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의 實과 虛
그동안 꽁꽁 얼어붙은 채 冬眠(동면) 중이던 북한과의 대화가 풀려가고 있는 듯하다. 남ㆍ북한은 지난 4월6일 金大中 대통령이 특사로 파견한 林東源 외교안보통일문제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의 3박4일 간 평양방문 기간 중 이루어진 합의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동시에 발표하고, 이를 통해 『그동안 일시적으로 동결됐던 남북관계를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에 따라 원상회복하기로 합의했다(2항)』고 선언했다. 이 「공동보도문」은 남북관계의 「원상회복」을 위해 조치하기로 한 몇 가지 합의사항들을 담고 있다.
우선 「공동보도문」은 남쪽의 공사는 이미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의 공사 未(미)착수로 인하여 지연돼 온 경의선(서부 서울-신의주 간) 철도 및 문산-개성 간 도로 외에도 동해선 철도 및 도로를 추가하여 『빨리 연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아울러 「공동보도문」은 다음과 같은 합의사항들을 담고 있다. 첫째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를 5월7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며 이 위원회 안에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임진강 수해대책 등을 토의할 실무협의회를 가동한다는 것, 둘째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2차 당국 간 회담을 6월11일부터 금강산에서 연다는 것, 셋째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을 4월28일부터 금강산에서 진행한다는 것, 넷째 북측의 경제시찰단을 5월 중에 남측으로 보낸다는 것, 이들 합의사항 이행에 따라 제7차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개회한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남북한 군사당국자 간 회담을 개최하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한다』는 것 등이다.
종래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합의사항들도 「구체적」 합의와 「원칙적」 합의로 혼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구체적」 합의사항들은 네 가지이다. 즉 남북경협위 회의 장소와 시기, 금강산관광 문제에 관한 당국 간 회담 장소와 시기, 제4차 이산가족 상봉 장소와 시기 그리고 북측 경제시찰단의 남측 방문 시기 등이다. 그 나머지 합의들은 역시 「원칙적」 합의의 수준에 미달하고 있다.
철도와 도로 연결 문제는 이번에 동해안 쪽을 추가하여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는 했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빨리 연결한다』는 정도에 머물렀다. 아직도 개통 시기를 밝힐 수 없는 사정이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애매한 표현이다. 이산가족 문제도 남북 상호방문이 금강산 상봉으로 변질된 가운데 그나마도 이의 계속성 확보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는 외면한 채, 1회성 사업의 차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이번에도 남북 쌍방은 남북 장관급 회담과 군사당국자 회담을 재개한다는 「원칙론」에는 합의하면서도 개최 시기와 장소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공동보도문」의 이같은 대목들은 이들 「원칙적」 합의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그 「조건」으로 북측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있고, 또 이에 대해 남측에서 북측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거나 충족시켰더라도 아직은 그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단계에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對北(대북) 양보」의 차원에서 우리가 앞으로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들이 남겨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원칙적」 합의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부담요인을 안겨 주고 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동보도문」 6항의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한다』는 표현은 이미 남북 간에 남측의 對北 식량 및 비료 지원의 내용에 관하여 상당한 합의 또는 양해가 성립되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그 지원의 규모이다. 「공동보도문」 6항의 표현은 그 규모가 상당한 규모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주목을 요하는 것은 지원의 대상이 식량과 비료에 국한될 것이냐, 아니면 가령 전력을 포함하여 다른 분야까지도 포함할 것이냐에 관하여 이 「공동보도문」 대목은 애매하기만 하다.
북한 입장 受容한 값비싼 代價 치렀을 가능성
이에 관해서는 4월6일 서울 귀환 후에 있었던 林東源 특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林특보는 남측이 추진하는 개성 공단이 『전력과 가스를 남쪽에서 연결하여 공급한다는 것이 이미 전제가 되어 있다』고 단정했다. 다음에 제기되는 의문은 「과연 그처럼 전력과 가스 공급이 개성 공단에 국한될 것인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동보도문」에 포함된 「원칙적」 합의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끄는 대상은 1항의 『역사적인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부합되게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긴장상태가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표현, 2항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한 공동선언』이라는 표현, 그리고 도입 부분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 조성된 한반도 정세와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라는 표현들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들은 바로 문제의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문제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관하여 남북 쌍방 간에는 「민족통일 章典(장전)」이라는 북측의 해석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단관리 章典」이라는 남측 해석 사이에 본질적인 대립과 갈등이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같은 대립과 갈등 때문에 북측은 이번에 방북한 林특보를 상대로 남측의 「북한 主敵論(주적론)」을 시비하면서 『6ㆍ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민족끼리 공조해 나갈 의지가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남측의 명백한 대답』을 요구했다.
