卜鉅一
⊙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중소기업은행 근무. 한국과학기술원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 문화미래포럼 대표 역임.
1987년 소설 <碑銘을 찾아서>로 등단.
⊙ 저서·작품 : 소설 <보이지 않는 손> <목성잠언집>, 평론집 <경제적 자유의 회복>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이념의 힘> <한국의 자유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등.
⊙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중소기업은행 근무. 한국과학기술원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 문화미래포럼 대표 역임.
1987년 소설 <碑銘을 찾아서>로 등단.
⊙ 저서·작품 : 소설 <보이지 않는 손> <목성잠언집>, 평론집 <경제적 자유의 회복>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이념의 힘> <한국의 자유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등.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엄청난 일이어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대개 결정적 요인을 가려내기 어렵다. 온 사회에 충격을 준 최진실씨의 자살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널리 퍼진 악의적 소문이 직접적 요인이었다는 점만은 거의 확실하다. 대중의 偶像(우상)이었던 그녀에게 자신의 인격을 짓밟는 소문은 견디기 어려웠을 터이다.
그 소문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인터넷이 매체였기 때문에 빠르게 널리 퍼졌다. ‘스타’들 여럿이 이미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惡意的(악의적) 소문들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퍼진 거짓 정보들과 ‘악플’(남을 비방하는 저질 댓글)이라 불리는 욕설과 저주의 폐해는 이미 심각해졌다.
자연히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유통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특히 거짓 정보와 비방을 처벌하려는 法案(법안)이 與黨(여당)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다른 편으로는, 그런 규제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리라는 걱정도 나온다. 野黨(야당)들은 특히 거세게 반대한다.
정보의 처리와 유통은 사회의 핵심적 기능이다. 당연히 그것을 규제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인터넷처럼 갑자기 나온 매체의 경우 先例(선례)도 찾기 어렵다. 이 복잡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서 우리를 인도할 만한 원칙은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친다. 작은 혁신은 삶의 모습에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혁명적 기술은 삶의 모습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모든 기술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낫게 만들지만, 기술의 도입이 불러오는 변화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요한다. 그런 적응은 당사자들에겐 물질적·심리적 비용을 뜻한다.
한 세대 안에 PC, 통신위성, 휴대전화, 인터넷 받아들여
게다가 어떤 기술이든지 부정적 효과들을 지녔다. 따라서 기술의 도입은 그런 부정적 효과들을 줄일 규범의 도입으로 이어진다. 선례가 드물거나 없으므로,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일은 당연히 어렵고 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삶의 교란은 정보 처리 기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삶 자체가 정보 처리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遺傳子(유전자)들에 담긴 정보들이 처리되어 생성되고 유지된다. 우리 마음의 움직임은 순수한 정보 처리 활동이다. 모든 사회 기구들은, 특히 시장과 정부는, 정보 처리가 핵심적 기능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명적 기술들이었던 문자, 주판, 종이, 인쇄술, 도로와 철도(당시엔 도로와 철도가 중요 정보 전달 수단이면서, 말과 기차의 속도가 정보 전파의 최대 속도였다), 무선 전신과 전화, 라디오와 텔레비전, 복사기, 통신 위성, 컴퓨터, 휴대 전화, 인터넷이 모두 정보 처리 기술들이었다. 학교, 신문, 잡지, 거래소와 같은 사회 기구들도 정보 처리를 크게 도운 기술들이었다.
우리는 한 세대 안에 개인 컴퓨터, 통신 위성, 휴대 전화,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네 가지 혁명적 정보 처리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 기술들은 우리의 인식과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삶의 모습을 새롭게 다듬어냈다.
인터넷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정보 처리 기술들의 종합이다. 그리고 지금도 빠르게 진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이 나타난 환경에 허겁지겁 적응하고 있다. 새로운 규범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터넷의 부정적 영향들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번에 일어난 끔찍한 일도 인터넷의 출현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
정보 처리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양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값을 혁명적으로 내렸다. 古代(고대)에 파피루스나 竹簡(죽간)에 기록된 정보는 양도 적었고 값도 보통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20세기 전반까지도 정보는 주로 인쇄 매체들에 담겼고, 자연히 양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값도 비쌌다. 그러나 전자 통신의 발전은 정보의 양을 갑자기 늘렸고, 덕분에 지금 정보의 값은 실질적으로 제로(0)에 가깝다.
