肝이식 수술 성공 후 사망한 이유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肝(간) 이식수술 병원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수술을 받으려는 많은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데 얼마 전 동생에게 자신의 간을 떼어 준 형이 수술 후 사흘 만에 죽게 된 일이 이 병원에서 일어났다. 밝혀진 보고에 의하면 수술 후 따라야 할 합당한 관심과 치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한다.
단 한 사람의 경험 없는 레지던트가 서른 명이 넘는 환자를 보면서 피를 토하는 이 환자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딸꾹질로 시작된 증상을 방관했고 담당의사에게 異常을 보고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손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내가 앓게 된 병을 비교해 생각하게 되었다. 약의 효능만 강조했을 뿐 약으로 인한 해로움에 대해 전혀 들은 일이 없어서 앓게 됐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같은 증세로 앓게 된 나의 병은 이렇게 시작했다.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인디언 마을, 아마존의 밀림 속이라고 믿고 싶은 어느 작은 마을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지금 이 시간은 돌아와서 의기양양한 여행기를 쓸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질없이 앓아 누우면서 여행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병을 앓게 된 경위를 체험이랍시고 쓰게 되었다.
평소에 자신이 제법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나오는 병 자랑도 내세울 것이 없었고 몸에 좋다는 거시기한 음식이나 약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헌데 항상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 그건 변비에 좋다는 약이다.
그런 참에 奧地(오지)로 여행을 떠나게 되자 그곳의 화장실 사정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생겼다. 신문 한 뭉치를 다 읽고 나오는 악습을 가지고 있는 터라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고민을 흘려듣지 못한 언니는 해결사를 자칭하며 아는 한의사와 의논하게 되었다. 언니는 몇 해 전에도 제주도 여행길에서 특효약을 구해다 주는 등 동생의 딜레마를 수수방관하지 못하는 지원자였다. 만사 해결이라며 신이 나서 지어 온 丸藥(환약)을 보고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변비약을 먹고 간염을 앓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8년 전에도 한국에서 내가 직접 지어 온 환약을 하루에 30알씩 한 달 가량을 먹었다. 그리고 간염이 생겨 앓게 되었을 때 그 한약이 원인이라고 단정하지 못했다. 그때는 직장생활을 하며 밤늦도록 번역을 했고 번역된 책에 문제가 생겨 한국을 오가야 했었다.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고 피곤한 것은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런 상태에서 워싱턴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기차 속에서 꿈 속을 헤매듯 실신상태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저히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을 만큼 피곤했다. 열흘 간의 휴가를 신청하고 파리로 갔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쉬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날마다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걸 휴식이라고 여겼다.
돌아오는 날 비행장에 마중 나온 남편은 황달이 와서 눈이 노래진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간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일을 중단하고 영양을 섭취하며 요양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당시 한약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한 나는 서울에서 먹은 생선회나 술잔 돌리기가 간염을 유발한 바이러스의 제공자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때 의사가 급성 A형 간염으로 추정한다면서도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한 이유를 8년 후인 이번에 알게 된 셈이다.
그 당시 4개월 정도의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회복한 나는 어느 날 가지고 있는 변비 치료 환약에 생각이 미쳤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환약을 먹은 그날 밤 오한이 나고 고열이 났다. 몸살 감기가 온 것으로 알고 아침에 일어나 해열제와 감기약을 먹고 쉬자 곧 괜찮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환약을 먹었을 때 똑같은 증세가 반복됐다. 그때서야 그 환약이 열과 오한을 일으킨다는 깨달음이 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렸다. 그러나 한약이 감기증세를 준다고 여겼을 뿐이다. 肝을 상하게 만든 원인이 漢藥이었다는 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이번에야 확실히 알았다.
