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유스(Youth)〉의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 : 월간조선

영화 〈유스(Youth·청춘)〉에서 작곡가 프레드 밸린저로 나오는 영국의 베테랑 스타 마이클 케인(82)과의 인터뷰가 2015년 11월 미국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영화 〈유스〉는 친구 사이인 80대의 작곡가 겸 지휘자와 영화감독이 눈 덮인 알프스 온천장에서 삶과 청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심오하면서도 유머를 곁들여 경쾌한 터치로 그린 영화다. 2013년 작 〈그레이트 뷰티〉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가 제작했다. 영화 말미에 조수미가, 밸린저가 작곡한 ‘심플 송’을 부른다.

백발에 큰 안경을 쓴 케인은 나이답지 않게 에너지로 충만했는데 악센트가 섞인 굵은 바리톤 음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구사하면서 질문에 자상하고 솔직하고 지혜롭게 대답했다. 짓궂은 아이 같기도 했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케인은 “내가 한국전 때 소총수로 참전해 너의 나라를 김일성으로부터 구해줬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매우 즐거운 인터뷰였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1월에 개봉한다.

―청춘은 당신에게 있어 무엇이며 당신은 아직도 젊다고 느끼는지요.

“난 늘 젊다고 느낍니다. 38세 이후로 나이 먹기를 중단했지요. 그때가 내가 결혼했을 때로 난 그때 ‘지금 38세이니 평생을 이 나이로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훌륭한 아내가 그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몸에게는 그런 말을 안 해 육신은 늙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늙게 되었는지 이해 못 하겠네요. 난 그런 것에 굴복하는 형이 아닙니다. 그저 나를 38세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음악과 당신의 관계는 어떤지요.

“난 늘 애국자여서 처음 산 클래식 음반도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땐 빙 크로스비와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에 심취했는데 시내트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였습니다. 내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나서 시내트라와 친구가 되었을 때 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난 10대 소녀 같았어요. 그리고 난 디스코도 좋아합니다.”

―작곡해 본 적이 있나요.

“난 악보 읽을 줄도 모르고 작곡할 줄도 모릅니다. 음악엔 완전히 문외한이에요.”

―혹시 현재의 당신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난 늘 내 아이들에게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나도 이렇게 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요. 우린 모두 실수를 저지르나 그것으로부터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요. 삶은 교육이며 난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생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성이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슬럼에서 자란 난 유명하고 부자가 되려고 배우가 된 것이 아니고 그저 최고의 배우가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배우가 됐습니다. 그러다 유명해졌는데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명성의 단점은 카메라가 있는 전화기지요. 예전에는 길을 걷다 보면 어쩌다 사람들이 다가와 ‘사진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물었는데 요즘에는 묻지도 않고 마구 찍어요. 그래서 난 야구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그러나 너무 투덜댈 것도 아니지요.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돈을 벌겠습니까.”

“돈은 적더라도 좋은 역이 주어지는 영화”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각본이 완벽했다는 점이지요. 내가 첨부할 점이 한 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와 그것에 대한 관점이라는 내용과 함께 남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과 또 삶을 살아온 그대로 묘사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은퇴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은퇴에서 재등장할 경우는 돈을 많이 주는 작은 역이 아니면 돈은 적더라도 좋은 역이 주어질 때입니다. 이 영화는 후자의 경우지요. 그리고 감독이 나의 실제 삶과 전혀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도 내가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내 직업윤리입니다. 난 생선시장의 짐꾼인 아버지와 청소부인 어머니의 아들이지요. 그런데 밸린저는 나의 이런 배경과는 완전 반대인 클래식 작곡가이자 지휘자여서 나의 이런 배경과는 매우 다른 역에 도전한 것입니다. 나를 어떤 의미에서 시험하는 각본이 아니라면 일주일 일하고 100만 달러 받는 역에만 나옵니다.”

―결혼을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줄 아는데요.

“네. 가짜 잔디가 있는 교회에서 했는데 그곳에서 결혼한 유명인들의 사진을 보니까 후에 다 이혼한 부부들이더라고요. ‘야 이거 큰일 났구나’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나의 결혼은 내 인생입니다. 난 모델인 내 아내를 맥스웰 커피 하우스 광고에서 보고 광고회사를 찾아가 아내의 전화번호를 얻어냈지요. 그리고 열 번째 전화를 걸면서 이번에도 전화를 안 받으면 다시는 전화 안 하리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러자 내 전화에 질린 아내가 마침내 전화를 받았고 내 데이트 신청에 ‘예스’라고 말했지요. 44년을 함께 산 내 아내는 아름답고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중에 가장 멋있는 일입니다. 지금 내게 세 명의 손주가 있는데 아내와 난 그 아이들을 정신 못 차릴 만큼 사랑합니다.”

―이 영화는 우정에 관한 얘기이기도 한데 당신의 우정에 관해 말해주세요.

“슬럼에서 함께 자란 7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중 세 명은 사망했습니다. 우린 한 번도 다툰 적이 없고 매우 가까워서 눈짓만 보고도 무슨 얘길 하는 줄 알지요. 또 다른 친구로는 ‘더러운 늙은 악당들’에서 공연한 로저 무어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당신은 조수미의 노래를 지휘하는데 영화 전에도 그녀의 노래를 잘 알고 있었는지요.

“그 장면을 찍기 전에 두 명의 지휘자로부터 4주간 지휘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조수미는 연습이 필요 없는 베테랑 가수여서 함께 연습하진 않았습니다. 난 그전엔 조수미를 몰랐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그녀가 훌륭한 한국인 소프라노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보면서 난 그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지요. 난 그녀를 사랑합니다. 위대해요.”

―영화에서 마사지도 받고 온천욕도 즐기는데 집에서도 그런 것을 하는지요.