‘지식인 대중’의 등장
정보의 값이 그렇게 싸지면서, 대중이 정보 처리와 지식의 생산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민들이 거의 모두 중등 교육을 받고 다수가 고등 교육을 향유해서 사회의 전반적 지식 수준이 높아진 데다, 대중 매체를 통해서 무료로, 또는 아주 싼 값으로 제공되는 정보와 지식의 양이 엄청나므로, 현대 사회에서 평균적 시민들이 지닌 정보와 지식의 양과 수준은 대단하다. 대중 매체를 통해서 얻는 정보와 지식은 또 가장 새로운 것들이다. 과학의 발달로 지식의 노후화가 아주 빠른 현대에서 대중이 가장 새롭고, 그래서 대체로 가장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끊임없이 얻는다는 사실은 중요한 함의들을 지녔다.
대중이 지닌 정보와 지식이 그렇게 많고 수준이 높으므로, 지금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대중과 전문 지식인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에서 벗어나면 대중보다 두드러지게 나은 정보와 지식을 지니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자연히 모든 지식인들은 한두 분야에서 지식의 생산자들이고 나머지 분야에선 지식의 소비자들이다. 즉 전통적 지식인들과 새로 지식인 계층에 진입한 대중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진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일에선 전통적 지식인들은 실제로는 대중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 대중이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현대 문화의 두드러진 특질은 대중적 성격이 두드러진 점이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소수가 지배하던 문화는 갑자기 밀어닥친 대중 문화에 밀려나거나 그것에 同化(동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현대 사회가 모든 분야들에서 대중이 권력을 장악한 대중 사회라는 사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중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근본적 요인은 대중이 지식인들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런 현상 아래에는 정보의 값이 싸졌다는 사실이다.
지식인 대중의 출현은 1930년에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란>에서 처음 언급했다. 그는 “대중이 지식인 계층에 진입한 현상이 근본적 중요성을 지녔다”고 설명하면서 그 현상이 현대 사회의 구조와 풍토에 들여온 큰 변화들을 지적했다.
귄위의 상실
그런 변화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통적 권위가 허물어진 것이다. 전통적 권위는 본질적으로 정보와 지식의 독점에 바탕을 두었다. 中世(중세) 유럽의 경험은 전형적이다. 당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기로 인쇄된 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었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되면서, 당시 가장 중요한 지식이었던 종교적 지식을 대중이 스스로 지니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종교적 지식을 독점했던 司祭(사제) 계급의 권위를 낮추었고 종교 개혁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대중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지니게 되면, 전통적 권위는 어쩔 수 없이 낮아진다.
권위의 허물어짐은 정치에서 특히 뚜렷하다. 앞선 사회들에서 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知的(지적) 차이는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렇게 지도자들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代議制(대의제)는 존재 이유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을 잃었다. 대신 여론을 통한 실질적 직접민주제를 지향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진다.
문화 분야에서도 사정은 같다. 비평가들의 평가를 밀어내고, 대중의 선호가 작품들의 가치를 재는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되었다. 대중의 득세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저항해온 문학에서도 전문 지식인들인 비평가들의 평가가 아니라 대중의 선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지 오래다. 즉 대중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 평가자가 되었다. 권위를 지닌 지도자가 나올 여지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대중 문화’에선 아예 지도자가 없어졌다. 많이 팔리는 작품을 만들면, 누구든지 이내 지도자로 대접 받고 많은 모방자들을 거느리게 된다.
오르테가가 지적한 것처럼, 대중의 근본적 특질은 자신을 향상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은 자신들 말고는 따로 권위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그런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평범한 재능들이 당당하게 ‘평범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그것을 사회 전체에 강요한다.
