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매 싸움」이라 불리는 「투석전」은 우리 민속놀이 중에 하나 였습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많이 행해 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 등에도 투석전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고, 구한말 외국 선교사나 여행가들이 한국 풍습을 기록한 책에도 자세하게 나옵니다.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투석전 중에 다치는 것은 예사이고 이중에 몇 명은 실제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투석전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예사로 하고 자랐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 동네는 행정구역이 안동(풍천)과 예천으로 나누어 지는 곳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우리 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두어 채의 집은 행정 구역상 안동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을에서 약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을 「건넛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은 우리가 건넛마을이라고 부르는 이 마을 이름도 우리 마을과 같은 이름을 씁니다. 건넛마을 친구들은 우리를 보고 건넛마을이라고 부릅니다.
행정구역이 다르다 보니 두 동네 아이들은 다른 학교에 다녔고, 어려서부터 서로 얼굴 볼 일이 없이 자랐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마을아이들과 건넛마을 아이들이 싸워 왔는지 그 내력은 자세히 모르나 그 역사는 꽤 깊어 보입니다. 우리 또래 아이들을 비롯, 그 위에 형들, 그 위에 삼촌들도 마찬가지로 싸우면서 자랐습니다.
건넛마을과 우리마을 사이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산은 두 동네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DMZ같은 마을 경계선이었습니다.
어느 동네 아이들이건 이 야산에서 놀기를 결정한 날은 상대편 아이들을 충분히 자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 산에서 아이들이 놀게 되면 그 시끄러운 소리가 양 동네에 울려 퍼집니다. 만약 건넛마을 아이들이 먼저 이 야산을 차지하고 놀게 되면,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은 서로 자기 동네 놀이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편 동네 아이들이 노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어느 한편이 힘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됩니다. 이 야산은 우리동네와 건넛마을 아이들과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물러 설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이 이 야산을 차지하고 놀양이면 우리는 먼저 상대 진영을 가만 살펴봅니다. 그런 후 우리의 숫자가 너무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일제히 공격을 퍼 붓습니다.
양 동네 아이들끼리의 거의 모든 「전투」는 주로 이 나지막한 야산 위에서 벌어집니다. 산 위에는 나무가 없고 재법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도 우리가 쳐 들어 오는 것을 보면 일제히 전투태세에 들어 갑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양 동네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진을 치고 서로의 분위기를 살핍니다.
양편의 세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한 편이 우세한 싸움은 좀처럼 없습니다.
싸움은 주로 욕설과 돌팔매질로 시작됩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싸움은 돌팔매질에서 시작해서 돌팔매질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쌘 친구 서너 명이 먼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가서 상대마을 아이들에게 주먹 돌을 던집니다.
그러면 상대편 진영은 일시적으로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상대진영으로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서 돌을 던지면 위험합니다.
손에 든 돌의 숫자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던지는 돌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잘못하다간 건넛마을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대편이 반격해 나오면 재빨리 자기 진영 가까이 도망을 쳐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을 던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뒷편에 대기하던 아이들은 공격조의 손에서 돌이 떨어지면, 일종의 엄호 돌팔매질을 해서 자기 마을 아이들이 기습을 당하는 것을 막아주고 자기 진영까지 안전하게 후퇴하게 도와 줍니다.
돌팔매 싸움이 위험 할 것 같지만 한명도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을 던지니까 날아 오는 돌은 쉽게 피 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편이 돌을 던지면 우리는 『엄청 멀리 던진다』하며 한껏 조롱을 퍼붓습니다. 상대편의 이름도 이상하게 지어서 마구 놀려 댑니다. 욕설을 퍼 부을 때는 주로 이쪽편의 조무래기들을 시켜서 상대의 화를 더욱 돋우게 만듭니다.
상대편에 이름이 노출되면 상대편 동네의 조무래기 애들에게 집중으로 놀림을 당하기 때문에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야 했습니다.
「거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 마을 친구가 상대편에 별명이 노출되어 큰 곤욕을 치루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거머리, 거머리」하고 이 친구를 집중적으로 놀려 댔습니다.
