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걸고 醫保통합 부당성 「直言」
金鍾大(김종대ㆍ55ㆍ現 경산大 교수) 前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도입한 한 주인공이다. 1976년 11월 보건사회부 복지연금국 연금기획과에서 의료보험 업무를 담당한 이래 25년 간 의료보험에서 한발짝도 비켜난 적이 없다.
그는 金大中 정부의 大選 공약인 의료보험 통합이 『국민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정책』이라면서 정면으로 맞서다 25년간 일하던 자리에서 「職權 免職(직권 면직)」이란 형태로 쫓겨났다.
金교수는 아직도 자신이 왜 면직됐는지 그 사유를 모른다. 아마도 1999년 6월15일, 보건복지부 실ㆍ국장 회의에서 車興奉(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現 정부의 의료보험정책과 年金정책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 이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車장관은 「의료보험 통합」을 주장하고 있었고, 金교수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가입자의 참여에 의한 자치방식을 주장했다.
공직자들도 정부의 정책에 반대되는 견해를 가질 수 있는데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다는 이유로 면직된다면 우리 사회에 「예스맨(Yes Man)」을 빼놓고 살아남을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시 52세였던 金교수는 정년(60세)까지 8년을 남겨두고 있어 자진해 사표를 냈을 경우, 퇴직금 외에도 약 8300만원의 명예퇴직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보상이 따르는 辭職(사직)을 권유받고 그것을 거절하다 강제로 직권 면직된 최초의 공무원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의료보험 통합과 국민연금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가는 내가 명예퇴직 수당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양심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8300만원, 薄俸(박봉)의 公職者로 살아온 내게 그것은 巨金이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공직자로서의 所信(소신)이었습니다』
의료보험과 건강보험의 차이
대구 경산大에서 객원교수 자격으로 「의료보장론」 강의를 맡고 있는 金교수는 한국복지문제연구소장도 겸하고 있다. 얼마 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金교수는 기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을 가리켜 「국민 부담보험」, 의약분업은 「의약 부담」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요즘 사용되는 「건강보험」이라는 표현 대신 전처럼 「의료보험」이라는 용어를 썼다.
현 정부 들어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데, 의료보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더 범위가 넓은 「건강」이라는 말을 써서 개혁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부담이 늘고 더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름만 번지르르하게 할 게 아니라 좀더 내실을 기하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세계 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 실시하는 사회보험 방식과 영국과 같이 租稅(조세)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식 혹은 무상의료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는 경제 여건과 사회구조상 조세를 통해 의료보장 財源(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의료서비스의 90%를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하는 의료공급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조세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식이 맞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를 근간으로 하는 독일과 일본의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1963년 일본의 건강보험제도를 모체로 출발한 우리의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7월, 50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직장부터 의료보험을 실시하게 된다. 소득 파악이 용이한 직장부터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金교수는 당시 보사부 보험과장으로 의료보험 탄생의 産婆(산파)역을 담당한다. 1979년에는 공무원ㆍ교직원 의료보험이 실시됐고, 1988년 농어촌지역, 1989년 도시지역으로 의료보험이 확대됨으로써 의료보험은 실시 12년 만에 全국민의료보험 시대를 맞게 된다.
金大中 정부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운영 시스템을 정부 관장의 중앙집중 획일 시스템으로 변혁시키는 조치를 감행했다. 2000년 7월1일을 기해 지역의보, 공무원ㆍ교직원 의보, 직장의보를 하나로 통합하고, 단일 보험자(보험회사)로 건강보험공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사업장 또는 시·군·구 지역별로 노사합의나 주민 자치적으로 운영하던 의보시스템을 국가관리하에 건강보험공단에서 획일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이다.
金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현 정부의 국가관리의 획일적 보험방식을 「사회주의에 傾倒(경도)된 정책」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金大中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대해 최초로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다. 보험은 收支(수지)를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교과서적 논리를 무시하고, 소득 재분배를 우선으로 한다는 사회주의적 논리를 앞세워 醫保통합을 강행함으로써 醫保 재정파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원래 「사회주의적」인 것
金교수는 보험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현 정부의 보험 정책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1883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의료보험 제도의 탄생 이념 자체는 「사회주의적」인 것이었다.
보험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타협책으로 도입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대규모의 離農(이농)현상이 일어나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노동계급이 대량 量産(양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빈곤문제, 실업문제, 질병과 건강 문제 등을 발생시켰고 이것이 누적돼 貧民(빈민) 폭동이나 노동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더욱이 노동계급과 새로이 탄생한 사회주의 정당이 연합해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파멸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질병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 등 사회보험제도를 수립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의료분야를 완전히 자유시장 원리에 맡겨 놓는다면,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빈곤계층들은 의료혜택의 死角地帶(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렇다고 사회보험에 국가가 무한정 개입할 수만은 없다. 대다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을 보호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根幹(근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보험운영에 「민주성」을 加味한 국민(보험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金大中 정부 들어 238개 지역의보 조합과 140개 직장의보 조합을 해체해 하나의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해 4600만명의 가입자를 관리·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비용 부담자인 가입자(국민)의 참여가 배제되고 公團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사장이 업무를 총괄하는 체제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료보험을 통합한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료보험 통합을 강하게 주장했던 장관은 千命基(천명기)씨와 車興奉(차흥봉)씨로 압축할 수 있어요. 야당 시절 金大中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千장관은 이념적인 이유로 의료보험 통합을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직장 의료보험에 적립금이 비축되자 딴생각이 생겼던 것으로 봅니다.
이 돈을 활용해 「가난한」 농어민, 자영업자에게 혜택을 줘 全국민 의료보험을 자신이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車장관도 그 이후에 영향을 받아 같은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이들은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통합하면 국고를 부담하지 않고도 지역의보의 재정부실을 해결할 수 있다」며 의보 통합을 주장한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대상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638만명이다. 이 중 직장이 2317만명, 지역이 2321만명으로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의료보험 收支面에서 살펴보면, 작년 보험료 총 수입은 11조3222억원. 지역가입자는 6조1000억원(이 중 국고 지원 2조5000억원), 직장가입자는 5조2000억원(이 중 직장 사용자가 2조6000억원 부담)을 냈다. 비율로 보면 직장 가입자와 사용자는 반반씩, 지역가입자는 國庫(예산)지원을 41% 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재정이 취약하다고 판단한 지역가입자에게만 國庫를 지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공단이 가입자의 진료비로 병원과 약국에 지출한 보험급여비가 13조1575억원이었다. 보험 收支가 1조8353억원의 赤字(적자)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국고지원, 담배부담금 부과, 직장의보 가입자의 피부양자(보험가입자에 딸린 가족) 중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를 가려내 지역의보에 가입시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법 등으로 의료보험 재정수입을 늘리고, 환자 본인 부담금 인상, 의료수가 인상 뒤의 인하조치, 보험 혜택축소 등 대책을 내놓았다는 데도 이 정도라는 것이 金교수의 주장이다.
金교수는 2000년 7월1일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나타난 온갖 재정상의 문제점들을 수치화해서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기자에게 건넨 메모를 소개하면 이렇다.
국민 부담 증가 13조원
<첫째, 1977년 의료보험 실시 이래 의료보험조합이 20여 년 간 쌓아놓은 법정준비금이 1997년 말 현재 3조7855억원이었으나 金大中 정부가 집권한 지 4년도 되지 않아서 몽땅 소진했다. 법정준비금이란 자연재해, 질병의 유행, 경제적 불황 등으로 보험료를 받지 못할 사태에 대비해 연간 급여비(공단이 병원에 내는 진료비)의 50%를 적립하도록 법률로 의무화한 돈이다.
