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카드로 결제만 하지, 다 보전 받는다”(전직 공기업 회계팀 관계자)
⊙ 구매도서 기준 뚜렷하지 않은 석탄공사
⊙ 사정 당국, 보좌진에 저서 판매 할당한 국회의원 있다는 첩보 입수
⊙ 출판기념회 금지법안 심의조차 하지 않은 국회
⊙ 구매도서 기준 뚜렷하지 않은 석탄공사
⊙ 사정 당국, 보좌진에 저서 판매 할당한 국회의원 있다는 첩보 입수
⊙ 출판기념회 금지법안 심의조차 하지 않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노영민(盧英敏) 의원은 시인(詩人)이다. 이 사실이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 2월.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노 의원을 신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전임 대변인이었던 최재성(崔宰誠) 의원은 이 사실을 알린 뒤 신임 대변인인 노 의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연말 연초 MB악법 저지를 위한 투쟁에서 ‘휴대폰에 자유를, 인터넷에 자유를, 방송을 국민에게’라는 매우 인기 만점이었던 구호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노 대변인은 이미 등단한 시인이다.”
노 의원은 2015년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를 냈다. 2007년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출간한 지 8년 만이었다.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는 총 6장에 걸쳐 자연, 성장기, 가족, 여행 등을 소재로 한 72편의 시를 담았다. 그는 2015년 10월 30일 충북 청주 선프라자 컨벤션센터에서 이 시집 출판 기념 북 콘서트를 열었다. 노 의원의 지역구는 충북 청주 흥덕을(乙)이다.
文在寅 대표도 트위터 통해 신작시집 소개
노 의원은 북 콘서트를 열기 전 100여 명에게만 북 콘서트 초청장을 발송했다. 그는 “동료의원들은 물론이고 피감기관에도 북 콘서트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으며, 국회에 포스터도 붙이지 않았다”고 했다. 본인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가까운 지인 외에는 북 콘서트 개최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의원이 위원장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는 관련 대기업과 산하기관 등이 많은 ‘노른자위’로 통한다.
하지만 북 콘서트가 열리기 열흘 전인 2015년 10월 20일 노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게시판에는 ‘출판초청장 수정’ 파일과 ‘노영민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북 콘서트 안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노영민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출판을 기념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갖고자 합니다. 정감 어린 이야기를 풀어 보는 자리에 정중히 청하오니 부디 함께하시어 격려와 사랑을 전해 주십시오.〉
그보다 앞선 10월 3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文在寅) 대표는 트위터에 노 의원의 시를 인용하며 〈‘홍익인간’을 굳이 말한다면 ‘사람이 먼저다’ 또는 ‘사람이 희망이다’라며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든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노영민의 신작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중 ‘희망 3’에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노 의원이 북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사실과 문 대표가 노 의원의 시를 인용한 트위터 글은 북 콘서트가 열리기 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0월 7일 자 《국제뉴스》-제목: 詩人 ‘노영민’을 아시나요… 30일 청주서 북 콘서트 ▲2015년 10월 11일 자 《국민일보》-제목: “하늘 아래 딱 한송이” 문재인 측근이자 시인 노영민, 두 번째 시집 펴내 ▲2015년 10월 11일 《연합뉴스》-제목: ‘文 측근’ 노영민, 두 번째 시집… ‘희망’ 키워드 ▲2015년 10월 18일 자 《뉴스 1》-제목: 총선 앞둔 野 출판기념회 ‘줄줄’ ▲2015년 10월 26일 《동양일보》-제목: 노영민 의원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북 콘서트 ▲2015년 10월 29일 《중부일보》-제목: 노영민 의원 북 콘서트〉
오랜 기관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북 콘서트를 한다고 의원실에서 직접 홍보를 하지 않아도, 국회나 정당 정보를 수집하는 대관업무자는 관련 의원이 여는 행사에 대해서는 다 파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업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라며 “노 의원 행사의 경우는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보도됐다. 직접 알리지 않았어도 알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특히 산하기관은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노 의원이 동료의원들은 물론이고 피감기관에도 북 콘서트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같은 당 우윤근(禹潤根) 전 원내대표와 유승희(兪承希) 최고위원, 박수현(朴洙賢)·홍영표(洪永杓) 의원, 당원, 노 의원의 지인, 산하기관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석, 북 콘서트가 성황을 이룬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북 콘서트 때 시집 5000권가량 팔아
