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사람

고(故) 백남기 타살 주장하는 이용식(李勇湜) 건국대 두경부(頭頸部)외과 교수

“불법 폭력 시위대의 자작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백씨 사망 사건은 살인 정권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시위꾼들의 팀플레이
⊙ 내가 극우(極右)라고?… 15대 대선 때 DJ에게 투표
⊙ 진중권 교수가 나의 제안에 답하면 물대포 맞겠다
⊙ “경찰 죽여버리자”고 외치는 시위대 보고 진실 밝히기로 마음먹어
⊙ 누구든 찾아오면 설득할 자신 있다
  11월 5일 백남기씨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사망 41일 만이다.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부검을 했다면 명확히 규명할 수 있었지만 유족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용식 건국대 두경부외과 교수는 “유족이 부검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백씨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빨간 우의의 주먹에 맞아 사망에 이른 것”
 
  ― 숨겨진 비밀이 뭡니까.
 
  “사건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雨衣)를 입은 남성(이하 빨간 우의)이 백씨의 얼굴을 때리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백씨는 물대포가 아니라 빨간 우의의 주먹에 맞아 죽은 겁니다.”
 
  ― 빨간 우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죠. 빨간 우의가 백씨를 덮칠 때 오른손을 보면 주먹을 쥐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백씨의 안면을 내려친 것이죠.”
 
  ― 동영상 화면이 흐릿해서 주먹을 쥐었는지가 확실치 않던데요.
 
  “갑자기 뒤에서 누가 밀면 사람은 두 손은 펴고, 두 팔은 뻗은 채로 넘어집니다. 반사작용 때문이죠. 그런데 빨간 우의는 그렇지 않아요. 갑자기 넘어지는데 사람을 치려는 모습을 하고 있죠.”
 
  ―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가 쓰러진 백남기씨 위로 퍼붓는 물대포를 막기 위해 달려갔다 물살에 밀려 넘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빨간 우의는 물대포를 막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자마자 두 명이 달려갑니다. 한 명은 백씨에게 오는 물을 등으로 막아주고, 다른 한 명은 백씨의 멱살을 잡고 그곳을 빠져나오려 하죠. 이때 빨간 우의가 나타납니다. 이미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원이 필요 없는 데 말이죠. 물대포를 막기 위해 달려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 돕는 사람이 있었어도 도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빨간 우의가 해명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를 듣고 확신했습니다. 빨간 우의는 언론 인터뷰에서 백씨와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는데,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가 백씨를 덮치는 순간 백씨의 몸통이 움직입니다. (실제 그랬다.) 접촉이 있었다는 증거죠. 그리고 빨간 우의는 물대포에 등을 맞아 넘어지고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짚고 버티면서 최루액에 뒤범벅돼 피 흘리는 백씨의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누가 밀어서 넘어진 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나요. 빨간 우의가 백씨의 모습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그것은 자신이 백씨를 죽였기 때문이죠.”
 
  민감한 내용이라 빨간 우의가 언론과 해명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습니다. 물대포에 등을 맞고 넘어지면서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버티면서 제 두 눈으로 직면했던 것은,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백남기 어르신이 피를 흘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최루액에 뒤범벅돼서 마치 덕지덕지 화장을 한 듯 있는 그분을 아주 가까이서 대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감각이나 이런 것이 사실 뚜렷하지가 않은 상황입니다.〉
 
  ― 빨간 우의가 백씨를 죽일 이유가 있나요.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 이 정권은 살인정권이라고 선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 그렇다고 사람까지 죽입니까.
 
  “당연하죠. 모르셨나요. 얘네들의 선동을 위한 살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도 데모할 때 옥상에 올라간 사람을 뒤에서 몰래 밀어 죽인 다음, 열사(烈士)로 만들고 했습니다.”
 
  ― 직접 봤나요.
 
  “그렇진 않지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분을 통해 알게 됐죠.”
 
  그는 기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보여줬다.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기업도 옥상에서 데모하면 뒤에서 밀어 떨어트리고 열사 만들고, 불 안 붙인다고 하고 휘발유 끼얹은 다음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열사로 만들어 나라를 뒤집어버리고…〉
 
  ― 누구에게 받은 메시지입니까.
 
  “30년 넘게 대기업에서 노무 담당 일을 한 제 친한 형님이 보낸 것입니다.”
 