둘째, 지역의보의 보험료 징수율 저하와 인구의 노령화, 의료비 인상 등으로 만성적인 당기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國庫(국고) 지원을 시작했다. 국고지원액은 1998년 1조760억원, 1999년 1조1659억원, 2000년은 1조5529억원, 2001년도에는 2조6363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나중에는 본예산만으로 부족해 추경예산까지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02년도 예산을 2001년 수준으로 계산할 때 1998년부터 2002년까지 1997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추가로 국민이 부담한 예산은 4조904억원이다.
셋째,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에 의거 「2000년 12월 말일까지 의료수가(진료비 단가)를 인상할 수 없다」는 법률 조항에도 불구하고 2000년 9월1일자로 不法으로 의료수가를 6.5% 인상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7801억원의 의료비를 추가 부담했다. 2000년 9월1일부터 2002년 말까지 계산하면 추가부담액은 1조7552억원이 된다.
넷째, 2001년도 6월부터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금을 사용하고 법정준비금까지 바닥이 나버리자 「건강보험공단」이 CP(기업어음)를 발행하여(이자율 4.6%내외) 진료비를 병원과 약국에 지불하고 있다. 2002년도 현재 이런 식으로 총 7조원 이상을 금융차입했고, 차입액과 이자를 매월 국민이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지원금으로 갚아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2000년 말까지 차입액을 이자와 합쳐보면 2조7000억원 정도가 된다.
다섯째, 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확대, 본인부담금 상향조정, 금융차입 등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2002년 3월부터 12월까지 담배 한 갑당 150원의 의료보험 부담금을 부과해서 진료비를 조달해 결국 5500억원을 국민부담으로 안겼다>
金교수는 『金大中 정부는 의료정책 실패로 국민(의보 가입자)에게 현금으로 안겨준 추가부담 12조881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면서 『가입인구를 4600만으로 계산하면 국민 1인당 28만원씩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날이 올라가는 보험료의 인상, 직장보험 가입자의 부양가족에게 새로운 보험료 부과, 보험적용 약품 축소, 보험적용 일수 단축, 환자의 본인부담금 인상, 병원을 오가는 막대한 간접비용의 발생 등을 별개로 하더라도 순수 현금으로 국민에게 준 부담은 보상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블랙 홀
이에 대해 통합론의 대부격인 車興奉(차흥봉) 한림大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金교수가) 어떤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문제는 나보다는 중앙大 金淵明(김연명) 교수, 서울大 의대 金容益(김용익) 교수, 원광大 李光粲(이광찬) 교수 등에게 묻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복지부 장관 재직 시절, 金鍾大 실장을 직권 면직한 이유에 대해 묻자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그것을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金교수는 『金大中 정부는 의료보험을 통합하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醫藥분업을 실시해 국민 부담을 늘리고 국가 재정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Black Hole)을 만들었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의료보험의 판을 새로 짜 모든 국가 에너지가 이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金교수는 1947년 慶北 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326번지에서 金永培(김영배, 1988년 작고)씨와 權黑己(권흑기·78) 여사와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만주사변에도 종군한 사진작가였고, 祖父(金東燮)는 농사를 지어 큰할아버지(金周燁)와 함께 독립군 軍資金(군자금)을 댔다고 한다.
그는 예천에서 초등학교(용문국교)를 나온 뒤 대구 계성중을 거쳐 계성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시골 출신으로 陸士(육사)에 가라는 고모부의 권유도 있었지만 「농업이 똥지게나 져서 나라가 발전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農大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高3 졸업반이던 어느 날, 신문에 부정부패 등으로 구속되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정부가 뭐고 정치가 뭐냐」는 생각에 진로를 農大에서 정치학과로 바꾼다.
農大를 지망한 시골 소년
農大를 진학하기 위해 理科班에서 공부한 그는 文科 과목만 시험을 보는 정치학과 시험에서 동료 수험생들과 경쟁이 되질 못했다. 그는 再修(재수)를 거쳐 이듬해 14대1의 경쟁을 뚫고 서울大 정치학과에 합격한다.
金교수는 대학 1~2학년 때 데모하다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정치학도로서 1968년 공화당 부정선거에 맞서 示威(시위)에 참여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무난한 대학생활을 한 편이었다. 당시 정치학과 출신들은 국영기업체, 신문사, 대기업체, 한국은행 등에 취직을 했다. 그는 私기업은 연고 채용으로 사람을 뽑기 때문에 공정하게 경쟁해서 입사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公職(공직)이 아니겠느냐는 판단으로 행정고시에 응시하기로 했다.
대학 3학년말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 1년 남짓 공부했다. 정치학과 동기인 李始鍾(이시종) 現 충주시장, 河龍出(하용출) 서울大 외교학과 교수 등 세 사람이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함께 응시했다.
2차 시험 때의 일이다. 1교시 憲法(헌법) 시험이 어렵게 출제됐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들 세 사람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飯酒(반주)를 겸해 막걸리 두 되를 나눠 마셨다. 그러나 2교시 行政法(행정법) 시험은 醉中(취중)에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답을 쉽게 써냈다. 두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국 180명을 선발한 그 시험(1971년)에서 세 사람 모두 합격했다.
그의 결혼 사연은 불교에서 말하는 因緣(인연)의 결과다. 동갑내기 부인(盧壽均)은 계성고와 같은 재단인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했다.
『고3이 되던 겨울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때였어요. 독서실에서 여자들 한 패가 자기들끼리 수학문제를 푸는데 어려웠던지 독서실 총무에게 「남학생 중에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답니다. 총무가 저를 지목했고 집사람이 여학생 대표로 제게 와서 순열 조합의 증명문제를 물어봤어요. 얼마 후 그 여학생들이 연락을 해왔는데 풀어준 문제가 시험에 나와 다 맞았다면서 빵을 사주었어요. 그리고는 소식이 끊겼지요』
그러나 그들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계명大에 진학한 부인이 평소 잘 아는 金교수의 고교 2년 후배인 金正培(김정배·서울大 사학과 졸) 現 기호일보 편집국장을 통해 『혹시 金鍾大란 사람이 서울大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수소문해 극적으로 再會하게 된다. 두 사람은 1973년 金교수가 조달청 사무관으로 근무할 때 결혼식을 올렸다.
「애송이 사무관」의 좌천
金교수는 1972년 12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도 내무부, 재무부, 상공부, 경제기획원 등 소위 「끗발」이 있는 부서로 사람이 몰렸다. 당시는 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던 시기였기에 高試 합격자들은 成績(성적)에 의해 부서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배치된 곳은 철도청. 그러나 金교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철도청 근무가 불가능했다. 철도역장을 하려면 信號(신호)를 잘 보아야 하기 때문에 눈이 좋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졸지에 대기병 신세가 됐다. 1972년 12월, 조달청으로 가라는 인사명령을 받았다. 조달청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부정부패로 무더기로 잡혀가는 바람에 엄청난 수의 缺員(결원)이 생긴 것이었다.
조달청에 근무한 것은 2년6개월 남짓. 그러나 金교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 공직생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첫 발령을 받은 곳은 내자국 내자기획과. 돈으로 물품을 구입하는 곳이 아닌 사업 플랜을 짜는 기획부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곧 내자1과로 전보돼 구매계약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내자1과는 電線, 시멘트, 전자 계산기 등의 구매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시멘트 품귀 파동이 일어났던 시기라 조달청에서의 물자 배정업무가 중요했다. 시멘트 우선 배정을 바라는 업자와 이를 둘러싼 검은돈 거래 등 보이지 않는 비리가 성행할 때였다. 그래서 흔히 내자1과를 조달청內 「要職(요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내자1과에서 6개월 만에 갑자기 閑職(한직)으로 여겨지는 물자조정과로 갔다. 당시 실세인 K씨의 인척인 국무총리실 조정관 P씨가 자신의 형이 조달청에 납품하는 정부 양곡 포대를 제때 납품하지 못한 데 대한 遲滯償金(지체상금) 1억원을 면제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조달청에서는 당시 약정대로 시행되지 않은 계약건에 대해서는 적절한 손해배상금을 요구하고 있었다.
