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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의 한국사회 읽기 〈8〉 설문조사로 본 중화학공업 부문 노동자의 노조 평가

현장 노동자들도 ‘귀족노조’ 행태 자성

글 :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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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현대위아, 두산중공업 고참 숙련기능공 39명 대상 조사 …, 36명이 중간계층이라고
    답변
⊙ IMF사태 때 고용위기 겪은 노동자들일수록 ‘귀족노조’와 노조의 강경한 행태에 비판적
⊙ 노조활동하는 현장 노동자들도 64.9%가 ‘노조 강경하다’고 답변

류석춘
1955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역임. 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박정희기념재단 부이사장 / 《막스베버와 동양사회》 《발전과 저발전의 비교사회학》
《한국의 시민사회-연고집단, 사회자본》 《유교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동아시아 유교자본주의 재해석》 등 저술
2016년 7월 20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노조, 금속노조 울산지부 등 노동자 1만여 명이 총파업집회를 열었다.
  필자는 《월간조선》 2~4월호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방패막이로 삼아 전투적인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으며 고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리는 대기업 중화학공업 부문 노동자들, 이른바 ‘귀족노조’의 형성과정을 다루었다.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진정한 불평등은 노동자와 기업주 즉 자본가 사이에 존재할 뿐 중화학공업 부문 대기업 노동자가 누리는 약간의 보상을 두고 ‘노동귀족’이라고까지 비난하는 것은 자본이 만들어 낸 논리의 함정에 빠져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과연 어느 입장이 옳은가? 필자는 중화학공업 부문의 기능공 출신 노동자들이 이른바 ‘노동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중화학공업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면접의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중화학공업화가 시작된 1972년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1987년까지 공업고등학교 혹은 직업훈련원을 마치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사람들로서,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중공업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세 개의 대기업 즉 현대중공업, 현대위아, 두산중공업에 각각 근무하는 생산직 직원들이다. 이들은 2015년 현재 나이가 40 대 중반부터 50 대 후반까지이며, 대부분 해당 회사의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고참 생산직 직원에 속한다.
 
  필자가 대상으로 삼은 기업 중 현대중공업은 1997년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위적 구조조정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고, 1995년부터 2013년까지 18년간 무(無)분규 노사관계를 자랑해 온 기업이다. 반면에 현대위아는 1997년 위기 당시 기아기공을 인수·합병한 기업이다. 필자는 실직의 불안을 겪어 본 경험에 주목하기 위해 현대위아 인터뷰 대상은 인수·합병을 통해 입사한 기아기공 출신들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두산중공업의 인터뷰 대상도 1997년 위기 당시 두산중공업에 인수·합병을 당한 대우중공업 출신들로만 선정했다.
 
  최종 샘플은 현대중공업 생산직 20명, 그리고 기아기공 출신의 현대위아 생산직 10명 및 대우중공업 출신의 두산중공업 생산직 9명으로 구성됐다. 현대중공업 면접은 2015년 1월과 2월, 현대위아 면접은 2014년 7월, 그리고 두산중공업 면접은 2014년 8월에 각각 이루어졌다.
 
 
  중화학공업 노동자, 노동자 평균보다 2.5배 더 벌어
 
  이들을 대상으로 구조화한 설문지를 사용하여 나이, 입사연도 (근속연수), 회사로부터 받는 현재의 연간 총수입 (본봉, 수당, 보너스 포함), 주관적 소속 계급 및 주관적 소속 계층 등의 기본적인 인구·사회·경제적 배경을 조사했다.
 
