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式을 완전 소각하고 국유화했었어야
호미로 막으려다가 가래로도 못 막게 되다!
호미로 막으려다가 가래로도 못 막게 되다!
제일은행은 公的자금 먹는 하마
지난 8월16일 미국 뉴브리지 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은 2000년 6월 말 기준 신규 부실여신을 3조5315억원으로 분류하고 이에 대하여 예금보험공사가 장부가액대로 매입하거나 부실여신의 75%에 상당하는 2조6624억원의 貸損充當金(대손충당금·회수 불능 추산 채권액)을 적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정부는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제일은행에 투입된 公的자금의 누계는 12조3000억원(회수액 4조5000억원을 차감한 투입 잔액은 7조8000억원)인데 여기에 3조5000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면 투입누계는 15조8000억원이 되고 2002년 말까지 추가 투입예상액 1조5000억원을 합치면 총 투입 누계는 17조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연말 정부가 제일은행 주식의 51% 매각대금으로 뉴브리지 캐피털로부터 받은 5000억원과 公的자금 조성총액 64조원에 비교하여 볼 때 왜 이렇게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야 하고, 투입한 公的자금을 얼마나 회수할지가 걱정된다.
이렇게 巨金을 투입하고 있는 제일은행에 대하여 신문들은 「돈 먹는 河馬(하마)」, 「血稅(혈세) 먹는 하마」, 「公돈 먹는 공룡」으로 비유하면서 당초 기대했던 선진 금융기법이 소개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투입자금의 회수전망도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어 헐값 賣却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일은행과 함께 해외매각을 추진하던 서울은행은 홍콩상하이은행(HSBC)과의 매각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도이체방크의 경영지원을 받아 독자생존의 길을 가고 있는데 여기에 투입된 公的자금 4조8000억원을 생각할 때 논란의 소지는 더욱 크다.
이렇게 거액의 公的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23일 정부 보유주식 51%를 뉴브리지 캐피털에 5000억원에 매각하면서 앞으로 2년간(워크아웃 여신은 3년간) 발생하는 부실여신을 정부가 되사주거나 貸損充當金을 대신 적립하여 주기로 한 풋백옵션(Put-back Option)을 적용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풋백옵션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에 매수청구를 한 부실여신액의 내역을 보면 ▲大宇 2조127억원 ▲大宇 이외 워크아웃 9283억원 ▲화의 및 법정관리 2936억원 ▲새 자산 건전성 분류 기준에 따른 충당금 적립대상 2969억원 등이다. 예금보험공사는 2조60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기보다 3조5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장부가격으로 매입하여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봉을 잡았나?
1998년이 저무는 12월31일 정부가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과 제일은행 매각에 관한 양해각서(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교환하고 나서 뉴브리지 캐피털측의 무리한 요구로 인수협상이 1년을 끌면서 난항을 거듭했다.
이때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왜 하필이면 뉴브리지냐』 의문을 제기하고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뉴브리지에 제일은행을 넘겨줄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제일은행을 청산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IMF와 IBRD 관계자들조차 『뉴브리지가 봉을 잡았다』고 비꼬았다는 후문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때 정부의 입장은 『MOU 교환이 성급하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뉴브리지밖에 없었고 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고 『정부가 IMF와 무조건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매각하겠다고 합의한 것이 협상전략상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제일은행에 대한 헐값매각 논란은 시작되었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어떤 회사이고 과연 봉을 잡은 것인가?
금융감독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뉴브리지 캐피털은 미국의 투자회사인 텍사스 퍼시픽 그룹(Texas Pacific Group)과 리처드 C 블룸 앤 어소시에이츠(Richard C Blum & Associates)가 합작 투자한 투자전문회사로서 100억 달러의 자산을 투자하여 아메리칸 세이빙 뱅크, 뱅크 아메리카, 노스웨스트, 콘티넨탈, 델몬트, 베링거 와인 등 40여 개의 회사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에서는 1980년대 말 미국 뱅크 아메리카와 아메리칸 세이빙 뱅크를 인수하여 굿 뱅크-배드 뱅크(Good Bank-Bad Bank)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여 정상화시킨 실적이 있다고 하였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과연 봉을 잡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정상화한 후 소유지분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에서 나온다.
