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싱가포르 美北회담 이후 北核 전망 : 월간조선

데이너 페리노 美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4월14일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잠정합의한 북한 核(핵) 프로그램의 신고방안에 대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이 싱가포르 잠정합의에 대해 동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고 답변했다.

지난 4월8~9일 6者(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美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副相(부상·차관)이 회동한 후 합의한 싱가포르 잠정합의의 핵심은 ▲북한과 시리아 간의 核확산 문제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에 대해 북한이 어떤 수준과 방식으로 신고하느냐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위의 두 사안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나열하고 넘어가는 「상하이 코뮤니케」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 코뮤니케」 방식이란 美中수교 당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주장에 대해 미국이 이를 인정하는 대신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넘어갔던 방식을 말한다.

미국과 북한은 미국이 北核과 관련한 위의 두 사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代理(대리) 신고」를 하면, 북한은 미국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타협점을 찾았다.

크리스토퍼 힐 美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 김계관 외무성 副相은 당초 북한이 이 의혹을 「인정한다」는 표현으로 「인정한다(admit)」와 「인지한다(acknowledge)」 두 단어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인정」의 의미가 좀 더 강한 「admit」를, 북한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약한 「acknowledge」를 주장했는데, 결국 북측 요구가 관철됐다는 것이다.

「어정쩡한 잠정합의」

지난 4월8일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 숙소를 나서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이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북한과 타협한 데 대해 美 행정부와 의회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부처의 副장관급에서는 싱가포르 잠정합의가 북한 核 신고 의무의 핵심사항인 ▲북한의 과거 核확산 실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에 대해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시리아와의 核 협력, UEP에 대해 미국이 대신 신고하고, 북한은 이를 인정하는 방식의 비밀양해각서로 처리하기로 했다」는 힐 차관보의 설명에 의원들은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시 美 대통령은 일단 싱가포르 잠정합의를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잠정합의 직후, 「미국이 우려를 표시하지만 북한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항에 대해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는 선에서 상호의 주장을 반영하는 절충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럼에도 한국과 국제사회는 싱가포르 회동이 核협상 진전을 가로막았던 「신고와 不能化(불능화)」 문제를 풀어내는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 대한 代價(대가)로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로 和答(화답)하고, 머지않아 6者회담이 再開(재개)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북한과 미국의 초조감

이번 회동의 배경에는 북한과 미국이 느끼는 초조함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농축활동, 시리아와의 核협력 등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동안 북한은 『미국이 2007년의 2·13 합의와 10·3 합의를 통해 약속했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敵性國(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을 미적거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체제생존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얻어 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불안감을 느껴 왔을 것이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연이은 수해로 말미암아 2007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전년도 대비 50만t이 줄어든 400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년에는 50만~150만t의 곡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년에는 북한의 경작지 자체가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다시 아사자가 대량 발생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이 많다.

盧武鉉(노무현) 정부 동안 큰소리를 치면서 매년 40만~50만t의 쌀과 20만~30만t의 비료를 제공받았던 북한으로서는 아직 구체적인 對北(대북)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李明博 정부를 보면서 답답한 심정일 것이다.

파종기가 다가오지만 남한의 비료가 들어오지 않으면 북한은 당장 15% 내외의 減産(감산)을 해야 할 판이다. 지난 4월 초 북한이 李明博 정부에 대해 위협적인 언행을 보인 것은 다급한 식량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테러지원국」이라는 汚名(오명)은 북한의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되지 않는 한 북한은 미국의 대외원조법, 수출관리법, 국제금융관리법, 적성국교역법 등 제반 법률에 의해 원조를 받거나 국제금융을 제공받는 것이 사실상 차단된다.

이렇듯 내외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대해 강온 양면의 모습을 보였다. 남한에 대해서는 「李明博 정부 겁주기」를 시도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兩者(양자)회동 수용」으로 화답한 것이다.

초조감으로 치자면 북한보다 미국이 더 심했을 것이다. 북한이 2007년末까지 완료하기로 한 신고와 불능화는 무한정 지연되고 있다. 신고문제는 북한-시리아 核커넥션, 농축활동 등을 둘러싼 의혹으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불능화 합의에 따라 영변의 5MW(메가와트) 원자로에서 廢(폐)연료봉을 인출하는 문제는 지난 4월 초 현재 20%의 진전만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美 방문단이 돌아보고 온 북한 영변 核시설 모습. 核시설 불능화를 위해 해체한 단열벽돌과 모래들이 쌓여 있다.

경제난·식량부족은 北核에 영향 못 줘

지난 2월 미국 ABC 방송이 취재한 북한 영변 核시설의 모습.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戰死者(전사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세력이 부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北核문제마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자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런 외교적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물러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유념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식량부족이나 경제난 등이 북한의 核행보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대행군」 시절에도 주민들의 굶주림을 방치하면서 核개발을 강행했다. 북한 주민을 고달프게 하는 외교고립이나 경제제재가 북한의 核행보를 중단시킨 적은 없다. 이는 주민의 삶의 질보다는 체제의 온존을 중요시하는 북한 정권의 특성 때문이다.

북한-시리아 核커넥션 의혹

2007년 9월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核의혹 시설을 공습한 후, 북한과 시리아 간의 核협력의혹이 제기됐다.