  〈표1〉은 이렇게 조사한 39명의 기본 배경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결과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이들은 나이가 많고(평균 55.2세), 회사에 재직한 근속기간이 길다(평균 34.3년). 참고로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근로자 전체의 평균 근속기간은 5년8개월에 불과하다. 물론 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하면, 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이 7년3개월로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 2년5개월에 비해 약 3배 정도 길다. 이들 인터뷰 대상은 우리나라 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에 비해 매우 장기간 재직한 경우인 셈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회사로부터 받는 현재의 연간 수입도 상당하다(평균 연봉 8152만원).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31만원이다. 물론 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하면 정규직 271만원 그리고 비정규직은 147만원으로 나뉜다. 이를 연간 수입, 즉 연봉으로 환산하면 근로자 전체의 평균은 2777만원이다. 이는 다시 정규직 평균 연봉 3256만원 그리고 비정규직 평균 연봉 1760만원으로 나뉜다. 따라서 조사 대상자들은 2015년 현재 한국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보다 2.5배 많은 보수를 평균적으로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중간계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무응답 7명을 제외한 32명의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를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8명뿐이고, 나머지 24명은 자신들이 중간계급에 속한다고 응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간계급 지향성은 주관적 소속 계층을 밝힌 결과에서 더욱 강화된다. 소속 계층을 5단계, 즉 ‘상, 중상, 중중, 중하, 하’로 구분한 설문에 무응답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응답한 37명 가운데 스스로를 하층이라고 밝힌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나머지 36명은 모두 중간계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위기 겪은 기업 출신일수록 기존 노사관계에 대해 반성
 
  1997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회사와 본인이 겪은 경험을 묻는 개방형 질문에는 예상한 바와 같이 인수·합병을 당한 기업 출신의 응답자들, 즉 기아기공 출신의 현대위아 응답자 그리고 대우중공업 출신의 두산중공업 응답자들 사이에서 실직의 두려움을 겪었다고 답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반면에 현대중공업 응답자들은 거의 모두가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회사나 본인들 모두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1997년의 위기를 겪으며 이들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노사쟁의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가? 만약 변화를 겪었다면 그것은 어떠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가? 민감한 질문이었기 때문인지 무응답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응답을 한 경우,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응답이 다시 절반가량 됐다. 특히 경제위기 당시부터 노사 간에 무분규 신화를 이어 간 현대중공업 응답자들은 노사문제에 대한 견해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에 반해 인수·합병을 당하면서 실업의 위협을 느꼈던 기아기공 출신과 대우중공업 출신의 응답자는 노사가 상생하고 회사가 잘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회사가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우선으로 하게 됐다” “노조의 눈높이 변화가 필요하다. 즉 임금인상보다는 복지확대로 가야 한다” “회사와 노조의 상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열심히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꼭 같이 나눠 먹는 해법은 문제다”라는 대답도 눈길을 끌었다.
 
 
  ‘노동귀족’에 대한 반성 높아
 
2014년 11월 27일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은 ‘생활임금 쟁취’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임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있다.
  이른바 ‘귀족노조’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세 회사의 응답자 간에 뚜렷한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응답을 한 경우 대부분은 이른바 ‘노동귀족’의 모습을 보이는 대기업 노조의 행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비판적 응답자의 수는 현대중공업 9명, 두산중공업 5명, 현대위아 5명으로 각각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이들은 “노동귀족은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산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노동조합은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키는 중요 원인이며 노조의 과도한 간섭은 스스로의 명분을 위한 것일 뿐 조합원의 실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못한다”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사업자와 노조 지도부의 이익을 추구하는 편중된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이 임금과 기득권을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열악한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답변한 사람도 있었다. “‘노동귀족’은 일부 대기업에서만 나타나는 신성화된 현상”이라고 냉소적으로 답한 이도 있었다.
 
  반면에 ‘노동귀족’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전체 39명의 응답자 가운데 4명). 이들은 “귀족은 무슨 귀족? 언론의 농간” “학교 졸업 후 현장에서 계속 근무하면서 그 정도 대우를 받는 것은 문제가 없다. 대기업 노조를 비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의 논리”라고 답변했다.
 
  이렇듯 ‘귀족노조’에 대한 평가는 중화학공업 노동자 내부에서도 엇갈렸다. 그러나 전반적인 의견은 성찰적인 분위기에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평가라고 요약할 수 있다.
 