  ― 이분이 지어낸 것 아닌가요.
 
  “절대요. 이분이 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지어냅니까. 형님이 진실을 알려준 것입니다.”
 
  ― 솔직히 안 믿깁니다.
 
  “전 확신하니까 제가 말하는 그대로를 써주세요.”
 
  ― 논란이 상당할 텐데요.
 
  “저는 확신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15대 대선 때 DJ에게 투표”
 
2016년 10월 23일 오전 경찰이 고 백남기씨의 시신 부검영장 집행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가운데 백남기투쟁본부 관계자들이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입구에서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장련성 객원기자
  전남 보성 출신인 백씨는 광주고를 졸업하고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1971년 10월 위수령 사태 때 시위를 벌이다 1차 제적됐고, 이후 복학했으나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2차 제적됐다. 백씨는 1980년 중앙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해 5월 18일 계엄령이 선포되자 중앙대 학생 운동을 주도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돼 3년간 복역했다.
 
  이 무렵 세 번째로 제적됐고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1980년 ‘정치 활동 규제자’에 포함됐다가 1983년 해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중앙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복학생 왕고참’으로 불렸다고 한다. 빨간 우의는 민주노총 공공 운수노조 광주·전남 지부 소속 간부다.
 
  이 교수는 “백씨가 전남 보성 출신이고, 빨간 우의는 공공 운수 광주·전남 지구 소속이다. 뭔가 묘하지 않은가. 저는 백씨 사건을 광주·전남 지구에서 기획한 팀플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너무 음모론적 시각 아닌가요.
 
  “저는 당연히 그랬을 것으로 봅니다.”
 
  ― 극우(極右) 같은데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됩니까.
 
  “저는 가난한 분들의 편입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약자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답변이 애매한데 극우는 아니란 말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고백하자면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실체를 몰랐을 때 전라도 출신도 대통령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DJ를 찍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때 제 결정을 후회하고 있죠.”
 
  ― 정말 후회하시나 봅니다.
 
  “전라도 분들이 한이 많잖아요. 그래서 전라도 출신인 DJ가 대통령 한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속았죠.”
 
  ― 고향이 어디입니까.
 
  “서울입니다.”
 
 
  “물대포에 두개골이 깨지진 않아”
 
이용식 건국대 의대 교수는 ‘빨간 우의’ 남성의 폭행으로 백남기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가장 왼쪽에서 쓰러진 백씨에게 다가가는 게 빨간 우의다. 사진=동영상 캡처
  ― 빨간 우의 때문에 백씨가 죽었다는 교수님 주장이 맞으려면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두개골 골절이 생기지 않았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물대포에 맞는다고 백씨처럼 두개골이 깨지지는 않습니다.”
 
  ― 백씨의 사인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보니 물대포 세기가 대단하던데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여준 물대포 수압은 좀 과장됐다고 봐요. 강화유리가 깨지고, 철판이 구부러지고 하던데 경찰이 쏜 물대포 수압이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을 지적한 MBC 〈PD수첩〉이 떠올랐어요. 지금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 있나요. 아무도 없죠. 역사가 증명할 겁니다.”
 
  ― 선동 방송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시위 당시 동영상을 모조리 구해서 보고 또 봤습니다. 물대포가 나무를 쏘는데, 잔가지들은 부러져 날아가는데 좀 두꺼운 가지는 끄떡도 안 한 장면, 갑자기 물대포를 직통으로 맞아 백씨보다 훨씬 심하게 넘어졌음에도 곧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걷는 장면이 있더군요. 그리고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도 물대포 수압을 실험했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와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 그 실험 결과는 믿을 수 있나요.
 
  “서로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을 했겠죠. 그러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물대포 수압을 좀 세게, 신 대표는 좀 약하게 해서 실험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럼 실제 경찰이 발사한 수압은 그 중간으로 보면 되는데, 그랬을 때 사람을 죽일 만큼 강하지 않다는 얘기죠.”
 
  ― 그럼 경찰의 물대포를 직접 맞아서 증명할 생각이 있습니까.
 
  “있죠. 정의를 위해서라면 있어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 조건이 뭔데요.
 