지도자를 보호하는 것은 권위다. 권위를 잃으면, 지도자는 자신을 보호할 길이 마땅치 않고 잠재적 적들이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지식인 대중이 출현한 뒤 어떤 분야를 이끄는 사람들이 거센 공격을 받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권위의 사라짐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누구나 ‘저자’로 만든 인터넷
인터넷은 지식인 대중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중요한 정보 처리 기술들이 융합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작용들도 여럿이고 크다. 최진실씨의 비극은 그런 부작용의 크기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인터넷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드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마셜 맥루한의 지적대로, “구텐베르크는 모든 사람들을 독자로 만들었다. 제록스는 모든 사람들을 출판업자로 만든다.”
이제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을 저자로 만들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다는 사람을 저자로 인식하거나 대접해 주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公的(공적)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은 댓글의 작성자를 엄연한 저자로 만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에 짧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비로소 저자가 된다. 글을 쓴 사람을 쉽게 알아서 글과 관련된 정보 비용을 줄이려 발명된 것이 저자이기 때문이다.
원시적 사회에선 저자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랑방이나 우물가에서 한 얘기에 관한 권리와 책임의 소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잘 알았다. 그러나 사회가 커지고 책과 인쇄술의 발달로 이야기꾼과 독자들 사이의 공간적·시간적 괴리가 커지자 글과 관련된 권리와 책임에 관한 정보 비용을 줄이는 일이 중요해졌고, 실명을 밝힌 저자라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에서 나오는 문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실질적으로는 저자이면서도, 권리와 책임이 귀속되는 저자의 기능을 하지 않으므로, 여러 부작용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터넷의 부작용들을 줄이는 일은 먼저 저자의 확립임이 드러난다. 인터넷은 公的(공적) 공간이므로, 거기서 글을 쓰는 것은, 비록 그것이 짧은 댓글일지라도, 일단 저자의 신분을 띤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글과 관련된 모든 권리와 책임이 저자에게 귀속되도록 해야 한다. 저자의 확립은 인터넷 포털이 출판업자에 준하는 권리와 책임을 진다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의 본질이 匿名性(익명성)이라는 주장은 그르다. 익명성이 사라지면, 인터넷의 생명력이 침해되리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저자의 출현으로 책과 출판이 활력을 잃은 경우는 없었다. 인터넷이 중요한 글쓰기 공간이 된 지금, 익명성은 오히려 인터넷의 건강한 성장을 해칠 수 있다.
저자라는 관행은 이미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기능해 왔으므로, 인터넷에서도 성공적으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實名制(실명제)가 확립되어 댓글을 다는 것도 글쓰기고 댓글을 다는 사람도 저자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 지금처럼 살벌한 인터넷 공간도 상당히 순화될 것이다.
정보의 유통과 처리는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므로, 규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인터넷이 빠르게 진화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일단 인터넷에서 실명제를 전반적으로 실시해서 저자의 관행을 확립하는 것이 온당한 조치로 보인다. 아마도 그런 조치만으로도 지금 나오는 폐해들의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조치들이 필요하다면, 그때 마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그 소문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인터넷이 매체였기 때문에 빠르게 널리 퍼졌다. ‘스타’들 여럿이 이미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惡意的(악의적) 소문들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퍼진 거짓 정보들과 ‘악플’(남을 비방하는 저질 댓글)이라 불리는 욕설과 저주의 폐해는 이미 심각해졌다.
자연히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유통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특히 거짓 정보와 비방을 처벌하려는 法案(법안)이 與黨(여당)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다른 편으로는, 그런 규제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리라는 걱정도 나온다. 野黨(야당)들은 특히 거세게 반대한다.
정보의 처리와 유통은 사회의 핵심적 기능이다. 당연히 그것을 규제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인터넷처럼 갑자기 나온 매체의 경우 先例(선례)도 찾기 어렵다. 이 복잡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서 우리를 인도할 만한 원칙은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친다. 작은 혁신은 삶의 모습에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혁명적 기술은 삶의 모습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모든 기술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낫게 만들지만, 기술의 도입이 불러오는 변화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요한다. 그런 적응은 당사자들에겐 물질적·심리적 비용을 뜻한다.
