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수사 | 한국 진보의 현재와 미래 : 월간조선

현직 국회의원이 헌정(憲政)사상 처음으로 내란음모·선동 및 국가보안법상 반(反)국가단체 찬양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석기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의원은 지난 5월 12일 자신이 이끄는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 1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등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살상 방안을 논의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사법적(司法的) 판단과는 별개로 지하혁명조직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면서 체제를 전복하려고 한 이석기에 대해 이미 국민들은 사형(死刑)선고를 내렸다. 국민들의 71.8%가 ‘이석기 구속은 잘한 일이다’는 한 언론매체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남한은 다 반역이고 북한은 모두 애국이다”는 이 의원의 언행(言行)이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결론이 났다고 본다.

이렇게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석기 사태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통진당 내 당권파(黨權派)와 민족해방(NL) 주사파(主思派) 등 과거 1970·80년대 운동권의 ‘체제 부정적 사고’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권 시절 단행된 종북(從北)인사들에 대한 무분별한 사면 복권 때문이다. 이석기는 1999년 반국가단체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 활동을 하다가 2002년 검거되어 2003년에 2년6개월의 실형(實刑)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반성문 한 장 없이 8·15 특사로 같은 해 가석방(假釋放)되었고, 2005년에는 사면 복권되었다. 이런 특전(特典)에 힘입어 이석기는 물밑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종북 지하조직을 만들었고 급기야 통진당의 당권을 장악해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入城)했다.

진보에 대한 맹목적 관대함

2011년 11월 20일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운데),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오른쪽),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노회찬 전 의원(왼쪽)이 기자회견을 열고 진보정당 통합을 선언했다.

종북 세력이 “국회를 ‘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고 외치면서 당당하게 이적활동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도 많다.

첫째, 진보에 대한 맹목적 관대함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 평화세력= 민주화 세력= 개혁 세력= 미래 세력’이라는 도식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심지어 헌법 밖의 진보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며 사회적 약자(弱者)를 대변한다고 외치면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었다.

대한민국 진보 세력을 세부적으로 분류해 보면 크게 세 종류이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 진보’,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존중하며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 목숨을 건 민주화 운동을 펼쳤던 ‘민주 진보’, 생활 속에서 진보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는 ‘민생 진보’로 구별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진보 진영에 대한 옥석(玉石)을 가리지 못한 채 종북 세력을 진보의 울타리에 묶어서 인정하는 치명적인 우(愚)를 범했다. 진보로 위장한 ‘종북 가짜 진보’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했다.

둘째, 선거 연대(連帶)와 무분별한 통합의 무(無)책임성이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통진당과 전국적·포괄적 야권연대를 했다. 당시 민주당 한명숙(韓明淑) 대표는 통진당과의 야권연대 협상을 타결한 후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되돌려 놓을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10월 민주노동당은 NL 계열 간부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내통한 ‘일심회 사건’으로 촉발된 종북 문제를 둘러싸고 심상정·노회찬(魯會燦) 등 비주류(非主流) 인사들이 탈당(脫黨)해 신당(新黨)을 만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민노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주대환(周大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민노당이 분당될 때 사실상 종북 성향의 사람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진보대통합의 명분을 내세워 당권파가 장악한 민노당은 PD계열의 진보신당은 물론, 유시민(柳時敏) 전 대표의 국민참여당과 재(再)통합했고, ‘진보 진영’은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뭉쳤다. 민주당과 진보 세력은 종북 세력의 위험성을 알고도 이들의 정치적 동원력이 필요해 손을 잡았다. 과거 대표적 좌파 경제학자였던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중적 지지를 상실한 종북 세력은 국가와 민주당이라는 숙주(宿主)에 기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야권 連帶가 從北의 위험 희석시켜

종북 세력과의 원칙 없는 연대와 무분별한 합당이 결국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주는 꼴이 되었다. <표1>에서 보듯이, 지난 2012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야권 후보단일화에 대해 ‘잘못한 것’ 이라는 부정적인 평가(32.1%)보다 ‘잘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46.6%)가 14.5%포인트 더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강원 지역만 반대로 ‘잘못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48.6%)가 ‘잘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37.8%)보다 더 많았다. 안보에 민감한 강원지역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은 13석(지역구 7석 + 비례대표 6석)을 얻어 제3정당으로 부상(浮上)했다.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민주당은 777만5737표, 통진당은 219만8082표를 얻어 야권연대가 997만3819표를 얻었다. 이는 새누리당(912만9226표)보다 무려 84만4593표가 많았다.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은 통진당의 실체를 모른 채 야권 연대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선거학회 분석 결과,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었던 사람 가운데 비례대표 투표에서 통진당을 찍은 사람이 무려 11.3%나 됐다. 여하튼 민주당과 통진당 간의 후보 단일화는 통진당 내 당권파들의 종북 이미지를 희석(稀釋)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민주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과 추진했던 야권연대로 인해 종북 세력과 손잡거나 방치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조경태(趙慶泰) 민주당 최고위원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주당에 일면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종북 세력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는 왜곡된 정치 제도의 위험성이다. 무엇보다 체제 전복(顚覆)을 꿈꾸는 종북 주사파 인사들이 진보로 둔갑해 제도권에 침투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통진당의 잘못된 비례대표 후보 선출 경선(競選) 제도 때문이었다.

