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0만 명,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7만 명에게 올해는 「강제 이주 7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다. 이들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分散)」를 잊지 않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現場
극동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은 1937년 9월 스탈린의 강제 移住(이주) 조치에 따라 중앙아시아에 내던져졌다.
이들이 중앙아시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혹독한 겨울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추위와 홍역 등의 질병으로 어린이의 60%가 사망했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 중에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을 비롯한 抗日(항일) 애국지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0만 명,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7만 명에게 올해는 「강제 이주 7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다. 이들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分散·분산)」를 잊지 않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6월18일 오후 11시5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공항 입국장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광고판이 입국자들을 제일 먼저 반겼다. 공항을 빠져나와 승용차로 20여 분을 달려 도심의 호텔에 도착했다.
6월19일 오전 6시 눈을 뜬 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로 나왔다. 전날 밤의 첫 인상과 다른 새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현지인들이 「천국의 산」으로 부르는 톈산산맥의 산봉우리들이었다.
외제 고급車 넘치는 알마티 中心地
오전 8시 알마티 거리로 나섰다. 기온은 35℃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20분쯤 걸었을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알마티 시내의 도로 사정은 출퇴근길의 서울과 흡사했다. 2차선 도로는 차량들로 넘쳐났다. 신호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교차로마다 차량들이 뒤엉켜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승용차들이 낯설지 않았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등 세계 유명 차량들이었다.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한참 뒤떨어지는 알마티에 어떻게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할까? 그 해답은 석유와 천연자원이다.
카자흐스탄의 면적은 한반도의 12배, 남한의 26배에 달한다. 인구는 1500만 명이다.
카자흐스탄은 舊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10년간은 별다른 경제발전을 꾀하지 못했다. 2000년부터 국제 원유가가 급상승하면서 연간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카자흐스탄人들은 2000년을 「경제성장의 원년」이라고 부른다.
카자흐스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00달러(2006년 기준)로 舊소련 CIS 국가 중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카자흐스탄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화학원소를 거의 다 품고 있는 자원의 寶庫(보고)다. 풍부한 원유와 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텅스텐은 세계 1위, 우라늄과 크롬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산악지역이지만, 日本의 국토 면적과 비슷한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어, 식량 수출국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997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티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는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10%인 1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알마티는 「사과의 도시」라는 뜻이다. 알마티 인근의 구릉지대에는 야생사과 나무가 밀집돼 있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의 군대가 알마티를 거쳐 중앙아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곳의 말린 사과를 軍用(군용) 식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도시 전체를 재개발 중인 알마티
현재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제1의 경제도시로서 금융과 물류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알마티 시내 곳곳은 아파트·오피스텔·호텔 등 각종 건물의 공사현장을 드나드는 공사차량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원유회사들과 금융기관들이 속속 알마티로 밀려들고 있는 데 반해, 사무실용 건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알마티의 아파트는 2001년 1만2500채에 불과하던 것이 2004년에는 2만1900채, 2005년에는 4만3800채로 급증했다.
지난 6월19일 오전 11시 알마티 시내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삼성전자 중앙아시아지역본부를 찾았다. 김진안 법인장(상무)과 박재현 차장, 장석진 차장, 황호준 과장, 방영철 과장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진안 법인장으로부터 알마티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현재 알마티는 도시 전체를 다시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건설붐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은 연간 60∼100%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죠.
알마티에서는 전세와 월세를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방 2칸짜리 아파트 월세가 4000달러 정도입니다. 서울과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알마티만 놓고 볼 때, 1인당 연간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4∼5년 지나면 2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예상입니다』
「알마티에서 돈 자랑하지 마라」
삼성전자 박재현 차장은 『알마티에서는 돈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 이곳 부자들 중에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3년 전 알마티로 이민 온 孫모씨(54)의 얘기다.
『4∼5년 전에 알마티로 이민 와서 부동산을 매입했던 한국인들 대부분은 현재 50억원대의 부자가 됐다. 현재 알마티에서는 부동산을 매입하려고 해도 팔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매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 삼성전자 직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도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현재 기온이 45∼50℃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 사무실에서 한국 음식점까지 승용차로 30여 분 정도 소요됐다.
도로변에는 대부분 수령이 70년은 족히 넘었을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톈산산맥에서 흘러든 물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알마티에 충분한 물을 공급해 준다.
알마티 시내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카자흐스탄이 어떻게 해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됐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대통령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1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12개 舊소련 연방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방들 중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소련연방 해체 후 중앙아시아의 맹주 자리는 카자흐스탄이 차지했다. 카자흐스탄은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한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폐쇄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 나라가 발전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전적으로 지도자에게 달렸다』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現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나자르바예프 現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991년 12월16일 舊소련 붕괴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독립은 물론, 舊소련을 대신할 독립국가연합(CIS) 창설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00년 1월 경제발전계획 추진을 위해 정부조직을 경제부처 중심으로 대폭 개편했고, 다양한 경제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와 함께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부유한 고려인들
약 10만 명에 달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대부분 경제수도인 알마티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백화점과 일반 상점, 식료품 가게 등 어디를 가도 고려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알마티 시내에는 현재 약 2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알마티 시내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에 가보면, 한민족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녹색시장(젤룐니 바자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중앙시장에는 고려인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아낙들이 각종 김치와 두부, 된장, 순대, 마늘장아찌, 오이장아찌, 백김치, 깻잎 등 전통음식을 팔고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공용어인 러시아말로, 한국인들에게는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건넨다.
