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이문길

산 위에 있는 구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디 갔다 오는지

매미 울고 귀뚜라미 우는 골짝에

누가 말없이 사는지

산 넘어 살다가

원통하게 산이 되어

말 없는 산

거기 같이 가자 해도

말 안 듣는 것이 있어

할 수 없이 혼자 온다는 구름

산 넘어오는

구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산속 어디서

울다 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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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낙엽 밟는 소리

무섭다

내 늙어 빈 몸

낙엽 위를 걷는다

내 발끝에 일어난 낙엽

무섭다

바람이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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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2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세상을 떠돌다 오면

곁에 와 있는 푸른 하늘

나 멀리 안 가고

돌아왔다고

반갑게 맞아주는 푸른 하늘

나는 오늘도 본다

하늘에서 다 떠돌고

돌아가는 흰 구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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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날

구름이 무서운 날

지붕 위에 와 있는 구름이 무서운 날

바람 소리 무서운 날

덜컹이는 창문 소리 무서운 날

저녁 늦게 위층에서 나는

젓가락 소리 무서운 날

발마 불어도 구름 안 가는 무서운 날

집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는 날

사는 것이 싫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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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해가 떠 앞산을 오를 무렵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잠을 잔다

소용없는 세상일을 걱정하느라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 자고 깰 무렵

해는 서쪽 산언덕에서 자고

내가 다시 잠에 겨워할 무렵이면

해는 나보고도 못 본 척 산을 넘어간다

나 어릴 적부터 같이 다니던 해

안 보여 섭섭한 날은

해와 나 우주 어느 곳을 지나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은 왜 밝았다 어두워지는 것일까

해도 나같이 세상에 있을 곳이 없어

하늘에서 떠도는 것일까

해와 나 세상 뜨는 날은 언제일까

해 보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나 실눈 뜨고 잠든 체하며 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낮이 지나가고 밤이 되어

하늘 다시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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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길

살마 안 보려고

뒷문 밖으로 나왔더니

마을 뒤 개울까지 와버렸네

마른 갈대숲에 살던

겨울 물오리 떠나고 없네

사람 없는 길 간다고

고개 숙이고

뒷문 나왔더니

들녘 끝에 있는 

빈 산 어두워지네

노인이 된 릴케의 시

원로 시인 이문길이 시집 《구름》(브로콜리숲)을 펴냈다.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그의 시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내면의 진지한 탐색이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고독하게 한다. 슬픔을 응시하고 그 깊이를 공감하며 삶을 받아들이고 반드시 견뎌야 한다는 다짐을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하게 만든다.

노년의 삶이 고독과 성장의 관문을 계속 두드리며 아름다움으로 완성될 수 있음을 그의 시를 통해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 시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근원은 슬픔과 접하는 적막의 아름다움이다.

시인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완벽한 고요를 이루며 침묵과 적막 속에서 자연과 인간, 신의 문제까지 더듬게 한다. 시에 대한 의지, 예술에 대한 사랑을 움켜쥐고 끊임없이 삶을 변주한다. 아무리 변주해도 모자람이 없다. 행간의 울림 때문이다.

기자는 이문길 시인의 시를 읽으며 고독의 시인 릴케를 읽는 듯 하다. 노인이 된 릴케는 수사와 비유를 걷어내고 소박하고 정결한 생을 응시한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 성장하며 슬픔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화해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주머니 속에 해결책을 있다는 사람을 경계하고 스스로 내면의 답을 찾는 고독이, 쓸쓸함이, 적막이 우리 삶의 일부이자 본질이란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킨다.

이문길의 시는 슬픔이요 적막의 아름다움이다.

시집 앞에 쓴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이제 시를 그만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써야 할 것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 명시는

아내를 산에 두고 돌아오며 쓴 시다.

산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돌아서 다시 묻는다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