2012년 4·11 총선 당시 통진당 당원이었던 이청호 부산 금정구 의회 의원은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은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근 통진당의 부정경선 사건을 정리한 책 《2012 통합진보당 자살백서-진보는 죽었다》에서 “투표 관리원들이 이동 투표함을 들고 다니며 특정 후보를 찍도록 유도했다”고 폭로했다. “집에서 PC로 인터넷에 접속해 투표해야 할 온라인 투표도 현장에서 아이패드로 하도록 했다” “총선 당시 부정선거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폭력까지 동원해 사퇴를 거부했다”며 “이번 내란음모 사건은 이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예고된 사태”라고 말했다. 이석기와 통진당 당권파들은 이런 왜곡된 정치 제도를 교묘하게 활용해 뼛속까지 종북 활동을 펼쳤다.

保守 우위로 이념지형 변화

정치권에서는 이석기 의원 제명과 통진당 해산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통진당을 위헌(違憲)정당으로 해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했다. 사실상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과 관련해 통합진보당의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게 가능한지 법률적 검토를 하기 위해 꾸려진 기구다.

하지만 통진당 해체가 대한민국 진보의 몰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진보가 없는 세상은 보수가 없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진보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잃어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는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진보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이념 지형 변화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와 박근혜(朴槿惠)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의 이념 지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최근 보수 우위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 한국선거학회의 2012년 대선 직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이념 지형이 ‘진보 25%, 중도 35%, 보수 40%’로 재편되었다.

이석기의 내란음모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통진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이탈은 가속화되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9월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원이 공개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 내용에 대해 국민의 61%는 ‘사실일 것’이라고 했고, ‘사실이 아닐 것’은 12%에 불과했다.

진보세력에 대한 호감·신뢰 急落

〈표2〉에서 보듯이 한국선거학회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직후 실시한 정당 및 정당 지도자에 대한 선호도 분석 결과, 통진당의 선호 점수는 10만점에 3.94점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새누리당(4.99점)과 민주당(4.97점)과 비교해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19대 총선 직후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지고,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이정희 통진당 후보가 보여준 퇴행적(退行的)인 행태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후, 국민들의 통진당에 대한 혐오는 강화되었다. 한국선거학회의 2012년 대선 직후 국민의식조사 결과, 통진당의 선호 점수가 2.22점으로 급락했다.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싫어한다’는 비율이 무려 71.9%로 ‘좋아한다’(5.5%)보다 13배 정도 많았다. 2012년 총선 때와 비교해 ‘싫어한다’는 비율(43.2%)은 1.67배 늘었고, ‘좋아한다’는 비율은 2.84배 줄었다(15.6%→5.5%).

이정희 통진당 대표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2012년 대선(大選) 직후 조사에서는 ‘싫어한다’는 비율이 무려 71.5%로 ‘좋아한다’(9.2%)보다 약 8배 많았다.

진보 진영의 영향력과 신뢰도도 급속하게 하락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8월 5일부터 8일까지 1800명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 파워 조직 24곳의 영향력과 신뢰도에 대한 국민인식 평가 조사를 실시했다. 통진당(23위)과 정의당(24위)은 24개 조사대상 기관 가운데 영향력 및 신뢰도 모두 최하위였다.

그동안 진보 세력으로 자리매김됐던 참여연대(21위)는 물론, 민주노총(20위) 모두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진보 진영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는 진보 진영의 위기를 넘어 몰락을 재촉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진보 진영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진보의 自省 필요

진보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보수와 경쟁하는 정치세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낡은 진보에서 탈피해 합리적이고 책임있는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더 이상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 가짜 진보’의 숙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6월 11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진보정치는 과거의 낡은 사고 틀에 갇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 진보정치 혁신에 실패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종북 논란’을 의식해서 “진보정당은 안보불안 세력이라는 불신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분단과 전쟁을 겪은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이념적 트라우마와 안보불안을 깊이 주목하지 못했고, 이에 성실히 응답하지 못했다”고 자성(自省)하기도 했다.

이제 진보가 정말 변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스스로 북한 체제 변화를 더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햇볕정책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북한 내부를 더 냉정하게 직시하고 비판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그동안 종북 진보 세력들은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서만 목청을 높였지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 북한을 자극하면 평화가 깨진다는 황당하고 구차한 논리로 침묵했다. 국회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2월 14일에 285명의 만장일치로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석기를 위시한 통진당 6명의 의원 전원은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인권, 반핵, 반전·평화와 같은 진보의 기본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침묵한다면 나쁜 진보, 거짓 진보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조차도 실행하지 못하는 세력이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진보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며 북한을 향해 어떤 경우에도 대남도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피력해야 한다.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국가부정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간다는 대국민 선언도 있어야 한다.