肝을 상하게 하는 약초들
이번에 지어 준 환약은 하루에 열다섯 알을 먹다가 증세가 좋아지면 양을 줄이라고 했다. 1월 초부터 시작해 한 달 동안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먹지는 않았다. 생각나면 먹었고 잊었다가 열심히 먹으라고 채근을 받고서 먹기도 했다. 소변이 조금씩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어보자 大黃(대황)이라는 약재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소변을 노랗게 만드니까 염려 말라고 했다. 1월 초에 등산을 다녀온 이튿날 오한이 나고 열이 나는 감기를 앓게 됐다.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심했는데 그만 몸살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 전날 한약을 먹은 건 잊고 있었다. 계속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바람을 쐬면 재채기가 심하고 기침을 했다. 여행 떠날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렇게 감기가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만 했다. 여행을 6일 앞둔 저녁 이삼일 걸렀던 한약 열다섯 알을 먹고 잤다. 그날 밤 오한이 나고 열이 나서 한밤에 깨야 했다. 그때서야 8년 전에 똑같은 증세로 앓았던 생각이 났다. 감기 증세가 예전에 한약을 먹었을 때와 같다는 생각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타이레놀을 네 시간마다 두 알씩 삼키자 열도 내리고 머리가 아픈 것도 가셨다. 이번 한약도 전과 똑같은 증세를 준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다시는 그 약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허지만 간염이 또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A형 간염이라고 들었고 A형은 면역이 생기면 다시 앓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감기 증세와 피곤한 것 때문에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황달기가 있다고 여긴 남편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 아침 내과의사 형님에게 나를 데려갔다. 첫눈에 황달이 왔다고 진단한 후 여행은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A형 간염을 앓았기 때문에 다시 앓을 이유가 없다고 해봤지만 그렇다면 더욱 안 좋은 간염일 수도 있으니 당장 검사에 착수하라고 했다. 이때쯤은 괜찮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20여 일 간 상태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증세로 같은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뉴욕대학 병원 肝전문 센터의 토바야 과장은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같은 병으로 또 찾아왔다는 사실을 듣고 한심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약 이야기를 하자 그는 무릎을 치며 벽에 걸어놓은 인쇄물을 떼어 보여 주었다. 어떤 종류의 藥草(약초)를 먹었느냐고 했다. 肝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진 식물 이름 서른 두 개를 인쇄한 종이였다. 봐도 알 턱이 없었다. 적혀 있는 약초 이름이 샤오-차이-후-탱(Xiao-chai-hu-tang) 하는 식으로 써있으니 알 도리가 없을 터였다.
한 시간 30분 걸린 MRI 검사
우선 아홉 가지 피검사 채취를 했고 울트라 사운드 검사와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공명진단촬영)를 찍었다. 울트라 사운드를 체크하는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없이 시간을 끌다 다시 다른 의사를 부르겠다며 나가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상한 세포라도 발견한 건 아닐까 싶었다. 뭔가 좋지 않은 것이 자라고 있는데 해로운 약까지 먹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쓰러지게 됐다는 상상도 했다.
허지만 단순히 한약 때문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의사는 마침 중국계였다. 「차이니즈 메디슨」을 먹은 후 건강이 나빠졌다는 고백을 하자 그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얼굴이 되었다. 肝에 어떤 장애물도 보이지 않는데 肝의 상태가 심각한 것이 이들을 갸웃거리게 만든 이유인 듯했다.
이튿날 받은 MRI 검사는 몹시 괴로웠다. 기력이 더욱 빠지고 힘든 상태인데 기계에 넣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지체하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 기억해 보았지만 생각이 안 났다. 안에서 정 힘들면 누르라고 손에 쥐어 준 공을 눌러야겠다는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묶인 채 밀실에 갇힌 공포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그 안에서 한 시간 반 이상을 있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안 돼 끝난 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오래 걸린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딴 볼 일을 봤다는 의구심이 남았다. 한 번 촬영에 1400달러를 지불하는 검사라니 간단히 할 면목이 없어 일부러 오래 끄는 것인가 따위의 의심까지 들었다.
의사의 심각한 표정
검사 결과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 아니라고 했다. 유독성 물질이 유발한 급성 肝질환(Hepatotoxic inducing hepatitis)이라는 병명이다. 어떤 종류의 독소가 어느 만큼 肝을 상하게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계속 검사를 해야 했다. 피검사를 사흘 걸러 했다. MRI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이젠 피검사에 의존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검사결과와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꼼짝 안 하고 쉬는데도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얼굴은 흑갈색으로 변하고 눈은 달걀 노른자처럼 노랬다.
빌리루빈(적혈구가 수명을 다하고 파괴되면서 그 속의 헤모글로빈이 대사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것으로 헤모글로빈의 노폐물임-注)의 수치가 15이고 정상인은 20~40이라는 혈구(SGPT)가 정상보다 100배 높은 상태라는 것이다.
세 번째 검사 결과가 나온 후 의사는 진찰실로 들어와 보고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가슴이 철렁했다. 뒤늦게 암세포라도 발견했다는 통보를 하려 한다고 추측했다. 의사의 얼굴이 그만큼 심각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머리에 있던 피가 아래로 빠지며 몸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암 선고를 듣는 사람들을 드라마를 통해 봤지만 이 순간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표정관리를 염려하기도 했다.