제일은행이 미국 투자회사에 팔리는 운명이 된 것은 한보철강의 부도에서부터 起亞자동차의 부도까지 겹치면서 거액의 부실채권이 발생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지난해 부도가 난 大宇그룹까지 합쳐 최근의 3대 巨額(거액) 부도기업은 모두 제일은행이 主채권은행이니 「부실 제1」 은행이 되어버렸다.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이 부도가 난 1997년 상반기에 3500억원의 적자를 낸데다가 起亞자동차가 부도나면서 부실여신은 총 여신액의 16.7%인 4조5187억원이 되어 1997년에 1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자 국내에서는 예금이 이탈하고 해외에서는 차입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독자적으로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7월 들어 한국은행에 3조원 가량의 특별융자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97년 9월4일에 한국은행은 年利(연리) 8%의 유동성 지원자금 1조원을 특별 융자하게 되었다.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계속된 대기업 부도의 여파로 우리 금융기관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져 해외 장기차입은 1997년 봄부터 사실상 끊어졌는데 10월 들어 단기차입마저 중단되고 株價도 폭락하여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닥치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11월19일 姜慶植 부총리가 물러나고 林昌烈 부총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1조로 막으려던 제일은행
대기업의 계속된 부도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금융시장은 소용돌이 치고 해외 단기차입도 막혀 8월부터는 정부의 외환보유고로 대외지급을 메워나갔으나 11월 들어 이것도 어렵게 되었다.
姜慶植 부총리는 물러나기 직전 11월16일 IMF의 캉드쉬 총재를 서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극비리에 만나 긴급자금지원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한 후, 2000년 말까지 3년간 금융기관 예금의 원리금을 전액 보장하고,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당초 3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고, 환율변동폭을 하루 2.25%에서 15%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합금융시장안정대책」을 마련하고 19일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인사발령으로 바뀌게 되어 林昌烈 부총리가 취임 다음날인 11월20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하고 그 다음날 21일 정부는 공시적으로 IMF에 200억 달러 긴급 유동성 조절자금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후 성업공사는 새로 조성된 「부실채권 정리기금」으로 제일은행의 부실채권 2조4256억원을 인수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의 계속된 부도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예금자들의 불안이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강도 높은 自救노력을 전제로 지분율 59%에 해당하는 1조1800억원을 출자하여 확실한 국영은행으로 만드는 방침을 정하게 되었다.
당초 한국은행 특별융자 1조원으로 막으려던 것이 3조5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게 되었다.
IMF, 『제일은행 문 닫아라』
정부가 공식적으로 IMF에 자금지원 요청을 한 이틀 후인 1997년 11월23일 일요일 오후에 토머스 발리노 과장 등 3명의 IMF 실무협의단 1진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실무협의에 들어가고 사흘 후 협의단장 휴버트 나이스 아시아국장이 완다 쳉 부국장과 함께 서울에 왔다.
이때 필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서 우리측 실무협의단장을 맡아 IMF측과 자금지원을 위한 정책프로그램을 협의하게 되었다.
IMF와의 협의에서 통화정책 등 巨視경제정책과 금융감독체계 및 중앙은행의 개편 등 금융개혁법에 대하여는 쉽게 합의되었지만,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전략과 株主와 채권자 간의 손실분담 원칙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서로 의견이 달랐다.
종합금융회사의 폐쇄에 대하여는 큰 의견 차이가 없었지만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퇴출과 株式소각 문제에 대하여는 서로 상당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 우리측은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경우 株式을 전액 소각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특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고 금융시장에 감당하기 힘든 혼란이 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IMF측은 처음부터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株式을 전액 소각하여 국유화한 다음 매각이나 청산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 株主와 경영진에 대한 강력한 경영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정부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출자하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대하였다.
특히 당시 株價가 액면가의 50%에도 못 미치는 2000원 전후였는데 액면대로 주당 5000원에 출자하는 데 대하여는 국민의 세금으로 기존의 株主를 보조하는 결과가 되어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IMF의 실무자들 간의 계속된 협의에서도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출자방침에 대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IMF협의단의 완다 쳉 부국장이 非공식적으로 한번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완다 쳉은 중국계 여자인데 나이스 국장이 가장 신임할 뿐 아니라 사실상 중요사항을 모두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우리 실무자들과 워낙 타협이 안 되어 필자를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필자는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먼저 그는 금융정책실의 실무자들과 협의가 너무 어렵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확립되어 있는 원칙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 금융은 일본의 제도를 이어받아 일본식의 금융관행에 익숙하여 그렇다는 일반론으로 해명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했다.