이곳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金모 할머니(64)는 『주요 고객은 고려인이지만, 카자흐人들을 포함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자녀들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舊소련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었다고 한다. 1990년 중반 고려인들의 전문학교 이상 진학률은 52%, 대학교 이상의 학력 소지자는 전체 고려인의 35%를 넘어섰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 전문직과 사무직 종사자가 48%로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농업 인구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在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한 간부의 설명이다.
『현재 카자흐스탄內 상위 5위의 건설업체 중 절반 정도가 고려인 운영업체이고, 전자제품 유통업은 고려인이 전체의 1∼3위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카자흐스탄 6위의 은행이 고려인 소유이고, 세계적 구리 생산업체인 「카자흐무스」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고려인입니다』
구리 생산업체인 「카자흐무스」의 최대 주주인 金블라디미르氏는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힌다. 「카자흐무스」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車용규씨 역시 카자흐스탄內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巨富(거부)이다.
車씨는 고려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車씨는 지난 2월 이후 회사는 물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각종 소문에 휘말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車씨가 조직폭력배들에게 끌려가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車씨 스스로 엄청난 富를 축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민족의 얼을 잇는 신문과 극장
1989년 「카자흐스탄 고려문화중앙」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는 강제 이주당했던 매년 9월을 전후해 全카자흐스탄 고려인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오는 9월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70주년 행사 준비에 바빴다.
2000년부터 국가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아 고려인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고려일보」는 고려인들의 대변紙(지)다. 1923년 3월1일 3·1 독립만세 4주년을 기념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봉」이라는 제호로 창간됐던 이 신문은 강제 이주와 함께 폐간됐다가 이듬해인 1938년 5월1일 「레닌기치」라는 제호로 다시 복간됐고, 1991년 「고려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우리 글과 문화를 보존하고 모국어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 왔다. 1995년 이후 일간지에서 주간지로 발행형태를 바꾸었다.
1932년 연해주에 설립되었던 韓人(한인) 극장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고려극장」은 알마티에 전용 극장을 확보하고 우리 문화의 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 극장에서는 지금도 우리말로 연극을 한다.
알마티 시내 곳곳에는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아라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리석 목욕탕, 제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28명의 전몰용사 조각상 맞은편에 웅대하게 서 있는 병기창 건물, 공화국 회관, 독특한 양식의 「어린이 궁전」 등은 黃와짐과 李블라디미르라는 고려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이다. 알마티 시내에는 카자흐스탄 초대 헌법위원장을 지낸 故 金유리씨의 이름을 딴 「김유리거리」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지금까지 한식·단오·추석 등의 세시풍속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설날은 오랫동안 전통이 끊겼다가 10여 년 전 부활됐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식이 되면 아침 일찍 음식을 장만해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다. 시루에 찐 증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 낸 찰떡, 삶은 닭고기, 사과, 사탕, 러시아식 소시지 등을 마련해 조상의 묘소 상석에 차려 놓고 세 번 절을 한다.
카자흐스탄의 韓流 열풍
알마티 시내를 둘러보면 한국어 교과서를 손에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마티 한국종합교육원에서 방과 후 초·중·고급반으로 나뉘어 한국어를 배울 수 있고, 알마티와 지방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돼 있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 가르치고 있는 「쉬꼴라(우리나라의 초·중·고 과정을 합친 의무교육기관)」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현지인들은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급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외국계 회사의 진출과 함께 한국어와 더불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게 삼성전자 현지법인 관계자들의 말이다.
삼성전자 현지법인은 올해 들어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에게 두 차례 급여를 인상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이 올 하반기에 또다시 급여를 인상해 달라는 요구를 해올 것 같다고 했다.
기자는 6월20일 오후 1시20분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0인승 소형 비행기는 이륙에서부터 착륙 때까지 탑승객들을 긴장하게 했다. 낡은 러시아産 비행기 내부는 파손된 곳이 많았고, 비행 중에 많이 흔들렸다.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긴장 속에 중앙아시아의 하늘을 1시간30분 동안을 떠다니던 비행기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내려 앉았다. 비행 중 40代가 훨씬 넘어 보이는 승무원은 기자에게 똑같은 세관신고서를 2장이나 주었다. 기자는 「세관신고서가 2장」이라며 1장을 승무원에게 되돌려 주었다. 승무원은 말 없이 세관신고서 1장을 되돌려 받았다. 이것이 출국 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타슈켄트 국제공항의 입국장에서는 입국신고서를 받지 않았다. 다만, 비행기 안에서 나눠 준 세관신고서 1장만 받았다.
『타슈켄트의 자유진영은 호텔 내부뿐』
기자는 이날 오후 타슈켄트에 도착해 간단하게 한국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 뒤 시내 중심지에 있는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 곳곳에는 유난히 경찰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호텔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 본 뒤 통과를 허가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현관문 앞에도 X선 투시기가 설치돼 있었다.
호텔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타슈켄트 일대에서 테러분자들에 의한 폭탄테러 사건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호텔 안은 자유민주주의 지역이고, 호텔 현관문만 나서면 그때부터는 경찰 등 사법 공무원들의 감시 대상으로 변했다.
