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은 핵확산 금지조약(NPT)을 거부한 채 핵무기를 개발하여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들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이들의 선례를 따라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
金泰宇
⊙ 1950년 대구 출생.
⊙ 경북고·영남대 졸업. 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뉴욕주립대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同 군비통제연구실장. 現 향군 정책자문위원.
해양전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
⊙ 저서 :〈한국핵은 왜 안 되는가〉<북핵 감기인가 암인가>
<주한미군 보내야하나 잡아야하나> 등 저술.
金泰宇
⊙ 1950년 대구 출생.
⊙ 경북고·영남대 졸업. 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뉴욕주립대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同 군비통제연구실장. 現 향군 정책자문위원.
해양전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
⊙ 저서 :〈한국핵은 왜 안 되는가〉<북핵 감기인가 암인가>
<주한미군 보내야하나 잡아야하나> 등 저술.
북한의 對南(대남)위협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李明博(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대남비방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남비방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혁명의 대고조’ ‘총공세’ ‘파쇼’ 등 도발적인 표현들을 쏟아낸 데 이어 지난 1월 17일에는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쪽을 향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전면대결 태세’로 남쪽을 위협하는 ‘최후 통첩식’ 성명이었다.
1월 30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남한과 합의한 모든 정치 군사적 합의를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롭게 출범한 美(미)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항의라도 하듯, 미국에 대해서도 대결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거듭된 요격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함경도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비방은 오랜 관행이지만, 최근의 대남비방은 평소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남한 대통령을 향해 ‘역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쇠고기 파동에서 장관 임명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남한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작심이라도 한 듯 단순한 비방이 아닌 협박 수준의 험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의제 쪼개기’가 북한의 전술
북한이 대남협박을 지속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은 미국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오바마 행정부에 북한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향후 개최될 핵협상에서 북한의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긴장조성을 통해 체제 불안감을 관리하겠다는 ‘내부용’ 목적도 감지된다. 핵심 충복들을 인민무력부장 및 총참모부장에 임명한 최근의 軍(군) 인사도 건강문제를 겪은 이후 내부결속을 통해 체제를 다지겠다는 金正日(김정일)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의 氣(기)싸움을 지속하면서 한국의 대북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순치시켜 나가겠다는 의도를 표출하고 있다.
넷째,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전가함으로써 남한 내 反(반)정부 및 從北(종북) 세력을 결집시키고 南南(남남)분열을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북한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北核(북핵)문제, 韓美(한미)동맹, 駐韓美軍(주한미군),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 북한이 제기하는 모든 이슈들은 남한 내에서 保革(보혁)갈등의 쟁점이 되어 한국사회를 둘로 쪼개는 효과를 가져왔다. 종합컨대 북한은 對美(대미)용, 對內(대내)용, 대남한정부용, 대남한사회용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각의 목적에는 보다 치밀한 북한의 계산들이 들어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에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 속에는 복잡한 ‘핵 계산법’이 포함되어 있다. 2003년 이후 7년째 이어지고 있는 6자회담을 살펴보면 북한의 계산법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북한은 하나의 의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면 이것을 여러 개의 의제로 나누는 ‘의제 쪼개기(agenda slicing)’를 통해 끝없이 미국을 물고 늘어지면서 시간을 버는 협상술을 구사해 왔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발표문을 통해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의 폐기’에 합의했지만 이후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이를 ‘폐쇄·봉인’ ‘불능화·신고’ ‘검증·폐기’ 등 3단계로 나누어 협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고는 폐쇄 및 불능화의 대상을 세 곳 핵시설로 국한하여 여타 핵시설들을 추후 의제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으며, 불능화 역시 10개 이상의 단계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리비아와의 핵협력설 규명, 농축 프로그램의 규명 등을 신고의 대상에서 분리함으로써 이 역시 미제의 의제로 남기는 데 성공했다.