결손이 자본을 초과하여 정상경영이 어려운 금융기관을 정리할 때 자본금을 전액 소각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모두 받아들이는 국제적인 기준(Global Standard)인데 한국은 은행법의 최저자본금이 10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전액소각은 불가능하고 최저 1000억원은 잔존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은행의 영업권을 인정하고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 소액株主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株主 다음에 부실을 책임질 사람은 임원인데 이것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에 가장 경험이 많고 권위가 있는 IMF의 非상근 전문위원이고 스웨덴 중앙은행 부총재인 라스 하이켄스텐을 초빙하여 한국의 실무자들을 설득시키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때 필자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기준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설명하였다. 최저자본금 기준도 은행의 설립요건의 하나이지 계속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고, 자본금을 다 잠식한 경우 주식을 소각하거나 않거나 실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나 실무선에서 너무 강하게 반대하여왔고 이러한 방침이 언론에 보도된 후여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항이라,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없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약속을 하고 얘기를 끝냈다. 이 최저자본금 1000억원이 제일은행의 문제를 꼬이게 한 단초가 되었다.
스웨덴에서 불려온 하이켄스텐 부총재
1997년 12월3일 550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유동성조절자금의 지원과 정책프로그램을 IMF와 합의 발표하고 세부적인 정책사항을 실무자 간에 협의하고 있던 12월 중순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하이켄스텐 스웨덴 중앙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필자는 그에게 제일은행을 케이스로 놓고 그의 경험을 토대로 주식소각, 영업권, 소액주주 보호, 손실분담, 임직원의 정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방법을 설명 들었다.
▲株式소각에 대하여 스웨덴에서는 제일은행과 같은 경우 주식 전체를 소각하여 자본금을 제로(0)로 만들어 국유화하였고
▲영업권은 허가가 제한적일 때 발생하기 때문에 은행업을 대외에 개방하는 경우 영업권은 인정할 근거가 없고 제일은행의 경우 예금의 원리금보장 등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정상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더욱 영업권은 인정될 수 없고
▲소액주주는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전제로 주식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주식에 투자하였으므로 특별한 보호장치가 필요 없이 대주주와 같이 주식은 소각되어야 하고 만약 公的자금으로 소액주주가 보호된다면 일반국민의 세금으로 증권투자자들을 보조하는 결과가 되고
▲주주와 채권자들 간의 손실분담 원칙은, 제일은행의 손실은 주식소각을 통하여 주주가 제일 먼저 손실을 부담하고, 그래도 남는 손실은 우선권이 없는 후순위 채권을 소각하고, 다음은 일반 채권자, 그 다음은 담보 채권자 순으로 손실을 분담시키고
▲스웨덴에서 임원은 국유화와 「같은 시각에(on the same second)」 경찰이 몰아내고 새 경영진이 취임하여 은행을 매각하거나 청산하였고
▲직원도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새 경영진이나 매수자의 판단에 따라 정리해고하였다는 것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나중에 보고서로 적어 보냈다.
이러한 처리방법은 스웨덴에서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적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논란 끝에 1997년 12월22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貸損充當金을 100% 쌓고 다음해 6월 말까지 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영정상화 계획을 1998년 2월 말까지 제출하여 승인받도록 의결하고, 여기에는 임원 축소개편, 배당과 신규업무 금지, 해외점포 축소, 인력감축과 조직축소, 인건비 절감, 불요불급한 자산처분 등의 강도 높은 自救(자구)노력을 포함하도록 하였다.
1998년 1월15일 금융통화위원회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자본금 8200억원을 은행법의 최저자본금인 1000억원 즉 8.2대 1로 減資(감자)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정부에 대하여는 두 은행에 지분율 94%가 되는 1조5000억원씩 출자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1997년 1월30일 두 은행에 3조원의 출자가 이루어지고 이때까지 성업공사가 부실채권 관리기금으로 인수한 4조415억원과 추가로 지원된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2조1883억원(제일은행 1조4974억원, 서울은행 6999억원)을 합쳐 두 은행을 살리는 데 9조6000억원이 투입되었다.