이날 오후 5시 타슈켄트 시내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을 찾았다. 한국 정부가 1995년 정부 예산으로 매입해 한국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다.
교육관 현관에는 화가 김홍도가 그린 그림(서당에서 아이들이 글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복사본 밑에 「오늘도 배움을 위하여 우리 교육원에 오시는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타슈켄트 고려신문(月 2회 발간) 편집장을 맡고 있는 고려인 2세 金브루터(57)씨를 만났다. 브루터씨는 1995년 서울 연세大 어학당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았다.
『88올림픽 이후 고려인 위상 높아져』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17만 명 정도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人이 전체의 75%를 차지해 가장 많고, 다른 민족 중에는 카자흐人이 500만 명, 러시아人이 140만 명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농업에 종사를 하거나 장사를 하며 가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있어 한국은 「꿈의 고향」입니다. 한국 정부가 매년 약 1000명씩 고려인을 한국 산업체 근무인력으로 선발하고 있는데, 이 선발대상에 뽑히는 것이 고려인 모두의 꿈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고려인과는 달리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에게만 산업체 인력 선발시 한국어 시험을 치르려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젊은 고려인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브루터씨는 『전체 17만 명의 고려인 중 타슈켄트에 7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10만 명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했다.
브루터씨는 『강제 이주 이후 이곳의 고려인들은 생활수준이 낮아 현지인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이후 고려인들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고 했다.
브루터씨는 1989년 고려인들의 애환과 삶을 소개한 「우리는 누구인가―소련의 한인들 125년사」란 책을 발간했다. 브루터씨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 할아버지는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머니의 품안에서부터 러시아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제국은 몸과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하여 그를 품안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내 아버지는 어른이 되어서야 모국어를 읽고 쓸 줄 알게 되었지만, 「꼬레야」라는 잡지를 계속 구독하였으며 38선 남과 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빼놓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의 묘지에는 우리 동포 여인네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다른 사람들까지 몰려 들어 깊은 애도를 표해 주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30여 년을 몸 담았던 黨 지역위원회의 의장인 우즈벡人은 장례식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여！ 고향 땅, 고향 하늘 아래서 고이 잠드소서』
그런데 우린 도대체 누구인가? 우린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특유의 근면성으로 우즈벡 농업을 혁신시킨 고려인
타슈켄트內에 소재한 대학교 중 5곳에 한국어과가 설치돼 있고,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배우는 언어가 한국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는 9월에 열리는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역시 1937년 舊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내던져졌다.
고려인들은 특유의 근면성으로 벼농사와 목화 재배에 성공했고, 이같은 고려인들의 노력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최대 미곡 생산지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 농장」과 「폴리타젤 농장」 등지에서 일한 많은 고려인들이 「노동영웅」이 되었다. 이들은 짧은 시간에 버려진 땅을 일구고 농토를 개량해 다소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고려인들은 정착 이후 학교를 세우고 2세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했으나, 크게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까지 고려인 출신들은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고려인들은 거주 이전은 물론 여행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유배자 생활을 했다.
독립 이후 혼란에 빠진 우즈벡 고려인들
1991년 舊소련의 붕괴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127개 민족 중 농사일을 가장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60년 세월을 살아 온 고려인들이 국가 재정의 붕괴로 콜호즈(집단농장)에서 급여조차 못 받게 되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가운데 「아렌다(일종의 임차농)」 방식으로 인근 카자흐스탄이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농사를 지으러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민족차별이 점점 심해지는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연해주로 되돌아가는 고려인까지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처럼 여전히 한민족의 전통적인 관습을 이어 오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고, 설과 추석은 가장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인들은 공동묘지를 「북망산」이라고 부른다.
고려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례식이다. 이들의 장례식은 순수한 한국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정교나 이슬람식도 아니다. 일종의 혼합식으로 치러진다. 무덤 앞에는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에는 사진을 조각해 넣는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키질쿰 사막을 경계로 카자흐스탄,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동쪽으로는 타지키스탄, 동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과 마주하고 있다. 국토의 사면은 모두 육지뿐이며, 바다와 접하는 곳은 없다.
수도 타슈켄트에는 240만 명이 살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전체의 88%(수니파)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음은 그리스 정교로 신도수는 전체 인구의 9% 정도다.
타슈켄트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카리모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現 정부의 강력한 감시·철권통치 때문에 이같은 불만을 좀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인기 없는 대통령
지난 6월20일 오후 8시께 타슈켄트의 밤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시내로 나서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 중심 도로변에 경찰관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대통령께서 이제야 퇴근을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타슈켄트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자택에서 시내 중심지에 있는 집무실까지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이때 출퇴근 도로를 완전히 봉쇄하고 경찰관들이 50m 간격으로 줄지어 선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저격사건을 우려해, 100m 간격으로 저격수들이 배치된다고 한다. 참으로 희한한 대통령의 출퇴근 행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의 경우, 숙소를 벗어날 때에는 항상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검문 때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타슈켄트에는 영업용 택시가 없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구분할 것 없이 이 나라 근로자들의 수입은 월 50∼100달러로 엇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부업을 가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승용차를 굴리고 다닌다고 해서 결코 부자는 아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근무시간에 직장에서 일을 한 뒤, 승용차를 몰고 택시영업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그냥 손을 들고 서 있으면, 일반 승용차가 슬며시 다가온다.