결국 지금까지 6자회담이 열두 번이나 열렸지만 비핵화의 핵심인 핵무기 및 핵무기 인프라의 규명과 폐기는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제3단계의 의제로 미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조건이 맞으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흘림으로써 협상이 이어지도록 하는 기민함을 발휘했지만, 중간 중간에 ‘본심’을 드러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북한은 “북한과 미국이 핵국 대 핵국으로 핵군축 회담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주기적으로 제기했으며,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듯 우리의 핵보유도 인정하라”는 요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어떻게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여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계산법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6자회담을 ‘반대급부를 주고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만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으로서는 반대급부를 받고 핵을 포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시간을 끌면서 반대급부를 키우면서도 끝내 핵보유를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 본심일 것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거부한 채 핵무기를 개발하여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들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이들의 선례를 따라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해 미국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
이스라엘의 ‘물물교환형’ 핵보유 전략
이스라엘은 국가생존을 위해 핵보유를 고집한 경우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겪으면서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인들은 독립 직후부터 우라늄을 추출하기 위해 네게브 사막의 인광석을 찾았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과 함께 핵개발에 착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핵무기를 보유한 시점은 골다 메이어 총리가 집권했던 시절인 1970년을 전후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이 공개적인 핵실험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핵보유 시점이 분명하지 않고 이스라엘 역시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불확실 전략(strategy of ambiguity)’을 구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으며 현재 수소폭탄을 포함한 80개 내외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1960년에 제공한 IRR-1 연구爐(로), 프랑스가 1963년에 제공한 IRR-2 연구로 등을 시발로 농축 및 再(재)처리 능력을 확보하고 디모나 핵연구 단지를 조성하는 등 핵무장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핵보유 행보를 묵인했다. 1968년 NPT가 서명되고 1970년에 발효되었지만 이스라엘은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방조한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역량, 재미 유대인의 로비, 미국의 중동정책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중동의 강자로 부상하는 동안 미국 내 유대인들의 영향력도 급성장했으며, 미국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생존하는 것이 중동정책에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에 있어 이스라엘은 중동정책의 거점이자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결국 이스라엘의 핵보유 기정사실화는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가치와 미국적 가치를 제공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보유를 묵인 받는 ‘물물교환형 모델’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핵보유는 ‘정면돌파형’
이에 비해 인도의 핵보유는 ‘정면돌파형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일찍이 1974년에 첫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중국과의 관계, 취약한 국내 경제기반 등을 감안하여 스스로 이를 ‘평화적 핵폭발(PNE)’로 규정하고 핵무장을 보류했다. 이후 24년이 지난 1998년에 공개적인 핵실험을 수행하고 핵무장에 착수했다. 국제사회는 NPT를 거부한 채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인도와의 일체의 원자력 협력을 거부했다.
그러나 인도는 개인소득은 낮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 일본, 중국에 이은 4위의 경제대국으로 국토, 자원, 인구 등에서 강대국 반열에 오르고 있는 나라다. 인도는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 체제라는 채찍으로만 다스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상하이(上海)협력기구(SCO) 등을 통해 ‘미국 일방주의 견제’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인도를 自國(자국) 영향권으로 포용하는 일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긴요했다.
2006년 3월 2일 부시 대통령과 만모한 싱 총리가 서명한 ‘미-인도 핵협력 합의’는 미국이 인도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키기 위해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합의에 의해 인도는 핵보유를 인정받는 상태에서 미국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공급국그룹(NSG) 등과의 평화적 원자력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확산체제의 관리국인 미국이 핵보유를 인정함에 따라 인도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에서 합법적인 핵보유국이 됐다. 庶子(서자) 핵보유국에서 嫡子(적자) 핵보유국으로 승격된 셈이다.