「主敵論」에 관한 북한의 시비는 표면상 일단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에 떠넘기는 형식으로 糊塗(호도)하기는 했지만 「공동보도문」 1~2항의 표현을 음미해 보면 결국 林특보가 소위 『남북관계가 원상회복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 및 「원칙적」 합의사항을 북측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하여 6ㆍ15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정신」에 관하여 북측의 입장을 실질적으로 수용하는 값비싼 「代價」를 지불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번 방북과정에서 林특보는 자신이 金大中 대통령의 「권고」를 金正日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이를 토대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美·北, 日·北 관계 개선을 위한 메신저 역할도 수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美·北 관계 개선에 관하여 林특보는 金正日이 『(미국의) 새 정부와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대화하라』는 金大中 대통령의 권고에 대해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호응했고, 『잭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을 수용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겠다』고 호응했다. 또한 『KEDO와의 협의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고, 도널드 그렉 前 주한 미국대사의 임박한 방북을 예고하면서 『미국과 민간차원의 교류 재개』도 시사했다고 전했다.
「미국을 대리하여 북한과 논의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그러나, 워싱턴 현지에서 감지되고 있는 미국 朝野(조야)의 움직임은 훨씬 가라앉아 있고, 한국 정부가 이번 林특보의 訪北을 통하여 보여 준 적극적인 美北 관계 중재노력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 원인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하여 그동안 벼르고 별러 온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를 위한 군사행동의 계기를 포착하지 못한 데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예상치 않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상태 발발로, 이의 수습을 위한 외교적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정권으로서는 이에 더하여 북한문제에 힘을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美 행정부는 지난 1월29일 부시 대통령의 對의회 국정연설 이후, 특히 그의 對北 「악의 축」 지목 발언에 대한 부정적 국제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을 애써 부각시켜 왔고,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林특보의 방북에 지지와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지난 3월27일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보여 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태도는 북한문제에 관한 미국의 신중한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보다 하루 앞서 25일(서울 시간) 林특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그의 이번 방북 목적은 『6ㆍ15 남북 頂上회담의 합의를 준수하고 이행이 중단되거나 잘 안 된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인 27일 아미티지 부장관은 林특보의 방북에 대해 『내 친구인 林특보가 평양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고 일단 환영하면서도 林특보가 방북기간 중 북측과 논의할 내용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이슈들이 논의될 것으로 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것은 사실은 林특보에게 보내는 미국 정부의 「주문」이기도 했다. 즉, 林특보가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남북간의 문제를 가지고 북한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대량 살상무기」 등 미국이 북한과 직접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林특보가 미국을 대리하여 북한과 논의하는 것은 반갑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신중한 반응
그 이유는 자명하다. 林특보가 특히 부시 대통령의 1월29일자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는 북측 선전의 연장선상에서 美北 관계를 가지고 북측과 대화하면 북측은 일정한 對美 메시지 전달을 林특보에게 의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미국으로서는 이같은 북한의 선전에 잘못 말려들 경우에는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빛을 잃고 오히려 미국의 對北 「적대정책」을 부각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자세는 4월6일 林특보의 서울 귀환 후 부시 행정부가 보여 주고 있는 신중한 움직임을 통해서도 再확인되고 있다. 외신은 부시 대통령 측근의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林특보가 전한 북측의 美北 대화 호응용의 표명 보도에 대해 『환영은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평양으로부터 직접 그같은 제의를 받을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은 우선 KEDO(한반도 에너지 기구:북한에 경수로를 짓고 있는 다국적 조직체)와 북한 간의 대화가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KEDO는 시간을 다투는 對北 현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정된 경수로 건설공정을 북한 측에 공식으로 통보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본래 1994년의 제네바 美北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와 그 부속 非공개 양해각서에 의하면 對北 경수로 2기는 1호기가 2002년 말, 2호기가 2003년 말까지 준공하게 되어 있다. 2002년은 금년이고 그 3분의 1이 벌써 경과하고 있다. 지금 KEDO가 가지고 있는 수정계획은 1호기 2008년 말, 2호기 2009년 말을 준공목표 시기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수정계획에 의거, 금년 8월에 경수로 수용구조물 건설을 위한 콘크리트 붓기 작업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1호기 2008년 말, 2호기 2009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는 修正 공정도 한 가지 치명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對北 특별사찰 문제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문제될 듯