우리 일행은 6월22일 새벽 4시 봉고차에 올랐다.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약 420km 떨어진 「역사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4시간30분 동안 초원지대를 달렸다. 사마르칸트에는 한국식당이 없기 때문에 김밥을 준비했다.
티무르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오전 9시가 조금 못 돼 사마르칸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과거 중앙아시아 지역을 다스리던 티무르제국의 수도였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는 「동방의 낙원」, 「중앙아시아의 로마」, 「황금의 도시」 등으로 불렸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마르칸트는 현재 사마르칸트州의 州都(주도)이며, 인구 36만 명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티무르제국이 패망하기까지 중앙아시아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사마르칸트는 「푸른도시」라고도 불린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자랍산江이 水源(수원)이었다. 도시의 주요 건물인 모스크 등의 건물이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 내 푸른색을 띠는 벽돌로 장식돼 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티무르 황제의 무덤이 있는 구르에미르를 찾았다. 「구르」는 「묘」를,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즉 「왕의 묘」라는 의미다. 이곳에는 아미르 티무르 왕을 시작으로 그의 아들과 손자 등 왕족 8명이 묻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자 30代 초반의 젊은 사람 두 명이 화단을 정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일행을 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안내인은 『다음날인 6월23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에 그에 앞서 화단을 정비하고 있으며, 이 사람들은 이곳의 직원이 아니라 인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강제로 징발을 당했기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구르에미르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둥근 모양의 지붕은 40℃ 이상의 태양열을 받아 더욱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무덤은 티무르가 1405년 자신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이 오트라르 원정에서 전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티무르 자신도 1년 후 중국 원정 도중 급사해 이 곳에 함께 묻혔다.
묘 내부로 들어서자 벽면과 둥근 천장은 온통 황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1996년 금 3kg을 들여 다시 도색한 것이라고 한다. 흑록색의 연옥(중국산)으로 만들어진 티무르 왕의 석관이 중앙에 놓여 있고, 그 북쪽으로는 티무르의 스승과 손자 한 명, 동쪽으로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으로는 울루그벡, 서쪽으로는 티무르의 아들 샤루흐, 이름 모를 손자, 아들 미란샤의 묘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들 묘석은 묘의 위치만 표시하고 있을 뿐, 진짜 석관은 지하 3m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놓여 있다. 모든 석관의 머리는 메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검게 보이지만,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햇빛을 받으면 비취색을 띤다는 티무르 왕의 석관을 비롯해 이곳에 안치돼 있는 모든 석관은 1941년 6월22일 소련의 인류학자들에 의해 열렸다. 이 조사에서 티무르 왕은 몽골계였으며, 유아 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가 부자유스러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내가 이 관을 나갈 때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것』(티무르 왕)
티무르 왕의 석관 뒤쪽에는 「내가 이 관을 나갈 때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1941년 6월22일 이 관이 열리고 며칠 뒤 히틀러의 독일 군대가 러시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大광장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라는 뜻이다. 왕의 알현식과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이곳에서 행해졌다. 타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시장이 있었다.
이 광장의 왼쪽에 있는 건물은 1420년 왕이자 학자였던 울루그벡이 이슬람 신학과 수학, 철학 등을 강의했던 곳이다. 당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은 1636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지어졌다. 이 건물 정면 외벽 상단부 아치에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사자보다는 호랑이에 훨씬 가깝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200숨짜리 지폐에 담겨 있는 바로 그 건물이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샵이라는 낮은 언덕에는 흰색 건물로 이뤄진 「아프라샵 역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박물관이 특히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박물관 내에 전시돼 있는 「使節圖(사절도)」 때문이다.
7세기 이곳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使節圖·사절도)에는 외국 사절단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鳥羽冠(조우관)을 쓴 삼국시대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벽화 오른쪽 하단의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한 두 사람이 신라의 사신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채색이 많이 벗겨져 그 형태만 겨우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월22일 밤 9시30분께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터졌다. 타슈켄트로 들어올 때 공항에서 세관신고서를 한 장만 작성해 공무원에게 제출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신고서는 두 장을 작성해 입국할 때 한 장을 제출하고, 나머지 한 장은 출국할 때 세관원에게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출국하는 것도 힘든 나라
입출국時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달러화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개인이 달러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올 때 가지고 있는 달러를 기재하고, 나갈 때 소지했던 달러 중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기재한다. 입국 때보다 더 많은 달러를 소지할 경우, 세관원은 그 이유를 꼬치꼬치 따지게 되고, 심지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기자는 세관원에게 『입국시 소지한 달러가 없었고, 나머지 세관신고서 한 장은 잃어버렸다』고 얼버무렸다. 옥신각신 끝에 세관원의 양해를 받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려는데, 이번에는 또 그림이 말썽이었다.
기자는 타슈켄트 시내 중심에 있는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선물용으로 유화 두 점을 구입했다. 가격은 한 점당 9만원이었다.