차트를 계속 검토하던 의사는 『세 번째 검사에서도 좋아지는 기미가 없다. 한 번 더 검사해서 결과를 본 후 입원을 고려하자』고 했다. 암선고가 아니라 안도는 했지만 점점 나빠진다니 이젠 회생 불가능한 肝을 가지고 만성적인 간염을 앓으며 살아야 하는가 싶은 불안이 찾아왔다. 무언가 조금 들은 풍월은 이럴 때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든다. 再生이 되지 않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어쩌나. 이렇게 코카콜라를 바른 듯한 흑빛 얼굴과 노란 눈으로, 힘없이 살아야 하면 어쩌나.
특별히 입원을 해도 따로 할 수 있는 치료는 없다고 했다. 자연에게 치유를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었다. 다만 내출혈 따위의 위험이 생길까봐 병원에 두고 지켜본다는 거다. 증세는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는 것 이외에 몸이 가려웠다. 肝에서 걸러내지 못한 유해요소가 핏줄을 타고 돌면서 가려운 증세가 생긴다고 한다. 못 견디게 가렵지는 않은데 기분 나쁘게 가려웠다. 가려우면 잠을 깨서 못 잔다는 말을 듣고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은 날은 하루종일 꼼짝할 수도 없었다. 누워서 몸을 뒤척일 수조차 없었다. 한 자세로 계속 누워 있으면 몸이 배겨서 돌아눕고 싶은데 그럴 힘도 없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아프가니스탄의 공습을 피해 도망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와 옆에 눕는 착각이 들고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혼자 듣기도 했다. 의도는 있는데 가스를 몸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0.05g 정도의 에너지는 가해야 방귀가 분출된다는 생리도 이번에 알았다. 가려움증을 삭이는 안정제 계통의 약이라는데 나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肝에서 전혀 약 분해를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알약 대신 주스에 타서 마시는 분말을 다시 받았다. 하루에 세 번 마시라는데 이틀쯤 먹으니까 가려움증이 없어진 듯했다. 이때쯤은 검사 결과도 처음으로 좋게 나왔다. 한번 밑바닥을 친 후 좋아지는 곡선을 그리자 나날이 괄목할 양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얼굴빛도 돌아오게 되었다. 꼭 한 달 열흘을 이렇게 부질없이 앓은 셈이다.
「No More Chinese Medicine」
아직 정기적인 검사는 계속 중이다. 의사는 백지에 40포인트의 큰 글씨로 「漢藥은 그만」(No More Chinese Medicine)이라고 써 주었다.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 놓고 수시로 보라는 거다. 미국의 의사들, 특히 간 專門醫(전문의)는 많은 대체의약들이 肝을 상하게 하는 독성이 있다고 여긴다. 동양약을 권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마황이라는 한약은 사상자도 상당히 보고됐다고 했다.
약이 되지만 독이 되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반기를 들지만 임상실험이 확실치 않은 한약을 미국 의사들은 절대 믿지 않는다. 양약은 부수적인 害가 있지만 한약은 無害(무해)하다고 여기는 건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나오는 착각이라는 거다. 이곳의 제약회사에서 연구하는 친지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製藥(제약) 과정은 어떤 약이 사람들을 얼마큼 치료했는지 그 결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약이 어떤 해를 남기는가 검증하고 연구하는 것이 제약의 원칙이고 환자에게 알리는 우선 요소라고 했다. 100명에게 투약한 결과 열 명의 암환자를 고쳤다 해도 이십 명의 심장에 이상이 왔거나 간장을 상했다면 절대 항암제로 허가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약을 먹고 누군가가 병이 나았다면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명약으로 치는 검증 안 된 논리를 우리가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거다. 肝이식이 90%의 성공률이 있어도 3%의 피해자가 생기면 再검토해야 한다는 앞서의 논리도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먹은 환약이 변비의 즉효 약인지는 몰라도 肝의 기능을 죽여버린다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아니겠는가.