우리가 아주 어릴 때, 동네 형들과 건넛마을 아이들과 싸우는 것을 보면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나무 활과 못을 박은 화살, 긴 장대, 방패, 차돌, 표창 등 구할 수 있는 무기는 죄다 구해서 싸움을 했습니다.
형들이나 삼촌 뻘 되는 또래들이 싸울 때에는 다치는 아이들도 많았었나 봅니다. 누군가 돌에 맞아 머리가 깨지고, 이빨이 나간 것이 두고 두고 이야기로 전해 내려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울 때는 돌팔매 질로 다친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욕을 하다가도 해가 지고 배가 고프면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어야 합니다. 먼저 돌아서는 쪽은 상대편에게 온갖 욕을 다 얻어 먹기 때문에 쉽게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밥 먹으로 갈 때는 『너히들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아서 싸울 맛이 안 난다. 내일 싸우자』하면서 공갈을 잔뜩 친 후 집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렇게 서로 공갈을 주고 받고 다음날 싸움 약속을 잡으니, 방학 때는 싸움이 몇날 몇일 계속되는 날도 많았습니다.
우리동네 아이들에게 항상 불리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인근 5일 장에 가려면 이 건넛마을 앞을 꼭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마을 아이들이 장에 갈 때는 절대 혼자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 여럿이서 짝을 지어 건넛마을 앞을 지나가야 하는 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모른 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동네 앞을 지나는 건넛마을 아이들을 잡아 팬 적도 없고, 우리도 역시 건넛마을 아이들에게 잡혀서 맞은 적은 없습니다)
당시 건넛마을 아이들에게 잡힌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 졌는지 개인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하루는 투석전이 요란하게 벌어졌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가 싸움에서 밀리게 되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 나오는 바람에 우리 진영이 콩가루처럼 무너지면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흩어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저는 급한 김에 야산을 내려와 논둑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돌에 무릎이 부딪혔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이 계속 쫓아 오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와중에도 일어나서 절룩거리며 달아났지만 또다시 쓰러졌습니다.
마침 그때 들에서 일을 하던 노인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다가 엎어져 있는 저를 태우고 집에 왔습니다. 위기는 모면했지만 당시 잡히면 안 된다는 공포심이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고로 저는 몇 개월 동안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녔습니다. 지금도 제 무릎 연골부위에는 그때 생긴 상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들이 매일 같이 돌팔매질을 하고 싸워도 본체만체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한번은 우리 동네 아이들이 건넛마을 안까지 쳐 들어가 쑥대밭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우리의 힘을 과시하는 정도였지, 건넛마을 아이들을 잡아서 패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를 두들겨 팼다가는 어른들에게 혼이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모든 땅이 건넛마을 아이들 땅, 우리 동네 땅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름에 수로에 물장구를 치더라도 상류쪽은 우리 지역이고, 하류쪽은 건넛마을 아이들 지역입니다.
만약 어느 한편이 개울의 상하류 양 쪽을 다 장악하고 수영을 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은 물놀이를 포기하거나 숫자가 많다면 힘으로 쫒아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개울은 우리 마을 쪽에 있어서 물놀이에는 우리가 항상 유리했습니다.
하루는 원수 같은 두 동네 아이들끼리 무슨 화해의 바람이 불었는지 친선 축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논에 볏단을 세워 골대를 만들고 축구를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축구를 하면서 같은 편이 이름을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름이 상대편에게 전부 노출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반칙을 하면 그 친구 이름을 부르며 욕을 퍼부어 버리니 경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축구는 전반전을 못 넘기고 양 동네 아이들이 논바닥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한번의 축구가 우리가 건넛마을 아이들과 벌인 처음이자 마지막 축구로 기억이 남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투석전」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後記 : 군에 있을 무렵입니다. 중대 막사밖에 누가 저를 찾아 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밖을 나가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돌팔매질을 하며 싸우던 건넛마을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때서야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옛날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