이 자리에서 노 의원의 시집은 5000권가량 팔렸다. 이는 노 의원 측이 인정한 판매량이다. 노 의원은 시집을 총 8000권 제작했다. 시집을 제작한 N출판사 관계자는 “우리는 책만 만들고 판매는 노 의원 측이 알아서 했다”며 “당초 5000권을 납품하고 북 콘서트 직전 추가로 3000권을 보냈다”고 했다. 노 의원 시집의 정가는 한 권당 1만원. 시집 판매 마진을 50%로 계산해도 5000권을 판 노 의원은 250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몇 년 새 가장 잘 나갔다는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가 10년간 2만5000권가량 판매됐는데, 서점에서 팔지도 않은 노 의원의 책이 하루 만에 5000권 팔렸다면 진짜 베스트셀러감”이라고 했다. 《가재미》는 2005년 문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다. 문 시인은 가재미를 쓰면서 탈진했다고 한다.
북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친 뒤 노 의원실 관계자들은 비품을 정리하면서 출판사의 카드 단말기를 챙겼다. 출판사 관계자는 “(노 의원 측에서) 북 콘서트에서만 사용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챙겼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 의원실 관계자는 “출판기념회에서 현장 판매할 때 사용한 출판사 카드 단말기를 의원실에 뒀다가 3~4일 정도 사용했다. 북 콘서트가 끝난 뒤 나중에 책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고, 이들 중 카드로 결제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국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때 구매 편의를 위해 관례로 해 온 방식”이라고 했다.
노 의원실 관계자가 의원회관에 단말기를 설치했을 시기, 한 기관 관계자는 의원실로 직접 찾아와 책을 사고 결제했다. 이는 노 의원 측도 인정한 부분. 노 의원 측 관계자는 기관의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이외에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는 의원실에 직접 방문해 사진 않았지만, 책을 구매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두 기관은 노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산자위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다. 자원외교 부실 문제로 산자위 위원장인 노 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광물자원공사는 200만원, 석탄공사는 50만원어치를 샀다. 노 의원 측은 2015년 11월 초 일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산하기관에 판매한 물량을 전부 취소했다.
노 의원 측이 국회 사무실에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고, 노 의원이 낸 시집을 팔았다는 사실은 2015년 11월 30일 《뉴스타파》의 보도로 알려졌다.
당장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노 의원이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당내 ‘을(乙)지로 위원회’ 소속이라 더욱 그랬다. 비판의 목소리는 새누리당은 물론 당내에까지 높아졌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 30대 청년 몫으로 참여했던 이동학 전 혁신위원은 노 의원의 갑질 논란 의혹이 알려진 11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22살이던 시절, 열린우리당이 내거는 기치는 꽤 멋있었다.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멋있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르던 물은 유속이 느려졌고, 이내 고인 물이 됐다. 고인 물엔 이런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고 썼다.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이었던 금태섭(琴泰燮) 변호사는 다음 날인 12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집’은 극히 개인적인 책이다. 그 책을 출간하고 판매하는 일에 왜 의원실 직원들이 동원되고 ‘남은 책을 의원실에’ 왜 옮겨 오나. 관용차와 공무원인 운전기사를 이용해서 자식들 등하교를 시키고 부인 쇼핑을 보내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비난 여론에도 당사자인 노 의원은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여당 평의원이 (북 콘서트를) 해도 (수익이) 10배는 더 나올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용한 것은 1건뿐이다. 그것도 이미 취소했다”며 당무감사원 조사만 자청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논란은 더욱 커졌다. 급기야 새누리당 서울 종로 당협위원장인 정인봉(鄭寅鳳) 전 의원은 노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산하기관과 상임위원장의 관계에 비춰 볼 때 책 판매금에 대가성이 있을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노 의원은 2015년 12월 2일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자신의 시집(詩集)을 판매해 논란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이날 사과 성명을 통해 “저의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현재 남부지검 형사 6부는 출판사 명의의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로 책을 판 노 의원에 대해 수사 중이다.
