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신년호 卷頭時論] ‘중국’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핀란드化할 것인가? : 월간조선

근년에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主權(주권)은 점점 자주, 그리고 깊이 침해되어 왔다. 두 나라의 힘이 非(비)대칭적이면 둘 사이의 관계도 당연히 비대칭적이 된다.

이제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 비대칭은 전반적이다. 우리 사회가 超(초)강대국이 된 중국에 유화적으로 대하는 것은 적응적 행태이므로, 우리 시민들은 그런 변화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게 된다. 그런 심리적 적응은 어쩔 수 없이 도덕적 차원의 변화를 부른다.

이런 상황은 부정적이고 위험하다. 우리 사회가 겪는 그런 적응적 변화가 오래 진행된다면 ‘핀란드化(Finlandization)’, 즉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대국인 중국의 뜻을 먼저 살피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먼저 우리 시민들이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와 강대국인 중국 사이에 존재하는 비대칭적 관계는 우리 시민들에겐 성찰하기 괴로운 주제다. 그래서 외면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현실을 외면하면서 앞날을 설계할 수는 없다.

근년에 중국은 빠르게 강대국으로 자라났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도 많지만 아주 압제적이고 가난한 나라였다. 이제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저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둘째로 큰 소비 시장이고, 둘째로 많은 군사 예산을 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크고 중요한 나라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리라는 전망도 자주 나온다.

중국 경제 성장의 소용돌이

중국의 그런 변신을 떠받친 것은 물론 빠른 경제 성장이다. 중국 경제는 30년 동안 9%가 넘는 연간성장률을 누렸다. 그래서 개인 소득은 거의 7배 늘었고, 4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뒤따랐지만,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성취다.

중국의 그런 경제 발전은, 다른 모든 성공적 경제 성장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자유롭게 만든 데서 비롯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모든 농토를 집단농장으로 편성한 일은 특히 큰 재앙을 불러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마침내 1978년에 그런 사회주의 경제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경제 개혁은 모든 분야에서 시작됐지만, 개혁이 먼저 성공한 것은 농촌에서였다. 집단농장 제도를 없애고 농민들이 자신의 수확을 갖도록 하자, 농업 생산이 갑자기 늘어났다. 농업에서의 성공은 경제 개혁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아울러 공업과 상업의 개혁에 모형을 제공했다. 그 뒤로 저항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경제 개혁은 대세가 되었다.

성공은 비판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제적 성취가 워낙 눈부셔서,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엔 현명함의 後光(후광)이 어린다. 그래도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엔 경제학 이론을 따른 경제적 판단보다는 정권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 정책이 그렇게 마련되고 시행되었으므로, 중국은 정치적 자유라는 형태로 큰 대가를 치렀다. 東(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경제적 자유와 풍요보다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과 정치적 자유를 훨씬 갈망했다. 그들은 대부분 독립과 자유를 얻었지만,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혼란 때문에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인민들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경제적 자유와 풍요를 누린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정치적 자유를 얻지 못했고,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정권의 압제적 통치를 받는다. 큰 활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아직 제대로 개혁되지 않은 부분들을 상당히 지녔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은 중국 경제의 약점이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미래에 중국 경제가 활력을 크게 잃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指標(지표)들을 보면 중국 경제는 활력을 잃지 않고 계속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帝國主義中國

중국 경찰이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승려들을 구타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帝國主義(제국주의) 국가였다. ‘중심적 나라’라는 뜻을 지닌 중국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인종중심주의를 드러낸다. 자신을 ‘天下(천하)’라고 부르는 관행은 중국이 자신을 文明(문명) 세계의 전체라고 여겨 왔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3세기 진시황제가 중국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세운 뒤 중국은 줄곧 제국을 이루었다. 제국의 몰락에 따른 일시적 분열은 이내 다른 제국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런 역사는 중국으로 하여금 줄곧 제국주의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근대에 중국이 침체하면서, 그런 성향이 잠시 숨었을 뿐이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을 꿈꾸는 중국이 추구할 제국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을 보면 중국 제국주의는 부정적 특질들을 많이 지니게 될 것이다. 중국의 제국주의는 일방적이고 압제적이고 공격적일 것이다.