한 세대 안에 PC, 통신위성, 휴대전화, 인터넷 받아들여
게다가 어떤 기술이든지 부정적 효과들을 지녔다. 따라서 기술의 도입은 그런 부정적 효과들을 줄일 규범의 도입으로 이어진다. 선례가 드물거나 없으므로,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일은 당연히 어렵고 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삶의 교란은 정보 처리 기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삶 자체가 정보 처리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遺傳子(유전자)들에 담긴 정보들이 처리되어 생성되고 유지된다. 우리 마음의 움직임은 순수한 정보 처리 활동이다. 모든 사회 기구들은, 특히 시장과 정부는, 정보 처리가 핵심적 기능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명적 기술들이었던 문자, 주판, 종이, 인쇄술, 도로와 철도(당시엔 도로와 철도가 중요 정보 전달 수단이면서, 말과 기차의 속도가 정보 전파의 최대 속도였다), 무선 전신과 전화, 라디오와 텔레비전, 복사기, 통신 위성, 컴퓨터, 휴대 전화, 인터넷이 모두 정보 처리 기술들이었다. 학교, 신문, 잡지, 거래소와 같은 사회 기구들도 정보 처리를 크게 도운 기술들이었다.
우리는 한 세대 안에 개인 컴퓨터, 통신 위성, 휴대 전화,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네 가지 혁명적 정보 처리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 기술들은 우리의 인식과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삶의 모습을 새롭게 다듬어냈다.
인터넷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정보 처리 기술들의 종합이다. 그리고 지금도 빠르게 진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이 나타난 환경에 허겁지겁 적응하고 있다. 새로운 규범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터넷의 부정적 영향들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번에 일어난 끔찍한 일도 인터넷의 출현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
정보 처리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양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값을 혁명적으로 내렸다. 古代(고대)에 파피루스나 竹簡(죽간)에 기록된 정보는 양도 적었고 값도 보통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20세기 전반까지도 정보는 주로 인쇄 매체들에 담겼고, 자연히 양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값도 비쌌다. 그러나 전자 통신의 발전은 정보의 양을 갑자기 늘렸고, 덕분에 지금 정보의 값은 실질적으로 제로(0)에 가깝다.
‘지식인 대중’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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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대중이 지닌 정보와 지식이 그렇게 많고 수준이 높으므로, 지금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대중과 전문 지식인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에서 벗어나면 대중보다 두드러지게 나은 정보와 지식을 지니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자연히 모든 지식인들은 한두 분야에서 지식의 생산자들이고 나머지 분야에선 지식의 소비자들이다. 즉 전통적 지식인들과 새로 지식인 계층에 진입한 대중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진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일에선 전통적 지식인들은 실제로는 대중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 대중이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현대 문화의 두드러진 특질은 대중적 성격이 두드러진 점이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소수가 지배하던 문화는 갑자기 밀어닥친 대중 문화에 밀려나거나 그것에 同化(동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현대 사회가 모든 분야들에서 대중이 권력을 장악한 대중 사회라는 사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중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근본적 요인은 대중이 지식인들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런 현상 아래에는 정보의 값이 싸졌다는 사실이다.
지식인 대중의 출현은 1930년에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란>에서 처음 언급했다. 그는 “대중이 지식인 계층에 진입한 현상이 근본적 중요성을 지녔다”고 설명하면서 그 현상이 현대 사회의 구조와 풍토에 들여온 큰 변화들을 지적했다.
귄위의 상실
그런 변화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통적 권위가 허물어진 것이다. 전통적 권위는 본질적으로 정보와 지식의 독점에 바탕을 두었다. 中世(중세) 유럽의 경험은 전형적이다. 당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기로 인쇄된 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었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되면서, 당시 가장 중요한 지식이었던 종교적 지식을 대중이 스스로 지니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종교적 지식을 독점했던 司祭(사제) 계급의 권위를 낮추었고 종교 개혁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대중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지니게 되면, 전통적 권위는 어쩔 수 없이 낮아진다.