인도는 스스로의 국력신장과 국제역할 증대를 통해 핵세계의 제약들을 돌파하고 핵보유를 인정받은 경우다. 오늘날 인도는 50개 내외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의 3측 체제와 유사한 핵군사력, 즉 핵무기를 지상발사용, 해상 및 해저발사용, 공중발사용 등으로 분산배치하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는 이미 로켓 및 미사일 분야에서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한 미국의 결정은 ‘NPT 질서 존중’을 강조해 온 지금까지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어서 ‘세계전략상의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비확산 원칙을 희생시킨 사례’가 될 수 있으며, 이로써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들이 ‘이중기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묻어 가기형’의 파키스탄 핵보유 전략
이에 비해 파키스탄의 핵보유 기정사실화는 ‘묻어 가기형 모델’에 해당한다. 인도와의 세 차례 전쟁에서 패배했던 파키스탄은 일찍부터 인도와 핵개발 경쟁을 벌여 왔다. 1970년대 미국은 농축이나 재처리를 시도하는 나라에는 원조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한 대외원조법에 따라 파키스탄에 대한 일체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중단했으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 정부는 이런 저런 단서조항을 이용하여 원조를 재개했다.
소련군에 저항하는 아프간 반군을 지원했던 미국에 반군기지를 제공한 파키스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1984년 파키스탄인의 핵물질 밀수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가 1985년 대외원조법 개정을 통해 핵물질 밀수국에 대한 원조를 금지했지만, 미국 정부는 오히려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자제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원조를 지속했다.
1987년 아사드 페레즈라는 캐나다 국적의 파키스탄인이 미국회사로부터 농축관련 장비들을 구입하려다 적발되었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을 제재하지 않았다.
1990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었지만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이미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핵개발을 지속하다가 1998년 5월 11일과 13일 인도가 핵실험을 단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5월 28일과 30일에 핵실험을 실시하고 단번에 핵보유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하고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자 미국은 또 다시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절실했으며, 파키스탄은 기지제공, 정보제공 등을 통해 협력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핵보유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요컨대 파키스탄은 인도와 같은 강대국도 아니고 이스라엘과 같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가진 나라도 아니지만, 절묘하게 국제정세의 흐름을 이용하면서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간 경우라 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현재 5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제8위의 핵보유국이다.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막무가내형’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중 어느 모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의 체제와 행동양태는 미국적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식 ‘물물교환 모델’에 따라 핵보유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인도의 ‘정면돌파형’을 답습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물론 소련의 아프간 침공, 테러와의 전쟁 등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이 간절히 원하는 협력카드를 손에 쥐고 이것을 이용했던 파키스탄의 경우와도 다르다. 북한에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협력카드가 없다. 북한은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하면서 왜 우리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느냐”라고 항변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인도와 동일시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북한의 핵보유 기정사실화 시도는 ‘막무가내형 모델’에 해당한다. 북한의 수령독재 체제는 기득권층에게 있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대상이며, 핵무기는 그 체제를 수호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즉, 북한의 핵개발은 기득권층의 절박한 체제수호 의지의 발로인 것이며, 북한은 이 ‘불굴의 의지’만을 내세우고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애꿎은 한국을 인질로 삼은 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공연한 시비를 걸고 있다. 경제력 열세를 극복하고 대남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 및 미사일 위협도 가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핵 계산법이다.
이 계산법은 향후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북한이 벌이고 있는 ‘긴장조성’ 게임도 이 계산법의 연장선에 있다. 다시 말해, 서쪽에서는 서해 NLL 도발 가능성을 흘리며 한국을 협박하고 동쪽에서는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를 위협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북한의 행동 속에는 북한이 지난 20년간 집요하게 고수해 온 특유의 핵 계산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협박, 무한정 방치할 수 없어
북한의 全(전)방위적 긴장조성에 대해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에 더 큰 긴장을 촉발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군이 경계를 강화하고 도발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다른 부처들은 조용히 평상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를 넘는 비방과 협박을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다. 한국으로서는 차분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대응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한이 협박의 수위를 높여 가면서 남한 내부에서도 부정적 여파들이 감지되고 있다. 비전문가 국민 중에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남쪽에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너무 수세적으로 북한의 변화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남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하고 장관인사를 비난하는 등 지나친 내정간섭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라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북한주민과 국제사회를 향한 홍보활동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위험한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북한 스스로에게도 득이 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줄 필요도 있다.
