108억원을 더 달라’며 용역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민유성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75억원을 지급하라.’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해 민유성 전 행장의 자문 행위를 변호사법 위반 행위로 판단했다. 판결의 해당 내용이다.
〈나무코프가 계약에 따라 수행한 자문용역의 주된 업무는 법적 분쟁에 관한 조언 및 정보 제공 등 법률사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수령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반사회적 법률 행위에 해당하므로 무효다. 나무코프는 SDJ(신 전 부회장의 회사)와 2단계 자문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신 전 부회장의 롯데그룹 경영권 회복이란 궁극적 목적 달성을 위해 ‘면세점 특허 재취득 탈락’ ‘신동빈 회장에 대한 법정구속 내지 유죄판결의 선고’ 등을 주된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변호사법 109조 1호에 의해 금지된 법률사무를 수행한 것이다.〉
결국 민 전 행장은 2022년 8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경영권 분란 불씨는 아예 없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이라는 일본어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요즘도 한 번씩 글을 올린다. 2022년 8월에는 ‘특별사면으로는 면제되지 않는 책임’이란 제목의 글을 업로드했다. 물론 특별사면을 받은 신동빈 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쓰쿠다 고문에게 롯데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취임한 후 ‘한일통합경영’을 하겠다고 했는데 일본 롯데에선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일본 롯데그룹 임직원 모두 대단히 반겼다고 생각합니다. 신동빈 회장의 명쾌한 방침과 추진력, 한국과 일본을 합쳐 시너지를 만들려는 방침 덕에 상황이 아주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 롯데홀딩스에 경영권 분란의 불씨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불씨는 아예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이사로 현저히 부적합하다’고 법원도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경영권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그런 건 아예 없습니다.”
쓰쿠다 고문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일본 롯데그룹은 현재 대단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광윤사 이외에 종업원 지주회나 다른 주주들은 굳건히 현 경영진을 지지하고 있어요.”
“신격호 회장은 큰 코끼리”
― 신격호 회장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가요.
“2015년 7월이었습니다. 첫 만남 때완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지요. 처음 만났을 때 사업하며 고생한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었는데… 마지막으로 뵈었을 땐 ‘롯데를 여기까지 이끌어오기 위해 회장님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이미 신격호 회장은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신 회장은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했다. 이 사실 역시 무슨 이유였는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언론에 상세히 밝히는 바람에 알려졌다.
불쑥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
“신격호 회장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가라앉아 있던 쓰쿠다 고문의 표정이 문득 환해졌다.
“‘큰 코끼리’입니다. 명예회장님은 우유 배달로 시작해 일본에서 정치가들과도 당당하게 상대하시며 성공해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키셨지요.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코끼리입니다.”
건축가 오쿠노 쇼는 자신의 책에서 신격호 회장과 롯데 임직원들이 어떻게 소공동 프로젝트나 잠실 롯데월드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추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던진다. 그러곤 이렇게 자답(自答)한다.
“신격호 회장은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고향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늘 되뇌었다. 롯데그룹 전체에 깊이 스며든 그의 ‘로망’이 이뤄낸 성과가 아닐까.”
울주군 둔터마을에서 출발한 신격호와 샤롯데의 집념과 로망. 일본 신주쿠를 거쳐 서울 잠실에 이르러 세상 어느 코끼리보다도 큰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가 되어 고국의 수도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