IAEA는 북한이 5MW 규모의 旣(기)가동 흑연감속형 원자로에서 가동 중단 이전에 이미 일정량의 원자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여 보유 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1994년의 美北 제네바 기본합의와 그 부속 非공개 양해각서는 『경수로 건설의 「상당부분」이 완성되었지만 아직 주요 핵심부품의 인도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은 북한내의 모든 핵물질에 관한 북한의 최초 보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IAEA에게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추가적 장소와 정보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IAEA와 체결한 안전조치협정(INFCIRC/404)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기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IAEA는 IAEA가 특히 의혹을 두고 있는 두 개의 지하 핵폐기물 저장소에 대한 「특별사찰」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과거 南아프리카 연방을 상대로 했던 「특별사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IAEA는 이같은 「특별사찰」 실시에 3~4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 건설공정에 따라 2008~2009년에 1~2호기를 준공시키기 위해서는 IAEA의 對北 「특별사찰」은 늦어도 금년 하반기에는 착수되어야 하며, 이것이 지연되면 지연되는 기간만큼 수정된 건설공정의 추가적 지연이 불가피해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AEA는 아직도 이 수정된 건설공정을 북한 측에게 공식으로 통보조차 하지 못한 상태이다. 북측이 그동안 KEDO와 만나는 것을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KEDO와의 회담 수용 용의를 시사했고, 林특보에 의하면 이번 평양에서 金正日도 그에게 KEDO와의 회담할 뜻을 밝혔다. 북한과 KEDO가 만나면 여기서 다루어질 최긴급 안건은 건설공정을 수정하는 문제와 함께 IAEA의 「특별사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완공 시기를 2008~2009년으로 늦추는 것도 문제지만 IAEA 「특별사찰」 문제가 適時에 해결되지 않으면 2008~2009년의 수정된 완공시기가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핵 문제와 관련하여 IAEA의 對北 「특별사찰」 문제에 대해 보여 줄 북측의 태도는 미사일 문제에 관한 협상에 임하는 북한 자세의 성실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기회가 되리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林특사의 訪北을 「정치적 타산」으로 인식
이곳 워싱턴에서 감지되는 또 하나의 시각은, 이번 林특보의 방북이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돌파구 마련에 목적을 둔 것인가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동안 북한의 남북대화는 물론, 對美 대화 거부로 인하여 한반도 문제가 결빙되어 있는 동안에도 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년 봄부터 무언가 남북 간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으리라는 견해가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그 이유로 주로 거론된 것은 남북의 정권 담당세력의 정치적 타산이었다.
즉, 北의 金正日 정권의 입장에서는 南의 金大中 대통령의 잔여 임기 중에 최대한의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한편, 가능하다면 오는 12월의 제16代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金大中 정권의 對北정책을 계승하는 정권이 창출되도록 지원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반면, 그동안의 국정전반에 걸친 失政으로 인하여 사실상 여권 내에서의 정권 再창출 기반을 상실하고 있는 金大中 정권으로서는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여기서 생기는 대중적 최면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여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하는 데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金正日의 서울답방 실현은 항상 이같은 정치적 타산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林대표는 이번 방북기간 중 金正日의 서울방문 문제가 논의되었고, 金正日로부터 『서울을 방문하고 싶고 金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입장 피력이 있었지만 『구체적 합의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 구체적 합의를 보지 못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문제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 워싱턴에서도 서울과 평양의 정권 담당자들이 남북관계나 美北, 日北 관계를 한국의 임박한 선거정국과 관련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朝野(조야)에서는, 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국이 선거정국의 와중에 몰입되어 있는 동안 對北정책 문제는 현상유지의 수준에서 축소 관리를 하면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 및 이라크를 상대로 하는 「테러와의 전쟁」완결에 전념하다가, 내년 초 서울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韓美 간에 새로운 차원에서 對北정책을 조율하고 이를 토대로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가서는 더 이상 북한을 돈으로 달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도덕성, 인권문제 그리고 개방, 개혁 등 정책의 변화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꽁꽁 얼어붙은 채 冬眠(동면) 중이던 북한과의 대화가 풀려가고 있는 듯하다. 남ㆍ북한은 지난 4월6일 金大中 대통령이 특사로 파견한 林東源 외교안보통일문제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의 3박4일 간 평양방문 기간 중 이루어진 합의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동시에 발표하고, 이를 통해 『그동안 일시적으로 동결됐던 남북관계를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에 따라 원상회복하기로 합의했다(2항)』고 선언했다. 이 「공동보도문」은 남북관계의 「원상회복」을 위해 조치하기로 한 몇 가지 합의사항들을 담고 있다.