무차별적 대남비방은 오히려 남한의 反北(반북)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으며, 일방적인 미사일 및 핵위협은 남한 여론을 자극하여 강력한 대응 미사일 프로그램을 촉발시킬 수 있다. 북한에 이런 가능성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일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지금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위험한 핵 계산법이 국제사회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을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고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얻어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이 ‘합의 무효화’ 등 적반하장격 주장을 반복한다면 한국도 이 공동선언을 정식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국회에서도 대응적 핵보유를 주장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런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이 또 다시 일본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일본의 여론도 조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도 시끄러워질 것이다.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시한 미사일 실험에 대해 발사기지 파괴 등 강력한 응징을 촉구하는 국제여론이 부상할 수도 있다.⊙
1월 30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남한과 합의한 모든 정치 군사적 합의를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롭게 출범한 美(미)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항의라도 하듯, 미국에 대해서도 대결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거듭된 요격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함경도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비방은 오랜 관행이지만, 최근의 대남비방은 평소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남한 대통령을 향해 ‘역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쇠고기 파동에서 장관 임명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남한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작심이라도 한 듯 단순한 비방이 아닌 협박 수준의 험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의제 쪼개기’가 북한의 전술
북한이 대남협박을 지속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은 미국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오바마 행정부에 북한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향후 개최될 핵협상에서 북한의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긴장조성을 통해 체제 불안감을 관리하겠다는 ‘내부용’ 목적도 감지된다. 핵심 충복들을 인민무력부장 및 총참모부장에 임명한 최근의 軍(군) 인사도 건강문제를 겪은 이후 내부결속을 통해 체제를 다지겠다는 金正日(김정일)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의 氣(기)싸움을 지속하면서 한국의 대북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순치시켜 나가겠다는 의도를 표출하고 있다.
넷째,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전가함으로써 남한 내 反(반)정부 및 從北(종북) 세력을 결집시키고 南南(남남)분열을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북한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北核(북핵)문제, 韓美(한미)동맹, 駐韓美軍(주한미군),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 북한이 제기하는 모든 이슈들은 남한 내에서 保革(보혁)갈등의 쟁점이 되어 한국사회를 둘로 쪼개는 효과를 가져왔다. 종합컨대 북한은 對美(대미)용, 對內(대내)용, 대남한정부용, 대남한사회용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각의 목적에는 보다 치밀한 북한의 계산들이 들어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에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 속에는 복잡한 ‘핵 계산법’이 포함되어 있다. 2003년 이후 7년째 이어지고 있는 6자회담을 살펴보면 북한의 계산법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북한은 하나의 의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면 이것을 여러 개의 의제로 나누는 ‘의제 쪼개기(agenda slicing)’를 통해 끝없이 미국을 물고 늘어지면서 시간을 버는 협상술을 구사해 왔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발표문을 통해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의 폐기’에 합의했지만 이후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이를 ‘폐쇄·봉인’ ‘불능화·신고’ ‘검증·폐기’ 등 3단계로 나누어 협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고는 폐쇄 및 불능화의 대상을 세 곳 핵시설로 국한하여 여타 핵시설들을 추후 의제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으며, 불능화 역시 10개 이상의 단계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리비아와의 핵협력설 규명, 농축 프로그램의 규명 등을 신고의 대상에서 분리함으로써 이 역시 미제의 의제로 남기는 데 성공했다.