계약 당사자인 조정관 P씨의 형은 양곡포대의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수출국인 외국 부두노동자의 파업으로 제때 국내 반입이 안 돼서 그랬다는 것이다. 조달청장도 『면제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金사무관은 지체상금의 면제규정이 天災地變(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파업은 천재지변이 아니며 파업으로 지체상금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면 국가와의 계약은 누가 지키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곧 찬바람 나는 자리인 물자국 물자조정과로 옮겨졌다.
정부 물자의 수급계획을 마련하는 물자조정과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경북 高靈(고령) 출신으로 경북大 의대를 나온 육군 준장 출신의 丁海植(정해식) 청장을 만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청 직원들이 직접 파악해 공급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의욕은 좋았으나 인력운용上 불가능한 청장의 강경한 지시에 아무도 말을 못 하고 끙끙 않기만 했다.
廳長의 지시에 도전
金사무관은 어느 날 보고하러 들어갔다가 丁청장을 獨對(독대)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丁청장에게 조달청이 그 업무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했다. 젊은 사무관의 당돌한 의견 개진을 듣고 있던 丁청장은 빙긋이 웃으며 『그런 문제점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다루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1976년 그는 보건사회부가 의료보험을 맡아서 일할 젊은 사무관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보사부로 전출을 희망한다. 정책 가운데서 사회보장 업무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사부에는 申鉉碻(신현확)씨가 장관으로 있었다.
보사부는 그의 희망을 받아들여 조달청장에게 「割愛요청(타부서에 인력 요청을 하는 것)」을 했다. 그러나 丁청장은 申장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丁청장에게 잘 보인 게 禍根(화근)이었다.
결국 丁청장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申장관이 丁청장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건 끝에 金사무관은 1976년 11월 보사부와 인연을 맺게 된다. 丁청장은 金사무관을 떠나보내면서 총무과장에게 승진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규정상 3년이 지나야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2년6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은 그는 규정상 승진이 어려웠다. 丁청장은 연금기획과에서 일하고 있던 그를 불러 표창장을 주었다. 보사부에서 빨리 승진하라며 날짜를 소급해서 표창장을 준 것이다. 이 덕분인지 그는 1977년 3월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서기관으로 승진한다.
장마에 집 떠내려가도 몰라
年金기획과의 주된 업무는 年金이 아닌 의료보험에 관한 것이었다. 당초 연금기획과에서는 국민연금제도를 맡아보기로 돼 있었는데 「오일 쇼크」로 그 시행이 보류되면서 곧바로 의료보험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의료보험이 1977년 7월1일 시행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불과 6~7개월의 시간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처음 도입하는 제도라 시행 착오도 많았고, 문제점 보완을 위해 金서기관 등 보사부 직원들은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당시 보사부는 광화문 제1청사에 있었다. 그날도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연금기획과 직원들과 함께 더위를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업무에 열중하다 보니 밖에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제사 집 걱정이 됐던 金서기관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경기도 안양 만안교 근처의 셋방으로 향했다.
광화문에는 차가 다니지 않아 서울역까지 걸어갔고, 서울역에 도착해 보니 안양행 노선버스도 끊긴 상태였다. 설상가상 택시비도 없어 밤 10시경부터 빗길을 걸어서 이튿날 새벽에 안양에 도착해 보니 집이 보이지 않았다. 집은 家財道具(가재도구) 하나 남기지 않고 비에 쓸려 내려갔다. 부인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인근 중국음식점 2층에 대피해 있었다. 金교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집이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가족들의 安危(안위)를 뒤로 한 채 돌본 의료보험제도였기에 의료보험이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그때 일이 떠올라 더욱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이던 때 일어난 대한안경사협회 金品 로비사건을 보고 공직자는 「칼날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당시 안경사협회의 로비 초점은 국민의 眼(안) 보건을 위해서는 안경렌즈뿐 아니라 안경테도 안경사만이 취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의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복지부 장관 부인이 구속됐고, 공직자로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1996년 9월경.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텔레비전 앞에 대한안경사협회 회장이 보낸 두툼한 등기우편물이 놓여 있었다. 무엇인지 궁금해 그 우편물을 뜯어 보았더니 10만원권 상품권이 20여 장 들어 있었다.
「업무상 관련이 없는 나에게 이 정도면 우리 복지부 간부와 담당 직원들에게는 상당한 로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해 소관 업무부서인 의정국 의료정책과장에게 『안경사협회에서 집으로 상품권을 보내왔는데, 이것을 안경사협회에 돌려주고 영수증을 꼭 받아두십시오』라고 일렀다.
예상했던 대로 국장, 과장 등 여러 사람에게도 상품권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장관은 안경사협회에 직무감사를 지시했고, 金교수는 1996년 10월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달 후인 11월경, 로비사건이 터지면서 상품권 로비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검찰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인 P씨가 안경사협회장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1억7000만원을 수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그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자 그의 祖父인 金東燮(김동섭) 선생이 『공직자는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생활이니 항상 正道(정도)를 가라』고 한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1980년 2월11일 당시 陳懿鍾(진의종) 보사부 장관의 命으로 청와대에 정무비서실 행정관으로 들어가 1980년 8월15일 全斗煥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6개월간 崔圭夏 대통령을 모셨다.
그가 청와대에 있던 시절은 10·26 사태 이후 3金이 각축하고 있던 소위 「안개정국 시절」이었다. 新군부에 의해 12·12 사건이 발생한 지 몇 달 지난 뒤였다. 5·17이 일어나자 세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청와대로 보고하러 오는 사람은 없었고, 보고 행렬은 당시 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몰리고 있었습니다』
3개월 정도 특별한 일 없이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던 그는, 全대통령 취임 이후 金有厚(김유후) 법무비서관으로부터 청와대에 계속 근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그때 청와대 법무 보사 비서관실 위층인 3층 회의실에는 당시 5共 실세였던 許和平(허화평), 許三守(허삼수), 李鶴捧(이학봉)씨 등이 들어와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활기가 여간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하, 이것이 권력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는 全대통령에 대해서 『정확하게 실무자들이 설명하고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분』이라고 평했다.
1982년 11월2일, 오후 3시경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보험 통합에 관한 보고 회의가 열렸다. 일명 「청와대 논쟁」이었다. 黨과 정부 측에서는 민정당 李鍾贊(이종찬) 원내총무, 崔永喆(최영철) 국회 보사위원장, 金正禮 보사부 장관이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보고를 했다.
金鍾大 실장의 「거부권」
보고 후 全대통령은 金泰鎬(김태호) 정무제2수석과 尹成泰(윤성태) 비서관에게 이에 대한 검토보고를 하도록 했다. 당시 행정관(서기관)으로서 尹비서관을 모시고 있던 金鍾大씨는 검토보고 자료를 작성했다. 당과 비서실 兩者(양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全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 검토보고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구구절절 맞는 얘기 아닙니까. 黨에서 공부 좀 더 해요』라면서 통합 일원화에 대한 논의를 『유보하라』고 했다. 이리하여 1983년부터 醫保통합에 대한 논의는 표면적으로 잠잠해졌다.