우선 「공동보도문」은 남쪽의 공사는 이미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의 공사 未(미)착수로 인하여 지연돼 온 경의선(서부 서울-신의주 간) 철도 및 문산-개성 간 도로 외에도 동해선 철도 및 도로를 추가하여 『빨리 연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아울러 「공동보도문」은 다음과 같은 합의사항들을 담고 있다. 첫째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를 5월7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며 이 위원회 안에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임진강 수해대책 등을 토의할 실무협의회를 가동한다는 것, 둘째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2차 당국 간 회담을 6월11일부터 금강산에서 연다는 것, 셋째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을 4월28일부터 금강산에서 진행한다는 것, 넷째 북측의 경제시찰단을 5월 중에 남측으로 보낸다는 것, 이들 합의사항 이행에 따라 제7차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개회한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남북한 군사당국자 간 회담을 개최하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한다』는 것 등이다.
종래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합의사항들도 「구체적」 합의와 「원칙적」 합의로 혼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구체적」 합의사항들은 네 가지이다. 즉 남북경협위 회의 장소와 시기, 금강산관광 문제에 관한 당국 간 회담 장소와 시기, 제4차 이산가족 상봉 장소와 시기 그리고 북측 경제시찰단의 남측 방문 시기 등이다. 그 나머지 합의들은 역시 「원칙적」 합의의 수준에 미달하고 있다.
철도와 도로 연결 문제는 이번에 동해안 쪽을 추가하여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는 했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빨리 연결한다』는 정도에 머물렀다. 아직도 개통 시기를 밝힐 수 없는 사정이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애매한 표현이다. 이산가족 문제도 남북 상호방문이 금강산 상봉으로 변질된 가운데 그나마도 이의 계속성 확보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는 외면한 채, 1회성 사업의 차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이번에도 남북 쌍방은 남북 장관급 회담과 군사당국자 회담을 재개한다는 「원칙론」에는 합의하면서도 개최 시기와 장소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공동보도문」의 이같은 대목들은 이들 「원칙적」 합의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그 「조건」으로 북측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있고, 또 이에 대해 남측에서 북측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거나 충족시켰더라도 아직은 그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단계에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對北(대북) 양보」의 차원에서 우리가 앞으로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들이 남겨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원칙적」 합의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부담요인을 안겨 주고 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동보도문」 6항의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서로 협력한다』는 표현은 이미 남북 간에 남측의 對北 식량 및 비료 지원의 내용에 관하여 상당한 합의 또는 양해가 성립되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그 지원의 규모이다. 「공동보도문」 6항의 표현은 그 규모가 상당한 규모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더 주목을 요하는 것은 지원의 대상이 식량과 비료에 국한될 것이냐, 아니면 가령 전력을 포함하여 다른 분야까지도 포함할 것이냐에 관하여 이 「공동보도문」 대목은 애매하기만 하다.
북한 입장 受容한 값비싼 代價 치렀을 가능성
이에 관해서는 4월6일 서울 귀환 후에 있었던 林東源 특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林특보는 남측이 추진하는 개성 공단이 『전력과 가스를 남쪽에서 연결하여 공급한다는 것이 이미 전제가 되어 있다』고 단정했다. 다음에 제기되는 의문은 「과연 그처럼 전력과 가스 공급이 개성 공단에 국한될 것인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동보도문」에 포함된 「원칙적」 합의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끄는 대상은 1항의 『역사적인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부합되게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긴장상태가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표현, 2항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한 공동선언』이라는 표현, 그리고 도입 부분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 조성된 한반도 정세와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라는 표현들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들은 바로 문제의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문제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6ㆍ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관하여 남북 쌍방 간에는 「민족통일 章典(장전)」이라는 북측의 해석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단관리 章典」이라는 남측 해석 사이에 본질적인 대립과 갈등이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같은 대립과 갈등 때문에 북측은 이번에 방북한 林특보를 상대로 남측의 「북한 主敵論(주적론)」을 시비하면서 『6ㆍ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민족끼리 공조해 나갈 의지가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남측의 명백한 대답』을 요구했다.