  “진중권 교수가 저의 제안에 답을 해줘야 합니다. 진 교수가 제 칼럼을 보고 이야기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에게 ‘물대포를 맞아서는 뼈가 안 깨진다고요? 김 의원이 직접 맞아보시지요?’라고 했더군요. 그래서 제가 ‘내가 물대포를 맞고 정말 두개골이 깨지나 안 깨지나 확인해 드릴 테니, 진중권 교수는 누운 상태에서 내 주먹을 맞고 머리가 깨지나 안 깨지나 한번 실험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답이 아직도 없습니다.”
 
  ― 진 교수의 답이 오면 물대포를 맞겠다. 이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솔직히 물대포를 맞아야 할 사람들은 제가 아닌, ‘백남기대책위원회’분들 아닌가요. 물대포가 고인의 사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물대포를 맞으면 두개골이 깨지고 안면골 함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 백씨가 물대포에 맞고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졌을 가능성은 없나요.
 
  “저도 혹시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확인해 보니 아니더군요. 확실한 근거도 있습니다.”
 
  ― 그게 뭐죠.
 
  “동영상을 자세히 분석해 보니,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넘어져서 밀리는데 그때 뒤통수가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
 
  ― 머리가 들린 상태에서 밀리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땅에 박았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죠. 다 밀린 다음에야 백씨의 뒤통수가 땅에 닿습니다.”
 
  ―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을 수 있겠네요.
 
  “추진력을 잃은 상태에서 뒤통수를 땅에 박았어요. 이 충격으로 두개골 여러 곳에 골절이 일어날까요. 아플 수는 있지만 어림없는 일이죠.”
 
  ― 백씨 나이(사고 당시 70세)를 고려하면 작은 충격에도 두개골이 깨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백씨 사인을 다뤘던 〈그것이 알고 싶다〉 봤다고 하셨죠. 방송에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위원이 나와 ‘백씨처럼 복합적인 두개골 골절이 발생하려면 5m 이상의 높은 데서 추락하거나, 달리는 자동차와 부딪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분이 노무현 재단 중앙상임 운영위원 출신입니다. 백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겠습니까. 백씨처럼 뒤통수를 땅에 박아서는 두개골 골절이 생길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백씨는 유도 고수(高手)로 낙법(落法)이 몸에 뵌 분이에요. 유도인들은 무의식 상황에서도 낙법을 구사합니다. 백씨의 경우 일반인보다 뒤통수를 땅에 박는 세기가 약했겠죠.”
 
  ― 처음 듣는 얘긴데 백씨가 유도 유단자인가요.
 
  “광주에서 백씨와 함께 고등학교 때 유도를 한 친구들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말한 바로는 감독이 가장 아끼던 수제자가 백씨였다더군요. 낙법의 대가였다고 합니다.”
 
  ― 백씨의 얼굴에 난 상처는 물대포를 맞아 난 게 아닙니까.
 
  “얼굴 한쪽이 빨갛게 부풀어 있고, 눈꺼풀은 피멍이 들어 찢겨 있었죠. 뭐가 떠오르시죠. KO 당한 권투선수 얼굴 같지 않습니까. 눈꺼풀은 대개 주먹으로 맞았을 때 찢어집니다.”
 
  ― 물대포를 얼굴에 직통으로 맞아도 눈꺼풀은 찢어질 수 있죠.
 
  “동영상을 보면 백씨는 넘어지기 직전까지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겠어요. 물대포를 얼굴에 직접 맞지 않은 것이죠. 직접 맞았다면 안경이 그대로 있을 리 있겠습니까. 그리고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씨의 얼굴을 보면 한동안 피가 보이질 않아요. 희미하지만 그래요. 그런데 빨간 우의가 다녀간 이후부터 피가 보이기 시작하죠.”
 
 
  “와이프는 민감한 문제에 앞장선다고 불만”
 
   ― 교수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백씨 유족은 사인을 감추기 위해 부검에 응하지 않은 것이 되네요.
 
  “정답입니다. 부검을 해서 사실이 밝혀져 보세요. 2억4000만원 못 가져가지 않습니까.”
 
  지난 3월 고인의 유족들은 총 2억40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낸 바 있다.
 
  ― 유족 입장에서는 ‘결과 조작’을 우려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직접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 유족을 돕는 의사와 민변이 부검을 직접 하라고요. 그런데도 안 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핑계가 아니고 뭡니까.”
 
  ― 건국대에서는 별 이야기 없습니까.
 
  “저는 특별한 이야기 들은 게 없는데요. 무슨 일 있나요?”
 
