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7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했다. 명분은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상 교착상태 타개였다. 그로부터 19일 후인 3월 26일, 카터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 총리와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4차례 전쟁을 치른 두 나라가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경제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다트는 서명식장에서 카터에게 “과장 없이 말해서, 그가 한 일은 우리 세대의 가장 훌륭한 업적 중 하나다”고 했고 카터는 “우리는 길고 험한 장정의 첫 단계에서 승리했다”고 했다.
1979년 평화조약의 핵심은 영토 교환이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단계적으로 반환했고, 그 대가로 두 나라는 전쟁 상태를 종료했다. 그러나 조약 안에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었다.
조약 서문에는 팔레스타인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다른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협정을 거부했다. 구조가 문제였다. 이집트는 자국 영토(시나이반도)를 되찾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되찾을 협상 당사자는 테이블에 없었다. 아랍 연맹은 본부를 카이로에서 옮겼고, 대부분의 회원국이 이집트와 인연을 끊으며 10년 가까이 이집트를 고립시켰다.
카터가 말한 ‘첫 단계’는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단계’로 이어지는 계단은 설계되지 않았다.
이후 중동 평화 협정은 이어졌다.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조약이 체결됐고,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바레인·아랍에미리트(UAE) 간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됐다. 수단과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별도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협정이 늘어날수록 팔레스타인 문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서안지구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정착촌을 확대하며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강경정책을 강화했다.
평화 협정의 구조적 결함이 여기 있다. 중동 평화는 매번 '이스라엘 대 아랍 국가' 구도로 설계됐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부록이었다. 아랍 국가들이 하나둘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할수록, 팔레스타인은 협상 테이블에서 더 멀어졌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이스라엘은 이튿날 하마스에 선전포고했다. 가자 전쟁은 2년을 넘겼다. 사다트 이후 이집트는 1979년 조약의 틀 안에서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가자 전쟁 중 팔레스타인 난민의 시나이반도 이주를 반대했고, 1979년 평화협정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국경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1979년 평화조약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을 끝낸 게 전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가자지구에서 이란-이스라엘 충돌로 번졌다.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2026년 2월 28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합동 공격을 개시했다. 이란은 바레인·UAE·쿠웨이트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탄도 미사일로 공격했다. 중동 전체가 전장이 됐다.
1979년 카터는 두 나라 정상을 중재했다. 2026년 중동에는 중재자가 없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군사 동맹국으로 직접 참전했다.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 팔레스타인 문제, 이란의 역할, 핵 문제라는 구조적 조건은 여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