「主敵論」에 관한 북한의 시비는 표면상 일단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에 떠넘기는 형식으로 糊塗(호도)하기는 했지만 「공동보도문」 1~2항의 표현을 음미해 보면 결국 林특보가 소위 『남북관계가 원상회복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 및 「원칙적」 합의사항을 북측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하여 6ㆍ15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정신」에 관하여 북측의 입장을 실질적으로 수용하는 값비싼 「代價」를 지불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번 방북과정에서 林특보는 자신이 金大中 대통령의 「권고」를 金正日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이를 토대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美·北, 日·北 관계 개선을 위한 메신저 역할도 수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美·北 관계 개선에 관하여 林특보는 金正日이 『(미국의) 새 정부와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대화하라』는 金大中 대통령의 권고에 대해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호응했고, 『잭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을 수용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겠다』고 호응했다. 또한 『KEDO와의 협의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고, 도널드 그렉 前 주한 미국대사의 임박한 방북을 예고하면서 『미국과 민간차원의 교류 재개』도 시사했다고 전했다.
「미국을 대리하여 북한과 논의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그러나, 워싱턴 현지에서 감지되고 있는 미국 朝野(조야)의 움직임은 훨씬 가라앉아 있고, 한국 정부가 이번 林특보의 訪北을 통하여 보여 준 적극적인 美北 관계 중재노력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 원인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하여 그동안 벼르고 별러 온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를 위한 군사행동의 계기를 포착하지 못한 데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예상치 않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상태 발발로, 이의 수습을 위한 외교적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정권으로서는 이에 더하여 북한문제에 힘을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美 행정부는 지난 1월29일 부시 대통령의 對의회 국정연설 이후, 특히 그의 對北 「악의 축」 지목 발언에 대한 부정적 국제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을 애써 부각시켜 왔고,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林특보의 방북에 지지와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지난 3월27일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보여 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태도는 북한문제에 관한 미국의 신중한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보다 하루 앞서 25일(서울 시간) 林특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그의 이번 방북 목적은 『6ㆍ15 남북 頂上회담의 합의를 준수하고 이행이 중단되거나 잘 안 된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인 27일 아미티지 부장관은 林특보의 방북에 대해 『내 친구인 林특보가 평양을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고 일단 환영하면서도 林특보가 방북기간 중 북측과 논의할 내용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이슈들이 논의될 것으로 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것은 사실은 林특보에게 보내는 미국 정부의 「주문」이기도 했다. 즉, 林특보가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남북간의 문제를 가지고 북한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대량 살상무기」 등 미국이 북한과 직접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林특보가 미국을 대리하여 북한과 논의하는 것은 반갑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신중한 반응
그 이유는 자명하다. 林특보가 특히 부시 대통령의 1월29일자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는 북측 선전의 연장선상에서 美北 관계를 가지고 북측과 대화하면 북측은 일정한 對美 메시지 전달을 林특보에게 의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미국으로서는 이같은 북한의 선전에 잘못 말려들 경우에는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빛을 잃고 오히려 미국의 對北 「적대정책」을 부각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자세는 4월6일 林특보의 서울 귀환 후 부시 행정부가 보여 주고 있는 신중한 움직임을 통해서도 再확인되고 있다. 외신은 부시 대통령 측근의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林특보가 전한 북측의 美北 대화 호응용의 표명 보도에 대해 『환영은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평양으로부터 직접 그같은 제의를 받을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은 우선 KEDO(한반도 에너지 기구:북한에 경수로를 짓고 있는 다국적 조직체)와 북한 간의 대화가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KEDO는 시간을 다투는 對北 현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정된 경수로 건설공정을 북한 측에 공식으로 통보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본래 1994년의 제네바 美北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와 그 부속 非공개 양해각서에 의하면 對北 경수로 2기는 1호기가 2002년 말, 2호기가 2003년 말까지 준공하게 되어 있다. 2002년은 금년이고 그 3분의 1이 벌써 경과하고 있다. 지금 KEDO가 가지고 있는 수정계획은 1호기 2008년 말, 2호기 2009년 말을 준공목표 시기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수정계획에 의거, 금년 8월에 경수로 수용구조물 건설을 위한 콘크리트 붓기 작업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1호기 2008년 말, 2호기 2009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는 修正 공정도 한 가지 치명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對北 특별사찰 문제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문제될 듯
