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城址)를 찾아서-충주 남산성(南山城)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 업데이트 2004-03-02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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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남산성(南山城) 충주의 남산(南山, 636m)은 15만 충주 시민들의 모산(母山)이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시도 때도 없이 남산을 오르내리는 충주 사람들에게는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산이다. 충주는 서쪽으로 달천과 북동쪽으로 계명산(鷄鳴山, 775m), 남동쪽으로 남산, 남쪽으로 대림산(489m)과 대룽산(459m)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충주의 진산인 남산 옛부터 충주 읍에는 연꽃 무늬 모양으로 화려하게 쌓은 꽃성(蘂城) 즉, 예성이라 부르는 읍성이 있었고 충주의 진산(鎭山)인 남산에는 굳건한 산성을 쌓았다. 시내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남산은 충주시내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다. 남산 너머는 충주호. 그야말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이 충주이며, 그 한가운데 기(氣)가 세다는 남산이 떡 버티고 있다. 이웃의 계명산이 더 우람해 보이기는 해도 사람들은 남산을 더 가까이 하고 있다. 남산에서 보면 멀리 남쪽으로 조령산(1017m)과 월악산(1093m) 줄기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남산의 소나무는 원래 우리 소나무인 적송이었으나 일제시대에 다 베어가 사라지고 대신 잡종 소나무들이 터를 잡고 서있다. 남산의 사계절 가운데 가장 좋은 때는 봄. 늦은 봄 신록이 물들기 시작한 남산의 남쪽 능선 길은 진달래와 철쭉으로 뒤덮인다. 남산에 피는 철쭉은 다른 철쭉과 달리 빛깔이 조금 하얗다. 소백산맥에서 시작해서 조령산에서 만 볼 수 있는 꼬리 철쭉이다. 꼬리 철쭉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새파랗게 살아 있다. 신록으로 물든 남산은 아침·저녁·낮에 따라 빛깔이 다다르다. 그래서 남산의 사계절 가운데 남산의 봄을 제일로 친다고 한다. 삼국시대 여러나라의 각축장이었던 충주 이런 남산의 중턱에는 일명 남산성(南山城), 금봉산성(錦鳳山城)이라고 부르는 성이 있다. 충주시에서는 이곳을 충주산성이라고 못박아 놓았지만, 충주사람들은 그저 남산에 있는 성이니까 남산성으로 안다. 충주분지의 동서 남북 여러 방면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막아내기 위해서 쌓은 성의 하나다. 충주는 남한강과 그 지류인 달천과 충주댐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토지가 기름지고 기온이 따뜻해서 선사시대부터 찬란한 문명이 싹텄던 곳이다. 육로로는 조령과 죽령을 거치고 남한강을 통해서 서울과 통하는 수운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만큼 삼국시대부터 충주는 전략적 중심지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됐던 곳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5세기 후반에서부터 6세기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남산 꼭대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를 따라 둘레 1천 1백 20m, 높이 7~8m로 흙과 모래를 사용하지 않고 평평한 돌로만 쌓은 충주성에는 동서남북에 사대문이 있었으며 성안에는 세 곳의 우물터와 한 곳의 저수고가 있었다. 성안의 지형이 대부분 경사지여서 건물자리가 없는듯 해보이나 선성 안팎에서 많은 토기와 기와 조각이 발굴되고 있어 병영이나 창고로 보이는 건물자리가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현재 492m의 성벽은 잘 남아 있으나 남문에서 동문 사이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남산의 남쪽 능선의 끝은 성의 서문자리에서 끝난다. 서쪽으로 분지 한가운데를 차지한 충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뿐인가 발 아래로 시퍼런 충주호와 그 너머로 월악산 정상과 또 그 너머로 소백산의 연봉들이 손에 잡힐듯 건너다 보인다. 북쪽으로는 닭의 발가락을 닮았다 해서 계족산으로 불리웠다가 닭발이 뭐냐,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달리 부르게 됐다는 계명산이 힘 있게 솟아 있다. 산성이 자리 잡았듯이 남산의 정상에서는 주변 일대의 산과 강, 벌판과 그 안에 둥지를 튼 마을과 충주시내가 두루 다 보인다. 