 
  1978년 중화학공업 노동자들, 노조에 긍정적
 
  그렇다면 오늘날 ‘노동귀족’이라는 비판에 성찰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화학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이 과거에는 노동조합에 대해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중화학공업 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기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설문조사 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았다. 분석에 사용한 설문조사 자료는 모두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이 공개한 자료다.
 
  우선 살펴본 자료는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수행한 〈한국 노동자와 관리자의 직업의식과 노사정책에 관한 조사〉이다. 이 설문조사는 전국에 있는 기업체의 노무직 근로자와 사무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우편 조사를 한 결과 총 984명이 표본으로 뽑혔다. 그 가운데는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표2〉 및 〈표3〉은 이 두 문항에 대한 응답 결과를 보여준다.
 
  〈표2〉 및 〈표3〉은 당시 모든 직업군에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또 노동조합의 활동이 근로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체 응답자의 62%가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한 전체 응답자의 53%가 노동조합의 활동이 근로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경향이 ‘직공’, 즉 당시 중화학부문의 노동자들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70%가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한 61%가 노조의 활동이 근로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평균보다 높은 수준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19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 조직률 급증
 
  다음으로 선택한 설문조사 자료는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한 해인 1987년 자료다. 다름 아닌 198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수행한 〈한국의 노사관계 및 직업윤리 조사, 근로자〉 자료다. 이 설문조사는 경공업 집중지역인 경인지역(서울, 부천, 인천, 안양, 성남), 중화학공업이 들어선 당시 최신 공단지역(창원), 그리고 광산지역(영월)에 근무하는 생산직 및 사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전체 1667명의 표본을 확보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에는 직장 내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는 문항이 있다. 〈표4〉는 이 문항에 대한 응답 결과를 보여준다.
 
  이 표는 ‘노동자 대투쟁’이 진행되던 1987년의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91%가 직장 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응답자의 직업을 구분하여도 전혀 변동이 없다. 모든 직업군에서 90% 내외의 수준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전후로 기능공이었거나 혹은 경우에 따라 숙련공으로 경력을 상승시킨 당시 중화학공업 부문의 노동자들도 물론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이들이 마산 창원 울산에서의 노동운동을 주도해 나갔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Labor Union Density)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년 만인 1989년 19.8%까지 상승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노조조직률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강하여 2013년 현재 10.3%로 추락하였다. 그림에서 보듯이 1998년 이후, 즉 경제위기 이후 노동조합원 수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조조직률은 지속적으로 하강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의 증가 때문으로 짐작된다.
 

 
  노조원들조차 노조의 강경성 인정
 
  마지막으로 선택된 자료는 2005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서베이리서치센타가 수행한 〈한국종합사회조사 2005〉이다. 이 설문조사는 전국에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수행하여 1613명의 표본을 확보하고 있다.
 
  2005년 수행된 이 설문조사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은 1997년에 시작된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갈등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귀족’이라는 용어가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이 설문조사에는 ‘귀하는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이 어느 정도 강경 혹은 온건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표5〉는 이 문항에 대한 응답 결과를 보여준다.
 
  이 설문조사는 직업을 구분하는 기준이 앞서 살펴본 조사들과 다소 다르지만, 직업의 범주와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응답자들이 노조의 활동을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체 응답자의 약 69%가 강경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노동조합 활동의 대상이 되는 직업 범주인 ‘관리/전문직’은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74%), 노동조합 활동의 당사자들 직업 범주인 ‘기능직/조립직’은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65%).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당사자들마저도 노동조합 활동이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5%나 된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상황이 누적되면서 ‘노동귀족’이라는 사회적 비난 여론이 등장하여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귀족노조’는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중화학공업 분야의 대기업에서 고참 숙련노동자들은 1970년대 및 1980년대 기능공으로 기술훈련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개발연대의 ‘산업전사’였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과격한 노동운동을 주도했고, 오늘날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필자가 수행했던 면접조사는 그들조차도 오늘날 ‘귀족노조’의 행태에 대해서는 자성(自省)하고 있다. 이는 ‘귀족노조’라는 노조 바깥의 비판이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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