최후의 아이러니는 가려움증 때문에 먹게 된 파우더의 부작용이다. 복용 후의 효능보다는 부작용에 대해서만 설명서에 상세하게 써있었는데 가장 큰 부작용으로 변비가 될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결국 변비 고치려다 변비 만드는 약으로 투병을 마감한 것이다.●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肝(간) 이식수술 병원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수술을 받으려는 많은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데 얼마 전 동생에게 자신의 간을 떼어 준 형이 수술 후 사흘 만에 죽게 된 일이 이 병원에서 일어났다. 밝혀진 보고에 의하면 수술 후 따라야 할 합당한 관심과 치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한다.
단 한 사람의 경험 없는 레지던트가 서른 명이 넘는 환자를 보면서 피를 토하는 이 환자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딸꾹질로 시작된 증상을 방관했고 담당의사에게 異常을 보고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손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내가 앓게 된 병을 비교해 생각하게 되었다. 약의 효능만 강조했을 뿐 약으로 인한 해로움에 대해 전혀 들은 일이 없어서 앓게 됐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같은 증세로 앓게 된 나의 병은 이렇게 시작했다.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인디언 마을, 아마존의 밀림 속이라고 믿고 싶은 어느 작은 마을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지금 이 시간은 돌아와서 의기양양한 여행기를 쓸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질없이 앓아 누우면서 여행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병을 앓게 된 경위를 체험이랍시고 쓰게 되었다.
평소에 자신이 제법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나오는 병 자랑도 내세울 것이 없었고 몸에 좋다는 거시기한 음식이나 약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헌데 항상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 그건 변비에 좋다는 약이다.
그런 참에 奧地(오지)로 여행을 떠나게 되자 그곳의 화장실 사정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생겼다. 신문 한 뭉치를 다 읽고 나오는 악습을 가지고 있는 터라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고민을 흘려듣지 못한 언니는 해결사를 자칭하며 아는 한의사와 의논하게 되었다. 언니는 몇 해 전에도 제주도 여행길에서 특효약을 구해다 주는 등 동생의 딜레마를 수수방관하지 못하는 지원자였다. 만사 해결이라며 신이 나서 지어 온 丸藥(환약)을 보고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변비약을 먹고 간염을 앓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8년 전에도 한국에서 내가 직접 지어 온 환약을 하루에 30알씩 한 달 가량을 먹었다. 그리고 간염이 생겨 앓게 되었을 때 그 한약이 원인이라고 단정하지 못했다. 그때는 직장생활을 하며 밤늦도록 번역을 했고 번역된 책에 문제가 생겨 한국을 오가야 했었다.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고 피곤한 것은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런 상태에서 워싱턴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기차 속에서 꿈 속을 헤매듯 실신상태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저히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을 만큼 피곤했다. 열흘 간의 휴가를 신청하고 파리로 갔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쉬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날마다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걸 휴식이라고 여겼다.
돌아오는 날 비행장에 마중 나온 남편은 황달이 와서 눈이 노래진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간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일을 중단하고 영양을 섭취하며 요양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당시 한약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한 나는 서울에서 먹은 생선회나 술잔 돌리기가 간염을 유발한 바이러스의 제공자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때 의사가 급성 A형 간염으로 추정한다면서도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한 이유를 8년 후인 이번에 알게 된 셈이다.
그 당시 4개월 정도의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회복한 나는 어느 날 가지고 있는 변비 치료 환약에 생각이 미쳤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환약을 먹은 그날 밤 오한이 나고 고열이 났다. 몸살 감기가 온 것으로 알고 아침에 일어나 해열제와 감기약을 먹고 쉬자 곧 괜찮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환약을 먹었을 때 똑같은 증세가 반복됐다. 그때서야 그 환약이 열과 오한을 일으킨다는 깨달음이 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렸다. 그러나 한약이 감기증세를 준다고 여겼을 뿐이다. 肝을 상하게 만든 원인이 漢藥이었다는 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이번에야 확실히 알았다.
