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역사 - “중국 금(金)나라는 여진(女眞)으로 망명한 마의태자 후손이 세웠다.”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 업데이트 2004-02-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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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金)나라는 여진(女眞)으로 망명한 마의태자 후손이 세웠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하려는 이때에 발해는 말할 것도 없고 요(遼)와 금(金)의 역사도 알고 보면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지금의 중국史는 中華 민족의 역사일뿐 몽고나 거란(요), 그밖에 신라의 마의태자(麻衣太子) 후손인 아골타가 세운 여진(금)의 역사는 중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온 마의태자의 실제 행적을 찾아내기 위해 일생을 바친 직계 후손중의 한사람인 김창묵(金昌默 82)씨는 오는 5월 인제와 홍천에 있는 마의태자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고분을 발굴하여 마의태자의 생애를 확실히 밝힐 예정이다. 최근 학계에서도 박성수교수(전 한국정신문화원)와 신형식교수(이화여대 사학과)등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지도 모를 마의태자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신라부흥운동사’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마의태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은 한사람이 아니라 실제 두명이며 마의태자가 찾아간 곳은 금강산이 아니라 현재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이고 인제와 원통을 중심으로 신라부흥운동을 주도했고 후손중 일부는 원통에서 함경북도 회령을 들어가서 살다가 4대째 다시 만주로 건너간 후손중의 한명인 아골타가 金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사’에도 후금(後金)과 청(淸)나라로 代를 이은 金나라의 시조인 아골타는 신라 경순왕의 7대 손으로 2명의 마의태자 가운데 한명인 김일(金鎰)의 아들 김행(金幸)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다. 신라 최후의 왕 김부(金傅), 경순왕이 귀부(歸附)하는 935년, “그해 10월 석씨의 막내 분(奮)과 박씨의 맏아들 김일(金鎰), 두분이 극력 간(諫)하다가 왕이 들어주지않자 어전에서 통곡을 하더니 영원히 이별하고 개골산에 들어가 바위를 집으로 삼고 마의(麻衣) 초식을 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충신과 군사를 이끌고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金富里)와 갑둔리(甲屯里) 일원과 금강산이 아닌 설악산 기슭에 있는 한계산성(寒溪山城)에 머물면서 왕건에 대항하는 항려(抗麗), 신라부흥운동을 일으켰다고 전해온다. 이때 마의태자의 세 아들 가운데 김행(金幸)은 동해안을 따라 흑룡강 유역의 여진 땅으로 망명을 떠나고 나머지 두 아들들은 고려에 남아 부안(령) 김씨의 시조가 된다. 1959년 金史와 淸史를 연구한 사학자 김상기(金庠基)씨가 ‘金의 시조에 대하여’ 라는 연구 논문에서도 상세히 나온다. 최근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과 금나라 시조 아골타가 다같이 마의태자 7대 후손이라는 사실도 밝혀져 더욱 관심을 끈다. 김부동, 김부왕동, 김부왕촌등으로 불리우다가 김부리가 되었다는 김부리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신라재건을 꾀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김부대왕각에 ‘경순대왕자지신위(敬順大王-子之神位)’라는 위패를 모시고 봄, 가을에 동제를 지낸다. 김부리에는 마의태자 관련 유적, 유물이 많다. 대왕릉터와 김부석탑 2기, 그리고 마의태자를 따라온 충신 맹장군 일가의 고분군이 있다. 이골짜기를 맹개(孟皆)골이라고 부른다. 근처에 갑둔리(甲屯里), 항병(抗兵)골, 단지(斷指)골, 임금님이 넘었다는 행차고개, 수거넘어, 다물(多勿)리등의 지명이 마의태자의 관련된 광복운동을 암시한다. 해발 1000m되는 내설악산 안산 기슭 깊숙한 계곡에 자리잡은 한계산성. 양양가는 장수대-한계령 큰길에서 30분쯤 가파른 계곡길을 따라 올라간다. 바로 성의 남문이 나온다. 계곡을 가로지르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이 1.8km에 이르는 천혜의 요새인 한계산성. 무심코 지나는 등산인들의 발길에 성돌이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능선 등산로에 방치된 한계산성 천제단. 외성과 내성으로 꾸며진 한계산성안에는 대궐터와 절터가 있다. 내성의 동쪽 산등성이에는 천제단(天祭壇)도 있다.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삼신단(三神壇)이다. 기단과 중앙 감실에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의선운장(義仙雲將) 김성진(金成鎭), 선천주(仙天主) 신광택(申光澤), 그리고 김세진(金世震)이라는 세사람의 이름과 경오(庚午), 신미(辛未)라는 간지(干支)가 판독되였다. 세사람은 어느 시기의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의선운장이란 의병장을 말하는 것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마의태자를 따라온 신라의 장군이 아니였을까 추측을 한다. 산양똥이 널러 있는 천제단은 대승령을 너머 십이선녀탕이나 안산(鞍山)을 오르는 등산인들의 중간 휴식처다. 한계산성이 자리잡은 내설악 안산 계곡. 기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계산성 천제단에서 본 한계령. 그너머가 양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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