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5~6학년 때까지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운동화를 못살 정도로 가난해서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우리들은 여름에는 고무신, 겨울에는 운동화, 중학교 올라가면 시커먼 육상화를 신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고무신은 가난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여름 신발일 뿐이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좋은 운동화가 많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름에 누구나 할 것 없이 고무신 신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고무신은 달릴 때는 불편하지만 용도가 참 많았습니다. 개울에서 고무신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잡은 고기를 고무신에 담아 집까지 오기도 했습니다. 개울 바닥이 울퉁불퉁할 때는 고무신을 신은 채 물장난을 하면 발을 다치지 않아 딱 좋습니다. 

한참 물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젖은 고무신을 양손에 한 짝씩 움켜 쥐고 아랫도리와 윗도리에 골고루 두들기며 장단을 맞춰 노래를 합니다.

“아랫도리 말라라, 웃도리 말라라”

신발의 물기를 빼는 작업입니다. 젖은 고무신의 오목한 부분을 옷에 두들기면 금방 마릅니다. 운동화가 젖었을 때도 이렇게 옷에 두들기거나 뜨거운 바위나 콘크리트 위에 두들기면 금방 마릅니다. 

초등학교 저 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네 친구 한 명이 어느 날 새 고무신을 샀습니다(이곳 기자수첩 어느 곳에 보면 ‘메뚜기 생으로 먹는 친구’이야기가 있는데 그 친구입니다). 새 고무신을 산 친구와 도랑에서 물장난하다가 이 친구의 새 고무신 한 짝이 그만 떠 내려 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비가 많이 와서 도랑의 물 살이 빨랐습니다. 고무신은 미쳐 잡을 새도 없이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친구는 울면서 집에 가서 자기 엄마에게 “누구누구 때문에 신발이 떠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부주의로 신발 한 짝을 잃어 버렸으면서 그 잘못을 우리에게 다 덮어 씌운 것입니다. 이 바람에 이 친구와 같이 놀았던 우리는 엄청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정말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위에서 말한 이 친구가 난데없이 새 구두를 신고 나타났습니다. 그 친구가 걸을 때 마다 신발 뒤축에서 ‘뾰족 뾰족’ 소리가 났습니다. 구두가 발 뒤축과 스치는 소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새 신을 신으면 길이 들기까지 발 뒤축이 다 까지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신발이 깨문다”고 했습니다. 

저와 저의 이웃에 사는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새 구두를 신고 나타난 친구가 한 없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습니다. 급기야 이 친구가 엄청 미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는 새 구두를 신은 이 친구를 괴롭히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친구가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 나는 ‘뿅뿅’ 소리를 구실삼았습니다. 나와 내 친구는 새 구두를 신은 친구의 뒤를 따라가면서 “야, 똥 구두! 빵구(방귀) 좀 그만 뀌어라. 시끄러워 못살겠다”면서 깔깔거리며 괴롭혔습니다. 

이 친구는 울면서 자기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일러 바쳤습니다. 우리는 또 한번 엄청 혼이 났습니다. 이 친구의 주 특기가 무엇이든지 자기 엄마에게 일러 바치는 것입니다(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일러바치는 일은 없어졌다).

고무신의 단점도 많습니다. 발을 보호하는 데는 아주 취약합니다. 길을 걷다가 돌부리를 잘못 걷어차면 발톱이 금방 검게 변하고 심할 경우 빠지기도 합니다. 뾰족한 못이나 산길을 걷다가 가시를 밟았을 때도 괴롭습니다.

뱀을 잡을 때 머리를 밟는 다는 것이 잘못해서 뱀 몸통을 밟을 경우 뱀이 고개를 쳐 들고 발등을 꼭 깨물기도 합니다(독이 없는 물뱀의 경우, 독사는 이렇게 잡다가 큰 코 다친다). 학교에 갔다 오면 발이 금방 꼬질꼬질 해 집니다. 동네 아이들이 한방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 신발이 자주 바뀝니다. 

시골에 계신 저의 아버지는 지금도 고무신만 신으십니다. 구두는 누구 집에 잔치 보러 가시거나 喪家에 갈 때만 신습니다. 아버지는 진흙이 잔뜩 묻은 발에 고무신 신고 지게에 짐을 한 짐씩 지고도 좁은 논둑 길을 잘 오르내리십니다. 아버지는 고무신 안에 풀을 넣어서 발이 신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반면 저는 운동화를 신고도 논둑 길을 내 달리다가 죽죽 잘 미끄러집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름에 발을 씻고 난 후 고무신에 물이 고이면 그 물 몇 방울을 마당에 심은 채소 위에서 툴툴 털곤 했습니다. 들에 일을 하다가 신발 안에 흙이 들어 있어 걷는데 불편한데도 꼭 집까지 와서 마당에 흙을 털곤 합니다. 지독한 가난을 몸뚱이 하나로 짊어지고 오면서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신발 속에 고인 흙 알갱이 하나 물 한 방울도 소중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저는 부모님들 세대의 희생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학교 다니고, 편하게 뛰어 놀며 공부한 (시골에서) 사실상 첫 세대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동네에서 우리 또래 보다 겨우 10살 정도 더 많은 형들이나 누나 세대들만 해도 돈이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우리 모두의 누님들을 생각하면 참 많은 것이 떠 오릅니다.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었습니다.

(사진설명: 왼쪽이 저에게 "똥구두 신었다"고 놀림당하자 자기 어머니께 일러 바쳤던 친구이고, 오른쪽은 저와 같이 이 친구를 놀렸던 친구입니다.
왼쪽 친구는 메뚜기를 날로 먹는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제가 잠시 시골에 내려가자 저를 보기 위해 대구에서 달려왔습니다. 오른쪽 친구는 여름내내 시골에 머물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어서 시커멓게 탔습니다.우리집 마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