중국은 아주 압제적인 나라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일 수밖에 없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은 특히 압제적이었다. 그들은 1950년대 초엽의 토지개혁과 지주계급 숙청, 1957년의 ‘反(반)우파 투쟁’, 1957년에서 1958년에 걸친 ‘대약진 운동’, 그리고 1960년대 후반의 ‘문화혁명’을 통해 수천만 인민들을 박해하고 학살하고 굶어 죽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공산당 정권은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감추고 권력을 독점해서, 인민들은 기본적 자유와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비록 지난 한 세대 동안 중국이 이룬 경제적 성취가 워낙 커서 공산당 정권에는 밝은 후광이 어리지만, 그 정권이 중국 역사에서 인민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을 준 정권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 나라가 밖으로 너그럽고 협력적인 정책을 추구할 리 없다. 실제로 중국은 공산당 정권의 수립 이래 줄곧 주변 나라들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면서 가장 나쁜 형태의 제국주의를 추구해 왔다. 인도·미얀마·소련·베트남·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였고, 타이완에 대한 무력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을 도와서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북한이 패배한 뒤에는 공식적으로 유엔군에 맞서 한국에 침입했다. 티베트와 신장(新疆) 문제도 본질적으로 중국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서 나왔다.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진 중국

공산주의의 핵심인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채택함으로써 중국 공산당 정권은 전제적 통치의 정당성을 잃었다. 그래서 공산당 정권은 잃은 정당성을 민족주의를 통해 되찾으려 한다. 토머스 크리슨센의 적절한 표현대로 “중국 공산당은 이미 공산주의자가 아니므로, 그것은 더더욱 중국적이어야 한다.”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전제적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공산당 정권의 시도는 대체로 성공했다. 그런 성공은 대중의 민족주의를 한층 거세게 만들었다. 앞으로 경제가 발전해서 자유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열망이 커지면, 공산당 정권은 민족주의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부추기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전략은 큰 위험을 안고 있다. 민족주의적 열정은 정치적 열정 가운데 가장 거세고 다루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섣불리 그것을 일으켰다가 제어하지 못하고 끝내 자신과 주변을 불태웠다.

민족주의적 열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되살아 보려는 결심을 낳는다. 오래 전에 그들의 선조들이 품었다고 여겨지는 열망들을 자신들도 품으려 애쓰며, 그 열망을 실제로 이룰 ‘역사적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古代(고대)부터 줄곧 아시아의 문화적·정치적 중심이었다가 근대에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은 역사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찬란했던 역사를 되살려보고 싶어하는 열망이 유난히 강하다. 이런 낭만적 애국심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적 특질을 지니게 되어 주변의 나라들과 부딪치게 된다.

‘갑자기 강대해진 이웃’은 늘 불길한 징조다. 강대한 나라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는 늘 강대한 이웃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일들에서 강대한 이웃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런 과정의 끝은 ‘핀란드化(Finlandization)’다.

핀란드화는 20세기에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도적 영향 아래 주권의 손상을 입으면서 생존한 경험을 가리킨다.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권이 弱化(약화)되는 것을 감수했다.

핀란드의 곤혹스러운 처지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1950년대 오스트리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소련 등 4개국의 점령 아래 있으면서 오스트리아는 핀란드가 간 길을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적응하는 방식

핀란드화라는 말이 실제로 쓰인 것은 1960년대에 독일 정치학자들이 미군이 독일에서 철수할 경우에 나올 상황을 논의할 때였다. 1966년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모든 군사적 동맹들을 없애자”고 제안하자, 독일에선 그런 상황이 독일의 핀란드화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핀란드화는 본질적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존재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힘에서 비대칭적이면 강대국은 ‘지배적 정책’을, 弱小國(약소국)은 ‘默從的(묵종적)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묵종적 정책을 고른 작은 나라는 큰 나라의 영향력에 세 가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나는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 방식은 작은 나라의 역량이 조직화되지 못하는 경우에 나온다.

