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가 최서해를 기리는 91주기 추모문화제가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7월 8일 오전 열렸다. 사진=정종배 시인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소설가 최서해(崔曙海)를 기리는 91주기 추모문화제가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7월 8일 오전 열렸다.
이번 추모문화제는 ‘서해 최학송 기념사업회’ 주최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주관으로 열렸다고 정종배 시인이 전해왔다.

최서해 문학비와 그의 작품집
서해 최학송(崔鶴松·1901~1932)은 소설가로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는다’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빈궁문학’의 선구자이다. 대표작으로 <탈출기>·<홍염(紅焰)>·<그믐달」>등이 있다. 1920년대 잡지 편집의 귀재였다. 본명은 학송. 일명 서해·설봉(雪峰)·풍년년(豊年年). 이명은 저곡(苧谷) 등이다.
정종배 시인에 따르면, 서해는 10세 전후부터 가난하고 맵고 짠 삶을 살았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많은 글은 읽었다. 편지로 춘원 이광수로부터 문학 수업을 받았다.



정종배 시인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서 대개 여명기 작가가 그랬듯이 시 소설 수필 평론 등 각 장르에 걸쳐 자기 문학 범위를 확대하려 했던 야심가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충실히 묘파하여 성실한 작가적 입장을 고수했다. 서해는 ‘1920년대 김동인·염상섭·현진건·나도향·전영택 등과 동렬에 위치해야 할 것’(곽근 문학평론가)이라 판단된다.
최서해는 1925년 2월 《조선문단》에 입사하여 이 잡지에 간도 체험을 생생하게 그린 <십삼원(拾參圓)>(1925. 2)·<탈출기>(1925. 3)·<살려는 사람들>(1925. 4) 등을 발표했다. 그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해 1929년까지 활동했으며, 1926년 KAPF 맹원이자 시인 조운의 누이 조분려와 재혼했다. 《현대평론》·《중외일보》 기자를 거쳐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일하다가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종배 시인의 말이다.
“최서해의 아들 ‘백’과 ‘택’은 1932년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서해의 고향 성진을 향해 북으로 갔다. 어머니가 죽고 뒤이어 할머니마저 운명하여 고아처럼 떠돌다, 8·15 해방되자 죽어도 영광 외가에 가서 죽자며 남으로 내려왔다. 영광 외가에 도착한 지 일주일만에 폐병을 앓던 ‘백’은 죽어 외가 선산에 묻었다. 외숙인 시조시인 ‘조운’마저 북으로 가버려 ‘택’도 1947년 다시 북으로 갔다. 현재 최서해의 유족은 없다.”
서해 최학송 유족들의 부재한 상황에서 서해의 묘 역시 무연고 묘로 취급받았다. 그러다 서울시시설관리공단 망우리공원 사무소 측이 200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묘역을 정비(2010년 정비 때는 이호일 제삼한강유통 부회장이 맡았다고 한다.)한 정 시인에게 묘지관리를 정식으로 맡겼다고 한다.
이후 정 시인의 제자를 중심으로 2012년 서해 최학송기념사업회(회장 곽근 동국대 명예교수)를 조직하였고, 2015년 (사)중랑문화연구소(이사장 남화창) 주관 최학송 83주기 추모제가 열리기 시작해 (재)수림문화재단(이사장 하정웅) 후원에 이어 2020년부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조명래)가 주관하여 추모문화제로 오늘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