그러나 1988년 盧대통령이 취임해서도 보험통합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金潤煥(김윤환) 원내총무는 『중간평가 때 표를 얻어야 하니까』라고 했고, 의사협회 회장 출신인 文太俊(문태준) 당시 보사부 장관은 『통합은 안 된다』고 버텼다. 與小野大(여소야대) 시절인 1989년 3월9일, 민정당, 민주당, 평민당, 신민주공화당은 통합법안인 국민의료보험법(그 전엔 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는 당시 文장관에 의해 1989년 1월 보사부 공보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통합의료보험법의 핵심 내용과 문제점에 대해 사회보험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튿날부터 都下(도하) 신문 紙上에 임금 근로자의 손해 등을 들어 「통합을 반대한다」는 기사가 연일 게재됐고, 통합의 문제점이 社說(사설)을 통해 지적되기에 이른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1989년 3월15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했다. 盧대통령은 3월22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野黨 단독 醫保통합안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시 보사부內에서는 「盧泰愚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金鍾大 공보관 거부권」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도 흘러나왔다.
『국회가 국민 의료보험법안을 통과시킬 때도 盧대통령은 정부 방침을 실무자들에게조차 정해주지 않았어요. 언론에서 「봉급생활자-정직한 자, 봉 된다」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때서야 거부권을 행사할 만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 그는 보사부 복지정책실장이었다. 金대통령은 국민의료보험 통합에 대해 4당 합의를 한 사람이다. 1997년 8월 대통령 선거전략 차원에서 의료보험 통합 논의가 다시 전면에 대두한다. 당시 신한국당에서 통합법안인 국민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發議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 H의원이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의 金大中 후보가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의료보험 통합을 제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신한국당이 먼저 선수를 쳐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만이라도 통합하는 法案(법안)을 발의하여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논거였다.
1997년 10월30일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이 통합되었다(재정은 분리). 당시 그는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으로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보험의 본질을 잘 몰라 국민에게 해악을 끼친 지도자이다』
1997년 金大中 후보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大보험의 통합을 公約으로 내세웠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國庫(국고) 지원 없이 보험을 운영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국고를 교육이나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의료보험 1차 통합은 1998년 10월1일 이미 시작됐다. 1999년 초에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해 2001년 1월1일 직장의료보험까지 완전 통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법은 시행도 하기 전에 改正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그 시행을 6개월 연기했다. 국민적 저항이 예상 밖으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朱良子(주양자) 장관이 부임해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해 1998년 3월25일 金大中 정부에서 또다시 기획관리실장 보직을 받았다.
『金대통령은 野黨이라는 범주에서 의료보험 통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검토했어야 합니다. 기획관리실장으로 옆에서 보니 보험에 대해 껍데기만 알고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다만 들은 것을 그럴 듯하게 잘 組合(조합)해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견해로는 의료보험에 가장 큰 害惡(해악)을 끼친 지도자입니다』
―직접 모신 보사부 장관들 중 最高(최고)와 最惡(최악)을 꼽아 주십시오.
『(웃으며) 最惡도 있긴 하지만 말하긴 곤란하고 最高만 말하지요. 申鉉碻(신현확) 장관, 李海元(이해원) 장관, 金鍾仁(김종인) 장관이 훌륭한 분들입니다. 申장관은 자유당 시절부터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간여한 분이라서 그런지 「福祉(복지)와 經濟(경제)는 表裏(표리)의 관계에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실 만큼 실물 경제에 대한 경험도 풍부한 분이었습니다.
李장관은 1988년 1월1일 全국민을 상대로 한 郡단위 농어촌지역 의료보험을 실시한 보험의 시스템을 만든 분입니다. 公私가 분명한 분입니다. 金장관도 통이 크고, 합리적인 개혁주의자라고 생각됩니다』
金교수는 복지부 공보관을 지낸 경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도 복지부의 업무 특성에 대해 잘 안다. 그가 설명하는 복지부는 이렇다.
『길거리에 보이는 간판의 60~70%가 복지부의 소관 업무일 정도로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마치 백화점 업무처럼 장애인, 영세민, 제약회사, 병ㆍ의원, 약ㆍ식품 제조, 음식, 국민연금, 노인, 여성, 어린이 등과 관련되는 업무가 限(한)도 없이 많습니다』
복지부에는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약사, 치과의사와 치과의료기사, 미용사와 피부미용사, 안경사와 안과의사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직종이 10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복지부內에는 현재 통합 반대론자와 통합론자로 兩分돼 있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무자들은 의료보험 통합이 안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모든 복지부 업무를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판단해 놓고 잘 안 되면 실무자들을 문책하고 「바보」로 만드니까 복지부 직원들의 士氣가 말이 아닙니다. 한두 명의 「해바라기」들 때문에 복지부 공무원들이 더 이상 희생당해서는 안 됩니다』
―醫藥(의약)분업도 의료보험 통합과 마찬가지로 시행이 잘못된 것입니까.
『의약분업을 실시하려는 趣旨(취지)는 옳습니다. 즉 의사는 診斷(진단)만 하고, 약사는 調劑(조제)만 한다는 데는 아무런 반대가 없었어요. 다만 의약분업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편리하게, 부담이 안 되게, 효과적으로 하느냐의 문제였지요. 지금 우리 의약분업은 이것을 하나도 만족 못 시켜요. 이 병원에서 진료받고 저 약국으로 가서 약을 타야 하고, 항생제의 誤濫用(오남용)은 늘고, 藥은 더 비싼 것을 사용하게 돼 부담이 늘고…. 이건 의약분업이 아닙니다』
―의료보험 재정 파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책임론이 대두될 겁니다. 모임에 나가보면 아우성들이에요. 의료보험 통합은 눈에 보이는 정책의 실패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보다 고통의 원인에 대한 책임 규명이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診斷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판단은 배제돼야 하고 보험 정신과 원리에 입각해서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겁니다. 基底(기저)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라는 國家理念이 꼭 들어가야 하고요. 이것만 제대로 되면 의료보험 문제의 절반은 풀린 겁니다. 그 다음은 行政의 기술일 거고요』
『난 거꾸로 사는 사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고 획일적인 것은 전체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위해 하나는 희생되도 좋다면 이것은 권위주의이고 獨善(독선)이죠.
오늘날 보수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만, 이 보수는 도덕성을 갖춘 개혁적 보수가 돼야 합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가 守舊, 反動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정부가 이런 기본적 인간의 이념 철학과 배치되는 의료보험 통합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必敗(필패)」의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이 정부의 실패는 이러한 이념과 철학에 모순되는 정책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기획관리실장 7년, 최연소 과장, 최연소 국장, 네 번의 좌천, 공무원으로서 최초의 직권 면직 기록 등 보건복지부의 각종 榮辱(영욕)의 기록을 갖고 있는 金교수.
金교수는 요즘도 아침 5시경에 일어나면 108배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상을 시작한다. 그가 公職생활 중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空(공)의 정신」이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해요.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을 비운 상태, 즉 空의 상태라야 공정한 결정이 나온다고 봅니다. 바로 中庸(중용)의 철학이지요. 의료보험도 서로 다른 두 개를 克服(극복)하고 包容(포용)해서 승화시켜 갈 수 있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바로 中庸의 철학입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사찰여행」이다. 『사찰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사찰과 관련한 책을 하나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배웠는데 공직 생활하는 동안 餘力(여력)이 미치질 않더군요』
1남1녀를 둔 그는 얼마 전 가족들과 2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는 그의 2년치 연금 1000만원으로 마련했다. 『薄俸(박봉)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길을 가고 싶지 않다』면서 行試를 포기하고 증권회사에 입사한 아들은 떼어놓고, 디자이너인 딸을 여행 가이드 삼아 대동했다. 복지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수많은 「시찰」 명목의 해외여행 기회를 날려버리고, 결국 公職에서 물러난 뒤 연금을 모아 여행을 하는 자신을 가리켜 그는 『난 거꾸로 사는 사람』이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金鍾大(김종대ㆍ55ㆍ現 경산大 교수) 前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도입한 한 주인공이다. 1976년 11월 보건사회부 복지연금국 연금기획과에서 의료보험 업무를 담당한 이래 25년 간 의료보험에서 한발짝도 비켜난 적이 없다.