세관원은 포장한 그림을 풀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국내의 유명 그림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림을 다시 포장하려고 종이를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세관원 보조원 남자가 다가왔다. 『포장을 새로 해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포장비용은 韓貨(한화)로 약 1000원이었다. 돈을 뜯어 내는 방법이 가지가지이고, 출국장 관계자들끼리 상부상조하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고, 7시간 30분 동안 톈산산맥을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들이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중앙아시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혹독한 겨울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추위와 홍역 등의 질병으로 어린이의 60%가 사망했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 중에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을 비롯한 抗日(항일) 애국지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0만 명,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7만 명에게 올해는 「강제 이주 7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다. 이들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分散·분산)」를 잊지 않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6월18일 오후 11시5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공항 입국장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광고판이 입국자들을 제일 먼저 반겼다. 공항을 빠져나와 승용차로 20여 분을 달려 도심의 호텔에 도착했다.
6월19일 오전 6시 눈을 뜬 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로 나왔다. 전날 밤의 첫 인상과 다른 새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현지인들이 「천국의 산」으로 부르는 톈산산맥의 산봉우리들이었다.
외제 고급車 넘치는 알마티 中心地
오전 8시 알마티 거리로 나섰다. 기온은 35℃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20분쯤 걸었을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알마티 시내의 도로 사정은 출퇴근길의 서울과 흡사했다. 2차선 도로는 차량들로 넘쳐났다. 신호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교차로마다 차량들이 뒤엉켜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승용차들이 낯설지 않았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등 세계 유명 차량들이었다.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한참 뒤떨어지는 알마티에 어떻게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할까? 그 해답은 석유와 천연자원이다.
카자흐스탄의 면적은 한반도의 12배, 남한의 26배에 달한다. 인구는 1500만 명이다.
카자흐스탄은 舊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10년간은 별다른 경제발전을 꾀하지 못했다. 2000년부터 국제 원유가가 급상승하면서 연간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카자흐스탄人들은 2000년을 「경제성장의 원년」이라고 부른다.
카자흐스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00달러(2006년 기준)로 舊소련 CIS 국가 중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카자흐스탄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화학원소를 거의 다 품고 있는 자원의 寶庫(보고)다. 풍부한 원유와 가스는 말할 것도 없고, 텅스텐은 세계 1위, 우라늄과 크롬은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산악지역이지만, 日本의 국토 면적과 비슷한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어, 식량 수출국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1997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티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는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의 10%인 1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알마티는 「사과의 도시」라는 뜻이다. 알마티 인근의 구릉지대에는 야생사과 나무가 밀집돼 있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의 군대가 알마티를 거쳐 중앙아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곳의 말린 사과를 軍用(군용) 식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도시 전체를 재개발 중인 알마티
 |
| 고급 외제 승용차가 즐비한 알마티 시내 도로. |
알마티 시내 곳곳은 아파트·오피스텔·호텔 등 각종 건물의 공사현장을 드나드는 공사차량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원유회사들과 금융기관들이 속속 알마티로 밀려들고 있는 데 반해, 사무실용 건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알마티의 아파트는 2001년 1만2500채에 불과하던 것이 2004년에는 2만1900채, 2005년에는 4만3800채로 급증했다.
지난 6월19일 오전 11시 알마티 시내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삼성전자 중앙아시아지역본부를 찾았다. 김진안 법인장(상무)과 박재현 차장, 장석진 차장, 황호준 과장, 방영철 과장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김진안 법인장으로부터 알마티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현재 알마티는 도시 전체를 다시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건설붐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은 연간 60∼100%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죠.
알마티에서는 전세와 월세를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방 2칸짜리 아파트 월세가 4000달러 정도입니다. 서울과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알마티만 놓고 볼 때, 1인당 연간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4∼5년 지나면 2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예상입니다』
「알마티에서 돈 자랑하지 마라」
삼성전자 박재현 차장은 『알마티에서는 돈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 이곳 부자들 중에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3년 전 알마티로 이민 온 孫모씨(54)의 얘기다.
『4∼5년 전에 알마티로 이민 와서 부동산을 매입했던 한국인들 대부분은 현재 50억원대의 부자가 됐다. 현재 알마티에서는 부동산을 매입하려고 해도 팔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매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 삼성전자 직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도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현재 기온이 45∼50℃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 사무실에서 한국 음식점까지 승용차로 30여 분 정도 소요됐다.
도로변에는 대부분 수령이 70년은 족히 넘었을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톈산산맥에서 흘러든 물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알마티에 충분한 물을 공급해 준다.
알마티 시내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카자흐스탄이 어떻게 해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됐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대통령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1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12개 舊소련 연방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방들 중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소련연방 해체 후 중앙아시아의 맹주 자리는 카자흐스탄이 차지했다. 카자흐스탄은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한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폐쇄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 나라가 발전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전적으로 지도자에게 달렸다』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現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나자르바예프 現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991년 12월16일 舊소련 붕괴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독립은 물론, 舊소련을 대신할 독립국가연합(CIS) 창설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2000년 1월 경제발전계획 추진을 위해 정부조직을 경제부처 중심으로 대폭 개편했고, 다양한 경제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와 함께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부유한 고려인들
 |
| 한여름에도 눈으로 뒤덮여 있는 톈산산맥 인근의 스키장에 선 기자. |
알마티 시내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에 가보면, 한민족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녹색시장(젤룐니 바자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중앙시장에는 고려인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아낙들이 각종 김치와 두부, 된장, 순대, 마늘장아찌, 오이장아찌, 백김치, 깻잎 등 전통음식을 팔고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공용어인 러시아말로, 한국인들에게는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건넨다.