권위의 허물어짐은 정치에서 특히 뚜렷하다. 앞선 사회들에서 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知的(지적) 차이는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렇게 지도자들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代議制(대의제)는 존재 이유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을 잃었다. 대신 여론을 통한 실질적 직접민주제를 지향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진다.
문화 분야에서도 사정은 같다. 비평가들의 평가를 밀어내고, 대중의 선호가 작품들의 가치를 재는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되었다. 대중의 득세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저항해온 문학에서도 전문 지식인들인 비평가들의 평가가 아니라 대중의 선호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지 오래다. 즉 대중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 평가자가 되었다. 권위를 지닌 지도자가 나올 여지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대중 문화’에선 아예 지도자가 없어졌다. 많이 팔리는 작품을 만들면, 누구든지 이내 지도자로 대접 받고 많은 모방자들을 거느리게 된다.
오르테가가 지적한 것처럼, 대중의 근본적 특질은 자신을 향상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은 자신들 말고는 따로 권위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그런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평범한 재능들이 당당하게 ‘평범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그것을 사회 전체에 강요한다.
지도자를 보호하는 것은 권위다. 권위를 잃으면, 지도자는 자신을 보호할 길이 마땅치 않고 잠재적 적들이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지식인 대중이 출현한 뒤 어떤 분야를 이끄는 사람들이 거센 공격을 받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권위의 사라짐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누구나 ‘저자’로 만든 인터넷
인터넷은 지식인 대중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중요한 정보 처리 기술들이 융합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작용들도 여럿이고 크다. 최진실씨의 비극은 그런 부작용의 크기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인터넷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드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마셜 맥루한의 지적대로, “구텐베르크는 모든 사람들을 독자로 만들었다. 제록스는 모든 사람들을 출판업자로 만든다.”
이제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을 저자로 만들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다는 사람을 저자로 인식하거나 대접해 주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公的(공적)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은 댓글의 작성자를 엄연한 저자로 만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에 짧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비로소 저자가 된다. 글을 쓴 사람을 쉽게 알아서 글과 관련된 정보 비용을 줄이려 발명된 것이 저자이기 때문이다.
원시적 사회에선 저자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랑방이나 우물가에서 한 얘기에 관한 권리와 책임의 소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잘 알았다. 그러나 사회가 커지고 책과 인쇄술의 발달로 이야기꾼과 독자들 사이의 공간적·시간적 괴리가 커지자 글과 관련된 권리와 책임에 관한 정보 비용을 줄이는 일이 중요해졌고, 실명을 밝힌 저자라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에서 나오는 문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실질적으로는 저자이면서도, 권리와 책임이 귀속되는 저자의 기능을 하지 않으므로, 여러 부작용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터넷의 부작용들을 줄이는 일은 먼저 저자의 확립임이 드러난다. 인터넷은 公的(공적) 공간이므로, 거기서 글을 쓰는 것은, 비록 그것이 짧은 댓글일지라도, 일단 저자의 신분을 띤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글과 관련된 모든 권리와 책임이 저자에게 귀속되도록 해야 한다. 저자의 확립은 인터넷 포털이 출판업자에 준하는 권리와 책임을 진다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의 본질이 匿名性(익명성)이라는 주장은 그르다. 익명성이 사라지면, 인터넷의 생명력이 침해되리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저자의 출현으로 책과 출판이 활력을 잃은 경우는 없었다. 인터넷이 중요한 글쓰기 공간이 된 지금, 익명성은 오히려 인터넷의 건강한 성장을 해칠 수 있다.
저자라는 관행은 이미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기능해 왔으므로, 인터넷에서도 성공적으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實名制(실명제)가 확립되어 댓글을 다는 것도 글쓰기고 댓글을 다는 사람도 저자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 지금처럼 살벌한 인터넷 공간도 상당히 순화될 것이다.
정보의 유통과 처리는 본질적 중요성을 지니므로, 규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인터넷이 빠르게 진화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일단 인터넷에서 실명제를 전반적으로 실시해서 저자의 관행을 확립하는 것이 온당한 조치로 보인다. 아마도 그런 조치만으로도 지금 나오는 폐해들의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조치들이 필요하다면, 그때 마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