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재앙,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 인구감소로 인한 사회·문화현상 : 월간조선

큰 이변이 없는 한, 대한민국은 2018년 4934만명을 정점(頂點)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감소 추세를 유지해 왔던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는 이변(異變)이 발생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향후 10여 년간 그런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경제적인 여력과 같은 요인 이외에 문화적 요인이 결부되어 있다. 북유럽의 경우 출산율을 1.5명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사회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바로 문화적 요인 때문이다.

인구구성비 변화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화(老齡化)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앞으로 과감한 이민확대 정책 등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인구감소와 노령화 추세는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이민 확대는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어느 사회든 결단을 내리기 힘든 과제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맞물리게 되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세계 최대의 채권 운용회사인 핌코사의 운용책임자 빌 그로스는 “만약 내가 향후 몇 년 동안 아무런 통신수단도 없는 외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단 한 가지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구구성의 변화에 대한 정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통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한 나라의 미래를 점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구성비 변화는 미래전망에서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특히 인구구성비의 변화는 단시간 내에 역전시키기 힘든 지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장기전망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된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연속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밀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인구감소 사회의 모습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지방자치단체를 살펴보면 된다.

‘수요 부족’ 심화

이미 우리나라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이 25%를 넘어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많이 있다. 농어업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으면서 인근에 대도시를 끼고 있지 않은 군(郡)이나 시(市) 단위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은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강연차 지방을 자주 찾는 필자는 이런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할 때마다 ‘아, 이게 바로 인구감소 이후 한국의 미래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자리를 찾아서 대도시로 떠난 젊은이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정든 지역사회를 떠나는 가장과 그 가족들, 그리고 날로 늙어 가는 노인들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의 모습은 바로 미래의 대한민국이다.

누구든지 나이를 먹게 되면 생필품이나 내구소비재 소비를 크게 줄이게 된다. 의료분야처럼 일부 특수한 상품이나 서비스만 예외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체험을 합하면 노령화가 크게 진행된 인구감소 사회의 뚜렷한 특징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주고받는 관계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물건이든 서비스든 간에 사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만큼 생산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 사회에서는 ‘수요 부족’이 뚜렷한 특징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며, 경제성장률은 크게 낮아질 것이다.

한국처럼 수출 주도형 산업구조를 갖춘 나라는 내수(內需)침체에도 불구하고 나라 밖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세계시장에서 구조적으로 흑자(黑字)를 내는 국가와 적자(赤字)를 내는 국가 사이의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어느 나라든지 현재보다 내수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구감소가 본격화되는 시점에는 한국의 내수 의존도는 현재보다는 크게 높아진 상태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수부진은 곧바로 성장률 하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지난 10여 년간 거듭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수가 살아나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구매력을 갖고 있지만 돈을 쓰지 않는 노인인구의 비율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인구구조상 일본을 15년 정도 뒤따르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경험은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케오 가즈히토(池尾和人) 게이오(慶應)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은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하게 줄고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인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2008년 산부인과 132곳 문닫아

인구감소로 특히 타격이 큰 분야는 범용(汎用) 생활용품들이다. 인구감소 사회는 먹고, 마시고, 놀고, 입는 등의 활동 총량이 줄어드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용품 산업, 산부인과, 소아과, 어린이 보육시설, 유치원, 초·중·고교, 대학교 등이 인구감소로 인해 결정타를 맞게 될 것이다.

예컨대 신생아 수 감소로 인한 산부인과 폐업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06년 174곳, 2007년 153곳, 2008년 132곳의 산부인과가 문을 닫았다. 소아청소년과 의원도 2007년 180곳, 2008년 156곳이 폐업했다.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출산율 하락에 따라서 관련 산업들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는 흥미로운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현숙(숭실대)·우석진(명지대) 교수는 <출산이 일자리 창출과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신생아가 출산하게 되면 유발되는 생산효과를 12억2000만원으로 추계했다.

1인당 생애단계별 생산과 고용창출 효과를 분석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출생과 영·유아(?幼兒)기에는 의료 서비스, 분유·이유식, 유아용품, 보육 서비스 등 관련된 산업에서 4400만원의 생산과 0.17명의 고용이 발생한다. 초등학생~대학생 기간 동안에는 공·사교육, 학용품, 서적 등 관련 산업에서 2억2900만원의 생산과 0.717명의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직장생활 기간에는 결혼 및 일상적인 소비생활로 3억9300만원의 생산과 0.067명의 고용효과가 발생한다. 은퇴기에는 고용효과가 높은 의료 서비스 등에서 2억1700만원의 생산과 0.13명의 고용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신생아 숫자가 줄어들고 이로 인한 인구감소 현상은 생애에 걸쳐서 이들 생산과 고용창출 효과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의료·건강산업 수요 증가

노령인구의 급증에 따라서 새로운 수요 증가로 각광을 받는 분야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의료·건강·간호산업 등에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며, 이들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속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고령화사회로 본격 진입하는 2020년이 되면 보건의료비가 2000년에 비해서 34.4%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8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노인의료비의 절대액수는 10조7371억원으로 2002년에 비해서 6년 만에 3배가량 증가했다. 건강보험에서 노인진료비가 차지하는 구성비율은 2002년의 19.3%에서 2008년에는 30.8%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기준연도를 1990년대 중간으로 이동시키더라도 변함이 없다. 1994년의 노인의료비 액수는 5510억원에 불과했지만 2004년에는 5조1360억원으로 1994년에 비해 약 10배 증가했다.