이곳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金모 할머니(64)는 『주요 고객은 고려인이지만, 카자흐人들을 포함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자녀들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舊소련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었다고 한다. 1990년 중반 고려인들의 전문학교 이상 진학률은 52%, 대학교 이상의 학력 소지자는 전체 고려인의 35%를 넘어섰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 전문직과 사무직 종사자가 48%로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농업 인구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在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한 간부의 설명이다.
『현재 카자흐스탄內 상위 5위의 건설업체 중 절반 정도가 고려인 운영업체이고, 전자제품 유통업은 고려인이 전체의 1∼3위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카자흐스탄 6위의 은행이 고려인 소유이고, 세계적 구리 생산업체인 「카자흐무스」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고려인입니다』
구리 생산업체인 「카자흐무스」의 최대 주주인 金블라디미르氏는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힌다. 「카자흐무스」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車용규씨 역시 카자흐스탄內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巨富(거부)이다.
車씨는 고려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車씨는 지난 2월 이후 회사는 물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각종 소문에 휘말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車씨가 조직폭력배들에게 끌려가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車씨 스스로 엄청난 富를 축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민족의 얼을 잇는 신문과 극장
1989년 「카자흐스탄 고려문화중앙」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는 강제 이주당했던 매년 9월을 전후해 全카자흐스탄 고려인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오는 9월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70주년 행사 준비에 바빴다.
2000년부터 국가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아 고려인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고려일보」는 고려인들의 대변紙(지)다. 1923년 3월1일 3·1 독립만세 4주년을 기념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봉」이라는 제호로 창간됐던 이 신문은 강제 이주와 함께 폐간됐다가 이듬해인 1938년 5월1일 「레닌기치」라는 제호로 다시 복간됐고, 1991년 「고려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창간 이후 지금까지 우리 글과 문화를 보존하고 모국어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 왔다. 1995년 이후 일간지에서 주간지로 발행형태를 바꾸었다.
1932년 연해주에 설립되었던 韓人(한인) 극장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고려극장」은 알마티에 전용 극장을 확보하고 우리 문화의 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 극장에서는 지금도 우리말로 연극을 한다.
알마티 시내 곳곳에는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아라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리석 목욕탕, 제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28명의 전몰용사 조각상 맞은편에 웅대하게 서 있는 병기창 건물, 공화국 회관, 독특한 양식의 「어린이 궁전」 등은 黃와짐과 李블라디미르라는 고려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이다. 알마티 시내에는 카자흐스탄 초대 헌법위원장을 지낸 故 金유리씨의 이름을 딴 「김유리거리」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지금까지 한식·단오·추석 등의 세시풍속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설날은 오랫동안 전통이 끊겼다가 10여 년 전 부활됐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식이 되면 아침 일찍 음식을 장만해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다. 시루에 찐 증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 낸 찰떡, 삶은 닭고기, 사과, 사탕, 러시아식 소시지 등을 마련해 조상의 묘소 상석에 차려 놓고 세 번 절을 한다.
카자흐스탄의 韓流 열풍
알마티 시내를 둘러보면 한국어 교과서를 손에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마티 한국종합교육원에서 방과 후 초·중·고급반으로 나뉘어 한국어를 배울 수 있고, 알마티와 지방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돼 있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 가르치고 있는 「쉬꼴라(우리나라의 초·중·고 과정을 합친 의무교육기관)」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현지인들은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급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외국계 회사의 진출과 함께 한국어와 더불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게 삼성전자 현지법인 관계자들의 말이다.
삼성전자 현지법인은 올해 들어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에게 두 차례 급여를 인상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이 올 하반기에 또다시 급여를 인상해 달라는 요구를 해올 것 같다고 했다.
기자는 6월20일 오후 1시20분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0인승 소형 비행기는 이륙에서부터 착륙 때까지 탑승객들을 긴장하게 했다. 낡은 러시아産 비행기 내부는 파손된 곳이 많았고, 비행 중에 많이 흔들렸다.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긴장 속에 중앙아시아의 하늘을 1시간30분 동안을 떠다니던 비행기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내려 앉았다. 비행 중 40代가 훨씬 넘어 보이는 승무원은 기자에게 똑같은 세관신고서를 2장이나 주었다. 기자는 「세관신고서가 2장」이라며 1장을 승무원에게 되돌려 주었다. 승무원은 말 없이 세관신고서 1장을 되돌려 받았다. 이것이 출국 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타슈켄트 국제공항의 입국장에서는 입국신고서를 받지 않았다. 다만, 비행기 안에서 나눠 준 세관신고서 1장만 받았다.
『타슈켄트의 자유진영은 호텔 내부뿐』
기자는 이날 오후 타슈켄트에 도착해 간단하게 한국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 뒤 시내 중심지에 있는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 곳곳에는 유난히 경찰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호텔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 본 뒤 통과를 허가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현관문 앞에도 X선 투시기가 설치돼 있었다.
호텔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타슈켄트 일대에서 테러분자들에 의한 폭탄테러 사건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호텔 안은 자유민주주의 지역이고, 호텔 현관문만 나서면 그때부터는 경찰 등 사법 공무원들의 감시 대상으로 변했다.
이날 오후 5시 타슈켄트 시내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을 찾았다. 한국 정부가 1995년 정부 예산으로 매입해 한국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다.