정부는 제일은행에 대한 출자를 추진하기 위하여 IMF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였지만 「1000억원 최저자본금 기준」은 끝까지 고수하기 위하여 주식을 전액소각하지 못하고 8.2대 1로 減資한 것이 잘못 끼운 첫 단추가 되어 제일은행 처리에 말려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소각되어야 할 주식이 잔존함으로써 국민세금으로 증권투자를 보상하는 나쁜 선례도 남기게 되었다.
제일은행 매각은 「꽃놀이 패」
새 정부는 1998년 4월22일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정부지분을 매각할 주간사 기관으로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선정했다. 그리고 지분 100%의 인수를 요구한 영국의 HSBC와 지분 51%의 인수를 요구한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의 매각에 관한 협상을 한 결과 1998년 12월31일 인수대금은 자산실사를 거쳐 결정하기로 하고 제일은행 지분 51%를 뉴브리지 캐피털에 매각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뉴브리지측은 정부가 매입해야 할 부실채권을, 정부가 당초 예상한 4조5000억원보다 2조5000억원이 많은 7조로 주장함으로써 협상은 시간만 끌었다. 이러는 사이 제일은행의 경영은 더 어려워져 1999년 6월에 가서는 증자 4조2000억원과 부실채권 매입 1조1000억원을 합쳐 5조3000억원을 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제일은행의 자본금은 5조7000억원이 되어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한 한빛은행의 자본금 3조5000억원보다 더 많게 되었다.
지루하게 끌어오던 협상은 1999년 9월17일 투자약정서를 체결하게 되어 뉴브리지 캐피털은 정부 보유주식의 51%를 5000억원에 매입하고 기존여신 중 2년 이내(워크아웃 여신은 3년 이내)에 발생하는 부실채권에 대하여는 정부가 매입하거나 貸損充當金을 적립해 주는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2년간 진행된 제일은행 매각작업은 1999년이 저물어 가는 12월24일 투자약정서대로 본계약이 체결되고 일본계 미국인인 윌프레드 호리에가 행장으로 부임함으로써 1929년에 조선저축은행으로 출범한 제일은행은 70년 만에 미국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정부가 5조7000억원을 출자하고 51% 지분 2조9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5000억원에 팔았으니 공짜를 넘어 오히려 2조4000억원을 더 얹어주었고, 부실채권에 대하여 이미 투입했거나 앞으로 투입할 公的자금까지 계산하면 얼마를 더 얹어주는 셈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제일은행의 매각은 뉴브리지 캐피털에게는 부실이 많으면 우리 정부에 떠넘기고 부실이 적으면 내가 먹는 「꽃놀이 패」가 되었다.
주식 모두 소각했어야
정부가 IMF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식을 전액 소각하였다면 1조5000억의 출자 없이 1인 주주로 은행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고, 매각이 어렵거나 조건이 좋지 않으면 예금은 다른 은행으로 계약 이전하거나 예금보험공사가 대리 지급하게 하고 자산매각을 통하여 청산하였더라면 지금과 같이 15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두 개 이상의 은행과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1998년 6월29일에 동화은행 대동은행 동남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되었을 때 금융시장에 큰 문제가 없었다. 정부는 당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퇴출에 대하여 너무 겁을 먹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레임덕에 걸린 물러나는 정부와 1997년 12월18일의 대통령 선거로 새로 들어오는 정부가 교차하는 전환기에, 그것도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힘의 공백과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충분한 정보와 검토를 거치지 못하고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러한 정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게 된 것이다.
물러나는 정부는 힘도 빠지고 의욕도 없었으며 들어오는 정부는 의욕은 있었으나 시스템과 노하우가 없었다.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공무원 조직은 흔들렸고 정부 조직개편까지 있게 되어 공무원 사회의 동요는 방치되었다.
들어오는 정부는 정확한 정보와 훈련된 조직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책결정에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결과도 되었다.
