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城址)를 찾아서- ‘한국판 마추피추’ 가평 운악산성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 업데이트 2004-03-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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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추피추’ 가평 운악산성 해발 1천미터나 되는 험준한 바위산 중턱에 언제 누가 쌓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석성터가 최근에 발견됐다. 한국판 마추피추라고 불리우는 경기도 가평군 화현면의 운악산(雲岳山 935.5m)에 있는 운악산성이다. ‘경기오악’의 하나인 유명산 운악산은 경인지역 등산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던 산이다. 그러나 운악산 중턱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상을 잇는 삼국시대 말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 내려오는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운악산의 서쪽 깊은 골짜기와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등성이를 이은 운악산성은 일부 구간을 남기고 허물어져 산비탈 아래로 흘러내렸지만 험준한 산곡대기에 자리잡은 운악산성의 형세는 궁예와 고려 태조 왕건의 싸움, 병자호란 등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장했던 지난 날의 역사를 뒤돌아보게 한다. 운악산은 서울의 북한산·도봉산·관악산 다음으로 경인지역 등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의 하나이면서도 길이 2.5km쯤 되는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무심히 지나치면 돌담이요 돌 무더기에 지나지 않을터이지만, 1천2백여년 전에 쌓은 산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운악산의 한 구석인 운악산성을 둘러보는 산성일주 산행 코스는 서울~일동 47번 국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운주사나 대원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한겨울이면 뾰쭉한 봉우리 사이에 걸린 거대한 빙폭이 차창 너머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다. 많은 등산인들은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서 현등사를 거처 운악산 정상을 오른 다음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대원사 코스나 운주사 코스로 내려온다. 파주군 감악산(675m)·가평군 화악산(1468.3m)·개풍군 송악산(560m)·서울 관악산(629m)과 함께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산인 운악산은 옛부터 경인지방의 무속인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는 민속 신앙의 근거지로 충남 계룡산 만큼이나 산 곳곳을 훼손하고 있어 등산인들의 이맛살을 찌프리게 하는 곳이다. 자연보호 차원이라면 모두 철거되어야야 할 시설들이지만 관계 당국도 어쩌지 못하고 골치를 썩이고 있다. 궁예의 전설이 있는 궁궐터·성지 계절이 바뀌어 나무잎이 지고 나면 모든 산의 적나라한 모습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때가 왔다. 녹음속에 묻혔던 바위와 절벽, 산골짜기와 산등성이와 산마루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산기슭 녹음 속에 숨어있던 절터며 산성 자리도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다.한쪽이 절벽인 가파른 산등성이 위로 이어진 운악산성이 허물어지긴 했어도 희미한 제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두 곳의 깊은 산꼴짜기와 산꼭대기 산등성이를 잇는 운악산성 안에는 세 곳의 건물지도 있다. 성안에 있는 허름한 청학사가 자리잡은 곳도 건물터였고 청학사로 입구 고개마루는 성문터였다. 이 곳 말고도 청학사 윗쪽에도 100평 정도 되는 서남향의 건물터가 있다. 또 한 곳은 깎아지른 높이가 30m쯤 되는 홍폭(虹瀑), 일명 무지치폭포 위쪽 은밀한 골짜기에는 옛날부터 대궐터라고 전해오는 900~1000평쯤 되는 너른 건물터가 있다. 조선조 중기에 쓰여진 포천읍지인 견성지(堅城誌)에서 밝힌 궁궐터로 알려진 곳이다. 3단으로 조성된 궁궐터에서는 많은 기와조각과 토기 그리고 건물 초석들이 눈에 뜨인다. 운악산성은 천연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이용한 높은 산중턱에 쌓은 산성이다.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명성산(922.8m)의 명성산성·관인면 보개산(640m)의 가산산성·운악산의 운악산성은 궁예와 함께 고려 태조 왕건과 최후까지 대항했던 곳. 