결국 지금까지 6자회담이 열두 번이나 열렸지만 비핵화의 핵심인 핵무기 및 핵무기 인프라의 규명과 폐기는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제3단계의 의제로 미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조건이 맞으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흘림으로써 협상이 이어지도록 하는 기민함을 발휘했지만, 중간 중간에 ‘본심’을 드러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북한은 “북한과 미국이 핵국 대 핵국으로 핵군축 회담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주기적으로 제기했으며,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듯 우리의 핵보유도 인정하라”는 요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어떻게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여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계산법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6자회담을 ‘반대급부를 주고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만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으로서는 반대급부를 받고 핵을 포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후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시간을 끌면서 반대급부를 키우면서도 끝내 핵보유를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 본심일 것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거부한 채 핵무기를 개발하여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들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이들의 선례를 따라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해 미국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
이스라엘의 ‘물물교환형’ 핵보유 전략
이스라엘은 국가생존을 위해 핵보유를 고집한 경우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겪으면서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인들은 독립 직후부터 우라늄을 추출하기 위해 네게브 사막의 인광석을 찾았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과 함께 핵개발에 착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핵무기를 보유한 시점은 골다 메이어 총리가 집권했던 시절인 1970년을 전후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이 공개적인 핵실험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핵보유 시점이 분명하지 않고 이스라엘 역시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불확실 전략(strategy of ambiguity)’을 구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으며 현재 수소폭탄을 포함한 80개 내외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1960년에 제공한 IRR-1 연구爐(로), 프랑스가 1963년에 제공한 IRR-2 연구로 등을 시발로 농축 및 再(재)처리 능력을 확보하고 디모나 핵연구 단지를 조성하는 등 핵무장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핵보유 행보를 묵인했다. 1968년 NPT가 서명되고 1970년에 발효되었지만 이스라엘은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방조한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역량, 재미 유대인의 로비, 미국의 중동정책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중동의 강자로 부상하는 동안 미국 내 유대인들의 영향력도 급성장했으며, 미국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생존하는 것이 중동정책에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에 있어 이스라엘은 중동정책의 거점이자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결국 이스라엘의 핵보유 기정사실화는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가치와 미국적 가치를 제공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보유를 묵인 받는 ‘물물교환형 모델’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핵보유는 ‘정면돌파형’
이에 비해 인도의 핵보유는 ‘정면돌파형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일찍이 1974년에 첫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중국과의 관계, 취약한 국내 경제기반 등을 감안하여 스스로 이를 ‘평화적 핵폭발(PNE)’로 규정하고 핵무장을 보류했다. 이후 24년이 지난 1998년에 공개적인 핵실험을 수행하고 핵무장에 착수했다. 국제사회는 NPT를 거부한 채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인도와의 일체의 원자력 협력을 거부했다.
그러나 인도는 개인소득은 낮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 일본, 중국에 이은 4위의 경제대국으로 국토, 자원, 인구 등에서 강대국 반열에 오르고 있는 나라다. 인도는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 체제라는 채찍으로만 다스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상하이(上海)협력기구(SCO) 등을 통해 ‘미국 일방주의 견제’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인도를 自國(자국) 영향권으로 포용하는 일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긴요했다.
2006년 3월 2일 부시 대통령과 만모한 싱 총리가 서명한 ‘미-인도 핵협력 합의’는 미국이 인도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키기 위해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합의에 의해 인도는 핵보유를 인정받는 상태에서 미국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공급국그룹(NSG) 등과의 평화적 원자력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확산체제의 관리국인 미국이 핵보유를 인정함에 따라 인도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에서 합법적인 핵보유국이 됐다. 庶子(서자) 핵보유국에서 嫡子(적자) 핵보유국으로 승격된 셈이다.
인도는 스스로의 국력신장과 국제역할 증대를 통해 핵세계의 제약들을 돌파하고 핵보유를 인정받은 경우다. 오늘날 인도는 50개 내외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의 3측 체제와 유사한 핵군사력, 즉 핵무기를 지상발사용, 해상 및 해저발사용, 공중발사용 등으로 분산배치하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는 이미 로켓 및 미사일 분야에서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한 미국의 결정은 ‘NPT 질서 존중’을 강조해 온 지금까지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어서 ‘세계전략상의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비확산 원칙을 희생시킨 사례’가 될 수 있으며, 이로써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들이 ‘이중기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묻어 가기형’의 파키스탄 핵보유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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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5월, 핵실험에 성공한 후 파키스탄 국민들이 축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소련군에 저항하는 아프간 반군을 지원했던 미국에 반군기지를 제공한 파키스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1984년 파키스탄인의 핵물질 밀수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가 1985년 대외원조법 개정을 통해 핵물질 밀수국에 대한 원조를 금지했지만, 미국 정부는 오히려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자제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원조를 지속했다.
