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주최 2026 정시 합격 가능선 예측 및 지원전략 설명회를 찾은 학부모와 입시생들이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DB
“의대냐, 반도체냐.”
한국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의 진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랫동안 입시 서열의 정점은 이른바 ‘의치한약수’였다.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순으로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렸고, 그 아래 서울대 공대와 주요 공대가 자리 잡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고연봉과 성과급 규모가 알려지면서 반도체·AI·컴퓨터공학 계열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입시업계에서는 “최상위권 이과생들의 가치 판단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과거에는 안정성과 사회적 지위를 이유로 의대 선호가 압도적이었다면, 이제는 “글로벌 산업의 핵심 인재가 되면 의사보다 더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6학년도 기준 국내 첨단분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13개 대학 18개 학과 규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이 대학과 협약해 학생을 선발하고 등록금·장학금·취업을 연계하는 구조다.
대표적으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등이 있다. 지방 거점국립대 가운데서는 경북대가 운영하는 전자공학부·반도체특성화대학 사업도 주목받는다.
입시 결과를 보면 변화 흐름이 뚜렷하다. 주요 의대 합격선은 여전히 수능 백분위 99% 이상, 상위권 의대는 사실상 만점권으로 평가된다.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역시 98~99%대가 일반적이다. 반면 주요 반도체 계약학과와 AI·컴퓨터공학 특성화 학과는 대체로 97~98% 수준으로 분석된다. 불과 1~2% 차이지만 전국 수험생 기준으로는 극상위권 경쟁이다.
입시 관계자는 “지금 자연계 최상위권 흐름은 ‘의치한약수→반도체·AI 계약학과→서울대 공대 일반학과’ 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특히 반도체 계약학과는 모집 인원이 적고 대기업 취업이 사실상 보장된다는 점에서 체감 선호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의치한약수반' 깨지나
2026학년도 대학 정시 모집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7개 대기업과 연계된 16개 계약학과의 지원자 수는 총 247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지원자 수인 1787명과 비교하여 약 38.7%가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의약학계열 정시 지원자 수가 24.7% 감소한 것과 대조를 이루며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높은 선호도를 입증했다. 2026학년도 정시 전체 경쟁률은 12.77대 1을 기록하여 작년의 9.77대 1보다 크게 상승했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와 협약한 7개 대학 계약학과에 1290명이 지원하여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SK하이닉스 관련 3개 대학 계약학과에는 320명이 지원하여 12.7%의 증가율을 보였다. 개별 학과 중에서는 한양대 반도체공학과가 11.80대 1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9.00대 1, LG디스플레이와 연계된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가 7.00대 1 등의 순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안정적인 취업 보장으로 인해 주요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수시 내신 합격선이 학과 개설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2021학년도 3.1등급이었던 합격선이 2026학년도에는 1.47등급으로 대폭 상승했다. SK하이닉스와 협약한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또한 수시 합격선이 2.68등급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입시 현장에서는 기존의 최상위권 진로 공식인 '의치한약수'에 반도체를 더해 '의치한약수반'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반도체 학과의 위상이 높아졌다. 실제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정시 합격선은 국수탐 백분위 평균 96.67점으로 전년도의 95.33점보다 상승하며 최상위권 점수대를 형성하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위한 별도의 반을 운영하거나 컨설팅을 진행하는 등 의대와 견줄 만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경쟁률도 상승세다. 2026학년도 정시에서 대기업 계약학과 지원자는 전년 대비 38.7% 증가했다. 특히 올해 신설된 성균관대 삼성SDI 배터리공학과(12명 모집에 554명 지원, 46.17대 1)의 쏠림이 두드러졌으며, 삼성전자 연계 학과 지원자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로학원 데이터 기준으로 기업별 지원자는 삼성전자 연계(7개교) 1,290명으로 최다였고, SK하이닉스 연계(3개교)는 320명이었다. 증가율 면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설 성균관대 삼성SDI 배터리학과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상당수 학생은 원래 MIT·스탠퍼드 같은 최상위 공대나 컴퓨터과학과에 갈 수 있었던 인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4년 학부, 4년 의대, 이후 3~7년 수련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기회비용이다. 런던정경대 유영진 교수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미국 수련의 연봉은 연 6만5000달러 수준인 반면, 같은 시기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총보수는 30만달러를 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수련의는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밤샘 당직을 반복하지만, IT기업 종사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삶의 질을 동시에 누린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AI 반도체와 HBM 시장 호황으로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하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인재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의사만이 최상위 이과생의 목표는 아니다”라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변수도 있다. 의사는 경기 변동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지만 반도체 산업은 업황 사이클 영향을 크게 받는다. 몇 년마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고, 계약학과 상당수는 일정 기간 기업 의무 근무 조건도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고연봉만 보고 진학하기보다는 연구개발 적성과 산업 변화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교육계에서는 “의대 일극 체제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일부 균열을 보일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산업 구조 변화가 결국 대학 입시 지형까지 흔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