IAEA는 북한이 5MW 규모의 旣(기)가동 흑연감속형 원자로에서 가동 중단 이전에 이미 일정량의 원자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여 보유 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1994년의 美北 제네바 기본합의와 그 부속 非공개 양해각서는 『경수로 건설의 「상당부분」이 완성되었지만 아직 주요 핵심부품의 인도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은 북한내의 모든 핵물질에 관한 북한의 최초 보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IAEA에게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추가적 장소와 정보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IAEA와 체결한 안전조치협정(INFCIRC/404)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기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IAEA는 IAEA가 특히 의혹을 두고 있는 두 개의 지하 핵폐기물 저장소에 대한 「특별사찰」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과거 南아프리카 연방을 상대로 했던 「특별사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IAEA는 이같은 「특별사찰」 실시에 3~4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 건설공정에 따라 2008~2009년에 1~2호기를 준공시키기 위해서는 IAEA의 對北 「특별사찰」은 늦어도 금년 하반기에는 착수되어야 하며, 이것이 지연되면 지연되는 기간만큼 수정된 건설공정의 추가적 지연이 불가피해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AEA는 아직도 이 수정된 건설공정을 북한 측에게 공식으로 통보조차 하지 못한 상태이다. 북측이 그동안 KEDO와 만나는 것을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KEDO와의 회담 수용 용의를 시사했고, 林특보에 의하면 이번 평양에서 金正日도 그에게 KEDO와의 회담할 뜻을 밝혔다. 북한과 KEDO가 만나면 여기서 다루어질 최긴급 안건은 건설공정을 수정하는 문제와 함께 IAEA의 「특별사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완공 시기를 2008~2009년으로 늦추는 것도 문제지만 IAEA 「특별사찰」 문제가 適時에 해결되지 않으면 2008~2009년의 수정된 완공시기가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핵 문제와 관련하여 IAEA의 對北 「특별사찰」 문제에 대해 보여 줄 북측의 태도는 미사일 문제에 관한 협상에 임하는 북한 자세의 성실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기회가 되리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林특사의 訪北을 「정치적 타산」으로 인식
이곳 워싱턴에서 감지되는 또 하나의 시각은, 이번 林특보의 방북이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돌파구 마련에 목적을 둔 것인가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동안 북한의 남북대화는 물론, 對美 대화 거부로 인하여 한반도 문제가 결빙되어 있는 동안에도 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년 봄부터 무언가 남북 간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으리라는 견해가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그 이유로 주로 거론된 것은 남북의 정권 담당세력의 정치적 타산이었다.
즉, 北의 金正日 정권의 입장에서는 南의 金大中 대통령의 잔여 임기 중에 최대한의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한편, 가능하다면 오는 12월의 제16代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金大中 정권의 對北정책을 계승하는 정권이 창출되도록 지원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반면, 그동안의 국정전반에 걸친 失政으로 인하여 사실상 여권 내에서의 정권 再창출 기반을 상실하고 있는 金大中 정권으로서는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여기서 생기는 대중적 최면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여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하는 데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金正日의 서울답방 실현은 항상 이같은 정치적 타산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林대표는 이번 방북기간 중 金正日의 서울방문 문제가 논의되었고, 金正日로부터 『서울을 방문하고 싶고 金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입장 피력이 있었지만 『구체적 합의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 구체적 합의를 보지 못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문제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 워싱턴에서도 서울과 평양의 정권 담당자들이 남북관계나 美北, 日北 관계를 한국의 임박한 선거정국과 관련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朝野(조야)에서는, 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국이 선거정국의 와중에 몰입되어 있는 동안 對北정책 문제는 현상유지의 수준에서 축소 관리를 하면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 및 이라크를 상대로 하는 「테러와의 전쟁」완결에 전념하다가, 내년 초 서울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韓美 간에 새로운 차원에서 對北정책을 조율하고 이를 토대로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가서는 더 이상 북한을 돈으로 달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도덕성, 인권문제 그리고 개방, 개혁 등 정책의 변화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