그는 金大中 정부의 大選 공약인 의료보험 통합이 『국민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정책』이라면서 정면으로 맞서다 25년간 일하던 자리에서 「職權 免職(직권 면직)」이란 형태로 쫓겨났다.
金교수는 아직도 자신이 왜 면직됐는지 그 사유를 모른다. 아마도 1999년 6월15일, 보건복지부 실ㆍ국장 회의에서 車興奉(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現 정부의 의료보험정책과 年金정책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 이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車장관은 「의료보험 통합」을 주장하고 있었고, 金교수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가입자의 참여에 의한 자치방식을 주장했다.
공직자들도 정부의 정책에 반대되는 견해를 가질 수 있는데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다는 이유로 면직된다면 우리 사회에 「예스맨(Yes Man)」을 빼놓고 살아남을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시 52세였던 金교수는 정년(60세)까지 8년을 남겨두고 있어 자진해 사표를 냈을 경우, 퇴직금 외에도 약 8300만원의 명예퇴직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보상이 따르는 辭職(사직)을 권유받고 그것을 거절하다 강제로 직권 면직된 최초의 공무원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의료보험 통합과 국민연금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가는 내가 명예퇴직 수당을 받는다는 것은 나의 양심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8300만원, 薄俸(박봉)의 公職者로 살아온 내게 그것은 巨金이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공직자로서의 所信(소신)이었습니다』
의료보험과 건강보험의 차이
대구 경산大에서 객원교수 자격으로 「의료보장론」 강의를 맡고 있는 金교수는 한국복지문제연구소장도 겸하고 있다. 얼마 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金교수는 기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을 가리켜 「국민 부담보험」, 의약분업은 「의약 부담」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요즘 사용되는 「건강보험」이라는 표현 대신 전처럼 「의료보험」이라는 용어를 썼다.
현 정부 들어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데, 의료보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더 범위가 넓은 「건강」이라는 말을 써서 개혁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부담이 늘고 더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름만 번지르르하게 할 게 아니라 좀더 내실을 기하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세계 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 실시하는 사회보험 방식과 영국과 같이 租稅(조세)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식 혹은 무상의료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는 경제 여건과 사회구조상 조세를 통해 의료보장 財源(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의료서비스의 90%를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하는 의료공급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조세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식이 맞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를 근간으로 하는 독일과 일본의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1963년 일본의 건강보험제도를 모체로 출발한 우리의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7월, 50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직장부터 의료보험을 실시하게 된다. 소득 파악이 용이한 직장부터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金교수는 당시 보사부 보험과장으로 의료보험 탄생의 産婆(산파)역을 담당한다. 1979년에는 공무원ㆍ교직원 의료보험이 실시됐고, 1988년 농어촌지역, 1989년 도시지역으로 의료보험이 확대됨으로써 의료보험은 실시 12년 만에 全국민의료보험 시대를 맞게 된다.
金大中 정부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운영 시스템을 정부 관장의 중앙집중 획일 시스템으로 변혁시키는 조치를 감행했다. 2000년 7월1일을 기해 지역의보, 공무원ㆍ교직원 의보, 직장의보를 하나로 통합하고, 단일 보험자(보험회사)로 건강보험공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사업장 또는 시·군·구 지역별로 노사합의나 주민 자치적으로 운영하던 의보시스템을 국가관리하에 건강보험공단에서 획일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이다.
金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현 정부의 국가관리의 획일적 보험방식을 「사회주의에 傾倒(경도)된 정책」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金大中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대해 최초로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다. 보험은 收支(수지)를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교과서적 논리를 무시하고, 소득 재분배를 우선으로 한다는 사회주의적 논리를 앞세워 醫保통합을 강행함으로써 醫保 재정파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원래 「사회주의적」인 것
金교수는 보험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현 정부의 보험 정책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1883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의료보험 제도의 탄생 이념 자체는 「사회주의적」인 것이었다.
보험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타협책으로 도입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대규모의 離農(이농)현상이 일어나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노동계급이 대량 量産(양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빈곤문제, 실업문제, 질병과 건강 문제 등을 발생시켰고 이것이 누적돼 貧民(빈민) 폭동이나 노동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더욱이 노동계급과 새로이 탄생한 사회주의 정당이 연합해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파멸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질병보험, 산재보험, 노령연금 등 사회보험제도를 수립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의료분야를 완전히 자유시장 원리에 맡겨 놓는다면, 사회적·경제적으로 취약한 빈곤계층들은 의료혜택의 死角地帶(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렇다고 사회보험에 국가가 무한정 개입할 수만은 없다. 대다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을 보호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根幹(근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보험운영에 「민주성」을 加味한 국민(보험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金大中 정부 들어 238개 지역의보 조합과 140개 직장의보 조합을 해체해 하나의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해 4600만명의 가입자를 관리·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비용 부담자인 가입자(국민)의 참여가 배제되고 公團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사장이 업무를 총괄하는 체제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료보험을 통합한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료보험 통합을 강하게 주장했던 장관은 千命基(천명기)씨와 車興奉(차흥봉)씨로 압축할 수 있어요. 야당 시절 金大中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千장관은 이념적인 이유로 의료보험 통합을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직장 의료보험에 적립금이 비축되자 딴생각이 생겼던 것으로 봅니다.
이 돈을 활용해 「가난한」 농어민, 자영업자에게 혜택을 줘 全국민 의료보험을 자신이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車장관도 그 이후에 영향을 받아 같은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이들은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통합하면 국고를 부담하지 않고도 지역의보의 재정부실을 해결할 수 있다」며 의보 통합을 주장한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대상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638만명이다. 이 중 직장이 2317만명, 지역이 2321만명으로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의료보험 收支面에서 살펴보면, 작년 보험료 총 수입은 11조3222억원. 지역가입자는 6조1000억원(이 중 국고 지원 2조5000억원), 직장가입자는 5조2000억원(이 중 직장 사용자가 2조6000억원 부담)을 냈다. 비율로 보면 직장 가입자와 사용자는 반반씩, 지역가입자는 國庫(예산)지원을 41% 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재정이 취약하다고 판단한 지역가입자에게만 國庫를 지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공단이 가입자의 진료비로 병원과 약국에 지출한 보험급여비가 13조1575억원이었다. 보험 收支가 1조8353억원의 赤字(적자)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국고지원, 담배부담금 부과, 직장의보 가입자의 피부양자(보험가입자에 딸린 가족) 중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를 가려내 지역의보에 가입시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법 등으로 의료보험 재정수입을 늘리고, 환자 본인 부담금 인상, 의료수가 인상 뒤의 인하조치, 보험 혜택축소 등 대책을 내놓았다는 데도 이 정도라는 것이 金교수의 주장이다.
金교수는 2000년 7월1일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나타난 온갖 재정상의 문제점들을 수치화해서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기자에게 건넨 메모를 소개하면 이렇다.
국민 부담 증가 13조원
<첫째, 1977년 의료보험 실시 이래 의료보험조합이 20여 년 간 쌓아놓은 법정준비금이 1997년 말 현재 3조7855억원이었으나 金大中 정부가 집권한 지 4년도 되지 않아서 몽땅 소진했다. 법정준비금이란 자연재해, 질병의 유행, 경제적 불황 등으로 보험료를 받지 못할 사태에 대비해 연간 급여비(공단이 병원에 내는 진료비)의 50%를 적립하도록 법률로 의무화한 돈이다.