아직까지 뉴브리지 캐피털과의 계약에 의하여 제일은행으로부터 인수해야 할 부실채권은 얼마나 되는지, 그동안 투입한 7조8000억원은 얼마가 회수될지 모르고 있다. 그저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여야 할 公的자금만 눈먼 돈같이 계속하여 투입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정부가 출자하지 않고 제일은행 주식을 모두 소각하여 국유화한 다음 매각하였다면 公的자금이 적게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리고 팔리지 않아 청산하였다면 금융시장은 소용돌이쳤겠지만 시장경쟁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경쟁력 있는 은행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자연도태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금융 구조조정이 가능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기업도 適者생존의 원칙에 따라 자연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조직과 질서가 재편되면서 이미 정해진 정책을 再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 인력과 정보는 혼돈 속에 표류함으로써 새 정부는 정책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착오된 것은 착오된 대로, 누락된 것은 누락된 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지금까지 제일은행에 투입된 公的자금의 누계는 12조3000억원(회수액 4조5000억원을 차감한 투입 잔액은 7조8000억원)인데 여기에 3조5000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면 투입누계는 15조8000억원이 되고 2002년 말까지 추가 투입예상액 1조5000억원을 합치면 총 투입 누계는 17조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연말 정부가 제일은행 주식의 51% 매각대금으로 뉴브리지 캐피털로부터 받은 5000억원과 公的자금 조성총액 64조원에 비교하여 볼 때 왜 이렇게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야 하고, 투입한 公的자금을 얼마나 회수할지가 걱정된다.
이렇게 巨金을 투입하고 있는 제일은행에 대하여 신문들은 「돈 먹는 河馬(하마)」, 「血稅(혈세) 먹는 하마」, 「公돈 먹는 공룡」으로 비유하면서 당초 기대했던 선진 금융기법이 소개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투입자금의 회수전망도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어 헐값 賣却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일은행과 함께 해외매각을 추진하던 서울은행은 홍콩상하이은행(HSBC)과의 매각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도이체방크의 경영지원을 받아 독자생존의 길을 가고 있는데 여기에 투입된 公的자금 4조8000억원을 생각할 때 논란의 소지는 더욱 크다.
이렇게 거액의 公的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23일 정부 보유주식 51%를 뉴브리지 캐피털에 5000억원에 매각하면서 앞으로 2년간(워크아웃 여신은 3년간) 발생하는 부실여신을 정부가 되사주거나 貸損充當金을 대신 적립하여 주기로 한 풋백옵션(Put-back Option)을 적용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풋백옵션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에 매수청구를 한 부실여신액의 내역을 보면 ▲大宇 2조127억원 ▲大宇 이외 워크아웃 9283억원 ▲화의 및 법정관리 2936억원 ▲새 자산 건전성 분류 기준에 따른 충당금 적립대상 2969억원 등이다. 예금보험공사는 2조60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기보다 3조5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장부가격으로 매입하여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봉을 잡았나?
1998년이 저무는 12월31일 정부가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과 제일은행 매각에 관한 양해각서(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교환하고 나서 뉴브리지 캐피털측의 무리한 요구로 인수협상이 1년을 끌면서 난항을 거듭했다.
이때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왜 하필이면 뉴브리지냐』 의문을 제기하고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뉴브리지에 제일은행을 넘겨줄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제일은행을 청산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IMF와 IBRD 관계자들조차 『뉴브리지가 봉을 잡았다』고 비꼬았다는 후문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때 정부의 입장은 『MOU 교환이 성급하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뉴브리지밖에 없었고 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고 『정부가 IMF와 무조건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매각하겠다고 합의한 것이 협상전략상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제일은행에 대한 헐값매각 논란은 시작되었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어떤 회사이고 과연 봉을 잡은 것인가?
금융감독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뉴브리지 캐피털은 미국의 투자회사인 텍사스 퍼시픽 그룹(Texas Pacific Group)과 리처드 C 블룸 앤 어소시에이츠(Richard C Blum & Associates)가 합작 투자한 투자전문회사로서 100억 달러의 자산을 투자하여 아메리칸 세이빙 뱅크, 뱅크 아메리카, 노스웨스트, 콘티넨탈, 델몬트, 베링거 와인 등 40여 개의 회사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에서는 1980년대 말 미국 뱅크 아메리카와 아메리칸 세이빙 뱅크를 인수하여 굿 뱅크-배드 뱅크(Good Bank-Bad Bank)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여 정상화시킨 실적이 있다고 하였다.
뉴브리지 캐피털은 과연 봉을 잡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정상화한 후 소유지분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에서 나온다.
