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이죠? 납북자 가족인데 아버지 이름이 있는지 확인 좀 하고 싶습니다』
7월15일 오전부터 月刊朝鮮의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이 출간한 「피살자ㆍ피랍치자 명부」 관련 기사가 나간 후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들 때문이었습니다. 16일부터는 수십 명의 납북ㆍ피살자 가족들이 월간조선 사무실을 직접 찾아 슬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기자는 그들 중 한 분을 만나 자세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올해 67세인 나왕식(羅汪植)씨. 사무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기자에게 『월간조선에서 피살자 명부가 나왔다는 데 어디로 가야됩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기자는 나씨를 월간조선 출판부로 안내했습니다.
기자는 나씨로부터 눈물 겨운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기자는 피가 꺼꾸로 솟아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얘기는 대충 이랬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6ㆍ25 때 북의 괴뢰군에 의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몽둥이에 맞아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전쟁 당시 우리 가족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진 직후였던 1950년 7월경 경기도 화성을 점령했던 괴로군은 우리 동네 마을 사람들 중에 이승만을 지지한 사람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 우익청년단체였던 「대한청년단」 간부로 활동했습니다. 괴뢰군은 저의 아버지의 경력을 알고 곧바로 잡아갔습니다. 괴뢰군은 아버지를 포함해 일부 마을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분류한 후 동네 인근에 있는 지하 방공호에 모조리 잡아다 쳐 넣었습니다.
괴로군은 이들 「반동분자」들을 한 명씩 불러내 고문과 구타 등 온갖 만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도 괴로군에 의해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괴로군들의 몽둥이에 맞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씨의 사연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씨 가족은 「몽둥이에 맞아 죽은」 부친의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1950년 7월12일 괴뢰군에 맞아 별세하셨습니다. 그 놈들이 아버지를 죽이고는 시신을 그냥 내다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왕식씨는 부친의 시신을 찾게 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타살된 지 4일 뒤쯤 같이 살고 있었던 할머니가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할머니는 꿈 속에서 하얀 백발을 한 할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白髮(백발)의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에게 다른 말은 일체하지 않고 「나를 따라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동네 뒷산이었답니다.
꿈에서 깬 할머니와 우리 가족들은 곧장 뒷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곳으로 가는 도중 이상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 지점에서는 썩는 냄세가 심하게 났습니다. 골이 썩고, 혀가 이마까지 빠져 나온 아버지의 머리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현장이었습니다』
나씨의 울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기록보존소에도 없는 이 자료가 우리와 같은 가족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서입니다. 요즘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다고 다들 난리인데, 진정 국가를 위해 일하다 인민군에 의해 맞아 죽은 「아버지」는 과연 누구한테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6ㆍ25 사변 피랍치자 명부」의 존재는 2002년 월간조선 2월호에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월간조선과 6ㆍ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존돼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월간조선 보도 이전까지 통일부 등 관계 당국은 명부의 존재조차 부인해 왔죠.
이 명부의 발간으로 국가란 존재가 8만 명이 넘는 국민을 납치당해놓고도 명단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송환조차 요구하지 않는 현실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