肝을 상하게 하는 약초들
이번에 지어 준 환약은 하루에 열다섯 알을 먹다가 증세가 좋아지면 양을 줄이라고 했다. 1월 초부터 시작해 한 달 동안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먹지는 않았다. 생각나면 먹었고 잊었다가 열심히 먹으라고 채근을 받고서 먹기도 했다. 소변이 조금씩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어보자 大黃(대황)이라는 약재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소변을 노랗게 만드니까 염려 말라고 했다. 1월 초에 등산을 다녀온 이튿날 오한이 나고 열이 나는 감기를 앓게 됐다.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심했는데 그만 몸살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 전날 한약을 먹은 건 잊고 있었다. 계속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바람을 쐬면 재채기가 심하고 기침을 했다. 여행 떠날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렇게 감기가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만 했다. 여행을 6일 앞둔 저녁 이삼일 걸렀던 한약 열다섯 알을 먹고 잤다. 그날 밤 오한이 나고 열이 나서 한밤에 깨야 했다. 그때서야 8년 전에 똑같은 증세로 앓았던 생각이 났다. 감기 증세가 예전에 한약을 먹었을 때와 같다는 생각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타이레놀을 네 시간마다 두 알씩 삼키자 열도 내리고 머리가 아픈 것도 가셨다. 이번 한약도 전과 똑같은 증세를 준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다시는 그 약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허지만 간염이 또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A형 간염이라고 들었고 A형은 면역이 생기면 다시 앓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감기 증세와 피곤한 것 때문에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황달기가 있다고 여긴 남편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 아침 내과의사 형님에게 나를 데려갔다. 첫눈에 황달이 왔다고 진단한 후 여행은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A형 간염을 앓았기 때문에 다시 앓을 이유가 없다고 해봤지만 그렇다면 더욱 안 좋은 간염일 수도 있으니 당장 검사에 착수하라고 했다. 이때쯤은 괜찮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20여 일 간 상태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증세로 같은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뉴욕대학 병원 肝전문 센터의 토바야 과장은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같은 병으로 또 찾아왔다는 사실을 듣고 한심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약 이야기를 하자 그는 무릎을 치며 벽에 걸어놓은 인쇄물을 떼어 보여 주었다. 어떤 종류의 藥草(약초)를 먹었느냐고 했다. 肝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진 식물 이름 서른 두 개를 인쇄한 종이였다. 봐도 알 턱이 없었다. 적혀 있는 약초 이름이 샤오-차이-후-탱(Xiao-chai-hu-tang) 하는 식으로 써있으니 알 도리가 없을 터였다.
한 시간 30분 걸린 MRI 검사
우선 아홉 가지 피검사 채취를 했고 울트라 사운드 검사와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공명진단촬영)를 찍었다. 울트라 사운드를 체크하는 요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없이 시간을 끌다 다시 다른 의사를 부르겠다며 나가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상한 세포라도 발견한 건 아닐까 싶었다. 뭔가 좋지 않은 것이 자라고 있는데 해로운 약까지 먹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쓰러지게 됐다는 상상도 했다.
허지만 단순히 한약 때문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의사는 마침 중국계였다. 「차이니즈 메디슨」을 먹은 후 건강이 나빠졌다는 고백을 하자 그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얼굴이 되었다. 肝에 어떤 장애물도 보이지 않는데 肝의 상태가 심각한 것이 이들을 갸웃거리게 만든 이유인 듯했다.
이튿날 받은 MRI 검사는 몹시 괴로웠다. 기력이 더욱 빠지고 힘든 상태인데 기계에 넣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지체하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 기억해 보았지만 생각이 안 났다. 안에서 정 힘들면 누르라고 손에 쥐어 준 공을 눌러야겠다는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묶인 채 밀실에 갇힌 공포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그 안에서 한 시간 반 이상을 있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가 안 돼 끝난 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오래 걸린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딴 볼 일을 봤다는 의구심이 남았다. 한 번 촬영에 1400달러를 지불하는 검사라니 간단히 할 면목이 없어 일부러 오래 끄는 것인가 따위의 의심까지 들었다.
의사의 심각한 표정
검사 결과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 아니라고 했다. 유독성 물질이 유발한 급성 肝질환(Hepatotoxic inducing hepatitis)이라는 병명이다. 어떤 종류의 독소가 어느 만큼 肝을 상하게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계속 검사를 해야 했다. 피검사를 사흘 걸러 했다. MRI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이젠 피검사에 의존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검사결과와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꼼짝 안 하고 쉬는데도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얼굴은 흑갈색으로 변하고 눈은 달걀 노른자처럼 노랬다.
빌리루빈(적혈구가 수명을 다하고 파괴되면서 그 속의 헤모글로빈이 대사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것으로 헤모글로빈의 노폐물임-注)의 수치가 15이고 정상인은 20~40이라는 혈구(SGPT)가 정상보다 100배 높은 상태라는 것이다.
세 번째 검사 결과가 나온 후 의사는 진찰실로 들어와 보고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가슴이 철렁했다. 뒤늦게 암세포라도 발견했다는 통보를 하려 한다고 추측했다. 의사의 얼굴이 그만큼 심각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머리에 있던 피가 아래로 빠지며 몸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암 선고를 듣는 사람들을 드라마를 통해 봤지만 이 순간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표정관리를 염려하기도 했다.
