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안타까운 궁궐 수문장 교대식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08-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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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경복궁, 경운궁(덕수궁), 창덕궁의 정문 등지에서 매일 수문장 교대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더운 날 임무에 열중하는 군인 아저씨나, 이런 아이디어를 낸 서울市와 기타 관련 당사자들에게는 힘 빠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마디로 아무 감흥없는 교대식입니다. 경운궁의 수문장 교대식의 경우, 교대 시간이 되면 스무 명 남짓의 군졸과 이를 이끌고 있는 무관이 북소리를 울리며 등장합니다. 그 다음 이들은 대형 북소리에 따라 서로 암호를 확인하고 궁궐의 열쇠를 인수하는 등 교대 의식을 진행합니다. 교대를 하는 군졸의 행동은 마치 요즘 군인들의 制式(제식) 훈련을 보듯이 절도가 넘칩니다. 조선시대 복장에 현대 군인들의 제식 동작을 섞어 놓으니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어색합니다. 군졸이 든 무기와 복장도 민망할 정도로 초라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끝에 은박지를 두른 곤봉 막대기와 칼날이 몽땅해서 전혀 위엄이 없는 가짜 청룡도 몇 자루, 守將(수장)이라는 글자가 적힌 대형 깃발 두어 개가 전부입니다. 이런 조잡한 무기로 왕궁을 어떻게 지켰을 지 의문이 듭니다. 군졸이 신고 있는 고무 장화는 낡아서 뒤축이 접히고 기울여져 발에서 벗겨질 듯 위태하고, 걸을 때 질질 끌립니다. 무관 복장을 한 사람은 활과 칼을 가지고 있으나 칼을 등뒤에 둘러매고 교대식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 무관은 칼을 겨드랑이 아래 부분에 찼습니다. 교대의식 자체도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냄새가 납니다. 어차피 고증이 어렵고, 관광객에게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면 차라리 멋있는 갑옷을 입고, 위엄 있는 무기를 든 군졸들을 늘여 세워 놓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경운궁에서 만큼이라도 舊한국의 신식군대 제복과 무기를 갖춘 군사를 함께 배치하여 이 궁궐이 가진 역사성도 살리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경운궁은 舊한국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각종 궁중의식은 세계 궁중문화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했으며, 매우 품위 있게 진행됐습니다. 종묘제례를 보면 우리 궁중의식이 얼마나 수준이 높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위를 압도하는 엄숙함과 절제된 화려함, 품격 높은 상징성이 합쳐져 진행되는 종묘제례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조선시대의 수준높은 문화와 선왕들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王朝史를 다룬 史劇에서는 궁중문화에 대한 고증을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물론 옛날 史劇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이 궁궐문화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바로 史劇입니다. 때문에 사극에서 궁중문화에 대한 철저한 고증은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극을 보면 大臣들은 체통 없이 궁궐 마당을 뛰어 다니는 모습이 여사로 나타납니다. 임금은 경호원도 없이 머리를 조아린 내시와 시녀들만 줄줄이 거느린 채 이리저리 경박하게 대궐을 이동합니다. 너무나 판에 박힌 왕의 이동 모습입니다. 임금이 비가 오는 데도 비를 맞으면서 걸어 다닐 뿐 아니라, 해가 쨍쨍한 날에도 어느 누구 임금에게 日傘(일산)을 받쳐주지 않습니다. 중전이 툭하면 임금이 국사를 보는 집무실로 뛰어들어와 임금에게 눈을 흘기는 가 하면, 신하들도 중전하고 일대일 독대를 밥 먹듯이 합니다. 임금은 寢殿(침전)에서 조차 곤룡포를 입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임금과 왕비들이 입었던 다른 옷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의 사극에서는 大臣들이 임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國事를 보더니, 요즘은 임금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임금이 이야기 하는데 빤히 쳐다보는 신하도 있고, 어떤 신하는 임금에게 목례를 한 후 곧바로 임금 앞에 다가가 책상다리를 하고 않아서는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어느 신하는 임금 앞에서 1배를 하고, 어느 신하는 2배를 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구잡이로 조선시대의 궁중문화와 군대문화를 고증할 것이 아니라,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협회나 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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