교육관 현관에는 화가 김홍도가 그린 그림(서당에서 아이들이 글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복사본 밑에 「오늘도 배움을 위하여 우리 교육원에 오시는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타슈켄트 고려신문(月 2회 발간) 편집장을 맡고 있는 고려인 2세 金브루터(57)씨를 만났다. 브루터씨는 1995년 서울 연세大 어학당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았다.
『88올림픽 이후 고려인 위상 높아져』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17만 명 정도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人이 전체의 75%를 차지해 가장 많고, 다른 민족 중에는 카자흐人이 500만 명, 러시아人이 140만 명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농업에 종사를 하거나 장사를 하며 가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있어 한국은 「꿈의 고향」입니다. 한국 정부가 매년 약 1000명씩 고려인을 한국 산업체 근무인력으로 선발하고 있는데, 이 선발대상에 뽑히는 것이 고려인 모두의 꿈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고려인과는 달리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에게만 산업체 인력 선발시 한국어 시험을 치르려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젊은 고려인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브루터씨는 『전체 17만 명의 고려인 중 타슈켄트에 7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10만 명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했다.
브루터씨는 『강제 이주 이후 이곳의 고려인들은 생활수준이 낮아 현지인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이후 고려인들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고 했다.
브루터씨는 1989년 고려인들의 애환과 삶을 소개한 「우리는 누구인가―소련의 한인들 125년사」란 책을 발간했다. 브루터씨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 할아버지는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머니의 품안에서부터 러시아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제국은 몸과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하여 그를 품안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내 아버지는 어른이 되어서야 모국어를 읽고 쓸 줄 알게 되었지만, 「꼬레야」라는 잡지를 계속 구독하였으며 38선 남과 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빼놓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의 묘지에는 우리 동포 여인네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다른 사람들까지 몰려 들어 깊은 애도를 표해 주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30여 년을 몸 담았던 黨 지역위원회의 의장인 우즈벡人은 장례식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여！ 고향 땅, 고향 하늘 아래서 고이 잠드소서』
그런데 우린 도대체 누구인가? 우린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
| 타슈겐트「고려신문」편집장이며 고려인 2세인 金브루터씨와 그의 저서(왼쪽) 표지. |
특유의 근면성으로 우즈벡 농업을 혁신시킨 고려인
타슈켄트內에 소재한 대학교 중 5곳에 한국어과가 설치돼 있고,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배우는 언어가 한국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는 9월에 열리는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역시 1937년 舊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내던져졌다.
고려인들은 특유의 근면성으로 벼농사와 목화 재배에 성공했고, 이같은 고려인들의 노력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최대 미곡 생산지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 농장」과 「폴리타젤 농장」 등지에서 일한 많은 고려인들이 「노동영웅」이 되었다. 이들은 짧은 시간에 버려진 땅을 일구고 농토를 개량해 다소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고려인들은 정착 이후 학교를 세우고 2세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했으나, 크게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까지 고려인 출신들은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고려인들은 거주 이전은 물론 여행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유배자 생활을 했다.
독립 이후 혼란에 빠진 우즈벡 고려인들
 |
| 타슈켄트「젊음의 거리」전경. 매일 그림시장이 열린다. |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가운데 「아렌다(일종의 임차농)」 방식으로 인근 카자흐스탄이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농사를 지으러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민족차별이 점점 심해지는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연해주로 되돌아가는 고려인까지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처럼 여전히 한민족의 전통적인 관습을 이어 오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고, 설과 추석은 가장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인들은 공동묘지를 「북망산」이라고 부른다.
고려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례식이다. 이들의 장례식은 순수한 한국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정교나 이슬람식도 아니다. 일종의 혼합식으로 치러진다. 무덤 앞에는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에는 사진을 조각해 넣는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키질쿰 사막을 경계로 카자흐스탄,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동쪽으로는 타지키스탄, 동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과 마주하고 있다. 국토의 사면은 모두 육지뿐이며, 바다와 접하는 곳은 없다.
수도 타슈켄트에는 240만 명이 살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전체의 88%(수니파)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음은 그리스 정교로 신도수는 전체 인구의 9% 정도다.
타슈켄트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카리모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現 정부의 강력한 감시·철권통치 때문에 이같은 불만을 좀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인기 없는 대통령
지난 6월20일 오후 8시께 타슈켄트의 밤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시내로 나서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 중심 도로변에 경찰관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대통령께서 이제야 퇴근을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타슈켄트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자택에서 시내 중심지에 있는 집무실까지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이때 출퇴근 도로를 완전히 봉쇄하고 경찰관들이 50m 간격으로 줄지어 선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저격사건을 우려해, 100m 간격으로 저격수들이 배치된다고 한다. 참으로 희한한 대통령의 출퇴근 행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의 경우, 숙소를 벗어날 때에는 항상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검문 때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타슈켄트에는 영업용 택시가 없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구분할 것 없이 이 나라 근로자들의 수입은 월 50∼100달러로 엇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부업을 가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승용차를 굴리고 다닌다고 해서 결코 부자는 아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근무시간에 직장에서 일을 한 뒤, 승용차를 몰고 택시영업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그냥 손을 들고 서 있으면, 일반 승용차가 슬며시 다가온다.
