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檢이 未完의 수사로 끝났습니다. 對北송금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밝히되 사법처리는 최소한으로 하겠다던 特檢의 다짐이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물거품이 돼 버렸습니다. 宋斗煥 特檢도 아쉬움을 피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特檢은 아쉬움이 많은 수사였습니다.
特檢은 1억 달러가 頂上회담 대가로, 4억 달러는 경협자금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4억 달러가 국정원을 통해 비밀리에 전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朴智元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150억원은 또 뭡니까?
그리고 궁금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特檢은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은 「경호 上의 이유」였다고 밝혔습니다. 特檢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전적으로 林東源 前 국정원장의 진술에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달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2000년 6월 남북 頂上회담 당시 「대통령의 안전과 경호」를 위해 우리측 선발대로 평양에 먼저 가 있던 한 고위인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인사는 頂上회담 전체의 일정은 물론 대통령의 움직임까지 자세히 알아야 했던 인물입니다.
이 인사는 회담이 연기된다는 사실을 발표 전까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6월12일부터 회담이 시작될 거라 알고 있던 이 인사는 회담이 하루 연기된다는 사실을 평양 현지에서, 발표에 의해 알았던 것입니다. 대통령의 안전과 경호를 위해 목숨까지 받쳐야 하는 사람으로서 회담이 갑자기 연기된다는 것을 통보 받고서는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회담이 하루 연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회담일정이 6월12일에서 14일 2박3일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기된다는 사실을 6월11일 발표를 전후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 인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이 일정 조정을 협의하기 위해 2000년 6월3~4일 양일간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했고 북측 고위층와 이를 협의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습니까?』
『林東源 원장이 그 시점에 북을 방문한 사실도 전혀 몰랐습니다』
『회담 前 「돈」이 북으로 간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 그 때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인사는 『어떤 부분이 그런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林東源 前 원장의 2000년 6월 초 비밀방북은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頂上회담을 앞두고 「일정협의」가 아닌 또 다른 급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林 前 원장은 그 해 5월 평양을 비밀 방문해 頂上회담 의제 등을 미리 논의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또 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2000년 4월8일 북측 宋浩景(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頂上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北의 제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5억 달러를 송금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頂上회담 대가성이 어느 정도 드러난 이상 회담의 순수성은 퇴색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金大中 前 대통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주장대로 송금된 돈을 「통일비용」으로 생각하면 5억도 적은 돈입니다.
문제는 그 돈이 金正日 정권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2002년 3월 對北송금 의혹을 제기했던 래리 닉시 美 의회조사국(CRS) 선임 연구원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제공한 막대한 외화가 북한의 군비 증강에 이용됐다는 충분한 정황 증거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金正日 요리사 출신의 한 일본인이 공개한 金正日 식단 또한 충격적입니다.
결국 北으로 간 돈이 무기구입과 金正日 배만 채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가 놀랐던 남북 頂上회담. 2000년 10월 세계는 이를 「노벨평화상」으로 평가했습니다. 10년, 20년, 아니 100년이 지난 후에도 그 같은 평가가 변치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