둘째, 지역의보의 보험료 징수율 저하와 인구의 노령화, 의료비 인상 등으로 만성적인 당기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國庫(국고) 지원을 시작했다. 국고지원액은 1998년 1조760억원, 1999년 1조1659억원, 2000년은 1조5529억원, 2001년도에는 2조6363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나중에는 본예산만으로 부족해 추경예산까지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02년도 예산을 2001년 수준으로 계산할 때 1998년부터 2002년까지 1997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추가로 국민이 부담한 예산은 4조904억원이다.
셋째,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에 의거 「2000년 12월 말일까지 의료수가(진료비 단가)를 인상할 수 없다」는 법률 조항에도 불구하고 2000년 9월1일자로 不法으로 의료수가를 6.5% 인상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7801억원의 의료비를 추가 부담했다. 2000년 9월1일부터 2002년 말까지 계산하면 추가부담액은 1조7552억원이 된다.
넷째, 2001년도 6월부터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금을 사용하고 법정준비금까지 바닥이 나버리자 「건강보험공단」이 CP(기업어음)를 발행하여(이자율 4.6%내외) 진료비를 병원과 약국에 지불하고 있다. 2002년도 현재 이런 식으로 총 7조원 이상을 금융차입했고, 차입액과 이자를 매월 국민이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지원금으로 갚아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2000년 말까지 차입액을 이자와 합쳐보면 2조7000억원 정도가 된다.
다섯째, 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확대, 본인부담금 상향조정, 금융차입 등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2002년 3월부터 12월까지 담배 한 갑당 150원의 의료보험 부담금을 부과해서 진료비를 조달해 결국 5500억원을 국민부담으로 안겼다>
金교수는 『金大中 정부는 의료정책 실패로 국민(의보 가입자)에게 현금으로 안겨준 추가부담 12조881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면서 『가입인구를 4600만으로 계산하면 국민 1인당 28만원씩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날이 올라가는 보험료의 인상, 직장보험 가입자의 부양가족에게 새로운 보험료 부과, 보험적용 약품 축소, 보험적용 일수 단축, 환자의 본인부담금 인상, 병원을 오가는 막대한 간접비용의 발생 등을 별개로 하더라도 순수 현금으로 국민에게 준 부담은 보상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블랙 홀
이에 대해 통합론의 대부격인 車興奉(차흥봉) 한림大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金교수가) 어떤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문제는 나보다는 중앙大 金淵明(김연명) 교수, 서울大 의대 金容益(김용익) 교수, 원광大 李光粲(이광찬) 교수 등에게 묻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복지부 장관 재직 시절, 金鍾大 실장을 직권 면직한 이유에 대해 묻자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그것을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金교수는 『金大中 정부는 의료보험을 통합하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醫藥분업을 실시해 국민 부담을 늘리고 국가 재정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Black Hole)을 만들었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의료보험의 판을 새로 짜 모든 국가 에너지가 이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金교수는 1947년 慶北 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326번지에서 金永培(김영배, 1988년 작고)씨와 權黑己(권흑기·78) 여사와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만주사변에도 종군한 사진작가였고, 祖父(金東燮)는 농사를 지어 큰할아버지(金周燁)와 함께 독립군 軍資金(군자금)을 댔다고 한다.
그는 예천에서 초등학교(용문국교)를 나온 뒤 대구 계성중을 거쳐 계성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시골 출신으로 陸士(육사)에 가라는 고모부의 권유도 있었지만 「농업이 똥지게나 져서 나라가 발전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農大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高3 졸업반이던 어느 날, 신문에 부정부패 등으로 구속되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정부가 뭐고 정치가 뭐냐」는 생각에 진로를 農大에서 정치학과로 바꾼다.
農大를 지망한 시골 소년
農大를 진학하기 위해 理科班에서 공부한 그는 文科 과목만 시험을 보는 정치학과 시험에서 동료 수험생들과 경쟁이 되질 못했다. 그는 再修(재수)를 거쳐 이듬해 14대1의 경쟁을 뚫고 서울大 정치학과에 합격한다.
金교수는 대학 1~2학년 때 데모하다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정치학도로서 1968년 공화당 부정선거에 맞서 示威(시위)에 참여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무난한 대학생활을 한 편이었다. 당시 정치학과 출신들은 국영기업체, 신문사, 대기업체, 한국은행 등에 취직을 했다. 그는 私기업은 연고 채용으로 사람을 뽑기 때문에 공정하게 경쟁해서 입사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公職(공직)이 아니겠느냐는 판단으로 행정고시에 응시하기로 했다.
대학 3학년말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 1년 남짓 공부했다. 정치학과 동기인 李始鍾(이시종) 現 충주시장, 河龍出(하용출) 서울大 외교학과 교수 등 세 사람이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함께 응시했다.
2차 시험 때의 일이다. 1교시 憲法(헌법) 시험이 어렵게 출제됐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들 세 사람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飯酒(반주)를 겸해 막걸리 두 되를 나눠 마셨다. 그러나 2교시 行政法(행정법) 시험은 醉中(취중)에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답을 쉽게 써냈다. 두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국 180명을 선발한 그 시험(1971년)에서 세 사람 모두 합격했다.
그의 결혼 사연은 불교에서 말하는 因緣(인연)의 결과다. 동갑내기 부인(盧壽均)은 계성고와 같은 재단인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했다.
『고3이 되던 겨울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때였어요. 독서실에서 여자들 한 패가 자기들끼리 수학문제를 푸는데 어려웠던지 독서실 총무에게 「남학생 중에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답니다. 총무가 저를 지목했고 집사람이 여학생 대표로 제게 와서 순열 조합의 증명문제를 물어봤어요. 얼마 후 그 여학생들이 연락을 해왔는데 풀어준 문제가 시험에 나와 다 맞았다면서 빵을 사주었어요. 그리고는 소식이 끊겼지요』
그러나 그들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계명大에 진학한 부인이 평소 잘 아는 金교수의 고교 2년 후배인 金正培(김정배·서울大 사학과 졸) 現 기호일보 편집국장을 통해 『혹시 金鍾大란 사람이 서울大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수소문해 극적으로 再會하게 된다. 두 사람은 1973년 金교수가 조달청 사무관으로 근무할 때 결혼식을 올렸다.
「애송이 사무관」의 좌천
金교수는 1972년 12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도 내무부, 재무부, 상공부, 경제기획원 등 소위 「끗발」이 있는 부서로 사람이 몰렸다. 당시는 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던 시기였기에 高試 합격자들은 成績(성적)에 의해 부서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배치된 곳은 철도청. 그러나 金교수는 시력이 좋지 않아 철도청 근무가 불가능했다. 철도역장을 하려면 信號(신호)를 잘 보아야 하기 때문에 눈이 좋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졸지에 대기병 신세가 됐다. 1972년 12월, 조달청으로 가라는 인사명령을 받았다. 조달청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부정부패로 무더기로 잡혀가는 바람에 엄청난 수의 缺員(결원)이 생긴 것이었다.
조달청에 근무한 것은 2년6개월 남짓. 그러나 金교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 공직생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첫 발령을 받은 곳은 내자국 내자기획과. 돈으로 물품을 구입하는 곳이 아닌 사업 플랜을 짜는 기획부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곧 내자1과로 전보돼 구매계약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내자1과는 電線, 시멘트, 전자 계산기 등의 구매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시멘트 품귀 파동이 일어났던 시기라 조달청에서의 물자 배정업무가 중요했다. 시멘트 우선 배정을 바라는 업자와 이를 둘러싼 검은돈 거래 등 보이지 않는 비리가 성행할 때였다. 그래서 흔히 내자1과를 조달청內 「要職(요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내자1과에서 6개월 만에 갑자기 閑職(한직)으로 여겨지는 물자조정과로 갔다. 당시 실세인 K씨의 인척인 국무총리실 조정관 P씨가 자신의 형이 조달청에 납품하는 정부 양곡 포대를 제때 납품하지 못한 데 대한 遲滯償金(지체상금) 1억원을 면제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조달청에서는 당시 약정대로 시행되지 않은 계약건에 대해서는 적절한 손해배상금을 요구하고 있었다.