우리 일행은 6월22일 새벽 4시 봉고차에 올랐다.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약 420km 떨어진 「역사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4시간30분 동안 초원지대를 달렸다. 사마르칸트에는 한국식당이 없기 때문에 김밥을 준비했다.
 |
| 타슈켄트 근교에 위치한 고려인「김병화 박물관」전경. |
티무르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
| 티무르제국을 건설한 왕과 그의 자손들이 묻혀 있는 사마르칸트의 구르에미르 유적. |
사마르칸트는 현재 사마르칸트州의 州都(주도)이며, 인구 36만 명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티무르제국이 패망하기까지 중앙아시아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사마르칸트는 「푸른도시」라고도 불린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자랍산江이 水源(수원)이었다. 도시의 주요 건물인 모스크 등의 건물이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 내 푸른색을 띠는 벽돌로 장식돼 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티무르 황제의 무덤이 있는 구르에미르를 찾았다. 「구르」는 「묘」를,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즉 「왕의 묘」라는 의미다. 이곳에는 아미르 티무르 왕을 시작으로 그의 아들과 손자 등 왕족 8명이 묻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자 30代 초반의 젊은 사람 두 명이 화단을 정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일행을 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안내인은 『다음날인 6월23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에 그에 앞서 화단을 정비하고 있으며, 이 사람들은 이곳의 직원이 아니라 인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강제로 징발을 당했기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구르에미르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둥근 모양의 지붕은 40℃ 이상의 태양열을 받아 더욱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무덤은 티무르가 1405년 자신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이 오트라르 원정에서 전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티무르 자신도 1년 후 중국 원정 도중 급사해 이 곳에 함께 묻혔다.
묘 내부로 들어서자 벽면과 둥근 천장은 온통 황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1996년 금 3kg을 들여 다시 도색한 것이라고 한다. 흑록색의 연옥(중국산)으로 만들어진 티무르 왕의 석관이 중앙에 놓여 있고, 그 북쪽으로는 티무르의 스승과 손자 한 명, 동쪽으로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으로는 울루그벡, 서쪽으로는 티무르의 아들 샤루흐, 이름 모를 손자, 아들 미란샤의 묘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들 묘석은 묘의 위치만 표시하고 있을 뿐, 진짜 석관은 지하 3m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놓여 있다. 모든 석관의 머리는 메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검게 보이지만,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햇빛을 받으면 비취색을 띤다는 티무르 왕의 석관을 비롯해 이곳에 안치돼 있는 모든 석관은 1941년 6월22일 소련의 인류학자들에 의해 열렸다. 이 조사에서 티무르 왕은 몽골계였으며, 유아 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가 부자유스러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
| 우즈베키스탄의 古都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 |
『내가 이 관을 나갈 때 세계는 혼란에 빠질 것』(티무르 왕)
 |
| 티무르 왕과 그의 자손들이 묻혀 있는 구르에르미 내부. 가운데 검은 대리석관이 티무르 왕 석관. |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大광장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라는 뜻이다. 왕의 알현식과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이곳에서 행해졌다. 타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시장이 있었다.
이 광장의 왼쪽에 있는 건물은 1420년 왕이자 학자였던 울루그벡이 이슬람 신학과 수학, 철학 등을 강의했던 곳이다. 당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은 1636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지어졌다. 이 건물 정면 외벽 상단부 아치에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사자보다는 호랑이에 훨씬 가깝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200숨짜리 지폐에 담겨 있는 바로 그 건물이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샵이라는 낮은 언덕에는 흰색 건물로 이뤄진 「아프라샵 역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박물관이 특히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박물관 내에 전시돼 있는 「使節圖(사절도)」 때문이다.
7세기 이곳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使節圖·사절도)에는 외국 사절단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鳥羽冠(조우관)을 쓴 삼국시대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벽화 오른쪽 하단의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한 두 사람이 신라의 사신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채색이 많이 벗겨져 그 형태만 겨우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월22일 밤 9시30분께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터졌다. 타슈켄트로 들어올 때 공항에서 세관신고서를 한 장만 작성해 공무원에게 제출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신고서는 두 장을 작성해 입국할 때 한 장을 제출하고, 나머지 한 장은 출국할 때 세관원에게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
| 7세기 한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使節圖」. 선으로 표시한 부분에 신라 사신으로 추정되는 머리에 깃털장식을 한 두 인물이 그려져 있다. |
출국하는 것도 힘든 나라
입출국時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달러화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개인이 달러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올 때 가지고 있는 달러를 기재하고, 나갈 때 소지했던 달러 중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기재한다. 입국 때보다 더 많은 달러를 소지할 경우, 세관원은 그 이유를 꼬치꼬치 따지게 되고, 심지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기자는 세관원에게 『입국시 소지한 달러가 없었고, 나머지 세관신고서 한 장은 잃어버렸다』고 얼버무렸다. 옥신각신 끝에 세관원의 양해를 받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려는데, 이번에는 또 그림이 말썽이었다.
기자는 타슈켄트 시내 중심에 있는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선물용으로 유화 두 점을 구입했다. 가격은 한 점당 9만원이었다.
세관원은 포장한 그림을 풀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국내의 유명 그림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림을 다시 포장하려고 종이를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세관원 보조원 남자가 다가왔다. 『포장을 새로 해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포장비용은 韓貨(한화)로 약 1000원이었다. 돈을 뜯어 내는 방법이 가지가지이고, 출국장 관계자들끼리 상부상조하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고, 7시간 30분 동안 톈산산맥을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 살아가는 고려인들이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