제일은행이 미국 투자회사에 팔리는 운명이 된 것은 한보철강의 부도에서부터 起亞자동차의 부도까지 겹치면서 거액의 부실채권이 발생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지난해 부도가 난 大宇그룹까지 합쳐 최근의 3대 巨額(거액) 부도기업은 모두 제일은행이 主채권은행이니 「부실 제1」 은행이 되어버렸다.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이 부도가 난 1997년 상반기에 3500억원의 적자를 낸데다가 起亞자동차가 부도나면서 부실여신은 총 여신액의 16.7%인 4조5187억원이 되어 1997년에 1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자 국내에서는 예금이 이탈하고 해외에서는 차입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독자적으로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7월 들어 한국은행에 3조원 가량의 특별융자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97년 9월4일에 한국은행은 年利(연리) 8%의 유동성 지원자금 1조원을 특별 융자하게 되었다.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계속된 대기업 부도의 여파로 우리 금융기관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져 해외 장기차입은 1997년 봄부터 사실상 끊어졌는데 10월 들어 단기차입마저 중단되고 株價도 폭락하여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닥치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11월19일 姜慶植 부총리가 물러나고 林昌烈 부총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1조로 막으려던 제일은행
대기업의 계속된 부도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금융시장은 소용돌이 치고 해외 단기차입도 막혀 8월부터는 정부의 외환보유고로 대외지급을 메워나갔으나 11월 들어 이것도 어렵게 되었다.
姜慶植 부총리는 물러나기 직전 11월16일 IMF의 캉드쉬 총재를 서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극비리에 만나 긴급자금지원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한 후, 2000년 말까지 3년간 금융기관 예금의 원리금을 전액 보장하고,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당초 3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고, 환율변동폭을 하루 2.25%에서 15%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합금융시장안정대책」을 마련하고 19일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인사발령으로 바뀌게 되어 林昌烈 부총리가 취임 다음날인 11월20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하고 그 다음날 21일 정부는 공시적으로 IMF에 200억 달러 긴급 유동성 조절자금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후 성업공사는 새로 조성된 「부실채권 정리기금」으로 제일은행의 부실채권 2조4256억원을 인수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의 계속된 부도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예금자들의 불안이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강도 높은 自救노력을 전제로 지분율 59%에 해당하는 1조1800억원을 출자하여 확실한 국영은행으로 만드는 방침을 정하게 되었다.
당초 한국은행 특별융자 1조원으로 막으려던 것이 3조5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게 되었다.
IMF, 『제일은행 문 닫아라』
정부가 공식적으로 IMF에 자금지원 요청을 한 이틀 후인 1997년 11월23일 일요일 오후에 토머스 발리노 과장 등 3명의 IMF 실무협의단 1진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실무협의에 들어가고 사흘 후 협의단장 휴버트 나이스 아시아국장이 완다 쳉 부국장과 함께 서울에 왔다.
이때 필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서 우리측 실무협의단장을 맡아 IMF측과 자금지원을 위한 정책프로그램을 협의하게 되었다.
IMF와의 협의에서 통화정책 등 巨視경제정책과 금융감독체계 및 중앙은행의 개편 등 금융개혁법에 대하여는 쉽게 합의되었지만,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전략과 株主와 채권자 간의 손실분담 원칙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서로 의견이 달랐다.
종합금융회사의 폐쇄에 대하여는 큰 의견 차이가 없었지만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퇴출과 株式소각 문제에 대하여는 서로 상당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 우리측은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경우 株式을 전액 소각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특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고 금융시장에 감당하기 힘든 혼란이 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IMF측은 처음부터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株式을 전액 소각하여 국유화한 다음 매각이나 청산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 株主와 경영진에 대한 강력한 경영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정부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출자하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대하였다.
특히 당시 株價가 액면가의 50%에도 못 미치는 2000원 전후였는데 액면대로 주당 5000원에 출자하는 데 대하여는 국민의 세금으로 기존의 株主를 보조하는 결과가 되어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IMF의 실무자들 간의 계속된 협의에서도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한 출자방침에 대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IMF협의단의 완다 쳉 부국장이 非공식적으로 한번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완다 쳉은 중국계 여자인데 나이스 국장이 가장 신임할 뿐 아니라 사실상 중요사항을 모두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우리 실무자들과 워낙 타협이 안 되어 필자를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필자는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먼저 그는 금융정책실의 실무자들과 협의가 너무 어렵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확립되어 있는 원칙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 금융은 일본의 제도를 이어받아 일본식의 금융관행에 익숙하여 그렇다는 일반론으로 해명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했다.