계약 당사자인 조정관 P씨의 형은 양곡포대의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수출국인 외국 부두노동자의 파업으로 제때 국내 반입이 안 돼서 그랬다는 것이다. 조달청장도 『면제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金사무관은 지체상금의 면제규정이 天災地變(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파업은 천재지변이 아니며 파업으로 지체상금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면 국가와의 계약은 누가 지키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곧 찬바람 나는 자리인 물자국 물자조정과로 옮겨졌다.
정부 물자의 수급계획을 마련하는 물자조정과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경북 高靈(고령) 출신으로 경북大 의대를 나온 육군 준장 출신의 丁海植(정해식) 청장을 만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청 직원들이 직접 파악해 공급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의욕은 좋았으나 인력운용上 불가능한 청장의 강경한 지시에 아무도 말을 못 하고 끙끙 않기만 했다.
廳長의 지시에 도전
金사무관은 어느 날 보고하러 들어갔다가 丁청장을 獨對(독대)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丁청장에게 조달청이 그 업무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했다. 젊은 사무관의 당돌한 의견 개진을 듣고 있던 丁청장은 빙긋이 웃으며 『그런 문제점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다루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1976년 그는 보건사회부가 의료보험을 맡아서 일할 젊은 사무관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보사부로 전출을 희망한다. 정책 가운데서 사회보장 업무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사부에는 申鉉碻(신현확)씨가 장관으로 있었다.
보사부는 그의 희망을 받아들여 조달청장에게 「割愛요청(타부서에 인력 요청을 하는 것)」을 했다. 그러나 丁청장은 申장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丁청장에게 잘 보인 게 禍根(화근)이었다.
결국 丁청장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申장관이 丁청장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건 끝에 金사무관은 1976년 11월 보사부와 인연을 맺게 된다. 丁청장은 金사무관을 떠나보내면서 총무과장에게 승진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규정상 3년이 지나야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2년6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은 그는 규정상 승진이 어려웠다. 丁청장은 연금기획과에서 일하고 있던 그를 불러 표창장을 주었다. 보사부에서 빨리 승진하라며 날짜를 소급해서 표창장을 준 것이다. 이 덕분인지 그는 1977년 3월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서기관으로 승진한다.
장마에 집 떠내려가도 몰라
年金기획과의 주된 업무는 年金이 아닌 의료보험에 관한 것이었다. 당초 연금기획과에서는 국민연금제도를 맡아보기로 돼 있었는데 「오일 쇼크」로 그 시행이 보류되면서 곧바로 의료보험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의료보험이 1977년 7월1일 시행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불과 6~7개월의 시간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처음 도입하는 제도라 시행 착오도 많았고, 문제점 보완을 위해 金서기관 등 보사부 직원들은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당시 보사부는 광화문 제1청사에 있었다. 그날도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연금기획과 직원들과 함께 더위를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업무에 열중하다 보니 밖에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제사 집 걱정이 됐던 金서기관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경기도 안양 만안교 근처의 셋방으로 향했다.
광화문에는 차가 다니지 않아 서울역까지 걸어갔고, 서울역에 도착해 보니 안양행 노선버스도 끊긴 상태였다. 설상가상 택시비도 없어 밤 10시경부터 빗길을 걸어서 이튿날 새벽에 안양에 도착해 보니 집이 보이지 않았다. 집은 家財道具(가재도구) 하나 남기지 않고 비에 쓸려 내려갔다. 부인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인근 중국음식점 2층에 대피해 있었다. 金교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집이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가족들의 安危(안위)를 뒤로 한 채 돌본 의료보험제도였기에 의료보험이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그때 일이 떠올라 더욱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이던 때 일어난 대한안경사협회 金品 로비사건을 보고 공직자는 「칼날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당시 안경사협회의 로비 초점은 국민의 眼(안) 보건을 위해서는 안경렌즈뿐 아니라 안경테도 안경사만이 취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의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복지부 장관 부인이 구속됐고, 공직자로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1996년 9월경.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텔레비전 앞에 대한안경사협회 회장이 보낸 두툼한 등기우편물이 놓여 있었다. 무엇인지 궁금해 그 우편물을 뜯어 보았더니 10만원권 상품권이 20여 장 들어 있었다.
「업무상 관련이 없는 나에게 이 정도면 우리 복지부 간부와 담당 직원들에게는 상당한 로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해 소관 업무부서인 의정국 의료정책과장에게 『안경사협회에서 집으로 상품권을 보내왔는데, 이것을 안경사협회에 돌려주고 영수증을 꼭 받아두십시오』라고 일렀다.
예상했던 대로 국장, 과장 등 여러 사람에게도 상품권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장관은 안경사협회에 직무감사를 지시했고, 金교수는 1996년 10월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달 후인 11월경, 로비사건이 터지면서 상품권 로비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검찰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인 P씨가 안경사협회장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1억7000만원을 수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그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자 그의 祖父인 金東燮(김동섭) 선생이 『공직자는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생활이니 항상 正道(정도)를 가라』고 한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1980년 2월11일 당시 陳懿鍾(진의종) 보사부 장관의 命으로 청와대에 정무비서실 행정관으로 들어가 1980년 8월15일 全斗煥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6개월간 崔圭夏 대통령을 모셨다.
그가 청와대에 있던 시절은 10·26 사태 이후 3金이 각축하고 있던 소위 「안개정국 시절」이었다. 新군부에 의해 12·12 사건이 발생한 지 몇 달 지난 뒤였다. 5·17이 일어나자 세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청와대로 보고하러 오는 사람은 없었고, 보고 행렬은 당시 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몰리고 있었습니다』
3개월 정도 특별한 일 없이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던 그는, 全대통령 취임 이후 金有厚(김유후) 법무비서관으로부터 청와대에 계속 근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그때 청와대 법무 보사 비서관실 위층인 3층 회의실에는 당시 5共 실세였던 許和平(허화평), 許三守(허삼수), 李鶴捧(이학봉)씨 등이 들어와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활기가 여간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하, 이것이 권력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는 全대통령에 대해서 『정확하게 실무자들이 설명하고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분』이라고 평했다.
1982년 11월2일, 오후 3시경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보험 통합에 관한 보고 회의가 열렸다. 일명 「청와대 논쟁」이었다. 黨과 정부 측에서는 민정당 李鍾贊(이종찬) 원내총무, 崔永喆(최영철) 국회 보사위원장, 金正禮 보사부 장관이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보고를 했다.
金鍾大 실장의 「거부권」
보고 후 全대통령은 金泰鎬(김태호) 정무제2수석과 尹成泰(윤성태) 비서관에게 이에 대한 검토보고를 하도록 했다. 당시 행정관(서기관)으로서 尹비서관을 모시고 있던 金鍾大씨는 검토보고 자료를 작성했다. 당과 비서실 兩者(양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全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 검토보고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구구절절 맞는 얘기 아닙니까. 黨에서 공부 좀 더 해요』라면서 통합 일원화에 대한 논의를 『유보하라』고 했다. 이리하여 1983년부터 醫保통합에 대한 논의는 표면적으로 잠잠해졌다.