차트를 계속 검토하던 의사는 『세 번째 검사에서도 좋아지는 기미가 없다. 한 번 더 검사해서 결과를 본 후 입원을 고려하자』고 했다. 암선고가 아니라 안도는 했지만 점점 나빠진다니 이젠 회생 불가능한 肝을 가지고 만성적인 간염을 앓으며 살아야 하는가 싶은 불안이 찾아왔다. 무언가 조금 들은 풍월은 이럴 때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든다. 再生이 되지 않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어쩌나. 이렇게 코카콜라를 바른 듯한 흑빛 얼굴과 노란 눈으로, 힘없이 살아야 하면 어쩌나.
특별히 입원을 해도 따로 할 수 있는 치료는 없다고 했다. 자연에게 치유를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었다. 다만 내출혈 따위의 위험이 생길까봐 병원에 두고 지켜본다는 거다. 증세는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지는 것 이외에 몸이 가려웠다. 肝에서 걸러내지 못한 유해요소가 핏줄을 타고 돌면서 가려운 증세가 생긴다고 한다. 못 견디게 가렵지는 않은데 기분 나쁘게 가려웠다. 가려우면 잠을 깨서 못 잔다는 말을 듣고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은 날은 하루종일 꼼짝할 수도 없었다. 누워서 몸을 뒤척일 수조차 없었다. 한 자세로 계속 누워 있으면 몸이 배겨서 돌아눕고 싶은데 그럴 힘도 없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아프가니스탄의 공습을 피해 도망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와 옆에 눕는 착각이 들고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혼자 듣기도 했다. 의도는 있는데 가스를 몸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0.05g 정도의 에너지는 가해야 방귀가 분출된다는 생리도 이번에 알았다. 가려움증을 삭이는 안정제 계통의 약이라는데 나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肝에서 전혀 약 분해를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알약 대신 주스에 타서 마시는 분말을 다시 받았다. 하루에 세 번 마시라는데 이틀쯤 먹으니까 가려움증이 없어진 듯했다. 이때쯤은 검사 결과도 처음으로 좋게 나왔다. 한번 밑바닥을 친 후 좋아지는 곡선을 그리자 나날이 괄목할 양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얼굴빛도 돌아오게 되었다. 꼭 한 달 열흘을 이렇게 부질없이 앓은 셈이다.
「No More Chinese Medicine」
아직 정기적인 검사는 계속 중이다. 의사는 백지에 40포인트의 큰 글씨로 「漢藥은 그만」(No More Chinese Medicine)이라고 써 주었다.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 놓고 수시로 보라는 거다. 미국의 의사들, 특히 간 專門醫(전문의)는 많은 대체의약들이 肝을 상하게 하는 독성이 있다고 여긴다. 동양약을 권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마황이라는 한약은 사상자도 상당히 보고됐다고 했다.
약이 되지만 독이 되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반기를 들지만 임상실험이 확실치 않은 한약을 미국 의사들은 절대 믿지 않는다. 양약은 부수적인 害가 있지만 한약은 無害(무해)하다고 여기는 건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나오는 착각이라는 거다. 이곳의 제약회사에서 연구하는 친지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製藥(제약) 과정은 어떤 약이 사람들을 얼마큼 치료했는지 그 결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약이 어떤 해를 남기는가 검증하고 연구하는 것이 제약의 원칙이고 환자에게 알리는 우선 요소라고 했다. 100명에게 투약한 결과 열 명의 암환자를 고쳤다 해도 이십 명의 심장에 이상이 왔거나 간장을 상했다면 절대 항암제로 허가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약을 먹고 누군가가 병이 나았다면 그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명약으로 치는 검증 안 된 논리를 우리가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거다. 肝이식이 90%의 성공률이 있어도 3%의 피해자가 생기면 再검토해야 한다는 앞서의 논리도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먹은 환약이 변비의 즉효 약인지는 몰라도 肝의 기능을 죽여버린다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아니겠는가.
최후의 아이러니는 가려움증 때문에 먹게 된 파우더의 부작용이다. 복용 후의 효능보다는 부작용에 대해서만 설명서에 상세하게 써있었는데 가장 큰 부작용으로 변비가 될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결국 변비 고치려다 변비 만드는 약으로 투병을 마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