둘째 방식은 정예집단(엘리트)이 큰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가치 체계를 나라 전체에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강요된 지배’의 경우 흔히 ‘괴뢰정권’이 나온다.

셋째 방식은 정예집단이 큰 나라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의 핵심적 가치를, 즉 자기 나라의 독립이나 자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체제(regime)가 큰 나라의 그것과 正體性(정체성)이 다를 경우, 이 방식이 자연스럽게 채택된다. 자기 나라가 큰 나라에 의존한다는 세력 구조를 인정하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찾는 태도이므로, 이것은 적응적이다. 그래서 이를 ‘적응적 묵종’이라고 한다.

핀란드의 경험은 적응적 묵종의 전형이다.

첫째, 핀란드와 러시아는 ‘체제 정체성(regime identity)’이 본질적으로 달랐다. 러시아는 압제적인 공산주의 체제였고, 핀란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려 애썼다. 적응적 묵종은 정권 정체성이 다를 경우에 나올 가능성이 높고, 큰 나라가 전체주의 체제를 지녔고 작은 나라가 자유주의 체제를 지닌 경우가 많다.

둘째, 핀란드의 러시아에 대한 적응적 묵종은 다른 경우들보다 훨씬 길었다. 두 나라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는 거의 반 세기 동안 이어졌고, 아직도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 검열, 주권 침해에 무반응

셋째, 핀란드의 양보는 처음부터 크고 뚜렷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졌고 러시아에 合倂(합병)될 가능성이 높았던 터라 러시아의 요구들을 거의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넷째, 적응적 묵종이 아주 안정적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힘의 비대칭이 워낙 커서 핀란드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들의 관계가 조약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정이 안정을 도왔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위기가 없었다.

그렇게 오래 이어졌고 안정적이었으므로, 핀란드의 경험은 다른 경우들보다 적응적 묵종의 과정과 특질들이 훨씬 뚜렷하다. 특히, 오랜 적응적 묵종이 불러오는 사회의 도덕적 變質(변질)이 다른 경우들보다 두드러졌다. 이런 도덕적 변질이 핀란드화의 본질적 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검열이었다. 러시아는 핀란드의 언론을 검열하지 않았지만, 핀란드는 러시아가 싫어할 글들을 스스로 검열해왔다. 그런 자기 검열은 처음엔 주로 정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차츰 언론인들과 학자들이 스스로 러시아가 싫어할 만한 주제와 논조를 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과 러시아의 압제적 체제와 같은 주제들은 특히 엄격한 자기 검열을 받았다. 러시아에 적대적이라고 판정된 책들의 목록이 마련되어, 1700종이 넘는 책들이 도서관들에서 사라졌다. 러시아를 비판했다고 여겨진 영화들도 검열을 받아 상영되지 못했다.

자기 검열은 필연적으로 강화되기 마련이다. 핀란드 지식인들은 자기 검열이 무너지면 러시아의 검열을 받을 뜻이 있는 상태까지 되었다. 이런 僞善(위선)과 무관심은 차츰 사회의 모든 분야로 퍼져서, 핀란드 사회의 정체성을 허물고 도덕적 피륙을 약화시켰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것은 중국과 긴 국경을 共有(공유)한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북한은 이미 실질적으로 중국의 衛星(위성)국가가 되었다. 한국도 중국의 강한 磁場(자장) 안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늘 크고 작은 주권의 침해를 감수하고 있다.