직벽에 가까워 감히 기어오르지 못하게 평평한 돌을 채곡채곡 쌓았다. 성벽의 일부는 무너져 내렸으나 몇 군데는 1천 5백년 전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성을 쌓았을 민초들의 고초와 애환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성돌 위를 걷는 발걸음이 자꾸 떨린다. 성돌 하나에도 민초들의 고초 배여 성돌 하나라도 밑으로 굴러 떨어질까 조심스럽다. 충주호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남문터에 무명의 묘가 하나 있다. 명당자리라고 하면 명당일 거라고 생각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문화 유적지를 훼손해가면서 이 높은 곳에 조상을 모신 후손들은 조상의 은덕을 얼마나 보았는지 긍금해진다. 성터를 둘러보고 다시 서문자리로 돌아와 북쪽 능선길로 내려선다. 올라왔던 깔닥고개 이상으로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조심하지 않으면 저 밑 임도까지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남문에서 동문을 거처 북문 밑까지 이어진 임도가 내려다 보인다. 그러고 보니 남산의 정상 바로 못미처까지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올 수도 있다. 하산길을 임도를 따라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북쪽 능선길을 따라 계속 내려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임도는 산 기슭을 따라 빙빙 돌아가지만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충주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걷는다. 하산 지점인 마지막재는 옛날 단양, 청풍, 수산, 및 강원, 경상도 죄수들이 충주 감영으로 이송될 때 이 고개를 넘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마지막재라 불렀다는 유래를 간직하고 있다. 이 고개는 계명산과 남산 중간 260m 고지를 지난다. 나이 젊어서는 설악산을, 나이 들어서는 남산 같은 가까운 동네 뒷산을 찾아야 한다. 나이 들어 이 산 저 산을 찾는 난봉꾼이 되지 말고 마음에 새겨두고 계절마다 마음 내킬 때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산을 하나씩 정해두자. 자가만의 모산을 하나씩 갖는 것이다. <산행 길잡이> 남산을 오르는 코스는 동서남북으로 나있다. 남산을 중심으로 일주 도로나 다름 없는 산복도로가 나있어 시내에서 산행 시작 지점과 하산 지점을 오가는데 시간이 많아 걸리지 않는다. 차에서 내려서 바로 산으로 올라가고 산에서 내려와 바로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수 있다. 남산의 종주 산행코스는 교현동 남산아파트에서 깔닥고개를 거처 정상을 오른 다음, 산성을 둘러보고 계명산이 마주보이는 북쪽 주능선을 타고 마지막재로 내려간다. 정상까지 1시간 40분, 내려가는데 1시간 20분쯤 걸린다. 직동 탑대마을에서 남쪽 능선을 타고 남산을 오른 다음, 남산아파트로 내려가거나 마지막재로 내려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3시간 코스다. 남산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임도가 뚫려있다. 임도와 마지막재로 내려가는 능선길과 엇갈리는 곳이 몇 군데 된다. 능선 길도 좋지만 한적한 임도를 편안한 마음으로 충주시내를 내내 내려다 보면서 걸어 내려가는 것도 남산 산행의 일미다. 귀경 길에 충주시 앙성면에 있는 능암온천이나 상모면 수안보온천에서 산행의 피로를 말끔이 씻고 올라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교통편> 충주의 남산은 서울의 남산과는 산세나 자리매김이 다른 산이지만, 교통편을 따져보면 서울의 남산과 마찬가지로 충주 시내에 있는 산이라고 말해도 된다. 충주까지 고속버스나 직행버스를 타고 가서 택시를 타고 남산 산행의 시발점인 남산아파트까지 택시를 타도 1천6백원밖에 안나온다. 남산아파트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문화동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바로 탄다. 산에서 내려와서는 안림동 마지막재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주덕~안림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 동서울에서 충주까지 오전 6시 1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20분마다, 충주에서 동서울까지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 40분까지 20분마다 떠난다. 정확히 2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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