그러나 1988년 盧대통령이 취임해서도 보험통합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金潤煥(김윤환) 원내총무는 『중간평가 때 표를 얻어야 하니까』라고 했고, 의사협회 회장 출신인 文太俊(문태준) 당시 보사부 장관은 『통합은 안 된다』고 버텼다. 與小野大(여소야대) 시절인 1989년 3월9일, 민정당, 민주당, 평민당, 신민주공화당은 통합법안인 국민의료보험법(그 전엔 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는 당시 文장관에 의해 1989년 1월 보사부 공보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통합의료보험법의 핵심 내용과 문제점에 대해 사회보험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출입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튿날부터 都下(도하) 신문 紙上에 임금 근로자의 손해 등을 들어 「통합을 반대한다」는 기사가 연일 게재됐고, 통합의 문제점이 社說(사설)을 통해 지적되기에 이른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1989년 3월15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했다. 盧대통령은 3월22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野黨 단독 醫保통합안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시 보사부內에서는 「盧泰愚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金鍾大 공보관 거부권」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도 흘러나왔다.
『국회가 국민 의료보험법안을 통과시킬 때도 盧대통령은 정부 방침을 실무자들에게조차 정해주지 않았어요. 언론에서 「봉급생활자-정직한 자, 봉 된다」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때서야 거부권을 행사할 만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 그는 보사부 복지정책실장이었다. 金대통령은 국민의료보험 통합에 대해 4당 합의를 한 사람이다. 1997년 8월 대통령 선거전략 차원에서 의료보험 통합 논의가 다시 전면에 대두한다. 당시 신한국당에서 통합법안인 국민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發議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 H의원이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의 金大中 후보가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의료보험 통합을 제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신한국당이 먼저 선수를 쳐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만이라도 통합하는 法案(법안)을 발의하여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논거였다.
1997년 10월30일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이 통합되었다(재정은 분리). 당시 그는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으로 의료보험 통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보험의 본질을 잘 몰라 국민에게 해악을 끼친 지도자이다』
1997년 金大中 후보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大보험의 통합을 公約으로 내세웠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國庫(국고) 지원 없이 보험을 운영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국고를 교육이나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의료보험 1차 통합은 1998년 10월1일 이미 시작됐다. 1999년 초에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해 2001년 1월1일 직장의료보험까지 완전 통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법은 시행도 하기 전에 改正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그 시행을 6개월 연기했다. 국민적 저항이 예상 밖으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朱良子(주양자) 장관이 부임해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해 1998년 3월25일 金大中 정부에서 또다시 기획관리실장 보직을 받았다.
『金대통령은 野黨이라는 범주에서 의료보험 통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검토했어야 합니다. 기획관리실장으로 옆에서 보니 보험에 대해 껍데기만 알고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다만 들은 것을 그럴 듯하게 잘 組合(조합)해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견해로는 의료보험에 가장 큰 害惡(해악)을 끼친 지도자입니다』
―직접 모신 보사부 장관들 중 最高(최고)와 最惡(최악)을 꼽아 주십시오.
『(웃으며) 最惡도 있긴 하지만 말하긴 곤란하고 最高만 말하지요. 申鉉碻(신현확) 장관, 李海元(이해원) 장관, 金鍾仁(김종인) 장관이 훌륭한 분들입니다. 申장관은 자유당 시절부터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간여한 분이라서 그런지 「福祉(복지)와 經濟(경제)는 表裏(표리)의 관계에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실 만큼 실물 경제에 대한 경험도 풍부한 분이었습니다.
李장관은 1988년 1월1일 全국민을 상대로 한 郡단위 농어촌지역 의료보험을 실시한 보험의 시스템을 만든 분입니다. 公私가 분명한 분입니다. 金장관도 통이 크고, 합리적인 개혁주의자라고 생각됩니다』
金교수는 복지부 공보관을 지낸 경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도 복지부의 업무 특성에 대해 잘 안다. 그가 설명하는 복지부는 이렇다.
『길거리에 보이는 간판의 60~70%가 복지부의 소관 업무일 정도로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마치 백화점 업무처럼 장애인, 영세민, 제약회사, 병ㆍ의원, 약ㆍ식품 제조, 음식, 국민연금, 노인, 여성, 어린이 등과 관련되는 업무가 限(한)도 없이 많습니다』
복지부에는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약사, 치과의사와 치과의료기사, 미용사와 피부미용사, 안경사와 안과의사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직종이 10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복지부內에는 현재 통합 반대론자와 통합론자로 兩分돼 있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무자들은 의료보험 통합이 안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모든 복지부 업무를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판단해 놓고 잘 안 되면 실무자들을 문책하고 「바보」로 만드니까 복지부 직원들의 士氣가 말이 아닙니다. 한두 명의 「해바라기」들 때문에 복지부 공무원들이 더 이상 희생당해서는 안 됩니다』
―醫藥(의약)분업도 의료보험 통합과 마찬가지로 시행이 잘못된 것입니까.
『의약분업을 실시하려는 趣旨(취지)는 옳습니다. 즉 의사는 診斷(진단)만 하고, 약사는 調劑(조제)만 한다는 데는 아무런 반대가 없었어요. 다만 의약분업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편리하게, 부담이 안 되게, 효과적으로 하느냐의 문제였지요. 지금 우리 의약분업은 이것을 하나도 만족 못 시켜요. 이 병원에서 진료받고 저 약국으로 가서 약을 타야 하고, 항생제의 誤濫用(오남용)은 늘고, 藥은 더 비싼 것을 사용하게 돼 부담이 늘고…. 이건 의약분업이 아닙니다』
―의료보험 재정 파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책임론이 대두될 겁니다. 모임에 나가보면 아우성들이에요. 의료보험 통합은 눈에 보이는 정책의 실패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보다 고통의 원인에 대한 책임 규명이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診斷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판단은 배제돼야 하고 보험 정신과 원리에 입각해서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겁니다. 基底(기저)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라는 國家理念이 꼭 들어가야 하고요. 이것만 제대로 되면 의료보험 문제의 절반은 풀린 겁니다. 그 다음은 行政의 기술일 거고요』
『난 거꾸로 사는 사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고 획일적인 것은 전체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위해 하나는 희생되도 좋다면 이것은 권위주의이고 獨善(독선)이죠.
오늘날 보수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만, 이 보수는 도덕성을 갖춘 개혁적 보수가 돼야 합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가 守舊, 反動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정부가 이런 기본적 인간의 이념 철학과 배치되는 의료보험 통합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必敗(필패)」의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이 정부의 실패는 이러한 이념과 철학에 모순되는 정책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기획관리실장 7년, 최연소 과장, 최연소 국장, 네 번의 좌천, 공무원으로서 최초의 직권 면직 기록 등 보건복지부의 각종 榮辱(영욕)의 기록을 갖고 있는 金교수.
金교수는 요즘도 아침 5시경에 일어나면 108배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상을 시작한다. 그가 公職생활 중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空(공)의 정신」이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해요.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을 비운 상태, 즉 空의 상태라야 공정한 결정이 나온다고 봅니다. 바로 中庸(중용)의 철학이지요. 의료보험도 서로 다른 두 개를 克服(극복)하고 包容(포용)해서 승화시켜 갈 수 있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바로 中庸의 철학입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사찰여행」이다. 『사찰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사찰과 관련한 책을 하나 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배웠는데 공직 생활하는 동안 餘力(여력)이 미치질 않더군요』
1남1녀를 둔 그는 얼마 전 가족들과 2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는 그의 2년치 연금 1000만원으로 마련했다. 『薄俸(박봉)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길을 가고 싶지 않다』면서 行試를 포기하고 증권회사에 입사한 아들은 떼어놓고, 디자이너인 딸을 여행 가이드 삼아 대동했다. 복지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수많은 「시찰」 명목의 해외여행 기회를 날려버리고, 결국 公職에서 물러난 뒤 연금을 모아 여행을 하는 자신을 가리켜 그는 『난 거꾸로 사는 사람』이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