결손이 자본을 초과하여 정상경영이 어려운 금융기관을 정리할 때 자본금을 전액 소각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모두 받아들이는 국제적인 기준(Global Standard)인데 한국은 은행법의 최저자본금이 10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전액소각은 불가능하고 최저 1000억원은 잔존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은행의 영업권을 인정하고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 소액株主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株主 다음에 부실을 책임질 사람은 임원인데 이것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에 가장 경험이 많고 권위가 있는 IMF의 非상근 전문위원이고 스웨덴 중앙은행 부총재인 라스 하이켄스텐을 초빙하여 한국의 실무자들을 설득시키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때 필자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기준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설명하였다. 최저자본금 기준도 은행의 설립요건의 하나이지 계속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고, 자본금을 다 잠식한 경우 주식을 소각하거나 않거나 실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나 실무선에서 너무 강하게 반대하여왔고 이러한 방침이 언론에 보도된 후여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항이라,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없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약속을 하고 얘기를 끝냈다. 이 최저자본금 1000억원이 제일은행의 문제를 꼬이게 한 단초가 되었다.
스웨덴에서 불려온 하이켄스텐 부총재
1997년 12월3일 550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유동성조절자금의 지원과 정책프로그램을 IMF와 합의 발표하고 세부적인 정책사항을 실무자 간에 협의하고 있던 12월 중순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하이켄스텐 스웨덴 중앙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필자는 그에게 제일은행을 케이스로 놓고 그의 경험을 토대로 주식소각, 영업권, 소액주주 보호, 손실분담, 임직원의 정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처리방법을 설명 들었다.
▲株式소각에 대하여 스웨덴에서는 제일은행과 같은 경우 주식 전체를 소각하여 자본금을 제로(0)로 만들어 국유화하였고
▲영업권은 허가가 제한적일 때 발생하기 때문에 은행업을 대외에 개방하는 경우 영업권은 인정할 근거가 없고 제일은행의 경우 예금의 원리금보장 등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정상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더욱 영업권은 인정될 수 없고
▲소액주주는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전제로 주식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주식에 투자하였으므로 특별한 보호장치가 필요 없이 대주주와 같이 주식은 소각되어야 하고 만약 公的자금으로 소액주주가 보호된다면 일반국민의 세금으로 증권투자자들을 보조하는 결과가 되고
▲주주와 채권자들 간의 손실분담 원칙은, 제일은행의 손실은 주식소각을 통하여 주주가 제일 먼저 손실을 부담하고, 그래도 남는 손실은 우선권이 없는 후순위 채권을 소각하고, 다음은 일반 채권자, 그 다음은 담보 채권자 순으로 손실을 분담시키고
▲스웨덴에서 임원은 국유화와 「같은 시각에(on the same second)」 경찰이 몰아내고 새 경영진이 취임하여 은행을 매각하거나 청산하였고
▲직원도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새 경영진이나 매수자의 판단에 따라 정리해고하였다는 것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나중에 보고서로 적어 보냈다.
이러한 처리방법은 스웨덴에서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적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논란 끝에 1997년 12월22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貸損充當金을 100% 쌓고 다음해 6월 말까지 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영정상화 계획을 1998년 2월 말까지 제출하여 승인받도록 의결하고, 여기에는 임원 축소개편, 배당과 신규업무 금지, 해외점포 축소, 인력감축과 조직축소, 인건비 절감, 불요불급한 자산처분 등의 강도 높은 自救(자구)노력을 포함하도록 하였다.
1998년 1월15일 금융통화위원회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하여 자본금 8200억원을 은행법의 최저자본금인 1000억원 즉 8.2대 1로 減資(감자)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정부에 대하여는 두 은행에 지분율 94%가 되는 1조5000억원씩 출자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1997년 1월30일 두 은행에 3조원의 출자가 이루어지고 이때까지 성업공사가 부실채권 관리기금으로 인수한 4조415억원과 추가로 지원된 한국은행의 특별융자 2조1883억원(제일은행 1조4974억원, 서울은행 6999억원)을 합쳐 두 은행을 살리는 데 9조6000억원이 투입되었다.
정부는 제일은행에 대한 출자를 추진하기 위하여 IMF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였지만 「1000억원 최저자본금 기준」은 끝까지 고수하기 위하여 주식을 전액소각하지 못하고 8.2대 1로 減資한 것이 잘못 끼운 첫 단추가 되어 제일은행 처리에 말려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소각되어야 할 주식이 잔존함으로써 국민세금으로 증권투자를 보상하는 나쁜 선례도 남기게 되었다.
