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故 오현경 “인격이 훌륭한 배우는 천한 역을 해도 천하게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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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봄날’(작 이강백·연출 이성열)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군림하는 폭군 아버지로 나오는 배우 오현경. 2012년 3월의 공연 모습이다. 사진=조선DB

큰 욕심 없이 살았어요. 게걸스레 돈 벌려 하지 않았고 감투욕도 없었고 . 항상 후배들 붙잡고 연기 얘기밖에 안 하니까. 두 번 택시 탈 돈으로 버스 타면 후배 밥 사 줄 돈이 나오니까 . 그런데 요즘은 후배들이 없어요. 전부 바뻐() .”

 

기자는 월간조선 20177월호를 통해 배우 오현경(吳鉉京, 1936~2024) 선생과 만났다. 무대도, 연기도, 연극의 역사도 모르는 기자에게 선생은 친절히 무대 위의 삶을 고백했다.

 

조곤조곤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화술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후 그해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선생의 대표작 봄날이 무대에 올려졌다. 기자에게 초청 티켓을 보내 주었다.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경지를 보여준 아비 역()으로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기자도 그 박수 소리에 얇은 손바닥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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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에서 방영된 TV 손자병법출연진. 오현경을 비롯해 서인석, 정종준, 김희라, 김성찬 등이 출연,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다. TV 손자병법에서 자재과 만년 과장 이장수로 분한 오현경. 상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아래 위에서 공격받는 중간 간부의 비애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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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손자병법〉의  이장수 과장

 

배우 오현경은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TV 드라마에서 어정쩡한 빛깔의 평범한 배역을 개성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KBS TV 손자병법이 그 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고 왜소한 체구에 등이 굽은, 결재판을 가슴에 든 이장수 과장의 모습은 샐러리맨의 전형이자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의 기자 모습, 40~50대 샐러리맨의 전형이었다.

 

상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아래위에서 공격받는 중간 간부의 비애랄까? 원래 이 드라마는 방송국에서 기획한 게 아니에요.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출을 맡았던 후배가 낙하산으로 KBS에 들어갔는데 나를 만나 도와달라고 해요. ‘뭘 하고 싶은데?’ 하고 물으니 사회풍자극을 하고 싶대요. 며칠 고민해서 이장수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부하직원 불만을 받아서 윗사람에게 총대 메는, 왠지 어눌한 샐러리맨 캐릭터로 구린내 나는 현실과 맞서는 모습이랄까?”

 

선생은 이런 말도 했다.

 

언젠가 건설사 사장까지 한 선배가 TV 손자병법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고 했어요. 속으로 눈물 나는 장면이 있었나?’ 싶었죠.

 

부하직원이 선배님들은 지금껏 뭘 하셨습니까라고 따지는 장면이 있어요. 후배 공격에 당황한 이장수 과장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처럼 상사한테 대들 듯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놨어라고. 정작 자신은 상사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면서 말이죠. 마지막 장면에서 달빛 아래 술 취한 이장수가 비틀대며 걷는 모습이 클로즈업됩니다.

 

 

건설사 사장 선배가 그 장면을 보고 자기 얘기 같더라는 겁니다. 그분이 1980년대 중동(中東)특수 시절, 사우디에 갔었는데 성공해서 돌아오면 부장으로 진급하고 실패하면 짐을 싸야 하는 시절이었대요. 그분이 사우디에 갔다 돌아오니 자기 책상이 없더랍니다. 참 비참했다는 거예요.”

 

선생은 TV손자병법의 이 장면도 추억했다.

 

극중 소제목이 사내(社內) 노래자랑이었는데, 직원들이 업무는 안 보고 전부 노래연습을 하는 거야. 회사 옥상에 올라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를 열심히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제가 옥상에 올라가 야단을 쳐요. ‘뭣들 해! 일 안 할 거야? 빨리 들어가!’라고 고함친 뒤 이장수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요. 거기엔 회사 사장의 십팔번곡 김정구의 두만강가사가 적혀 있어요. 그러곤 혼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부릅니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배를 잡고 요절을 해.

 

 

결국 사내 노래자랑에서 이장수부서가 상을 타요. 그런데 상금을 세상 떠난 동료의 미망인을 찾아가 전달하는 장면으로 극이 끝납니다. 시청자 가슴을 찡하게끔 극중 장치를 한 거지.


 

얼마 후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이 분장실로 저를 찾아왔어요. ‘! 오현경이. 이래도 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요. ‘, 인마! 직업으로 웃기는 우리를 웃겨 놨으니 이제 우리는 뭘 해야 되는 거야?’.”

 

 

그가 TV에서 한창 주가가 높을 때 한 제약회사가 그에게 광고출연 대가로 개런티 120만원을 내놓았다. 당시로선 거액이었다고 한다. 배우 김지미의 광고 개런티가 10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왜 거절했냐고? 굳이 말하자면 얼굴을 상품으로 팔지 않겠다는 것인데, 남들이 광고 한 번 안 한 것, 되게 팔아먹네할까 봐 숨겼어요. 그런데 소문이 나서 모교(서울고) 후배가 동문 교지를 만드는데 그 얘기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제가 그랬어요. ‘여보슈, 생각해 줘 고마운데 무슨 후배에게 귀감이 된다고 . 돈 벌 기회가 있는데 벌어선 안 된다? 이게 귀감이요?’라며 거절했어요.”