“누가 사비로 200만원을 결제하겠나”
노 의원의 시집 강매 의혹이 터지고 초점은 노 의원 측이 ▲실제 카드지급기를 의원회관에 설치했는지 ▲산자위 감독 대상 기관 관계자들이 직접 의원회관을 찾아 책을 사들였는지 ▲노 의원이 정치자금법·여신금융전문업법을 위반했는지에 맞춰졌다. 그런데 기자는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사태를 바라봤다. 감독 대상 기관 관계자들이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또는 북 콘서트 때 다량의 책을 사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감독 대상 기관들이 무슨 돈으로 국회의원의 책을 그렇게나 많이 사느냐다. 해당 기관 예산 목록에 ‘국회의원 책 구매’ 항목이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른 곳에 쓸 예산을 유용(流用)해 국회의원 책을 산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광물자원공사(200만원), 석탄공사(50만원)는 어떤 자금으로 노 의원의 시집을 사들였을까.
《월간조선》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의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우선 광물자원공사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산 단행본 목록을 살펴봤다. 2013년에는 총 214종류의 책을 구입했다. 현역 국회의원의 저서는 단 한 권도 없었다. 두 가지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권씩만 샀다. 두 가지 책은 《혁신, 사람이 첫째다》(삼성토탈 TPM 혁신 스토리·KSA TPM·EAM센터 지음·100부 96만원)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김기재 지음·60부 69만3000원)였다.
2013년 한 해 도서구입비 총액은 2651만원이었다. 2014년에는 290가지 종류의 책을 모두 한 권씩만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 인사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쓴 책은 두 권이었다. 이마저도 현역이 아니었다. 두 가지 책은 《나의 한국 현대사》(유시민 지음)와 《기록》(윤태영 지음)이었다. 2014년 총 도서구입비는 4110만원이었다. 2015년도 마찬가지. 236가지 책 중 1권 이상 구입한 책은 하나(《대한민국 비정상의 정상화》·권기헌 지음·100권 135만원)뿐이었다. 광물자원공사의 3년간 도서 구입 목록에는 노 의원의 시집뿐만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이 쓴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국회를 통해 광물자원공사에 문의한 결과 “이 책들은 각 부서에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도서로 인정돼 구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업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도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는 것일까.
12월 11일 노 의원 책 구매에 대해 알고 있다는 광물자원공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노 의원의 책은 어떻게 구입한 것입니까. 회사 현금으로 계산한 것입니까, 아니면 법인카드 혹은 직원 개인카드로 산 것입니까.
“법인카드로 구매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현금 또는 개인카드로 구매겠네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노 의원 지역구가 고향인 직원이 (자신의 카드로) 구매했을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노 의원 지역구가 고향인 직원이 자기 개인카드로 노 의원의 시집 200만원어치를 구매했다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광물자원공사의 자료와 이 관계자의 증언, 취재 중 얻은 정보를 종합한 결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광물자원공사가 노 의원의 책을 법인카드로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사로부터 계산서를 발급받아 구입비용을 정산하는 이른바 현금 결제 또는 개인카드로 결제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현금 결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는 공사의 ‘자료관리 업무 표준’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공사는 법인카드, 또는 현금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서의 기준을 이같이 설정했다.