  ― 건국대 동문과 재학생들이 ‘이용식 교수 해임 서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님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봤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당연히 신고하겠죠. 신고하고 진실을 밝히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죠. 이분들이 대표단을 구성해서 제게 온다면 충분히 설득할 자신 있습니다.”
 
  ― 혹시 협박받은 적은 없습니까.
 
  “직접적으로는 없어요. 다만 가끔 전공의들한테는 저를 욕하는 전화가 오긴 하나 보더군요.”
 
  ― 전공의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저를 많이 응원해 줍니다. 제가 올린 동영상을 많이들 봤나 봐요.”
 
  ― 가족은 뭐라고 합니까.
 
  “와이프는 싫어하죠. 왜 민감한 문제에 발을 들여놓느냐고. 게다가 제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퇴근하면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만 하거든요. 자료를 찾고, 동영상을 분석해야 하니까요. 자연히 와이프와 함께할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겠죠.”
 
  ― 지금 상황을 보니까, 백씨의 사인은 물대포로 인한 외압사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은데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겁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욕도 안 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왜 민감한 문제에 앞장서는지 아십니까.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시위대가 경찰을 잡아 죽이자고 말하는 장면, (의경에) 뿌릴 신나가 없다고 하니까 사오면 되지 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노에 손이 떨리더군요. 모른 척했다면 몸은 편했겠지만 마음은 불편했을 겁니다.”
 
 
  “정치권 입성 위한 행동 아니다”
 
이용식 건국대 의대 교수가 광화문에서 본인이 분석한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비로 동영상을 틀 수 있는 차량을 빌려 활동했다. 사진=뉴스인포토
  ― 동영상 분석 같은 것을 모두 혼자 하나요.
 
  “혼자 하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 사비(私費)도 꽤 들였죠. 몇백만 원 주고 홍보 동영상 차량을 빌려 국회 앞, 프레스 센터 앞에서 제가 분석한 동영상을 틀고 그랬거든요.”
 
  ― 국회의원 배지 달려고 하는 행동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렇게 깎아내리겠죠.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집사람이 절대 반대할 겁니다. 저는 가정의 평화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정치권에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와드릴 순 있죠. 우리 선조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義兵)이 되어 전장으로 나가지 않았습니까. 저는 목숨 바쳐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세력과 싸울 각오가 돼 있습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2016년 1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백남기씨의 장례미사에 참석해 고인의 장녀 백도라지씨를 위로하고 있다.
  ― 솔직히 정치적이신 거 같은데 왜 의대에 진학했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 선친이 위 수술을 받으셨어요. 그때 의사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퇴원하시고 난 다음에 저를 부르더니 의사가 되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장남이거든요. 선친의 말씀에 따라 의사가 됐죠.”
 
  ― 본인이 수준 높은 의사라 생각합니까.
 
  “직접 이야기하기 창피하지만 탑(top)이죠. 저는 제 영역에서는 항상 최고였습니다. 저는 의사들이 추천한 최고 의사에 뽑힌 적도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도 됐었죠.”
 
  인터뷰 후 자료를 찾아보니 2014년 7월 25일 《헬스조선》은 진료과별 전국 명의를 선정했는데, 두경부외과 부문에서 이 교수가 뽑혔다.
 
  당시 기사 내용이다.
 
  〈국내 최초로 하인두(목의 가장 아랫부분으로 식도와 연결되는 부분)암을 레이저로 치료한 의사다. 이 교수의 좌우명은 ‘환자 편에서 생각하자’다. 환자는 의사에게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기 마련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말을 하다 보면 자칫 환자를 소홀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경부라는 부위가 환자에게 생소한 부위이고 구조도 복잡하지만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짧은 환자들도 이해하기 쉽다는 보호자의 후기도 있다. 이용식 교수에게 진료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이 교수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다. 이 교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라도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라는 의미다. 이는 위험에 처한 한 환자가 이 교수와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다. 수술을 하는 의사지만 최근의 갑상선 수술 논란에서는 과잉진료와 과잉수술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두경부외과는 뇌 아래부터 가슴 윗부분 사이에 있는 코, 혀, 입, 인·후두, 갑상선, 침샘 등에 생겨난 악성종양을 제거해 치료하는 곳이다.⊙
조회 : 17695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06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영월에서 한달살기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