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자수첩

1919년 건국?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41대 대통령인가?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임시정부는 국민·영토·주권 3 요소 갖추지 못했고, 어느 나라로부터도 국가승인 받지 못해
⊙ 임시정부, 1941년 〈건국강령〉에서 ‘복국(復國)’과 ‘건국’ 구분
⊙ 광복절은 당초 ‘독립기념일’로 제정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4일 독립유공자·유족 오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4일 “2년 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면서 “대한민국 건국 100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100년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을 1919년이라고 단정 짓고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식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국가의 3요소는 국민·영토·주권이다. 이는 헌법학개론 책만 봐도 나오는 얘기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반도 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주권을 온전히 행사한 적이 있나? 국내에서 징세권과 징병권, 행정권을 행사했나? 임시정부가 단 한 나라로부터도 국가승인을 받았나? 국제법적 의미에서의 주권국가였나?
 
  1919년 3월 1일 건국됐다면, 이 땅의 아들딸이 군함도에 징용으로, 전선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갈 때, 대한민국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둘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독립운동가들의 인식과도 배치(背馳)된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포함해서 누구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1년 11월 발표한 〈건국강령〉이다. 이 〈건국강령〉은 임시정부의 활동시기를 ‘복국기(復國期)’와 ‘건국기’, 즉 독립운동 단계와 건국 단계로 구분하면서 매 단계에서 임시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있다.
 
  여운형은 1945년 8·15 직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1947년 3월에는 이승만 박사를 명예소장, 김구 선생을 소장으로 하는 건국실천요원양성소가 만들어졌다. 모두 ‘해방’은 되었으니, 이제는 ‘건국’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의 소산이었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후 건국 단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던 후대인들이 1919년 3월 1일 혹은 그 후 임시정부 수립으로 건국했다고 하면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이 웃을 것이다.
 
 
  중국,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했다고 봐
 
1950년에 나온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1주년 기념우표(왼쪽)와 2009년에 나온 중화인민공화국성립 60주년 기념우표. 표현은 다르지만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1931년 11월 7일 장시성 루이진(瑞金)에서 수립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그것이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이 1929년 이후 무력으로 점거한 장시성 남부와 푸젠성 서부를 비롯해 저장성, 후난성, 후베이성, 허난성, 안후이성, 산시성, 간쑤성의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이들 ‘혁명근거지’에서 통치기구를 만들어 인민들을 지배하면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정부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군사위원회 주석 겸 홍군(紅軍) 총사령관은 주더(朱德)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헌법대강, 노동법, 토지법 등도 공포했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제2차 국공합작 이후인 1937년까지 존속했다. 이념적으로나 인적 구성으로나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분명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태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보다 훨씬 실제적인 ‘국가’에 근접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정부나 국민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1931년 11월 7일에 건국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국경절(國慶節)로 기리고 있다.
 
  2009년에는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 영화의 제목은 〈건국대업(建國大業)〉이었다. 기자는 10년 전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창사에서 마오쩌둥 흉상을 하나 샀다. 그 흉상에는 ‘개국영수 마오쩌둥 동지(開國領袖 毛澤東 同志)’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독립기념일’이 ‘해방절’로 둔갑
 
1948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전. 이날 대한민국은 주권을 회복했다.
  정부가 올해를 ‘광복(光復) 72주년’으로 기념하는 것도 잘못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음’이라는 뜻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이다. 이후 3년간의 미군정(美軍政)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으로 주권을 되찾았다. 올해는 마땅히 광복 69주년인 것이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올해는 광복 98주년이어야 한다.
 
  흔히 광복절을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광복절’은 원래 ‘해방절’이 아니라 ‘독립기념일’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1949년 5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에 의하면 8월 15일은 ‘독립기념일’, 7월 17일은 헌법공포기념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광복절, 제헌절로 바뀐 것이다.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광복=독립=건국으로 인식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사에서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인 오늘을 우리는 제4회 해방일과 같이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한국민주당을 이끌던 김성수도 “금(今)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만 4주년이 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지 1주년이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950년 광복절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장 출신인 신익희 국회의장도 “대한민국 독립 2주년 기념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은 ‘광복=해방’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대구매일신문》은 1950년 전쟁 중에 치러진 광복절 행사를 ‘6회 광복절 기념식’이라고 보도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이런 오인이 확산되어, 신문은 물론 정부조차도 광복절을 1945년부터 기산(起算)하기 시작했다.
 
  1948년 8월 15일에는 ‘정부수립’을 한 것이지 건국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8월 15일 건국 행사의 이름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엔감시하의 5·10총선, 제헌국회 구성, 제헌헌법 제정, 대통령 선출, 초대 내각 조각(組閣), 정부 수립, 유엔에서의 유일 합법정부 승인, 우방국들의 국가승인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건국 과정이었다. 그중에서 주권 회복을 내외에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상징적인 단계가 정부수립 선포였기에 1948년 8월 15일에 정부수립기념식을 한 것이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몇 대 대통령인가? 제19대 대통령인가? 이승만·박은식 임시대통령을 포함해 21대 대통령인가? 임시정부 대통령(2대) 외에, 국무령(10대), 주석(10대)를 포함해 41대 대통령인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