〈◆공사업무 수행을 위한 조사연구에 필요한 자료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회 또는 협회지 및 상업지 ◆이용빈도가 높거나 참고문헌으로 많이 인용되는 자료. *여기서 자료는 단행본, 연속간행물, 공사간행물, 비도서를 뜻한다.〉
기준에 따르면 노 의원의 시집은 공사가 정의한 자료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인카드 또는 현금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200만원을 개인카드로 결제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노 의원과 관련이 있는 기관의 관계자라고 할지라도 개인 돈으로 시집 200권을 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공기업 회계팀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의 책을 구매할 때는) 절대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할 때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서 다 드러나기 때문이죠. 현금 결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이 모호하다면 모를까 살 수 있는 책에 대한 기준이 확실히 정해진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아마 개인카드로 결제했을 겁니다.”
—200만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개인이 결제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많습니까.
“계산만 하는 겁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다 보전 받습니다.”
—어떻게 보전을 받습니까.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요. 하나 예를 들면 단골 밥집, 술집에서 공(속칭 가라)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해서 메우는 방법도 있지요. 사업비처럼 기준이 애매한 예산에서 충당해 주기도 하고요. 과거 한국조폐공사가 교육훈련비 예산으로 고가 등산복과 다운 점퍼를 10억원어치나 사서 직원들에게 돌린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공기업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예산이 있어요. 이런 예산이 의원들의 책을 대량으로 사는 데 쓰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요.”
—그게 가능합니까.
“공무원들 대단합니다. 제가 회계감사팀에 있었는데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KTX 타고 출장을 갔다 왔다고 출장비를 올립니다. 증거로 예약 확인증을 내지요. 돈을 내고 표를 사면 표와 예약 확인증을 주는데 곧장 취소하고 환불하면 표만 내면 됩니다. 취소했어도 예약 확인증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죠. 만약 실제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적게는 4만~5만원 많게는 7만~8만원을 챙길 수 있습니다. 출장을 가도, KTX보다 저렴한 교통수단(고속버스, 새마을 열차)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금액을 챙길 수 있지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에 10번 이상 출장 가는 공무원이 많습니다. 세종시에 정부청사가 있지 않습니까.”
이 인사의 이야기를 다수의 대관업무자에게 확인했다. “아니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솔직히 맞는 이야기”라는 답도 있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석탄 공사 定款
석탄공사는 어떤 방식으로 시집을 샀을까. 3년간 법인카드를 사용하여 도서를 구매한 명세를 살펴보니 상황이 광물자원공사와 비슷했다. 국회의원 저서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석탄공사도 광물자원공사와 마찬가지로 개인카드로 책을 샀을 가능성이 큰 상황. 수소문 끝에 노 의원의 시집을 사는 데 관련한 석탄공사 관계자에게 구매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노 의원의 시집을 법인카드로 구매하셨나요.
“아니요.”
—그럼 개인카드로 구매하셨나요.
“아닙니다. 개인카드로 구매했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던데 오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샀습니까.
“저희가 출판사 쪽에 현금으로 입금해서 사려고 했습니다. 사려고 돈을 부쳤는데, 문제가 발생해서 다시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책을 현금으로 살 수 있습니까.
“도서비가 있습니다.”
—도서비가 있어도 구매 기준에 맞는 책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서 구매를 할 때 기준이 어떻게 됩니까.
“따로 없습니다. 교양서적이라고 하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도서비 한도가 얼마입니까.