제일은행 매각은 「꽃놀이 패」
새 정부는 1998년 4월22일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정부지분을 매각할 주간사 기관으로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선정했다. 그리고 지분 100%의 인수를 요구한 영국의 HSBC와 지분 51%의 인수를 요구한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의 매각에 관한 협상을 한 결과 1998년 12월31일 인수대금은 자산실사를 거쳐 결정하기로 하고 제일은행 지분 51%를 뉴브리지 캐피털에 매각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뉴브리지측은 정부가 매입해야 할 부실채권을, 정부가 당초 예상한 4조5000억원보다 2조5000억원이 많은 7조로 주장함으로써 협상은 시간만 끌었다. 이러는 사이 제일은행의 경영은 더 어려워져 1999년 6월에 가서는 증자 4조2000억원과 부실채권 매입 1조1000억원을 합쳐 5조3000억원을 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제일은행의 자본금은 5조7000억원이 되어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한 한빛은행의 자본금 3조5000억원보다 더 많게 되었다.
지루하게 끌어오던 협상은 1999년 9월17일 투자약정서를 체결하게 되어 뉴브리지 캐피털은 정부 보유주식의 51%를 5000억원에 매입하고 기존여신 중 2년 이내(워크아웃 여신은 3년 이내)에 발생하는 부실채권에 대하여는 정부가 매입하거나 貸損充當金을 적립해 주는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2년간 진행된 제일은행 매각작업은 1999년이 저물어 가는 12월24일 투자약정서대로 본계약이 체결되고 일본계 미국인인 윌프레드 호리에가 행장으로 부임함으로써 1929년에 조선저축은행으로 출범한 제일은행은 70년 만에 미국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정부가 5조7000억원을 출자하고 51% 지분 2조9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5000억원에 팔았으니 공짜를 넘어 오히려 2조4000억원을 더 얹어주었고, 부실채권에 대하여 이미 투입했거나 앞으로 투입할 公的자금까지 계산하면 얼마를 더 얹어주는 셈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제일은행의 매각은 뉴브리지 캐피털에게는 부실이 많으면 우리 정부에 떠넘기고 부실이 적으면 내가 먹는 「꽃놀이 패」가 되었다.
주식 모두 소각했어야
정부가 IMF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식을 전액 소각하였다면 1조5000억의 출자 없이 1인 주주로 은행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고, 매각이 어렵거나 조건이 좋지 않으면 예금은 다른 은행으로 계약 이전하거나 예금보험공사가 대리 지급하게 하고 자산매각을 통하여 청산하였더라면 지금과 같이 15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두 개 이상의 은행과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1998년 6월29일에 동화은행 대동은행 동남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되었을 때 금융시장에 큰 문제가 없었다. 정부는 당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퇴출에 대하여 너무 겁을 먹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레임덕에 걸린 물러나는 정부와 1997년 12월18일의 대통령 선거로 새로 들어오는 정부가 교차하는 전환기에, 그것도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힘의 공백과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충분한 정보와 검토를 거치지 못하고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러한 정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게 된 것이다.
물러나는 정부는 힘도 빠지고 의욕도 없었으며 들어오는 정부는 의욕은 있었으나 시스템과 노하우가 없었다.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공무원 조직은 흔들렸고 정부 조직개편까지 있게 되어 공무원 사회의 동요는 방치되었다.
들어오는 정부는 정확한 정보와 훈련된 조직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책결정에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결과도 되었다.
아직까지 뉴브리지 캐피털과의 계약에 의하여 제일은행으로부터 인수해야 할 부실채권은 얼마나 되는지, 그동안 투입한 7조8000억원은 얼마가 회수될지 모르고 있다. 그저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여야 할 公的자금만 눈먼 돈같이 계속하여 투입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정부가 출자하지 않고 제일은행 주식을 모두 소각하여 국유화한 다음 매각하였다면 公的자금이 적게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리고 팔리지 않아 청산하였다면 금융시장은 소용돌이쳤겠지만 시장경쟁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경쟁력 있는 은행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자연도태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금융 구조조정이 가능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기업도 適者생존의 원칙에 따라 자연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조직과 질서가 재편되면서 이미 정해진 정책을 再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 인력과 정보는 혼돈 속에 표류함으로써 새 정부는 정책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착오된 것은 착오된 대로, 누락된 것은 누락된 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