“집에 사우나와 수영장이 있는데 아내는 늘 수영을 즐기나 난 별로 쓰질 않아요. 내 운동이란 TV로 축구 구경하는 것인데 그것도 꽤나 힘든 일이지요.”

―70년 영화인생을 살면서 영화에서 무엇이 변했다고 생각합니까.

“더 이상 필름을 안 쓰는 것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변한 점은 배우들이 더 이상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헨리 폰다가 나보고 ‘당신은 행운아야’라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험프리 보가트와 나 같은 배우들은 옛날에 모두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어 개인적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어요.”

―어렸을 때의 첫 키스를 기억합니까.

“12세 때인데 그때 난 키가 남보다 좀 컸어요. 학교의 농구부에 들었는데 학교에는 배우가 되려는 여자 아이들이 든 드라마 클럽이 있었지요. 클럽엔 남자 아이라곤 한 명도 없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연극은 여자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난 클럽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예쁘게 본 여자 아이와 러브신을 하면서 키스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생애 첫 키스를 했는데 농구부 아이들은 이로 인해 날 계집애라고 불렀지요. 사실 이게 내가 배우가 된 진짜 이유입니다.”

―살면서 다신 안 하겠다고 생각한 실수가 있는지요.

“너무 많지요. 늘 다신 이 짓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국전에 참전했을 때도 다신 이 짓 안 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인물들처럼 존재의 위기를 겪을 때는 젊을 때인가요 아니면 나이가 먹었을 때인가요.

“나이 먹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나이 먹었을 때는 삶의 경험도 풍부하고 또 아는 것도 과거보다 많아 위기를 다루기도 젊었을 때보다는 쉽습니다. 난 그렇게 많은 위기를 경험하진 않았으나 더러는 있습니다.”

〈라타 교육시키기〉〈조용한 미국인〉〈한나와 그녀의 자매들〉 영화가 자랑스러워

필자와 마이클 케인. 케인은 한국전 참전 용사다.

―당신이 나온 많은 영화 중에 형편없는 것은 무엇인지요.

“벌떼가 사람을 공격하는 〈스웜〉이란 영화입니다. 폴 뉴먼과 스티브 매퀸이 나온 빅히트작 〈타오르는 지옥〉을 만든 어윈 앨런이 제작한 영화로 그가 날 보고 주연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래서 난 각본도 읽지 않고 응했습니다. 그 영화야말로 내가 나온 영화 중 가장 냄새 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을 내가 몽땅 뒤집어썼어요. 영화에는 헨리 폰다, 호세 페레, 칼 말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등 할리우드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다 나왔는데도 잘못을 런던에서 온 내가 뒤집어썼다는 말입니다. 〈죠스 4〉에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때 어머니에게 집을 사주려고 했을 때인데 영화에 10일간만 나오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기에 응했습니다. 〈스웜〉만큼이나 냄새 나는 영화입니다. 자랑스런 영화는 〈라타 교육 시키기〉와 〈조용한 미국인〉, 내가 오스카 조연상을 탄 〈한나와 그녀의 자매들〉 그리고 이 영화입니다.”

―당신의 결혼생활에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아내 때문에 과음을 이젠 안 합니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땐 술꾼이었지요. 그리고 시가를 아주 좋아했는데 그것도 끊었습니다. 그러나 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 나 자신이 변한 점은 별로 없습니다. 아내는 과거의 나와 결혼했지 미래의 나와 결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나이 먹으면서 일어날 때 몸이 쑤시지 않는지요.

“물론이지요. 언젠가 조지 번스(작고한 미국의 명 코미디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아무 고통도 못 느낀다면 넌 죽은 거야’라고. 난 그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이런 농담도 들려줬어요. ‘난 아침에 침대에 누워 신문의 부음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내 이름이 없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직도 아내와 과거와 다름없이 논쟁하는 것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난 전화를 절대로 안 받고 아내가 받습니다. 하루종일 전화에 매달려 사는 아내와 달리 난 전화 안 써요. 전화와 통신은 다 아내 일인데 그녀는 아주 유능한 나의 비서입니다. 이메일도 아내가 보냅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에게 ‘나 이제 어디에 가야지’ 하고 물었더니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인터뷰요’라고 알려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영화 속 친구인 영화감독(하비 카이틀)과 함께 수영장에 들어가 있을 때 알몸으로 나타난 미스 유니버스 역의 마달리나를 보고 느낀 소감은 어떤 것인가요.

“감독이 전연 우리에게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질 않았습니다. 그 역은 루마니아의 배우이자 모델인 마달리나 디아나 게데아가 맡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중 하나지요. 하비와 난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 둘의 최고의 연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연기도 기막히게 잘했어요. 그래서 난 그녀에게 앞으론 나체 장면 그만하고 본격적인 역을 맡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주 재능 있는 배우입니다.”

―어렸을 때 본 영화 중에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는 무엇인지요.

“세 살 반일 때 동네의 큰 아이들이 날 데리고 토요일 아침에 짧은 아동용 영화를 보려고 극장엘 갔지요. 그때 본 영화가 〈론 레인저〉인데 난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난 세 살 반 때 마음속으로 배우가 되기를 결심한 셈이지요. 그리고 열 살 때 아마추어 배우가 됐습니다.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의 못생긴 의붓자매 아버지 역을 했습니다. 내가 우스운 연기를 해서 폭소가 터졌지요. 난 ‘야 이거 신나네’ 하며 우쭐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내가 65세인가 70세 때 뉴욕의 디스코 클럽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떤 나이 먹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마이클 케인, 나도 한때 배우였지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어디에 나왔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론 레인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난 그에게 내 어릴 때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난 그때 아내와 함께 클럽에 갔는데 그 사람은 혼자였습니다. 아마 누굴 낚으러 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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