“이 사건으로 지금 우리 회사의 대내외적인 신인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돈도 돌려받았고요.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관계자의 이야기대로 도서 구매와 관련한 대한석탄공사 정관(定款)을 보면 법인카드 결제 외 도서를 사기 위해서는 출판사로부터 계산서를 발급받아 구입비용을 정산할 수 있다. 이때 어떤 도서를 사야 한다는 별도 규정은 없다. 매년 도서비 예산범위 내에서 직원 업무지식 향상, 교양 배양을 위해 도서 구입을 할 수 있다는 조항만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만화책을 사도 교양 배양을 위해 샀다고 하면 지적할 방법이 없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산하기관이 다른 곳에 쓸 돈을 국회의원 책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의 압박이 있기 때문”이라며 “몇몇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 또는 북 콘서트를 열기 전 보좌진들한테 할당을 줬다는 첩보가 있다. 최소 몇백 권은 반드시 팔아야 인정받는 상황에서 산하기관에 압박 안 하는 보좌진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출판기념회 금지법안 자동 폐기 가능성
여야 실세(實勢)나 국회 주요 상임위원장 출판기념회나 북 콘서트에는 천 명씩이 몰려든다. 정부 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대기업·금융회사 임원 등이 줄지어 의원과 직접 악수하며 눈도장을 찍은 뒤 돈봉투를 건넨다.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6~2007년경부터다. 2004년 초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후원금 연간 모금 한도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규제도 대폭 강화된 이후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줄어든 돈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노골적 수금(收金) 행각에 비난이 잇따르자 여야는 자정(自淨)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다. 국회의원의 ‘현금 창구’로 불리는 출판기념회 금지법안은 지금껏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19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연말 연초 MB악법 저지를 위한 투쟁에서 ‘휴대폰에 자유를, 인터넷에 자유를, 방송을 국민에게’라는 매우 인기 만점이었던 구호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노 대변인은 이미 등단한 시인이다.”
노 의원은 2015년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를 냈다. 2007년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출간한 지 8년 만이었다.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는 총 6장에 걸쳐 자연, 성장기, 가족, 여행 등을 소재로 한 72편의 시를 담았다. 그는 2015년 10월 30일 충북 청주 선프라자 컨벤션센터에서 이 시집 출판 기념 북 콘서트를 열었다. 노 의원의 지역구는 충북 청주 흥덕을(乙)이다.
文在寅 대표도 트위터 통해 신작시집 소개
노 의원은 북 콘서트를 열기 전 100여 명에게만 북 콘서트 초청장을 발송했다. 그는 “동료의원들은 물론이고 피감기관에도 북 콘서트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으며, 국회에 포스터도 붙이지 않았다”고 했다. 본인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가까운 지인 외에는 북 콘서트 개최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의원이 위원장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는 관련 대기업과 산하기관 등이 많은 ‘노른자위’로 통한다.
하지만 북 콘서트가 열리기 열흘 전인 2015년 10월 20일 노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게시판에는 ‘출판초청장 수정’ 파일과 ‘노영민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북 콘서트 안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노영민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출판을 기념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갖고자 합니다. 정감 어린 이야기를 풀어 보는 자리에 정중히 청하오니 부디 함께하시어 격려와 사랑을 전해 주십시오.〉
그보다 앞선 10월 3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文在寅) 대표는 트위터에 노 의원의 시를 인용하며 〈‘홍익인간’을 굳이 말한다면 ‘사람이 먼저다’ 또는 ‘사람이 희망이다’라며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든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노영민의 신작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중 ‘희망 3’에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노 의원이 북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사실과 문 대표가 노 의원의 시를 인용한 트위터 글은 북 콘서트가 열리기 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0월 7일 자 《국제뉴스》-제목: 詩人 ‘노영민’을 아시나요… 30일 청주서 북 콘서트 ▲2015년 10월 11일 자 《국민일보》-제목: “하늘 아래 딱 한송이” 문재인 측근이자 시인 노영민, 두 번째 시집 펴내 ▲2015년 10월 11일 《연합뉴스》-제목: ‘文 측근’ 노영민, 두 번째 시집… ‘희망’ 키워드 ▲2015년 10월 18일 자 《뉴스 1》-제목: 총선 앞둔 野 출판기념회 ‘줄줄’ ▲2015년 10월 26일 《동양일보》-제목: 노영민 의원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북 콘서트 ▲2015년 10월 29일 《중부일보》-제목: 노영민 의원 북 콘서트〉
오랜 기관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북 콘서트를 한다고 의원실에서 직접 홍보를 하지 않아도, 국회나 정당 정보를 수집하는 대관업무자는 관련 의원이 여는 행사에 대해서는 다 파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업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라며 “노 의원 행사의 경우는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보도됐다. 직접 알리지 않았어도 알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특히 산하기관은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노 의원이 동료의원들은 물론이고 피감기관에도 북 콘서트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같은 당 우윤근(禹潤根) 전 원내대표와 유승희(兪承希) 최고위원, 박수현(朴洙賢)·홍영표(洪永杓) 의원, 당원, 노 의원의 지인, 산하기관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석, 북 콘서트가 성황을 이룬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북 콘서트 때 시집 5000권가량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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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20일 노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게시판에는 ‘출판초청장 수정’ 파일과 ‘노영민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북 콘서트 안내’ 글이 올라와 있었다. |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몇 년 새 가장 잘 나갔다는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가 10년간 2만5000권가량 판매됐는데, 서점에서 팔지도 않은 노 의원의 책이 하루 만에 5000권 팔렸다면 진짜 베스트셀러감”이라고 했다. 《가재미》는 2005년 문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다. 문 시인은 가재미를 쓰면서 탈진했다고 한다.