포천의 맹주 성달·이달·서림 형제가 끝까지 저항했던 곳으로서 페루 마추피추의 역사와 비견되는 비장한 역사의 현장이다. 1988년 김성호(성곽연구가)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 이재 교수팀에 의해 발견된 운악산성은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운악산성과 궁예와 얽힌 전설을 통해서도 산성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고증을 받을 만한 자료들이 산등성이 곳곳에 늘어선 성터를 운악산성이라고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나 문화재 당국도 운악산성의 보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무속인들이 토굴을 짓거나 계단을 쌓는 데에 성돌을 빼다가 써서 무속인들의 거주 지역 근처의 성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 옛 조상들의 터전인 운악산성의 정기를 받으려는 무속인들의 등쌀에 자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운악산성의 형태가 망가진 것이다. 산성 돌을 빼다가 탑을 쌓고 사적으로 보호받지 못해서 산성 안의 유적지에 흩어진 기와조각·청자 파편 등, 유물들이 무단 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2년 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 및 발굴 결과 삼국시대 성터임을 확인했을 뿐 더 이상의 유적을 밝혀내지 못했다. 성 위로 난 등산로도 재정비하여 더이상 성돌이 굴러 떨어지지 않게 우회 등산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귀중한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학술 세미나와 성터 안내 안내판을 설치하고 성터를 우회하는 등산로를 개설하여 운악산성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 조치를 해야 한다. 어디를 가든 많이 알고 가면 많이 보인다. 막연히 찾아가던 운악산 등산이 더욱 의미있는 산행이 될 것이다. 깨진 기와조각·토기편들 발길에 채여 운악산 운악산성을 돌아보는 산행을 하려면 어차피 정상을 올라야 한다. 성터가 산중턱에서 시작하여 정상으로부터 뻗어내린 산줄기 양옆의 골짜기를 감싸 안은 형태여서 운악산의 서쪽 기슭을 한바퀴 돌아오는 산행이 된다. 가평 현등사 코스로 올라와 정상을 오른 다음, 운주사나 대원사 하산 코스로 내려오다가 성터의 일부를 둘러보면서 내려올 수도 있다. 운주산성을 집중해서 둘러보는 코스라면 화현면 운주사 코스로 가다가 무지치폭포 계곡으로 들어서서 빙폭을 이루기 시작한 무지치폭포를 올려다보고 옆으로 돌아 운주사에서 올라오는 주등산로로 들어선다. 무속인들이 거처가 몰려있는 바위 골짜기를 지나치면 한눈에 성터임을 보여주는 완벽한 성터를 지나친다. 높이 2m, 폭이 1m쯤 되는 이 성터는 예전에는 더욱 높았으나 계단을 만들고 토굴을 짓느라 빼가서 낮아졌다고 한다. 성터 위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속인들이 텐트를 치고 기도처로 사용했던 흔적들이 있다. 이곳을 지나 대궐터로 올라간다. 오름길 산비탈에는 산신령을 모신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어지럽게 설치돼 있다. 신선대와 치마바위를 지나면 아늑한 골짜기에 대궐터가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궐터의 기단은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너른 터와 다듬은 주춧돌만이 널려 있다. 대궐터 이곳 저곳에는 잘 다듬어진 돌로 쌓은 마터가 여러 군데 나타난다. 흙더미를 헤쳐보면 깨진 기와조각과 청자 파편들이 출토된다. 궁예의 대궐터였는지 절터였는지 철저한 지표조사와 발굴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성안에는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큰절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곳이 절터가 아니었나 짐작이 되기도 한다. 대궐터를 지나 정상을 오른다. 골짜기를 타고 30여분 오르면 정상 못미처 안부에 도달한다. 안부에서 보면 동쪽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내린 성돌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음이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정상에서 현등사에서 올라오는 헬기장 봉우리까지 허물어진 성터가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진다. 정상에 있는 만경대에서 곧바로 내려오는 바위길이다. 대부분의 등산인들이 오르는 길로, 이 코스로 올라와 정상에 오른 다음, 애기봉을 지나고 무지치폭포를 거쳐 운주사로 내려간다. 바위길이라 모든 코스에는 밧줄을 매놓아 사람들이 잡고 오르내리게 했다. 산등성이 남쪽은 거의 절벽지대다. 천연의 성벽이어서 남쪽엔 구태여 성을 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험난한 코스 중간 중간에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이 남아 있는 근처 서쪽으로 툭 터진 바위지대는 적정을 살피던 망대가 있었을 것이다. 