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을 보다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08-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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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옛날 분 치고는 그래도 상당히 합리적인 분입니다. 예를 들어 제사를 지내시면서 꼭 한마디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죽은 뒤에 이러는 게 뭔 소용있나...귀신이 어데 있다고... 죽으면 그만이지』 물론 할아버지 살아 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겁니다. 어쨌든 아버지는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크게 인정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귀신중에 꼭 한가지는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십니다. 바로 물귀신입니다. 하루는 저는 물귀신이 없다고 하고 아버지는 있다고 하다가 상황이 험악해 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도 물귀신이 있다고 우기시기에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부지, 진짜로 물귀신 보셨니껴?』(경북 북부지방은 의문형이 「껴」로 끝납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시더니, 거의 밥상을 내리칠 태세로, 『이놈의 자식이, 저(자기) 아바이(아버지)가 있다카만 있는 기지... 천하에 못된 놈 같으니라고』 아버지가 물귀신 때문에 그렇게 화내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믿는 또 하나 비 과학적인 것이 있습니다. 닭이 10년 묵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귀신은 제가 양보할 수 있어도, 이 닭이 구렁이 된다는 것은 저도 도저히 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께서 물귀신은 직접 보셨다했지만, 닭이 구렁이가 되는 것은 직접 보시지는 못한 듯 합니다. 아버지는 『왜정 때 닭이 구렁이 되는 것을 너 할배도 봤고 동네 노인도 여럿봤다』는 것을 자꾸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동네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10년을 묵은 닭은 구렁이가 되기위해 목을 땅속에 파묻고 버둥댄다는 것입니다. 그때 동네 노인 하나가 닭을 쑥 잡아 빼니 벌써 목과 머리는 뱀이 되었고 몸통은 아직 닭인 채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도 승복을 하지 않고 꼬치꼬치 따져들자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가 한마디 하십니다. 『어째 자(저 아이)는 저 아바이 말을 저래 못 믿노. 나도 옛날에 노인들이 닭이 구렁이 된다카는 거 들었다』 승리는 아버지 편으로 돌아 갔습니다. 저는 아직도 닭이 10년 묵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만, 10년 동안 닭을 키워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아니라고 하기도 딱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물귀신을 본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국민학교 다닐 때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소꼴을 해 놓고 학교에 가야 했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소 뜯기로 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저녁 해그름 무렵에 아버지는 동네 뒷편 구릉지대로 소를 뜯기로 갔다고 합니다. 구릉아래 지대는 논에 물을 대기위한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연못에 공교롭게도 열살 남짓한 동네 오누이가 빠져 죽었습니다. 혼자 풀을 뜯던 소가 어슬렁 거리며 어디론가 눈에 띄지 않은 곳으로 가버렸고, 날은 어둑해 졌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연못에서 처녀귀신 두 명이 나타나서 아버지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연못과의 거리는 꾀나 멀었지만 구릉진 곳이라 아버지가 있는 곳은 연못을 향해 내리막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구릉 반대편으로 가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연못쪽으로 몸이 끌려 들어 가더란 것입니다. 풀을 잡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그때 소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소의 고삐를 당겨잡고 겨우 구릉반대편으로 넘어와 집으로 올 수 있었답니다. 이 물귀신 오누이가 마을 사람들을 어지간히 괴롭혔던가 봅니다. 비가오는 날이면 이 오누이 물귀신이 연못가에 나와서 울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무서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합니다. 동네에서는 굿을 해서 오누이의 영혼을 달래주기로 했습니다. 용한 무당을 불러 며칠 동안 굿을 해서 오누이의 영혼을 연못에서 꺼낸 의식을 벌인 후 마을은 조용해 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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