한반도의 핀란드化 진행 중

핀란드軍이 소련-핀란드 전쟁 당시 버려진 소련군 전차들을 살펴보고 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두 차례 소련과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고 핀란드化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중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살아가는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위에서 설명한 地政學的(지정학적) 요인만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중국은 이제 한국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나라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차지했던 그 지위를 중국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근년에 한국의 해외 투자는 중국에 집중되었다.

주목할 점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서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척 높다는 점이다. 즉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공장과 연구소를 많이 지었다. 직접투자는 회수가 어렵고 중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연히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어려워지면 한국의 직접투자는 중국의 볼모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기업가들이 무척 유화적이라는 사실이다. 유화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을 받는다. 힘세고 공격적인 외국에 맞서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외교관·종교인·언론인·대학 교수들이 유화 정책에 늘 매력을 느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 사회와 정권에 쉽게 접근해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근본적 편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편향을 가장 뚜렷이 보일 집단은 기업가들일 것이다. 정치적 긴장은 거래와 투자에 해롭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冷戰(냉전) 시기에 미국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의 모스크바 책임자가 소련 비밀경찰의 공작으로 기소됐을 때, 그는 미국 기업가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네빌 체임벌린이 히틀러에 대해 유화정책을 폈을 때 영국 시민들 가운데 가장 열광적 지지를 보낸 계층은 기업가들이었다. 몇 해 전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고려했을 때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나서서 그런 시도를 무산시킨 일은 교훈적이다. 지금 북한에 대해 가장 유화적인 계층이 북한에 진출한 우리 기업가들이라는 사실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한국의 웬만한 기업들은 다 중국에 진출했다는 사정이 뜻하는 것은 자명하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惡化(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애쓸 것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한국에서 ‘중국 로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한반도의 핀란드화’가능성은 실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핀란드와 한국의 처지는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서로 두드러지게 다른 점들도 있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처지가 크게 다르다. 핀란드와 러시아는 긴 국경을 공유할 뿐 아니라 핀란드는 서방세력이 러시아를 침공하는 통로가 된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핀란드를 통해 러시아(舊소련)에 침입했다. 한국과 중국은 그렇게 밀접하게 맞닿은 처지가 아니다. 자연히 두 나라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은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그것보다 훨씬 작다.

우리는 핀란드와 달라야 한다

다음엔, 역사적 관계와 독립성에서 다르다. 원래 스웨덴의 한 부분이었던 핀란드는 1809년 러시아로 이관됐다. 그때부터 1917년 독립할 때까지 핀란드는 大公國(대공국)으로 러시아 제국의 自治領(자치령)이었다. 지정학적으로 긴밀하다는 사정과 겹쳐, 이런 역사적 관계는 핀란드 사람들로 하여금 러시아에 흡수되는 상황을 늘 걱정하게 만들었다. 핀란드의 외교와 국방은 러시아에 흡수되는 사태를 피하는 것을 근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중국에 정치적으로 흡수될 가능성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셋째, 전쟁의 결과에서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핀란드는 두 차례의 러시아-핀란드 전쟁에서 완패했다. 그래서 핀란드는 자신의 운명을 적국에 맡긴 상태에 놓였었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은 중공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게다가 전쟁 이전의 상태로 국경을 돌리자는 중국과 북한의 요구를 물리치고 전쟁에서 얻은 상당히 넓은 북한 지역을 얻었다.

넷째, 대항력의 결정적 요소인 동맹에서 두 나라는 크게 다르다. 지정학적 조건과 역사적 관계에서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도적 영향 속에 놓였으므로,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동맹국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러시아(舊소련)의 침공으로 일어난 ‘겨울 전쟁’에서 혼자 싸워야 했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은 동맹국들 덕분에 이겼다. 지금도 한국은 외롭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적 국력의 차이다. 핀란드는 워낙 작은 나라여서 소련에 도저히 맞설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은 제법 덩치가 큰 나라이고 중국에 대해 지닌 대항력도 상당하다.