美·北 간에 「잠정합의」가 있다고 해서 싱가포르 회동에 대해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본국 정부와 의회의 지지를 확인해야 한다』라는 힐 대표의 발언이 시사하듯 미국 내 강경파들이 이런 방식의 어정쩡한 잠정합의를 인정할지는 의문이다.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신고와 검증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시리아 核커넥션 의혹과 관련해서 『시리아와의 核협력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 외에 무엇이 추가적으로 밝혀질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북한-시리아 核커넥션 의혹은 2007년 9월6일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시리아內의 특정 시설을 폭격하면서 불거졌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007년 10월1일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BBC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사시설을 폭격했다』고 밝혔다. 그 후 2007년 10월14일자 「뉴욕 타임스」가 『파괴된 시설이 북한의 5MW 흑연 감속로와 유사한 원자로일 수 있다』고 보도하면서 의혹은 증폭되었다.

이후 상업위성들이 찍은 사진들이 언론에 공개되었지만 사진만으로는 확실한 판별이 불가능한데다, 시리아가 현장을 완전히 해체해 버려 더 이상 증거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북한-시리아 核커넥션 의혹은 미국이 없었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지는 모른다. 규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사국인 시리아와 북한 그리고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여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북한의 核농축문제에 대한 합의내용이 베일에 싸여 있다. 미국이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북한의 核농축활동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비밀 농축시설을 고백하고 신고와 검증을 받을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플루토늄 생산 활동 또한 그렇다. 합의에 따라 신고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신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의 여부에 따라 검증에 소요되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신고와 불능화」는 시작에 불과

불능화 문제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2002년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2007년 말까지 영변의 5MW 원자로, 再처리시설, 核연료 가공공장 3 곳의 核시설에 대해 중요부품들을 분리 보관하는 방식으로 가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로 약속했다. 폐연료봉 인출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인출속도를 늦추어 2008년 2월까지로 시한을 미루었다.

2007년 말부터 북한은 『미국이 합의 이행을 미루고 있어 우리도 불능화를 지연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인출속도를 더욱 늦추는 「牛步(우보)작전」을 펼쳤다. 8000개 연료봉 가운데 현재까지 인출된 연료봉은 2000여 개에 불과하다.

불능화 문제는 그동안 美·北 간의 실무대화를 통해 방법상의 이견을 조정해 왔기 때문에 신고 문제에 비해서는 민감도가 덜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들은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고와 불능화」가 이행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 非核化(비핵화)를 위한 前哨戰(전초전)에 불과하지 非核化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非核化 조치는 플루토늄의 폐기, 농축 시설 해체, 核확산 활동 포기, 核무기비확산조약(NPT) 복귀, 核무기의 해체 등을 말한다. 즉, 북한이 核무기와 核무기 관련 시설들을 모두 해체하고 非核 준수를 위한 의지를 보일 때 非核化가 이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고와 불능화」는 이러한 非核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예비단계일 뿐이다. 진정한 非核化를 위한 核협상은 별도의 게임이 될 것이다.

2007년 6월 2·13 합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

金正日에게는 核 포기=체제 포기

2002년 8월 IKONOS 위성에서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북한은 체제유지를 지상과제로 삼고 核을 체제수호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북한에 있어 核포기 요구는 「체제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북한 지배층에게는 「죽음을 택하라」는 말이 된다.

북한이 核포기를 고려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체제에 대한 보장이 주어지는 것이다. 북한이 보기에 이런 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兩者(양자)대화만을 고집하면서 걸핏하면 『核문제는 北·美 간의 문제』라면서 通美封南(통미봉남)을 획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核포기의 대가로 人權不在(인권부재)의 수령독재 체제의 온존을 보장해 주는 것은 건국이념에 맞지 않고, 미국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의 끊임없는 체제보장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정치적·경제적 보상」만을 제시하고 있다.

극단적 방법으로는 미국이 「수술적 타격」을 통해 북한의 核능력을 분쇄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북한이 核무기를 보유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核실험까지 한 현재로서는 고려하기 어렵게 됐다.

北核문제 해결의 길은 멀다

미국 에너지부가 2003년 1월27일 열린「美北 향후 조치에 대한 워크숍」에서 공개한 1996년 북한의 폐연료봉 밀봉작업.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2008년이 北核문제 해결의 元年(원년)이 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론상으로는 ▲북한이 많은 반대급부를 챙기는 代價로 核포기에 합의하고 核폐기 수순을 밟아 나갈 가능성 ▲북한이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核개발을 강행할 가능성 ▲북한이 현상을 유지하면서 시간을 끌 가능성 등이 있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세 번째이다. 즉, 어떻게든 현재 보유 중인 核무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신고나 불능화와 같은 「前哨戰」에 해당하는 사안들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核폐기를 위한 本협상을 뒤로 미루는 「버티기」 전략을 구사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부시 美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 가운데 짧은 잔여임기만을 남겨 두고 있어 北核문제 해결을 위해 더 이상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北核문제 해결 전망은 밝지 않다. 북한으로서는 新정부 초기에 한국의 對北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李明博 정부 때리기」를 좀더 지속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20년 동안 浮沈(부침)을 거듭하면서 질질 끌어온 北核문제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싱가포르 회동은 다소간의 성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조그마한 片鱗(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北核문제 해결의 길은 멀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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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싱가포르 美北회담 이후 北核 전망

북한은 核폐기 미루는「버티기 전략」구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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