차제에 진보 진영은 천안함 폭침 사태에 대해 북한의 소행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도 있다. “북한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진보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선언도 해야 한다. 더불어 진보에 각인된 강경 노선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비판보다 대안이, 거대한 담론보다는 일상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실용 진보, 민생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당도 반성해야

2013년 9월 4일 국회 앞에서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공안탄압규탄대책위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처리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둘째, 민주당은 앞으로 종북 세력과 무분별한 선거 연대를 지양하고 이석기 의원 제명 처리와 통진당 해산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 김한길 대표는 통진당과의 관계에 대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과는 단호히 절연하겠다”며 “통진당 이정희 대표가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고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면 용납하기 어렵고 같이 가기 힘들다”고 했다.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종북 논란을 불식시키고 종북과 연결된 집단과는 단호히 절연해야 한다. 종북의 꼬리를 잘라 내야만 새누리당의 종북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석기 징계안에 한 치의 미적거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추미애(秋美愛) 의원도 “(민주당도) 낡은 진보 세력과 선거연대를 한 게 불찰이었다면 앞으론 힘이 부치더라도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민의 64%가 민주당이 통진당이 참여하는 집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잘한 일’이라고 응답했다. 이석기 사태에 대한 《중앙일보》 여론조사(2013년 9월 6~7일)에서도, 민주당과 통진당의 야권연대에 대해 ‘종료를 공식 선언해야 한다’는 의견이 48.3%로 ‘연대 여부와 무관하다’(33.7%)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與野, 극한투쟁 지양해야

민주당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칫 잘못 대응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가령, “국가정보원의 죄(罪)가 이석기의 죄보다 크다”는 김한길 대표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그 뿌리가 독재정권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고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면서 틈만 나면 종북몰이, 매카시즘에 기대기에 여념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황우여(黃祐呂)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 자유민주주의에 기생(寄生)한 종북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지 않았는지, 또 지금도 비호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국정원의 이 의원 구속에 대해 ‘종북 내란세력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결단’(56.8%)이란 쪽이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사건을 무마하고 개혁을 회피하려는 카드’(33.1%)란 응답보다 높았다는 것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상대방을 악(惡)의 축(軸)으로 몰아가면서 극한투쟁을 하게 되면 종북 세력은 반드시 빈틈을 노리며 정치 불안정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들에게 동조하는 세력을 또 다시 규합할 것이다. 김한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당의 국정원 사건 진상 규명과 개혁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장외투쟁이 설까지 갈 수 있다”고까지 했다. 여야가 이렇게 대립하고 갈등하면 종북 세력 척결이라는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민주주의 수호와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전략적 유연성과 인식의 대변화로 종북 세력의 근원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 민주정치’ 만족도 낮아

셋째, 우리 사회의 실직적인 민주주의가 강화돼야 하고, 더불어 보수도 건강하게 재탄생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 굳건히 뿌리 박고 있다면 ‘종북 가짜 진보’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표3>은 지난 2012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분석 결과이다.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 평가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라는 비율이 53.1%로 ‘만족한다’(43.4%)보다 높게 나타났다. 진보와 중도 성향 유권자층에서는 ‘불만족’ 비율이 각각 66.1%와 59.5%로 나타나 ‘만족’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보수층에서는 ‘만족’(55 %) 비율이 ‘불만족’(45%)보다 약간 높았다.

<표4>에서 보듯이, ‘민간 불법사찰 파문이 총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동의한다’는 비율이 45.2%로 ‘동의하지 않는다’(38.2%)보다 더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새누리당 지지층과 보수층에서조차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예상 밖의 이런 결과는 진보 진영의 공격에 대한 보수층의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에 대해 만연한 불신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국정원이 정국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과거 유신시대나 1980년대 군부독재 때처럼 사회 전반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이 위기 때마다 반전(反轉) 카드로 정국(政局)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국정원은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혁 논의가 불붙고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직후인 지난 6월 24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하며 정국을 ‘NLL포기’ 논란으로 전환했다. 8월 28일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하필이면 국정원의 국기문란에 대한 죄를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때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의 공안 사건을 공개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려하는 것은 야당의 주장대로 국정원 전성시대가 도래하면 반작용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 세력이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보수가 건강하지 못하면 ‘종북 가짜 진보’ 세력이 또다시 파고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에 장외투쟁의 빌미를 제공한 국정원에 대한 철저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국정원을 재탄생시키는 수준으로 강도 높은 대수술이 필요하다.

정치자금법 개정 필요

넷째, 종북 세력이 어떤 경우에도 정치와 국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은 100%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모바일투표처럼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 제도를 막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석기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당에 국고(國庫)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치자금법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통진당은 2011년 12월 창당 이후 최근까지 정당 보조금과 선거 보조금 등 명목으로 총 95억4782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진당은 또 작년 총선 보조금으로 21억9605만원, 대선 보조금으로 27억3465만원을 받았다.

현행 정치자금법으로는 통진당과 같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당권을 장악한 정당에도 국고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제도는 전두환(全斗煥)정권 시절 관제(官製) 야당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후진법(後進法)이다. 그런데 지금은 종북 세력이 정치력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정치권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 이석기 사태로 우리 사회가 종북의 위험성과 안보의 위기에 대해 자각하고 성찰하며 진보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종북 세력이 대한민국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도 살고, 진보도 사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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