1987년 아사드 페레즈라는 캐나다 국적의 파키스탄인이 미국회사로부터 농축관련 장비들을 구입하려다 적발되었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을 제재하지 않았다.
1990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었지만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이미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핵개발을 지속하다가 1998년 5월 11일과 13일 인도가 핵실험을 단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5월 28일과 30일에 핵실험을 실시하고 단번에 핵보유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하고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자 미국은 또 다시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절실했으며, 파키스탄은 기지제공, 정보제공 등을 통해 협력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핵보유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요컨대 파키스탄은 인도와 같은 강대국도 아니고 이스라엘과 같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가진 나라도 아니지만, 절묘하게 국제정세의 흐름을 이용하면서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간 경우라 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현재 5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제8위의 핵보유국이다.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막무가내형’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중 어느 모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의 체제와 행동양태는 미국적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식 ‘물물교환 모델’에 따라 핵보유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인도의 ‘정면돌파형’을 답습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물론 소련의 아프간 침공, 테러와의 전쟁 등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이 간절히 원하는 협력카드를 손에 쥐고 이것을 이용했던 파키스탄의 경우와도 다르다. 북한에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협력카드가 없다. 북한은 “인도의 핵보유를 인정하면서 왜 우리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느냐”라고 항변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인도와 동일시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북한의 핵보유 기정사실화 시도는 ‘막무가내형 모델’에 해당한다. 북한의 수령독재 체제는 기득권층에게 있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대상이며, 핵무기는 그 체제를 수호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즉, 북한의 핵개발은 기득권층의 절박한 체제수호 의지의 발로인 것이며, 북한은 이 ‘불굴의 의지’만을 내세우고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애꿎은 한국을 인질로 삼은 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공연한 시비를 걸고 있다. 경제력 열세를 극복하고 대남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 및 미사일 위협도 가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핵 계산법이다.
이 계산법은 향후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북한이 벌이고 있는 ‘긴장조성’ 게임도 이 계산법의 연장선에 있다. 다시 말해, 서쪽에서는 서해 NLL 도발 가능성을 흘리며 한국을 협박하고 동쪽에서는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를 위협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북한의 행동 속에는 북한이 지난 20년간 집요하게 고수해 온 특유의 핵 계산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협박, 무한정 방치할 수 없어
북한의 全(전)방위적 긴장조성에 대해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에 더 큰 긴장을 촉발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군이 경계를 강화하고 도발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다른 부처들은 조용히 평상업무에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를 넘는 비방과 협박을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다. 한국으로서는 차분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대응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한이 협박의 수위를 높여 가면서 남한 내부에서도 부정적 여파들이 감지되고 있다. 비전문가 국민 중에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남쪽에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너무 수세적으로 북한의 변화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남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하고 장관인사를 비난하는 등 지나친 내정간섭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라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북한주민과 국제사회를 향한 홍보활동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위험한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북한 스스로에게도 득이 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줄 필요도 있다.
무차별적 대남비방은 오히려 남한의 反北(반북)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으며, 일방적인 미사일 및 핵위협은 남한 여론을 자극하여 강력한 대응 미사일 프로그램을 촉발시킬 수 있다. 북한에 이런 가능성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일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지금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위험한 핵 계산법이 국제사회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을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고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얻어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이 ‘합의 무효화’ 등 적반하장격 주장을 반복한다면 한국도 이 공동선언을 정식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국회에서도 대응적 핵보유를 주장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런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이 또 다시 일본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일본의 여론도 조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도 시끄러워질 것이다.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시한 미사일 실험에 대해 발사기지 파괴 등 강력한 응징을 촉구하는 국제여론이 부상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