노인의료비의 증가는 노인의 의료비를 부담하기 위해 생산가능인구가 더 많은 부담을 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이 갈수록 연금(年金) 및 건강보험 등의 부담을 둘러싸고 혜택을 보는 세대와 부담을 해야 하는 세대 사이에 갈등이 깊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막 은퇴하기 시작한 712만명에 달하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생)나 현재의 노인층은 충분한 구매력을 가질 정도로 재산을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2차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버 부머’ 세대(7700만명)나 1947~1949년 태어난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680만명)는 고성장과 맞물린 청·장년기를 보내면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노인 빈곤’ 문제 심각해질 것

고령화로 인해 보건의료산업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사진은 충남 예산의 한 노인요양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박사가 2006년을 기준으로 행한 중·고령층 가계(家計)의 자산 및 소득불평등도에 관한 연구는 중·고령층의 빈곤문제와 자산 격차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젊은층에 비해 중·고령층의 자산·소득 격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60대는 1980년대에 30대였고, 지금의 70대는 1980년대에 40대였다. 청·중년기에 고도성장기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자산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기를 살았던 이들은 현 시점에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국의 노령층은 소득·자산 면에서 빈곤계층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다.

노인의 경우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개인금융자산은 1714조원(2008년 9월 기준)이며, 이 가운데 60세 이상의 노인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400조원에 달한다(흥국금융연구소 추정). 노인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 비중은 23.34%에 불과하다. 노인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 비중을 20% 정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2007년을 기준으로 총 가계금융자산 1545조 엔 가운데서 60세 이상의 노인 세대가 보유한 액수가 1157조 엔으로 전체 가계자산의 74.9%를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77%를 60세 이상의 노인이 갖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노인은 그 사회의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하지만, 한국은 그 반대인 셈이다.

노인뿐 아니라,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도 외환(外換)위기나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인해 미국·일본의 베이비 부머 세대에 비해 재산축적을 하기 힘든 시대였다.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은 “(베이비 부머) 세대는 허리가 휠 정도로 자식 교육시키느라 모아둔 돈도 없다. 자식을 사회로 내보내 가정을 이룰 때까지 뒷바라지해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아 노후 앞가림은 꿈도 못 꾼다”고 말한다.

앞으로 한국의 인구감소가 본격화될 때면, ‘노년 빈곤’ 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이 든 세대가 다수(多數)를 차지하게 되면서 정치적 파워를 발휘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할아버지·할머니는 누구나 손자·손녀의 앞날에 대해 걱정한다. 그런 관계가 끊어지고 세대를 중심으로 집단적으로 결속할 때, 그리고 그 집단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형편에 처하게 된다면, 이들은 더 많은 예산을 자신에게 배분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은퇴자당 만들어 소속 의원 입각시키기도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정치인들이 농어촌 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은 노령인구의 요구에 귀를 막을 수 없다. 은퇴자를 중심으로 각종 이익단체가 등장하게 되고 이들의 정치적인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은퇴자당’이라는 정당이 생겨 소속 의원이 입각(入閣)하기까지 했다.

고령사회가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고령사회의 가족풍속도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2021년을 한번 상상해 보라. 한나와 테드는 72세의 노부부로 베이비붐 세대이며, 그들의 딸 베키는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베키의 10대 자녀는 의식주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베키의 조부모가 95세가 돼서도 살아 있고, 건강이 악화돼 일거수일투족을 간호사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베키는 어느 추수감사절 날, 네 세대가 모여 즐겁게 들고 있는 저녁식사 비용을 자신과 남편만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며칠 전 한 택시기사로부터 들었다. 치매 초기 증상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경제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아버지가 계속해서 저런 상태로 계신다면, 지금 막 가정을 갖고 기반을 쌓기 위해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저희도 아이들을 겨우 공부시킬 정도였지, 크게 아이들에게 도와줄 형편이 아니거든요.”

머지않아 많은 가족이 자기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이은 인구감소는 개별 가족 단위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년 앞으로 다가온 이야기다. 10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이러한 미래에 대비하려면 정부는 재정을 건실하게 운영하고, 가계는 교육비 부담을 줄여서 개인의 저축을 늘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