북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친 뒤 노 의원실 관계자들은 비품을 정리하면서 출판사의 카드 단말기를 챙겼다. 출판사 관계자는 “(노 의원 측에서) 북 콘서트에서만 사용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챙겼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 의원실 관계자는 “출판기념회에서 현장 판매할 때 사용한 출판사 카드 단말기를 의원실에 뒀다가 3~4일 정도 사용했다. 북 콘서트가 끝난 뒤 나중에 책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고, 이들 중 카드로 결제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국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때 구매 편의를 위해 관례로 해 온 방식”이라고 했다.
노 의원실 관계자가 의원회관에 단말기를 설치했을 시기, 한 기관 관계자는 의원실로 직접 찾아와 책을 사고 결제했다. 이는 노 의원 측도 인정한 부분. 노 의원 측 관계자는 기관의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이외에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는 의원실에 직접 방문해 사진 않았지만, 책을 구매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두 기관은 노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산자위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다. 자원외교 부실 문제로 산자위 위원장인 노 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광물자원공사는 200만원, 석탄공사는 50만원어치를 샀다. 노 의원 측은 2015년 11월 초 일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산하기관에 판매한 물량을 전부 취소했다.
노 의원 측이 국회 사무실에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고, 노 의원이 낸 시집을 팔았다는 사실은 2015년 11월 30일 《뉴스타파》의 보도로 알려졌다.
당장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노 의원이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당내 ‘을(乙)지로 위원회’ 소속이라 더욱 그랬다. 비판의 목소리는 새누리당은 물론 당내에까지 높아졌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 30대 청년 몫으로 참여했던 이동학 전 혁신위원은 노 의원의 갑질 논란 의혹이 알려진 11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22살이던 시절, 열린우리당이 내거는 기치는 꽤 멋있었다.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멋있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르던 물은 유속이 느려졌고, 이내 고인 물이 됐다. 고인 물엔 이런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고 썼다.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이었던 금태섭(琴泰燮) 변호사는 다음 날인 12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집’은 극히 개인적인 책이다. 그 책을 출간하고 판매하는 일에 왜 의원실 직원들이 동원되고 ‘남은 책을 의원실에’ 왜 옮겨 오나. 관용차와 공무원인 운전기사를 이용해서 자식들 등하교를 시키고 부인 쇼핑을 보내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비난 여론에도 당사자인 노 의원은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여당 평의원이 (북 콘서트를) 해도 (수익이) 10배는 더 나올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용한 것은 1건뿐이다. 그것도 이미 취소했다”며 당무감사원 조사만 자청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논란은 더욱 커졌다. 급기야 새누리당 서울 종로 당협위원장인 정인봉(鄭寅鳳) 전 의원은 노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산하기관과 상임위원장의 관계에 비춰 볼 때 책 판매금에 대가성이 있을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노 의원은 2015년 12월 2일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자신의 시집(詩集)을 판매해 논란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이날 사과 성명을 통해 “저의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현재 남부지검 형사 6부는 출판사 명의의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로 책을 판 노 의원에 대해 수사 중이다.