 

 

선생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주위에서 넌 그래도 TV 탤런트 해서 돈 벌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 말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재산은 모으지 못했어요. 지금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불편하지 않아요. (밖에) 나오면 으레 찻값은 내가 내는 걸로 알고 살았고 . 그런데 배우들이 TV에 맛을 들여 아예 연극판에 발을 끊어 .”

 

만년 배우오현경은 2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연극이다. 초기 연극 무대에서 햄릿의 마셀러스, 포기와 베스의 사이먼 폴레더, 세일즈맨의 죽음의 해피로 분()했다. 특히 1962년작 포기와 베스(뒤보스 헤이워드 작)에서 흑인 변호사 사이먼을 연기해 유치진(柳致眞) 선생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휘가로의 결혼이다. 1969년과 76, 77, 83, 85년까지 5차례 재공연될 때마다 상대 역은 바뀌어도 휘가로 오현경은 바뀌지 않았다. 초연 당시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그 공연처럼 재미있는 공연도 없었다. 배우들 간 호흡이 잘 맞았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런데 공연 시작 날, 분장실에 배우가 없었다. 자기 신이 끝났는데도 전부 무대 옆에 서서 연극을 보고 있었던 거지. 연습을 하면서 그렇게 봤으면서도 또 재미있는 거야. 이후 맹진사댁 경사(1969년작)도 공연했지만 그때만큼 재밌는 공연은 없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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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오현경 선생.

 

 

오현경의 조상은 대대로 경북 영양에서 살았지만 그는 서울 안국동에서 태어났다. 북촌 출신이란 점이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연극계에서 몇 안 되는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아는 배우라고 할까. 특히 화술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그의 지론은 무대의 소리는 그냥 생소리가 아니라 발성에 의해 내야 한다이다. 횡격막(横膈膜)을 죄어 내는 듯한 소리로, 3~4 시간 무대 위에 서도 목이 잠기거나 쉬지 않는다. 목을 자극하지 않는 발성법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소리도 배 안에서 졸였다 늘였다 하면서 소리가 여기()서 나오게 하고, 모음과 자음을 입 모양에 따라 나오게 해야 합니다. 목을 무리하게 공명시키는 대사는 어렵고 금방 목이 쉬어요. 배에서 나와야 감동적인 소리가 돼요. 목소리 톤이야 누구는 뾰족하고 누구는 굵지만, (배에) 그릇을 놔두고 객석이 모르게 호흡을 해야 오래 연기할 수 있어요. 그런 대사를 들어야 관객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냥 대본 외워 소리 지르는 거야 누군들 못해.”


 

입모양이 부정확하면 올바른 발음을 내지 못한다. 사실, 각각의 발음에 정확한 입모양을 내기란 어렵다. 하지만 배우의 생명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발성이 부정확하면 대사 전달은 물론 느낌의 전달도 어렵다. 오현경은 젊은 시절, 가방 속에 항상 우리말 발음사전을 갖고 다녔다.


선생님도 공연할 때 긴장하나요.


 

그럼요. 안 그런 것 같지만 실지론 긴장합니다. 물론 (무대에) 익숙해졌으니까 조금 덜하죠. 오히려 신인들이 멋도 모르고 (연기를) 막 하는 경우가 많죠. 선배에게 연기를 배울 때, 기교가 아닌 정신을 배워야 해요. 무대에 임하는 정신 말이죠. 신인 시절, 명동예술극장에 가면 변기종(卞基鍾) 선생님이 항상 무대 곁 조그만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까마득한 선배여서 목례만 했지 말을 붙이질 못했어요. 그분은 공연을 앞두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어요. ‘기도를 드리시는구나생각했어요. 그 뒤로 저 역시 공연 시작 전 심호흡을 하고 오늘 연극이 잘되게 보살펴 달라. 오늘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기도했어요.”


 

누구를 향해서요?


 

나의 신() 지금은 하느님이지만 그땐 신앙생활을 안 할 때였어요.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변기종 선생이 항상 무대 앞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이유가, 시끄러운 잡담과 배우들의 음담패설, 흡연 탓에 분장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랬다는 겁니다. 실지로 기도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제 눈엔 기도하는 모습이셨어요. 그게 중요해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얻는 행복이나 기쁨은 어떤 것인가요.


 

관객 반응을 쭉 빨아들일 때, 관객을 (긴장으로) 죄었다가 풀었다가 할 때 쾌감을 느껴요. 배우가 그런 쾌감을 못 느끼면 극을 끝까지 끌고 가기 힘들어요.”


성격파 연기 같은 악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대에서 60년 넘는 세월을 보냈더니 이젠 연기하는 이의 인격이 다 보여요. 인격이 훌륭한 배우는 아무리 천한 역을 맡아도 천하게 보이지 않아. 진짜 천한 역할이 필요하면 천한 사람 불러다 앉히면 되잖아요. 연기는 결국 아름답게 보여야 해요. 아무리 악역이든, 악역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 악역 속에 배우의 인생을 담아야 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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