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2017년 초 탄핵정국 때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제하의 문건, 이른바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건의 작성 배경을 조사할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꾸려졌고 계엄 발동과 관련하여 국방부와 합참의 종합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기회에 국군기무사령부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계엄은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 행위이다. 따라서 정치를 배제한 계엄은 상상하기 힘들다.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한 지금의 논란도 국내 정치적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치’를 제외한 ‘제도로서의 계엄’, 특히 현행 계엄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헌법 제77조 제1항은 대통령에게 계엄선포권을 부여하면서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은 계엄법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계엄법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 현대사와 계엄
지금의 계엄제도와 계엄법은 100년 전 일본의 계엄제도를 그대로 본받은 것이다. 계엄(戒嚴)이란 단어부터, 경비계엄(警備戒嚴), 비상계엄(非常戒嚴)도 구 일본 계엄령(1882.8.5. 태정관 포고 제36호)의 임전지경(臨戰地境)과 합위지경(合圍地境)에서 따온 것이다.
필자 또래와 그 윗세대들은 계엄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계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 계엄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상흔과 굴곡진 모습을 만나게 된다. 계엄의 시행 과정에서 착오나 문제점도 많았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이러한 계엄이 몇 번 시행되었을까? 하나의 사건에서도 계엄이 여러 차례 선포 및 해제되기도 하고 계엄 지역이 계속 조정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계엄의 횟수는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건을 기준으로 계엄 선포 횟수를 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계엄이 선포된 것은 여수·순천 사건부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11회다(표 참조). 잠시 경비계엄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비상계엄이었다. 계엄이 가장 오래 지속된 경우는 6.25전쟁 때로서 약 25개월(이어진 공비 소탕작전까지 포함할 경우 46개월)이었으며 계엄기간이 가장 짧았던 것은 1964년 6.3 한·일협상 반대운동 때인 57일이었다. 계엄사령관은 예외 없이 육군 지휘관(육군참모총장, 육군 군수사령관 등)이었다. 계엄 지역을 보면 전국에 선포된 것이 6.25전쟁, 5.16군사정변, 10.26사건과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등 세 번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지역계엄이었다.
계엄법은 1949년 11월 급히 제정된 이후 1981년 4월 전부개정될 때까지 30년간 그 틀을 유지하였다. 그 후 몇 차례 일부개정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내용에는 변화가 없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계엄법은 40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동안 계엄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13년 7월 김재원 의원이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다가 이를 철회한 바 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⓵ 계엄 선포기간을 6개월로 하고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엄선포 규정을 준용하여 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⓶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할 때는 그 장(長)을 통하도록 한다.
⓷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이 행사하는 특별조치법 중 헌법에서 규정하지 아니한 거주이전 및 단체행동에 대한 권한을 삭제하도록 한다.
⓸ 계엄이 해제되어 업무가 평상으로 돌아간 경우 군사법원이 재판을 할 수 없도록 한다.
이 개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자진 철회되었다. 개정의 시급성도 부족하였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괜한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현행 계엄제도와 계엄법의 문제점
학계 일각에서는 현행 계엄제도의 재검토와 계엄법의 개정 필요성을 간간이 제기해 왔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매우 정교하게 수립되어 있는 오늘날, 계엄의 필요성과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 계엄이 마지막으로 해제된 1981년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행정, 사법, 군사제도는 현저히 발전되었다. 대통령과 국회의 역학 관계도 크게 변화하였으며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크게 성숙하였다. 인터넷, 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회 모든 부문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다. 우리 군도 문민통제하에서 ‘국민의 군대’로 지향하고 있다. 이제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 없이는 계엄의 선포와 유지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 지금의 계엄법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있다.
둘째, 계엄의 발동 요건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관련 규정만 놓고 보면 계엄선포권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계엄 관련 헌법 조항은 그대로 두면서 계엄법의 개정을 통하여 민주화된 계엄제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계엄사령관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엄이 시행되면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고 계엄사령관이 계엄 지역의 정부 부처를 지휘·감독하고, 국민의 기본권 일부를 제한하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계엄군이 치안 유지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 사무를 관장”하게 된다. 이는 계엄사령관에게 과도하게 포괄 위임한다는 문제와 계엄사령관이 이를 관장할 수 있겠느냐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넷째, 계엄사령관과 국방장관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고 군을 지휘·감독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엄이 발령되면 이러한 경우가 발생한다. 계엄법 제6조는 “전국을 계엄 지역으로 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국무총리도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계엄이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통치 행위로 보아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고 계엄사령관을 지휘·감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더라도 효과적인 지휘가 될지 의문이다.
다섯째, 정부부처와 계엄사령부의 기능과 역할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분화, 전문화되고 방대한 정부부처 업무를 계엄사령부가 지휘·감독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다. 능력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계엄사령부가 거대한 정부부처를 지휘·감독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계엄사령부가 행정기관을 지휘·감독하기 보다는 협업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섯째, 계엄선포 이전과 해제 이후의 민간인의 행위에 대한 군사법원의 관할에 관한 문제 등 헌법과의 관계에서 현행 계엄법은 몇 가지 중대한 법리적 문제가 있다. 위헌 소지가 있는 계엄법 조항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이 계엄법 개정 논의가 필요한 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이렇게 선포된 계엄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훨씬 지난 1981년 1월 25일 0시를 기하여 해제되었다. 그 이후 지난 약 40년 동안 계엄은 없었다. 이 땅에 계엄이 또다시 필요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계엄에 대한 정치적 논쟁은 있을지언정 계엄제도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이 없다. 국민들에게 계엄은 다시 생각하기 싫은, 불편한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계엄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쓸데없는 노력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계엄법의 주무부처는 국방부다. 정부에서는 매년 을지연습 때 국방부를 중심으로 일주일 정도 계엄연습을 해보는 정도다. 국방부에서 계엄업무는 1개과(민정협력과)가 국회업무를 주로 하면서 부수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서는 민군작전부에 계엄과를 두어 계엄사령부와 관련된 제반 준비와 을지연습을 할 때 계엄업무를 지휘하고 계획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국방부가 먼저 계엄제도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거론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군의 정치적 중립 의지마저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난 40여 년간 제도적 변화가 없었던 계엄제도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계엄법은 멀리는 일제 강점기 때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변화한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에도 맞지 않다. 지금과 같이 잘 정비된 국가 위기관리 제도하에서 계엄의 역할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계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서 개정방향을 논의하면 이미 늦다.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제도로서의 계엄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지금이야말로 현행 계엄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