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헌법기관을 통한 대통령의 정치대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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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술과 再신임 발언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입니다. 「헌정 초유의 사태」, 「국가 위기 상황」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盧武鉉 정권의 13개월을 되돌이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헌법과 헌법기관을 통해 상황를 모면했다는 점입니다. 2003년 10월10일 盧武鉉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긴급 국정현안 브리핑」을 통해 『국민에게 再신임을 묻겠다』고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2003년 12월15일 前後』라며 구체적인 날짜까지 지정했습니다. 憲政史上 유래가 없는 일로 政局은 再신임 국면에 빠져 들었습니다. 당시 盧대통령은 核心측근이었던 최도술 前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으로 위기 상태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盧대통령에게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예상됐던 「최도술 비리사건」은 再신임 발언 이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습니다. 대신 정치권에서는 違憲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李萬燮(이만섭) 前 국회의장은 2003년 10월28일 盧대통령의 再신임 국민투표 제안이 違憲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李 前 의장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下에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방법은 자진사임과 탄핵밖에 없으므로 再신임 국민투표는 違憲이며, 대통령직에 대한 再신임 국민투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재산권, 선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남용이므로 違憲이다』 당시 언론은 盧대통령의 再신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盧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을 뽑은 지 일년도 되지 않은 상황 탓인지 여론은 「再신임한다」는 것이 50%를 넘었습니다. 측근비리로 인한 盧대통령의 위기는 어쨌든 여론上으로 용서받는 셈입니다. 재판관 9명 중 각하 5명, 위헌 4명 정치권에서 再신임 違憲 논란은 계속 됐습니다. 再신임 違憲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2003년 11월27일에서야 나왔습니다. 憲裁는 전체 재판관 9명 중 5명의 다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의 再신임 국민투표 발언은 자신의 구상을 밝힌 것에 불과해 이를 두고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재판관 중 4명은 『대통령의 再신임 국민투표 발언만으로도 위헌 심사 대상이 된다』면서 『대통령 재신임 문제는 헌법 72조에서 국민투표 대상으로 정한 외교·국방·통일·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違憲』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憲裁는 再신임 違憲性 판단의 선례를 만들지 않았지만, 盧대통령의 발언이 合憲이 아님은 분명히 했습니다. 어쨌든 헌법기관까지 간 盧대통령의 再신임 발언은 정치권을 흔들어 놓고 정치적 위기를 탈출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盧武鉉 대통령의 위기는 계속 됐습니다. 친형 노건평, 사돈 민경찬, 측근 안희정 등 주위 인사들의 비리 의혹으로 정치적 타격을 계속 받았습니다. 총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또다른 탈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른바 「총선 올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盧대통령은 노사모의 세결집과 열린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사모 회원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 다시 한번 나서 주십시오』 (2003년 12월 19일, 리멤버 1219 행사)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선거법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발언은 계속 되었습니다.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돕는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2003년 12월 24일, 총선 출마 위해 사퇴한 청와대 비서관ㆍ행정관 오찬) 盧대통령은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전한 「공명선거 협조요청」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盧대통령은 2003년 12월31일 열린당 초선의원 7명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도대체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되는 것인지 (선관위에)묻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열린당 지지 발언 민주당이 먼저 2004년 1월9일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盧대통령의 열린당 지지 발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총동원령은 적절치 않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책임정치를 하기 위해, 정책정당이 되기 위해 정부에서 공직의 경험을 가진 사람을 영입하길 원할 것입니다. 또 그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2004년 1월 14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 중앙선관위는 2004년 3월3일 盧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9조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盧대통령에게 선거법 9조의 선거중립 의무 준수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노대통령이 3월11일 특별기자회견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선관위의 견해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했습니다. 3월11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측근비리에 대해서도 변명 위주였습니다. 탄핵소추안 가결과 盧대통령의 憲法 준법성 발끈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004년 3월12일 憲政史上 처음으로 탄핵안을 가결시켰습니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人士에 따르면, 盧武鉉 대통령은 탄핵안이 가결되기 前 스스로 물러날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난 후 再선거에 다시 출마해서 재신임을 받겠다는 계획을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人士의 말이 사실이라면 盧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정도는 쉽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후 『憲裁는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적 판단을 할 것』,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盧대통령은 재신임 발언, 열린당 지지발언 이후 다시 헌법기관의 판단에 정치적 운명을 건 셈입니다. 대한민국 憲法 제69조는 대통령의 의무ㆍ선서조항입니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憲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제69條) 盧武鉉 대통령도 2003년 2월25일 취임하면서 「憲法 준수」를 국민 앞에 약속했습니다. 취임 이후 13개월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적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盧대통령의 「憲法 준법성」에 대해 몇 점수을 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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