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는 시집 ⑮] "손등 별 자리 같은 부스러기"... 이옥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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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주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인문학사)를 펴냈다. 2018월간 시추천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세계를 확장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상처감각의 문제를 한층 밀도 있게 밀어붙인다.

 

긴 길이의 사랑이 머물렀다

 

비행기 안에서 대나무 젓가락으로

손가락에 실을 걸고 또 걸어

정으로 다듬어 떠올린

성글게 짠 목도리를 내 목에 두른다

 

밤하늘에 푸른 별과

반딧불이로 짠 목도리

하나밖에 없는 처음

 

밤 비행 동안 공중에서 엮은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당신의 손길을 가슴에 얹어 본다

 

목도리를 접어 또 접어 볼에 비비면

그 자리에 스며드는 물빛으로

먼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아이가 있다

-‘이야기 속으로전문

 

서시 이야기 속으로에서 시인은 사랑을 목도리로 형상화한다. “푸른 별과 반딧불이로 짠 목도리라는 구절은 사랑을 감각적으로 직조한다. 이 목도리는 단 하나뿐이며,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손길로 완성된다. 긴 길이, 목도리, 푸른 별, 반딧불이, 물빛, 먼 이야기가 사랑으로 이어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아이가 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만의 서사를 쓰는 시인이 바로 아이다. 시인의 자아가 곧 서사의 생성자로 기능하는 지점이다.

 

메시지를 너에게 보내지 못하고 내게 보낸다

 

보내온 문자의 거미줄에 얽힌다

그것은 지나가는 발자국이 아니다

 

감춰 두었던 못으로 그어댄다

아픈 가시 하나 새롭게 깊이 박힌다

 

가시를 빼어내 아물고 새 살이 생기려면

많은 흔적이 지나가야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차린다

(중략)

들은 것을 지워야 한다고 한 걸음 물러선다

 

손등에 나타난 별 자국 같은

부스러기가 지나간다

-‘우리는일부

 

반면 우리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상처의 물성이 드러난다. “감춰 두었던 못으로 그어댄다 / 아픈 가시 하나 새롭게 깊이 박힌다는 구절은 언어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촉각적으로 환기한다. 시인은 상처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등에 나타난 별 자국으로 치환해 미학적 형상으로 끌어올린다. 상처를 감각의 표식으로 전환하는 지점에서 이 시집의 미덕이 드러난다.

그래서 상처투성이 시인이 아름다운 이유다. 전해지지 않는 내용 같은시에서 상처를 견디는 힘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견디는 힘은 멀리 바라보고

비오는 숲길로 들어서서

아침 새들의 소식을 듣는 일이야

-‘전해지지 않는 내용 같은일부

 

시인은 상처의 공감력이 뛰어난 존재다. 어깨에 앉은 꿈을 보자.

한 낮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이의 어깨가 조금씩 넘어온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온전히 무게를 얹는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옆자리 승객의 꿈을 똑같이 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느리게 걷는 그림자에, 그림자가 이어져 /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고 쓴다. 낯 모른 사람의 꿈에 공감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는 그 흔한 상처나 아픔도 곧 치유될 것이다. 치유되지 않더라도 그 가시는 나만의 가시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으로 친절히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


한밤에 혼자 듣는 멜로디는

다음날도 입속에 남아 접어지지 않습니다

 

짧게 적어 놓은 하루는 밤으로 찾아들고

저녁의 말들도 젖어 듭니다

 

놓치고 살았던 일들과 나를 단련시키는

모든 일이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

 

기대를 버리면 편해집니다

일출과 일몰의 중간에 끼여 애만 쓰고 말았습니다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

 

잊어버린 것에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잊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나무가 같은 자리에 있듯이

그 자리에 나도 서 있을 거라 여깁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내는 초침소리가 들립니다

밀려가고 밀려가는 어움은 다른 방향으로 가버립니다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것에 대한 느낌이 환해집니다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전문

 

표제작 달의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요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의 축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문장 구조 속에서 시인은 바깥이라는 위치를 강조한다. “접어지지 않거나”, “익숙해지질 않거나”, “반응하지 않거나와 같은 부정형 서술은 세계와의 거리를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소외가 아니라, 대상과 자아를 분리해 인식하려는 견자(見者)’의 시선이다.

 

그러나 이 분리는 냉소로 귀결되지 않는다. 시인은 나무가 같은 자리에 있듯이 / 그 자리에 나도 서 있겠다고 말한다. 세계를 밀어내는 대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정립하려는 태도다. 더 나아가 새로운 것에 대한 느낌이 환해집니다라는 구절은 상처와 가시를 미래의 감각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허형만(목포대 명예교수)은 이 시집에 대해 관습적인 감정을 거부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나아가려는 초월적 지향을 읽어낸다. 실제로 이 시집의 핵심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감각의 재구성에 있다.


이옥주의 시는 상처를 제거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끝까지 감각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더 이상 개인의 고통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확장된다. ‘달의 바깥이라는 위치는 결국 현실을 밀어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보기 위한 거리다. 그 거리에서 시인은 상처를 끌어안고, 그것을 새로운 빛으로 번역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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