“누가 사비로 200만원을 결제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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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30일 새정치연합 노영민 의원이 충북 청주시 선프라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시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 출판기념 북 콘서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 유승희 최고위원. 사진=충청일보 제공 |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감독 대상 기관들이 무슨 돈으로 국회의원의 책을 그렇게나 많이 사느냐다. 해당 기관 예산 목록에 ‘국회의원 책 구매’ 항목이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른 곳에 쓸 예산을 유용(流用)해 국회의원 책을 산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광물자원공사(200만원), 석탄공사(50만원)는 어떤 자금으로 노 의원의 시집을 사들였을까.
《월간조선》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의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우선 광물자원공사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산 단행본 목록을 살펴봤다. 2013년에는 총 214종류의 책을 구입했다. 현역 국회의원의 저서는 단 한 권도 없었다. 두 가지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권씩만 샀다. 두 가지 책은 《혁신, 사람이 첫째다》(삼성토탈 TPM 혁신 스토리·KSA TPM·EAM센터 지음·100부 96만원)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김기재 지음·60부 69만3000원)였다.
2013년 한 해 도서구입비 총액은 2651만원이었다. 2014년에는 290가지 종류의 책을 모두 한 권씩만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 인사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쓴 책은 두 권이었다. 이마저도 현역이 아니었다. 두 가지 책은 《나의 한국 현대사》(유시민 지음)와 《기록》(윤태영 지음)이었다. 2014년 총 도서구입비는 4110만원이었다. 2015년도 마찬가지. 236가지 책 중 1권 이상 구입한 책은 하나(《대한민국 비정상의 정상화》·권기헌 지음·100권 135만원)뿐이었다. 광물자원공사의 3년간 도서 구입 목록에는 노 의원의 시집뿐만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이 쓴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국회를 통해 광물자원공사에 문의한 결과 “이 책들은 각 부서에서 업무수행에 필요한 도서로 인정돼 구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업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도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는 것일까.
12월 11일 노 의원 책 구매에 대해 알고 있다는 광물자원공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노 의원의 책은 어떻게 구입한 것입니까. 회사 현금으로 계산한 것입니까, 아니면 법인카드 혹은 직원 개인카드로 산 것입니까.
“법인카드로 구매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현금 또는 개인카드로 구매겠네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노 의원 지역구가 고향인 직원이 (자신의 카드로) 구매했을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노 의원 지역구가 고향인 직원이 자기 개인카드로 노 의원의 시집 200만원어치를 구매했다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광물자원공사의 자료와 이 관계자의 증언, 취재 중 얻은 정보를 종합한 결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광물자원공사가 노 의원의 책을 법인카드로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사로부터 계산서를 발급받아 구입비용을 정산하는 이른바 현금 결제 또는 개인카드로 결제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현금 결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는 공사의 ‘자료관리 업무 표준’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공사는 법인카드, 또는 현금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서의 기준을 이같이 설정했다.
〈◆공사업무 수행을 위한 조사연구에 필요한 자료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회 또는 협회지 및 상업지 ◆이용빈도가 높거나 참고문헌으로 많이 인용되는 자료. *여기서 자료는 단행본, 연속간행물, 공사간행물, 비도서를 뜻한다.〉
기준에 따르면 노 의원의 시집은 공사가 정의한 자료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인카드 또는 현금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200만원을 개인카드로 결제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노 의원과 관련이 있는 기관의 관계자라고 할지라도 개인 돈으로 시집 200권을 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공기업 회계팀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의 책을 구매할 때는) 절대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할 때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서 다 드러나기 때문이죠. 현금 결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이 모호하다면 모를까 살 수 있는 책에 대한 기준이 확실히 정해진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아마 개인카드로 결제했을 겁니다.”
—200만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개인이 결제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많습니까.
“계산만 하는 겁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다 보전 받습니다.”
