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선생의 ‘한국인 이야기’ 두 번째 시리즈인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너 누구니》(파람북 간)가 출간됐다.

채집시대로부터 농경, 산업, 정보화 시대를 넘어가는 한국 문명의 거대한 파도타기가 바로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다. 평생의 지적 편력을 집대성한 최후의 저작 시리즈라고 해도 무방하다. 첫 권 《너 어디에서 왔니》는 지난 2020년 2월 간행됐다.

선생은 두 번째 책 《너 누구니》를 준비하다 지난 2월 작고하였다.

이 책은 젓가락 이야기다. 젓가락에는 부지깽이와 작대기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단어. “젓가락에 한국인의 문화적 밈(Meme),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정체성), 신분증이 들어 있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었다. 다음은 선생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젓가락을 떠올려 봐요. 자연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집는 순간, 문화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냥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손가락을 닮은 가지를 꺾고 다듬는 단순하지만 최초의 공정, 도구를 만드는 과정이 문화예요.”

그런데 선생의 사유는 인류의 시원(始原)으로 거슬러 가는데 젓가락은 인류 최초의 전사(戰士)가 쓰던 ‘작대기’, 인류 최초의 요리사가 쓰던 ‘부지깽이’와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헤라클래스가 사자를 때려죽일 때 쓴 도구가 뭐예요? 곤봉이거든요. 다시 말해 작대기입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자기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던 작대기가 여의봉이잖아요. 유럽의 군주들이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이 왕홀(王笏)입니다.”

인간은 불을 발견하면서 뇌가 발달하게 되고 결국 인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젓가락도 불을 다루는 것, 부지깽이와 관련이 있다.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극심한 추위를 이겨냈고, 수렵 채집의 한계를 극복했으며 으르렁대는 호롱이, 사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자연의 열매로는 소화가 어려운 밀, 쌀, 감자가 인간의 주식(主食)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불 덕분이었어요.”

심지어 불을 익히면 음식을 오염시키는 세균과 기생충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죽은 동물도 구워 먹을 수 있었다.

불을 다루기 위해서는 작대기가 필요한데 이 작대기가 부지깽이이고, 이 부지깽이를 다루는 여성이 바로 인류 최초의 요리사다. 그리고 이 부지깽이가 발전해 젓가락이 되었다.

“불을 이용해 요리하려면 부지깽이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데 두 개가 있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요. 이렇게 등장한 것이 부젓가락이고 젓가락이 된 것입니다.”

생전 선생은 “젓가락이야 말로 문화유전자”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젓가락이 그게 정말 하찮은 것이라면, 어떻게 천년도 훨씬 넘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금관 장식과 함께 청동 수저가 발굴될 수 있었겠습니까. 단순히 젓가락이라는 도구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가 모두 젓가락질하는 방법을 잊었더라면, 그것은 단순한 두 개의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끼니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천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

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