바위길을 힘들여 오르내리다 보면 짧막한 성터는 눈에 잘 뜨이질 않는다. 산등성이 쉼터에 앉아서 잠시 주변에 흩어진 돌무더기를 유심히 보면 무너진 성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청학사까지 내려가는 바위길도 성터이고 청학사 입구 바위고개는 성문이다. 성문에서 내려서는 청학사 골짜기 역시 군사들의 주둔지였을 것이고 청학사 앞 산등성이 위의 바위 봉우리는 성 밖의 동정을 살피기에 아주 좋은 망대였을 것이다. 운악산성은 이처럼 천연의 지형을 이용한 난공불락의 성터였으나 가평쪽으로 쳐들어 오는 군사를 막지 못해 함락되는 비운을 겪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 후 운악산성이 쓸모 없게 되자 오래 전부터 폐성이 됐기 때문에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조 중·후기의 고문헌 및 사료에 운악산성에 대한 기록이 한 줄도 안나온다. 단지 견성지에 ‘운악산은 포천군 동쪽 25리에 있는데 곧 가평 현등산 서쪽의 산이다. 산꼭대기에 옛나라의 궁궐터가 있다’는 기록이 유일하게 남은 기록이다. 운악산성은 이중성이어서 청학사 위쪽으로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한 산성터가 두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가로막고 있다. 중간 중간 토막이 나긴 했어도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성벽을 보려면 무지치폭포 위 등산로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다. 두 곳의 성벽을 지나고 군막사 자리로 보이는 잘 닦은 건물터도 지난다. 이곳을 지나면 기도원~운악산정~운악산 휴게소로 내려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만경대~청학사~운주사~운악산정 코스는 너무 험난해서 산을 많이 타보지 않은 등산인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조금 길기는 해도 대원사~절고개~헬기장 봉우리~정상~애기봉~대궐터~이중성터~청학사로 내려오는 코스나 이중성을 처음만 보고 뒤돌아 나와서 무지치폭포로 내려오다가 차단성을 보고 운주사로 내려서는 것이 쉽다. 아니면 정상을 거치지 않고 운주사~대궐터~이중성 건물터 청학사를 거처서 운악산정~운악산 휴게소로 내려올 수도 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성터를 다 돌아보고 내려오려면 4~5시간쯤 걸린다. 정상을 안가고 나머지 성터를 돌아 내려오는 데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운악산성 지킴이> 화현면 화현리 이수영(42)씨. 운악산 밑에서 태어나 지금도 운악산 밑에서 산다. 어렸을 때부터 궁예와 운악산성에 대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운악산 골짜기마다 얽힌 역사와 사연을 줄줄이 위우고 있다. 운악산성 옆 골짜기의 이름이 망을 잘보라고 해서 ‘보라골’이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부터 운악산에 얽킨 6.25전쟁의 숨은 이야기까지 잘 알고 있다. 그만치 내 고장 운악산을 사랑하고 있다. 집은 화현면 소재지에 있지만 1년 전부터 운악산 산밑에 등산인을 위한 운악산정이라는 음식점을 차려 놓고 살면서 운악산성을 알리고 발굴·보존하는데 앞장섰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무속인들이 마구 훼손하는 운악산을 보호하고 운악산 화현리 지역 개발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한다. 1년이면 30번 이상 운악산을 오른다는 이수영씨는 운악산의 역사 뿐만 아니라 생태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 그동안 운악산성의 내력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으나 알 길이 없어 답답했었다. 6년 전 우연히 백재문화연구회 정우영(서울 무학여중 교사, 지명연구가)를 만나 그동안의 의문이 확 풀렸다. 그동안 운악산성터를 돌아보면서 주워 모아놓았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음식점 한구석에 향토 사료관을 마련할 계획이다. 운악산 기슭과 명덕리에서 청자·백자 가마터도 찾아낸 그는 조사단도 밝혀내지 못한 신선대에서 운악산 애기바위까지 이어지는 2km의 산성터도 찾아냈다. <찾아가는 길> 서울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동 터미널에서 광능내~내촌 베어스타운~일동~이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내촌 베어스타운~서파 네거리를 지나 화현면 파출소 앞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등산 시발점인 운주사나 운악정까지 걷기는 조금 먼 거리다. 운악정에 전화를 걸면 운악정에서 차를 내준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등산 시발점을 먼저 정한 다음, 대원사 입구나 운악산휴게소 주차장이나 공터에 차를 두고 올라갔다 내려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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