—어떻게 보전을 받습니까.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요. 하나 예를 들면 단골 밥집, 술집에서 공(속칭 가라)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해서 메우는 방법도 있지요. 사업비처럼 기준이 애매한 예산에서 충당해 주기도 하고요. 과거 한국조폐공사가 교육훈련비 예산으로 고가 등산복과 다운 점퍼를 10억원어치나 사서 직원들에게 돌린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공기업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예산이 있어요. 이런 예산이 의원들의 책을 대량으로 사는 데 쓰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요.”
—그게 가능합니까.
“공무원들 대단합니다. 제가 회계감사팀에 있었는데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KTX 타고 출장을 갔다 왔다고 출장비를 올립니다. 증거로 예약 확인증을 내지요. 돈을 내고 표를 사면 표와 예약 확인증을 주는데 곧장 취소하고 환불하면 표만 내면 됩니다. 취소했어도 예약 확인증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죠. 만약 실제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적게는 4만~5만원 많게는 7만~8만원을 챙길 수 있습니다. 출장을 가도, KTX보다 저렴한 교통수단(고속버스, 새마을 열차)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금액을 챙길 수 있지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에 10번 이상 출장 가는 공무원이 많습니다. 세종시에 정부청사가 있지 않습니까.”
이 인사의 이야기를 다수의 대관업무자에게 확인했다. “아니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솔직히 맞는 이야기”라는 답도 있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석탄 공사 定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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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11일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소속 민현주 의원(왼쪽)과 서용교 의원은 ‘대가성 출판기념회 금지’ 등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하지만 여야는 이 법안을 지금껏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
—노 의원의 시집을 법인카드로 구매하셨나요.
“아니요.”
—그럼 개인카드로 구매하셨나요.
“아닙니다. 개인카드로 구매했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던데 오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샀습니까.
“저희가 출판사 쪽에 현금으로 입금해서 사려고 했습니다. 사려고 돈을 부쳤는데, 문제가 발생해서 다시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책을 현금으로 살 수 있습니까.
“도서비가 있습니다.”
—도서비가 있어도 구매 기준에 맞는 책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서 구매를 할 때 기준이 어떻게 됩니까.
“따로 없습니다. 교양서적이라고 하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도서비 한도가 얼마입니까.
“이 사건으로 지금 우리 회사의 대내외적인 신인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돈도 돌려받았고요.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관계자의 이야기대로 도서 구매와 관련한 대한석탄공사 정관(定款)을 보면 법인카드 결제 외 도서를 사기 위해서는 출판사로부터 계산서를 발급받아 구입비용을 정산할 수 있다. 이때 어떤 도서를 사야 한다는 별도 규정은 없다. 매년 도서비 예산범위 내에서 직원 업무지식 향상, 교양 배양을 위해 도서 구입을 할 수 있다는 조항만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만화책을 사도 교양 배양을 위해 샀다고 하면 지적할 방법이 없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산하기관이 다른 곳에 쓸 돈을 국회의원 책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의 압박이 있기 때문”이라며 “몇몇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 또는 북 콘서트를 열기 전 보좌진들한테 할당을 줬다는 첩보가 있다. 최소 몇백 권은 반드시 팔아야 인정받는 상황에서 산하기관에 압박 안 하는 보좌진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출판기념회 금지법안 자동 폐기 가능성
여야 실세(實勢)나 국회 주요 상임위원장 출판기념회나 북 콘서트에는 천 명씩이 몰려든다. 정부 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대기업·금융회사 임원 등이 줄지어 의원과 직접 악수하며 눈도장을 찍은 뒤 돈봉투를 건넨다.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6~2007년경부터다. 2004년 초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후원금 연간 모금 한도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규제도 대폭 강화된 이후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줄어든 돈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노골적 수금(收金) 행각에 비난이 잇따르자 여야는 자정(自淨)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다. 국회의원의 ‘현금 창구’로 불리는 출판기념회 금지법안은 지금껏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19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