두 나라의 처지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국은 중국에 대해 적응적 묵종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처지가 세부적으로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은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면서 자신의 주권에 대한 침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대항력을 지녔음을 가리킨다. 한국이 어리석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핀란드화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군사적·시민적 대응력 키워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난동을 피운 중국 유학생들에게 우리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은 한국이 이미 ‘핀란드化’의 길을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興起(흥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정직하게 살피고 괴로운 상황을 인정하는 도덕적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되돌아 나올 길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합리적 대응은 대항력의 함양을 통해 양보를 최소화하는 ‘적응적 묵종’이다. 이미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대응해 왔다.

적응적 묵종의 전략적 개념은 ‘양보’와 ‘대항력’이다. 약소국의 전략은 간단하다. 비대칭적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양보를 되도록 적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대항력을 한껏 키워야 한다. 양보의 크기와 대항력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우리에게 열린 합리적 선택은 중국에 대해 적응적 묵종을 하되, 협상력을 한껏 키워서 공동의 이익을 나누는 데서 너무 밀리지 않는 것이다. 대항력의 요소들인 외교적 대항력, 군사적 대항력, 그리고 시민적 대항력을 함께 키워야 적응적 묵종이 실제로 적응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외교적 대응력을 늘리는 길은 중국의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과 협력해서 중국에 대응하는 것이다. 특히, 東(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흥기에 위협을 크게 느끼는 미국·일본, 그리고 아세안(ASEAN)과의 협력을 보다 긴밀하게 하는 것이다.

군사적 대응력을 늘리는 길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미국과의 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근년에 한국과 미국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金大中(김대중) 정권과 盧武鉉(노무현) 정권은 드러내놓고 미국에 대해 非(비)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反美(반미)감정은 조직적으로 키워졌고, 駐韓美軍(주한미군)에 관한 협상 과정에서 정부는 미국의 분노를 일부러 일으켜 철군을 유도하는 듯한 정책을 폈다. 北核(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 한국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해서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李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이 우리에게 지닌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멀어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튼튼히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도 그의 정책에 호의적으로 반응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親北(친북)세력의 조직적 반미운동을 통제할 수 있다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믿음은 많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적 대항력이나 군사적 대항력은 사회가 응집력을 지니고 외국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 뜻을 지닐 수 있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들은 누구도 도울 수 없다. 즉 대항력의 바탕은 ‘시민적 대항력’이다. 지금 한국의 시민적 대항력은 약하다. 한국 사회는 여러 면에서 분열됐다. 이념적 분열은 특히 심각하다. 근본적으로 이런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한국이 맞은 중국 문제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의 문제다. 한국은 처음부터 미국이 제공한 우호적 환경에서 자랐다. 미국은 자신이 점령한 한반도 남부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생존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가 자본과 기술을 얻고 상품들을 팔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런 우호적 환경이 한국의 급격한 발전을 가능케 했다.

다른 나라들이 발전해서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한국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전보다 훨씬 덜 우호적인 새 환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빠르게 초강대국으로 자라난 중국이다. 중국은 공산당 정권이 압제적으로 다스리고 사회 발전 정도가 초강대국의 지위에 걸맞지 않을 만큼 낮은 나라다. 그런 초강대국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적응하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앞으로 중국의 존재에 적응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다듬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적응적 묵종은 그저 우리와 중국 사이의 관계라는 외부적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본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도덕적 함의를 지닌다. 어떤 뜻에선 그런 도덕적 함의가 가장 본질적이다.

그 점에서 지금 우리의 도덕적 태도는 걱정스럽다. 중국의 흥기가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모두 잘 아는 사회에서 그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드물다는 사실은 분명히 시사적이다.

핀란드의 경험은 선명히 보여준다, 시민들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고 위선에 매달리도록 해서 도덕적 타락을 부르는 것이 ‘핀란드화’의 본질적 害惡(해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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